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대단히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치과의사인 후배와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 있었다. 저녁 여섯 시에 만나서 어딜 가서 먹지? 하다가 사무실 맞은 편 골목에 있는 수제 햄버거 집을 갔다. 테이블이 네 개 되는 아주 작은 가게이지만 내 생각에 국내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 햄버거 집이다. (내 사무실은 강남 교보타워 빌딩이 있는 신논현역에서 5백 미터 거리에 있다.)

 

거리가 조금 되는 터라 가끔 찾아간다. 식사를 하는 데 창밖으로 눈발이 비쳤다. 일기 예보에 퇴근 시간 눈발이 비친다더니 정말 그러네! 하면서 내리는 눈을 지긋한 눈으로 감상했다. 가게 안의 불빛과 어울려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았다.

 

맛있게 먹은 후 가게를 나서니 눈발이 아니라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카페엔 가지 못하기에 커피를 사서 사무실로 되돌아갔다. 대화를 마친 뒤 밖으로 나서니 저녁 8시였다. 서울시는 제설을 잘 하니까 간선 버스들은 잘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진 낭만적 분위기.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하지만 교보 타워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재난 영화가 시작되었다. 차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귀가하는 코스는 사무실에서 강남역 버스 정루장으로 걸어가 버스를 탄 뒤 양재역으로 가서 서초 18번 마을버스로 환승한 뒤 우면동 아파트로 간다. 평소라면 사무실에서 집까지 40분 정도 소요된다.

 

인도 측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가서 보니 늘 타던 버스는 63분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이런! 이거 비상 상황이구나. 그래서 다시 강남대로 중앙에 있는 버스 정류소로 갔다. 강남역에서 양재역까지 가는 버스가 거긴 많으니 금방 타겠지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버스를 타긴 했다. 그런데 30분이 지났어도 버스는 정류장에서 100 미터 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야?

 

내 옆에 섰던 승객들은 일행이 셋이었는데 한 사람이 약간 술에 취했는지 부아를 부리기 시작했다. 왜 차가 안 가냐고? 그러자 덜 취한 옆의 사람이 앞 차가 안 가니 그렇지 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저 앞 차는 왜 안 가냐고요, 왜? 하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속으로 웃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도 덩달아 부아가 나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더 시간이 지나자 승객들이 일제히 차 좀 세워주세요, 기사 아저씨! 하고 목소리를 키웠다. 결국 기사 양반은 차로 복판에서 문을 열었고 승객의 2/3 정도가 내렸다. 나도 내렸다. 사람이 밀집된 공간에서 코로나도 무섭고 거기에 장시간 동안 서서 버틸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강남역 지하철역에 가서 신분당선을 타면 양재역으로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에 내렸다.

 

조심스럽게 걸었지만 구두 밑창에 눈이 박혀서 노면 접지력이 전혀 없어졌다. 강남역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데 겁이 벌컥 났다. 그곳의 계단은 모서리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 엎어지면 무릎을 크게 다칠 수 있다.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극도로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얼마 후 허리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그 전날 와이드 스쿼트와 런지라고 하는 아주 괴로운 운동을 바야흐로 시작한 터라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다 뭉쳐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작년 좌골신경통을 앓으면서 허리 단련을 위해 스쿼트와 런지를 시작한 것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 된 셈이었다.

 

 

어려웠던 판단의 갈림길

 

 

아무튼 분당선을 탄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 문제는 양재역에서 내리느냐 아니면 한 정거장 더 가서 AT 센터에서 내리느냐였다. 나름 열심히 판단을 했다.

 

양재역에 내릴 경우 마을버스마저 제대로 오지 않으면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거리는 대략 3.5 킬로미터. 하지만 마을버스를 탈 수 있다면 그게 훨씬 좋다. AT 센터에서 내리면 그냥 걷는 수밖에 없지만 거리는 1.5 킬로미터 정도, 하지만 통행이 드문 길을 가야 하기에 수북하게 눈 쌓인 길을 걸어야 할 것이고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기에 도중에 일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다. 내 나이 이제 예순 일곱, 체력이 예전만 못한 처지라 자신이 서질 않았다.

 

양재역에서 내렸다. 지하에서 무거운 걸음으로 올라가 마을버스 정류장에 가 보니 역시 차가 쉽게 오지 않았다. 양재역 사거리 저 편에 도곡동 방면에서 오는 언덕길이 문제였다. 멀리서 보니 후륜구동의 외제차들이 빌빌거리고 앞길을 막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시다시피 벤츠와 같은 독일차들은 후륜구동이 많다. 눈길 언덕을 만나면 거의 기동불능이다.)

 

 

본격적인 공포 스릴러의 시작

 

 

20분이 걸려 마을버스가 왔는데 그 안에 빼꼭히 들어찬 승객들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저걸 타고 한 시간 이상은 가야 할 것 같은데 저 안에 혹시라도 무증상 감염의 젊은이와 코를 맞대고 인연을 맺었다간 난 간다, 담배 피는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그야말로 저승행 아닌가!

 

포기하고 걷기로 했다. 양재역에서 교육개발원 입구-흔히 일동제약 4거리라고 부른다-까지 걷는데 도중에 나지막한 언덕길이 있다. 그곳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신발 밑창에 박힌 눈이 얼어서 신발 바닥의 요철이 사라진 터라 그냥 빙판길과 같았다.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넘어지면 그냥 넘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름의 落法(낙법)이었다. 버티다가 넘어지면 다친다.

 

교육개발원 입구 정류장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버스타길 포기했지만 그나마 좋은 것은 정류장의 벤치에 열선이 있어서 따듯하다는 점이었다. 벤치에 앉아 허리도 좀 펴고 다리도 떨어보고 하면서 몸을 풀었다. 다친 곳은 없는지 점검도 했다. 괜찮은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사무실에서 출발한 지 1시간 40분이 흘러 9시 40분이었다. 다시 걸으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생각을 했다. 어느 코스를 택하지?

 

버스길을 따라 걸어가면 도중에 언덕을 또 넘어야 한다. 그래서 큰 길에서 벗어나 양재천 변에 산책로가 있는 작은 길을 택했다. 가면서 보니 양재천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눈이 10 센티미터 이상 쌓인 길을 걷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구두 속으로 녹은 눈이 스며들어 양말이 온통 젖은 상태였기에 더욱 난감했다.

 

 

어려울 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생각을 바꿔서 동네 골목길로 들어갔다. 편의점 불빛이 보였던 것이다. 들어가서 따뜻한 홍삼 음료수를 하나 마시고 나니 몸이 다시 좀 풀렸다. 다시 양재천로로 나와서 걸었다. 도중에 차로가 경부고속도로 교량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길이 있었는데 승용차 4대가 제멋대로 뒹굴고 서 있었다. 접촉 사고였다. 그런데 차 주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차를 굴릴 수 없게 되자 버려두고 걸어간 모양이었다.

 

도중에 지나가는 차를 향해 태워달라고 여러 번 손을 흔들었지만 허사였고 그냥 천천히 걸었다. 다시 두 번 더 미끄러졌지만 落傷(낙상)은 없었다. 멀리 아파트의 불빛이 보였다. 체력도 완전 떨어진 터라 아주 천천히 뒤뚱거리면서 걸었다.

 

 

무사귀환,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에필로그 

 

 

집에 도착하니 11시 15분, 출발이 8시였으니 3시간 15분의 어드벤처였다. 재난영화 한 편 찍은 건지 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사귀환, 천만다행, 개고생.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셨다. 발목도 불편하고 등판이 좀 이상하다. 회복 훈련을 위해 천천히 스쿼트를 다시 했더니 허벅지에서 불이 났다. 아서라, 그냥 쉬자.

 

 

편하게 되자 너그러워지는 이해심과 아량

 

 

오후 들어 뉴스를 보니 버스타고 집에 가는데 12시간 걸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더 불행한 경우를 알게 되니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난 그래도 괜찮았네 하면서 싱글거리게 된다.

 

기온이 너무 차가워서 염화칼슘 약발이 듣지 않았다는 서울시의 해명인지 변명인지도 들었다. 이해한다, 차가 움직일 질 못하니 제설이 아예 어려웠을 거란 점도 납득한다. 어제 폭설은 일종의 자연재해로 치부한다. 기상청의 예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늘 그랬던 것이니 이해하기로 한다. 몸이 편하니 마구 너그러워진다.

옛 기억이 되살아나서 

 

 

늦은 밤 창밖의 차갑게 얼어붙은 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오래 전의 기억 한 토막이 다시 떠올랐다. 늦은 봄 저녁 무렵, 바깥엔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방안은 더욱 고요해졌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어느 순간 깊은 상념에 들었다. 그러다가 빗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늦은 밤 시각이었다. 봄날이었지만 기온이 내려 약간 추웠던 몸의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게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아니면 더 이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저녁에 했던 생각들 중에 하나가 또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의 國運(국운)과 관련된 생각이었다.

 

 

丙(병)자가 머리에 오는 해마다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丙(병)이란 글자가 머리에 오는 해를 보면 나라의 활력을 확인하고 점검해볼 수 있다는 생각, 이에 오늘 다시 그 생각을 이어가 본다. 같은 생각을 시간 간격을 두고 또 다시 해보고 또 해보면서 생각을 다듬어가다 보면 훨씬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과거 흐름을 살펴보자. 10년 단위로 보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1966년 丙午(병오)년, 빈곤 국가에서 수출입국을 향한 몸부림이 있었으니 당시의 구로수출공단이 그것이다. 저렴한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가발에서 섬유 등 경공업 위주의 수출 기업들이 주로 활약했다.

 

1976년 丙辰(병진)년,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었다. 당시 재벌 기업들에게 대출 재원을 집중시켰고 산업은행이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에 대출이란 수출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만 주어지는 그 자체로서 특혜였다.

 

1986년 丙寅(병인)년,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이었다. 처음으로 무역 흑자가 달성되었고 이에 국내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증시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세가 오르기 시작했으니 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불패신화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부터 처음으로 우리 국민들도 밝은 내일을 전망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인 1987년 민주화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1996년 丙子(병자)년, 그간의 성과로 인해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달성되었고 그로서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풍조, 투자만 하면 성공한다는 분위기는 곧바로 다음 해인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2006년 丙戌(병술)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했다. 그 해 우리의 수출산업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전기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등 모든 면에서 일제히 약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이 심해지면서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되는 문제도 생겨났다.

 

2016년 丙申(병신)년에 이르러 급기야 우리 경제와 산업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강경하고도 완고한 기득권 노조로 인해 생산성은 떨어지고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었으니 이로서 양극화는 고착화되고 말았다. 아울러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고 그나마 일부 대기업들만 맹렬한 연구와 투자를 통해 약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우리 경제의 탄력은 사실상 고갈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증시는 2011년부터 2016년 말까지 장기 박스 장세를 연출했으니 실은 그게 한계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이니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본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대거 재정투입을 단행하기 시작했으니 그로서 국가 채무가 마구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 채무의 증가란 간단히 말해서 미래로부터 돈을 가불해 쓰는 방식이라 보면 된다.) 그 바람에 증시와 부동산이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 글로벌이 돈을 마구 찍어내었고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 역시 덩달아 재정투입과 금리인하 그리고 소규모이긴 해도 일종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이고 동시에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고 그로서 필요한 물자를 수입해 사용하는 철저한 교역 중심의 국가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수출입국을 지향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한미FTA를 결정지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적이 실로 크고 위대하다 하겠다.

 

 

2026 `병오년이 되면 어떨까? 

 

 

그런데 이제 다시 2026변 丙午(병오)년이 되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60년 전인 1966년엔 너무나도 자원이 없고 기술이 없어서 시골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수거해온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을 했던 나라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60년 사이에 크게 한 단계 도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기술도 있고 자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곤경에 처하는 것을 모면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무엇보다 전 글로벌이 그간에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경제가 정상화될 경우 금리를 올려 흡수할 것이기에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가자니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압력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양육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출산을 기피하는 심리와 더불어 양극화로 인해 젊은 층의 소득기반이 크게 위축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산업의 근본 경쟁력은 반도체 산업이고 여기에 신재생 에너지와 2차 전지 그리고 전기차 방면에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의 경우 아직 표준규격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향후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근본적인 실패야 없겠으나 도중에 상당한 진통이 수반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조선업의 경우 대표적인 경기산업이란 점에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 좌우된다.

 

향후 글로벌 경제는 상당 기간의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처리되어야 했던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고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 큰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2026년부터는 진짜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니  

 

 

따라서 2026 丙午(병오)년이 되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이긴 해도 여전히 우리 경제의 앞길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마도 과거 우리가 중화학 공업으로의 일대 전환을 도모했던 1976년 丙辰(병진)년으로부터 60년이 흐른 2036년 또 한 번의 丙辰(병진)년이 되면 경제 전반에 있어 거대한 변혁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에 앞서 2026년부터 2036년 사이의 10년 동안 경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면에서 수많은 구조조정과 변혁이 잇따르지 않을까 싶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국민연금이라든가 여타 연금들에 대한 개혁, 기득권 노조의 개혁 등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기득권 노조에 대한 개혁 없이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득권 노조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현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각종 개혁 아젠다들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낡은 틀에 얽매어 있는 현 정치권의 진영 구도 역시 대변혁이 수반되지 않겠는가 싶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이라는 하는 엄청난 우발부채를 안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증폭될 수 있는 과제가 북한 문제이다. 핵으로 중무장한 북한이기에 더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숙제가 되어 버렸다.

 

현제로선 별다른 방안이 없긴 하나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특히 중국 경제가 버블이 터지면서 좌초될 경우 기회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 경제의 붕괴 또는 침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되겠지만 말이다.

 

목하 “K형 성장”시대라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만이 아니라 기업들 또한 철저하게 양극화되고 있다. 같은 기업 내에서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의 경우 희망퇴직이 상례화되고 있다. 고용 시장 전반에 걸쳐 한파가 닥쳐오고 있다.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인해 아파트와 증시만 오르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이제 마치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이에 영끌과 빚투가 당연시되는 오늘이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때 역시 올 것이니

 

 

우리 금융시장에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2년 8월부터였다. 그러니 2022년이 되면 반대의 흐름, 즉 빠져나가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그러면 환율이 오를 것이고 금리도 불가피하게 올려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시대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증시와 부동산 역시 아래쪽으로 물꼬를 틀 가능성이 크다. 자칫 영끌과 빚투로 사들인 자산들의 하락이 있을 경우 문제는 일파만파로 커져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증시 상승과 부동산 앙등은 롤러코스터가 내리기 직전의 상황처럼 최고점으로 끌어올려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야말로 우리 앞에는 지금으로선 전혀 감도 잡히지 않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늦은 밤 시각까지 멍 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의 어느 봄날 바람 불고 비 내리던 날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하기야 쉬운 일이겠는가!

 

 

힘찬 선어처럼 뛰어오르는 증시

 

 

이 글은 며칠 전에 썼다. 오늘 증시는 또 다시 3000을 넘어서면서 펄펄 날뛰고 있다. 마치 폭풍 치는 회록색의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힘차게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우리 증시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말, 코리언 디스카운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 그야말로 풍성한 말잔치이고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그래서 웃긴다, 그냥 비정상적인 과열 장세가 이어지고 있을 뿐인데. 곧 조정이 올 것이고 그랬다가 또 다시 올라도 심하게 오를 것이다. 비정상인 까닭이고 훗날 내려도 너무 심하게 내릴 것이다. 일단 돈을 좀 벌고 볼 일이다.

 

(알림: 자연순환운명학 기초반 강좌를 공고했더니 혹시 거리두기가 연장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문의가 제법 있다. 일정을 연기하거나 그게 정 어려우면 일단 수강료를 반환한 뒤 다시 일정을 잡게 된다는 점 알려드린다.)

눈이 내리는 골목풍경, 혹시나 모처럼의 낭만? 천만의 말씀, 나 호호당은 오늘 저 세상 가시는 줄 알았다. 친한 후배와 작업실 맞은 편 골목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은 뒤 8시 쯤에 헤어졌다. 강남역으로 걸어가면서 당연히 버스는 잘 다닐 줄 았았더니 웬걸. 버스를 타긴 탔다. 하지만 100 미터 가는데 30분 소요, 짜증이 난 승객들이 정차해달라고 아우성, 길 복판에서 그냥 내렸다. 강남역 4거리를 통과하지도 못한 상태, 덩달아 나도 하차해서 강남역 지하로 가서 분당선을 탔다. 양재역에 내리면 평소 마을 버스가 자주 다니는 탓에 무사히 귀가할 줄 았았는데 완전 오산, 버스를 20분 기다렸더니 오긴 왔는데 초밀집 상태, 그 안에 비집고 타서 1시간 이상 버틸자신이 없었다. 코로나도 무섭고. 그래서 걸었다. 그 때가 9시 10분, 집에 도착하니 11시 10분. 3킬로미터 거리를 3시간 걸렸다. 도중에 3번 미끄러졌다. 일부러 힘을 주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지려고 신경을 썼다. 버티다가 넘어지면 다치니까. 약간 공포가 밀려왔지만 평정을 유지하고자 애를 썼다. 20센티 이상 쌓인 눈길을 걷는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공교롭게도 어제 런지란 것을 해서 허벅지 힘이 빠지고 알이 박힌 상태였기에 허리에 부담이 왕창 왔다.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퇴근 시간에 눈발이 날린다더니 폭설. 이 사진 나중에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다. 독자들은 무사 귀가하셨는지, 부디 그랬기를...

운명의 법칙을 규명한 결과 정립된 자연순환운명학

 

 

운명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궁금해 합니다. 과학의 시대에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 하는 분도 많지만 사실 그런 생각 자체가 비과학적 생각입니다.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호호당은 감히 말씀드리지만 운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거기에 작용하는 법칙을 규명해낸 결과 전적으로 새로운 과학적 이론으로 종합하고 정립했으며 이에 2014년에 새로운 과학이 등장했다고 선포한 바 있습니다.

 

근 10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구글과 위키피디아를 통해 검색하고 검증했기에 이에 운명에 작용하는 일반적 법칙을 규명하고 정리했습니다.

 

그렇기에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애매모호한 가설들이 아닙니다. 배우실 경우 첫 시간에 바로 운명의 순환 법칙에 대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삶의 모든 단계마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니.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로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어떤 이는 절정의 시절을 보내고 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 한 때라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운이란 계절과 같습니다. 다만 한 계절이 15년씩, 이런 식으로 60년에 걸쳐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순환운명학은 단순히 사람의 운세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생의 각 계절마다 그 계절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이 강좌를 듣는 과정에서 절로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자연순환운명학 기초이론 강좌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12회에 걸쳐 이어지는 기초과정의 회별 주요 강의 내용

 

 

제 1회. Introduction,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적인 원리와 이론

 

제 2회. 생년월일시에 의거하여 사주를 추출하는 기본 방법과 陰陽五行(음양오행)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

 

제 3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1

 

제 4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2

 

제 5회. 60년 순환의 기산점 즉 立春(입춘)점을 파악하는 방법

 

제 6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1

 

제 7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2

 

제 8회. 운명에 작용하는 어길 수 없는 因果(인과)의 법칙

 

제 9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1

 

제10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2

 

제11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1

 

제12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2

 

 

 

 

 

 

강좌 개요

 

 

 

강좌 개최

 

-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까지.

 

강좌 기간

 

- 매주 토요일 1회, 총 12번의 강좌

 

강좌 시간

 

- 3 시간 30 분이고 중간에 간식 시간을 가집니다.

 

수강료

 

- 12회분 66 만원 (분납도 가능합니다.)

 

강의 장소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4길 40 신소애빌딩 7층

-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번 출구로 나온 다음 첫번째 골목에서 우회전 후 300 미터.  

 

 

신청 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 Tel. 02-534-7250로 오후 3시부터 5시까진 언제나 자리에 있기에 전화주셔도 됩니다.

 

수강 규모

 

- 선착순 20명 마감.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으며 더러 한자를 몰라서 망설인다는 분들의 문의가 있는데 아무런 애로가 없다는 점 알려 드립니다.

 

강의장은 환기가 잘 되는 곳입니다. 

좋은 소식부터 

 

 

증시와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

 

기왕지사 좋은 얘기부터 해본다. 올 해 증시는 많이 오를 것이다. 올라도 아주 많이 오를 것이다. 주식 투자하시는 분들은 작년보다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증시가 될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유동성으로 인해 증시는 올라도 지나치게 오를 것이니 

 

 

지금의 증시는 유동성이 많아서 오르는 증시, 즉 유동성 장세이다. 유동성이 좀 많은 것이 아니라 지나치리만큼 많다. 그러니 지나치게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 증시는 여러 면에서 미국 증시를 따라간다. 당연한 일이다. 예로서 2차 전지 주식의 상승은 미국 테슬라의 움직임, 아울러 애플의 동향에 달려있다. 테슬라가 잘 가면 국내 2차 전지 주식들도 잘 간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동향은 문자 그대로 글로벌 경제동향이라 봐도 무방하기에 미국 증시에 연동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동성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행 역시 미국 연준(Fed)의 움직임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 움직인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덩달아 내리고 미국이 올리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올린다.

 

지금 증시는 유동성 증시라고 했는데, 미국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주체는 미국 연준이다. 이는 마치 글로벌 경제에 물을 대는 저수지와 같다. 그런데 작년 초부터 미국 연준은 水門(수문)을 다 열어젖혀서 물을 무제한 방류했고 지금도 여전히 방류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작년 M2가 무려 26%나 늘어났으니 사고를 친 꼴 

 

 

그 바람에 미국 시중의 유동성은 엄청나게 폭증했다. 넓은 의미에서의 통화량을 의미하는 M2가 미국의 경우 작년 2020년에 무려 25.98%가 증가했다. (연간 10%만 되도 비정상이라 하는데 말이다.) 아직 집계되진 않았지만 작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대략 마이너스 3.6%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무려 30% 정도 돈을 더 늘린 것과 같다.

 

사실 이게 좋은 일은 전혀 아니다. 재화 생산은 조금 줄었는데 돈은 왕창 늘렸으니 수중의 현금가치가 30% 정도 사라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 직장인들의 급여가 30% 정도 삭감된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에 10% 정도 M2가 늘어났다. 수중의 현금이 10% 정도 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급여 생활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자영업자들은 완전 사망했다.)

 

시중 유동성을 늘리면 자산 가치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1억하던 물건의 가치가 미국의 경우 1억 3천만원은 되어야만 사실상 본전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부동산과 주식이 많이 오르고 있다. 실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올라야만 본전인 것이다.

 

이런 이치는 우리도 마찬가지, 그런 까닭에 부동산이 펄펄 오르고 주식도 폭등하고 있다. 올 해 증시가 많이 오를 것이라 했는데 실은 올라야만 그런대로 제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증시가 활황이다 보니 수수료를 챙기는 증권회사들은 신바람이 났다. 소위 증권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대박이 났다. 수익이 마구 늘어나고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요즘 증권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을 보라,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다. 메뚜기 한 철.

 

 

3700까지도 갈 것 같아서 

 

 

나 호호당의 추산으론 우리 증시에서 코스피 시장은 시점이야 모르겠으나 3700 포인트 정도는 갈 것 같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1000 포인트는 더 오를 것이란 얘기이다.

 

문제는 도중에 당연히 하락 조정도 그 폭이 만만치 않게 클 것이란 점이다. 오른다고 해서 일직선으로 오르는 법은 없고 엄청 겁을 줘서 감히 함부로 주식을 사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뒤 어느 순간 순식간에 올라가버리기에 주식은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들 주식에서 성공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돈 많이 버시길.

 

 

나쁜 소식 차례

 

 

이것으로서 좋은 소식은 마무리하고 다음엔 나쁜 소식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이제 우리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는 사실상 외통수에 걸려들었고 증시는 더더욱 그렇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으나 對價(대가)를 무진장 호되게 비싸게 치르게 생겼으니 이런 말을 한다.

 

 

증시가 이젠 비정상적으로 변질해버렸기에 

 

 

연휴 기간 중에 증권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어느 전문가가 한다는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금년도 투자자들이 무척이나 경계해야 소식이 있다면서 하는 말이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회복된다는 소식, 달러가 강세로 간다는 소식,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 이런 말이 들려오면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경기가 빨리 회복되어 경제가 정상화되거나 인플레이션이 강해지거나 달러가 강세로 가면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결국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당연히 증시가 하락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이가 없다, 경제가 정상화되면 주식은 망한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예전의 증시는 그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거나 기업들이 실적을 낼 때 상승했는데 이젠 경제가 호실적은 고사하고 정상화만 되어도 증시가 내리게 생겼으니 이건 무슨 상황인가?

 

결국 지금의 증시는 이미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얘기이다.

 

시중에 돈을 엄청나게 풀어 놓았다. 그런데 경제가 정상화되고 회복될 경우 엄청나게 풀린 돈은 곧바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면 급격하게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고 고금리인 즉 증시엔 쥐약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증시는 경제가 정상회복될 거란 소식이 들리는 날부터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이게 비정상이지 정상이겠는가!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은 바로 양적완화였으니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큰 눈에서 보면 이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은 미국 연준이 저지른 짓 때문이다. 2008년 여름 미국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연준의 버냉키 의장은 돈을 직접 찍어서 시중에 공급하는 소위 양적완화란 것을 단행했다. 이게 바로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이었다.

 

당시의 금융위기 역시 힘들어도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은행들의 막대한 부실채권은 정부가 배드 뱅크(Bad Bank)를 만들어서 처리하고 또 시중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경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떨어낼 것은 떨어내도록 했어야 했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이 덕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처리했어야만 어렵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아파야 할 것을 아프지 않게 한다고 연준의 버냉키는 일종의 마약성 치료제인 스테로이드 처방을 내린 셈이었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무려 세 차례나 양적완화를 하고도 여전히 문제가 풀리지 않자 시즌2란 명목으로 3.5차 양적완화까지 했다.

 

그렇게 처리하자 글로벌 경제공황은 오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렇다고 경제가 활발하게 살아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비실비실한 글로벌 경제가 2008년 이후 2020년 초까지 이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가 발발했다.

 

 

마약성 스테로이드를  이젠 무제한 투여하고 있으니 

 

 

그러자 연준의 파월 의장은 이번에 무제한 양적완화란 것을 단행했다. 종전의 나름 절제된 스테로이드 투여가 아니라 무한정 투여했던 것이다. 부작용 같은 것은 나중 문제라 하면서 말이다. 이에 유럽도 일본도 얼씨구 하면서 따라했고 한국은행도 슬그머니 따라서 움직였다. 그 바람에 작년 초반 선진경제국들은 무려 17조 달러에 달하는 ‘가짜 돈’을 시중에 공급했다.

 

일종의 마역성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를 장기 투여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젠 아예 대놓고 무한정 썼다. 그 바람에 글로벌 경제엔 돈 즉 유동성이 일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 홍수가 자산시장인 부동산과 증시로 밀어닥쳐서 거대한 상승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상승인 것이다.

 

총량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양적완화를 했어도 결국 경제가 견뎌내고 감내해야 할 고통의 총량은 변하지 않을 거란 얘기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경제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데 이번에 또 다시 그리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했기에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본다.

 

 

멀지 않아 호된 대가를 치르게 생겼으니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제한 양적완화로 인한 비용은 치르게 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08년 11월부터 양적완화란 것이 단행되었으니 60년 순환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그 1/4인 15년이 경과한 2023년 11월부터 무지막지한 청구서가 날아들지 않을까 하는 추산이다.

 

그렇기에 때가 되면 증시도 엄청난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앞에서 3700 포인트를 얘기했는데 하락할 경우 1000 포인트 이하까지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이번에 주식시장에 뛰어든 대부분의 개미들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도 있겠다. 한 번 재미를 보고 나면 아니다 싶어도 쉬이 떠날 수도 없기에 그렇다. 그게 증시의 魔力(마력)이니.

 

증시 하락 역시 시중의 유동성을 빨아들여 없애는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란 얘기이다.

 

좋은 소식, 나쁜 소식 다 말씀드렸다. 이 글을 접하는 독자님들만큼은 그저 무사하시도록.

 

제자님들에게 알리는 사항: 나 호호당은 작년 5월에 이사를 했는데 추석 때 저번 살던 주소로 선물을 보내신 제자님들이 적지 않았다. 대다수 물건이 반송되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에 새 주소를 알려드린다. 서울 서초구 태봉로2길 60, 309동 1104호(우면동 서초 네이처힐 아파트)

자정 넘기니 새 해라, 거 참 신기한 일일세! 

 

 

현재 시각 00시 34분. 표준시와 서울 지역의 진태양시는 32분 05초 차이가 있으니 이제 2021년으로 넘어온 지 1분 55초가 지났다. 그래, 새 해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새 해엔 또 무슨 험한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겁부터 난다.

 

앞의 문장은 오늘 31일에서 1일로 막 넘어온 시각에 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밤 11시 55분, 2021년의 하루가 거의 지난 셈이다.

 

살아보면 알게 되겠지만 나이가 들면 한 해 가는 것이 그리 길지 않다. 시간의 진행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올 해로서 나 호호당은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이 된다. 세월이 이처럼 잘도 가니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도 후다닥 지나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삶이란 탄생으로 열고 죽음으로 닫는 괄호와도 같아서

 

 

삶이란 일종의 括弧(괄호)속에 갇혀있다. 탄생으로 괄호를 열고 죽음으로 괄호를 닫는 그 사이의 공간 또는 시간이 삶이란 생각이다. 그 공간과 시간이 처음에는 마치 무한할 것 같다는 착각을 하지만 살다 보면 서서히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유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호호당 역시 괄호를 닫는 시점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무진장 괄호 속에 머물고 싶지도 않다. 그게 만일 가능하다면 그 영원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지루할 것 같아서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설령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그건 바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속의 톰 크루즈 신세 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삶이란 이럴 수도 또 저럴 수도 없는 버거운 무엇이란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늘 그렇진 않다는 얘기이다. 그 바람에 가끔 혹시라도 죽고 나면 전혀 다른 세계 또는 우리들이 흔히 靈界(영계)라고 말하는 세상과 공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어린 공상도 해보게 된다.

 

괄호의 앞과 뒤는 無(무)가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슬과도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혹은 기대. 불교나 힌두교의 윤회라든가 아니면 삼십삼천의 세계 말이다. 欲界(욕계)가 아니라 色界(색계) 내지 無色界(무색계)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살아선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죽어봐야 알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당장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새 해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삶을 몇 년 살았느냐를 기준으로 하기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다보니 앞서와 같이 거의 넋두리와도 같은 얘기를 하게 된다. 새 해 벽두답게 몽롱한 탓이라 해두자.

 

이제 정신을 차려본다.

 

 

2021년의 새로운 계획과 포부

 

 

살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운명의 이치와 법칙에 대해선 나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 끝내 알아내고야 말았다. 나 호호당은 천성적으로 호기심을 삶의 동력으로 하는 사람인데 깊은 경지에까지 알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운명에 대한 호기심이 이젠 많이 옅어진 것이다. 알아내는 과정에서 갖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누차 먹다 보면 그저 그렇듯이 운명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

 

그래서 올 해부턴 마침내 그간에 알아내고 파악한 운명의 이치와 법칙, 이른바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에 대해 그 세부 내역까지 글로 정리해볼 생각을 먹었다. 원론부터 먼저 쓰고 다음엔 각론,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집으로 이어지는 집필이 될 것 같다. 전체를 책으로 엮어내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 같은데 일단 내년에 원론부터 먼저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그 작업을 마치고 나면 평생 또 다른 방면에서 연구해온 언어의 기원과 생성 원리에 대한 것을 책으로 정리해볼 생각, 그리고 한일고대사에 숨겨진 내용들을 책으로 정리해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에 추산해보면 향후 10년의 작업 분량은 족히 될 것도 같으니 그러면 70대 후반이 될 것이고 그 다음엔 숨만 조심스럽게 잘 쉬다가 가면 되리라.

 

 

증시, 지나치게 오를 것이고 지나치게 화를 부를 것이니

 

 

증시가 엄청난 유동성으로 인해 잘도 오르고 있다. 이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탓이니 참으로 아이러니, 逆說(역설)이다.

 

올 해 증시 역시 작년보다야 덜 하겠으나 그 역시 드라마틱할 것으로 본다. 도중에 만만치 않은 조정도 있겠지만 결국 상상 외로 많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본다.

 

그런데 많이 오르면 실은 그게 바로 문제의 발단이 될 것이다. 올 해 말이나 내년, 그 시점을 알긴 어렵지만 경제가 정상 회복되는 그 순간부터 증시는 그야말로 엄청난 하락을 시작할 것이니 그렇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롤러코스터, 잘 아실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보면 처음엔 트랙의 최고점까지 차체가 끌어올려진다. 위치에너지를 최대한 얻기 위함이고 그로서 내리기 시작하면 그게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바뀐다. 미국 증시도 그렇겠지만 우리 증시야말로 최고의 롤러코스터가 되리라 예상한다. 결국엔 수많은 그리고 막대한 액수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막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부동산 역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증시에 대해선 곧 별도의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겠지만 여기에서 간단히 얘기해보면 우리 증시는 2000 포인트 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 그 선이 우리 경제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수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 선을 다시 넘어서 3000에 접근하고 있으니 이는 지극히 무리한 경제운영, 즉 돈의 공급을 늘려서 만들어내고 있는 억지 상승인 까닭이다.

 

억지는 결국 禍(화)를 초래한다. 2000선에서 머물렀다가 하락했다면 연착륙이 가능했겠으나 그 이상 선을 넘어서 한참을 올랐다가 내릴 경우 그건 경착륙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

 

 

새롭고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2020년은 최악의 해였지만 산업 방면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한 해이기도 했다. 2차 전지와 친환경 에너지 산업으로 전 글로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석유 수요는 2019년으로서 정점을 찍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특히 2차 전지는 향후 3-4년 동안 ‘표준’규격을 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일단은 테슬라이고 다음으론 2024년에 나올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가 표준을 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테슬라도 애플도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2차 전지 산업은 요동을 치고 부침을 거듭해 갈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가 올 해 선을 보일 전기차 플랫폼의 첫 제품인 아이오닉5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느냐 또한 우리 경제의 명운을 가름할 엄청난 승부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 역시 사생결단의 각오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함은 물론이고 적은 이윤의 마진을 놓고 싸움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친환경 에너지의 경우 덩치가 작은 미국의 ‘넥스트에라 에너지(NEE)’사가 석유업계의 거인인 엑손모빌의 시가 총액을 넘어서고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사가 이젠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장차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를 확대해 종합 에너지회사로 변신해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반도체의 상징적 존재이던 ‘인텔’이 금년 중에 생산 부문에서 손을 뗄 것인가를 놓고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텔의 경우 1968년에 설립되었으니 戊申(무신)년인데 세상 만물은 60년의 순환 속에서 48년이 흐르면 정체기에 들기 마련이다. 이에 2016 丙申(병신)년부터 인텔은 깊은 정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의 상층 엘리트들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인텔마저 생산을 놓게 되면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와 TSMC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대만은 중국과 가까운 사실상의 최전선 변경 지역에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장기 전략 측면에서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미국은 TSMC가 생산거점을 대거 미국 안으로 옮겨주길 기대하고 또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삼성이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1위를 목표로 설정하고 새롭게 투자에 나선 것은 그야말로 승부수라 하겠다. 뭐니 해도 우리 대한민국을 끌어가고 있는 반도체, 대한민국은 반도체 수출로서 먹고 사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나 호호당이 특별히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시작한 것이 1983년이었기에 48년이 흐른 2031 辛亥(신해)년에 가서 맞이할 정체기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작년부터 산업 기술 방면에서 실로 많은 것들이 커다랗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과 낡은 과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어서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초부터 시작된 양극화가 이제 20년을 넘어가면서 이젠 극심한 경지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것으로서 2021년 새 해 첫 글을 연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 역시 좋은 한 해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저 부디 독자들의 가정이 無事(무사)하고 무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눈내린 벌판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아직은 조금 어둑하다. 오랜만에 그림을 올린다. 원하는 종이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화방에서 비싸게 블럭 종이를 샀다. 롤 페이퍼를 사서 재단하면 가격이 화방의 블럭 종이보다 가격이 1/3 수준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종이가 팔리지 않아 수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어쩔 수 없이 종이를 비싸게 사야 했다. 참 오랜만에 그리다 보니 약간 어색하다. 스킬이란 게 며칠 만 쓰지 않아도 그렇다. 즐겨주시길...

옛 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

 

 

登高自卑(등고자비)란 말이 있다. 유교 경전인 中庸(중용)의 말로서 먼 곳에 이르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서 왔다. 譬如行遠必自邇(비여행원필자이),譬如登高必自卑(비여등고필자비).

 

때론 등고자비란 표현을 달리 해석해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處世(처세)의 말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의 글은 또 다른 뜻의 말로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일부러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當爲(당위)의 말로서가 아니라 절로 자신의 왜소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긴 인생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냥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러함을 이해하고 체득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높은 산에 오르면 모든 것이 다 거기에서 거기라서

 

 

높은 산에 오르면 시야가 완전히 달라진다. 낮은 땅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더 높아지고 땅이 더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너 편 산은 물론이고 더 멀리 더 많은 산들의 능선과 봉우리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은 일목요연하다. 낮은 곳에선 커다랗던 숲도 큰 땅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눈앞을 흘러가던 강도 그 길이가 훨씬 더 크고 길게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을을 내려다 볼 것 같으면 2층 건물이나 10층 건물이나 다 그만그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우리가 평소 지내는 낮은 땅에선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높은 곳에서 보면 그 차이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을. 줄여 말하면 땅 아래의 모든 사물이 높은 산과 거대한 산, 장대한 하늘에 비하면 그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물의 一齊(일제)함

 

 

사물의 一齊(일제)함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이 이 크고 넓은 세상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사실까지 알게 된다. 즉 自卑(자비)함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 지위가 높다 해도 돈이 많다 해도 얼굴이 잘 생겼다 해도 그게 다른 이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낄 순 있다 해도 세상의 거대함과 유구함에 비하면 그 차이란 것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물들까지 포함해서 다 미미하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달리 얻는 게 있다. 그건 만물이 모두 微微(미미)하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각자는 어떤 통쾌함과 호쾌한 마음을 얻게 된다.

 

그간 좀 잘 살아보고자 또는 좀 더 앞서가고자 아등바등 애를 쓰고 기를 썼던 것이 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애를 써도 계속 뒤쳐진다 싶어서 가졌던 열등감이나 自塊(자괴)의 심정 또한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 주변의 누군가가 내 눈에 참으로 한심하고 ‘찌질’해서 무시하던 마음 또한 실은 나의 찌질함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한심하다고 여겼던 주변의 그 사람이나 좀 잘 났다고 우쭐대는 당신이나 모두 이 세상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을 알고 나면 그로서 시원해지고 통쾌해지며 이윽고 어떤 자유를 얻게 된다. 편해진다.

 

 

장자의 소요유 그리고 제물론

 

 

어쩌다 한 번 태어나 살아보고 살아가는 인생, 주어진 시간 동안 재미나게 놀다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으면 그건 다름 아니라 莊子(장자)가 글을 통해 남기고 이름을 붙인 逍遙遊(소요유)편의 내용이고 만물이 실은 一齊(일제)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보았다면 그건 장자 齊物論(제물론)의 경지이다.

 

높은 산에 올라 땅을 내려다보고 눈을 수평으로 두어 멀리까지 바라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를 것 같으면 모든 사물을 포함해서 자기 자신의 卑賤(비천)함을 알게 될 것이고 세상과 천지의 장대함과 유구함을 보게 되니 마음이 호쾌해지고 시원해져서 걸침이 없게 된다. 크다 해도 그만이고 작다 해도 그만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든 사물이 일제하다. 그러니 통쾌하고 시원하다.

 

 

절로 낮아지는 자기 자신

 

 

높은 곳에 오르면 억지로 자신을 낮출 것이 아니라 절로 낮아진다. 높은 지위에 올라 겸손을 떨면서 그 지위를 보전하려고 애를 쓸 일이 아니라 절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잘 난 내가 없으니 굳이 겸손을 떨고 그다지 사양할 나도 없다. 잠시 어쩌다가 그 지위에 있게 되었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객관과 주관

 

 

사물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게 비로소 客官(객관)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관의 마음도 없지 않다, 각자는 작은 小宇宙(소우주)란 말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으니 나야말로 귀한 존재란 생각이 있는데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에 만물이 미미하고 평등하며 일제하다는 객관의 생각과 나야말로 더 없이 소중하다는 주관의 생각은 그렇다면 충돌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충돌할 것도 같지만 전혀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각자가 소중한 만큼이나 타자도 소중하다고 알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알면 된다. 크게 눈을 뜨고 보면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엄청난 투쟁을 하고 있다. 살기 위해선 다른 생명을 잡아먹기도 하고 잡아먹히기도 한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애처로워서 

 

 

그렇기에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슬픔으로 가득하다. 삶은 苦海(고해) 즉 고통의 바다인 것이 맞다. 이에 그 고통과 슬픔을 직시하면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 그를 慈悲(자비)의 마음이라 한다. 慈悲心(자비심)이 그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마음이다.

 

이런 자비의 눈은 객관의 눈이자 주관의 눈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비의 눈은 바깥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다른 존재들과 생명들도 애처롭지만 우리 모두 스스로도 애처롭다. 우리 모두 살아보려고 그 얼마나 애를 쓰고 참고 견디고 있는가.

 

이 또한 높은 곳에 오르면 보게 되고 알게 된다. 너른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세 가지 시선과 생각이 하나로 

 

 

객관의 눈에서 만물이 다 거기에서 거기란 사실, 일제하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면 속이 통쾌하고 시원해진다. 豪爽(호상)해지니 莊子(장자)가 일러준 가르침이다. 각자가 하나의 소우주란 점은 동서양의 공통된 지혜로서 주관의 눈이다. 또 하나 만물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애처롭고 측은하니 자비의 눈이고 사랑의 마음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세 가지 생각과 마음이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높은 곳이라 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드라마에 ‘펜트하우스’란 것이 있다. 100층 고층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서 지상을 오만한 자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자들과 그런 위치에 가고자 발악하는 그야말로 세속의 드라마이다. 아직 진짜 높은 곳에 올라보지 않은 탓에 펼치게 되는 찌질한 자들의 애처로운 얘기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자들의 성장 드라마라 해도 좋겠다. 아무튼 ‘스카이 캐슬’에 이어 시청률 좀 나오게 생겼다.

 

자아에 빠져 헤매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리니

 

사람은 태어나서 몇 년이 지나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自我(자아)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증명, 세상에 있어야 할 근거와 타당성을 찾느라 애를 쓴다. 그게 좀 부족하다 싶으면 열등감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좀 잘 된다 싶으면 자만감에 우쭐댄다. 그렇게 열등감과 자만감 사이를 오가면서 수십년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 문득 알게 된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그건 인생이란 높은 산에 올랐기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운과 명을 넘어서서  

 

 

운명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나 호호당의 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 1971년이니 이제 근 50년에 이르고 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제 운명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제법 알만큼 알게 되었다.

 

이에 사람이란 운명의 곡선 위에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원운동은 돌아오는 것이니 운 또한 돌아오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2020년도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글로서 송년 인사를 갈음한다.

헌 해는 죽고 새 해는 잉태되고

 

 

엊저녁 7시 2분에 해가 冬至(동지)점을 지났다. 나날이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던 깊은 海底(해저)에 도달한 것이고 그로서 다시 되돌아 浮上(부상)하기 시작했다.

 

동지로서 낡은 해는 죽었고 그를 이어 새롭게 孕胎(잉태)된 새 해는 아직 저 아래 깊고 깊은 바다 속에 있다. 그러니 오늘 동지부터 내년 3월 22일의 春分(춘분)까지 석 달 동안은 中有(중유)의 기간이다.

 

 

애매한 존재의 시간 

 

 

中有(중유)란 무엇인가?

 

고대 힌두 철학에 기원을 둔 불교에서 일컫는 개념이다.

 

불교 철학에 의하면 사유(四有)가 잇다. 여기에서 有(유)란 존재를 의미하는 바, 존재의 방식에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가 그것이다.

 

생유(生有)는 태어남의 순간이고 본유(本有)는 태어난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이며, 사유(死有)는 죽는 순간이고 중유(中有)는 죽는 순간부터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죽는 순간부터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시간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생명이 떠났으니 有(유)가 아니라 無(무)라고 해야 할 터인데 말이다. 그런데 불교 철학에선 그 기간을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이 기간을 中有(중유)라고 일컫고 있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이 기간 동안 망자의 영혼이 떠돌아다닐 터인데 혹시라도 처음 겪는 생소한 환경에서 길을 잘못 들지 말라고 현세에서 기원해주고 지원해주는 의식이 바로 49재이다. 7일마다 일곱 번에 걸쳐 재를 올린다, 망자의 영혼이 저승의 迷路(미로)에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혹은 무서워서 방황하지 않도록 현세에서 기원해주어야만 다시 좋은 곳에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제 해 또한 중유의 시간 속에 들었으니 

 

 

돌아와서 얘기이다. 동지부터 내년 입춘까지 해는 中有(중유)의 기간을 보낸다. 해가 오늘 동지로서 死有(사유)에 들었으니 내년 3월 22일 春分(춘분)까지 해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기간으로 들어섰다.

 

동지와 내년 춘분의 중앙에 立春(입춘)이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새해라 해서 ‘입춘대길“이라든가 ’건양다경‘이란 문구를 써서 집의 대문이나 방문에 붙이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게 되었지만.

 

이처럼 입춘이 되어 진정 새 해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아직은 새 해가 시작된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New Year는 3월22일의 춘분이 되어야만 동쪽 바다 멀리 수평선 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춘분부터 밤보다 낮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엔 復活節(부활절)이 있는 데 그 날자는 3월 22일부터 4월 26일 사이에 든다. 왜 오락가락할까? 하면 옛날엔 달력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랬다. 그렇긴 해도 그 정확한 의미는 바로 3월 22일 즉 춘분을 의미하고 있으니 해다운 해, 즉 활기찬 새 해가 부활한 것이다.

 

 

해는 1월1일 새벽 자정으로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동지로부터 내년 3월22일까지의 기간, 대략 석 달에 걸친 기간은 사실 대단히 모호한 기간이 된다. 中有(중유)의 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12월 31일 밤에 잠을 자지 않고 子正(자정)을 기다렸다가 그 시각이 넘어서는 순간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해피 뉴 이어! 하면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선 종을 치고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선 환호를 지른다. 그러면서 신기해한다. 어떻게 헌 해와 새 해가 一瞬(일순), 찰나의 시간 속에서 바뀔 수 있지? 하면서 신기해하고 신비해한다. 약간 作爲(작위)적인 느낌도 가지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건 작위이고 억지인 것이 맞다. 사람들이 그렇게 정해놓았을 뿐이다. 12월 31일의 자정 가까운 시각이나 1월1일의 자정 넘긴 시각은 그냥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인 것이 맞다.

 

그러니 불교 철학에서 말하는 中有(중유)란 개념이야말로 참으로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중간의 완충 지역을 설정해놓고 있으니.

 

 

이별이나 만남 또한 어느 순간의 일이 아니라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어느 날 헤어졌다.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날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드문드문 만나고 연락하다가 어느 기간인지 정확하진 않아도 그런 식으로 이별하기도 한다.

 

바로 그 애매한 기간이 완충 기간이다. 만나서 사랑하게 된 사이라 해도 어느 날 꼭 집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는 것 역시 어느 날 몇 시 몇 분부터 헤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까워져 가는 것이고 멀어져 가는 것이다.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나미’가 불렀던 “슬픈 인연”이라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서히 이별해갈 뿐이다. 수시로 만나긴 해도 실은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고 그러다가 멀리 시야 밖으로 사라졌을 때 아, 우리는 이별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멀어져온 것인지 상대가 멀어져간 것인지 그마저도 분명치 않을 때도 많다.

 

다시 되돌아간다.

 

 

서서히 헌 해가 가고 서서히 새 해가 다가온다. 

 

 

헌 해는 12월 31일 밤 12시로서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새 해 또한 1월 1일 자정 넘은 시각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헌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것 역시 석 달에 걸친 짧지 않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만 極限(극한)이나 極點(극점)을 따지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이 12월 31일 밤 12시를 지나는 순간 새 해가 시작되었다고 여길 뿐이다.

 

사람들은 1월 1일 새 해가 되면 동해 바닷가로 해맞이를 떠나기도 하고 서울 남산 또는 각 지역마다 높은 산에 올라 해를 맞기도 한다. 그냥 떠오르는 해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새 해의 소원을 가슴 속으로 빌어보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동지에서부터 춘분에 이르는 中有(중유)의 기간 동안에 가령 해를 보내고 또 맞이할 것 같으면 동지에 하든지 아니면 입춘에 하든지 또는 춘분에 해야 논리적이고 합당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사용하는 달력이 흔히 말하는 양력 즉 ‘그레고리’력이기에 1월 1일 아침에 산에 오르거나 바닷가로 나간다. (사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레고리 달력은 그다지 좋은 역법이 아니지만 그냥 전 세계가 공통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지금 시각이 새벽 1시 23분, 엊저녁 7시 2분의 동지점을 지난 지 6시간이 조금 더 지나가고 있다.

 

 

어떤 것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까지의 시간

 

 

우리들은 습관상 기억을 할 때 처음에서 끝까지의 경과는 잘 기억해도 ‘어떤 끝에서부터 새로운 시작, 즉 처음이 시작되는 때’에 이르는 기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中有(중유)의 기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이런 이상야릇한 말을 호호당은 늘어놓고 있지?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그 중유의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대개의 경우 어떤 일을 그만 두는 그 순간 다른 일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완충의 시간이나 기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열기 위한 창조의 시간인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有(유)에서 無(무)로, 無(무)에서 다시 有(유)로 이어져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無(무)란 바로 中有(중유)로서 바로 이 모호한 기간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열기 위한 위대한 창조의 기간이 된다는 얘기이다.

 

이는 마치 섹스를 통해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란이 형성되고 그것이 子宮(자궁)에 착상된 이후 엄마의 뱃속에서 태아가 자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이후 아기가 출생한 후의 모든 일과 변화, 그리고 발전은 이미 그 이전의 시간, 즉 胎中(태중)에서 다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것과도 같다.

 

 

모든 창조는 시작 이전에 이루어지고 끝난다. 

 

 

모든 창조는 시작 이전에 결정이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중유의 시간이야말로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 또는 기간이라 하겠다.

 

우리가 내년 2021년에 하게 될 일, 그리고 변화 변천, 발전 혹은 퇴보 등의 모든 것은 어제 동지에서부터 시작되어 내년 3월 22일 춘분이 되면 다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애매한 시간 속에서 말이다.

 

일의 향배를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일의 機微(기미)를 살피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살펴보고자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모든 기미와 기틀은 애매한 시간, 어떤 끝과 새로운 시작 사이에서 생성되고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 글을 맺고자 한다. 오늘의 얘기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침 시각 간밤에 써놓은 글을 읽어보니 동짓날 긴 긴 밤의 꿈속과도 같아서 절로 어허! 하게 된다.

심상치 않은 증시의 상승

 

 

코로나 블루가 서울 경기로부터 전국을 뒤덮어가고 있다. 공직자나 대기업 노조원이 아니면 수입도 줄었고 자영업자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기 직전이다. 다음 주부터는 코로나 감염자가 더 늘어날 기세라 하니 우울하다. 나 호호당도 우울하다. 코로나 때문만도 아니고 수입이 줄어서만도 아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최근 나 호호당이 크게 놀란 일이 하나 있었으니 우리 증시의 상승이다. 2018년 1월 말의 고점인 2607.10 포인트를 지난 달 11월 24일로서 뚫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사실 난 2018년 초의 전 고점을 뚫어내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단정을 짓고 있었다. 그 바람에 상승하는 증시가 전 고점에 가까워지자 계좌의 주식 비중을 30%로 대폭 줄여놓으면서 하락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럴 수 있음을 예고하는 사전 징후는 있었다. 달러 환율의 급격한 하락이 그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무려 1296원까지 치솟았던 달러 환율이 10월 중순에 1,148원을 뚫고서도 계속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이거 이러다가 증시가 전 고점을 뚫고 오를 수도 있겠네 하는 예상도 들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하지만 증시는 내 생각을 빗나갔다.

 

그러자 소름이 확-하고 돋았다. 이거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증시에서 게임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고집 부리지 않는 일이다, 주식 비중을 다시 늘려가기로 한 것은 당연하다. 돈은 일단 벌고 볼 일이니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니 

 

 

그러면서 생각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팬데믹 발생과 함께 미국 연준이 무지막지하게 달러를 찍어대더니 이제 그 물결이 우리 시장으로도 마구 밀어닥쳐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직은 별 것이 아니지만 곧 海溢(해일)과도 같은 거센 달러의 물결이 밀어닥칠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뉴 노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좋았던 지난 시절은 지나친 것 즉 거품이었고 이제 새로운 정상의 시대, 경기가 침체하긴 했지만 실은 그게 정상이란 생각이 퍼져갔다.

 

그런데 미국 연준이 종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무공 초식과 기술인 양적완화라고 하는 것을 선보였다. 그러자 뉴 노멀은 빠르게 변질되어 갔다. 돈 즉 달러를 엄청나게 남발해야만 그나마 경제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서 이미 뉴 노멀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간에 지나치게 달러를 찍어낸 것에 내심 불안해하던 미국 연준은 몇 년이 흘러 서서히 달러를 회수하기 시작했지만 시장은 전혀 반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으니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돌연 자세를 바꿔서 지난 몇 년 사이에 찍어낸 달러를 단 3개월 만에 그 이상으로 더 찍어내었다. 처음엔 상황이 워낙 위급하니 저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짜 돈의 시대, 뉴 어브노멀!

 

 

하지만 그게 또 아니었던 것이다. 올 봄 연준의 초 스피드 초 대량 달러 찍어내기를 통해 글로벌 경제는 또 다른, 전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었던 것이다. 이제부턴 “뉴 어브노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비정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量(양)은 質(질)은 변화시킨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야말로 참으로 그렇다.

 

이젠 더 이상 돈이 돈이 아닌 시대, 이제 연준은 당초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에서 경기부양 또는 경기유지를 위한 기관으로 완전히 바뀐 셈이다.

 

시장에선 새 대통령 조 바이든은 당연하게도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재정정책을 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바이드노믹스”라고 부르고 있는 바, 출범과 함께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새로운 뉴딜계획을 내놓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장에만 그치지 않고 도로·철도·교량 등 전통적 SOC 사업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예산 지출 확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야당인 공화당과 타협을 해야 하겠기에 최소한 1조 2천억 달러의 부양책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싶다.

 

연준이 이미 달러를 마구 찍어낸 탓에 더 이상의 통화 정책 수단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제 재정적자 따윈 쳐다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제부터의 세상은 가짜 돈의 세상이다. 연준은 가짜 돈을 남발했고 그럼에도 부족하자 재정적자를 마구 진행해간다는 생각을 가진 미국이란 얘기이다.

 

 

증시 상승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증시가 전 고점을 뚫고 거침없이 상승해도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게 생겼다. 글로벌 중앙은행과 사실상의 글로벌 중앙정부인 미국 행정부가 사정없이 거침없이 가짜 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돈 가치의 “물타기”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나섰으니 증시가 오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과는 자명하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무엇인가? 하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라 설명을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 값, 사람 값어치의 하락을 가져오는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은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격 체계를 교란시키면서 새로운 차별과 더 심한 양극화를 불러온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최근 아파트 시세가 엄청나게 급등하면서 아파트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과 양극화를 불러오고 있지 않은가. 주식을 가진 자와 주식을 가지지 않은 자의 차별과 양극화 또한 당연하다. 그런 까닭에 최근 젊은이들이 영끌과 빚투를 통해 필사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돈 가치의 물타기가 본격화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이 닥치기 전까진 時差(시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다른 말 다 젖혀놓고 얘기이다. 이제 증시는 오른다. 어설프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많이 오른다, 올라도 심하게 오를 것이다. 가짜 달러가 해일처럼 우리 증시로 밀어닥칠 것이고 이미 절반은 가짜가 되어버린 우리 돈, 즉 시중 유동성도 지속적으로 증시로 유입될 것이다. 따라서 증시가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우리 증시가 어디까지 오를 것인지 나름 면밀하게 계산해보았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코스피 기준으로 3000 포인트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고 그 다음 선으로 3500 선, 그리고 심지어는 4058 선을 넘어설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다. 현재로선 쉽게 상상이 가진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냥 갈 순 없는 일이어서 

 

 

당장 내년은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부양 또는 경기 정상화가 우선일 것이다. 따라서 내년까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달러를 대량 남발한 올 4월로부터 2년이 경과한 2022년 4월부터는 그냥 갈 것 같지가 않다고 본다.

 

시점을 예단하긴 그렇지만 어쨌거나 무지막지한 인플레이션의 물결이 밀어닥칠 가능성, 그냥 가능성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밀어닥칠 것이라 본다.

 

극도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치료약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밖에 없다.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의 가짜 돈을 회수하고 흡수하는 것이다.

 

금리를 급격하게 고율로 올리면 어떻게 되나? 그건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증시는 급격한 하락 조정을 보일 것이고 아파트 가격 또한 극심한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기에 

 

 

그렇다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되나 싶을 것이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 설령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미루어도 미국 연준이 일단 시작하면 우리라고 홀로 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 버티면 달러가 죄다 빠져나가면서 그 역시 우리 경제의 위기국면이 연출될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즉 돈 가치의 물타기가 이어졌고 그로서 디플레이션을 그런대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미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연준에 의해 초 단기간에 더욱 대폭의 물타기가 있었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새 대통령답게 멋진 모습으로 대규모 재정정책을 추진할 요량이다.

 

그러니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순 없는 노릇, 돈 가치의 물타기와 막대한 재정투입의 부작용은 결국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시기는 현재로선 예단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그 사이에 증시는 거침없이 오를 것이고 낙관론이 팽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단순한 이치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니 그간의 일로 인해 치러야 할 代價(대가)는 지독하게 비쌀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본다.

 

그렇기에 앞에서 얘기했듯이 지난 달 하순에 증시가 2018년 초의 고점을 갱신하면서 오르자 소름이 확 돋았다. 이제 천국행 롤러코스터가 발동을 했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나락으로 치닫는 지옥행 롤러코스터로 변할 것이니.

 

특히 부동산이 그렇다. 주식이야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 딱 먹고 클릭 두 번이면 손절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부동산은 문자 그대로 不動(부동)은 아니라 해도 손쉽게 정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점에서 그렇다. 이에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폭증하면서 일파만파!, 다시 한 번 총체적인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마음이 심란해서 며칠 간 고민했다. 당장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괜히 이런 글을 올려서 독자들의 정신을 사납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이틀 간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글을 올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