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부터 비가 내렸다. 집에서 산책에 나서는 초입이다. 푸른 것들이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다, 어쩜  저렇게 사정없이 싱그러울까!  평범한 경치, 하지만 화려한 생명의 잔치가 바로 집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젖은 보도블록의  붉은 색이 진해서 홍록의 아름다움이다. 즐겨주시길...

 

두어 달 걷지 못해서 근력이 확 빠졌고 이에 발이 좀 좋아져서 걷기훈련을 한다. 아직은 좀 그렇지만 그래도 열심히 애를 쓴다. 오늘은 비바람이 제법 거세다. 아파트 건너편 우면산 아래 쪽으로 한바퀴 돌고 오는데 저만치서 사람이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파리바게트의 흰 봉투였다. 뒷쪽에 보이는 아파트 바로 앞의 가게에서 사들고 오는 것이다. 오른쪽 노랑꽃, 황매화의 계절이다. 

 

 

단지 보도블럭 위로 비가 조금 고여서 번들거린다. 사진 찍을 땐 몰랐는데 앞에 가는 저 청년은 종아리를 다쳤나 보다. 젊었으니 다칠 만도 하고 회복도 잘 될 것이다. 나 호호당은 저렇게 다칠 여유가 이젠 없다.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늦은 봄의 비바람이 아련한 정취를 불러와서 잠시 이런저런 추억 속으로 길을 거닐었다. 오늘 오후 또한 늦봄의 한 절정이다. 

 

민들레 홀씨 날리는 계절이다. 저 가벼운 것들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서 어딘가 뿌리를 내리면 피어날 것이고 아니면 그냥 사라질 것이다. 생명이란 진저리치도록 집요한 것, 이 세상은 서로마다 살고자 아우성치는 곳, 자연의 질서란 저런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그 속에서 다른 감정도 가져본다, 박미경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민들레 홀씨 또한 순간 스쳐가는 계절의 이야기이자 사랑의 이야기이다. 음미해보자는 얘기이다. 

 

아파트 옆에 설치된 소화전인데 지나가다가 만나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속으론 사람도 아닌데 자꾸 인사를 하게 되네, 하면서 미소를 짓게 된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양팔을 벌리고 서있으니 영락없이 어떤 인격이 있어보이지 않는가! 키가 좀 작을 뿐 어려보이진 않는다. 성은 소씨이고 이름은 화전인 모양이다. 

 

금요일 19일이 곡우가 된다. 저처럼 푸른 봄 하늘 아래 나무들이 보여주는 저 색깔, 때깔, 한 해를 통해 딱 한 번 보게 된다. 바쁘고 다른 일에 눈이 팔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런 장면들이야말로 놓칠 수가 없는 한 절정이란 것을 절로 알게 된다. 진짜 알고 나면 우리 모두 매 순간 절정을 살아가고 있음도 알게 된다.  호호당은 늘 물어본다, 유한과 무한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절충점이 무엇인가를.   

 

양재천 물가에 있는 능수버들, 나 호호당이 너무나도 애호하는 저 버드나무들. 기쁠 때나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늘 저 나무들을 멀리서 바라거나 또는 다가가서 어루만지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푸른 잎사귀를 내고 이제 가지를 늘어뜨리려 한다. 오래오래 잘 자라기를. 

 

 

몸이 좋질 않아서 이것저것 다 해보게 된다. 맨발걷기를 여러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시작한 지 나흘. 진흙이 제일 좋다지만 흔하지가 않고 다음으로 풀이 자라는 땅도 좋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양재천으로 내려갈 적엔 보도블록도 맨발로 걸어가는데 그 맛도 그리 나쁘진 않다.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내일 월요일엔 병원에 가서 파상풍 주사도 맞아야 하겠다. 어서 건강해지길 간절히 빌고 또 빌어본다. 독자님들도 호호당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잠깐이라도 염원해주셨으면 참으로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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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만난 연한 수묵화같은 그림 혹은 풍경, 연분홍을 올렸으니 담채수묵화 정도는 되겠다. 프레임 또는 액자로 구획을 정해주면 사물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대상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재단하고 어떻게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세상과 사물은 달라도 너무 달라진다. 

평범한 벚꽃 사진이다. 하지만 아름답다. 눈길을 끈다. 청명 지난 봄하늘은 저리도 푸르고 꽃들은 저처럼 빛나고 있으니 각도와 연출이 필요 없다. 그냥 한 때의 영광이고 절정이다. 한 때란 결국 한 때이니 슬픈 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오래만에 글을 올리고 사진을 올린다. 즐겨주시실...

 

아침이다. 새벽부터 벚꽃들이 이제 막 열심히 열고 있다. 양재천변을 따라 피어날 벚꽃들은 이번 주말이면 절정을 이룰 것  같다. 늘 보아왔지만 그럼에도 참 신기한 일이다. 병들었던 나 호호당의 몸도 이제 막 급격하게 좋아지고 있다. 개화 시기에 맞추어 늦지 않으려는 사람의 의지이고 올 한 해 제대로 살아보려는 안간 몸부림이다. 

 

 

아침 8시 8분, 산책을 나갔다. 발바닥 신경통과의 연이은 힘겨루기이다. 겨우내 싸웠다. 겨우내 몸 여기저기 여러 군데의 힘든 증세들과 상대해왔다. 이제 대충 마무리가 어디쯤인지 보인다. 물론 승리는 나 호호당의 것이다. 90 너머까지 힘차게 살기 위해 지금 이러고 있다. 꽃들아, 벚나무야, 너희들도 고충이 있겠지? 하고 물어본다. 살아있는 것치고 고통을 모르는 게 어디 있다더냐!  그래 같이 가자꾸나. 

올 봄은 비가 잦다. 봄가뭄과는 거리가 멀다. 그간 괴롭히던 발바닥 병이 좀 좋아져서 산책을 할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두달 간 멀쩡히 걷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많이 부러웠다. 올 한 해 건강을 되찾길 간절히 빌어본다. 양재천의 물 오른 능수버들이 여린 잎사귀를 내고 있다. 곧 자라고 커져서 무거워지면 연한 가지를 밑으로 늘어뜨리겠지.  사람들은 모른다, 능수버들이야말로 우리 겨레의 나무란 사실을. 조만간 글로 써서 알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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