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법칙을 규명한 결과 정립된 자연순환운명학

 

 

운명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궁금해 합니다. 과학의 시대에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 하는 분도 많지만 사실 그런 생각 자체가 비과학적 생각입니다.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호호당은 감히 말씀드리지만 운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거기에 작용하는 법칙을 규명해낸 결과 전적으로 새로운 과학적 이론으로 종합하고 정립했으며 이에 2014년에 새로운 과학이 등장했다고 선포한 바 있습니다.

 

근 10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구글과 위키피디아를 통해 검색하고 검증했기에 이에 운명에 작용하는 일반적 법칙을 규명하고 정리했습니다.

 

그렇기에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애매모호한 가설들이 아닙니다. 배우실 경우 첫 시간에 바로 운명의 순환 법칙에 대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삶의 모든 단계마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니.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로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어떤 이는 절정의 시절을 보내고 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 한 때라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운이란 계절과 같습니다. 다만 한 계절이 15년씩, 이런 식으로 60년에 걸쳐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순환운명학은 단순히 사람의 운세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생의 각 계절마다 그 계절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이 강좌를 듣는 과정에서 절로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자연순환운명학 기초이론 강좌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12회에 걸쳐 이어지는 기초과정의 회별 주요 강의 내용

 

 

제 1회. Introduction,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적인 원리와 이론

 

제 2회. 생년월일시에 의거하여 사주를 추출하는 기본 방법과 陰陽五行(음양오행)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

 

제 3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1

 

제 4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2

 

제 5회. 60년 순환의 기산점 즉 立春(입춘)점을 파악하는 방법

 

제 6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1

 

제 7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2

 

제 8회. 운명에 작용하는 어길 수 없는 因果(인과)의 법칙

 

제 9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1

 

제10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2

 

제11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1

 

제12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2

 

 

 

 

 

 

강좌 개요

 

 

 

강좌 개최

 

-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까지.

 

강좌 기간

 

- 매주 토요일 1회, 총 12번의 강좌

 

강좌 시간

 

- 3 시간 30 분이고 중간에 간식 시간을 가집니다.

 

수강료

 

- 12회분 66 만원 (분납도 가능합니다.)

 

강의 장소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4길 40 신소애빌딩 7층

-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번 출구로 나온 다음 첫번째 골목에서 우회전 후 300 미터.  

 

 

신청 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 Tel. 02-534-7250로 오후 3시부터 5시까진 언제나 자리에 있기에 전화주셔도 됩니다.

 

수강 규모

 

- 선착순 20명 마감.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으며 더러 한자를 몰라서 망설인다는 분들의 문의가 있는데 아무런 애로가 없다는 점 알려 드립니다.

 

강의장은 환기가 잘 되는 곳입니다. 

좋은 소식부터 

 

 

증시와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

 

기왕지사 좋은 얘기부터 해본다. 올 해 증시는 많이 오를 것이다. 올라도 아주 많이 오를 것이다. 주식 투자하시는 분들은 작년보다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증시가 될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유동성으로 인해 증시는 올라도 지나치게 오를 것이니 

 

 

지금의 증시는 유동성이 많아서 오르는 증시, 즉 유동성 장세이다. 유동성이 좀 많은 것이 아니라 지나치리만큼 많다. 그러니 지나치게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 증시는 여러 면에서 미국 증시를 따라간다. 당연한 일이다. 예로서 2차 전지 주식의 상승은 미국 테슬라의 움직임, 아울러 애플의 동향에 달려있다. 테슬라가 잘 가면 국내 2차 전지 주식들도 잘 간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동향은 문자 그대로 글로벌 경제동향이라 봐도 무방하기에 미국 증시에 연동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동성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행 역시 미국 연준(Fed)의 움직임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 움직인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덩달아 내리고 미국이 올리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올린다.

 

지금 증시는 유동성 증시라고 했는데, 미국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주체는 미국 연준이다. 이는 마치 글로벌 경제에 물을 대는 저수지와 같다. 그런데 작년 초부터 미국 연준은 水門(수문)을 다 열어젖혀서 물을 무제한 방류했고 지금도 여전히 방류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작년 M2가 무려 26%나 늘어났으니 사고를 친 꼴 

 

 

그 바람에 미국 시중의 유동성은 엄청나게 폭증했다. 넓은 의미에서의 통화량을 의미하는 M2가 미국의 경우 작년 2020년에 무려 25.98%가 증가했다. (연간 10%만 되도 비정상이라 하는데 말이다.) 아직 집계되진 않았지만 작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대략 마이너스 3.6%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무려 30% 정도 돈을 더 늘린 것과 같다.

 

사실 이게 좋은 일은 전혀 아니다. 재화 생산은 조금 줄었는데 돈은 왕창 늘렸으니 수중의 현금가치가 30% 정도 사라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 직장인들의 급여가 30% 정도 삭감된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에 10% 정도 M2가 늘어났다. 수중의 현금이 10% 정도 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급여 생활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자영업자들은 완전 사망했다.)

 

시중 유동성을 늘리면 자산 가치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1억하던 물건의 가치가 미국의 경우 1억 3천만원은 되어야만 사실상 본전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부동산과 주식이 많이 오르고 있다. 실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올라야만 본전인 것이다.

 

이런 이치는 우리도 마찬가지, 그런 까닭에 부동산이 펄펄 오르고 주식도 폭등하고 있다. 올 해 증시가 많이 오를 것이라 했는데 실은 올라야만 그런대로 제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증시가 활황이다 보니 수수료를 챙기는 증권회사들은 신바람이 났다. 소위 증권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대박이 났다. 수익이 마구 늘어나고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요즘 증권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을 보라,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다. 메뚜기 한 철.

 

 

3700까지도 갈 것 같아서 

 

 

나 호호당의 추산으론 우리 증시에서 코스피 시장은 시점이야 모르겠으나 3700 포인트 정도는 갈 것 같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1000 포인트는 더 오를 것이란 얘기이다.

 

문제는 도중에 당연히 하락 조정도 그 폭이 만만치 않게 클 것이란 점이다. 오른다고 해서 일직선으로 오르는 법은 없고 엄청 겁을 줘서 감히 함부로 주식을 사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뒤 어느 순간 순식간에 올라가버리기에 주식은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들 주식에서 성공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돈 많이 버시길.

 

 

나쁜 소식 차례

 

 

이것으로서 좋은 소식은 마무리하고 다음엔 나쁜 소식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이제 우리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는 사실상 외통수에 걸려들었고 증시는 더더욱 그렇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으나 對價(대가)를 무진장 호되게 비싸게 치르게 생겼으니 이런 말을 한다.

 

 

증시가 이젠 비정상적으로 변질해버렸기에 

 

 

연휴 기간 중에 증권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어느 전문가가 한다는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금년도 투자자들이 무척이나 경계해야 소식이 있다면서 하는 말이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회복된다는 소식, 달러가 강세로 간다는 소식,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 이런 말이 들려오면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경기가 빨리 회복되어 경제가 정상화되거나 인플레이션이 강해지거나 달러가 강세로 가면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결국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당연히 증시가 하락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이가 없다, 경제가 정상화되면 주식은 망한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예전의 증시는 그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거나 기업들이 실적을 낼 때 상승했는데 이젠 경제가 호실적은 고사하고 정상화만 되어도 증시가 내리게 생겼으니 이건 무슨 상황인가?

 

결국 지금의 증시는 이미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얘기이다.

 

시중에 돈을 엄청나게 풀어 놓았다. 그런데 경제가 정상화되고 회복될 경우 엄청나게 풀린 돈은 곧바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면 급격하게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고 고금리인 즉 증시엔 쥐약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증시는 경제가 정상회복될 거란 소식이 들리는 날부터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이게 비정상이지 정상이겠는가!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은 바로 양적완화였으니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큰 눈에서 보면 이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은 미국 연준이 저지른 짓 때문이다. 2008년 여름 미국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연준의 버냉키 의장은 돈을 직접 찍어서 시중에 공급하는 소위 양적완화란 것을 단행했다. 이게 바로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이었다.

 

당시의 금융위기 역시 힘들어도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은행들의 막대한 부실채권은 정부가 배드 뱅크(Bad Bank)를 만들어서 처리하고 또 시중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경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떨어낼 것은 떨어내도록 했어야 했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이 덕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처리했어야만 어렵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아파야 할 것을 아프지 않게 한다고 연준의 버냉키는 일종의 마약성 치료제인 스테로이드 처방을 내린 셈이었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무려 세 차례나 양적완화를 하고도 여전히 문제가 풀리지 않자 시즌2란 명목으로 3.5차 양적완화까지 했다.

 

그렇게 처리하자 글로벌 경제공황은 오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렇다고 경제가 활발하게 살아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비실비실한 글로벌 경제가 2008년 이후 2020년 초까지 이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가 발발했다.

 

 

마약성 스테로이드를  이젠 무제한 투여하고 있으니 

 

 

그러자 연준의 파월 의장은 이번에 무제한 양적완화란 것을 단행했다. 종전의 나름 절제된 스테로이드 투여가 아니라 무한정 투여했던 것이다. 부작용 같은 것은 나중 문제라 하면서 말이다. 이에 유럽도 일본도 얼씨구 하면서 따라했고 한국은행도 슬그머니 따라서 움직였다. 그 바람에 작년 초반 선진경제국들은 무려 17조 달러에 달하는 ‘가짜 돈’을 시중에 공급했다.

 

일종의 마역성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를 장기 투여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젠 아예 대놓고 무한정 썼다. 그 바람에 글로벌 경제엔 돈 즉 유동성이 일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 홍수가 자산시장인 부동산과 증시로 밀어닥쳐서 거대한 상승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상승인 것이다.

 

총량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양적완화를 했어도 결국 경제가 견뎌내고 감내해야 할 고통의 총량은 변하지 않을 거란 얘기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경제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데 이번에 또 다시 그리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했기에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본다.

 

 

멀지 않아 호된 대가를 치르게 생겼으니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제한 양적완화로 인한 비용은 치르게 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08년 11월부터 양적완화란 것이 단행되었으니 60년 순환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그 1/4인 15년이 경과한 2023년 11월부터 무지막지한 청구서가 날아들지 않을까 하는 추산이다.

 

그렇기에 때가 되면 증시도 엄청난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앞에서 3700 포인트를 얘기했는데 하락할 경우 1000 포인트 이하까지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이번에 주식시장에 뛰어든 대부분의 개미들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도 있겠다. 한 번 재미를 보고 나면 아니다 싶어도 쉬이 떠날 수도 없기에 그렇다. 그게 증시의 魔力(마력)이니.

 

증시 하락 역시 시중의 유동성을 빨아들여 없애는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란 얘기이다.

 

좋은 소식, 나쁜 소식 다 말씀드렸다. 이 글을 접하는 독자님들만큼은 그저 무사하시도록.

 

제자님들에게 알리는 사항: 나 호호당은 작년 5월에 이사를 했는데 추석 때 저번 살던 주소로 선물을 보내신 제자님들이 적지 않았다. 대다수 물건이 반송되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에 새 주소를 알려드린다. 서울 서초구 태봉로2길 60, 309동 1104호(우면동 서초 네이처힐 아파트)

자정 넘기니 새 해라, 거 참 신기한 일일세! 

 

 

현재 시각 00시 34분. 표준시와 서울 지역의 진태양시는 32분 05초 차이가 있으니 이제 2021년으로 넘어온 지 1분 55초가 지났다. 그래, 새 해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새 해엔 또 무슨 험한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겁부터 난다.

 

앞의 문장은 오늘 31일에서 1일로 막 넘어온 시각에 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밤 11시 55분, 2021년의 하루가 거의 지난 셈이다.

 

살아보면 알게 되겠지만 나이가 들면 한 해 가는 것이 그리 길지 않다. 시간의 진행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올 해로서 나 호호당은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이 된다. 세월이 이처럼 잘도 가니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도 후다닥 지나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삶이란 탄생으로 열고 죽음으로 닫는 괄호와도 같아서

 

 

삶이란 일종의 括弧(괄호)속에 갇혀있다. 탄생으로 괄호를 열고 죽음으로 괄호를 닫는 그 사이의 공간 또는 시간이 삶이란 생각이다. 그 공간과 시간이 처음에는 마치 무한할 것 같다는 착각을 하지만 살다 보면 서서히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유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호호당 역시 괄호를 닫는 시점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무진장 괄호 속에 머물고 싶지도 않다. 그게 만일 가능하다면 그 영원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지루할 것 같아서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설령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그건 바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속의 톰 크루즈 신세 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삶이란 이럴 수도 또 저럴 수도 없는 버거운 무엇이란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늘 그렇진 않다는 얘기이다. 그 바람에 가끔 혹시라도 죽고 나면 전혀 다른 세계 또는 우리들이 흔히 靈界(영계)라고 말하는 세상과 공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어린 공상도 해보게 된다.

 

괄호의 앞과 뒤는 無(무)가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슬과도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혹은 기대. 불교나 힌두교의 윤회라든가 아니면 삼십삼천의 세계 말이다. 欲界(욕계)가 아니라 色界(색계) 내지 無色界(무색계)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살아선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죽어봐야 알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당장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새 해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삶을 몇 년 살았느냐를 기준으로 하기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다보니 앞서와 같이 거의 넋두리와도 같은 얘기를 하게 된다. 새 해 벽두답게 몽롱한 탓이라 해두자.

 

이제 정신을 차려본다.

 

 

2021년의 새로운 계획과 포부

 

 

살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운명의 이치와 법칙에 대해선 나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 끝내 알아내고야 말았다. 나 호호당은 천성적으로 호기심을 삶의 동력으로 하는 사람인데 깊은 경지에까지 알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운명에 대한 호기심이 이젠 많이 옅어진 것이다. 알아내는 과정에서 갖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누차 먹다 보면 그저 그렇듯이 운명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

 

그래서 올 해부턴 마침내 그간에 알아내고 파악한 운명의 이치와 법칙, 이른바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에 대해 그 세부 내역까지 글로 정리해볼 생각을 먹었다. 원론부터 먼저 쓰고 다음엔 각론,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집으로 이어지는 집필이 될 것 같다. 전체를 책으로 엮어내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 같은데 일단 내년에 원론부터 먼저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그 작업을 마치고 나면 평생 또 다른 방면에서 연구해온 언어의 기원과 생성 원리에 대한 것을 책으로 정리해볼 생각, 그리고 한일고대사에 숨겨진 내용들을 책으로 정리해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에 추산해보면 향후 10년의 작업 분량은 족히 될 것도 같으니 그러면 70대 후반이 될 것이고 그 다음엔 숨만 조심스럽게 잘 쉬다가 가면 되리라.

 

 

증시, 지나치게 오를 것이고 지나치게 화를 부를 것이니

 

 

증시가 엄청난 유동성으로 인해 잘도 오르고 있다. 이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탓이니 참으로 아이러니, 逆說(역설)이다.

 

올 해 증시 역시 작년보다야 덜 하겠으나 그 역시 드라마틱할 것으로 본다. 도중에 만만치 않은 조정도 있겠지만 결국 상상 외로 많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본다.

 

그런데 많이 오르면 실은 그게 바로 문제의 발단이 될 것이다. 올 해 말이나 내년, 그 시점을 알긴 어렵지만 경제가 정상 회복되는 그 순간부터 증시는 그야말로 엄청난 하락을 시작할 것이니 그렇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롤러코스터, 잘 아실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보면 처음엔 트랙의 최고점까지 차체가 끌어올려진다. 위치에너지를 최대한 얻기 위함이고 그로서 내리기 시작하면 그게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바뀐다. 미국 증시도 그렇겠지만 우리 증시야말로 최고의 롤러코스터가 되리라 예상한다. 결국엔 수많은 그리고 막대한 액수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막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부동산 역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증시에 대해선 곧 별도의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겠지만 여기에서 간단히 얘기해보면 우리 증시는 2000 포인트 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 그 선이 우리 경제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수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 선을 다시 넘어서 3000에 접근하고 있으니 이는 지극히 무리한 경제운영, 즉 돈의 공급을 늘려서 만들어내고 있는 억지 상승인 까닭이다.

 

억지는 결국 禍(화)를 초래한다. 2000선에서 머물렀다가 하락했다면 연착륙이 가능했겠으나 그 이상 선을 넘어서 한참을 올랐다가 내릴 경우 그건 경착륙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

 

 

새롭고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2020년은 최악의 해였지만 산업 방면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한 해이기도 했다. 2차 전지와 친환경 에너지 산업으로 전 글로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석유 수요는 2019년으로서 정점을 찍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특히 2차 전지는 향후 3-4년 동안 ‘표준’규격을 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일단은 테슬라이고 다음으론 2024년에 나올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가 표준을 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테슬라도 애플도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2차 전지 산업은 요동을 치고 부침을 거듭해 갈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가 올 해 선을 보일 전기차 플랫폼의 첫 제품인 아이오닉5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느냐 또한 우리 경제의 명운을 가름할 엄청난 승부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 역시 사생결단의 각오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함은 물론이고 적은 이윤의 마진을 놓고 싸움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친환경 에너지의 경우 덩치가 작은 미국의 ‘넥스트에라 에너지(NEE)’사가 석유업계의 거인인 엑손모빌의 시가 총액을 넘어서고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사가 이젠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장차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를 확대해 종합 에너지회사로 변신해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반도체의 상징적 존재이던 ‘인텔’이 금년 중에 생산 부문에서 손을 뗄 것인가를 놓고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텔의 경우 1968년에 설립되었으니 戊申(무신)년인데 세상 만물은 60년의 순환 속에서 48년이 흐르면 정체기에 들기 마련이다. 이에 2016 丙申(병신)년부터 인텔은 깊은 정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의 상층 엘리트들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인텔마저 생산을 놓게 되면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와 TSMC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대만은 중국과 가까운 사실상의 최전선 변경 지역에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장기 전략 측면에서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미국은 TSMC가 생산거점을 대거 미국 안으로 옮겨주길 기대하고 또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삼성이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1위를 목표로 설정하고 새롭게 투자에 나선 것은 그야말로 승부수라 하겠다. 뭐니 해도 우리 대한민국을 끌어가고 있는 반도체, 대한민국은 반도체 수출로서 먹고 사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나 호호당이 특별히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시작한 것이 1983년이었기에 48년이 흐른 2031 辛亥(신해)년에 가서 맞이할 정체기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작년부터 산업 기술 방면에서 실로 많은 것들이 커다랗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과 낡은 과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어서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초부터 시작된 양극화가 이제 20년을 넘어가면서 이젠 극심한 경지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것으로서 2021년 새 해 첫 글을 연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 역시 좋은 한 해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저 부디 독자들의 가정이 無事(무사)하고 무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눈내린 벌판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아직은 조금 어둑하다. 오랜만에 그림을 올린다. 원하는 종이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화방에서 비싸게 블럭 종이를 샀다. 롤 페이퍼를 사서 재단하면 가격이 화방의 블럭 종이보다 가격이 1/3 수준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종이가 팔리지 않아 수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어쩔 수 없이 종이를 비싸게 사야 했다. 참 오랜만에 그리다 보니 약간 어색하다. 스킬이란 게 며칠 만 쓰지 않아도 그렇다. 즐겨주시길...

옛 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

 

 

登高自卑(등고자비)란 말이 있다. 유교 경전인 中庸(중용)의 말로서 먼 곳에 이르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서 왔다. 譬如行遠必自邇(비여행원필자이),譬如登高必自卑(비여등고필자비).

 

때론 등고자비란 표현을 달리 해석해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處世(처세)의 말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의 글은 또 다른 뜻의 말로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일부러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當爲(당위)의 말로서가 아니라 절로 자신의 왜소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긴 인생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냥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러함을 이해하고 체득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높은 산에 오르면 모든 것이 다 거기에서 거기라서

 

 

높은 산에 오르면 시야가 완전히 달라진다. 낮은 땅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더 높아지고 땅이 더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너 편 산은 물론이고 더 멀리 더 많은 산들의 능선과 봉우리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은 일목요연하다. 낮은 곳에선 커다랗던 숲도 큰 땅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눈앞을 흘러가던 강도 그 길이가 훨씬 더 크고 길게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을을 내려다 볼 것 같으면 2층 건물이나 10층 건물이나 다 그만그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우리가 평소 지내는 낮은 땅에선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높은 곳에서 보면 그 차이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을. 줄여 말하면 땅 아래의 모든 사물이 높은 산과 거대한 산, 장대한 하늘에 비하면 그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물의 一齊(일제)함

 

 

사물의 一齊(일제)함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이 이 크고 넓은 세상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사실까지 알게 된다. 즉 自卑(자비)함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 지위가 높다 해도 돈이 많다 해도 얼굴이 잘 생겼다 해도 그게 다른 이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낄 순 있다 해도 세상의 거대함과 유구함에 비하면 그 차이란 것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물들까지 포함해서 다 미미하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달리 얻는 게 있다. 그건 만물이 모두 微微(미미)하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각자는 어떤 통쾌함과 호쾌한 마음을 얻게 된다.

 

그간 좀 잘 살아보고자 또는 좀 더 앞서가고자 아등바등 애를 쓰고 기를 썼던 것이 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애를 써도 계속 뒤쳐진다 싶어서 가졌던 열등감이나 自塊(자괴)의 심정 또한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 주변의 누군가가 내 눈에 참으로 한심하고 ‘찌질’해서 무시하던 마음 또한 실은 나의 찌질함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한심하다고 여겼던 주변의 그 사람이나 좀 잘 났다고 우쭐대는 당신이나 모두 이 세상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을 알고 나면 그로서 시원해지고 통쾌해지며 이윽고 어떤 자유를 얻게 된다. 편해진다.

 

 

장자의 소요유 그리고 제물론

 

 

어쩌다 한 번 태어나 살아보고 살아가는 인생, 주어진 시간 동안 재미나게 놀다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으면 그건 다름 아니라 莊子(장자)가 글을 통해 남기고 이름을 붙인 逍遙遊(소요유)편의 내용이고 만물이 실은 一齊(일제)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보았다면 그건 장자 齊物論(제물론)의 경지이다.

 

높은 산에 올라 땅을 내려다보고 눈을 수평으로 두어 멀리까지 바라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를 것 같으면 모든 사물을 포함해서 자기 자신의 卑賤(비천)함을 알게 될 것이고 세상과 천지의 장대함과 유구함을 보게 되니 마음이 호쾌해지고 시원해져서 걸침이 없게 된다. 크다 해도 그만이고 작다 해도 그만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든 사물이 일제하다. 그러니 통쾌하고 시원하다.

 

 

절로 낮아지는 자기 자신

 

 

높은 곳에 오르면 억지로 자신을 낮출 것이 아니라 절로 낮아진다. 높은 지위에 올라 겸손을 떨면서 그 지위를 보전하려고 애를 쓸 일이 아니라 절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잘 난 내가 없으니 굳이 겸손을 떨고 그다지 사양할 나도 없다. 잠시 어쩌다가 그 지위에 있게 되었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객관과 주관

 

 

사물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게 비로소 客官(객관)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관의 마음도 없지 않다, 각자는 작은 小宇宙(소우주)란 말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으니 나야말로 귀한 존재란 생각이 있는데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에 만물이 미미하고 평등하며 일제하다는 객관의 생각과 나야말로 더 없이 소중하다는 주관의 생각은 그렇다면 충돌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충돌할 것도 같지만 전혀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각자가 소중한 만큼이나 타자도 소중하다고 알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알면 된다. 크게 눈을 뜨고 보면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엄청난 투쟁을 하고 있다. 살기 위해선 다른 생명을 잡아먹기도 하고 잡아먹히기도 한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애처로워서 

 

 

그렇기에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슬픔으로 가득하다. 삶은 苦海(고해) 즉 고통의 바다인 것이 맞다. 이에 그 고통과 슬픔을 직시하면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 그를 慈悲(자비)의 마음이라 한다. 慈悲心(자비심)이 그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마음이다.

 

이런 자비의 눈은 객관의 눈이자 주관의 눈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비의 눈은 바깥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다른 존재들과 생명들도 애처롭지만 우리 모두 스스로도 애처롭다. 우리 모두 살아보려고 그 얼마나 애를 쓰고 참고 견디고 있는가.

 

이 또한 높은 곳에 오르면 보게 되고 알게 된다. 너른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세 가지 시선과 생각이 하나로 

 

 

객관의 눈에서 만물이 다 거기에서 거기란 사실, 일제하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면 속이 통쾌하고 시원해진다. 豪爽(호상)해지니 莊子(장자)가 일러준 가르침이다. 각자가 하나의 소우주란 점은 동서양의 공통된 지혜로서 주관의 눈이다. 또 하나 만물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애처롭고 측은하니 자비의 눈이고 사랑의 마음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세 가지 생각과 마음이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높은 곳이라 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드라마에 ‘펜트하우스’란 것이 있다. 100층 고층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서 지상을 오만한 자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자들과 그런 위치에 가고자 발악하는 그야말로 세속의 드라마이다. 아직 진짜 높은 곳에 올라보지 않은 탓에 펼치게 되는 찌질한 자들의 애처로운 얘기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자들의 성장 드라마라 해도 좋겠다. 아무튼 ‘스카이 캐슬’에 이어 시청률 좀 나오게 생겼다.

 

자아에 빠져 헤매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리니

 

사람은 태어나서 몇 년이 지나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自我(자아)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증명, 세상에 있어야 할 근거와 타당성을 찾느라 애를 쓴다. 그게 좀 부족하다 싶으면 열등감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좀 잘 된다 싶으면 자만감에 우쭐댄다. 그렇게 열등감과 자만감 사이를 오가면서 수십년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 문득 알게 된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그건 인생이란 높은 산에 올랐기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운과 명을 넘어서서  

 

 

운명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나 호호당의 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 1971년이니 이제 근 50년에 이르고 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제 운명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제법 알만큼 알게 되었다.

 

이에 사람이란 운명의 곡선 위에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원운동은 돌아오는 것이니 운 또한 돌아오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2020년도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글로서 송년 인사를 갈음한다.

헌 해는 죽고 새 해는 잉태되고

 

 

엊저녁 7시 2분에 해가 冬至(동지)점을 지났다. 나날이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던 깊은 海底(해저)에 도달한 것이고 그로서 다시 되돌아 浮上(부상)하기 시작했다.

 

동지로서 낡은 해는 죽었고 그를 이어 새롭게 孕胎(잉태)된 새 해는 아직 저 아래 깊고 깊은 바다 속에 있다. 그러니 오늘 동지부터 내년 3월 22일의 春分(춘분)까지 석 달 동안은 中有(중유)의 기간이다.

 

 

애매한 존재의 시간 

 

 

中有(중유)란 무엇인가?

 

고대 힌두 철학에 기원을 둔 불교에서 일컫는 개념이다.

 

불교 철학에 의하면 사유(四有)가 잇다. 여기에서 有(유)란 존재를 의미하는 바, 존재의 방식에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가 그것이다.

 

생유(生有)는 태어남의 순간이고 본유(本有)는 태어난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이며, 사유(死有)는 죽는 순간이고 중유(中有)는 죽는 순간부터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죽는 순간부터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시간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생명이 떠났으니 有(유)가 아니라 無(무)라고 해야 할 터인데 말이다. 그런데 불교 철학에선 그 기간을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이 기간을 中有(중유)라고 일컫고 있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이 기간 동안 망자의 영혼이 떠돌아다닐 터인데 혹시라도 처음 겪는 생소한 환경에서 길을 잘못 들지 말라고 현세에서 기원해주고 지원해주는 의식이 바로 49재이다. 7일마다 일곱 번에 걸쳐 재를 올린다, 망자의 영혼이 저승의 迷路(미로)에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혹은 무서워서 방황하지 않도록 현세에서 기원해주어야만 다시 좋은 곳에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제 해 또한 중유의 시간 속에 들었으니 

 

 

돌아와서 얘기이다. 동지부터 내년 입춘까지 해는 中有(중유)의 기간을 보낸다. 해가 오늘 동지로서 死有(사유)에 들었으니 내년 3월 22일 春分(춘분)까지 해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기간으로 들어섰다.

 

동지와 내년 춘분의 중앙에 立春(입춘)이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새해라 해서 ‘입춘대길“이라든가 ’건양다경‘이란 문구를 써서 집의 대문이나 방문에 붙이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게 되었지만.

 

이처럼 입춘이 되어 진정 새 해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아직은 새 해가 시작된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New Year는 3월22일의 춘분이 되어야만 동쪽 바다 멀리 수평선 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춘분부터 밤보다 낮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엔 復活節(부활절)이 있는 데 그 날자는 3월 22일부터 4월 26일 사이에 든다. 왜 오락가락할까? 하면 옛날엔 달력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랬다. 그렇긴 해도 그 정확한 의미는 바로 3월 22일 즉 춘분을 의미하고 있으니 해다운 해, 즉 활기찬 새 해가 부활한 것이다.

 

 

해는 1월1일 새벽 자정으로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동지로부터 내년 3월22일까지의 기간, 대략 석 달에 걸친 기간은 사실 대단히 모호한 기간이 된다. 中有(중유)의 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12월 31일 밤에 잠을 자지 않고 子正(자정)을 기다렸다가 그 시각이 넘어서는 순간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해피 뉴 이어! 하면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선 종을 치고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선 환호를 지른다. 그러면서 신기해한다. 어떻게 헌 해와 새 해가 一瞬(일순), 찰나의 시간 속에서 바뀔 수 있지? 하면서 신기해하고 신비해한다. 약간 作爲(작위)적인 느낌도 가지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건 작위이고 억지인 것이 맞다. 사람들이 그렇게 정해놓았을 뿐이다. 12월 31일의 자정 가까운 시각이나 1월1일의 자정 넘긴 시각은 그냥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인 것이 맞다.

 

그러니 불교 철학에서 말하는 中有(중유)란 개념이야말로 참으로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중간의 완충 지역을 설정해놓고 있으니.

 

 

이별이나 만남 또한 어느 순간의 일이 아니라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어느 날 헤어졌다.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날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드문드문 만나고 연락하다가 어느 기간인지 정확하진 않아도 그런 식으로 이별하기도 한다.

 

바로 그 애매한 기간이 완충 기간이다. 만나서 사랑하게 된 사이라 해도 어느 날 꼭 집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는 것 역시 어느 날 몇 시 몇 분부터 헤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까워져 가는 것이고 멀어져 가는 것이다.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나미’가 불렀던 “슬픈 인연”이라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서히 이별해갈 뿐이다. 수시로 만나긴 해도 실은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고 그러다가 멀리 시야 밖으로 사라졌을 때 아, 우리는 이별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멀어져온 것인지 상대가 멀어져간 것인지 그마저도 분명치 않을 때도 많다.

 

다시 되돌아간다.

 

 

서서히 헌 해가 가고 서서히 새 해가 다가온다. 

 

 

헌 해는 12월 31일 밤 12시로서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새 해 또한 1월 1일 자정 넘은 시각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헌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것 역시 석 달에 걸친 짧지 않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만 極限(극한)이나 極點(극점)을 따지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이 12월 31일 밤 12시를 지나는 순간 새 해가 시작되었다고 여길 뿐이다.

 

사람들은 1월 1일 새 해가 되면 동해 바닷가로 해맞이를 떠나기도 하고 서울 남산 또는 각 지역마다 높은 산에 올라 해를 맞기도 한다. 그냥 떠오르는 해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새 해의 소원을 가슴 속으로 빌어보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동지에서부터 춘분에 이르는 中有(중유)의 기간 동안에 가령 해를 보내고 또 맞이할 것 같으면 동지에 하든지 아니면 입춘에 하든지 또는 춘분에 해야 논리적이고 합당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사용하는 달력이 흔히 말하는 양력 즉 ‘그레고리’력이기에 1월 1일 아침에 산에 오르거나 바닷가로 나간다. (사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레고리 달력은 그다지 좋은 역법이 아니지만 그냥 전 세계가 공통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지금 시각이 새벽 1시 23분, 엊저녁 7시 2분의 동지점을 지난 지 6시간이 조금 더 지나가고 있다.

 

 

어떤 것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까지의 시간

 

 

우리들은 습관상 기억을 할 때 처음에서 끝까지의 경과는 잘 기억해도 ‘어떤 끝에서부터 새로운 시작, 즉 처음이 시작되는 때’에 이르는 기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中有(중유)의 기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이런 이상야릇한 말을 호호당은 늘어놓고 있지?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그 중유의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대개의 경우 어떤 일을 그만 두는 그 순간 다른 일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완충의 시간이나 기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열기 위한 창조의 시간인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有(유)에서 無(무)로, 無(무)에서 다시 有(유)로 이어져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無(무)란 바로 中有(중유)로서 바로 이 모호한 기간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열기 위한 위대한 창조의 기간이 된다는 얘기이다.

 

이는 마치 섹스를 통해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란이 형성되고 그것이 子宮(자궁)에 착상된 이후 엄마의 뱃속에서 태아가 자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이후 아기가 출생한 후의 모든 일과 변화, 그리고 발전은 이미 그 이전의 시간, 즉 胎中(태중)에서 다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것과도 같다.

 

 

모든 창조는 시작 이전에 이루어지고 끝난다. 

 

 

모든 창조는 시작 이전에 결정이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중유의 시간이야말로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 또는 기간이라 하겠다.

 

우리가 내년 2021년에 하게 될 일, 그리고 변화 변천, 발전 혹은 퇴보 등의 모든 것은 어제 동지에서부터 시작되어 내년 3월 22일 춘분이 되면 다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애매한 시간 속에서 말이다.

 

일의 향배를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일의 機微(기미)를 살피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살펴보고자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모든 기미와 기틀은 애매한 시간, 어떤 끝과 새로운 시작 사이에서 생성되고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 글을 맺고자 한다. 오늘의 얘기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침 시각 간밤에 써놓은 글을 읽어보니 동짓날 긴 긴 밤의 꿈속과도 같아서 절로 어허! 하게 된다.

심상치 않은 증시의 상승

 

 

코로나 블루가 서울 경기로부터 전국을 뒤덮어가고 있다. 공직자나 대기업 노조원이 아니면 수입도 줄었고 자영업자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기 직전이다. 다음 주부터는 코로나 감염자가 더 늘어날 기세라 하니 우울하다. 나 호호당도 우울하다. 코로나 때문만도 아니고 수입이 줄어서만도 아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최근 나 호호당이 크게 놀란 일이 하나 있었으니 우리 증시의 상승이다. 2018년 1월 말의 고점인 2607.10 포인트를 지난 달 11월 24일로서 뚫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사실 난 2018년 초의 전 고점을 뚫어내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단정을 짓고 있었다. 그 바람에 상승하는 증시가 전 고점에 가까워지자 계좌의 주식 비중을 30%로 대폭 줄여놓으면서 하락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럴 수 있음을 예고하는 사전 징후는 있었다. 달러 환율의 급격한 하락이 그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무려 1296원까지 치솟았던 달러 환율이 10월 중순에 1,148원을 뚫고서도 계속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이거 이러다가 증시가 전 고점을 뚫고 오를 수도 있겠네 하는 예상도 들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하지만 증시는 내 생각을 빗나갔다.

 

그러자 소름이 확-하고 돋았다. 이거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증시에서 게임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고집 부리지 않는 일이다, 주식 비중을 다시 늘려가기로 한 것은 당연하다. 돈은 일단 벌고 볼 일이니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니 

 

 

그러면서 생각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팬데믹 발생과 함께 미국 연준이 무지막지하게 달러를 찍어대더니 이제 그 물결이 우리 시장으로도 마구 밀어닥쳐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직은 별 것이 아니지만 곧 海溢(해일)과도 같은 거센 달러의 물결이 밀어닥칠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뉴 노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좋았던 지난 시절은 지나친 것 즉 거품이었고 이제 새로운 정상의 시대, 경기가 침체하긴 했지만 실은 그게 정상이란 생각이 퍼져갔다.

 

그런데 미국 연준이 종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무공 초식과 기술인 양적완화라고 하는 것을 선보였다. 그러자 뉴 노멀은 빠르게 변질되어 갔다. 돈 즉 달러를 엄청나게 남발해야만 그나마 경제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서 이미 뉴 노멀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간에 지나치게 달러를 찍어낸 것에 내심 불안해하던 미국 연준은 몇 년이 흘러 서서히 달러를 회수하기 시작했지만 시장은 전혀 반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으니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돌연 자세를 바꿔서 지난 몇 년 사이에 찍어낸 달러를 단 3개월 만에 그 이상으로 더 찍어내었다. 처음엔 상황이 워낙 위급하니 저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짜 돈의 시대, 뉴 어브노멀!

 

 

하지만 그게 또 아니었던 것이다. 올 봄 연준의 초 스피드 초 대량 달러 찍어내기를 통해 글로벌 경제는 또 다른, 전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었던 것이다. 이제부턴 “뉴 어브노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비정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量(양)은 質(질)은 변화시킨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야말로 참으로 그렇다.

 

이젠 더 이상 돈이 돈이 아닌 시대, 이제 연준은 당초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에서 경기부양 또는 경기유지를 위한 기관으로 완전히 바뀐 셈이다.

 

시장에선 새 대통령 조 바이든은 당연하게도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재정정책을 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바이드노믹스”라고 부르고 있는 바, 출범과 함께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새로운 뉴딜계획을 내놓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장에만 그치지 않고 도로·철도·교량 등 전통적 SOC 사업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예산 지출 확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야당인 공화당과 타협을 해야 하겠기에 최소한 1조 2천억 달러의 부양책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싶다.

 

연준이 이미 달러를 마구 찍어낸 탓에 더 이상의 통화 정책 수단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제 재정적자 따윈 쳐다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제부터의 세상은 가짜 돈의 세상이다. 연준은 가짜 돈을 남발했고 그럼에도 부족하자 재정적자를 마구 진행해간다는 생각을 가진 미국이란 얘기이다.

 

 

증시 상승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증시가 전 고점을 뚫고 거침없이 상승해도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게 생겼다. 글로벌 중앙은행과 사실상의 글로벌 중앙정부인 미국 행정부가 사정없이 거침없이 가짜 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돈 가치의 “물타기”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나섰으니 증시가 오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과는 자명하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무엇인가? 하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라 설명을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 값, 사람 값어치의 하락을 가져오는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은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격 체계를 교란시키면서 새로운 차별과 더 심한 양극화를 불러온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최근 아파트 시세가 엄청나게 급등하면서 아파트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과 양극화를 불러오고 있지 않은가. 주식을 가진 자와 주식을 가지지 않은 자의 차별과 양극화 또한 당연하다. 그런 까닭에 최근 젊은이들이 영끌과 빚투를 통해 필사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돈 가치의 물타기가 본격화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이 닥치기 전까진 時差(시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다른 말 다 젖혀놓고 얘기이다. 이제 증시는 오른다. 어설프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많이 오른다, 올라도 심하게 오를 것이다. 가짜 달러가 해일처럼 우리 증시로 밀어닥칠 것이고 이미 절반은 가짜가 되어버린 우리 돈, 즉 시중 유동성도 지속적으로 증시로 유입될 것이다. 따라서 증시가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우리 증시가 어디까지 오를 것인지 나름 면밀하게 계산해보았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코스피 기준으로 3000 포인트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고 그 다음 선으로 3500 선, 그리고 심지어는 4058 선을 넘어설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다. 현재로선 쉽게 상상이 가진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냥 갈 순 없는 일이어서 

 

 

당장 내년은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부양 또는 경기 정상화가 우선일 것이다. 따라서 내년까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달러를 대량 남발한 올 4월로부터 2년이 경과한 2022년 4월부터는 그냥 갈 것 같지가 않다고 본다.

 

시점을 예단하긴 그렇지만 어쨌거나 무지막지한 인플레이션의 물결이 밀어닥칠 가능성, 그냥 가능성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밀어닥칠 것이라 본다.

 

극도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치료약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밖에 없다.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의 가짜 돈을 회수하고 흡수하는 것이다.

 

금리를 급격하게 고율로 올리면 어떻게 되나? 그건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증시는 급격한 하락 조정을 보일 것이고 아파트 가격 또한 극심한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기에 

 

 

그렇다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되나 싶을 것이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 설령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미루어도 미국 연준이 일단 시작하면 우리라고 홀로 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 버티면 달러가 죄다 빠져나가면서 그 역시 우리 경제의 위기국면이 연출될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즉 돈 가치의 물타기가 이어졌고 그로서 디플레이션을 그런대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미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연준에 의해 초 단기간에 더욱 대폭의 물타기가 있었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새 대통령답게 멋진 모습으로 대규모 재정정책을 추진할 요량이다.

 

그러니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순 없는 노릇, 돈 가치의 물타기와 막대한 재정투입의 부작용은 결국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시기는 현재로선 예단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그 사이에 증시는 거침없이 오를 것이고 낙관론이 팽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단순한 이치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니 그간의 일로 인해 치러야 할 代價(대가)는 지독하게 비쌀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본다.

 

그렇기에 앞에서 얘기했듯이 지난 달 하순에 증시가 2018년 초의 고점을 갱신하면서 오르자 소름이 확 돋았다. 이제 천국행 롤러코스터가 발동을 했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나락으로 치닫는 지옥행 롤러코스터로 변할 것이니.

 

특히 부동산이 그렇다. 주식이야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 딱 먹고 클릭 두 번이면 손절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부동산은 문자 그대로 不動(부동)은 아니라 해도 손쉽게 정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점에서 그렇다. 이에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폭증하면서 일파만파!, 다시 한 번 총체적인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마음이 심란해서 며칠 간 고민했다. 당장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괜히 이런 글을 올려서 독자들의 정신을 사납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이틀 간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글을 올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올린다.

폭 망한 조니 뎁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주연이었던 조니 뎁이 미국 평론가들로부터 이젠 경력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있다. 더 이상 영화 출연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이유는 이혼 소송 중에 아내를 여러 차례 구타한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넉넉히 ‘아웃’이다.

 

1963년 6월 9일 아침 8시44분생이라 되어있다. 癸卯(계묘)년 戊午(무오)월 癸未(계미)일 丙辰(병진)시가 된다. 사주 성격상 술과 약, 여자 문제였을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주 구성으로 볼 때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1983 癸亥(계해)였고 입춘 바닥은 2013 癸巳(계사)년이다.

 

1984년에 데뷔했으니 입추를 지날 무렵이었고 이에 36년이 흘러 2020년으로서 경력이 끝났다. 36년의 시간은 눈에 현저하게 드러나는 전환점이니 경력이 끝났다는 말을 들을 법도 하다.

 

2013년이 입춘 바닥이니 올 해 2020년은 새로운 60년 주기에 있어 춘분의 때, 아프게 각성하는 때라 하겠는데 이번에 망신도 당하고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조니 너, 그간의 엉망진창이었던 시간들에 대해 반성 좀 세게 해라! 하고 운명이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 친구는 사주 상으로 운이 떨어지면 능히 타락할 수 있는 타입이기에 전혀 놀랍지 않다. 사실 이 친구의 영화를 좋아했던 터라 평소 관심이 있었고 그러면서 저 놈의 사생활은 2000년 중반 이후 엉망일 터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몇 년 전부터 유심히 관찰해오고 있었다.

 

젊은 시절 여러 인종의 혼혈아답게 묘한 매력을 풍기던 개성파 배우였는데, 조니 뎁, 내 너 이럴 줄 알았다. 그간에 돈도 왕창 벌고 거들먹거리며 놀다보니 세상이 만만했겠지. 그러니 벌도 좀 받아야지. 하지만 2013년 입춘 바닥에 찍은 사진을 보니 완전히 푹 곪고 썩어있더니 조만간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사주 상 열정도 많고 예민해서 신경질도 많이 부릴 것이며 섬세한 디테일도 잘 포착해서 연기에 녹여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스스로 자제하거나 수양하진 않고 지내다가 바닥이 되니 저렇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니 뎁에 대해 실망한 것은 전혀 아니다. 저런 타입의 사주를 가진 자는 으레 인생에 한 번 저런 유형의 사고를 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능히 이해한다. 옛날에 또라이가 하나 있었는데 연기 하난 기가 막히게 잘 했어, 그러다가 운명의 公式(공식)에 충실하게 맛탱이가 가서 아웃되어 버렸지, 하는 식으로 기억할 참이다.

 

 

여름 생과 겨울 생의 차이에 대하여 

 

 

운세가 바닥에 이른다 해서 모두가 곤경에 처하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여름 생들이 운세 바닥에서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고 겨울 생들은 겉보기엔 아무 탈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름 생들은 의욕도 강하고 열정도 크다. 그러다 보니 의욕이 앞서기도 하고 때론 일탈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운세 하강 길에 실수를 하게 되고 그 바람에 운세 바닥에 이르러 크게 고생하고 또 그 바람에 대오각성해서 잘 살기도 한다.

 

반면 겨울 생들은 조심성이 많고 열정도 적은 편이어서 과욕이나 허욕을 부리지 않는다. (물론 상대적인 얘기이다.) 그런 까닭에 운이 시들면 조용히 혼자서 시름시름 앓으면서 조용히 지낸다. 이에 남의 시선엔 아주 멀쩡하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여름 생이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긴 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더 높다는 점이고 겨울 생은 무사하게 인생을 영위하지만 사는 재미는 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처럼 일장일단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가령 난 봄에 태어났는데 그렇다면 어떨까요? 하는 질문이 생길 법도 하다. 이 점에 대해 얘기하면 대략 4월 20일부터 10월 20일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여름 생이라 하겠고 그 반대로 10월 20일에서 4월 20일 사이라면 겨울 생이라 하겠다.

 

앞서의 조니 뎁 역시 6월 9일 생이니 여름 생이다. 그러니 망신도 당하고 사고도 치고 있다. 물론 여름 생이라 해서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사주 구성 즉 타고난 성품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그런 경향이 많다는 얘기이다.

 

 

겨울 생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삶 

 

 

겨울 생 얘기가 나왔으니 한 사람 더 생각해보면 조니 뎁과 비교가 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생각난다. 1974년 11월 11일 오전 2시 47분 생이다. 甲寅(갑인)년 乙亥(을해)월 丙辰(병진)일 己丑(기축)시가 된다. 따라서 입추는 1996 丙子(병자)년임을 알 수 있다.

 

태어난 날이 丙火(병화)이니 영화배우로서 아주 제격이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엄청난 미모였다. 1993년에 영화에 데뷔해서 1996년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다. 그야말로 청춘스타의 상징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연기는 더 잘 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사생활이 복잡할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가 않다.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겨울 생답게 신중한 성격 탓이라 본다. 살다보면 애정이 생겨나고 식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연애만 하지 구속받는 삶을 싫어하는 것이다. L.A에 집이 한 채, 뉴욕에 고급 아파트 한 채,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 꾸며진 리조트, 팜 스프링스에 옛 연예인이 살던 주택 하나를 가지고 있다. 환경운동이나 자선 활동에도 열심이어서 인기관리도 잘 하고 있다. 겨울 생답게 섣부른 실수를 하지 않으면서 삶을 즐기고 있다.

 

오는 2026년이 입춘 바닥이 되는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별다른 말썽을 피우지 않고 있는 레오나르도인 것이다. 생긴 것과는 달리 냉철하고 똑똑한 친구라 본다.

 

 

이제 원화 강세의 가파른 상승도 마무리될 것이니 

 

 

이쯤에서 최근의 경제동향과 시사 사항에 대해 짧게 언급해본다.

 

먼저 얘기할 것은 원화 강세에 관한 것이다. 강세 추이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원화만이 아니라 중국 위엔화 역시 초강세를 보여주고 있다.

 

원/달러는 금년 고점인 1296원에서 토요일 종가 1082원까지 그간에 무려 16.58%나 하락하면서 엄청난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다 내렸다고 본다. 일시적으로 조금 더 하락해서 1065원까지 내릴 순 있어도 그건 지나친 것이고 조만간 되돌림이 나타날 것이다.

 

위엔화도 마찬가지, 거의 다 내려서 수일 이내 위엔화의 초강세 국면이 끝날 것이라 본다.

 

항간에선 미국 달러가 바이든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돈풀기로 인해 지금보다 20% 이상 더 하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하지만 너무 솔깃할 얘긴 아니다, 그런 말이 나오고 있으니 지금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 증시가 원화 강세와 위엔화 강세 바람을 타고 전 고점인 2607 포인트를 넘기고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가 멈추면 우리 증시 특히 코스피 증시도 조정을 보일 것이다. 아마도 다음 주 목요일 선물 옵션 동시만기일이 그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환차손을 보고 있는 서학 개미들

 

 

재미난 점은 이른바 ‘서학개미’들이 대거 미국 증시에 투자하기 시작한 시점이 금년 8월부터인데 10월부터 달러가 가파른 하락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환차손이 상당할 것이다. 미국 증시에서 사들인 주식이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손 16.58%를 넘어서지 않는 한 손해인 까닭이다. 게다가 미국 증시 투자는 수수료도 대단히 비싸다. 이 모두 우리 증권사들이 잽싸게 그리고 일제히 미국 증시 쪽에 투자하는 서비스를 개시한 것이 근본 이유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손실을 보고 있다.

 

하지만 길게 볼 것 같으면 이제 우리 경제도 선진국 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본 엔화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안전 통화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의 일반 사람들이 해외 주식이나 채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글로벌 위기가 발생하면 해외 자산을 팔고 엔화로 바꾸는 수요가 크기에 위기엔 엔화가 오히려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니 언젠간 우리 원화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022년부터 달러 유출이 시작될 것이란 점 

 

 

예전에 한 번 얘기한 바 있지만 상기시킬 겸 해서 다시 한 번 얘기해둔다. 국내로 유입되는 외화 즉 달러는 내후년 2022년이 되면 과거 30년간의 흐름과는 반대로 유출되기 시작할 것이란 점이다. 유출의 흐름은 2032년에 가서 절정을 이룰 것이란 점도 덧붙여둔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기업들의 노쇠와 생산성 하락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중앙이 아니라 자신의 중앙에 서야 잘 산다. 

 

 

첫 번째 글에서 세상엔 중앙이나 중심이 있어 사람은 그곳에 거하거나 처하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다. 중앙은 끊임없이 분화되면서 모든 것을 변두리로 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 또한 같은 서울이 아니게 되었고 나아가서 글로벌 시대엔 서울마저 일종의 변두리에 그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두 번째 글에선 모두가 중앙이나 중심에 서고 싶어 하지만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중앙엔 한 사람밖에 설 수가 없으니 그런 연유로 해서 이 세상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또 그렇기에 현대인은 불행하다는 말도 했다.

 

이에 그 대안으로서 각자가 각자의 중앙이나 중심에 서거나 또 그곳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면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게 바로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사는 모습이란 얘기도 곁들였다.

 

나답게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는 것, 이는 세상의 인정이나 모두의 칭송을 받는 것보다도 내가 나를 되돌아볼 때 긍정하고 칭찬해줄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실은 더 중요하다는 애기이기도 하다. 때론 자신의 가고픈 곳, 자신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에 갈음하는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 또한 자신의 중앙 혹은 중심에 서는 것이 된다는 얘기도 했다.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을 때 가령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고 하자. 야, 넌 정말이지 잘 해왔어, 비록 만인이 인정하는 1등의 삶은 아니었다고 해도 난 이거면 만족해, 세상엔 참으로 잘 난 놈도 많고 뛰어난 놈도 많았지만 난 진짜 나대로 나답게 살아온 거 같아, 넌 잘 한 거야! 물론 미흡한 것도 없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아쉬운 건 없어.

 

이런 말을 독백처럼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중앙 또는 중심 그리고 나아가서 세상의 중앙과 중심에 섰던 것이라 말해도 절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세상은 실로 무서운 곳이기도 해서 

 

 

이 세상은 자칫 아차하면 실로 무서운 곳이다, 어리바리 정신 차리지 않고 여기저기 실없이 기웃대다 보면 세월 어느 사이에 훅- 가버리고 이도저도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나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이에 하는 말이라곤 난 꿈이 정말 많았었고 기회도 없지 않았는데 그걸 다 헛되이 흘려보내고 말았구나, 정도가 고작이다.

 

이 모두 자신의 중앙에 서지 않고 그저 세인들이 중앙이라 여기는 중앙 또는 중심에 서야만 되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앞의 글에서 얘기했던 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는 관계로 남들이 인정하고 알아주는 중앙보다도 실은 내가 인정하는 중앙에 가서 서는 것이 어떤 면에선 더 중하고 크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질곡

 

 

이제 남은 것은 우리 한국사회와 각 개인 간의 문제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이미 그동안 우리가 선진국이라 불러오고 또 선망해왔던 나라들과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국민소득이나 기술 수준 등등 많은 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각각의 사람들은 과거 힘들게 살았던 지난 세월에 비해 각자가 느끼는 만족감 또는 삶의 행복 지수는 높지도 않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 더 악화되고 있다.

 

이는 단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란 점만 봐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 출산율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마당에 내년 2021년 우리의 합계출산율은 0.8명대 이하를 기록할 전망이라 하니 이러다가 이 방면에서 전 세계 신기록을 낼 것도 같다. (참고로 얘기하면 합계출산율은 2000년 초부터 이미 우리가 저출산의 대명사였던 일본보다 더 낮아졌다.)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그 사회가 장기에 걸쳐 만성적 自殺(자살)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노인들은 살기가 힘들고 우울해서 자살하고 젊은이들은 후손을 낳지 않아서 나라 전체가 집단 자살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인 것이다.

 

출산율이 낮은 데에는 흔히 선진국 형과 후진국 형이 있다고 한다. 선진국 형은 개인의 성취나 성공을 위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고 후진국 형은 문자 그대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출산을 피하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를 보면 희한하게도 두 가지 동기가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하고 있으니 아이를 낳기가 어렵고, 결혼을 했어도 직업적 경력을 이어가고 또 사회적 성취를 추구하느라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고 또 남부럽지 않게 양육하려다 보니 돈이 너무 들어서 감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우리나라 아닌가 말이다.

 

 

획일적이고 모노톤의 대한민국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엄청나게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즉 사회적 가치란 결국 그 사회가 추구하는 중앙 혹은 중심이란 것과도 연관이 된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간에 형성해온 가치, 즉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중앙과 중심이란 것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압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획일화되어 있다는 얘기이다.

 

서울 강남 일대의 버스 정류장 근처에 보면 “예쁘면 DA야!”란 문구가 붙은 성형외과 광고판이 있다. 물론 어느 성형외과 의사가 돈 좀 벌어보고자 지어낸 카피에 불과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다.

 

남자에 대해 물어볼 땐 그 남자 돈 있어? 이고 여자에 대해 물어볼 땐 예쁘냐? 인 우리 사회. 이 말에 대해 동의하냐고 물어볼 것 같으면 적어도 질문을 받은 나는 수긍하지 않는다 할 것이고 그렇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수긍한다고 여기면서 우리들은 살고 있다. 이상한 모순이다. 각자는 수긍하지 않는데 전체는 수긍한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인식 구조.

 

어떤 것에 대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게 대세인 것 같다고 여긴다면 실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흔히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라 한다.

 

돈과 미모,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라 하겠고 그게 현실이라면 실로 민망하고 낯 뜨거운 얘기라 하겠지만 우리 사회의 엄청난 모노톤과 획일성을 여실히 傍證(방증)해주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우리 사회엔 보수와 진보가 있지만 ‘리버럴’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타날 것 같으면 양쪽에서 매장해버린다. 리버럴이란 삐딱이이다. 남들이 보는 대로 보지 않고, 대세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가미해서 달리 볼 수 있고 달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정치는 勢와 票(표)로 결정이 되기에 비딱이는 분열만 조장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진영’의 적이고 암세포인양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 결과 우리 정치엔 보수 진영이 있고 진보 진영이 있을 뿐이지 실은 보수도 진보도 없다. 그저 똑 같은 소리만을 내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변두리에 처해 있다는 초라함을 강요하는 우리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어딜 가도 지극히 단순화된 중앙과 중심만이 존재한다, 다양성 운운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거야말로 실로 요원한 얘기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간에 엄청난 발전을 해왔음에도 우리 스스로 뭔가 크게 아쉽게 여겨지는 것이 있는 바, 그런 이유 중의 하나로서 엄청난 사회적 획일성과 모노톤의 독재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런 까닭에 우리 사회의 이처럼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는 각자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고 처해있는 공간과 위상에 대하여 감히 중앙이란 생각을 내지 못하게 강요하고 있다. 즉 모두로 하여금 나는 변두리에 처해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단속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돌아가서 얘기지만 예전엔 시골의 읍내에만 살아도 천하의 중앙과 중심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도 그곳은 변두리, 따라서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지리적인 위치만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나 위상, 소득이나 가치관 등등 모든 면에서 모든 일을 변두리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강요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얼마 전 “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가 빅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인기가 많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인기가 많은 이유? 그 드라마를 보는 대다수 사람들이 스스로를 낮고 낮은 언더그라운드에 처해있다고 여기는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의 내용처럼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을 중앙에 진출시켜 보려는 그 비열하고 왜곡된 드라마 속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비난하고 또 한편으론 저게 대세야 대세! 하면서 받아들이는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아닌가 싶었다는 얘기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과제는 다양한 중앙을 만들어내는 것, 용기가 필요해. 

 

 

그렇기에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과제는 소득 몇 만 불 그런 것도 아니고, 정치에서 떠들어대는 막연하고도 허울뿐인 평등이나 공정도 아니라 본다.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다원화된 중앙과 중심을 창출해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얘기한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정신 똑 바르게 차리지 않으면 이 산 저 산 헤매다가 인생 다 간다. 남들이 인정하는 중앙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중앙에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글을 마친다. 용기를 가져야 중앙에 설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운운은 너무 이른 생각일 수 있어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범유행 사태 즉 팬데믹이 되자 대번에 이젠 더 이상 과거의 산태로 되돌아갈 순 없으리란 비관론이 득세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운운이 그것이다. 잽싸게 책도 나왔고 나름 세계적인 碩學(석학)이란 사람들도 인터뷰와 강연에 나서면서 인기몰이와 돈벌이에 한창이다.

 

석학이란 불리는 사람들 전혀 석학이 아닌 것 같다. 가령 지금의 사태가 어느 정도 가신 뒤 한 3년 정도 신중히 생각해본 다음에 진중하게 말문을 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피디하게 끼어들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대고 있으니 그렇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비로소 그 날개를 편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있어 결정적인 승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나 호호당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면서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이 인류가 바이러스를 극복해가는 기나긴 투쟁에 있어 어쩌면 결정적인 勝機(승기)를 잡는 일대 전환점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세간의 비관론과는 180도 다른 생각, 그것도 대단히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해보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올 초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가자 바이러스에 대해 관심이 부쩍 커졌고 이에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법이 1796년에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다. 

 

 

우두법은 천연두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일대 시작점이 되었다. 천연두는 흑사병과 더불어 엄청난 치명률을 가진 감염성 질병으로서 신종 독감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지금의 코로나19 정도는 사실 천연두에 비하면 그야말로 그저 조심해야 되는 유행병에 불과하다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연두는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위키백과에 나온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의 경우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0,000 명을 죽였으며, 시각장애자 중 3분의 1은 천연두로 인해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감염자들 중 20-60 %가 사망했고, 아동은 감염될 경우 80% 꼴로 사망했으며, 20세기에도 3억에서 5억 명이 천연두로 인해 죽었다. 1967년에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는 그해 한 해 동안 1천 5백만 명이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그 중 2백만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면 천연두가 얼마나 무서운 감염병인가를 충분히 알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천연두가 백신 접종으로 인해 1979년엔 사실상 박멸되었다는 것이다. 백신의 위대함이다.

 

이에 계산하기 좋아하는 나 호호당은 사이클을 체크해 보았더니 어쩌면 이번 코로나 사태야말로 하나의 역사적인 전환점에 해당될 수 있다는 아주 흥미로운 계산이 나왔다. 이 점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먼저 백신에 대해 알아보자.

 

 

초유의 백신 개발 속도

 

 

그간 바이러스 백신 개발엔 결정적인 장애가 있었으니 개발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이상한 바이러스가 나와 유행하면 백신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 놈의 바이러스 유행이 개발 도중에 멈추는 일이 잦아서 연구소나 제약소들로선 투자한 비용을 손실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흔히 백신 개발엔 최소 10년이란 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는 최대 피해국이 바로 미국이란 사실이다. 이에 미국은 백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살포했다. 선입금 후개발 방식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돈이 먼저 들어가자 전 세계 두뇌들이 풀가동되기 시작했고 그간에 발표된 신기술들이 최대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3월에 착수한 백신 개발이 사실상 7개월 반 정도에 임상 3상이 완료되었고 이르면 12월 중에 투여가 시작될 참이란 것이다. 돈 퍼붓고 두뇌들을 마구 갈아 넣기 시작하자 약이 만들어졌으니 초유의 속도전이었다.

 

지원금을 두둑이 받은 거대 제약사들이 죄다 나름의 신기술을 동원해서 개발했고 이에 조만간 위탁생산 업체들을 통해 양산에 들어간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일이다.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컸지만 최근 나온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바이러스 변이가 코로나19 백신 효능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더더욱 다행한 일이다.

 

 

자연순환의 원리에 따른 계산 근거

 

 

그럼 이제 앞에서 얘기한 나 호호당의 계산을 제시해본다.

 

세상 변화엔 여러 주기가 있는데 이 블로그를 통해 가장 흔하게 제시하는 주기는 60년 사이클이다. 그런데 그 상위의 사이클로서 360년이 있다.

 

360년 주기에선 그 절반인 180년이면 서서히 반전의 흐름이 시작되고 그 반전의 흐름은 225년이 되었을 때 그 반전의 흐름이 보다 구체화되고 현저해진다. 그렇기에 역사 흐름을 볼 때 가장 드라마틱한 시점이 되기도 한다.

 

이에 살펴보면 우두법, 즉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괄목할 만한 치료법이 나온 것이 1796년이었다. 이 시점에 180년을 더해보면 1976년이 되는데 이 무렵이면 어떤 좋은 흐름이 나올 수 있는 때가 된다. 그런데 천연두 바이러스가 박멸되었다고 세계보건기구가 선언한 것이 1979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3년 차이.

 

따라서 1976년이야말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이기기 시작한 시점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1796년에서 225년이 경과하는 시점을 뽑아보면 바로 2021년 내년이 된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백신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개발이 되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바이러스가 미국을 공격하자 세계 최강국 기술 제일의 미국답게 신속한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승기를 잡는 순간일 수 있다. 

 

 

그렇기에 백신 개발에 10년 걸린다는 기존의 얘기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인류가 마음만 먹으면, 즉 돈을 넉넉하고도 과감하게 투입하고 두뇌들을 집중 투입하면 6개월 정도에 백신이 만들어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바이러스는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중간자라서 박테리아처럼 공격할 포인트를 잡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백신 개발에 활용된 신기술은 코로나19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모든 바이러스 퇴치에 널리 활용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어쩌면 내년 2021년이야말로 ‘바이러스 프리’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元年(원년)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흥 종교같은 얘기를 하는 선배를 만난 뒤 

 

 

며칠 전 친한 선배를 만났더니 이번 코로나19는 예고편이다, 내년엔 식량난이 닥치고 더 무서운 질병이 번져서 인류를 대청소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냥 웃고 말았다, 물론 미래의 일이니 아니라고 단정을 짓긴 어려워도 최근 내가 하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얘기였기에 말이다.

 

그래서 형, 무슨 약간 신흥종교 교주님 같은 얘기 하시네, 하고 약간의 핀잔만 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서 이렇게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