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이르러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점

 

 

최근 올리는 글들은 다소 무겁다. 한 해의 가장 추운 1월 丑(축)월에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던 주제들인 바, 우리 한국 사회의 과거 60년 이상에 걸친 근대화와 변화의 과정에 대한 글들이란 점에서 그렇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의 가족 해체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내적 모순이 날로 첨예화되면서 빈부의 격차를 말하는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깊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정도를 돌이키기 어려운 경지까지 몰아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팬데믹이 끝났을 때 빈부의 격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 있을지 솔직히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가족의 해체 그리고 사회안전망

 

 

이에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예전 근대화 이전의 농경사회에선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바로 가족이라고 하는 테두리였다. 가족이야말로 각종 위험이나 질병, 빈곤 등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방벽이었고 울타리였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가족이 맡고 있었다는 이 말에 대해 아마도 글쎄 그럴까? 싶은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지금부터 이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아 그게 그랬었구나! 하고 수긍을 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가족이란 어휘 

 

 

보통 우리가 가족이라 하면 한 쌍의 부부와 그들의 미혼 자녀들을 떠올린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 한 둘 정도, 그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은 그건 가족 중에서도 너무나도 작아서 물질로 치면 거의 原子(원자)급이라 해서 核家族(핵가족)이라 부른다. 우리들은 가족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핵가족을 연상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大家族(대가족)은? 하고 묻거나 생각해보면 조부모와 부모, 자녀와 며느리, 손주 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역시 예전엔 그 정도 가족에 대해 대가족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그 역시 핵가족 즉 원자 단위는 아니라 해도 거의 分子(분자) 수준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사회에서 가족이란 하면 구성원이 몰락한 집안의 경우 수십, 적게는 수백, 보통은 수천, 많게는 수만에 이르는 거대한 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원래 의미의 가족과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단어만 같을 뿐 그 의미는 지금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얘기이다.

 

가족과 비슷한 단어로서 가정이 있고 좀 올드한 뉘앙스의 단어로서 家門(가문)이란 말도 있다. 또 가문과 연관되어 門中(문중이란 단어도 있다.

 

가족, 가정, 가문이란 단어들의 고통 요소는 家(가)라는 글자이다. 따라서 家(가)를 이해하고 나면 오늘에 이르러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하게 될 것이다. 또 그로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심한 변화에 노출되어 있는가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家(가)란 무엇이었던가. 

 

 

먼저 家(가)란 무엇이었는지부터 알아본다.

 

家(가)란 때론 증조부와 조부모의 가족들과 형제들 그 자손들과 자손의 손주 손녀들, 때론 증손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뿐만 아니라 여기에 그 집안에서 봉사하는 하인들과 노비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손주들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家(가)에 속한 전체 구성원들을 예전엔 食率(식솔)이라 표현했다. 따라서 家(가)는 씨족 집단과 그 씨족에 봉사하는 노비와 머슴들을 포함하는 거대 집단이었고 그렇기에 그 구성원의 수가 때론 수만에 달하기도 했다.

 

예전엔 그런 집단이 방대한 田畓(전답)을 가문의 이름으로 소유한 채 노비와 함께 공동으로 경작하고 먹고 사는 공간 또는 실체를 莊園(장원)이라 불렀다. 중세 ‘장원경제’에서의 그 장원 말이다. 장원을 이루고 있을 경우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자체 무장조직 즉 자경단을 운영하기도 했기에 시국에 따라선 지방의 거대 무장세력으로 할거하기도 했다. 그런 家(가)를 일러 族閥(족벌) 또는 門閥(문벌)이라 불렀다.

 

가령 삼국지연의에서 曹操(조조)를 보면 어쩌다가 부친이 성이 조씨인 환관의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曹(조)씨가 되었지만 원래는 夏候(하후)씨였다. 하후씨는 그 조상이 유방이 항우와 쟁패해서 漢(한)제국을 세웠을 때 개국공신 제8위였던 하후영으로부터 이어져온 명문 벌족이다. 하후 집안, 즉 하후씨 가족은 후한 말기의 삼국정립 시기까지 이미 400년에 걸쳐 이어오면서 엄청난 자손과 함께 방대한 전답을 소유한 거대 족벌 집단이었다.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거병한 조조는 하후 가문의 수천에 달하는 식솔들을 무장시키고 군자금 역시 집안에서 조달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거대 세력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조조의 핵심 부하 중에는 조인과 같이 6촌 동생도 있었으나 조조의 최정예 병력은 1만에 달하는 철갑기병대였는데 그 지휘를 맡았던 사람은 조씨가 아니라 ‘하후연’이었다. 같은 집안 즉 가족이었던 것이다.

 

삼국지에서 남쪽 오나라의 손권 역시 북방에서 대규모로 이주해온 손씨 가족집단의 일원이고 노숙이나 주유 역시 북방에서 난리를 피해 이주해온 거대 씨족 집단의 일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말 대단한 인물은 유비이다, 몰락한 황실의 후손으로서 돗자리나 만들어 팔던 영세한 자영업자가 황실의 혈통이란 점 하나를 마케팅해서 장비와 관우와 함께 나중에 나라까지 세웠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유비야말로 亂世(난세)의 영웅이었다.

 

이제 가족이란 것이 원래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가족은 옛날로 치면 가족의 지극히 작은 일부였던 것이고 이에 핵가족이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엔 이혼의 일반화로 인해 부모 중 한 쪽만 있고 거기에 자녀 역시 하나인 가족도 대단히 많다. 원자보다 더 작은 미립자 즉 ‘쿼크’ 가족이라고나 할 까.

 

 

가문이란 무엇이었는가. 

 

 

이제 家(가)를 이해했으니 家門(가문)이란 단어를 알아볼 차례이다.

 

예전에 家(가)가 공동으로 거주하던 마을,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에 이르는 대장원의 경우 방비를 위해 거주구역은 木柵(목책)으로 둘러져 있었고 입구에는 커다란 대문이 하나 있었으니 이를 家門(가문)이라 했다.

 

이에 그 문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 혈연적 관계인 사람들과 그 가문의 노비나 하인들 역시도 門中(문중), 문 안에 사는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때론 기존의 전답만으론 인구 압력이 커져서 차남이나 삼남 등이 일부 식솔을 이끌고 외지로 나가 별도 땅을 개간하거나 투쟁을 통해 빼앗은 땅에 자리 잡기도 했는데 이를 分家(분가)라고 했다.

 

이 경우 원래의 문중이 있는 곳을 本貫(본관)이라 하고 그 본관을 이끌어가는 핵심 그룹을 宗家(종가)라 불렀다. 또 그에 속한 일원을 宗中(종중) 사람이라 했다.

 

 

가정이란 단어 역시 뜻이 달랐으니 

 

 

이제 家庭(가정)이란 말도 알아보자. 집안의 마당이란 뜻이지만 사실 뜻은 그렇지가 않다. 단어에 포함된 庭(정)이란 글자 역시 오늘날과는 전혀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예전에 임금님 앞에서 신하들이 모여서 아침 회의를 하던 것을 두고 朝廷(조정)-오늘로 치면 국무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 회의실-이라 했다.

 

이를 확대 연장해서 한 家門(가문) 안에서 가장 권력자인 집안 어른이 자녀와 며느리, 하인과 노비 등등 수십 혹은 수백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대청마루에 서서 지시하고 훈계하던 앞의 마당을 廷(정)에서 약간 작다는 의미의 한자를 만들어 庭(정)이라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그런 의미의 가정은 없다.

 

오늘날 단출해지고 또 규모가 작아진 가정에서 庭(정)은 바로 아파트의 거실이다. 그곳에서 식구가 다 모여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부 좀 열심히 해라, 엄마가 딸에게 일찍 좀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이 항변도 하고 힘들다는 변명도 한다. 바로 그 거실이 家庭(가정)이다.

 

 

가족, 화살촉으로 구분이 되던 씨족 집단 

 

 

이제 마지막으로 家族(가족)에 대해 알아보자. 家族(가족)이란 단어의 뒤에 붙은 族(족)이란 단어는 화살촉을 의미한다. 촉이란 말 자체가 한자 族(족)의 우리말 변형이다.

 

옛날 중국 북방이나 만주 몽골 지역의 경우 여러 씨족으로 이루어진 부족이 가을이면 함께 수렵에 나서곤 했다. 일종의 전투 훈련이기도 했다. 이때 가족 즉 가문마다 화살촉에 각자 다른 색실이나 끈을 매달았는데 이는 다른 씨족이나 가문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노루나 사슴, 산돼지 등의 짐승을 잡을 것 같으면 일단 노비들이 뛰어다니면서 한 곳에 모은다. 사냥이 다 끝나면 짐승의 몸에 꽂힌 화살촉을 보고 어느 가족 또는 가문의 소유인 가를 구분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가족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가족은 어느 집안의 화살촉이었던 것이다.

 

가족 역시 씨족집단이기에 그 수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천에 이르기도 했으니 오늘날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는 그것, 엄마 아빠 그리고 자녀 한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家(가)는 莊園(장원)을 운영했고 북방 유목 수렵 사회에서 가는 화살촉으로 구분되는 家族(가족)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제 家(가)란 단어와 그와 관련된 가족이나 가정, 가문, 문중, 종중, 종가 등등에 대해 다 설명했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족이 사라졌기에 고향 역시 사라지고 말았으니. 

 

 

지금까지 가족이나 가정, 가문 등의 원래 뜻을 알았으니 오늘날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말이 사실임을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 조금 덧붙이면 우리가 흔히 故鄕(고향)이라 부르는 말의 원뜻은 씨족집단인 가족이 터를 잡고 있던 곳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러 고향이란 것도 실은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말이다.

 

다음 글에선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점, 그리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사회안전망과 복지와의 관련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