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자신감이 실수로 이어졌으니 

 

 

상담을 마친 뒤 虛妄(허망)할 때가 간간이 있다.

 

오십 초반의 남자 분이었다. (미리 얘기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있어서 구체적인 상황은 생략했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주식투자를 통해 불린 자산만도 수십억에 달했다. 빚도 몇 억 있었으나 큰 부담은 아니었다. 사정이 좋다 보니 퇴직을 종용받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사표를 냈다. 이 정도면 앞으로 훨씬 느긋하고 편히 즐기면서 살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誤算(오산)이었다. 빚은 나중에 더 벌어서 갚을 요량으로 모든 현금을 유망 바이오 벤처 한 종목에 몰아넣었다. 소위 ‘몰빵’을 친 것인데 갑자기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하더니 몇 분의 일 토막이 났다. 주식을 다 팔아도 빚을 청산할 수 없어 현재로선 주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속이 탔으랴! 결정적인 문제는 직장이 없으니 고정수입이 없다는 점이다. 부랴부랴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곤 있지만 50 넘은 이를 선뜻 반길 곳은 없다. 그간에 연을 맺었던 선배들을 통해 비정규직 자리라도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 호호당을 찾아왔다.

 

직장 그만 두고 나서 불과 3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주를 슬쩍 보고나서 절로 탄식이 새어나왔지만 상대가 알아차릴까 싶어서 억지로 숨을 눌렀다.

 

그리고 나선 솔직히 얘기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몇 년 전의 여유롭던 상황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주었다.

 

 

큰 수확은 10월 하순에 한 번 있는 법인데...

 

 

10월 하순 가을걷이가 이제 막 끝나가고 있는 농부가 있다고 합시다. 미처 수확이 다 끝나진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곳간에 쌀가마니가 쌓여가고 있다고 합시다. 농부가 보기에 이 정도면 평생 먹어도 될 쌀을 얻었다 싶어서 이제 지겨운 농사일은 그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이에 그간의 논밭을 다 처분하고 쌀도 다 팔아서 현금으로 바꾼 뒤 그간에 눈여겨보던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 합시다. 그런데 곁에서 보던 것과 달리 막상 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고 그 바람에 시작하자마자 돈을 다 날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논밭은 고정수입을 가져오던 그 분의 직장이었고 빚을 갚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 한 종목에 모든 재산을 전부 투입한 것은 장사가 서툰 탓이라 하겠다.

 

그 분은 그런 상태에서 이제 막 60년에 걸친 운세 순환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땅이 없으니 보리를 심을 수도 없고 식량은 다 팔아치웠다. 그렇게 마련한 현금은 주식에 들어가 다 녹아 없어졌다.

 

 

장점이 때론 단점이 되고 그 반대도 그러하니...

 

 

사주를 보니 일견 총명하고 기회포착에 능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능력과 장점을 갖춘 타입이었다. 그런데 능력이 있고 장점이 있다고 해서 평생에 걸쳐 늘 그러리란 법은 없다는 점이다. 때론 장점이 바로 단점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장점이 바로 단점이고 단점이 때론 장점이란 사실.

 

강의할 때 늘 하는 얘기지만 남자 나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전반이 되면 ‘물가에 내어놓은 아기와 같다’는 얘기를 해주곤 한다. 공격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란 놈이 여전히 치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40대 후반, 대략 48세 무렵이 마지막 고비가 된다. 이는 초가을 볕이 대단한 것과 같다. 세상 경험도 이젠 충분하고 앞을 어느 정도 내다볼 줄 안다, 그러니 자신감도 충만하다. 테스토스테론은 이제 조금씩 빠져나가곤 있으나 스스로의 역량을 판단을 과신하는 탓에 그만 실수하기 쉬운 나이라 하겠다.

 

그 50대 초반 남자분의 실수는 바로 이 대목이다. 불과 3년 만에 거의 전부를 잃은 셈이다.

 

운세는 현재 小雪(소설), 이제 막 15년에 걸친 겨울로 접어든 때이다. 이런 운세라면 남들이 보기에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무렵이건만 그 분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나이에 따라 운의 작용도 달라지는 까닭에 

 

 

운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어떤 운을 생물학적 연령 즉 나이 몇 살에 맞이하느냐가 실은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이 절정일 때 나이마저 중년의 세련됨과 자신감까지 더해지면 오히려 아차! 실수하기 쉽다.

 

命(명)으로 볼 때 적극적인 성향의 소유자라면 오히려 남성 호르몬이 빠져나간 뒤 즉 나이가 들어서 好運(호운)을 맞이하는 것이 좋고, 보수적인 성향의 소유자라면 남성 호르몬이 한창인 30-40대에 好運(호운)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보완이 된다.

 

이처럼 운을 볼 때 그 사람의 생물학적 나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나 호호당의 경우 60년에 걸친 운세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훨씬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게 나이에 따라 달리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 감을 잡고 구체적으로 정리가 될 때까지 또 다시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돌아와서 얘기이다. 50대 초반의 그 분은 家長(가장)이기도 하니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 능력이 충분한 분이라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 대략 10년 정도는 수입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다만 예전에 받던 안정적인 보수보다는 훨씬 헐값에 품을 팔아야 하는 고단한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담을 마친 뒤 혼자가 되면 생각에 빠진다. 만일 저 분이 3년 전, 그러니까 직장을 그만 두려할 때 나를 찾아왔었다면 내가 과연 저 분을 만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아마도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생전 처음 얼굴을 본 사이란 점, 그러니 당연히 아무리 강하게 말려도 거기에 무게가 실릴 순 없다는 점이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경우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때가 더 일반적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 호호당 스스로가 하나의 케이스란 사실

 

 

하기야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호호당 스스로가 그랬었다. 급여도 많던 은행을 그만 두고 떼돈 벌어보겠다고 나선 것이 1993년 12월의 일이었다. 만 38세의 나이였다. 그리고 자신만만했다, 서초구에 아파트 2채, 하남시에 한 채가 있었으며 처가가 대단히 부유해서 나중에 받게 될 상속도 제법 예상이 되었으니 전혀 겁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거치면서 2001년이 되니 나 호호당의 순재산은 마이너스 3천만원이었다. 만 7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처갓집은 외환위기에 걸려 몰락했고 나 역시 이래저래 돈을 날려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직장을 그만 두기 직전 주변으로부터 만류도 많이 받았다는 사실.

 

 

의사를 찾으면 치료를 해주지만

 

 

그러니 상담하는 일에 虛妄(허망)함을 느끼곤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각자의 타고 난 팔자소관 아니겠느냐 하면서 구태의연한 논리로 넘겨보지만 맥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그럴 때 의사가 왜 미리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법은 없다. 병의 상태에 따라 최선의 치료를 해줄 뿐이다. 그런데 운명상담이란 일은 아파서 왔을 땐 이미 돌이킬 수가 없고 치료를 해줄 수도 없다. 반대로 아프기 전에 왔다면 상대방은 해주는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딜레마!

 

 

전체로서 하나이지 따로따로가 아니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직장을 잘 다니던 이가 한 번 성공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인해 독립을 했는데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불치의 병까지 걸려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었다.

 

그 분과 상담한 것은 독립하기 얼마 전이었고 이에 나는 그럴 때가 아니니 그만 두라고 만류했었다. 장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분의 사주로 볼 때 예민한 성격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사업에 실패하면 몹쓸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5년이 흘렀을 것이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다시 나를 찾아왔고 그간의 쓰라린 경과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건강을 회복하면 꼭 연락을 달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 분의 아드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세상과 하직할 것 같으니 그렇게 되면 나중에 내게 연락 한 통을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메일을 지우지 않고 보관해놓고 있었다. 오늘 메일함에 들어가 찾아보니 2019년 초에 받은 메일이다. 따져보니 그 분과 처음 대면한 것은 아마도 2008년 경이었던 것으로 추산이 된다.

 

하고자 하는 말은 돈 따로 건강 따로가 아니란 점이다. 애정운은 어떻고 부부운은 어떠하며 재산과 명예 등등이 각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란 얘기. 모든 것은 하나로 꿰어져있다.

 

 

건강을 잃지 않는 한 삶은 결국 잘 살 수 있다는 거

 

 

처음 얘기했던 50대 초반의 상담객, 돈과 지위를 잃었지만 아직 건강까지 잃은 것은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에 노심초사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긴 호흡으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나중에 다시 과거의 힘들었던 날들을 추억하면서 살 수 있는 날도 온다는 점이다. 부디 그러길 바라고 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