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 뻗어가는 우리 영화와 스타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라 하면 누구? 예전엔 이영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강호, 그리고 지금은 윤여정 선생이다,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상을 무려 20개나 받았으니 말이다.

 

윤여정 선생의 경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1996 丙子(병자)년을 입춘 바닥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검색해보니 그보다 빠른 1986 丙寅(병인)년이 입춘 바닥이었음을 확인했다. (역시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윤여정 선생의 경우 1986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16년이 立秋(입추)였고 올 해는 이른바 “황금의 財運(재운)”이다. 최근에 상을 무지막지하게 타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으니 가히 황금의 재운이다. 노년이 아름다워서 더욱 좋다.

 

미국에서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1984년, 입춘 바닥보다 2년 전에 귀국해서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대배우 윤여정을 만들어낸 힘

 

 

먹고 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니 스스로도 몹시 초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먹고 살려는 힘이란 사실이다. 눈앞의 절박한 현실 앞에서 배역 따지지 않고 최대한 출연해서 돈을 벌어야 했을 것이다.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쌓인 내공이 얼마나 깊어졌으랴! 그게 오늘날의 대배우 윤여정 선생을 새롭게 만들어놓은 셈이다.

 

 

"넘버 3"의 송강호 

 

 

송강호, 두 말 할 것 없이 대스타이다. 위키에 친절하게도 1967년 2월 25일(음력 1월 17일)이라 되어 있다. 그러니 잴 것도 없이 입춘 입추를 금방 알 수 있다. 丁未(정미)년 壬寅(임인)월 庚申(경신)일이다. 그간의 프로필을 알고 있으니 간단하다. 2010 庚寅(경인)년이 氣(기)의 절정인 입추가 된다.

 

2010년 입추로부터 7.5년이 지나면 秋分(추분), 즉 크게 인정을 받는 운세라 하겠다. 과연 그 직후인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나 호호당이 배우 송강호란 사람을 알게 된 것은 1997년의 “넘버 3”란 영화에서였다. 일본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 선생을 흉내 내는 장면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때를 돌이켜보니 운세 상으로 새싹이 파릇한 小滿(소만)의 때였다. 대배우로서의 자질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노력형의 배우인 송강호인 바, 앞으로도 최소한 7-8년 정도는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산소 같이 신선했던 이영애 

 

 

배우 이영애, 화장품 광고 모델로 활약할 때 그 신선한 용모로 해서 한 때 “산소 같은 여자”란 별명이 붙었던 적도 있다. 여배우인 까닭에 알려진 생년월일에 대해 의구심도 들지만 1996 丙子(병자)년이 입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보다는 CF 모델로 더 활약을 했지만 그래도 이영애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2003년의 드라마 “대장금”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광고 모델로 얼굴을 내비치곤 있지만 이제 멀지 않아 추억 속의 스타로 기억될 것으로 본다.

 

 

그 밖의 스타들

 

 

그러고 보니 최근엔 드라마 “겨울연가”의 스타 배용준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한류 스타로서 아무래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한일관계가 문재인 정부 들어 나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배용준의 경우 1992년이 입추였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2년 寒露(한로)의 운, 빛나는 계절에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큰돈을 벌기도 했고 또 결혼 이후로는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계의 스타들이 있다. 개중에는 연기만이 아니라 노래도 엄청나게 잘 부르고 만드는 스타 예컨대 임창정과 같은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지닌 스타도 있다.

 

임창정의 경우 2000년이 입추였고 지금은 서서히 조금씩 뜸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만의 코믹 연기와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음색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이라 여긴다. 그와 비슷한 예로서 가수로 시작해서 배우로 전업한 뒤 운세가 하락하면서 오히려 특유의 퇴폐적이고 시니컬한 연기로 나 호호당의 눈을 끄는 배우도 있으니 바로 윤계상이다. 마동석과 함께 출연한 영화 “범죄도시”에서 그만의 강렬한 색깔을 보여주었으니 대단히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단 한 편의 영화로서 영원히 가슴 속에 각인된 이병헌도 있다. 2005년의 영화 “달콤한 인생”이다. 최근 위키에 생일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살펴보니 바로 그 2005년이 입추의 운이었다. 작년 2020년이 입동이었으니 가을 수확을 마친 배우라 하겠다. 앞으로도 몇 년은 충분히 활동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또 그러고 보니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난데없이 등장해서 이병헌을 총으로 사살하고 사라지는 킬러 역할을 맡았던 ‘에릭’이 있다. 왜 죽이는지 잘 알 순 없었지만 아무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때 아들놈에게 “쟤 누구니?” 하고 물었더니 “쟤 에릭이야!” 했고 그 바람에 에릭을 좋아하게 되었다. 신화의 멤버란 사실도 그 때 알았다.

 

생년월일을 보니 2004년이 입추의 운이었는데 2005년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한 셈이다. 아쉬운 건 연기력이 다소 부족해서 그런지 영화 출연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단 한 장면만으로도 내겐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벚꽃을 바라보는 눈이 해마다 변해가니 

 

 

벚꽃이 절정이다. 올 해의 특이점은 벚꽃 개화가 같은 서울 안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양재천만 해도 강남구 쪽은 이미 지고 있는데 서초구 과천 쪽은 지금이 한창이니 그렇다.

 

벚꽃, 생각만 해도 화려한 꽃, 그 가벼움으로 인해 삶의 無常(무상)함을 일러주는 꽃, 그렇기에 최근엔 굳이 카메라에 담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떨어지는 벚꽃은 자꾸만 물어온다, 삶은 덧없는 게 아닐까? 하고.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삶은 덧없는 것이기도 하기에.

 

언젠가 그리고 내게 남은 삶이 그렇게 길지도 않을 것 같은데, 삶이 끝나서 ‘없음’으로 간다면, 無化(무화)된다면 그게 寂滅(적멸)이고 涅槃(열반)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최근엔 자주 하며 지낸다. 이 질문은 아마도 살아있는 한 무수히 되풀이해서 던져보는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삶은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덧없는 삶이라 해도 본전은 충분히 뽑았다. 귀여운 강아지들과의 좋은 세월도 있었고 벚꽃도 많이 보았으며 꽃피는 계절의 어느 아침 섬진강 강가에 서서 불어오는 향긋한 향기에 몸을 맡겼던 적도 있다. 도미니칸 시가(Cigar)도 많이 즐겼고 헤네시 꼬냑과 중국 白酒(백주)의 기막힌 향취도 즐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시절엔 사랑하는 사람과의 황홀한 시간도 가졌었다.

 

사실 오늘의 글은 아침 시간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도중에 벚꽃을 쳐다보다가 스크린의 스타들이 떠올랐기에 쓰게 되었다. 그 어떤 스타도 환한 대낮엔 보이지 않는 법, 초저녁이나 되어서야 초롱한 별빛이 비치니 마치 그게 스타의 운명 같기도 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