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드라마에서 엄마가 군 입대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오래 전 기억 속의 한 장면이 툭-하고 눈앞에 떠올랐다. 쌀쌀하고 찌푸린 봄날 아침, 대문을 나서는 내 뒤를 조금 뒤따라오시던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팔을 어깨 위로 올려 손짓을 한 번 하시면서 “이젠 가니” 하고 한 말씀 하셨다.
이젠 가니,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가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잘 가라는 것도 아니고 어서 가라는 것도 아닌 그 한 말씀. 사실 그 날 하늘이 정말 흐렸던 것인지 아니면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서운한 눈빛이 그랬던 것인지 이젠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소리의 기억이 눈의 기억보다 더 오래가는 것일까?)
입대한 날자를 기억한다. 1978년 3월 4일, 그러니 어머니와 작별한 그 아침은 3월 3일의 아침이었을 것이다. 헤아려보니 43년 전의 일이다. 그때 어머니는 오십이셨고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지금 어머니는 故人(고인)이 되셨고 나는 예순일곱이다. 눈앞으로 그간의 세월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낮은 소리로 “엄마!” 하고 중얼거려본다.
중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봄날 밤이었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울고 있던 내게 어머니가 다가와 왜 우니, 속상한 일이라도 있니?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 아무 일도 없어...” 하고 답했다. 어머니는 자리로 돌아가시고 나는 다시 누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조용히 한참을 울먹였다.
울먹였던 이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엄마가 훗날 어느 날엔가는 돌아가시리란 생각에 슬퍼서 울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 눈동자엔 물기가 서린다. 그래서 어머니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니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신다. 엄마!
솔직히 말해서 나 호호당은 평생 단 한 번도 엄마 앞에서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 앞에서 ‘우리 어머니께서’, 이렇게 얘기했을 뿐이다. 아버지께서 먼저 가신 후 16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모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저 엄마와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을 뿐이다. 아내 입장에선 시어머니를 모셨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께서 융으로 만들어주신 잠옷 바지의 가랑이가 낡아서 결국 찢어졌다. 잠옷이라든가 또 여름철엔 마로 된 바지나 셔츠를 늘 재봉틀로 만들어주셨는데 이젠 남은 옷이 거의 없다. 아내는 이제 입을 수가 없으니 버리자고 했지만 아쉬워진 나는 아내에게 다른 천으로 바지의 헤어진 곳을 덧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땜방!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취들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그럴 때마다 그만큼씩 멀어져가서 아스라해지는 느낌이다. 면적에서 점으로 그리고 더 작은 점으로. 이젠 그 분들이 먼 지평선 언저리에서 있고 없고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나 또한 늙어가고 있으니 다시 보게 될 날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멀어져가는 것인지 가까워져가는 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이 50이 될 무렵까진 저승이라든가 영혼의 존재를 전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저승이라든가 영혼의 문제는 내가 죽어보지 않는 한 규명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죽으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자연 속으로 환원될 거란 생각만 했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을 좀 더 보내면서 저승과 영혼의 ‘있음’을 기대하는 쪽으로 조금식 옮겨왔다. 그렇게 바라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아선 모르는 일이니 낙관하는 것이 비관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겠는가.
엄마가 남긴 옷가지와 물건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니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시 만날 날이 한 해 한 해 가까워진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더 좋다는 얘기.
혹여라도 저 세상이 있다면 부모님은 물론이요 얼굴을 모르는 조상님들이 반겨줄 것이며, 동작동에서 내가 주던 밥을 먹다가 세상을 떠난 저 많은 길고양이들이 떼로 몰려나올 것이고 또 먼저 보낸 강아지들도 왈왈, 반갑다고 뛰어와 내 품으로 안길 터이며 귀엽던 토끼 ‘초롱이’도 깡총하고 폴짝 뛰어들 것이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온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가엾고 애처롭다는 생각만 든다. 모두들 살아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늙어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드라마 장면에서 시작된 기억을 글로 옮겨놓다 보니 마치 꿈속 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올려본다. 그냥 호호당의 환타지 정도로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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