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참으로 위대했으니
나 호호당은 1955년에 태어나서 지금 71세. 어린 시절 미국은 그야말로 “위대한 나라”였다. 어떤 물건이 이거 美製(미제)야 하면 최고의 품질이란 뜻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 집에 17인치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당시 부산에선 일본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기에 아버지가 사들인 신통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제조사가 미국의 RCA였다. 독자님들은 대부분 모르시겠지만 RCA는 GE의 자회사로서 미국 가전제품 특히 텔레비전의 대명사였다. (검색해보니 1986년에 해체되었다.)
그 바람에 일본의 역도산이나 김일 선수가 나오는 프로레슬링 시합이 있는 날이면 우리 집 거실은 동네 사람들 수 십 명이 함께 흥겹게 시청하곤 했다. 특히 여름이나 가을엔 더 그랬다.
어머니는 설탕 듬뿍 넣은 달달한 수박화채를 만들어 분주하게 대접하느라 바쁘셨고 넓은 거실엔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거기에 역도산 선수가 복면을 쓰고 반칙을 일삼는 미국 선수에게 손날로 연이어 가격하면서 응징할 것 같으면 온 집안이 떠나갈 것처럼 요란했다.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은 우리 집을 부를 때 “RCA 테레비”가 있는 집이라 했다. 우리 집은 부잣집이었고 끝내주는 美製(미제)를 쓰는 집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국제시장 인근, “깡통시장” 인근에 있었다. 당시엔 그냥 깡통가게라 불렀는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이라든가 허쉬 초콜릿 그리고 우리들이 단추 초콜릿이라고 부르던 M&M 초콜릿을 팔았다. 거기에 버터라든가 여러 미국산 식품들을 팔았다.
미국이 보내준 옥수수와 밀가루로 먹고 살았으니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싸오지 못 하는 아이들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이 급식으로 나왔다. 그 맛이 워낙 고소해서 나 호호당은 계란반찬 도시락과 옥수수떡을 바꿔 먹기도 했다.
옥수수 가루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밀가루와 함께 부산 제3부두-지금은 사라진-의 하역장에서 왔다. 옥수수 알갱이가 포장되지 않은 채 화물창에 실려있는 벌크선에서 내려졌다. 미국에서 오는 배였고 매일 여러 척이 입항하고 또 나가곤 했다. 그 모습 구경 많이 했다.
그 옥수수 알갱이와 밀가루는 부대에 담아지고 트럭에 실려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으로 운송되었다. 이른바 원조물자였는데 어른들로부터 듣기로 미국은 옥수수와 밀가루가 너무 많이 생산되는 바람에 처치곤란이란 것이었다.
그랬다. 1960년데 초반 끼니 때우기 어렵던 시절 미국은 식량이 남아돈다고 하니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겠는가!
그런데 군사력이 만능이 아니란 사실
1960년대 중반부터의 세월은 월남전 파병의 시절이었다.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 하나는 월남에서 미군과 우리 파월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전투식량인 C레이션이 부산 남포동 시장에 엄청나게 쏟아져서 팔려나갔다는 점이다. 암시장이었지만 공공연히 수레에 실려 공개적으로 판매되었다.
비스킷과 으깬 고기를 담은 깡통, 담배와 설탕 등등 그야말로 야전식량이었는데 그 물량이 얼마나 많이 부산 시장에 풀렸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른들 말씀으론 뒷구멍 물건이라는데 저렇게 대량으로 나온다고? 물론 그 시절은 뇌물과 불법 비리가 기본이던 시절이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아무튼 위대한 미국은 암시장에서 더욱 위대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일은 그렇게 막강한 군사력의 미국이 무기도 제대로 없는 베트콩을 상대로 끝도 없이 몇 년씩이나 질질 끌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사력이 최강이라는데 왜 끝내질 못하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 미국이 월남에서 전쟁비용으로 하루에 무려 1억 달러씩이나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1억 달러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원화로 대략 250억 원이었는데 1965년도 우리나라 정부의 1년 예산이 848억 원이었다고 하니 그것의 1/4 분 이상을 하루 만에 탕진하고 있었던 미국이다.
미쳤구나, 돈 지랄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몇 년씩이나 질질 끌고 있다니 저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전쟁은 돈도 아니고 군사력이나 군사기술도 아니다.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꺾어놓지 못 하는 한 제 아무리 초강대국 미국이라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 호호당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이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했다.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이상해진 미국
단기작전 또는 목표가 제한된 전쟁이라면 몰라도 상대의 의지를 꺾어야만 이길 수 있는 전쟁에서 미국은 거의 이기지 못했다. 특히 중동에서의 이라크 전쟁도 어설프게 마무리되었고 아프간 전쟁에서는 무려 20년의 세월과 자원 인력을 낭비하고도 성과 없이 철수하고 말았다. 그건 그냥 미국의 패배였다.
그런데 미국 바깥의 세상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던 트럼프는 그다지 이유도 없이 난데없이 이란을 공격했다.
트럼프는 미국과 글로벌 세계에 대한 일종의 큰 災殃(재앙)이다. 나르시즘과 과대망상, 불안증을 지닌 엉터리 스트롱맨임이 이번 전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패권 상실을 공고히 다지고 있는 트럼프
다소 성급할 판단일 수도 있겠으나 미국의 패권은 이번 이란 전쟁으로 인해 영원히 상실될 것이라 본다. 트럼프는 그간 앞선 미국의 지도자들이 어쨌거나 힘겹게 쌓아올린 거의 모든 지정학적 자산을 다 날려 먹었고 이젠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군사력은 서서히 끊임없이 약해질 것이고 미국에 대한 신뢰 또한 사라져갈 것이다. 물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또한 10년 후가 되면 여러 개의 통화가 사용되는 다극적 세계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은 여전히 강국일 것이지만 패권을 쥐고 전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던 미국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다른 세계가 시작되고 있다. 그간 겪어보지 못한 낯선 글로벌이 시작되고 있다.
그간 미국은 전 세계에 선한 영향을 참으로 많이 끼쳤다. 인권이라든가 국가 주권의 독립성, 그리고 엄청난 양의 구호물자와 원조 제공을 통해 인류의 번영을 이끌었다.
세계을 잘 이끌던 미국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랬었던 미국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그때가 좋았어! 하면서 말이다.
나 호호당 개인으로선 독자님들과는 또 다른 감회가 있다. 태어나서 세상 물정을 조금씩 알게 될 무렵부터 지금까지 줄곧 미국은 위대한 나라였다.
그리고 세상살이 경력 70년이 넘긴 했지만 설마 그 위대한 미국이 몰락해가는 모습까지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해본 일이란 점이다.
모든 게 저처럼 한 때의 일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