흰 구름 부드럽게 풀어놓은 푸른 하늘 아래 활짝한 하얀 목련이 늦봄을 알린다, 맑고 투명한 대기 속에 하얀 무명천 말끔히 빨아서 널어놓은 것 같은 저 모습,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이 세상은 그 자체로서 기적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춘분으로서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저마다의 사랑과 싸움을 시작한다. 수채화 종이를 주문하고 팔레트를 닦고 붓도 씻고 화실 정리도 마쳤다. 해마다 사춘기를 겪는다. 이제 空(공)에서 色(색)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  (제자가 찍은 사진을 트리밍해서 올린다.)

'호호당 화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하늘  (0) 2021.04.01
지극한 가벼움으로 눈부신 너희 봄날의 꽃들아  (0) 2021.03.26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다  (0) 2021.02.05
風雪(풍설), 소실점 저 너머  (0) 2021.02.03
비와 구름, 산과 나무  (0) 2021.01.28

치과를 찾다, 춘분의 혁신

 

 

앓던 어금니를 뺐다. 진작 했어야 하겠지만 나는 으레 늦는다. 올 해는 3년간 미루었던 이빨 치료를 해야 한다, 뺄 건 빼고 때울 건 때우고 몇 개는 임플란트로 박고, 연말이나 되어야 끝날 것 같다.

 

그간 왼쪽으로 주로 씹다 보니 얼굴의 균형이 많이 무너졌고 오른쪽 엉덩이 근육에도 무리가 생겼다. 작년 초부터 미루기 시작한 치과치료가 겨우내 이어지더니 마침내 새 해 春分(춘분)이 되자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끝까지 버틴 셈이다. 이에 작심을 했으니 長征(장정)이 시작되었다.

 

 

이빨 치료는 역시 두려운 바가 있어서

 

 

이빨 치료에서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마취 주사라든가 발치에 따른 약간의 통증 또는 임플란트 봉을 받는 수술도 아니다, 나 호호당에겐 최고의 치과 주치의가 있기에 그런 일은 그 친구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주사를 맞은 뒤 마취가 퍼질 때까지 하게 되는 치석 제거 작업, 꽤나 두렵다, 강한 수압의 찬물이 치주 근처에 닿으면 그 자체만으로 신경 발작이 생겨서 양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말 싫은 것은 발치하고 상처 부위를 꿰맨 다음 지혈을 위해 거즈를 2시간 동안 꽉 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잔뜩 피비린내 나는 거즈가 혀에 닿고 인후를 통해 코로 올라오면 구토를 하게 된다. (그러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살그머니 재빨리 거즈를 갈아 물어야 하는 데 그 또한 부담이다.)

 

게다가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후라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한 데 그 또한 꽤나 참아야 한다는 점이다. 담배는 중독성이 워낙 강해서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가 아니면 끊기 어렵다, 이런 것을 왜 배워가지고 고생을 하는지. 예전엔 흡연은 성인 남자의 認證(인증)이던 시절이 있었다.

 

 

치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색에 빠져들다

 

 

오늘은 치료하는 시간 내내 겨울 동안 사색했던 불교 철학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집중했다. 그러자 절로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4 세기 경 인도의 바스반두가 짓고 중국의 삼장법사가 한역한 “大乘五蘊論(대승오온론)” 속의 구절인 苦謂生時有乖離欲(고위생시유괴리욕)이 그것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괴로움 즉 苦(고)란 그것이 생겨날 때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바람이 존재하는 것”이란 뜻이다.

 

참으로 핵심을 찌르는 말이 아닌가! 겨우내 여러 번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어떤 무엇이 내게 생겨나고 일어날 때 그로부터 벗어나고 등지고픈 마음을 가지는 게 苦(고)라고 하니 말이다.

 

마취주사를 맞고 발치 전에 하는 치석제거라든가 이어서 이빨을 빼는 등등 모두가 고통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이빨이 아파서였다. 그간에 염증이 나서 수시로 뻐근하고 아팠으니 그 모든 것이 고통 즉 苦(고)였음이다.

 

그러니 이빨을 빼는 수술이나 치료 모두 고통을 제거하기 위함이건만 그 역시 나름의 고통과 불편함을 겪어야 하니 그 또한 싫어서 참고 참다가 결국 더 이상 있다가는 왕창 더 큰 苦(고)를 겪을 것이 틀림없기에 치과를 찾아온 나였다. 고통 앞에서 나 호호당은 그야말로 비굴하고 옹졸하다.

 

 

태어난 게 죄라면 죄

 

 

시술의자에 누워서 눈을 가린 채 어금니가 쑥-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동안 “석가모니 부처님, 당신의 말이 절대 틀림이 없습니다, 바수반두(세친)여, 당신의 말씀 또한 역시 전혀 어긋남이 없습니다,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나라고 하는 존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게 근본적인 착오였던 것 같습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을 苦(고)라고 했긴 하지만 삶에는 즐거움 즉 樂(락)도 있다. 반대급부도 있다는 말이다. 바스반두는 樂(락)에 대해 樂謂滅時有和合欲(락위멸시유화합욕)이라 했다. 즐거움이란 그것이 사라질 때 다시 만나서 합치고픈 바람이 존재하는 것이라 했지 않던가 말이다.

 

 

고통과 즐거움은 균형이 깨져 있기에 

 

 

하지만 살아보니 알게 되지만 고통이란 것은 그것을 겪을 때마다 힘들다, 어려운 것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즐거움이란 그것을 겪을 때마다 그 세기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모순이 있다는 게 문제, 큰 문제라 하겠다. 삶에 있어 즐거운 날 그다지 많지 않고 괴로운 날이 훨씬 많다, 이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핵심 문제가 제기된다.

 

삶에서 괴로움은 많고 즐거움이 적다면 분명 밑지는 것인데 왜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살고자 하는 것일까?

 

 

산다는 건 사실 남는 장사가 아니란 사실

 

 

사는 게 이빨이 아파서 끙끙 앓는 것이고 죽는 게 앓던 이빨을 빼고 염증을 없애는 치료라 본다면 실은 미리미리 이빨을 치료하라고 하는 것처럼 어서어서 확-죽어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죽을 때 고통이 따른다 하더라도 그건 앓던 이빨 빼는 수술이라 여긴다면 잠깐 눈 딱 감고 어디 한 번 죽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생짜로 죽는 게 아니라 안락하게 세상을 여의는 약도 있다는데 말이다.

 

지나간 겨울 동안 읽고 사색했던 열권 이상의 불교 철학책 속에 담긴 것들을 간략하게 줄여 말할 것 같으면 이빨 계속 아파하지 말고 어서 치과를 찾아가라는 것, 즉 살면서 고생하지 말고 삶으로부터 어서 떠나라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건 염세적인 생각이 절대 아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득실을 따져보는 얘기, 즉 냉철한 理性(이성)에 바탕을 둔 생각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살고자 하는가?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거즈를 꽉 문 채 계속 생각해보니 왜 내가 더 살고자 하는 바람을 갖는 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유인 즉 이건 그냥 본능 때문이란 답이 나왔다. 머리로는 산다는 것이 밑지는 장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작정 무조건 살고자 하는 원천적인 욕망과 바람이 유전자 속에 로직(logic)으로서 심어진 채 태어났기에 살고자 한다, 이게 답이다!

 

버스에서 내릴 무렵 또 한 가지를 문득 알게 되었다, 왜 우리에겐 본능이란 이름의 원천적 욕망이 심어져 있는 가에 대해서.

 

본능이란 우리의 계산머리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또는 작동한다 해도 수시로 망각하게끔 지상명령으로서 심어진 것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똑똑한 척 해도 결국에 가선 소위 ‘깔때기’처럼 “시끄럽다, 그냥 살아, 무작정 살아보라고!”, 이렇게 이래저래 따져본 들 정해진 답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이란 사실이다.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나는 크게 외쳤다. 옛 썰! 무작정 살겠씸더!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집 현관에 들어서니 아내와 아들이 바라보는 터라 약간 지치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고생했으니 약간의 엄살 정도는 부려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이야기 #1.

 

 

아버지는 빈한한 시골 출신,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국내 최고 명문대를 나와 이른바 출세를 했다.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를 꽤 들어보았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 셈, 이른바 개천용이다.

 

그런데 개천용들은 나름의 문제점 심하게 말하면 비극을 안고 있다. 이 아버지의 경우 공부를 통해 성공했기에 인생은 20대까지의 학업에서 결정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천용의 아들은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성장하다 보니 아버지와 같은 악바리 근성이 없다. 사실 그게 당연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학업성적이 떨어지면 꾸짖기도 하고 때론 매를 들어 엄하게 단련을 시키려 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무섭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아들은 겨우(?) 서울 인 대학에 들어갔고 개천용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다. 아들은 그래도 공기업에 입사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애로가 많았다. 결혼 생활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나이가 50에 가까워도 여전히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면 속으로 두려움부터 든다.

 

개천용 아버지의 눈엔 아들이 그저 미꾸라지로만 보인다. 아들은 여전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으니 스스로를 미꾸라지라고 자책하고 있다.

 

아들을 미꾸라지로 만든 장본인은 개천용 아버지였다. 가진 것 없이 성공하는 방법은 오로지 공부가 전부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세계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세계관을 속으론 반발했지만 여전히 죄스런 마음이 크다. 그렇게 길러졌기에 당당히 살아가지 못 한다. 비극이다, 거의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다름없다.

 

 

이야기 #2.

 

 

또 하나의 비슷한 얘기를 해본다. 아버지는 개천용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반발했다. 결국 10대 시절에 집을 뛰쳐나왔고 그 이후 義絶(의절) 상태로 지내면서 많은 고생을 겪은 끝에 자동차 부품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다가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 묘소를 한 번은 찾아가고도 싶은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안함도 있고 섭섭함도 있고 이제 묘소를 찾아가본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손주는 자꾸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갈등이 많다.

 

아버지의 심한 질책은 가출을 불렀고 천신만고 고생 끝에 바닥에서 일어난 아들이었다. 이제 당신도 성공했으니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청주 대병으로 술을 묘소 주변에 돌아가면서 거하게 뿌려드리고 아버지를 용서해주라고 권유했다.

 

아버지의 방법이 잘못되긴 했지만 아들인 당신을 분명 사랑했을 것이니 이젠 가서 화해를 하라고, 용서하고 나면 당신의 부친 또한 무서운 거인이 아니라 잘 살아보려고 애쓰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알 게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얘기를 들은 그 분은 끄덕이더니 마음이 편해져서 돌아갔다.

 

 

이야기 #3.

 

 

아버지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작은 가게의 점원으로 들어갔다가 장사를 익혀서 서서히 사업을 키웠고 중년 이후에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정말이지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이 오로지 근검절약했다.

 

아들은 미국 유학까지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더 크게 성장하라는 개천용 아버지의 야심찬 포부였다. 아들은 돌아와서 사업을 물려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워라벨’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수시로 아들과 아버지는 충돌을 했다. 아들은 사업을 자신에게 맡겼으면 제발 간섭하지 말라는 생각이었고 개천용 아버지는 아들의 경영이나 여타 전반에 대해 크게 불만족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회사가 기울었고 그 와중에 개천용 아버지는 화병과 여타 성인병으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런 뒤 나를 찾아온 아들은 심사가 복잡했다. 자신의 경영수완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간섭이 사업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인지 또 아니면 사업 자체가 사양 산업이라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울해했다. 그러다가 나중엔 자신은 학자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 잘못된 일인 것 같다는 후회도 했다.

 

악바리 아버지는 사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더 멀리 크게 볼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고 곱게 자란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투사가 아니었다. 바닥에서 사업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에 나 호호당의 눈에도 사업을 잘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부자간의 엇갈린 기대와 희망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최근 소식을 알아보니 거의 폐업 직전이라 한다.

 

 

이야기 #4.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의대를 갔고 있는 집 딸과 결혼해서 개업을 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 잘 키웠는데 문제는 아들 녀석들의 학업이 영 엉망이었다. 둘 중에 하나만큼은 의사로 키워보겠다는 부부의 꿈은 무산되었고 이에 부부는 아들 둘을 차례로 미국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현재 의사 아버지는 은퇴를 했고 큰 아들은 귀국한 후 국내 대기업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미국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깨끗하게 말아먹었다. 이혼도 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백수 상태, 형이 재산을 다 말아먹은 바람에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둘째 아들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은 집에 돈도 없으니 뭘 할 수도 없고 일자리도 되질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그래서 자네가 사업하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했더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기회는 있었을 것인데 형이 재산을 탕진해서 그저 초라한 백수로 지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고생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이 두 아들을 유약하게 만든 것이 크다고 본다.

 

 

이야기 #5.

 

 

개천용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일구었고 아들이 물려받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야말로 잡초처럼 성장했기에 아들에 대해 너무나도 엄했다. 개천용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들은 사업을 물려받았다. 인맥을 넓힌답시고 고급 술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공연히 여기저기 술도 사주고 후원도 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아들은 끊임없이 술과 여자를 밝혔다.

 

부동산도 많았지만 하나 둘씩 팔아먹은 끝에 지금은 알거지, 부인은 결국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났다. 나를 찾아왔다. 왜 그렇게 술과 여자를 밝히고 이유도 없이 후원한답시고 돈을 썼냐고 묻었다. 이에 그 분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생각에 빠졌다. 약 3분 뒤 그 분은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는데 돌아가시자 자신의 세상이 왔다는 느낌이 들어 맘껏 놀다 보니 그만 실패하게 된 것 같다는 소회를 늘어놓았다.

 

그게 실패한 원인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엄하게 단속하다가 풀려났으니 마치 봇물 터지듯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맺는 말;

 

 

누군가 벌면 누군가는 쓴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간다. 세상의 아주 기본적인 이치이다. 부자 2대에 걸쳐 발전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선대가 이룬 것을 지키기만 해도 실은 대성공이다. 3대가 연이어 발전해가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누대에 걸쳐 번영했던 집안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대답은 내막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도중에 쉬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부와 부친이 연이어 성공했다면 그 자손은 너그럽게 살면서 인심을 베풀어야 한다. 조금 가세가 기울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렇다 보면 다시 그 증손이 뛰어나서 다시 번영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천용들은 절대 다수가 자식 농사에 실패한다. 자신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지만 그 자녀는 그런 환경이 아닌 탓이다. 이에 개천용들은 그저 너는 왜 이 아비보다 힘이 없느냐,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질책하기도 한다. 유복한 환경임에도 자식을 강하게 키운다? 모순이란 점을 개천용들은 모른다. 또 그를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엄하고 절제하도록 키운다? 기가 죽어서 미꾸라지만 만들어 낸다.

 

자신이 고생 끝에 성공했든 어떻든 자녀는 그저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면 되는 일이다. 실은 그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상이고 전부이다. 자신이 조금 성취했다고 해서 자녀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법은 없다.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저 이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다시 인물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멀리 가려면 도중에 쉬어가기도 하는 법이다.

사색과 독서를 마치고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소설부터 2월 우수 전까지 석 달 동안 꽤나 많은 생각과 독서를 했다. 이번엔 주로 불교 철학이었다. 대승오온론부터 시작해서 아비달마구사론, 나중엔 난해함의 극치를 달리는 대승기신론과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고생해가며 읽어 보았다.

 

고생했다는 말인 즉 여전히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 혼자만의 힘으론 부쳐서 일본 불교학자들의 국내 번역서도 여러 권 함께 읽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꾸러미로 꿰어내지 못한다.

 

 

바깥으로 나가야지  

 

 

겨울 동안 그림 작업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화실을 정리하고 화구를 닦았다. 양기 뻗치는 봄날이 왔고 곧 개나리와 목련이 만발할 때가 왔으니 어찌 마냥 사색에 빠져있을 수 있으리. 슬슬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내 속으로 침잠하고 봄이 와서 땅이 풀리고 남풍이 불어오면 내 속의 그림벌레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이르다. 봄비라도 한 번 흠뻑 대지를 적셔주어야 호호당의 수채화도 물을 머금을 것 같으니 말이다. 水彩畵(수채화)는 물이 있어야 한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시 

 

 

봄비 얘기를 하니 “캔터베리 이야기”의 序詩(서시) 중에서 첫 네 문장이 떠오른다. 현대 영어 버전으로 외우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라서 서시 전체를 그냥 풀어서 얘기해본다. (평생 연구해봤지만 외국의 시는 그냥 그 자체로서 읽고 음미해야지 번역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럴 뿐 실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4월이 되자 감미로운 소나기 흠뻑 내려서 메말라 있던 대지의 밑바닥까지 적셔놓으니 세상 모든 나뭇가지들은 그 물을 잎맥을 통해 다시 빨아 올려 꽃들을 피워 올리고 마침 불어오는 西風(서풍)은 그 달콤한 입김을 삼나무 밭 어린 가지의 끝 속으로 불어넣고 있다, 이제 막 여정을 출발한 태양은 白羊宮(백양궁)의 절반을 갓 지났으니 작은 날짐승들이 저처럼 쉬지 않고 지지배배- 노래를 하는 것은 자연이 그들의 가슴을 마구 설레게 해서 밤에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도록 했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순례를 갈망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지, 성지순례자들은 먼 異國(이국)에 마음이 쏠리니 이는 먼 나라 여러 고장마다 널리 칭송되는 성인들의 묘소를 찾으려 함이라, 특히 영국에서는 마을마다 앞을 다투어 캔터베리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이는 병들어 고생할 때 그들을 도와준 거룩하고 복된 순교자를 찾아가기 위함이라.

 

“캔터베리 이야기”는 英詩(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가 14세기 말 경에 해마다 4월이 되면 영국 각지에서 남쪽 바닷가의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를 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이야기책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보카치오가 남긴 “데카메론”과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다.

 

 

조금 풀이해보면 

 

 

위의 시에서 태양이 막 여정을 출발했다는 것은 태양이 3월 21일경의 춘분으로서 황도대 위로 올랐다는 것, 즉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백양궁의 절반을 지났다는 것은 4월 5일경의 청명절을 이제 지났다는 뜻이다. 늦은 봄이 시작된 것이다. 이럴 때 한 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니 봄 가뭄이 가시게 된다. 이에 목마른 모든 나뭇가지마다 잎맥이 수액으로 가득차서 한껏 부풀어 오르고 꽃을 피워낸다, 삼나무의 새로 뻗어난 여린 가지 끝에는 대서양에서 불어온 부드러운 미풍이 살랑대고 있다는 얘기이다.

 

춘분을 지나서 해가 점차 길어지니 새들은 늦은 밤까지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시끄럽게 울어대니 이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러니 자연의 일부인 사람들 또한 슬슬 먼 길을 떠나고 싶어지니 영국에선 남쪽 바닷가 근처의 캔터베리 대성당에 묻혀있는 성인들을 찾아가 기도를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한다. 다양한 직업과 동네의 사람들이 순례를 떠나니 시인은 그들의 얘기를 이야기책으로 담아내기 시작한다.

 

40년 전 탐구당의 문고판 책에서 읽고 외웠던 초서의 서시는 영어 문구와 함께 내 머릿속에서 이렇게 시작된다. “4월의 감미로운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그 뿌리에까지 뚫고 들어가...”

 

 

모두가 자연의 순환에 따를 뿐

 

 

이제 나 호호당이 화실을 정리하고 그림 그릴 준비를 하는 것처럼 독자들도 각자 활발하게 그 무엇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겨우내 침잠했던 것들이 우리 모두의 속에서 깨어나고 있으니 이는 이른 새벽부터 삼나무 여린 가지 위에서 울어대는 저 새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가 자연의 순환에 따를 뿐. (그저 코로나19의 현실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고픈 욕망을 당장은 눌러두고 있겠지만.)

 

 

대청소와 책 이야기 

 

 

작년 5월에 지금의 우면동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냥 대충 지내왔다. 그러다가 2월의 우수로부터 시작된 대청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손볼 데가 너무나도 많았던 까닭이다. 창틀을 닦고 베란다의 잡동사니들을 왕창 내다 버리고 바닥은 물로 씻어내고 화장실의 구석은 물론이요 천정까지 세제로 닦고 다시 물로 씻어내고 서가의 책들을 정리하고 등등. 그러다 보니 손가락 마디에 주부습진이 생겨서 보습제 열심히 바르고 엷은 고무장갑을 쓴다.

 

서가가 너무 부족해서 5단짜리 책꽂이를 두 개 더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배송에 2-3주 걸린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오는 토요일 춘분까진 청소와 정리를 완전히 마치려던 당초의 계획이 어그러졌다. 나사 풀리는 소리, 푸르르-.

 

한 때 책이 도대체 몇 권이나 되는지 헤어보려고 했다. 내친 김에 아예 목록까지 작성할 참이었지만 도중에 포기했다. 그래서 책꽂이가 몇 단인지 어림셈으로 하면 대충 알 수 있으리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헤아려보니 작업실과 집 다 합쳐서 48단, 한 단에 책이 대충 28권 정도 들어가니 대충 1350권 정도가 된다. 다 들어가지 않아서 뉘어놓은 책도 꽤 되니 아마도 1500권 정도가 되겠다.

 

예전에 구반포 아파트에 살 때 책이 대충 4천권 정도 된 적이 있다. 서재가 아니라 그냥 책 창고였다. 쌓아놓은 책 더미 사이로 한 권 찾다가 무너지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그 이후 신세가 망해서 셋집을 전전하다 보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2천권 정도를 버리기로 작심하고 1층 출입구 앞에 내다 놓으니 청소 아주머니들이 바로바로 가져갔다. 그 이후론 해마다 50-60권 정도는 버리고 있다. 올 해 역시 마찬가지. 중고 사이트에 팔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 하겠지만 귀차니스트인 나 호호당이다.

 

사실 내가 귀차니스트란 사실은 망한 뒤 그러니까 운명의 입춘을 지나면서 깨달았다. 출세도 성공도 부지런해야 하고 악바리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귀차니스트가 부귀와 영화를 바란다면 그건 좀 양심 없는 거라 여긴다.

 

 

옛 지혜를 새롭게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니 

 

 

그런데 호기심은 식어들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된 나만의 연구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나름의 결실을 맺었으니 말이다. 자연순환이 존재한다는 것, 대단히 규칙적이란 것, 나아가서 사람의 일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다시 알고 보니 옛 先人(선인)들과 현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만 나 호호당은 그것의 철저한 규칙성과 예외 없음을 알아내었을 뿐이다.

 

자랑스러웠다, 나 자신이. 선인들과 현자들의 지혜에 내가 닿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해했다. 요하네스 케플러와 아이작 뉴턴, 프리드리히 니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더 가깝게는 미르체아 엘리아데, 멀리 거슬러 오르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서 헬레니즘과 로마의 순환 사상, 고대 중국 동중서의 춘추번로와 회남자까지 이어지니 여러 천년에 걸쳐 이어져오는 맥의 줄기를 발견했다. 망각된 옛 지혜를 재발견했을 뿐 아니라 과학의 경지로 올려 세웠으니 참으로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올 해부터 천천히 글로 옮겨서 후세에 전하는 일이다. 아마도 내후년이면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지 않을까 싶다. 돈을 모아서 3천권 정도는 전국 도서관에 기증하고 더 여력이 된다면 영문판으로 제작해서 여러 나라의 국립도서관에 메일을 통해 받아달라고 요청을 할 생각이다.

 

세상이 알아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선 아무런 갈등도 걱정도 없다.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참으로 옳은 것이라면 절로 힘을 얻어 세월의 경과와 함께 온 지구촌에 널리 퍼질 것이고 혹시라도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없어져버릴 것이니. 하지만 자신만만하다,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 여긴다. 아마도 100년 후가 되면 전 세계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누군가 내 묘비 앞에 한 송이 꽃이라도 놓아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국발 먼지가 하늘을 수시로 덮어오는 봄날이다. 중국을 차이나라고 한다. 나는 중국을 먼지의 나라, 이에 먼지 塵(진)에 저쪽 那(나)를 붙여서 盡那(진나)라고 부른다. 곧 맑고 더 밝아질 질 것이다, 동남풍이 들어올 것이니.

어쩌면 우주 자체가 엄청나게 많을 가능성도 있으니 

 

 

우리의 우주 즉 유니버스(universe)가 빅뱅으로 해서 생겨났다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다양한 데 그 중에 하나로서 어쩌면 우주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무진장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다. 멀티버스(Multiverse) 가설이 그것이다. 평행우주란 말도 있는데 이 역시 우주가 중중무진일 때 가능한 얘기이다.

 

어차피 현재로선 빅뱅 이론이든 다른 주장이든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론이야말로 맘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담론의 영역이란 점에서 멀티버스 가설도 능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1921년까지만 해도 우주란 우리가 속한 은하계가 전부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에드윈 허블이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밖에 존재하는 별개의 은하란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면서 우주는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은하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특히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딴 허블 망원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멀고 먼 우주 저편의 은하들로부터 날아온 빛들을 사진으로 찍어내고 있다. 이에 천문학자들은 오늘날 “관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우리가 은하라고 부르고 있는 것들이 2조 개나 되며 은하 속의 별은 지구에 있는 모래알의 개수보다도 더 많다고 보고 있다.

 

 

멀티버스는 아주 오래 전 인도에서 이미 제시되었으니 

 

 

그런데 이 대목에서 돌이켜보면 멀티버스라든가 평행우주와 같은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은 사실 대단히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힌두철학 내지는 불교철학의 우주론이 바로 그것인데 그 시기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서 우리에게도 친근한 불교의 세계관이자 우주론인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가 그렇다.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멀티버스 혹은 평행우주란 점은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고대 인도 사람들의 생각부터 알아보자.

 

 

위치값 기수법을 발명해낸 힌두인들

 

 

고대 인도사람들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십진법 체계를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으며 기원후 400년 무렵엔 ‘0’이란 숫자를 발명함으로써 숫자를 표시함에 있어 그야말로 위대한 혁신인 “위치값 기수법”을 창안했다.

 

Positional notation!

 

이게 생소한 말 같지만 사실 우리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가령 320,671이란 숫자를 생각해보자. 이 숫자 안의 ‘0’은 천 단위에 붙는 숫자란 점이다. 즉 숫자의 위치에 따라서 수의 크기를 우리 모두 거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숫자를 한자 기수법으로 표시하면 三十二萬六百七十一이 된다. 얼마나 불편한가!

 

거기에 이런 식의 기수법으로 곱하기나 나누기를 하려면 그야말로 골 때린다. 더 골 때리는 건 로마식 기수법으로 곱셈이나 뺄셈을 하려면 일반인은 아예 불가능하다. 가령 6천명의 군단이 석달 동안 작전하기 위해 보급해야 할 식량을 계산한다고 해보자. 하루 세 끼, 3달간 보급, 필요한 물자는 밀과 우유, 버터, 치즈라 한다면 그 계산만으로도 하루의 시간으론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흔히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힌두(고대 인도)식 위치값 기수법이 발명되었기에 힌두인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큰 수를 상상해내고 만들어내고 자유자재로 계산해낼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 역시 그런 기수법 때문에 개념화될 수 있었다.

 

 

우주 속에 우리와 같은 생명체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란 것이 오늘날 와서 보니 우리 은하계 속의 무수히 많은 별 중에서 그저 그런 별인 태양, 그리고 태양이 거느린 아주 작은 먼지 알갱이에 불과한 여러 행성들 중에 하나인 行星(행성)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계에 속한 행성 중에 생명체가 사는 있는 행성은 우리 지구밖에 없다. 혹시라도 화성 지하에 미세한 유기체 또는 생명이 살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에서 이 시각에도 미국이 보낸 로봇이 화성 표면을 삐그덕-대면서 돌아다니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우주 안에 존재할 확률을 수천 兆(조)분의 1로 추정하고 있다. 거의 없다고 해도 되는 희박한 확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지구 밖에 또 있을 거란 점에 대해 희망을 걸어보고 있는 것은 나름의 충분한 근거가 있다.

 

앞에서처럼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 은하계만도 2조개나 되고 별은 지구에 있는 모든 모래 알갱이보다 더 많다고 하니 별에 속한 행성은 더더욱 많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행성의 숫자가 거의 무한대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 또한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봄직도 한 것이다.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멀티버스

 

 

그러면 이제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가 무엇인지 간단히 얘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지구를 그냥 하나의 세계라 하면 그것이 천 개 모인 세계를 小天(소천)세계라 하고 또 그것이 천 개 모인 세계를 中天(중천)세계, 다시 그것이 천 개 모인 세계를 大天(대천) 세계라 한다.

 

천 배씩 세 번 곱한다고 해서 三千(삼천), 즉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와 같은 행성이 전체해서 10억 개가 있는 세계인 셈인데 부처님은 바로 이 대천세계를 하나의 교화영역으로 한다고 인도 불교의 초기철학이론서인 “아비달바구사론”에 적혀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선 부처님 또한 무수히 많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삼천대천세계 역시 무수히 많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그게 바로 멀티버스이고 동시에 평행우주론이 되기도 한다.

 

 

힌두사상, 인류 최고의 환타지

 

 

고대의 인도 즉 힌두 사상과 불교철학을 접해보면 그 스케일과 깊이에서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기존의 그 어떤 환타지보다 더 뛰어난 환타지가 아닌가 싶다.

 

최근 들어 다양한 우주이론이 등장하고 있다. 앞서의 멀티버스라든가 평행우주만이 아니라 초끈이론이란 것도 제법 자주 귓전에 들려온다.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론이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되지 않는 바람에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제시된 이론이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모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로선 그저 그런 게 있나 보다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에 관한 과학교양서들이 적지 않지만 글이 아니라 수학 또는 數式(수식)으로 제시된 것을 이해하지 못 하는 한 그건 이해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불교에선 하나의 세계는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欲界(욕계)를 포함해서 色界(색계), 無色界(무색계)로 이루어진 33天(천)의 수직적 구조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시공간에선 도무지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혹시나 초끈이론이 말하는 11차원의 세계가 바로 그런 구조를 허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초끈이론은 물리학자들의 아이디어일 뿐이지 검증할 길이 전혀 없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상상은 변함이 없고 또 기발하다.

얼마 전 저에게서 자연순환운명학 강의를 이수한 자를 대상으로 그간에 연구한 결과 알아낸 호호당만의 특별한 주식투자기술에 대한 강좌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일종의 기술 전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 독자님들 중에 참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의를 상당히 많이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두 달 여에 걸쳐 박스권 조정장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주린이들은 물론이요 경력이 좀 되는 사람들도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주식투자란 것이 얼핏 보기에 운만 좀 따라주면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분야입니다.

 

이에 이번에는 특별기술 강의가 아니라 증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적인 기술들을 모아서 강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개최 일시: 2021년 3월 21일(일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50분 강의와 10분 휴식하는 방식)

 

강의 장소: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강좌 내용: 증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생존 기술 세트.

 

1. 박스권 장세에 대처하는 방법

2. 매수 후 ‘물렸을 때’ 빠져나오거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

3. 60일 이동평균선을 활용하여 중기 혹은 장기투자하는 방법

4. 주식와 증시의 꼭지점을 가장 빨리 확인하고 빠져나오는 방법.

5. 주식과 증시의 바닥점을 가장 빨리 확인하고 매수하는 방법.

6. 눌림목 매수와 추격 매수의 핵심 요령.

7.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만들어가는 방법.

 

수강료: 60만원

 

강좌신청방법: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또는 오후 3시 이후에 제 작업실 전화로 신청하셔도 되지만 가급적 메일 신청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02-534-7250)

 

수강 대상자: 아래 글 ‘강좌개최 이유’를 읽어보신 후 도움이 되겠다 싶은 분.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운 분들도 신청 가능.)

 

강좌 개최 이유;

 

 

(아래 글을 잘 읽어보시고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주식을 시작한 이들, 주린이 중에 벌써 그간 수익도 올리지 못한 채 주식 중독증에 빠진 이가 많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은 물론이다. 큰 자금들이 회사의 투자설명회를 충분히 새겨듣고 곰곰이 따져본 후에 투자하는 것 역시 베팅인데, 그저 HTS나 모바일 앱에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투자정보만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그야말로 도박이다.

 

거기에 주식을 해 본 경험마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오르는 장에서도 수익이 없을 것이고 중간에 조정을 거칠 때면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대세가 꺾어진 하락장에선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손실을 보고 그로서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주식을 하고 있으니 장차 그 피해가 얼마나 심할까!

이에 걱정이 되고 안타까워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 호호당이 증시하는 방법부터 얘기해보겠다.

 

나 호호당은 매일 증시를 한다. 오전 10시 무렵에 장세를 한 번 살펴보고 끝날 무렵에 한 번 확인해본다. 소요 시간은 합쳐서 10분 정도. 그리고 저녁 시간에 장 전반을 한 번 살펴보고 분석해보면서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사고파는 거래 또한 자주 한다. 하지만 거래금액은 전체 자본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량이다. 일평균 거래금액으로 말하면 자본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스스로 ‘간을 본다’고 표현한다. 가령 관심 종목이 생기면 1주 정도 사보는 식이고 수익이 제법 된다 싶으면 조금씩 분할 매도한다.

 

이런 식으로 소량거래만 하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가격이 되었다 싶을 때 자본의 10-15% 정도의 액수를 투입하기도 하고 반대로 가진 주식을 절반 정도 매도하기도 한다. 이런 거래는 1년 동안에 매수가 4회, 매도가 4회, 합쳐서 8회 정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른바 원금 중에서 주식에 투입된 액수, 소위 포지션 액수가 보통의 경우 40% 정도이고 기회가 왔다 싶으면 60%까지 올린다. 최근과 같이 오르락내리락만 반복하는 박스 장세에선 포지션 비율이 25% 정도에 불과하다.

 

아니? 그렇다면 나머지 원금은 그냥 놀린다 말인가?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냥 잠재워둔다. 증권계좌에 넣어두고 있으니 이자도 한 푼 없다. 하지만 놀리는 돈이야말로 주식게임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증시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예기치 않은 큰 폭의 조정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럴 때를 대비해서 놀려두고 잠재워둔다. 대폭의 하락이나 조정이 나오면 참고 인내하다가 이쯤이다 싶을 때 나머지 원금의 절반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절반은? 그건 내 생각이 틀릴 때도 있기 때문이고 이에 더 하락할 경우 그야말로 이 정도면 물려도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지점에서 다 밀어 넣는다.

 

이런 방식은 전쟁이 났을 때 일단 정규 병력으로 싸우게 하고 불리하다 싶을 때 동원예비군을 투입하고 그마저도 어렵다 싶을 때 지약예비군을 투입하는 방식과 같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나 호호당이 수익을 대폭 올릴 수 있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늦은 밤 시간 미국 증시가 오르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린다 한들 손실이 별로 크지가 않고 오르면 물론 좋은 일이고 그렇다. 수십 년 간 증시를 해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불안하다면 그건 패배한 게임,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름 터득했기 때문이다.

 

초심자들은 주식을 하다 보면 마음이 늘 불안하거나 불편하다. 그러다가 생각 이상으로 주가가 오르면 그야말로 신이 난다. 하지만 그 또한 실은 위험하다는 것을 초보 즉 주린이들은 모른다. 불안과 희열이 반복되는 상태가 바로 주식중독증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8,000원에 사서 12,000원에 팔았는데 그게 나중에 보니 30,000원까지 올랐다 치자. 진짜 기분이 나빠진다. 스스로 자신의 머리통을 때린다. 바보, 병신, 줘도 못 먹나 싶어 자탄에 빠진다. 그 결과 교훈을 얻게 된다. 다신 성급하게 팔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 하지만 실은 그건 교훈이 아니다. 팔아야 할 때 그냥 쥐고만 있다가 다시 내려서 매수했던 가격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면 또 교훈을 찾는다, 그리고 또 한 수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 또한 배운 것이 아니다. 주식이란 끊임없이 헛된 교훈을 터득해가는 과정이고 그것의 반복이 된다.

 

꾹 참는 것도 방법이 아니요, 수익 났을 때 얼른 팔아버리는 것도 방법이 아니다. 단타 치는 것도 방법이 아니요 장기 투자도 답이 아니다. 유튜브 들어가서 종목 추천을 따라하는 것도 운이 따라야 수익이 나지 아예 엉터리 추천도 허다하다.

 

주식 투자-실은 투기지만-에 있어 배울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배우고 터득해도 끝이 없는 게 주식게임이란 사실이다. 이는 증시에 참가한 모든 이들, 수백 수천만의 집단지성을 상대로 나 혼자 싸우는 것과 같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본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必敗(필패)의 게임이 바로 주식이다.

 

이에 주식을 오래 해보면 느끼게 되지만 주식은 실로 위험하다는 점이다. 오늘 예로 든 사항들만이 아니라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위험과 함정, 칼날이 도사린 세계가 주식이란 사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히 정답을 말하면 증시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종목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오르내림을 봐서 팔고 살 때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주식이란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기본기술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기본기가 있는 자만이 본전을 지킬 수 있고, 여기에 운이 따르면 수익도 난다. 그래서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 싶은 기본기술들만 모아서 하나의 강의 세트로 준비했다.

 

일요일 저녁 드라마에서 엄마가 군 입대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오래 전 기억 속의 한 장면이 툭-하고 눈앞에 떠올랐다. 쌀쌀하고 찌푸린 봄날 아침, 대문을 나서는 내 뒤를 조금 뒤따라오시던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팔을 어깨 위로 올려 손짓을 한 번 하시면서 “이젠 가니” 하고 한 말씀 하셨다.

 

이젠 가니,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가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잘 가라는 것도 아니고 어서 가라는 것도 아닌 그 한 말씀. 사실 그 날 하늘이 정말 흐렸던 것인지 아니면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서운한 눈빛이 그랬던 것인지 이젠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소리의 기억이 눈의 기억보다 더 오래가는 것일까?)

 

입대한 날자를 기억한다. 1978년 3월 4일, 그러니 어머니와 작별한 그 아침은 3월 3일의 아침이었을 것이다. 헤아려보니 43년 전의 일이다. 그때 어머니는 오십이셨고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지금 어머니는 故人(고인)이 되셨고 나는 예순일곱이다. 눈앞으로 그간의 세월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낮은 소리로 “엄마!” 하고 중얼거려본다.

 

중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봄날 밤이었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울고 있던 내게 어머니가 다가와 왜 우니, 속상한 일이라도 있니?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 아무 일도 없어...” 하고 답했다. 어머니는 자리로 돌아가시고 나는 다시 누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조용히 한참을 울먹였다.

 

울먹였던 이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엄마가 훗날 어느 날엔가는 돌아가시리란 생각에 슬퍼서 울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 눈동자엔 물기가 서린다. 그래서 어머니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니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신다. 엄마!

 

솔직히 말해서 나 호호당은 평생 단 한 번도 엄마 앞에서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 앞에서 ‘우리 어머니께서’, 이렇게 얘기했을 뿐이다. 아버지께서 먼저 가신 후 16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모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저 엄마와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을 뿐이다. 아내 입장에선 시어머니를 모셨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께서 융으로 만들어주신 잠옷 바지의 가랑이가 낡아서 결국 찢어졌다. 잠옷이라든가 또 여름철엔 마로 된 바지나 셔츠를 늘 재봉틀로 만들어주셨는데 이젠 남은 옷이 거의 없다. 아내는 이제 입을 수가 없으니 버리자고 했지만 아쉬워진 나는 아내에게 다른 천으로 바지의 헤어진 곳을 덧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땜방!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취들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그럴 때마다 그만큼씩 멀어져가서 아스라해지는 느낌이다. 면적에서 점으로 그리고 더 작은 점으로. 이젠 그 분들이 먼 지평선 언저리에서 있고 없고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나 또한 늙어가고 있으니 다시 보게 될 날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멀어져가는 것인지 가까워져가는 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이 50이 될 무렵까진 저승이라든가 영혼의 존재를 전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저승이라든가 영혼의 문제는 내가 죽어보지 않는 한 규명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죽으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자연 속으로 환원될 거란 생각만 했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을 좀 더 보내면서 저승과 영혼의 ‘있음’을 기대하는 쪽으로 조금식 옮겨왔다. 그렇게 바라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아선 모르는 일이니 낙관하는 것이 비관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겠는가.

 

엄마가 남긴 옷가지와 물건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니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시 만날 날이 한 해 한 해 가까워진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더 좋다는 얘기.

 

혹여라도 저 세상이 있다면 부모님은 물론이요 얼굴을 모르는 조상님들이 반겨줄 것이며, 동작동에서 내가 주던 밥을 먹다가 세상을 떠난 저 많은 길고양이들이 떼로 몰려나올 것이고 또 먼저 보낸 강아지들도 왈왈, 반갑다고 뛰어와 내 품으로 안길 터이며 귀엽던 토끼 ‘초롱이’도 깡총하고 폴짝 뛰어들 것이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온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가엾고 애처롭다는 생각만 든다. 모두들 살아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늙어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드라마 장면에서 시작된 기억을 글로 옮겨놓다 보니 마치 꿈속 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올려본다. 그냥 호호당의 환타지 정도로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바라면서.

 

 

부동산이 증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저번 글에서 유동성으로 인해 상승압력을 받고 있는 자산시장이란 말을 했다. 증시는 외국인 지분이 시장의 주도세력이란 점에서 부동산과는 성질이 많이 다르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증시와 부동산 시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험한 시장일까? 부동산은 그 안에서 우리가 잠을 자고 생활한다는 대단한 이점이 있다, 하지만 투자의 측면만 놓고 본다면 부동산 시장이 훨씬 위험하다.

 

무엇보다 환금성, 필요할 때 팔아서 돈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하락세에선 매수자가 거의 실종된다. 반면 주식은 가격의 오르내림은 심하지만 언제든 매수하는 이가 있어서 환금성이 좋다. (그런데 주식은 너무 쉽게 사고 팔 수 있다 보니 그게 또 문제가 되긴 한다. 더블 클릭이면 거래 완료, 이게 주식의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부동산 시장이 진짜 더 위험해진 이유는 절대 대다수가 주식으로 치면 신용매수란 점이다. 현금만으로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으레 대출, 즉 레버리지를 일으키게 된다.

 

증시에선 개인 투자자들에게 신용매수를 조심하라고 늘 강조한다. 급락 국면에선 반대매매까지 당할 수 있기에 증시가 좀 과열이다 싶을 땐 신용이나 미수가 얼마에 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된다.

 

그런데 부동산은 절대 다수가 신용매수라서 심한 하락이 오면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 경제를 절단낼 수도 있다. 신용매수의 부동산 시장은 정말 위험하다. 다만 그간에 늘 오르기만 했기에 그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위험성이 하나 더 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8년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바람에 가계부채가 폭증해서 2012년 말의 964조에서 작년 말로서 1,726조가 되었다. 그간에 79%나 늘었다. 시중 통화량의 증가속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국내총생산 증가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었다.

 

여기에 다시 추가해서 부동산 시장은 올 해에도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돈이 더 풀릴 것이니. 특히 보선을 앞두고 있는 현 정부로선 때 마침 미국 바이든 신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한다고 하니 쾌재! 로다 하면서 대규모 제4차 재난지원금을 또 다시 수십 조 풀 것이라 한다.

 

60년 전 이승만 정부는 막걸리와 고무신을 주었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이젠 명분도 당당하다. 전 국민 위로금이라니 마치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는 격이다. 내년엔 또 대선이 있다. 그러니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서 계속 단비가 내릴 것이다. 시중유동성은 더 불어날 것이니 부동산은 여전히 오를 가능성이 높다. 장기상승세 10년을 채울 것도 같다.

 

그렇다, 이제 부동산 시장은 끝을 보러 가는 것 같다. 갈 데까지 쎄리고! 그런데 언제까지 갈까? 답은 아주 쉽다, 미국 연준이 금리 정상화에 착수하는 시점까지. 그러고 나선 장렬하게 붕괴할 것이다, 우리 부동산 시장은.

 

 

그렇다면 증시는 어떻게 될까? 

 

 

우리 증시 역시 성질이 제법 달라졌다. 2020년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시장이었다. 그런 탓에 2012년부터 사실상 작년까지 8년간 박스장, 사이드워크 장세였다. 실은 내려야 했는데 그 역시 달러 마통을 뒷배로 하는 금리 인하로 해서 내리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특별한 호재도 없어서 오르지도 못하던 어정쩡한 시장이었다. (약간 예외가 있긴 했다, 2017년 초부터 잠깐 증시가 올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글에선 그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증시 성질이 변한 것은 밑천 부족으로 집을 사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절망적인 젊은이들에게 작은 탈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밑천이 적더라도 신용을 더하면 제법 목돈을 굴릴 수 있기에 잘만 하면 소위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월급 좀 되는 30대는 마통을 텄고 20대는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신용 미수를 지른다. 주린이들의 대거 등장이다.

 

주린이, 주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배가 고 고파서 주린 사람들이니 그 바람에 증시 성질이 조금 바뀌었다. 그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주식을 사기 시작했는데 덜커덕 수익이 좀 났다. 그러자 이젠 주변에 온통 다 주식하고 있다. 나 호호당은 그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당장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엔 잃는 게임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증시의 성질 또한 주린이들 때문에 상당히 바뀌었다. 그러니 증시 또한 앞으로도 제법 많이 오를 것이다. 종합지수 4000선이 보인다. 당장은 이렇다 할 호재가 없어서 최근 옆으로 기고 있지만 아주 작은 재료라도 나오면 그를 핑계로 해서 오를 것이라 본다. 올 해 역시 시중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 연준이 금리 정상화에 착수하는 그 시점부터 내릴 것이다. 1981년 1월 7일 93.14를 바닥으로 해서 지금껏 상승해온 우리 증시가 이번 상승이 끝나면 40년 이상에 걸친 증시의 총 결산에 들어갈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 호호당이 생각하는 우리 증시의 시나리오는 종합지수 4000 선에 근접했다가 조정이 시작되면 950 선까지 내리는 그림이다. 950 선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발발 당시의 저점인데 내리기 시작하면 거기까지 갈 것이라 본다. 달러 마통이 시작된 시점으로 회귀할 것이란 얘기. 1/4 토막. 종목에 따라선 1/20 토막이 날 수도 있겠다.

 

미국은 기획을 할 수 있는 나라이고 연금이 끊임없이 증시로 유입되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전형적인 경기순환, 특히 글로벌 경기순환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것으로서 국내 자산시장의 전망을 얘기했다. 그러면 미국 연준이 언제쯤이면 금리 정상화에 돌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연준의 금리정상화는 중국과 관련이 깊다.

 

 

현재 0~0.25% 수준, 사실상의 제로금리를 이어가는 미국 연준이 예상하는 금리정상화란 대략 3% 선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금리정상화에 있어 미국 경제사정만 따져서 하진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미국이 손을 보고자 벼르고 있는 중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보다도 달러이고 금융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과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중국의 새로운 경제 전략인 이른바 “쌍순환”이다. 기본적으로 내수 소비를 늘리고 자본시장개방을 통해 외자유입을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기본전략 하에 중국은 올해부터 제14차 경제5개년 규획(계획)을 실시한다.

 

내수를 늘리고 외자유입을 늘린다는 것은 결국 상당 기간 동안 위엔화를 강세로 유지하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가 된다. (이에 따라 중국 위엔화와 연동성이 높은 우리 원화 역시 어느 정도 강세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중국의 쌍순환 전략은 그간의 과정으로 볼 때 이제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마냥 돈을 퍼부어서 인프라 구축만 하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중국의 내수강화와 외자유입 전략으로 인한 위엔화 강세는 미국이 금리를 정상화하는 순간 엄청난 역풍을 맞이하거나 심하게는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 경제의 변환기를 중요한 전략적 打點(타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시점은 언제쯤이나 될까? 제14차 경제계획의 후반기인 2023-2024년 무렵이 아닐까 싶다. 중국 국운으로 볼 때 2024년부터 심한 逆風(역풍)을 맞이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리 역시 덩달아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연준의 금리 정상화는 이중삼중으로 우리 경제, 특히 나날이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우리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본다.

 

3회에 걸쳐 긴 글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씀 올린다.

 

(조만간 중국 경제의 쌍순환 전략에 대해 별도의 글을 마련하고자 한다.)

 

미국은 企劃(기획)을 할 수 있는 나라

 

 

앞글에서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준은 각 우방국에게 달러 마통 개설을 터줌으로써 전 세계의 외환위기를 사전에 봉쇄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달러 위기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달러 마통은 사실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그 이전에도 많은 달러 부족 위기가 있었다, 예컨대 1994년의 멕시코 외환위기, 1997년의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1999-2002년의 아르헨티나 위기, 2016년의 베네수엘라 위기, 2018년의 터키 외환위기 등이 그것이다. 왜 미국은 그 당시엔 마통을 발동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 이유가 없거나 또는 외환위기를 통해 미국이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 아닐까?

 

나 호호당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중앙은행간 달러 스왑을 대거 풀어주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아니? 저것들이, 방법이 다 있었음에도 시치미 딱 떼고 있었구나, 그래 이제 전 글로벌이 외환위기와 대공황이 오면 당장 저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달러 스왑을 하는구나! 했다.

 

그야말로 “미국아,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였다. 미국은 달러라는 절대 무기를 가지고 있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혁신기업들이 있으며 월가의 금융세력들이 연준이나 재무부 관리들과 서로 왕래하는 곳이니 능히 기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러 마통 때문에 위상이 팍 꺾인 국제기구가 하나 있으니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외환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IMF가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는데 이젠 그냥 별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쩐지 저번에 프랑스, 이번엔 불가리아, 그것도 여성들을 총재에 앉혔으니 겉보기엔 대단히 진취적인 것 같지만 그게 다 허울이다.

 

월가는 뉴욕에 있지만 수도 워싱턴을 보면 Fed와 미 재무부, IMF, World Bank 등이 불과 몇 백 미터 반경 안에 옹기종기 다 모여 있다. 아마도 미국 연준은 현재 달러를 무지막지하게 대거 왕창 풀어놓은 뒤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어떻게 하지? 아무튼 중국 저 놈들을 때려잡긴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야, 아이디어 좀 내 봐! 하면서 툭 하면 죄다 모여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 연준(Fed) 너무 믿지 말기를.

 

 

연준의 파월은 증시가 징징거릴 때마다 당분간 절대 금리 올리지 않는다면서 달래고 있다. 하지만 연준의 위상도 예전에 비하면 스스로 체면을 깎아먹었다.

 

그 장본인은 바로 이번 바이든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옐런이다. 예전에 연준은 금리를 한 번 올리기 시작하면 연달아 사정없이 팍팍 올리던 곳이었는데 옐런이 연준의 수장을 맡던 시절 증시가 난리를 피우자 그만 깨갱-하고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흔히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지만 나 호호당이 보기에 그냥 월가의 꼬붕, 심하게 말하면 월가의 에이전트 격이다.

 

최근에 월가의 대형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는데 이 또한 냄새가 난다. 돈을 무진장 풀어놓았으니 인플레이션 헤지 목적도 있겠지만 연준과 재무부에게 뭔가 주고 받으면서 나름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의심도 든다.

 

아무쪼록 주식 하는 분이나 부동산 ‘영끌’하고 있는 분들, 미국 연준 너무 믿을 건 아니란 얘기를 드린다. 그들은 미국을 위해 움직일 뿐 어느 시점에 가서 순식간에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그들이다. 지금도 연준은 중국을 상대로는 중앙은행간 달러 유동성 협정을 맺자는 말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시 하는 얘기지만 미국은 달러를 들고 있기에 기획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음모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해도 얼마든지 정해진 手順(수순)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나라란 사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새로 들어선 바이든 정부는 경기를 살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 그간 왕창 내렸던 달러를 서서히 강세로 돌릴 것이다. 달러가 강세로 가면 수입물품이 저렴해져서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내수경기가 좋아질 것이다. 다만 중국 물품은 되도록 수입을 막도록 하는 조치도 함께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테슬라의 경우 배터리 비중이 큰데 달러 강세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사주고 중국의 CATL은 원천 봉쇄하는 식이다. (이런 걸 우리는 수혜라고 부른다.)

 

하지만 달러 강세로 미국 내수경기가 급격히 살아날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을 것이니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서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글로벌 특히 우리와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의 경우 오로지 저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대응할 수 있을 뿐 우리가 뭘 해볼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우리의 얘기

 

 

자, 이제 그러면 우리 얘기로 돌아와 보자.

 

먼저 확인하고 갈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사실상 멈춘 시점인 2012년과 작년 2020년, 즉 8년간의 핵심 데이터이다.

 

                               시중통화량(M2)             국내총생산

2012년                         1,798조                       1,440조

2020년                         3,198조                       1,898조

 

이 자료만으로도 우리 경제의 체질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8년 사이에 통화량은 무려 77.9%가 늘어난 반면 국내총생산은 31.8%에 그쳤다. 77.9와 31.8의 차이가 바로 돈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총생산의 증가와 비례해서 통화량이 늘어나야 정상이라 하겠는데 말이다.

 

바로 이런 차이로 인해 불어난 시중 유동성이 갈 곳은 자산시장이 되고 있다. 즉 자산시장 상승의 근본적인 압력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은 성질이 많이 다르다는 점. 

 

 

자산시장하면 대표적으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다.

 

그런데 우리 증시와 부동산은 그 성질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증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도하지만 부동산 대표적으로 아파트는 거의 국내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역대 최장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시장

 

 

먼저 부동산 시장부터 얘기를 해본다. 왜냐면 장차 조만간 정말로 초대형 사고가 날 시장이 바로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예전, 그러니까 2006년 말에 나 호호당은 우리 부동산 가격이 정점을 쳤다는 생각에서 당시 글을 통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런 이후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고 그로서 우리 부동산 시장은 2012년까지 조정 국면을 거쳤다. 그런데 그 이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2012년 7월에 종전의 3%에서 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상승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금리를 내린다는 것은 시중통화량을 늘린다는 것이고 특히 2015년 3월 2% 이하로 내리면서 시중통화량은 걷잡을 수 없이 마구 팽창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아시다시피 0.5%라고 하는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이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2% 대 미만으로 과감하게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이 터준 '달러 마통'이 있다고 앞글에서 설명 드렸다. 2006년 말 이제 부동산 시장이 조정으로 들어갈 것으로 판단했던 나 호호당의 예측을 틀리게 만든 근본 동력은 바로 달러 마통이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내 예상이 왜 틀렸는가에 대한 해명이나 변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진행 중인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왜 엄청난 거품이고 조만간- 결국 그 시점은 미국 연준이 정할 것이니 알 수가 없지만- 터질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부동산 시장은 2012년 초반까지 조정을 거친 이후 금리인하로 인해 시중유동성이 지금까지 8년 동안 거침없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 역시 8년간의 역대 최장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은 종전과 또 다른 거품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그야말로 하늘로 치솟는 로켓과도 같다. 시장의 성질 또한 예전과 크게 다르다. 전에는 서울의 이른바 ‘버블 세븐’이 이슈였고 이에 투기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르고 있다. 오죽하면 ‘영끌’이란 신조어가 탄생했겠는가!

 

나 호호당 생각에 우리 경제 체질 상 기준금리의 하한선은 2%라 여긴다. 그래야만 증시나 부동산, 생산성, 환율 등등 여러 면에서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 연준이 통 크게 허용해준 달러 마통으로 인해 우리 경제, 특히 한은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본다.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 기준금리가 2% 이하로 내려온 시점은 2015년 3월이었다. 그때 역사상 처음으로 2% 미만인 1.75%를 보여주었던 한은이다.

 

우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기준금리 하한인 2%대를 지켜갔더라면 물론 경기침체와 성장세 둔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좀비기업을 더 이상 양산해내지 않았을 것이고 구조조정이 적절하게 진행되면서 우리 경제 체질을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나 호호당의 이런 생각을 금융가에선 매파 성향이라 부른다. 나 호호당은 그렇다면 송골매란 얘기?)

 

결국 2015년 3월 바로 그때가 선택이었다. 당장 어려움을 감내할 것이냐 아니면 나중에 한 방에 몰아서 한 번 죽어볼 것이냐의 선택.

 

다음 글에서 최종 마무리를 하겠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아준 "달러 마이너스 통장"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글로벌 전체적인 금융위기나 공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뚜렷한 이유가 있다, 미국이 부랴부랴 터준 ‘달러 마이너스 통장’ 때문이었다. (달러 ‘마통’을 달리 표현하면 ‘달러 스왑’ 이라 한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중앙은행간 유동성 스왑이라 한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연준이 직접 돈을 찍어서 공급하는 양적완화를 단행한 데 대한 인상만 남아있지 앞서의 일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 마통’ 역시 실은 양적완화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엄청난 조치였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의 금융위기는 자동적으로 외환위기로 연결되는데 그 외환위기란 것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달러 부족 위기를 말한다. Dollar Shortage!

 

내부의 금융위기는 양적완화라는 수단으로 임시변통을 한 연준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글로벌도 걱정거리였다. 어디선가 달러 부족 위기가 터지면 글로벌 전체로 확산되거나 경제대공황이 올 수도 있었고 그럴 경우 미국 역시 더욱 어려워질 거란 걱정이었다.

 

이에 연준은 부랴부랴 주요 우방국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달러 마통 계약을 체결했고 그로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달러 마통 통장 방식은 작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또 다시 적용되었다. (다만 죽이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은 상대인 중국에 대해선 달러 마통 통장을 터주지 않고 있는 미국이다. 제발 좀 뒤져라! 하는 마음이다.)

 

달러 마통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영문 위키피디아에 가서 다음 문장을 입력하면 되겠다. “Central bank liquidity swap”

 

 

달러 마통은 한국은행의 운신 폭을 넓혀주었으니 

 

 

2008년 위기 당시 우리도 미국과 달러 마통을 텄다, 뭐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가 달러 부족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나 그로 인해 한국은행의 운신 폭이 대폭 늘어났다. 경기부양을 위해 마음 놓고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2008년 8월 금융위기가 막 발생하던 당시 한은기준금리는 무려 5.25%였는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2009년 2월까지 겨우 6개월 만에 무려 여섯 차례의 인하를 통해 2%까지 전폭적으로 낮춘 바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달러 마통의 개설이었다. 금리를 인하해도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인한 달러 부족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한은은 마음 놓고 금리를 내려 국내 경기를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 자금들 또한 한은의 기준금리의 신속한 대폭 인하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에서 달러 부족 위기 즉 외환위기가 없을 것이니 굳이 투자 자산을 손절해가면서까지 내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 연준의 광범위하게 달러 마통 개설 조치로 인해 미국 금융위기가 다른 곳에서의 달러 부족으로 인한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던 것이다.

 

그런 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자 한은은 더 이상 시중에 돈을 풀어놓기만 할 수 없단 생각에서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5회에 걸쳐 기준금리를 2%에서 3.25%까지 지속적으로 인상했다.

 

 

아쉽게도 한진해운을 살리지 않았으니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전 세계 경제가 심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리스를 필두로 유럽국가들의 부채위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더 이상 금융위기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국적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몰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진해운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가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자 글로벌 물동량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과감하게 베팅을 했다. 배를 왕창 빌려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해보고자 나선 것이다.

 

당시 국제 운임은 저렴했고 그로 인해 배를 빌려주는 임차료도 저렴했기에 그런 도박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는 2011년을 기점으로 또 다시 완전히 꺾였고 이에 한진해운은 빌린 배들의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한진해운의 상실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향후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산업은행이 인수해서 살려야 했던 것이라 본다.

 

당시 국내 부동산도 금융위기에 따라 하락조정에 들어갔다가 되살아났지만 한은의 연속적인 금리인상으로 또 다시 조정 국면으로 들어갔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결과적으론 국내경기를 불황으로 몰아넣은 셈이었다.

 

 

달러 마통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 경제 제로금리의 바탕이 되었으니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인 2012년부터 우리 경제는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었고 2013년 초엔 부동산 침체도 심화되고 있었다. 이에 한은은 2012년 7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데 실은 이것이 우리 경제가 사실상의 제로금리로 가는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도중에 다시 금리를 조금 올려서 금리정상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한 바 있지만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의 0.5%, 사실상의 제로금리가 정착되고 말았다.

 

즁요한 점은 달러 마통으로 인해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고 그 때문에 한은은 금리인하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지 아닐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0.5% 기준금리 체제인 까닭에 좀비기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부족으로 시달리는 우리 경제이기에 정리할 수도 없다. 이제 우리 경제의 생산성은 더 이상 향상되기 어려운 체질, 즉 성인병 체질인 만성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리는 체질이 고착화되어 버린 것이다.

 

 

환율은 미국과 중국 눈치보기에 바빠서 

 

 

우리는 수출경제이기에 남은 것은 이제 환율이다. 그러니 조금 얘기해보자.

 

예전엔 수출입 비중을 줄이고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았지만 이젠 그런 타령을 할 수 있던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판국에 무슨 내수 활성화를 할 수 있으랴! 죽으나 사나 오로지 수출에 목을 매어야 하는 우리 경제이다.

 

그런데 환율이야말로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저마다 자국 통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환율전쟁이 본격화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다가 우리의 경우 예전과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니 우리 원화는 미국 달러는 물론이고 중국 위엔화라고 하는 양쪽 통화의 사정을 동시에 감안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는 점이다.

 

예전엔 달러가 오르거나 엔화가 오르면 수출이 잘 되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우리 경제의 수출 중 상당 비중이 중국이어서 중국 위엔화가 내리면 중국으로 가는 수출이 줄어든다. 달러도 살피고 엔화도 살피고 위엔화도 살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바람에 외환당국도 여간 어려운 처지가 아닌 셈이다. 최근 달러가 많이 하락했어도 우리 수출이 그런대로 잘 되는 것은 중국 위엔화가 강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와 중국 버블 붕괴가 공교롭게도 일치될 가능성이 있으니 

 

 

그런 까닭에 우리 경제가 장차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나 호호당이 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본다. 미국이 죽이려드는 상대방이 중국이고 이에 중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무너질 것 같으면 위엔화는 급락할 것이고 우리의 대중국 수출도 대폭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 경제의 붕괴를 점쳐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 호호당은 오래 전부터 중국 경제가 무너질 수 있는 시기로서 2020-2024년을 예상해왔다. 다른 경제전문가들에겐 없는 나라별 국운의 흐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연준이 금리를 본격적으로 인상하게 될 시기 역시 그 무렵이 아닐까 싶다는 점이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미국 달러를 강세로 이끌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는 환율전문가들 사이에서 ‘글로벌 경제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당분간은 증시도 오를 것이라 본다. 올 해 아니면 내년까지 종합지수 4000선에 근접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부동산 역시 당분간은 더 오를 것이라 본다. 최근엔 다소 주춤한 모양이지만 조금 지나면 또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 본다. 문재인 정부의 당초 아파트 수요예측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예기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시중 유동성이 무지막지하게 불어났고 이에 부동산 상승이 또 다시 가속화되었다. 그러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수요, 즉 ‘영끌’ 현상마저 생겨나면서 수요가 수요를 불러 일으키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어떤 무리수이든 불문하고 무조건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경칩이면 개구리가 밖으로 나오듯이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끊어가기로 한다. 예상해보니 아마도 3회에 걸친 글이 될 것 같다. 최근 올리는 글이 늘어났는데 이는 모두 지난 연말부터 1월에 걸쳐 해오던 생각들이 이제 밖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 경칩이면 개구리가 바깥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