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따라서 물을 따라서
고개를 올려 달을 보면서 서너 걸음, 다시 시선을 수평으로 내려 몸을 가누고 다시 달을 마주하고, 바로 옆은 느릿느릿 내려가는 양재천, 나도 보조를 맞추어 더디 걸었다.
밤 11시, 달은 하늘 정중앙에 둥실 걸렸는데 옅은 무리가 서렸다 말았다 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의 달보다는 아주 엷은 면사포 사이로 비치는 저 모습이 더 신비로운 법이지! 예식장 단상에 올라 살짝 긴장한 모습의 빛나는 新婦여!
자정 무렵인데도 밤공기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 갈 때는 양재천 물가는 쪽으로 걸었고 돌아올 때는 서쪽으로 가는 달과 함께 1시간 이상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다 돌아왔다. 때론 걸음을 멈추고 물가의 수양버들에게 다가가 날씬하게 벗은 실가지를 손가락 끝으로 매만져보기도 했다, 물이 올랐는가? 그러자 점심 무렵 택배로 보내온 고로쇠 물이 떠올랐다. 집에서 나오던 참이라 보낸 이가 누군지 미처 확인도 못 했지만 입안은 벌써 달착지근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맛있기만 한 오곡밥
정월 대보름, 달이 커서가 아니라 정월 십오야의 보름달이라 대보름이다. 아점으로 오곡밥 참 많이도 먹었다, 맛있게. 식어도 맛이 좋은 오곡밥. 간이 되어 있어 찬이 없어도 그 자체로서 맛이 있는 오곡밥.
설음식은 기름져서 부담되지만 오곡밥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담백하고 고소하며 아기자기하다. 곡식마다 씹히는 맛이 달라서 재미도 있다. 오곡이라 해도 꼭 다섯 가지 곡식만 넣으란 법도 없고 지방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나는 것이 오곡밥이다.
글로벌 시대, 온 세상 음식을 모두 맛을 보았다 해도 과장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질리지 않고 맛이 좋으니 옛 사람들은 얼마나 즐겁게 먹었을까나.
무수한 조상님들
옛 사람 얘기를 하니 생각이 난다. 내가 이 시각에 존재한다는 것은 먼 조상들이 어쨌거나 짝을 지어 출산하고 먹이고 보호해주면서 길러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란 사실. 나 호호당의 성은 金(김)이지만 사실 그건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신뢰하기도 어렵다.
나의 조상 중에는 농부도 있었을 것이고 노비도 있었을 것이다. 만주 벌판을 말 타고 돌아다니는 유목민도 있었을 것이며 무쇠팔을 가진 무사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해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때론 글 읽는 선비도 있었을 것이니 그게 무슨 상관, 오늘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저 무수히 많은 남녀 조상님들의 짝짓기를 통해 용케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5대 앞의 조상님들만 생각해도 32개의 유전체 즉 게놈(genom)이 내 몸속에 존재한다. 10대 위로 가면 1,024개, 15대 위로 가면 무려 32,768개의 게놈을 내 몸속에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내 몸속엔 32,768분에 달하는 조상님들의 영혼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15대 해봐야 450년 전이다. 한반도에 부여라든가 고구려와 같은 나라들이 등장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 기원 전후 즉 2000년 전으로 갈 것 같으면 게놈의 숫자가 앞서 말한 32,768개의 4제곱일 것이니 그건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숫자가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 호호당 간에는 멀고 가깝고의 차이가 있을 뿐 혈연관계가 있다는 말이 된다. 나 호호당의 속에 온 인류가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실은 기적인 것이니
짝을 짓는다는 것, 그를 통해 아이를 만들고 길러낸다는 것, 실로 엄청난 일, 至難(지난)한 과업이다. 수렵 어로 시절엔 배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했을 것이며 농경사회가 시작된 다음에도 땅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서로 간에 싸우고 죽이고를 반복했을 것이며 질병의 공격에도 견뎌내면서 천만다행으로 아기를 출산하기 전에 내 조상님은 죽지 않았기에 내가 존재한다.
무지막지한 생존본능이고 번식본능이라 하겠는데 그 엄청나게 질긴 욕구와 욕망이 내 속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발로 걷기 시작한 지 65년도 더 되었으니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다녔으며 또 자동차와 기타 운송수단을 타고 다녔겠는가, 그런데 그 사이에 한 번도 큰 충돌 사고 없이 지금까지 몸 멀쩡하게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 이건 어떤 면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싶다.
또 그 세월 사이에 무수히 많은 나쁜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내 몸속으로 침입해 왔을 터인데 그저 감기 좀 앓았을 뿐 죽을 정도에 이른 적은 없었다는 사실, 그랬기에 오늘 역시도 저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 저 악당 놈과 스치는 일이 있을까봐 겁내고 조심해가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
담배를 즐기지만 평소 백신 따윈 무시하던 나는 작년 코로나19가 유행하자 쫄렸다. 저거 걸리면 이번에야말로 난 간다. 난생 처음으로 폐렴 백신도 맞고 독감 백신도 접종했다. 일단 폐렴이나 독감부터 방비한 다음에 코로나19와는 거리를 멀리하겠다는 이 탁월한 생존전략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무수한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본능적 지혜이자 ‘진인사대천명’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지, 암!
밤이 지나 토요일 아침,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간밤 달님은 지금쯤 내 발밑을 가고 있겠지 싶었다. 다시 모니터 앞에 돌아와 앉으니 자기 전에 읽던 책이 펼쳐져 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이야기
대승오온론, 한자론 大乘五蘊論, 먼 옛날 AD 300년 경에 인도의 불교철학자였던 바스반두, 흔히 세친이라 불리는 분이 지은 불교의 유식철학에 관한 책, 이를 중국 당나라의 삼장법사인 현장이 한문으로 정리해놓은 책이다.
如薄伽梵略說五蘊。一者色蘊。二者受蘊。三者想蘊。四者行蘊。五者識蘊。云何色蘊...
박가범(세존), 즉 부처님께서 간략히 설하신 바에 따르면 오온이란, 첫째가 색온이고, 둘째 수온이며, 셋째는 상온이고 넷째는 행온이며 다섯째는 식온이라, 그렇다면 색온이란 무엇인가 하면..., 이런 식으로 이어지면서 불교철학의 핵심 정수를 간략하게 풀이하고 있는 책이다.
삼십대 시절 독파하겠다고 나섰다가 던져버린 책이다. 그런데 30년이 흘러 다시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그 사이에 무엇이 내 속에서 변했기에 그럴까?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책을 접했고 아울러 삶의 경험이 쌓여 왔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긴 하다.
얼마 전부터 이 책을 암기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자 3,119자로 이루어진 책이고 옛날 학승들은 일단 외우고 나서 연구했다고 하니 흉내를 내보고 있다. 암기력 저하를 다소 늦추어보자는 의도도 있다.
외우는 것은 힘이 들긴 해도 여러모로 편리하다.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아니면 길을 걷다가 또는 산책하면서 떠올릴 수 있고 그러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을 떠올려놓고 한 단어씩 따져가며 궁리해볼 수 있다. 지루한 체력단련, 가령 스쿼트 같은 것을 할 때도 시간이 잘 간다. 암송하다 보면 때론 전혀 읊조리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뇌 속에서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니 참 묘하다.
삼장법사 현장스님, 손오공이 나오는 西遊記(서유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삼장법사 현장의 엄청날 정도의 멍청함과 고지식함에서 나온다.
척 봐도 나찰이고 나쁜 악귀들이건만 삼장법사는 순진하게 속는다, 오히려 손오공을 나무란다. 그 탓에 삼장법사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손오공은 투덜거리면서 악귀나 나찰을 물리치고 스승인 삼장법사를 구출해낸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반성하거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법이 없다, 또 다른 악귀들에게 속아 넘어간다. 병신! 바보, 이렇게 열을 받게 하면서 서유기는 이어진다.
막장 드라마에선 악당이 드라마의 힘이듯이 서유기에선 삼장의 멍청함이 전재해가는 원동력이다. 요즘 '펜트하우스'란 드라마에서 흰 눈동자 다 드러내고 악쓰는 여배우가 얼핏 보이던데, 촬영 끝나면 눈 좀 아플 것이다.
그런데 실제의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옮겨놓은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면 기가 막힌다. 저거야말로 천재의 파워! 이에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유전자의 조합에서 만들어진 극소수 천재들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의 우리들은 그냥 먹고 살기 바쁘고.
능력의 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별 차이가 없을 때 오십보 백보란 말을 쓴다. 그런데 내 생각엔 오십보와 오십일보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대다수 사람의 경우 능력의 차이란 사실 뭐 있겠는가 싶다. 경상도말로 “니나 내나”.
천하갑부 빌 게이츠, 나 호호당과 동갑이다. 내가 생일이 두어 달 빠르다. 저 친구와 나와의 차이, 돈에 있어선 내가 좀 밀리는 편이고 사는 재미는 내가 저보다 앞선다 여긴다. 피장파장.
그런데 피장파장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하고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알려드린다. 원래 말은 彼丈夫我丈夫(피장부아장부)였다. 이 말을 빨리 발음해보면 피장파장이란 축약어가 된다. 뜻은 너도 사내 나도 사내이니 무슨 차이가 있으리! 하는 말이다.
집의 모든 창을 30분 이상 열어놓고 있어도 전혀 춥지가 않다. 화창한 초봄의 하늘, 동풍이 불어와 중국발 먼지를 거꾸로 중국 내륙 쪽으로 쑤셔박고 있으니 서해 바다마저 깨끗하다. 상쾌통쾌, 공기가 좋아서 상쾌하고 중국 미세먼지들을 도로 돌려주고 있으니 통쾌하다. 正義(정의)가 구현되고 있음이다.
하루가 지나 다시 달님과 마주하니
다시 늦은 밤이 되었고 간밤의 달과 다시 마주한다. 24시간이 지난 셈이다.
어제와는 달리 환한 달빛 속에 10년 전에 죽은 우리 강아지 가을이의 미소도 보이고 달 토끼 그림자를 찾다 보니 강아지보다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미니토끼 초롱이의 활달하던 모습도 보인다. 情(정)이란 놈은 한 번 들면 단박에 잊히는 법은 없고 세월의 거리만큼 조금씩 멀어져서 그저 아스라해지는 모양이다.
달빛에 취한 글이라 지울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마무리하기로 한다. 글을 마치고 창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둥글고 환하다.
'호호당의 雜學잡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티버스와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 (0) | 2021.03.15 |
---|---|
저 세상이 있었으면 해! (0) | 2021.03.08 |
가족의 해체와 사회안전망 (종결편) (0) | 2021.02.24 |
가족의 해체와 사회안전망 (전편) (0) | 2021.02.23 |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0) | 2021.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