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아버지는 빈한한 시골 출신,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국내 최고 명문대를 나와 이른바 출세를 했다.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를 꽤 들어보았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 셈, 이른바 개천용이다.

 

그런데 개천용들은 나름의 문제점 심하게 말하면 비극을 안고 있다. 이 아버지의 경우 공부를 통해 성공했기에 인생은 20대까지의 학업에서 결정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천용의 아들은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성장하다 보니 아버지와 같은 악바리 근성이 없다. 사실 그게 당연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학업성적이 떨어지면 꾸짖기도 하고 때론 매를 들어 엄하게 단련을 시키려 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무섭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아들은 겨우(?) 서울 인 대학에 들어갔고 개천용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다. 아들은 그래도 공기업에 입사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애로가 많았다. 결혼 생활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나이가 50에 가까워도 여전히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면 속으로 두려움부터 든다.

 

개천용 아버지의 눈엔 아들이 그저 미꾸라지로만 보인다. 아들은 여전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으니 스스로를 미꾸라지라고 자책하고 있다.

 

아들을 미꾸라지로 만든 장본인은 개천용 아버지였다. 가진 것 없이 성공하는 방법은 오로지 공부가 전부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세계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세계관을 속으론 반발했지만 여전히 죄스런 마음이 크다. 그렇게 길러졌기에 당당히 살아가지 못 한다. 비극이다, 거의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다름없다.

 

 

이야기 #2.

 

 

또 하나의 비슷한 얘기를 해본다. 아버지는 개천용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반발했다. 결국 10대 시절에 집을 뛰쳐나왔고 그 이후 義絶(의절) 상태로 지내면서 많은 고생을 겪은 끝에 자동차 부품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다가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 묘소를 한 번은 찾아가고도 싶은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안함도 있고 섭섭함도 있고 이제 묘소를 찾아가본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손주는 자꾸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갈등이 많다.

 

아버지의 심한 질책은 가출을 불렀고 천신만고 고생 끝에 바닥에서 일어난 아들이었다. 이제 당신도 성공했으니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청주 대병으로 술을 묘소 주변에 돌아가면서 거하게 뿌려드리고 아버지를 용서해주라고 권유했다.

 

아버지의 방법이 잘못되긴 했지만 아들인 당신을 분명 사랑했을 것이니 이젠 가서 화해를 하라고, 용서하고 나면 당신의 부친 또한 무서운 거인이 아니라 잘 살아보려고 애쓰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알 게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얘기를 들은 그 분은 끄덕이더니 마음이 편해져서 돌아갔다.

 

 

이야기 #3.

 

 

아버지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작은 가게의 점원으로 들어갔다가 장사를 익혀서 서서히 사업을 키웠고 중년 이후에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정말이지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이 오로지 근검절약했다.

 

아들은 미국 유학까지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더 크게 성장하라는 개천용 아버지의 야심찬 포부였다. 아들은 돌아와서 사업을 물려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워라벨’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수시로 아들과 아버지는 충돌을 했다. 아들은 사업을 자신에게 맡겼으면 제발 간섭하지 말라는 생각이었고 개천용 아버지는 아들의 경영이나 여타 전반에 대해 크게 불만족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회사가 기울었고 그 와중에 개천용 아버지는 화병과 여타 성인병으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런 뒤 나를 찾아온 아들은 심사가 복잡했다. 자신의 경영수완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간섭이 사업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인지 또 아니면 사업 자체가 사양 산업이라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울해했다. 그러다가 나중엔 자신은 학자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 잘못된 일인 것 같다는 후회도 했다.

 

악바리 아버지는 사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더 멀리 크게 볼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고 곱게 자란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투사가 아니었다. 바닥에서 사업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에 나 호호당의 눈에도 사업을 잘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부자간의 엇갈린 기대와 희망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최근 소식을 알아보니 거의 폐업 직전이라 한다.

 

 

이야기 #4.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의대를 갔고 있는 집 딸과 결혼해서 개업을 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 잘 키웠는데 문제는 아들 녀석들의 학업이 영 엉망이었다. 둘 중에 하나만큼은 의사로 키워보겠다는 부부의 꿈은 무산되었고 이에 부부는 아들 둘을 차례로 미국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현재 의사 아버지는 은퇴를 했고 큰 아들은 귀국한 후 국내 대기업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미국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깨끗하게 말아먹었다. 이혼도 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백수 상태, 형이 재산을 다 말아먹은 바람에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둘째 아들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은 집에 돈도 없으니 뭘 할 수도 없고 일자리도 되질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그래서 자네가 사업하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했더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기회는 있었을 것인데 형이 재산을 탕진해서 그저 초라한 백수로 지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고생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이 두 아들을 유약하게 만든 것이 크다고 본다.

 

 

이야기 #5.

 

 

개천용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일구었고 아들이 물려받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야말로 잡초처럼 성장했기에 아들에 대해 너무나도 엄했다. 개천용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들은 사업을 물려받았다. 인맥을 넓힌답시고 고급 술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공연히 여기저기 술도 사주고 후원도 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아들은 끊임없이 술과 여자를 밝혔다.

 

부동산도 많았지만 하나 둘씩 팔아먹은 끝에 지금은 알거지, 부인은 결국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났다. 나를 찾아왔다. 왜 그렇게 술과 여자를 밝히고 이유도 없이 후원한답시고 돈을 썼냐고 묻었다. 이에 그 분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생각에 빠졌다. 약 3분 뒤 그 분은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는데 돌아가시자 자신의 세상이 왔다는 느낌이 들어 맘껏 놀다 보니 그만 실패하게 된 것 같다는 소회를 늘어놓았다.

 

그게 실패한 원인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엄하게 단속하다가 풀려났으니 마치 봇물 터지듯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맺는 말;

 

 

누군가 벌면 누군가는 쓴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간다. 세상의 아주 기본적인 이치이다. 부자 2대에 걸쳐 발전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선대가 이룬 것을 지키기만 해도 실은 대성공이다. 3대가 연이어 발전해가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누대에 걸쳐 번영했던 집안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대답은 내막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도중에 쉬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부와 부친이 연이어 성공했다면 그 자손은 너그럽게 살면서 인심을 베풀어야 한다. 조금 가세가 기울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렇다 보면 다시 그 증손이 뛰어나서 다시 번영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천용들은 절대 다수가 자식 농사에 실패한다. 자신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지만 그 자녀는 그런 환경이 아닌 탓이다. 이에 개천용들은 그저 너는 왜 이 아비보다 힘이 없느냐,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질책하기도 한다. 유복한 환경임에도 자식을 강하게 키운다? 모순이란 점을 개천용들은 모른다. 또 그를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엄하고 절제하도록 키운다? 기가 죽어서 미꾸라지만 만들어 낸다.

 

자신이 고생 끝에 성공했든 어떻든 자녀는 그저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면 되는 일이다. 실은 그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상이고 전부이다. 자신이 조금 성취했다고 해서 자녀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법은 없다.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저 이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다시 인물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멀리 가려면 도중에 쉬어가기도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