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앞두고 봄비 넉넉하게 내리니 그야말로 고맙구나. 중국발 먼지들도 말끔히 씻어내겠지! 아파트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양재천 건너편의 건물들과 빌딩들이 빗줄기 속에 희부옇다. 양재천은 어느새 넘쳐날 참인데 물가 산책로의 벚꽃은 젖어서 더 연분홍이고 수양버들의 신록은 더욱 청신하다.

 

물안개서린 경치를 보고 있노라니 떠오른다. 아, 누구였더라? 多少樓臺煙雨中(다소루대연우중)이란 구절을 남긴 이가? 두목 아님 유종원이었던가? 찾아보니 중국 당나라 시절 杜牧(두목)의 江南春(강남춘)이란 시 마지막 구절이다.

 

강남의 봄, 여기서 말하는 강남은 오늘날 중국의 남경 즉 난징 일대를 말한다. 찾은 김에 시를 소개해본다.

 

江南春(강남춘)

 

千里鶯啼綠映紅 (천리앵제록영홍)

水村山郭酒旗風 (수촌산곽주기풍)

南朝四百八十寺 (남조사백팔십사)

多少樓臺煙雨中 (다소루대연우중)

 

천리에 꾀꼬리 울고 신록의 빛은 붉은 꽃잎에 어리고

강마을 산동네마다 술집 깃발 바람에 나부끼네,

남조의 수도였던 이곳엔 절이 무려 사백팔십 개였다는데

뽀얀 봄비 속에 많은 누각들이 희부옇게 비쳐오네.

 

당시 여관을 겸했던 술집들은 술 酒(주)자를 새긴 깃발을 높이 세워놓고 오가는 길손들을 불렀는데 그 깃발이 강촌이나 산촌 어딜 가나 시원한 봄바람에 나부낀다 말하고 있다. 풍요롭지 않은가? 시인은 그 길을 나귀나 수레를 타고 느릿느릿 지나오면서 술과 음식도 먹고 잠도 잤던 왔던 모양이다.

 

이에 중국의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386~589) 당시 양자강 남쪽에 세워진 南朝(남조)의 수도였던 난징에 도착하니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에 전망을 볼 수 있는 누대에 오르니 수많은 절들의 탑과 누대들이 뽀얀 안개비속에 흐릿하게 보인다고 적고 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강남의 비내리는 풍경이구나! 하면서. 

 

시인은 중국 당나라 시절의 사람(803년-852년)이다. 통일 이전 양자강 남쪽에 있던 역대 나라들은 문화가 발달했고 불교 또한 융성해서 도읍인 난징-당시엔 건강이라 불렀지만-엔 절이 무려 480개나 되었다는데 시인은 그 찬란했던 문화의 자취를 봄비 속에 되새겨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양자강 이남인 강남 일대를 水鄕(수향)이라 부른다. 기온이 따뜻하고 비가 잦으며 안개도 자주 어려서 餘白(여백)의 美(미)가 넘치는 중국 수묵화의 본고장이다. 그 중에서 소주와 항주는 오늘날에도 해마다 봄이면 엄청난 관광객들이 몰리는 명승지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소주 항주 3박4일 55만원, 이런 광고가 인터넷에 늘 오르곤 했던 그 소주 항주 말이다.

 

나 호호당은 1994년 4월 경에 중국을 처음 돌아다녔다. 당시 항주에 들렀을 때 호수 사이로 난 제방길로 아침 산책을 했다. 수양버들 신록 우거지고 액면 그대로 꾀꼬리가 울고 대고 있었다. 호반에는 태극권 하는 노인네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아, 여기가 책에서나 보던 중국의 水鄕(수향) 강남의 정취구나 하고 확인했던 추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항주를 찾아갔지만 처음의 인상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글을 쓰다 보니 비가 조금 잦아들고 있다.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내려온 물로 해서 산책로까지 넘쳐나고 있다.

강아지들과 산책하면서 하늘과 벚꽃을 한 장 담았다. 옅은 실타래 구름 비상하고 벚꽃은 철을 맞아 한창이다. 예전처럼 사진을 열심히 찍지 않는다. 오래 애용해온 니콘 카메라 이젠 쓰지 않는다. 그저 폰으로 한 장 찍어볼 뿐이다. 내 나이 이젠 남길 때가 아니라 그저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며칠 후면 분분히 질 터인데...

글로벌리 뻗어가는 우리 영화와 스타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라 하면 누구? 예전엔 이영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강호, 그리고 지금은 윤여정 선생이다,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상을 무려 20개나 받았으니 말이다.

 

윤여정 선생의 경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1996 丙子(병자)년을 입춘 바닥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검색해보니 그보다 빠른 1986 丙寅(병인)년이 입춘 바닥이었음을 확인했다. (역시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윤여정 선생의 경우 1986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16년이 立秋(입추)였고 올 해는 이른바 “황금의 財運(재운)”이다. 최근에 상을 무지막지하게 타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으니 가히 황금의 재운이다. 노년이 아름다워서 더욱 좋다.

 

미국에서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1984년, 입춘 바닥보다 2년 전에 귀국해서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대배우 윤여정을 만들어낸 힘

 

 

먹고 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니 스스로도 몹시 초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먹고 살려는 힘이란 사실이다. 눈앞의 절박한 현실 앞에서 배역 따지지 않고 최대한 출연해서 돈을 벌어야 했을 것이다.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쌓인 내공이 얼마나 깊어졌으랴! 그게 오늘날의 대배우 윤여정 선생을 새롭게 만들어놓은 셈이다.

 

 

"넘버 3"의 송강호 

 

 

송강호, 두 말 할 것 없이 대스타이다. 위키에 친절하게도 1967년 2월 25일(음력 1월 17일)이라 되어 있다. 그러니 잴 것도 없이 입춘 입추를 금방 알 수 있다. 丁未(정미)년 壬寅(임인)월 庚申(경신)일이다. 그간의 프로필을 알고 있으니 간단하다. 2010 庚寅(경인)년이 氣(기)의 절정인 입추가 된다.

 

2010년 입추로부터 7.5년이 지나면 秋分(추분), 즉 크게 인정을 받는 운세라 하겠다. 과연 그 직후인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나 호호당이 배우 송강호란 사람을 알게 된 것은 1997년의 “넘버 3”란 영화에서였다. 일본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 선생을 흉내 내는 장면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때를 돌이켜보니 운세 상으로 새싹이 파릇한 小滿(소만)의 때였다. 대배우로서의 자질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노력형의 배우인 송강호인 바, 앞으로도 최소한 7-8년 정도는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산소 같이 신선했던 이영애 

 

 

배우 이영애, 화장품 광고 모델로 활약할 때 그 신선한 용모로 해서 한 때 “산소 같은 여자”란 별명이 붙었던 적도 있다. 여배우인 까닭에 알려진 생년월일에 대해 의구심도 들지만 1996 丙子(병자)년이 입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보다는 CF 모델로 더 활약을 했지만 그래도 이영애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2003년의 드라마 “대장금”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광고 모델로 얼굴을 내비치곤 있지만 이제 멀지 않아 추억 속의 스타로 기억될 것으로 본다.

 

 

그 밖의 스타들

 

 

그러고 보니 최근엔 드라마 “겨울연가”의 스타 배용준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한류 스타로서 아무래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한일관계가 문재인 정부 들어 나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배용준의 경우 1992년이 입추였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2년 寒露(한로)의 운, 빛나는 계절에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큰돈을 벌기도 했고 또 결혼 이후로는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계의 스타들이 있다. 개중에는 연기만이 아니라 노래도 엄청나게 잘 부르고 만드는 스타 예컨대 임창정과 같은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지닌 스타도 있다.

 

임창정의 경우 2000년이 입추였고 지금은 서서히 조금씩 뜸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만의 코믹 연기와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음색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이라 여긴다. 그와 비슷한 예로서 가수로 시작해서 배우로 전업한 뒤 운세가 하락하면서 오히려 특유의 퇴폐적이고 시니컬한 연기로 나 호호당의 눈을 끄는 배우도 있으니 바로 윤계상이다. 마동석과 함께 출연한 영화 “범죄도시”에서 그만의 강렬한 색깔을 보여주었으니 대단히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단 한 편의 영화로서 영원히 가슴 속에 각인된 이병헌도 있다. 2005년의 영화 “달콤한 인생”이다. 최근 위키에 생일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살펴보니 바로 그 2005년이 입추의 운이었다. 작년 2020년이 입동이었으니 가을 수확을 마친 배우라 하겠다. 앞으로도 몇 년은 충분히 활동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또 그러고 보니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난데없이 등장해서 이병헌을 총으로 사살하고 사라지는 킬러 역할을 맡았던 ‘에릭’이 있다. 왜 죽이는지 잘 알 순 없었지만 아무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때 아들놈에게 “쟤 누구니?” 하고 물었더니 “쟤 에릭이야!” 했고 그 바람에 에릭을 좋아하게 되었다. 신화의 멤버란 사실도 그 때 알았다.

 

생년월일을 보니 2004년이 입추의 운이었는데 2005년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한 셈이다. 아쉬운 건 연기력이 다소 부족해서 그런지 영화 출연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단 한 장면만으로도 내겐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벚꽃을 바라보는 눈이 해마다 변해가니 

 

 

벚꽃이 절정이다. 올 해의 특이점은 벚꽃 개화가 같은 서울 안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양재천만 해도 강남구 쪽은 이미 지고 있는데 서초구 과천 쪽은 지금이 한창이니 그렇다.

 

벚꽃, 생각만 해도 화려한 꽃, 그 가벼움으로 인해 삶의 無常(무상)함을 일러주는 꽃, 그렇기에 최근엔 굳이 카메라에 담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떨어지는 벚꽃은 자꾸만 물어온다, 삶은 덧없는 게 아닐까? 하고.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삶은 덧없는 것이기도 하기에.

 

언젠가 그리고 내게 남은 삶이 그렇게 길지도 않을 것 같은데, 삶이 끝나서 ‘없음’으로 간다면, 無化(무화)된다면 그게 寂滅(적멸)이고 涅槃(열반)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최근엔 자주 하며 지낸다. 이 질문은 아마도 살아있는 한 무수히 되풀이해서 던져보는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삶은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덧없는 삶이라 해도 본전은 충분히 뽑았다. 귀여운 강아지들과의 좋은 세월도 있었고 벚꽃도 많이 보았으며 꽃피는 계절의 어느 아침 섬진강 강가에 서서 불어오는 향긋한 향기에 몸을 맡겼던 적도 있다. 도미니칸 시가(Cigar)도 많이 즐겼고 헤네시 꼬냑과 중국 白酒(백주)의 기막힌 향취도 즐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시절엔 사랑하는 사람과의 황홀한 시간도 가졌었다.

 

사실 오늘의 글은 아침 시간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도중에 벚꽃을 쳐다보다가 스크린의 스타들이 떠올랐기에 쓰게 되었다. 그 어떤 스타도 환한 대낮엔 보이지 않는 법, 초저녁이나 되어서야 초롱한 별빛이 비치니 마치 그게 스타의 운명 같기도 해서 말이다.

쌍순환을 해보겠다는 중국

 

 

중국이 올 해부터 5년간 제14차 경제계획을 실시하는 바 그 핵심은 이른바 雙循環(쌍순환)이다. 두 가지 요소의 상호 선순환을 통해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수 소비를 키우겠다는 것이고 다음으론 外資(외자) 유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앞서의 제13차 경제계획을 통해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어섰으니 이제 어느 정도 기본은 만들어졌다는 생각, 그들 표현으론 小康(소강)사회가 되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중국공산당은 이제 외부의 어떤 간섭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체만으로도 번영을 이어가는 사회로 진입하겠다는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종신주석의 자리를 굳힌 시진핑은 자신의 재임 중에 일찍부터 기치를 내건 中國夢(중국몽), 중국이 글로벌 세계에 호령하고 군림하는 세상을 열어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있다.

 

 

이제 중국도 쉬어갈 때가 되었구나!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이제 그간 힘차게 이어온 중국의 行步(행보)가 쉬어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멀리 가려면 쉬어가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나라를 경영함에 있어 금융 측면에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자본시장 개방과 금리, 그리고 환율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해법은 없다.

 

중국은 이미 자본시장을 개방한 상태, 따라서 남는 것은 두 가지, 금리와 환율인데 실은 이 두 개는 상충 관계 즉 트레이드 오프(Trade-Off) 상태에 있다. 금리를 내리면 통화가 약세로 갈 것이고 통화를 강세로 가져가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금리와 통화 강세는 일시적으론 몰라도 장기간을 놓고 보면 절대 가능하지가 않다.

 

그런데 중국은 내수를 진작하고 외자유입을 늘리겠다고 하니 이는 그들의 통화인 위엔화를 강세로 가져가야만 한다. 중국 돈값이 비싸져야만, 반대로 달러가 더 저렴해져야만 달러가 중국 금융시장으로 더 들어올 것이고 중국 인민들도 해외 물품을 더 저렴하게 많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위엔화를 강세로 가져가려면 중국은 금리를 올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최근엔 일부 은행들의 지급준비율을 낮춰서 시장에 돈을 더 많이 풀려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불가능한 일이건만 

 

 

다시 말해서 중국은 위엔화도 강세로 가져가고 시중금리도 낮게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금리와 환율은 상충관계란 얘길 했는데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는 얘기.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고속철도와 같은 인프라 건설과 구축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고 몇 년 전에 이른바 일대일로를 통해 또 다시 돈을 풀었다. 물론 중국은 이를 통해 경제성장률은 그런대로 높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국가부채비율도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

 

그러니 더 이상 국가부채비율을 높이는 돈 풀기를 지속할 순 없는 입장인 모양이다. 외화유입을 늘리겠다고 하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효율이 낮은 인프라 건설보다는 민간 소비를 활성화해서 성장률을 유지해보겠다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생각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은 저금리와 통화강세를 동시에 이어가보고자 한다. 앞에서 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걸어간 길을 가겠다는 중국 

 

 

그런데 이런 상황은 이미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1990년 거품 붕괴 직전의 일본경제가 바로 그랬었다.

 

일본은 1985년 9월에 독일과 함께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인 엔화의 가치를 왕창 높였다. 플라자 합의가 그것이다. 그 이전에 달러 당 엔화는 대략 250 엔 정도였는데 그 이후 125 엔 정도까지 갔으니 엔화를 두 배로 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일본 경제가 워낙 잘 나가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BOJ)은 기준금리마저도 1985년 당시의 5%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2.5%까지 대폭 인하를 해버렸다.

 

내수는 폭발했고 부동산은 연일 가격이 치솟았으며 달러가 싸지자 일본인들은 미국의 부동산과 각종 자산을 마구 사들였다. 그러다가 결국 폭발해버린 것이 1990년 말의 일본 거품 붕괴이다. 한마디로 죽을 짓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중국이 또 다시 그러고자 한다. 저금리에 위엔화 강세. 죽을 짓이 아닐까?

 

 

나름 짐작을 해보니 

 

 

중국 친구들, 머리가 없는 것도 아닐 것인데 왜 저럴까? 왜 저처럼 무모한 짓을 하겠다는 것일까? 일본이 왜 무너졌는지 그들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짐작이 가는 구석은 하나 밖에 없다. 바로 시황제의 체면을 살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때마침 미국 연준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절대 올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돈 즉 달러를 아무리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생기질 않으니 연준 파월 의장은 얼마 전엔 ‘제발이지 인플레이션 좀 생겼으면 한다’는 멘트도 날렸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체제이고 그 최고봉에는 ‘국가주석’이 자리하고 있다. 더하여 2018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경우 종전에는 두 번 이상 연임할 수 없던 조항을 폐지하면서 사실상 한 사람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사실상 과거의 황제 통치 체제로 전환한 셈이다. 시진핑이 살아생전에 국가 주석 직에서 내려오겠는가 말이다. 절대권력이 스스로 물러서는 법은 없지 않은가!

 

중국을 지배하는 중국 공산당은 스스로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 즉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회주의적 특징보다는 “국가자본주의”라 하겠고 그 본질에 있어선 과거의 왕조체제에 더 가깝다.

 

현 중국이 과거의 왕조 체제와 다른 점이라곤 국가주석 자리가 혈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북한이야말로 액면 그대로 ‘김씨’ 왕조 체제라 하겠다. 따라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는 저번 20세기의 엄청난 사회적 실험에 그치고 말았다.

 

시진핑은 자신이 종식 주석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 나름의 명분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종신 국가주석 직을 맡고자 하는 것은 내 개인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내건 중국몽, 중국의 꿈을 자신이 죽기 전에 구현하기 위함이다, 뭐 이런 식의 포장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수를 왕창 진작하고 그에 필요한 돈은 외자, 즉 달러를 대거 당겨다가 써보자는 것이 바로 쌍순환이다. 올 해부터 5년간 즉 2025년까지 경제를 이런 식으로 추진하겠다는 중국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대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시진핑의 의욕이고 중국의 야심이다.

 

중국을 꺾어놓지 않고선 미래가 불안하다는 미국, 미국 너희 놈들이 제 아무리 설쳐도 끝내 최대경제대국이 되고자 하는 중국이다. 그야말로 패권전쟁이다.

 

그러니 이제 싱가포르를 통해 그야말로 막대한 달러가 중국 금융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이다. 싱가포르는 중개 수수료를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고 말이다.

 

 

기회를 노리는 미국

 

 

이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미국은 중국이 쌍순환 추진 기간 중에 이때다 싶은 판단이 설 경우 마침내 시퍼런 칼날을 빼어들지 않을까 싶다.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면서 기준금리를 지금의 0.25%에서 3% 정도까지 삽시간에 올려버리면 그간에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른 중국의 거품을 한 방에 터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건 그저 예상이다. 마구 풀어놓은 달러로 인해 예상 밖의 인플레이션이 마구 생겨날 경우 굳이 중국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체의 필요성에서 미국 연준은 현재 예상하는 3%가 아니라 5% 이상까지도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본다.

 

달러 캐리를 했던 싱가포르를 비롯해서 홍콩 등의 금융 중개지는 묵사발이 날 것이고 중국은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나아가서 중국공산당 자체가 무너지는 일은 예상하긴 어려우나 그간의 절대 권위는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미국 역시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떠오르는 라이벌 중국을 꺾어놓을 수만 있다면 능히 가능한 일이라 본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 역시 엄청난 몸살을 앓게 될 것은 물론이다. 부동산과 증시 폭락은 기본이라 본다.

 

나아가서 중국이 흔들리면 북한을 돌볼 여유가 없어질 것이니 어쩌면 그로서 동북아 정세에도 엄청난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마저 있어 보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시기에 대해 한 번 예상해보자면 빠르면 2023년, 늦어도 2025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때가 왔으니 

 

 

벚꽃 만개하고 양재천 변의 수양버들 新綠(신록)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다가가서 매만지고 쓰다듬어주고 싶다. 양재천 물도 갓 돋아난 풀들로 인해 푸르게 물들었다. 좋은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