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원에 수유 만발하고 곳곳에 매화도 피어나는데 오늘은 비바람이 제법 거세다. 흥취가 일어서 잠시 산책을 나갔더니 갈피 없는 바람에 우산을 가누지 못한다.

 

겨울 지나가고 봄이 와서 저처럼 宛然(완연)하고 또 蔓延(만연)하다. 해마다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대단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겨울은 죽어가거나 죽음의 때이고 봄은 다시 蘇生(소생)과 復活(부활)의 때이다. 삶에서 죽음으로의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일, 즉 非可逆(비가역)적이건만 자연은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만들어놓는다.

 

며칠 전 “사람도 꽃처럼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하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2019년에 개봉된 ‘찬실이는 복도 많지’란 영화 속 대사라고 한다.

 

구례 화엄사에 홍매가 피었다는 소식, 수백 년 세월 동안 봄이면 회춘(回春)해 싱싱한 꽃으로 다시 돌아오는 매화의 얘기를 하면서 앞의 말과 대조시키고 있었다.

 

그게 그렇다. 사람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꽃은 되돌아온다. 그래서 슬프다.

 

하지만 이건 우리들의 착각이다. 꽃 또한 작년에 피었던 꽃은 다시 피어나지 않는다. 올 해 피어난 꽃은 또 다른 꽃일 뿐이다. 꽃 또한 한 번 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호호당 김태규”란 자는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 하지만 호호당과 비슷한 자는 인류가 이어지는 한 다시 태어날 것이고 또 죽어갈 것이다.

 

삶의 모든 기쁨과 슬픔은 결국 우리가 자기 자신, 즉 自我(자아)를 강하게 인지하고 인식하기에 가능하다.

 

개체로서의 자각, 즉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도 꽃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무엇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이 얘기는 멀리 갈 것 없이 불교에서 말하는 諸法(제법)이 無我(무아)하다는 것과 일치한다.

 

그래서 나 호호당은 이 가르침이 싫다. 삶은 단 1회의 기회이자 공간이고 시간이기에 애틋하다. 모든 것이 변해가고 흘러갈 뿐이라면 그게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떠올린다. 길이 든 서로에게 있어 어린왕자와 장미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삶에 대한 집착이 어리석은 迷妄(미망)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 호호당은 하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한다. 나도 하나뿐이고 당신도 하나뿐이다. 물론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아름답고 슬프다.

 

창밖을 보니 여전히 風雨(풍우)가 휘젓고 다닌다. 2024년 봄의 정취이다.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온다.

어쩌다가 일본의 전통예능인 노(能)를 즐기게 되었는데

 

 

유튜브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접하는 세상이다. 이에 어쩌다가 일본의 옛 연극 스타일의 예능인 노, 한자로는 能(능)이란 것과 만나게 되고 지금은 무척이나 재미가 들어서 유튜브를 통해 백 편 이상 감상하고 또 즐기고 있다. 언젠가 일본의 교토나 도쿄에 가서 직접 노가쿠(능악, 能樂) 공연을 직접 관람해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 호호당은 우리 國樂(국악)도 좋아하고 중국 음악이나 京劇(경극)같은 것도 좋아하며 이번에 일본의 옛 음악과 연극까지 즐기게 되었으니 동양 세 나라의 음악과 예술을 두루 맛을 본 셈이다.

 

 

침중기, 한단의 꿈, 그리고 구운몽

 

 

며칠 전 유튜브로 노 한편을 보는 데 제목이 邯郸(한단)이었다. “한단의 꿈”이란 故事(고사)에서의 邯郸(한단)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랬다. 꿈속에서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보니 초라한 현실, 하지만 그로서 헛된 욕망을 깨닫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독자님들, 九雲夢(구운몽)이란 소설을 아실 것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소설로서 서포 김만중의 작품이다. 내용인 즉 한 수도승이 수행 중에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수도승은 글 읽는 선비로서 과거에 급제하고 승승장구 출세하여 벼슬은 재상에 이르며 절세미녀 여덟을 죄다 처첩으로 거느린다. 자녀들 또한 엄청나게 잘 풀려갔다.

 

이처럼 세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즐거움과 영화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났더니 초라한 수도승의 신분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더욱 수도에 정진해서 큰 스님이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큰 스님이 되고 도를 깨우치는 것은 이 소설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꿈속에서 주인공의 신나고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핵심이다.

 

구운몽, 정말 뛰어난 작품이지만 나름 아이디어를 가져와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의 原型(원형)은 중국 당나라 시절에 만들어진 枕中記(침중기)란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한단지몽’이다.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젊은 선비가 귀향길에 한단(邯鄲)이란 곳을 지나가던 중 어느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선술을 익힌 나이 많은 道士(도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도사에게 자신의 한심한 처지에 대해 신세타령을 했다. 그러자 도사는 도자기로 된 베개를 주면서 한 번 베고 자보라,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이에 선비는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50년 세월을 보낸다. 그냥 지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아내도 얻고 과거에도 장원급제한 뒤 승승장구 엄청나게 출세도 하고 도중에 시기질투를 받아 힘든 경지도 있었으나 끝내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자식들도 죄다 출세하고 장가도 잘 갔으며 이렇게 80세까지 살다 죽었는데 바로 그 순간 홀연히 꿈에서 깨어났다.

 

선비가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니 베개를 준 도사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주막 주인이 찌는 기장밥도 아직 다 익지 않은 상태였다. 꿈속의 50년이 실은 30분 정도의 단잠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젊은 선비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헛된 욕망을 일깨워주기 위한 도사의 배려임을 깨닫고 크게 절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이 “침중기”란 짧은 소설은 8세기 경 중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워낙 모티프가 좋아서 일종의 古典(고전)이 되어 그 이후 중국의 여러 소설, 우리나라의 구운몽이나 일본 등지의 소설이나 설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버전이 만들어지고 전해져오고 있다. 나아가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흥미로운 환타지 드라마 속에도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

 

 

금방 노(能)에 친숙해질 수 있었던 이유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그 노의 제목이 한단이고 그 내용이 ‘침중기’란 것을 알게 되자 금방 친숙해져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내 경우 일본의 가부키보다 노(能))를 더 좋아하는 이유 역시 노의 경우 古典(고전)적인 배경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노(能)가 중국 고전에서만 소재를 가져오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일본 고유의 문화와 정서, 그리고 그들의 古典(고전)에 해당되는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원씨물어)라든가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 평가물어) 속에서 가져온 얘기들이 더 많다. 아울러 노(能)는 일본 특유의 美意識(미의식)이 잘 반영되고 있어 흥미롭다.

 

판소리의 경우 한 명의 소리꾼이 한 명의 鼓手(고수) 즉 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도 하고 대사도 하면서 일종의 연기를 하면서 진행한다. 거기에 관객들이 얼쑤, 좋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흥을 살리는 행위예술이다.

 

이에 비해 노(能)는 훨씬 규모가 있다. 악기만 해도 피리 하나에 작은 북, 중간 북, 큰 북, 이렇게 4개나 되며 그들 또한 연주만이 아니라 노래도 한다. 여기에 더불어 일종의 코러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창을 하기도 하며 주연 배우 역시 가면을 쓴 사람과 그 상대역을 하는 이가 있어 연기와 춤, 노래를 한다.

 

판소리의 경우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이렇게 사실상 다섯 마당만 남았지만 노(能)의 경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레퍼토리가 몇 백에 달한다. 일본에서 노를 비롯한 전통 예능은 여전히 살아있고 활발하다. 그러니 부럽다.

 

 

전통문화와의 단절

 

 

우리의 경우 전통문화가 단절되어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하나로서 한글 전용이 있다. 예로서 판소리 다섯 마당만 해도 그 노랫말과 대사 내용이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잘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말인지 모른다.

 

소리꾼이 제아무리 소리를 잘 내고 기교가 좋다 해도 거기에 담긴 가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으면 깊은 흥취를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찾지 않게 되고 오늘날에 이르러 국가보조금으로 연명되는 보호 문화재가 되고 있다.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 저들의 어휘에 부족한 점이 있다 보니 여전히 한자어를 많이 쓰고 있어서 古典(고전)의 맥락이 우리보다는 쉽게 전달이 되고 그 결과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있다.

 

나 호호당은 일본이란 나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 가장 큰 까닭은 저들이 스스로의 전통과 문화를 잘 계승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6.25 이후 사실상 새롭게 만들어진 나라란 점에서 전통과 단절된 면이 크고 중국 또한 공산주의와 문혁을 통해 과거 문화와의 단절이 엄청 나다. 하지만 일본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통문화란 본질에 있어 神聖(신성)의 영역이기에 

 

 

이 대목에서 전통 문화란 말이 실질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전통문화란 것은 그 사회 속에 이어져오는 神聖(신성)의 줄기이다.

 

모든 전통예술은 그 본질에 있어 초월적인 존재 또는 神靈(신령)에 대한 축원이나 기도, 解寃(해원) 등을 그 본래의 목적으로 한다. 춤도 그러하고 노래도 그래하며 노래가 발전된 詩(시)가 그렇다. 음악 역시 박자를 중심으로 하는 신령한 존재의 리듬을 본뜨고 있다.

 

최근 나 호호당이 즐기게 된 일본의 노(能) 역시 다양한 스타일과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그 출발은 원래 신에게 비는 기도와 축원의 음악이요 노래이자 춤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노에서 주역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가면을 쓰는 순간 그 주연은 사람이 아니라 神(신)이 되어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이다.

 

가면을 쓴 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일본의 예능이 노(能)이지만 그게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각종 탈춤, 즉 처용무라든가 봉산탈춤, 강령탈춤, 하회별신굿탈놀이 등등 다양한 탈춤이 있다. 타령과 장단, 이는 신령의 리듬이며 그에 맞추어 노래하고 축도하고 해원하고 또 농담도 해가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우리의 전통 예능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경우 모든 전통놀이, 실은 神聖(신성)의 영역이자 일반인들에게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던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저 국가보조를 통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딱하다!

 

그 자리를 고등종교라고 하는 불교와 기독교 등이 차지했으나 그 역시 合理(합리)라는 이름의 근대성에 밀려나고 과학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 사회, 과연 우리들은 어디에서 삶의 暴壓(폭압)으로부터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그저 살벌한 대한민국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神聖(신성)의 문화를 보존하고 이어가고 있는 일본이 나 호호당으로선 그저 부럽기만 하다.

동북 아시아는 글로벌 공장

 

 

우리를 포함해서 일본, 중국, 타이완은 사실상 전 세계의 공장이다. 특히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건,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는 오늘날 글로벌 경제가 작동되지 않을 정도이고 우리나 일본 등의 기업들은 해외 생산도 많이 하고 있어 동남아시아 지역의 산업화를 이끌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좋지 않아도 경상수지가 그런대로 괜찮다는 사실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면에서 보면 특히 일본이 현저히 두드러진다.

 

우리를 포함해서 동북아시아 네 나라의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교역규모를 보면 유럽이나 미국 등에 비해 대단히 높다.

 

                                        제조업 비중(GDP 대비 %)                    수출입 합산(GDP 대비 %)

 

우리나라                                   39.3                                                           82

중국                                          40.5                                                           38.8

일본                                          30.1                                                           34.5

타이완                                      36                                                             117.8

 

미국                                          19.1                                                           27.1

독일                                          30.7                                                           87

프랑스                                      19.5                                                           63

UK                                            20.2                                                           61.7

이탈리아                                   23.9                                                           59.7

 

(수치표가 줄이 잘 맞지 않아서 비뚤하다, 양해바란다.)

 

이 수치들을 보면 우리와 일본 중국 타이완 등 네 나라가 제조업 비중이 높은 글로벌 공장임을 여실히 말해준다. 유럽 지역을 보면 독일의 제조업 비중과 교역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교역은 대부분 EU 지역 안의 나라들과 이루어진다.

 

 

외부 상황에 취약한 우리와 타이완

 

 

경제적 안정성에 있어 가장 취약한 나라는 우리와 타이완이다. 수출입 합산 즉 교역규모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는 82%이고 타이완은 117.8%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엄청난 물량을 해외로 수출하고 또 수입해오고 있어도 비중은 38.8%란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일본 또한 그렇다.

 

동시에 우리와 일본 중국 타이완 등은 원자재 수입, 특히 에너지 수입이 아주 크다. 달리 말하면 해외의존도가 크다.

 

타이완은 중미간의 갈등도 있고 해서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우리 역시 북한의 핵을 감안하면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게다가 교역 비중이 굉장히 크다. 수출하고 또 수입해와야만 경제를 운영할 수 있다. 우리와 타이완이 그만큼 해외시장과 정치적 형세 변동에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다는 말이다.

 

타이완과 더불어 우리 대한민국 경제는 그야말로 외부 상황의 변화에 대해 지극히 민감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대두된 에너지 문제가 상황을 가중시킨다.

 

 

특히 취약한 에너지 의존성 

 

 

독일의 경우 이미 풍력이나 태양광 지열발전 등등 대체 에너지의 비중이 50%를 넘어섰으며 얼마 전 원자력 발전마저 완전 중단되었다. 에너지 자립에 성큼 다가서고 있는 독일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경우 대체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하다. 원전과 원유 가스 등에 사실상 의존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보다 조금은 더 나은 편이지만 그 역시 그렇다.

 

에너지 자립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이야 원유와 가스가 넘쳐나는 나라이고 조만간 원전을 없앨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중국 일본 타이완 등은 에너지 자립이란 점에서 대단히 취약하다. 중국을 빼고 우리와 일본 타이완 등은 에너지 문제만큼은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미국의 보호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오늘날 전 세계의 바다,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인도양의 교역 루트를 외견상 無償(무상)으로 보호해주고 있는 나라가 미국인 까닭이다. 그런 보호가 있기에 우리나 일본 그리고 타이완 등이 자유롭게 물건을 실어가고 실어올 수 있다. 실은 중국 또한 일정 부분 미국의 덕을 보고 있기에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무상 보호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아시아 내륙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힘을 쓰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문제도 그렇고 교역 문제 등을 보면 우리와 일본 타이완 등은 기본적으로 親美(친미)하지 않고선 살 길이 없다. 대중국 수출이 크지만 그럼에도 미중 간의 갈등에 있어 우리는 미국 쪽에 서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나타난 현상, 우리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실로 우려되는 일이며 최종 소비재의 경우 중국 내수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우리 소비재 제품이 타 제품과의 현저한 우위를 보이지 않은 이상 중국 시장에서 잘 팔려나가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 본다, 이는 품질이나 가격의 문제라기보다도 중국인의 마음 바탕에는 우리를 밑으로 보는 심리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몰락을 견디고 살아남은 일본 

 

 

이 대목에서 일본에 대해 조금 얘기를 해본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인식을 보면 일본 경제가 이젠 별 거 아니란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각도를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오늘날 우리와 일본 중국 타이완 등이 글로벌 공장 노릇을 하고 있으나 30-40년 전을 돌이켜보면 제조업은 사실상 일본의 독무대였다. (독일의 제조업과 수출은 그 대상이 예나 지금이나 유럽 내부란 점이 있다.)

 

일본이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지금까지 과거의 위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바 그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 스스로의 쇄신부족이나 무능력함에 있는 게 아니다. 버블 붕괴 이후 우리와 중국의 제조업이 눈부실 정도의 성장세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반 저가의 공산품은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반도체를 비롯한 중간재 분야에선 우리와 타이완이 엄청난 발전을 했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이 더 이상 예전처럼 활개를 칠 수 없었던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와 중국의 성장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나 호호당은 일본의 그간 과정은 “잃어버린 30년”이 아니라 우리와 중국 그리고 타이완과의 경쟁에서 대단한 노력을 통해 살아남았다 보는 것이 더 온당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일본이 우리와 중국 타이완과의 엄청난 추격을 받는 과정에서 여전히 살아남았다는 게 오히려 대단하다는 얘기이다.

 

 

모든 키는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어서

 

 

그리고 여전히 이 모든 게임의 키(key)를 쥐고 있는 주체는 바로 미국이다.

 

일반 소비재는 저가 생산이 가능한 중국에서 가져다 쓰고 반도체와 같은 부품은 우리와 타이완에서 가져다 쓴다. (물론 반도체의 원천 기술은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들은 저비용 생산을 위한 해외진출만이 아니라 현지 고객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유럽과 미국 등지에도 대단히 많이 진출해있다. 그 바람에 무역수지보다 경상수지를 보면 늘 상당한 흑자를 보이고 있으니 일본의 경쟁력은 여전히 살아있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선 우리나 중국이 따라가기 어려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이고 인구가 감소 추세로 들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그간 손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름으로 최선을 다해 몰락을 견뎌내고 살아남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장차 또 다시 글로벌 패권을 노릴 정도의 강대국이 되리라 보진 않지만 거품 붕괴 이후의 어렵고 긴 터널을 잘 통과해왔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는 얘기이다.

 

 

일본을 보면 우리의 문제가 드러난다

 

 

이런 대목들을 거꾸로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우리 또한 초고령사회로 가고 있고 인구는 감소세, 출산율은 최악이기에 장차의 국가재정운영이 어려울 것임은 불 보듯 훤하다.

 

제조업과 수출을 보면 자동차도 있고 2차 전지도 있지만 여전히 반도체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 조선업의 경우 인건비 압력이 엄청나다는 점, 더불어 모든 방면에서 소수의 대기업 중심이란 리스크를 안고 있다. 북핵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 교역에 있어서도 미중 간의 갈등으로 인한 압박이 크다, 대체 에너지 문제에 있어선 그야말로 지지부진, 낙후되어 있다.

 

일본은 그간에 많은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극복해내었고 그 바람에 저처럼 살아남았지만 우리는 과연 어떨까? 하는 의문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글은 우리가 장차 맞닥뜨리게 될 문제에 대해 주로 얘기해보았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다음 글에선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책을 쓰느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너무 소원할 것 같아서 나름 신경을 썼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만 든다. 그간에 올린 글들을 다시 음미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목요일 낮 여수 엑스포역에 내리니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갈수록 굵어졌다.

 

이번에 가보고자 했던 곳은 여수의 중심에 잇는 고소대 언덕길의 카페 빠삐용이었다. 예전에 한 번 들렀는데 인상이 남아서 다시 찾아갔다. 화가가 하는 곳인데 멋진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물고기를 그린 작품들이 기가 막히다. 카페 2층으로 오르면 넓은 유리창에 바깥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구경하기 참으로 좋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수 옛 항구의 모습이 절경이다. 바로 아래로 수산시장이 있고 항구 앞에 이순신 장군이 배를 만들었다는 아담한 장군도가 보인다. 좀 더 떨어진 돌산대교 너머로 보이는 남해 바다가 참으로 낭만적이다.

 

저녁 시간 지인의 돌산 별장으로 들어가서 데크의 테이블에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즐기는 데 비바람 적당히 들이쳐서 분위기는 더욱 좋았다.

 

소맥을 곁들여 통영 멍게와 참돔 숙회, 갑오징어 등을 먼저 먹은 뒤 큼직한 꽃게 찜을 본격적으로 먹었다. 자정이 되자 데크 위 차양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지칠 줄 모르는 타악기였고 강약 조절로 불어오는 바람은 천연의 퉁소가 되어 정취를 더했다.

 

새벽 2시 무렵 주인 부부와 몇몇 지인들이 시내로 돌아가니 남은 이는 함께 내려간 두 사람,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새벽녘 잠에 들었다. 풍우는 밤새 그치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여전했다. 집 앞에 내려다보이는 가막만이 온통 술렁대고 있었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고 창을 열어젖히고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즐겼다. 바깥의 희부연 비바람이 실내로 습기를 마구 몰아넣었지만 보일러를 가동하고 있던 터라 무척이나 쾌적했다.

 

탁 트인 거실에 앉아 빗발이 천천히 물위를 걸어가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커피와 담배를 실컷 즐기다가 점심 무렵이 되니 출출해졌다. 이에 갑오징어를 넣은 라면을 끓여서 요기를 했다.

 

한가롭다 보니 담배갑에 인쇄된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한쪽 면엔 폐암, 반대편엔 형편없이 망가진 허파 사진과 금연 상담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오늘의 담배는 폐암이구나, 하지만 50년간 즐겨온 담배인데 뭘 어쩌라고!

 

흡연이 제한되면서 나 호호당의 삶은 크게 변화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거의 가질 않는다. 해외여행도 비행시간이 3시간 이상 되는 곳은 아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영화관도 가질 않고 고층 호텔이나 식당 같은 곳 역시 마찬가지, 마치 해녀가 크게 숨을 들이쉰 후 잠수하듯이 나 또한 큰 매장 같은 곳에 들어가면 최대한 빨리 빠져나온다. 최근엔 성소수자란 말이 유행인데 나 역시 담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수 돌산의 바닷가 별장은 술 마시고 담배를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 자연의 바람 속에 담배 연기를 실어 보내면서 한껏 맘껏 놀고 쉴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여수 돌산은 풀 빌라와 호텔, 대형 카페들이 마구 들어섰다. 서울에서 젊은 연인들이 들이닥친다. 여수 밤바다, 그저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만 유행과 대세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2012년 KTX가 들어오고 여수 엑스포 이후 줄곧 그렇다. 전국이 불황이지만 여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이다. 초호황이다.

 

풀 빌라, 성수기엔 하룻밤에 돈 백 훌쩍 넘는 곳을 2박3일로 놀러오는 젊은이들, 왔다 가면 3백만 원 정도는 가볍게 깨진다. 고액 연봉의 정규직 일자리는 드물 것이니 1년 내내 돈을 모아서 한 방에 쓰고 간다. 왜 그렇게 하는지 여러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세대가 다르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무튼 여수는 목하 호황, 초호황이다. 2012년을 기점으로 호황이 시작되었으니 내년 2024년이 절정일 것이고 18년 뒤인 2030년이면 심한 조정 국면이 닥칠 수도 있겠다. 특히 2027년이면 서울에서 통영까지 2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KTX가 개통된다고 하니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신기한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의 신, 즉 河伯(하백)이 아니었나 싶다. 청계천 정비, 4대강 정비, 여수 해양 엑스포 모두 물과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 박근혜와 문재인 정권 당시에는 降水(강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여수의 지인들은 내려갈 때마다 서울에서 손님이 왔으니 저들 생각에 좋은 곳으로 안내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 정말 고맙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돌산 별장에서 바흐 음악 크게 틀어놓고 라면 끓여먹으면서 보내는 한가로움이다. 다만 이번엔 탁 트인 남해 바다가 보이는 향일암에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비가 너무 심해서 포기했다.

 

하지만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바람에 이번 여수행은 그야말로 최고의 휴식이었다, 서늘하고 습한 바람 듬뿍 쏘이고 왔으니 말이다. 마음속으론 늘 서늘하고 습한 스코틀랜드를 한 번 가봤으면 하지만 장시간 참아야 하는 담배 문제로 해서 결국 가보지 못할 것 같다.

 

금요일 오후 그냥 집에만 있지 말자고 해서 여수 시내로 나갔다. 그다지 내키지 않고 그저 숨어있고 싶은 생각에 문득 “히든 베이”라고 하는 여수의 럭셔리 호텔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뒤 시내 중심가로 돌아와 옛날 풍의 경양식 집을 찾아가서 생선가스를 먹었다.

 

輕洋食(경양식)이란 일본이 과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서양식 간이 스테이크를 말한다. 커틀릿이 가스가 되었으니 돈가스 비후가스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싼 음식이었는데 오늘날엔 전국적으로 거의 사라졌다. 걸쭉한 스프와 함께 살짝 데워진 모닝빵이 나오고 샐러드가 아니라 일본식 ‘사라다’가 나온다. 그 뒤에 메인과 함께 접시에 얹힌 밥이 조금 나오고 마지막으로 음료수를 한 잔 준다. 예전에 종로2가 YMCA 회관 그릴에서 팔던 경양식은 추억의 맛이다.

 

비오는 여수 거리에서 고풍의 경양식을 즐긴 다음 산책을 했다. 여수를 그간 열 번도 더 갔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여수 도심의 번화가를 구경했다. 여수 사람들은 절대 그곳을 안내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저들에겐 전혀 볼 것도 없는 거리인 것이고 나에겐 흥미로운 장소인 것이다.

 

걷다 보니 원형을 살려 복원한 옛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만났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의 중앙은행 역할을 맡았던 은행이다. 오늘날 한국산업은행의 前身(전신)이 바로 조선식산은행이었으니 한 때 은행에서 근무했던 내겐 나름의 감회가 들었다.

 

계속 비는 거세게 내렸고 늦은 시각 돌산 별장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그쳐있었다.

 

세찬 비바람에 살이 꺾인 우산을 버리고 기차를 탔는데 용산에 도착하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약간 후회하면서 흡연장까지 후다닥 뛰어가서 몇 모금 담배를 빨고 나서 택시를 탔다. 반포대교가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냥 익숙한 서울이었다.

 

옛책 속의 한 구절

 

마흔부터 지금까지 다 읽기를 십 여 차례 거듭해온 책이 하나 있다. 淮南子(회남자)라고 하는 책이 그것이다. 自然循環(자연순환)과 운명의 이치를 연구해오는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책은 老子(노자)와 莊子(장자)를 기본으로 하고 천문 지리 등등 당시까지의 다양한 학설과 주장들을 두루 모아서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글귀 또한 무척 아름답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중국무술도장에서 화교 사부로부터 漢文(한문)을 익힌 것이 평생에 걸쳐 지식의 넓은 세계를 두루 섭렵하는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한문으로 된 회남자를 읽어낼 수 있고 어지간한 현대 지식은 영어 원문으로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회남자 속엔 좋은 글귀들이 많다. 그냥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곱씹다보면 문득 깨닫는 바가 있는 문장들이 많다. 이에 오늘은 그런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 느낀 바 생각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原流泉浡(원류천발),沖而徐盈(충이서영),混混滑滑(혼혼활활),濁而徐清(탁이서청), 이렇게 겨우 16개 자에 불과한 문장이다.

 

약간 풀어서 옮겨본다.

 

물의 흐름이 산이나 언덕 등지에서 처음 솟을 때 우린 그것을 샘이라 한다. 비 오기 전엔 그냥 움푹한 구덩이였는데 샘물이 계속 솟아나다 보면 서서히 차오른다. 그러다가 그 물이 많아지면 마침내 구덩이 밖으로 넘치게 된다. 처음엔 바깥의 흙과 섞여서 흙탕물이지만 계속 물이 넘쳐 나오다 보면 줄기를 이루어 맑아지고 또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러면 그게 시내나 개울이 된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땐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니.

 

그랬는데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다시 문장을 읽었을 땐 아니? 이렇게 대단한 말이 있었단 말인가 싶었다.

 

功(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는 핵심이 저 16자 문장 속에 오롯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애고 한심해라!

 

 

독자님께서 물 또는 물방울이라 여기고 한 번 생각해보자. 처음 샘이 솟을 때 구덩이는 물의 양에 비하면 우주와도 같이 넓을 것이다. 작은 구덩이일지라도 한 방울 물의 입장에서 그걸 가득 채우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방울이 솟아나고 모여야 할까? 끝도 없이 모이고 또 모아야 구덩이를 채우고 그래야만 넘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처음엔 한심한 노릇일 것이다. 이걸 언제 다 채워? 百年河淸(백년하청)이지 싶다.

 

이렇게 처음엔 텅 빈 구덩이였지만 끊임없이 물방울이 모이다 보면 가득 차게 된다고 글에선 이르고 있다, 沖而徐盈(충이서영)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순간 넘쳐서 구덩이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면 그곳은 마른 땅일 것이니 즉각 땅속으로 다시 스미거나 아니면 흙과 섞여서 흙탕물이 될 것이다. 아, 나는 흙탕물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 흐름 즉 淸流(청류)가 되고픈 데 싶다.

 

 

청류 그리고 탁류

 

 

하지만 현실은 청류가 아니라 濁流(탁류)가 고작이다. 아니 탁류는 고사하고 그냥 마른 땅속으로 스며서 다시 사라지지 않으면 그로서 천만다행이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리고 청년창업자들이 3년을 못 가서 ‘신불자’가 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로 되돌아간다. 흐름 즉 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淸流(청류), 맑은 흐름을 말한다. 중국과 우리 그리고 일본과 같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청류라 하면 고고하고 도도하게 자신의 원칙과 신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선비를 일컫는다.

 

하지만 그런 청류는 권문세가에 태어나지 않은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즉 금수저나 다이아몬드 수저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 (고려 말 이성계의 앞길을 막았던 최영 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처럼 한 것 역시 최고 명문의 집안에 황금이 켜켜이 쌓여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이에 역사를 통해 실제의 현실은 과거에 붙고 벼슬을 하면서 끊임없이 세력에 붙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나마 현재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력을 이루어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던 이들을 黨人(당인), 즉 ‘무리의 사람’ 또는 ‘떼거리’라 불렀다. 조선시대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등등 말이다.

 

과거급제부터 실은 뒷배가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랬다. 이에 치사하고 더러워서 포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비벼볼 데가 없어서 그냥 초야에 파묻혀 날이 개면 논밭을 갈고 비가 오면 글을 읽으며 살아가는 선비도 전혀 없진 않았다. 晴耕雨讀(청경우독)이란 말이 그것이다. 志操(지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랬던 경우가 더 많았다.

 

옛날 사서삼경을 읽고 공자왈 맹자왈 하면 배운 사람, 지식인 또는 文人(문인)이었던 시절의 얘기이다. 일반 常民(상민)들이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한 수 접어주었다는 얘기이다. 지체가 있으셨던 문인들이었다.

 

 

보통 사람은 반은 맑고 반은 탁한 법이어서

 

 

하지만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도 淸流(청류)가 있고 濁流(탁류)가 있으며 청류나 탁류 또한 그 안에 여러 등급이 있다.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오늘날에도 겉으론 청류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이면을 보면 여전히 빌붙어야만 뭔가 자리를 차지하고 행세를 할 수 있다. 나름 인정받는 이른바 대학교수, 주요 일간지나 방송국의 기자나 논평가, 고위직 공무원들도 때가 되면 정치권과 어떻게 해서든 인연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종교계 또한 그런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정권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야말로 그 청류란 사람들에게 생사가 달린 큰일이다.

 

반대로 탁하고 천한 것 같이 보여도 실은 청류 또는 淸貧(청빈)한 이도 있다. 실로 천태만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절반은 맑고 절반은 탁하다. 반청반탁. 맑고자 해도 맑을 수가 없고 탁하고자 해도 그렇게까지 탁하긴 어려운 보통의 사람들이다.

 

이제 다시 앞에서 소개한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서서히"란 말이 중요하다

 

 

처음엔 텅 비었으나 서서히 차오르고 처음엔 진흙탕 물이지만 서서히 맑아진다고 하고 있다.

 

沖而徐盈(충이서영),濁而徐清(탁이서청).

 

공통의 요소는 서서히 즉 徐(서)란 글자에 있다.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이 즉각 대박을 내는 경우는 없고 현실은 정반대, 대다수가 도중에 실패로 끝이 난다. 채워야 할 공간이 한 방울의 물에 비하면 너무나도 큰 까닭이다. 성공하려면 그저 하염없이 구덩이에 물을 채워야 한다. 다시 한 번 얘기이지만 서서히 徐(서).

 

처음부터 고고하고 지조가 있으며 원칙을 지키며 살아갈 순 없는 세상이다. 밥을 먹어야 하고 생활을 해야 하며 ‘소확행’도 해야 할 것이니 우선 당장은 돈부터 벌어야 할 것이다.

 

돈 버는 일이 어디 그리 쉽나, 타고난 두뇌와 끈기를 바탕으로 명문대학 나오고 집안 뒷받침도 있어야만 사회 진출의 첫발부터 연봉이 괜찮은 곳에서 시작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은 또 그런 불만과 불평등을 내세워 권력을 쟁취하고자 한다.

 

최근의 N포 세대들을 보노라면 마치 옛날 초야에 묻혀 살아가던 선비 생각이 난다. 오늘날엔 교육수준이 그런대로 다 높고 토익(TOEIC) 점수도 제법 되니 모두 선비 계급 아닌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섬기는 나라는 예전의 淸(청)제국이 아니라 미국이니 四書三經(사서삼경)이 아니라 영어를 공부해야 함도 당연지사.

 

그나마 다행인 건 옛날엔 계급이 확실했지만 오늘날 세상은 자본주의이고 데모크라시라서 정말 좋아진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소확행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N포로 살 것인가 또는 공무원 시험 간신히 붙거나 나름 취업해서 딩크로 갈 것인가, 혹은 자녀를 낳고 지지고 볶으며 살 것인가, 금수저 배경이었다 해도 오늘날의 재산은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으니 그 누구도 보장된 삶을 살긴 어렵다.

 

험한 세상이다, 하지만 언젠들 편한 세상 있었으랴 싶다. 세상은 항시 末世(말세)인 법.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런 속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물방울이 구덩이를 끊임없이 채워야만 차오르고 처음엔 흙탕물일지라도 하염없이 물이 치솟다 보면 마침내 淸流(청류)를 이루고 흔연히 흘러갈 수 있다는 얘기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러니 청류 탁류 따질 일도 아니고 어느 세월에? 하면서 한탄할 일도 아니다. 청류가 탁류되고 탁류가 청류될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산골짜기의 샘물이 모이면 시내가 되고 개울이 되며 그게 또 모여서 강이 川(천)이 되고 그러다가 더 모이면 江(강)을 이루어 유장하게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간다.

 

이를 일러 源遠長流(원원장류)라 한다. 물의 근원이 저 멀고 먼 산으로부터 길게 흘러왔으니 바다로 간다는 얘기이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니 내(川)를 이뤄 바다에 가나니, 하는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의 구절 또한 그것이다.

 

회남자의 한 구절이 내게 이런 거야 하며 알려준 내용을 글로 풀어보았다.

가치관, 이런 말은 좀 어려워서 

 

 

가령 누군가 독자에게 “당신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런 질문을 해온다면 “글쎄요, 제 가치관이라, 딱히 이렇다고 말하기가...” 하면서 망설이게 될 공산이 크다.

 

이에 당장 말로 답하기가 어려우시면 어디 한 번 시간을 갖고 글로 써보시죠, 이런 제의를 받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가치관,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지만 무척 추상적인 데가 있어서 말이든 글이든 명료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질문의 방식을 바꾸면 쉬워진다

 

 

이럴 때 질문을 바꾸면 아주 쉬워진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닮고 싶은 사람, 또는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으실 터인데 한 번 말씀해보시죠, 이렇게 물어보면 쉽다.

 

누구나 마음속에 닮고픈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을 것이고 멋지다고 여겨지는 사람 또한 당연히 있을 것이니 바로 그 사람 혹은 사람들을 답하면 된다.

 

닮고픈 사람, 멋진 사람, 또는 동경하는 사람, 한 명이어도 좋고 여러 명이어도 상관이 없다. 바로 그 사람들이야말로 당신의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왜 당신이 그 사람을 존경하는지 닮고자 하는지 아니면 멋지다고 여기는지 등등을 한 번 살펴볼 것 같으면 그게 바로 당신의 가치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예로서 그 사람이 역사의 인물인 이순신 장군이라 하자. 그러면 떠오르는 생각으로 忠節(충절), 희생정신, 지략 등등 여러 요소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큰 공을 세웠으나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으니 悲壯美(비장미)도 넘친다.

 

이에 당신이 이순신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悲壯美(비장미)에 있다면 당신은 나름 영웅의 오연한 기개를 높은 가치로 치는 사람인 것이니 이미 벌써 당신의 가치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순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로서 또 다른 요소를 더 높게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그건 그 사람 나름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좋아하고 동경하고 닮고자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서 내가 무슨 까닭으로 저 사람들을 닮고 싶거나 멋지다고 여길까? 하고 생각해보면 바로 그 과정 자체가 당신의 다양한 가치관을 스스로 나타나게 만든다. 나아가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알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그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인물을 本(본)으로 삼고 있나요? 

 

 

우리말에 “본받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本(본)을 따라 한다는 말이다. “본보기”란 말도 本(본)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본뜨다”는 말 역시 본으로 삼아 그대로 만든다는 말이다.

 

本(본)이란 한자어에는 “모범으로 삼을 대상”이란 뜻이 있는데 바로 그 말이다.

 

영어 용어로서 역할 모델(Role Model)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미국의 로버트 머턴(Robert Merton)이란 사회학자가 만들었고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이 역할 모델이란 바로 本(본)과 의미가 같다. 이미 우리말에 좋은 표현이 있었고 아주 오래 전부터 써온 단어이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本(본)이 바로 당신의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의를 갖춘 인사말로서 “성불하세요”,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成佛(성불)이 무언가? 바로 부처님처럼 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부처님을 본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나 호호당은 불교에 대한 信心(신심)을 가졌지만 부처님이 나 호호당의 本(본)은 아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를 엄청나게 존경하지만 그렇게 되기란 사실 어림도 없는 얘기가 아닌가!

 

부처님이나 예수님, 닮고자 해도 그게 너무나 벅차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당연히 없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본을 삼으면 된다.

 

이처럼 本(본)은 역사상의 인물이나 偉人(위인)이 아니어도 되고 살아있는 셀럽이나 유명인이 아니어도 된다. 예컨대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닮고픈 사람이야, 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독자야말로 좋은 아버지를 둔 훌륭한 분이자 동시에 복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절대 무방하다.

 

본은 당연히 사람이어야 하고 또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본을 가진 당신의 가치관도 명확해지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본은 여러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여러 사람들이 가진 여러 좋은 요소들의 조합이 바로 당신의 가치관이란 것을 말해준다.

 

본은 어려서부터 지닐 수도 있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처한 환경과 경험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정상이다.

 

 

나 호호당의 마음속 本(본)

 

 

나 호호당의 예, 즉 나 호호당의 본을 들어본다.

 

어려선 배를 타고 세계를 일주했던 탐험가 마젤란이었고 중학교 시절엔 史記(사기)를 쓴 사마천과 프랑스 혁명이 낳은 풍운아 나폴레옹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실크로드를 탐험했으며 중국 간쑤성 둔황 막고굴의 유물을 연구해서 학계에 알렸던 영국의 “아우렐 스타인 경”이었다. 또 둔황이란 중편 소설을 쓴 일본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 또한 호호당의 본으로 남아있다.

 

사실 더 있지만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겠기에 생략한다.

 

마젤란, 사마천, 나폴레옹, 아우렌 스타인 경, 그리고 이노우에 야스시, 이런 사람들이 나 호호당의 본이라 하겠는데 왜 그런 가를 잘 따져보면 그 속에 나 호호당의 가치관이 잘 버무려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탐험가적인 기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기존의 틀을 넘어서려는 破格(파격), 자신의 안위나 영달보다는 그 너머 더 큰 것을 지향하는 이상주의적 성향 등이 있다.

 

나 호호당이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운명의 과학을 만들어낸 것, 증시에 대해 독창적인 기술을 다듬어낸 것 등은 바로 앞의 본을 따라 살겠다는 의지와 지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각자의 마음속 本(본)이야말로 각자의 가치관을 나타낸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이로서 오늘 이런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 얘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끝났다. 지금까지는 세팅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일까? 

 

 

올 해 초 “산다는 것, 그리고 잘 잘 산다는 것”이란 책을 엮어서 내놓았다. 책을 내고 나서 그 제목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 호호당의 마음속에 커다란 화두로 자리를 잡아왔다.

 

사는 것은 태어난 이상 어차피 살아가야 하고 살아내야 할 것이니 그렇다 치고 그를 떠나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과연? 하는 질문이었다.

 

오늘의 글은 그 질문에 대해 그간 숙고해온 나름의 해답이다.

 

잘 산다는 것은 저마다 마음속에 지닌 본을 따라서 또 본을 받아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애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얘기이다.

 

저마다 本(본)이 다를 것이니 正答(정답) 또한 당연히 없다. 본이란 것이 강요한다고 될 일도 아니요, 그렇게 되어야 할 까닭 또한 없다. 저마다의 가치관이야말로 다양성의 기틀이다. 그 다양한 가치관들이 때론 충돌하고 갈등하기도 하고 거꾸로 타협하거나 조정을 보고 또 조화를 이루면서 이 세상이 만들어져왔고 또 만들어져가는 것이니 말이다.

 

올 해 초에 책을 엮으면서 제목을 달고 난 뒤 가지게 된 숙제이자 화두는 과연 잘 산다는 것이란 어떻게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간의 사색을 거쳐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만들었다.

 

각자의 마음속 멋지고 존경하고 닮고 싶은 어떤 이를 本(본)으로 삼고 따르고 받아서 사는 것, 꼭 本(본)대로 되진 않을지언정 최대한 유사해지고자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잘 산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답변이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지만 독자들에게도 작은 도움이나 어드바이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또는 기대를 하면서 이런 글을 올린다.

 

 

상강이 지났으니 2022년도 저물어가네

 

 

이제 서리가 내린다는 霜降(상강)이 지났다. 가을 수확이 본격화되었고 그로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22년 또한 얼마 안 가서 過去(과거)가 될 것이니 늘 해마다 이맘때면 늘 感慨(감개)한 무엇을 가지게 된다.

 

증시,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니 

 

 

증시가 겁나게 나자빠지고 있다. 食怯(식겁), 겁을 먹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연일 날만 밝았다 하면 계좌에서 돈이 줄줄 새고 있으니 말이다.

 

종합주가지수(kospi)의 경우 작년 최고치 3,316.08 포인트를 찍은 후 오늘 종가가 2,292.01이니 대략 31%의 손실률이다.

국민 우량주인 삼성전자를 한 번 보자. 작년 상반기 평균주가는 82,800 원 정도였는데 오늘 마감이 56,400 원이니 그간에 26,400 원이 빠진 셈, 대략 32% 정도 손실을 보고 있다. (최고치로 따지면 42%의 손실이다.)

 

어지간한 종목은 반 토막이 났고 약간 소형의 ‘잡주’성 종목은 1/3이 기본이다.

 

글로벌 침체다 인플레이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금융위기 직전이다, 등등 말은 무성하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는 미국 연준 의장의 맥 빠지는 實吐(실토)처럼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현 시점에서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린(Green)을 외치던 유럽에선 전기 생산을 위해 석탄을 때기 시작했다고 하고, 독일의 거대 에너지 업체들은 구제금융을 긴급 신청했다는 말도 들린다.

 

아무튼 큰 문제에 글로벌 경제가 봉착했다는 것, 엄연한 현실이다.

 

 

실은 늘 겪어온 일이라서 

 

 

그런데 말이다, 지금의 이런 모습, 상황, 장면, 나 호호당은 사실 전혀 놀랍지 않다. 1983년부터 근 40년간 주식이란 것을 해오면서 그간에 꽤나 많이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증시는 1986-1989년까지 무려 7배나 올랐다가 그 이후 1990년에 대폭락했다. 절반 이상 꺾어지는 폭락장은 이번까지 포함하면 10번이나 된다. 30년간 10번의 대폭락이니 거의 3년에 한 번은 이런 일이 생겼다. 10번의 폭락이 있었으니 그 반대의 경우 즉 큰 상승장도 10번은 된다.

 

해마다 치르는 연례행사는 아니지만 증시는 늘 이렇다. 30년간 10번의 폭락과 10번의 급등이 있었으니 전혀 놀랄 일도 아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2011-2016 사이, 무려 6년에 걸친 지루한 횡보국면이었다. 사실 이 때가 오히려 나 호호당으로선 정말 주식을 그만 둘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증시는 늘 이렇다. 거침없이 상승했다가 이윽고 무지막지하게 하락한다. 늘 되풀이되는 이런 과정은 사실 증시의 茶飯事(다반사)라 하겠다.

 

이런 말을 쓰고 나니 약간 걱정은 된다. 독자들 중에 주식 하락으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기분이 상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은 바로 그런 분을 위해서 쓰고 있다.

 

그렇다고 위로하려는 것은 아니다. 손해가 난 것은 현실이고 현실은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증시란 것에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런 일은 앞으로도 늘 겪게 될 것이란 얘기를 드린다. 아예 이번 일로 다시는 손을 대지 않으면 모를까, 다시 눈이 가고 손이 간다면 이런 상황에 대해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작년부터 나 호호당이 해온 과정,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작년부터 해온 과정을 조금 알려드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경우 작년 7월 중순에 대세 꼭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지했고 그 이후 늘 조심하기 시작했다. 목표가를 낮게 잡은 상태에서 스윙거래, 비교적 단기간에 걸쳐 사고팔고를 반복해왔다.

 

그 이후 예상대로 서서히 내리는 국면이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상승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살폈다. 물론 꾸준히 내리다 보면 언젠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때가 올 거란 점, 능히 예측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이 시각 서울 우면동 집 창밖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시간당 30 밀리미터의 장대비가.)

 

 

제1차 예상 지지대

 

 

하락이 나올 경우 제1차 지지대를 코스피 2700-2600 포인트대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만 해도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 바람에 이젠 바닥이 나왔다고 글까지 올렸는데 그만 틀렸다.)

 

그런데 6월 9일자 금요일 마감 시황을 보면서 아니란 걸 알았다. 다음 주 초반에 급락이 나올 경우 이거 왕창 밀리겠는데 싶었다. 그래서 그 날 주식 보유액을 원금의 27% 대로 대폭 줄여놓았다.

 

 

제2차 예상 지지대

 

 

작년 여름부터 설정해놓은 제2차 지지대는 종합지수 2300 부근이었는데 지금 바로 그 상황까지 왔다. 그런 까닭에 최근 며칠 사이 주식의 매수비중을 원금의 35% 로 조금 높였다. 그런데 과연 이 선에서 마무리가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래 일이 닥치면 그런 법이다.

 

 

최후의 예상 지지대

 

 

당연히 마지막 지지선, 즉 제3차 지지선을 하나 더 설정해놓은 게 있다. 종합지수 週棒(주봉)에서 634주 이평선인 2180 포인트대가 그것이다. 지금보다 120 포인트 정도 밑인데 그 선이면 과감하게 베팅에 들어갈 생각이다.

 

주봉으로 634주 이평선은 12년 이동평균선(52 곱하기 12)에 해당되는데 이는 우리 경제의 死活(사활)을 결정짓는 선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 선을 잠시 무너뜨리면 모를까, 그 선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기본이 되면 그게 바로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 시작이라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니 나중엔 그렇게 될 순 있어도 반드시 그 선에선 반등이 나올 것이고 그로서 상당한 수익이 기대되기에 대거 베팅할 생각이다.

 

물론 지금의 2300 선대를 위 아래로 놀다가 위로 돌아서는 모습이 확정되면 당연히 매수비중을 65% 이상으로 높이면 된다.

 

 

사실상 지금이 바닥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2180 포인트 대의 마지막 제3 지지선은 아직 올지 말지 모르는 일이고, 사실 지금 2300 포인트 대가 바닥권이라 여긴다. 다시 말하면 지금쯤 매수해두면 얼마를 먹어도 먹고 나올 수 있을 거라 여긴다. 강조하지만 이미 벌써 주식은 ‘매수의 영역’이란 얘기이다.

 

 

2600-2700 선대가 이젠 저항구간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하나 강조해둘 것이 있다. 강조 또 강조!

 

장차 반등이 올 것인데 그 우선적인 목표치는 종합지수 2700-2600 포인트 구간이란 점이다. 앞에서 작년 여름 하락이 올 경우 제1차 지지선으로 설정했던 바로 그 지점이 이젠 ‘저항대’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고점에서 많이 물려있는 경우 무조건 본전을 찾을 때까지 들고 있을 게 아니라 일단 2700-2600 구간까지 반등할 경우 어느 정도 비중을 줄여 놓을 필요가 있겠다는 얘기이다.

 

바로 그 저항대를 돌파하고 세게 반등할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는 점, 나중에 오른다 해도 그건 꽤나 훗날의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라면 그 정도에서 일단 損切(손절)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법이다.

 

 

지금이 바닥일 수 있는 근거 

 

 

앞에서 제3차 지지선으로 2180 포인트대를 얘기했지만 환율을 보면 지금 2300 포인트 구간이 바닥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얘기를 드린다.

 

그 근거는 국고채 3년물과 원/달러 환율이다.

 

환율의 경우 그간 상한선으로 보고 있던 1303.86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는 일종의 極限(극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국고채 3년물의 금리가 최근 3.260을 넘어갔다가 되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두 일시적인 일이라 본다. 그렇기에 현재의 2300 선 정도면 충분히 바닥권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원/달러 환율이 1303.86원 위에서 고착화될 경우 그건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 시작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일단은 일시적인 상황이고 확정적으로 단정 짓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오늘의 글을 정리하면 현재 구간 즉 종합지수 2300 이하에선 바닥권이란 점이다. 일시적으론 2180까지 생각해볼 순 있겠으나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고 이 정도면 매수 영역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 그렇기에 손실 때문에 번민하는 분이라면 이젠 좀 더 인내할 일이란 얘기였다.

바닥을 통과한 것으로 판단되는 증시

 

 

우리 증시는 바닥을 지난 것으로 판단이 된다. 종합주가지수 기준으로 5월 12일의 장중 저점인 2,546.80 포인트가 바닥이었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일단은 2,906 포인트 부근까지의 반등장세가 나올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서 2906 포인트까지의 반등 이후에 장세가 위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아래쪽으로 틀 것인지를 봐야 하겠다는 얘기이다.

 

 

기류 변화를 감지했으니 

 

 

지난 주 글로벌 경제의 기류가 묘하게 부드러운 쪽으로 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보면 러시아가 체면치레를 위해 돈바스 지역이라도 억지로 차지해보고자 집중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뒷심이 빠진 것 같은 정황이다. 반면 서방의 무기와 군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그간에 동원된 예비대의 훈련과 장비 숙달을 통해 멀지 않아 전세를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나 호호당의 판단이 아니라 미국전쟁연구소(ISW)의 보고서를 개전 초부터 꾸준히 읽어오면서 든 생각이다.

 

아울러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더 이상 강행하기가 어렵다는 내부의 실토가 나왔다는 점이다. 며칠 전 25일 “치솟는 실업률(4월 6.1%)은 (공산당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리커창 부총리의 발언이 그것이다.

 

제로 코로나 때문에 자칫하면 경제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얘기이니,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내부 권력투쟁은 어떻게 되든 그를 떠나 중국이 더 이상 코로나19를 잡기 위해 강경책만을 쓸 수는 없겠구나, 나름의 조정이 있으리란 생각을 들게 한다.

 

글로벌 경제 기류가 반전되고 있다는 징후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원 달러 환율, 급락을 지속하던 엔화나 위엔화의 흐름이 멈추고 있다는 점,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월 초에 고점을 기록한 후 하락세로 돌고 있다는 점 등을 보면 그렇다.

 

얼마 전에도 얘기한 바 있지만 종합주가지수가 2,500 선을 깨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최근 기류를 보면 5월 12일의 장중저점 2,546.80 포인트가 바닥이었던 것으로 오늘 증시를 통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에 대한 발언들도 은근히 부드러워지고 있고 인플레이션이나 급격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최근 두어 달 동안의 우려보다는 훨씬 가벼워지고 있다는 점 또한 분위기의 반전을 느끼게 해준다.

 

 

가장 빠른 소식  

 

 

아직 어디에서도 증시가 바닥을 지났다는 기사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전문가들 또한 함부로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오늘 이 글이 가장 빠른 소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증시 바닥을 지났다 하더라도 이번에 오고 있는 장세는 반등장이란 점이다. 따라서 앞에서 얘기한 바 2906 포인트 이상의 추가 상승은 아직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종목 선정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내고 낼 수 있기에 사실 전체 장세 흐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증시 투자에 아직 본인만의 기술이나 기량이 닦여있지 않은 분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식이란 생각에서 오늘 글을 올린다.

 

 

반등장세에서의 전략

 

 

반등장세가 올 경우 취할 수 있는 전략과 태도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한다.

 

첫째, 기왕에 이미 고가에 샀다가 물린 분이라면 더 이상의 매도는 자제하고 반등장세를 지켜보면 된다는 점이다. 혹시 본전까지 오른다면 한 번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본다.

 

둘째, 그간 지켜봐온 괜찮은 종목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매수에 나서 봄 직도 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익이 난다고 그냥 놔둘 일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에서 수익실현을 하고 빠지는 방법이 더 좋을 거란 얘기이다.

 

 

개미들은 주도주란 말을 조심할 줄 알아야 한다. 

 

 

항상 지켜보는 일이고 앞으로도 되풀이되겠지만 ‘주도주’란 말에 현혹되어 함부로 매수하면 오히려 손해 보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주도주는 일단 외국인이나 기관이나 큰손들이 거의 다 사들인 후 알려지고 소문이 퍼지게 된다. 이 경우 주가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거나 잔뜩 거품이 끼어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개미’들이 최종적으로 달라붙어 마지막으로 가격을 마구 올려놓는다. 그 사이에 기관이나 외국인들, 큰손들은 수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가고 있건만 말이다.

 

그래서 주식을 통해 재미를 보고자 한다면 일단 ‘주도주’란 말부터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개미들이야말로 주도주라고 이름이 붙은 가장 비싼 주식을 최종적으로 매수해주는 총알받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전체 증시가 내려도 오르는 종목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

 

 

예를 들면 나 호호당의 경우 ‘한국항공우주’를 재작년부터 여러 차례 매수 매도를 되풀이하면서 수익을 보았는데 본격 상승을 시작한 것은 우리 증시가 하락세를 나타내던 작년 11월부터였다는 점이다.

 

즉 종합지수는 내려도 그와 반대로 오르는 종목들도 상당하다는 것이고 그를 포착해낼 수 있으면 증시 상황과 별 상관없이 수익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자신만의 종목 선정과 발굴하는 방법, 전체 증시의 흐름을 살필 줄 아는 나름의 식견이 없이는 증시에서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이제 반등장세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고 반등 한계는 2906 포인트를 넘기가 어렵다는 점 알려드린다.

한 번 길들여지니 바꿀 수가 없네. 

 

 

토요일 주말이다. 마음이 한가롭다. 사실 내겐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내 경우 주말 강의로 해서 평일보다 더 바쁘건만 주말이 되면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아마도 여섯 살 유치원 시절부터 직장을 그만 둘 때까지의 세월, 계산해보니 33년의 생활리듬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주중에 온(on)하고 주말에 오프(off)하는 리듬은 월급쟁이의 리듬이다. 그런데 내 경우 1993년 말부터 月給(월급)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년이면 그런 거 없이 30년이 된다. 월급이란 것을 받아본 것은 1982년부터 1993년까지 은행원으로서의 11년에 불과하다. 그 이후 29년간 집을 팔아서 또 사업과 프리랜서, 그 이후엔 상담업과 강좌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매달 정해진 날 통장에 돈이 찍히는 그 월급이란 거, 게다가 간간히 나오는 보너스란 거, 받을 땐 몰랐지만 그 이후 두고두고 그리워했다. 요즘말로 ‘개꿀맛’이었다.

 

 

잃어야만 고마워지니 아, 모순이여! 

 

 

삶의 모순은 뭔가를 잃었을 때야 그것의 소중함, 아니 소중했음을 느낀다는 점이다. 월급을 받을 땐 그게 고마운지 전혀 몰랐다.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 있을 때 잘 하자는 마음 또한 그다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존재, 사람이나 강아지 등등, 좋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안기는 원인이기도 해서 있을 때 잘 하자는 마음 또한 가끔은 몰라도 늘 지닐 순 없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존재, 인간이여!

 

 

어떨 때 사람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KTX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거나 시내버스 타고 귀가할 때 등등.

 

얼마 전 체력이 달려서 아침 식후 그리고 자기 전에 스트레칭과 근력강화를 제법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체력이 회복되었다 싶은 순간부터 슬슬 하지 않기 시작했다. 속으론 이래선 안 되는데, 해야지 하고 다짐도 했지만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못 하니 안 하게 된다. 귀찮아! 역시 외양간은 소를 잃은 뒤에 고치는 법인가 보다.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할 이유가 없다 싶으면 “1초”라도 그 방면에 신경을 쓰기 싫어하는 나를 들여다본 것이다. 참, 인간이란 게 이처럼 교활하고 영리하고 간사하구나 싶다. 내 스스로 이렇게 변덕스러우니 남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리!

 

친한 이가 있어 내게 잘 해주고 있다면 그건 내가 그 이에게 뭔가 주는 것이 있을 때만이 그럴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 해주고 있다면 그 역시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얻고 있는 그 무엇이 있을 때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내게 잘 해주던 이가 연락이 끊어지거나 소원해지면 더 이상 내가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없을 때일 것이다. 그걸 두고 그 사람이 배신했다고 여긴다면 그게 더 염치없는 생각이 아닐까.

 

주는 게 있어도 상대가 내게 주어야 하는 것이 더 크다면 그 또한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게 될 것이다. 내가 받는 게 있어도 그로서 내가 주어야 할 것이 더 크거나 부담이 된다면 내 스스로 그 사람과의 연락을 줄이게 될 것이다.

 

(주는 받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성질의 것이냐 하는 문제는 따지질 말자. 골치 아픈 얘기이니.)

 

체력이 좀 생기니 운동 하지 않게 되는 나, 얻을 것이 없다 싶으면 상대와의 연락을 줄이게 되는 나, 이 모두 나란 존재가 얼마나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며 영리한 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여러모로 그냥 보통의 사람인 내가 그렇다는 사실은 남도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기주의, 생명체의 본능

 

 

좀 더 생각해보면 이 영민함과 교활함, 타산성은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생겨난 이래 특히 고등생명체인 포유류가 등장하면서부터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버전 업이 되어온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들이 DNA를 통해 이어지고 또 그것이 잘 작동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간만 가자는 것, 참 영리한 전략

 

 

잘 할 것도 없고 그저 ‘중간’만 가자는 생각. 이거 생각해보면 볼수록 대단히 뛰어난 자기보호 프로그램이다. 뭘 모를 때는 앞서가자, 좀 튀어보자, 이런 생각도 들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록 이건 아니다. 그냥 가운데에 서 있자는 생각이 작동한다.

 

다큐 영상에서 많이 봤다. 덩치가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거, 포식자가 공격해올 때면 더더욱 무리를 짓는다. 포식자에 대해 공격하진 못해도 뭉쳐 있으면 포식자의 먹잇감이 될 확률이 줄어든다. 내가 그 물고기라고 하자, 내 바로 곁에 나와 똑 같은 놈들이 우글거린다. 그러니 포식자가 나를 집중적으로 먹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결과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군중심리란 것 역시 그런 것이라 본다. 공격할 때도 무리를 짓고 방어할 때도 무리를 짓는 게 안전하다.

 

정치 관련 기사의 밑에 달리는 댓글이란 것 역시 일종의 군중심리이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니 결과는 동일하다. 예전엔 댓글이 군중의 심리에 상당히 영향을 주었을 것 같지만 이젠 전혀 그렇지도 않다. 특히 기사를 쓴 기자를 향해 ‘기레기’란 표현을 달았다 치면 그 댓글의 신뢰도는 빵점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된다. 기레기란 표현을 쓰는 순간 그 익명의 독자는 쓰레기가 된다. 그런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 숫자가 많으면 쓰레기가 많이 쌓였다는 생각만 든다.

 

 

사춘기 때나 튀고 싶지

 

 

스스로 일반의 대중과는 다른 존재이고 싶어 하는 심리는 광고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물론 사춘기를 이제 막 지난 청년이라면 그런 말에 낚여도 무방하다. 사춘기의 핵심이란 게 짝짓기 철을 대비해서 조금이라도 경쟁 상대에 비해 이성을 더 유혹할 수 있는 ‘전략무기’를 개발 장착해야 하는 시기인 까닭이다.

 

그러니 있어보여야 하고 예뻐져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그 결과 몸매도 가꾸어야 하고 얼굴도 수려해져야 하며 굴곡 드러나는 쫄바지도 입어야 하며 또 나름 머릿속에 든 게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할 것이다.

 

처음엔 그래도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하고 싶기에 자신 스스로의 것으로만 해결하려 든다. 타고난 몸매와 용모, 두뇌 등등. 결투로 치면 1대1 승부인 셈이다. 나름 기사도와 공주의 명예를 걸고 하는 승부이고 경쟁이다.

 

 

공정과 평등 정의란 것

 

 

그러다가 대학 갈 무렵이나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 이제 정정당당한 승부만으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섹시해도 돈이 없으면 꽝-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 특히 남자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세월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남자는 돈, 여자는 미모인 것은 크게 변함이 없지 않은가.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등과 정의, 공정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는데 이 역시 정면승부만으론 힘들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나 호호당이 대학에 가고 군대 가던 시절, 직장에 들어가던 시절만 해도 별로 그렇지 않았다.

 

공부 잘 하면 좋은 학교 갈 수 있었지만 돈으로 몰래 좋은 학교 가는 것 또한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대학 동기 중에 뒷구멍으로 들어온 친구도 있지만 상관하지 않고 친하게 지냈다. 군대 갔더니 소위 빽 좋은 애들은 놀고먹는 부대나 보직을 차지했지만 으레 그런 가 보다 했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좋은 부서는 으레 누군가의 연줄이 작용하고 있었지만 그저 그런가 보다 여겼다. 그 시절엔 불평등이 기본이었고 불공정이 질서였으며 정의로운 세상은 과연 글쎄 그게 될까 싶었다.

 

평등과 정의, 공정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평등해지고 정의롭고 공정해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젊은이들의 불만 또한 더 커졌다. 옛날엔 체념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으니 불만할 수밖에 없다.

 

참 신기해한다. 세상 좋아지니 불만이 더 늘어난다는 이 현실이. 거 참.

 

 

더 치열해진 우리 사회

 

 

어차피 맛있는 떡은 한정되어 있다. 그 떡을 먹으려면 예전엔 실력과 연줄이 함께 공존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오늘에 이르러 연줄이나 빽, 아빠 찬스 같은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그 떡을 먹을 확률은 미세하지만 분명 높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예전엔 아예 포기하는 자가 많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게 오늘엔 그 누구도 포기할 생각이 없기에 확률은 더 낮아진 감이 든다.

 

맛있는 떡이 열 개라 하자. 옛날엔 백 명이 있었지만 엔트리에 50명만 참가시켰다면 오늘날엔 90명에게 엔트리가 주어지니 먹을 확률이 더 떨어지고 있다. 50명 사이의 경쟁과 90명 사이의 경쟁은 당연히 90명의 경쟁이 더 힘들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젊은이들도 죽을 맛이고 그 젊은이를 사회에 진출시켜야 하는 부모도 죽을 맛이다. 당연히 돈 없는 노인들을 돌 볼 여유는 1도 없다.

 

세상 분명 좋아지긴 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價値(가치)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착시 효과인가 싶기도 하다.

 

 

증시 조정에 대해 

 

 

증시가 조정을 받고 있다.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 유튜브엔 증시나 우리 경제와 관련해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얘기들이 많아서 그걸 보노라면 이제 미국 금리상승으로 증시가 마치 끝장이라도 날 것 같은 생각도 들 것 같아서 오늘 이런 얘기로 시작한다.

 

나 호호당은 작년 11월 30일 하락장을 본 뒤 이번 조정이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이에 조정의 하한선을 계산해보니 대략 거래소 종합지수로 2650 포인트에서 2560 포인트 사이 정도로 계산이 되었다.

 

1월 28일 금요일로서 일단 예상 조정의 상단을 건든 뒤 강한 반등신호가 나왔다. 이것으로 조정을 마쳐도 그만이겠으나 앞에서 제시한 하단까지 한 번 더 밀릴 가능성도 아직은 무시할 수 없다.

 

조정이란 말은 영어로 correction 이다. 일정 기간 안에 상승이 과다하거나 반대로 하락이 지나칠 경우 그와 반대되는 증시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마련이니 이를 뜻하는 말이다. 지나친 것을 바로잡는 수정 또는 정정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직까진 증시는 조정 국면일 뿐 대세 하락을 점치긴 지나치게 이른 시점이란 점이다. 따라서 너무 겁을 낼 것은 없고 이른바 ‘물려있는 경우’라 해도 조급하게 손절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드린다.

 

 

주식투자에서 수익을 내려면 

 

 

주식에서 수익을 내려면 결국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

 

그런데 싸질 때면 으레 공포심을 조장하는 얘기가 난무하니 겁이 나서 사질 못 하고 반대로 오를 것 같으면 그 또한 어렵다. 용기 있게 매수했다 해도 매도할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팔고 싶어도 주변에 온통 더 간다는 얘기가 가득해서 망설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몇 번 손해를 보다 보면 조금만 올라도 다행이다 싶어서 얼른 파는 바람에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심지어 나중에 같은 놈을 다시 더 비싸게 샀다가 또 물리기도 한다.

 

나 호호당이 수 십 년 간 주식을 해보니 결국 주식이란 수시로 물려가면서 하는 게임이란 생각을 한다. 매수했더니 그냥 올라서 재미를 보기도 하고 때론 물리게 되면 더 낮은 가격에 추가 매수, 즉 ‘물타기’를 해서 결과적으로 더 큰 재미를 보기도 하니 말이다.

 

다만 나름의 기준이 없는 투자자의 경우 조금 물렸다고 너무 쉽게 물타기에 나섰다가 나중에 속절없이 하락세를 지켜보거나 아니면 손절을 하게 된다. 그러니 물타기도 기술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게 핵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주식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군 즉 현금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지론이다. 예비군이 있으면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정작 비상상황이 닥칠 경우 어느 선에서 예비군을 동원해서 추가 매수 혹은 ‘물타기’를 하느냐가 수익의 관건이 아닌가 싶다.

 

이에 지금 정도의 조정, 즉 고점에서 20% 정도의 조정이면 예비군을 투입하기에 크게 무리가 없다고 본다.

 

(재미난 것은 아는 분께서 엘리엇TV란 유튜브 방송이 있다고 보라고 해서 봤더니 지금의 장세가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거대한 하락의 초입이란 주장을 펴고 있었다. 연구도 상당히 한 것 같아서 흥미롭게 보긴 했지만 일단은 껄껄 웃으며 넘기기로 한다. 이런 거 보고 있으면 겁나서 주식 하겠나 싶다.)

 

이것으로 증시 조정에 따른 문제는 대충 정리했다.

 

현재 시각 2월 2일 새벽 1시 29분이다.

 

 

밤낮 없이 일하는 일개미들의 나라

 

 

집안의 내 화실은 창이 동남향이다. 양재천 건너편에 LG전자 연구소 빌딩이 보인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 2년이 되어간다. 놀라운 것은 저 연구소 건물이 야간에 전체 소등되는 일은 한 해를 통틀어 이틀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설과 추석, 어제 설날 새벽 3시에도 절반 정도의 층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아들에게 얘기했다, 쟤들은 설날 새벽에도 근무하고 있고 추석 새벽에도 근무를 해. 이에 아들이 그게 뭐 그렇지! 하며 낄낄 거렸다.

 

주52시간 근무제는 삼성이나 LG, 여타 대기업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현실이다. 일개미의 나라, 개미지옥의 나라, 이를 통해 열심히 달러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사실 우리나라를 하나로 보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잠들지 않고 일하면서 나라를 먹여 살리는 서울과 수도권이 한 쪽이라면 정부를 통해 돈을 타가는 지방 지자체가 나머지 한 쪽이다.

 

아들아, 그런데 왜 젊은이들은 고생만 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으려고 하니? 하고 물었더니 아들 답하길 지방에서 근무하면 1년도 견디질 못해서 그만 둬, 그리고 지방에 있으면 젊은 총각들은 결혼을 할 수 없어, 아무튼 이유가 많아, 하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왜 그럴까? 왜 그래야 할까? 여전히 이해가 갈듯 말듯 하다. 어쨌거나 그게 현실인가 보다. 다시 침묵을 지킨다.

 

하기야 희한한 일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온통 미세먼지로 가득하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터라 모든 뉴스가 그 밑바탕엔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는 메시지를 깔고 있다. 정치 그리고 대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뉴스일지라도 선거와 관련된 냄새가 풍긴다. 그 바람에 1월부턴 아예 뉴스, 특히 텔레비전 뉴스가 나오면 무조건 채널을 돌린다. 초미세먼지 가득한 대한민국이다.

 

그저 스마트폰으로 매일 코로나 확진자 현황과 증시 정보만 접한다. 나머진 제목만 보고 넘어간다. 아니면 구글을 통해 외신들만 살펴본다.

 

 

백신에 대한 우려

 

 

백신 부스터샷을 맞아야 하는 기한이 다가오고 있는데 겁이 나서 망설이고 있다. 뉴스를 보니 “백신 부작용 걱정하면 진짜 생긴다, 76%가 심리적 영향”이라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연구팀의 주장이다.

 

걱정하면 진짜 부작용이 생긴다는 말은 부작용이 크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걱정되더라도 정작 맞고 나면 별 일 없어야 정상 아닌가?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연구팀이란 게 ‘모더나’ 백신을 만든 사람들과 대단히 밀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런 말을 하고 있으니 그게 참 그렇다.

 

내 경우 2차를 맞고 난 뒤에도 백신 부작용 같은 거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 돌발성 난청과 함께 이석증이 생겨서 지금까지 깔끔하지가 않다. 다행히도 난청은 침 치료를 통해 완치했지만 말이다. 평생 귀로 인한 질병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내가 왜 갑자기 난청과 이석증이란 문제가 생겼을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나?

 

물론 인과 관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마음은 전혀 편하지가 않다.

 

며칠 전 탤런트 강석우 씨가 시력저하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런데 집 사람이 다니는 절의 주지 스님 역시 3차를 맞은 뒤 이틀 동안 시력을 상실했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나 호호당도 한 번 찾아가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어 그 분의 상태를 모르지 않는데 왜 갑자기 시력상실?

 

물론 인과관계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당국은 그저 밝혀진 바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오히려 백신 부작용 관련 뉴스가 객관적이지 않고 선동적이란 지적을 모 매체를 통해 흘리면서 방어전을 펴고 있다.

 

부스터샷은 이래저래 겁이 난다. 그러니 일단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마스크 확실하게 쓰고 다닌다, 사실 잘 나가지도 않는다. 최근엔 상담도 별로 하지 않을뿐더러 상담 시엔 마스크를 쓴다, 그리곤 끝난 뒤엔 창을 활짝 열어서 환기한다. 대중교통이 걱정되니 출퇴근 시간엔 아예 다니지 않는다. 오미크론 스텔스가 나왔다는데 나 역시 바이러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스텔스 기능을 최대한 장착하고 있다.

 

바라건대 오미크론이 착한 놈이 되기를.

 

 

삼국지연의, 원문으로 읽는 재미에 

 

 

최근 三國演義(삼국연의), 즉 삼국지연의를 읽고 있다. 중국어판 위키문고에 들어가면 한자 본문이 다 올라와 있다. 다른 중국 고서들은 한자 원문으로 많이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삼국지는 그런 적이 없다. 이번에 한자원문으로 읽어나가다 보니 그 또한 재미가 난다.

 

전체 120회로 이루어진 白話(백화) 즉 구어체 소설인데 역시 들어가는 대목이 멋이 있다.

 

일단 詩(시) 한 편을 읊으며 시작한다. 당시엔 그래야만 있어 보였던 모양인데 인용한 시가 참으로 잘 어울린다. 중국 명나라 시절의 楊眞(양진)이란 才士(재사)가 남긴 詞(사)이다.

 

옮겨보면 이렇다.

 

도도히 흘러가는 長江(장강)은 동쪽으로 꺾어지는데 저 위로 솟구치고 사라지는 물결은 곧 영웅들이지, 是非(시비)와 成敗(성패) 따위야 고개를 돌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청산은 依舊(의구)한데 그 사이에 붉은 저녁놀은 얼마나 많았으랴.

 

백발의 어부와 나무꾼이 강가에서 만나서 가을 달과 봄바람을 즐기는데 막걸리 한 병이면 반갑게 만나지, 그러니 古今(고금)의 수많은 일들이야 그저 우스갯소리에 붙일 뿐.

 

滾滾長江東逝水,浪花淘盡英雄。是非成敗轉頭空。青山依舊在,幾度夕陽紅。

白髮漁樵江渚上,慣看秋月春風。一壺濁酒喜相逢。古今多少事,都付笑談中。

 

삼국연의는 그리고 나서 의미심장한 말로 스타트를 끊는다.

 

천하의 大勢(대세)를 말할 것 같으면 흩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치게 되고 합친 지 오래면 반드시 흩어지나니. 話說天下大勢,分久必合,合久必分.

 

이렇게 壯快(장쾌)한 말로 삼국연의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엮어가기 시작한다. 역시 걸작이다. 당분간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