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잘도 빛난다, 벚꽃들아. 너희들이 빛을 내니 나는 눈이 부시다. 바람에 팔랑일 뿐 무게라 할 것도 없어서 그 지극한 가벼움으로 더욱 눈부신 너희 꽃들이여. 그래, 한 때로다. 빛이 나니 한 때이고 가벼워서 한 때로다. 그런 너희들 얼마 후면 분분히 날리며 땅으로 돌아가겠지. 그래 고백한다, 삶은 분명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갈 때만은 너희들처럼 사뿐히 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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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부드럽게 풀어놓은 푸른 하늘 아래 활짝한 하얀 목련이 늦봄을 알린다, 맑고 투명한 대기 속에 하얀 무명천 말끔히 빨아서 널어놓은 것 같은 저 모습,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이 세상은 그 자체로서 기적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춘분으로서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저마다의 사랑과 싸움을 시작한다. 수채화 종이를 주문하고 팔레트를 닦고 붓도 씻고 화실 정리도 마쳤다. 해마다 사춘기를 겪는다. 이제 空(공)에서 色(색)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  (제자가 찍은 사진을 트리밍해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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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를 찾다, 춘분의 혁신

 

 

앓던 어금니를 뺐다. 진작 했어야 하겠지만 나는 으레 늦는다. 올 해는 3년간 미루었던 이빨 치료를 해야 한다, 뺄 건 빼고 때울 건 때우고 몇 개는 임플란트로 박고, 연말이나 되어야 끝날 것 같다.

 

그간 왼쪽으로 주로 씹다 보니 얼굴의 균형이 많이 무너졌고 오른쪽 엉덩이 근육에도 무리가 생겼다. 작년 초부터 미루기 시작한 치과치료가 겨우내 이어지더니 마침내 새 해 春分(춘분)이 되자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끝까지 버틴 셈이다. 이에 작심을 했으니 長征(장정)이 시작되었다.

 

 

이빨 치료는 역시 두려운 바가 있어서

 

 

이빨 치료에서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마취 주사라든가 발치에 따른 약간의 통증 또는 임플란트 봉을 받는 수술도 아니다, 나 호호당에겐 최고의 치과 주치의가 있기에 그런 일은 그 친구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주사를 맞은 뒤 마취가 퍼질 때까지 하게 되는 치석 제거 작업, 꽤나 두렵다, 강한 수압의 찬물이 치주 근처에 닿으면 그 자체만으로 신경 발작이 생겨서 양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말 싫은 것은 발치하고 상처 부위를 꿰맨 다음 지혈을 위해 거즈를 2시간 동안 꽉 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잔뜩 피비린내 나는 거즈가 혀에 닿고 인후를 통해 코로 올라오면 구토를 하게 된다. (그러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살그머니 재빨리 거즈를 갈아 물어야 하는 데 그 또한 부담이다.)

 

게다가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후라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한 데 그 또한 꽤나 참아야 한다는 점이다. 담배는 중독성이 워낙 강해서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가 아니면 끊기 어렵다, 이런 것을 왜 배워가지고 고생을 하는지. 예전엔 흡연은 성인 남자의 認證(인증)이던 시절이 있었다.

 

 

치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색에 빠져들다

 

 

오늘은 치료하는 시간 내내 겨울 동안 사색했던 불교 철학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집중했다. 그러자 절로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4 세기 경 인도의 바스반두가 짓고 중국의 삼장법사가 한역한 “大乘五蘊論(대승오온론)” 속의 구절인 苦謂生時有乖離欲(고위생시유괴리욕)이 그것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괴로움 즉 苦(고)란 그것이 생겨날 때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바람이 존재하는 것”이란 뜻이다.

 

참으로 핵심을 찌르는 말이 아닌가! 겨우내 여러 번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어떤 무엇이 내게 생겨나고 일어날 때 그로부터 벗어나고 등지고픈 마음을 가지는 게 苦(고)라고 하니 말이다.

 

마취주사를 맞고 발치 전에 하는 치석제거라든가 이어서 이빨을 빼는 등등 모두가 고통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이빨이 아파서였다. 그간에 염증이 나서 수시로 뻐근하고 아팠으니 그 모든 것이 고통 즉 苦(고)였음이다.

 

그러니 이빨을 빼는 수술이나 치료 모두 고통을 제거하기 위함이건만 그 역시 나름의 고통과 불편함을 겪어야 하니 그 또한 싫어서 참고 참다가 결국 더 이상 있다가는 왕창 더 큰 苦(고)를 겪을 것이 틀림없기에 치과를 찾아온 나였다. 고통 앞에서 나 호호당은 그야말로 비굴하고 옹졸하다.

 

 

태어난 게 죄라면 죄

 

 

시술의자에 누워서 눈을 가린 채 어금니가 쑥-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동안 “석가모니 부처님, 당신의 말이 절대 틀림이 없습니다, 바수반두(세친)여, 당신의 말씀 또한 역시 전혀 어긋남이 없습니다,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나라고 하는 존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게 근본적인 착오였던 것 같습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을 苦(고)라고 했긴 하지만 삶에는 즐거움 즉 樂(락)도 있다. 반대급부도 있다는 말이다. 바스반두는 樂(락)에 대해 樂謂滅時有和合欲(락위멸시유화합욕)이라 했다. 즐거움이란 그것이 사라질 때 다시 만나서 합치고픈 바람이 존재하는 것이라 했지 않던가 말이다.

 

 

고통과 즐거움은 균형이 깨져 있기에 

 

 

하지만 살아보니 알게 되지만 고통이란 것은 그것을 겪을 때마다 힘들다, 어려운 것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즐거움이란 그것을 겪을 때마다 그 세기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모순이 있다는 게 문제, 큰 문제라 하겠다. 삶에 있어 즐거운 날 그다지 많지 않고 괴로운 날이 훨씬 많다, 이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핵심 문제가 제기된다.

 

삶에서 괴로움은 많고 즐거움이 적다면 분명 밑지는 것인데 왜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살고자 하는 것일까?

 

 

산다는 건 사실 남는 장사가 아니란 사실

 

 

사는 게 이빨이 아파서 끙끙 앓는 것이고 죽는 게 앓던 이빨을 빼고 염증을 없애는 치료라 본다면 실은 미리미리 이빨을 치료하라고 하는 것처럼 어서어서 확-죽어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죽을 때 고통이 따른다 하더라도 그건 앓던 이빨 빼는 수술이라 여긴다면 잠깐 눈 딱 감고 어디 한 번 죽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생짜로 죽는 게 아니라 안락하게 세상을 여의는 약도 있다는데 말이다.

 

지나간 겨울 동안 읽고 사색했던 열권 이상의 불교 철학책 속에 담긴 것들을 간략하게 줄여 말할 것 같으면 이빨 계속 아파하지 말고 어서 치과를 찾아가라는 것, 즉 살면서 고생하지 말고 삶으로부터 어서 떠나라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건 염세적인 생각이 절대 아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득실을 따져보는 얘기, 즉 냉철한 理性(이성)에 바탕을 둔 생각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살고자 하는가?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거즈를 꽉 문 채 계속 생각해보니 왜 내가 더 살고자 하는 바람을 갖는 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유인 즉 이건 그냥 본능 때문이란 답이 나왔다. 머리로는 산다는 것이 밑지는 장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작정 무조건 살고자 하는 원천적인 욕망과 바람이 유전자 속에 로직(logic)으로서 심어진 채 태어났기에 살고자 한다, 이게 답이다!

 

버스에서 내릴 무렵 또 한 가지를 문득 알게 되었다, 왜 우리에겐 본능이란 이름의 원천적 욕망이 심어져 있는 가에 대해서.

 

본능이란 우리의 계산머리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또는 작동한다 해도 수시로 망각하게끔 지상명령으로서 심어진 것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똑똑한 척 해도 결국에 가선 소위 ‘깔때기’처럼 “시끄럽다, 그냥 살아, 무작정 살아보라고!”, 이렇게 이래저래 따져본 들 정해진 답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이란 사실이다.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나는 크게 외쳤다. 옛 썰! 무작정 살겠씸더!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집 현관에 들어서니 아내와 아들이 바라보는 터라 약간 지치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고생했으니 약간의 엄살 정도는 부려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이야기 #1.

 

 

아버지는 빈한한 시골 출신,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국내 최고 명문대를 나와 이른바 출세를 했다.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를 꽤 들어보았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 셈, 이른바 개천용이다.

 

그런데 개천용들은 나름의 문제점 심하게 말하면 비극을 안고 있다. 이 아버지의 경우 공부를 통해 성공했기에 인생은 20대까지의 학업에서 결정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천용의 아들은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성장하다 보니 아버지와 같은 악바리 근성이 없다. 사실 그게 당연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학업성적이 떨어지면 꾸짖기도 하고 때론 매를 들어 엄하게 단련을 시키려 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무섭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아들은 겨우(?) 서울 인 대학에 들어갔고 개천용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다. 아들은 그래도 공기업에 입사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애로가 많았다. 결혼 생활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나이가 50에 가까워도 여전히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면 속으로 두려움부터 든다.

 

개천용 아버지의 눈엔 아들이 그저 미꾸라지로만 보인다. 아들은 여전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으니 스스로를 미꾸라지라고 자책하고 있다.

 

아들을 미꾸라지로 만든 장본인은 개천용 아버지였다. 가진 것 없이 성공하는 방법은 오로지 공부가 전부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세계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세계관을 속으론 반발했지만 여전히 죄스런 마음이 크다. 그렇게 길러졌기에 당당히 살아가지 못 한다. 비극이다, 거의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다름없다.

 

 

이야기 #2.

 

 

또 하나의 비슷한 얘기를 해본다. 아버지는 개천용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반발했다. 결국 10대 시절에 집을 뛰쳐나왔고 그 이후 義絶(의절) 상태로 지내면서 많은 고생을 겪은 끝에 자동차 부품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다가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 묘소를 한 번은 찾아가고도 싶은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안함도 있고 섭섭함도 있고 이제 묘소를 찾아가본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손주는 자꾸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갈등이 많다.

 

아버지의 심한 질책은 가출을 불렀고 천신만고 고생 끝에 바닥에서 일어난 아들이었다. 이제 당신도 성공했으니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청주 대병으로 술을 묘소 주변에 돌아가면서 거하게 뿌려드리고 아버지를 용서해주라고 권유했다.

 

아버지의 방법이 잘못되긴 했지만 아들인 당신을 분명 사랑했을 것이니 이젠 가서 화해를 하라고, 용서하고 나면 당신의 부친 또한 무서운 거인이 아니라 잘 살아보려고 애쓰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알 게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얘기를 들은 그 분은 끄덕이더니 마음이 편해져서 돌아갔다.

 

 

이야기 #3.

 

 

아버지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작은 가게의 점원으로 들어갔다가 장사를 익혀서 서서히 사업을 키웠고 중년 이후에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정말이지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이 오로지 근검절약했다.

 

아들은 미국 유학까지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더 크게 성장하라는 개천용 아버지의 야심찬 포부였다. 아들은 돌아와서 사업을 물려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워라벨’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수시로 아들과 아버지는 충돌을 했다. 아들은 사업을 자신에게 맡겼으면 제발 간섭하지 말라는 생각이었고 개천용 아버지는 아들의 경영이나 여타 전반에 대해 크게 불만족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회사가 기울었고 그 와중에 개천용 아버지는 화병과 여타 성인병으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런 뒤 나를 찾아온 아들은 심사가 복잡했다. 자신의 경영수완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간섭이 사업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인지 또 아니면 사업 자체가 사양 산업이라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울해했다. 그러다가 나중엔 자신은 학자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 잘못된 일인 것 같다는 후회도 했다.

 

악바리 아버지는 사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더 멀리 크게 볼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고 곱게 자란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투사가 아니었다. 바닥에서 사업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에 나 호호당의 눈에도 사업을 잘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부자간의 엇갈린 기대와 희망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최근 소식을 알아보니 거의 폐업 직전이라 한다.

 

 

이야기 #4.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의대를 갔고 있는 집 딸과 결혼해서 개업을 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 잘 키웠는데 문제는 아들 녀석들의 학업이 영 엉망이었다. 둘 중에 하나만큼은 의사로 키워보겠다는 부부의 꿈은 무산되었고 이에 부부는 아들 둘을 차례로 미국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현재 의사 아버지는 은퇴를 했고 큰 아들은 귀국한 후 국내 대기업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미국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깨끗하게 말아먹었다. 이혼도 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백수 상태, 형이 재산을 다 말아먹은 바람에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둘째 아들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은 집에 돈도 없으니 뭘 할 수도 없고 일자리도 되질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그래서 자네가 사업하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했더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기회는 있었을 것인데 형이 재산을 탕진해서 그저 초라한 백수로 지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고생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이 두 아들을 유약하게 만든 것이 크다고 본다.

 

 

이야기 #5.

 

 

개천용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일구었고 아들이 물려받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야말로 잡초처럼 성장했기에 아들에 대해 너무나도 엄했다. 개천용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들은 사업을 물려받았다. 인맥을 넓힌답시고 고급 술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공연히 여기저기 술도 사주고 후원도 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아들은 끊임없이 술과 여자를 밝혔다.

 

부동산도 많았지만 하나 둘씩 팔아먹은 끝에 지금은 알거지, 부인은 결국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났다. 나를 찾아왔다. 왜 그렇게 술과 여자를 밝히고 이유도 없이 후원한답시고 돈을 썼냐고 묻었다. 이에 그 분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생각에 빠졌다. 약 3분 뒤 그 분은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는데 돌아가시자 자신의 세상이 왔다는 느낌이 들어 맘껏 놀다 보니 그만 실패하게 된 것 같다는 소회를 늘어놓았다.

 

그게 실패한 원인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엄하게 단속하다가 풀려났으니 마치 봇물 터지듯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맺는 말;

 

 

누군가 벌면 누군가는 쓴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간다. 세상의 아주 기본적인 이치이다. 부자 2대에 걸쳐 발전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선대가 이룬 것을 지키기만 해도 실은 대성공이다. 3대가 연이어 발전해가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누대에 걸쳐 번영했던 집안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대답은 내막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도중에 쉬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부와 부친이 연이어 성공했다면 그 자손은 너그럽게 살면서 인심을 베풀어야 한다. 조금 가세가 기울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렇다 보면 다시 그 증손이 뛰어나서 다시 번영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천용들은 절대 다수가 자식 농사에 실패한다. 자신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지만 그 자녀는 그런 환경이 아닌 탓이다. 이에 개천용들은 그저 너는 왜 이 아비보다 힘이 없느냐,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질책하기도 한다. 유복한 환경임에도 자식을 강하게 키운다? 모순이란 점을 개천용들은 모른다. 또 그를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엄하고 절제하도록 키운다? 기가 죽어서 미꾸라지만 만들어 낸다.

 

자신이 고생 끝에 성공했든 어떻든 자녀는 그저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면 되는 일이다. 실은 그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상이고 전부이다. 자신이 조금 성취했다고 해서 자녀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법은 없다.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저 이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다시 인물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멀리 가려면 도중에 쉬어가기도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