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따라서 물을 따라서 

 

 

고개를 올려 달을 보면서 서너 걸음, 다시 시선을 수평으로 내려 몸을 가누고 다시 달을 마주하고, 바로 옆은 느릿느릿 내려가는 양재천, 나도 보조를 맞추어 더디 걸었다.

 

밤 11시, 달은 하늘 정중앙에 둥실 걸렸는데 옅은 무리가 서렸다 말았다 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의 달보다는 아주 엷은 면사포 사이로 비치는 저 모습이 더 신비로운 법이지! 예식장 단상에 올라 살짝 긴장한 모습의 빛나는 新婦여!

 

자정 무렵인데도 밤공기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 갈 때는 양재천 물가는 쪽으로 걸었고 돌아올 때는 서쪽으로 가는 달과 함께 1시간 이상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다 돌아왔다. 때론 걸음을 멈추고 물가의 수양버들에게 다가가 날씬하게 벗은 실가지를 손가락 끝으로 매만져보기도 했다, 물이 올랐는가? 그러자 점심 무렵 택배로 보내온 고로쇠 물이 떠올랐다. 집에서 나오던 참이라 보낸 이가 누군지 미처 확인도 못 했지만 입안은 벌써 달착지근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맛있기만 한 오곡밥 

 

 

정월 대보름, 달이 커서가 아니라 정월 십오야의 보름달이라 대보름이다. 아점으로 오곡밥 참 많이도 먹었다, 맛있게. 식어도 맛이 좋은 오곡밥. 간이 되어 있어 찬이 없어도 그 자체로서 맛이 있는 오곡밥.

 

설음식은 기름져서 부담되지만 오곡밥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담백하고 고소하며 아기자기하다. 곡식마다 씹히는 맛이 달라서 재미도 있다. 오곡이라 해도 꼭 다섯 가지 곡식만 넣으란 법도 없고 지방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나는 것이 오곡밥이다.

 

글로벌 시대, 온 세상 음식을 모두 맛을 보았다 해도 과장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질리지 않고 맛이 좋으니 옛 사람들은 얼마나 즐겁게 먹었을까나.

 

 

무수한 조상님들 

 

 

옛 사람 얘기를 하니 생각이 난다. 내가 이 시각에 존재한다는 것은 먼 조상들이 어쨌거나 짝을 지어 출산하고 먹이고 보호해주면서 길러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란 사실. 나 호호당의 성은 金(김)이지만 사실 그건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신뢰하기도 어렵다.

 

나의 조상 중에는 농부도 있었을 것이고 노비도 있었을 것이다. 만주 벌판을 말 타고 돌아다니는 유목민도 있었을 것이며 무쇠팔을 가진 무사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해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때론 글 읽는 선비도 있었을 것이니 그게 무슨 상관, 오늘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저 무수히 많은 남녀 조상님들의 짝짓기를 통해 용케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5대 앞의 조상님들만 생각해도 32개의 유전체 즉 게놈(genom)이 내 몸속에 존재한다. 10대 위로 가면 1,024개, 15대 위로 가면 무려 32,768개의 게놈을 내 몸속에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내 몸속엔 32,768분에 달하는 조상님들의 영혼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15대 해봐야 450년 전이다. 한반도에 부여라든가 고구려와 같은 나라들이 등장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 기원 전후 즉 2000년 전으로 갈 것 같으면 게놈의 숫자가 앞서 말한 32,768개의 4제곱일 것이니 그건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숫자가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 호호당 간에는 멀고 가깝고의 차이가 있을 뿐 혈연관계가 있다는 말이 된다. 나 호호당의 속에 온 인류가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실은 기적인 것이니

 

 

짝을 짓는다는 것, 그를 통해 아이를 만들고 길러낸다는 것, 실로 엄청난 일, 至難(지난)한 과업이다. 수렵 어로 시절엔 배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했을 것이며 농경사회가 시작된 다음에도 땅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서로 간에 싸우고 죽이고를 반복했을 것이며 질병의 공격에도 견뎌내면서 천만다행으로 아기를 출산하기 전에 내 조상님은 죽지 않았기에 내가 존재한다.

 

무지막지한 생존본능이고 번식본능이라 하겠는데 그 엄청나게 질긴 욕구와 욕망이 내 속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발로 걷기 시작한 지 65년도 더 되었으니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다녔으며 또 자동차와 기타 운송수단을 타고 다녔겠는가, 그런데 그 사이에 한 번도 큰 충돌 사고 없이 지금까지 몸 멀쩡하게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 이건 어떤 면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싶다.

 

또 그 세월 사이에 무수히 많은 나쁜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내 몸속으로 침입해 왔을 터인데 그저 감기 좀 앓았을 뿐 죽을 정도에 이른 적은 없었다는 사실, 그랬기에 오늘 역시도 저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 저 악당 놈과 스치는 일이 있을까봐 겁내고 조심해가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

 

담배를 즐기지만 평소 백신 따윈 무시하던 나는 작년 코로나19가 유행하자 쫄렸다. 저거 걸리면 이번에야말로 난 간다. 난생 처음으로 폐렴 백신도 맞고 독감 백신도 접종했다. 일단 폐렴이나 독감부터 방비한 다음에 코로나19와는 거리를 멀리하겠다는 이 탁월한 생존전략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무수한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본능적 지혜이자 ‘진인사대천명’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지, 암!

 

밤이 지나 토요일 아침,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간밤 달님은 지금쯤 내 발밑을 가고 있겠지 싶었다. 다시 모니터 앞에 돌아와 앉으니 자기 전에 읽던 책이 펼쳐져 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이야기 

 

 

대승오온론, 한자론 大乘五蘊論, 먼 옛날 AD 300년 경에 인도의 불교철학자였던 바스반두, 흔히 세친이라 불리는 분이 지은 불교의 유식철학에 관한 책, 이를 중국 당나라의 삼장법사인 현장이 한문으로 정리해놓은 책이다.

 

如薄伽梵略說五蘊。一者色蘊。二者受蘊。三者想蘊。四者行蘊。五者識蘊。云何色蘊...

 

박가범(세존), 즉 부처님께서 간략히 설하신 바에 따르면 오온이란, 첫째가 색온이고, 둘째 수온이며, 셋째는 상온이고 넷째는 행온이며 다섯째는 식온이라, 그렇다면 색온이란 무엇인가 하면..., 이런 식으로 이어지면서 불교철학의 핵심 정수를 간략하게 풀이하고 있는 책이다.

 

삼십대 시절 독파하겠다고 나섰다가 던져버린 책이다. 그런데 30년이 흘러 다시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그 사이에 무엇이 내 속에서 변했기에 그럴까?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책을 접했고 아울러 삶의 경험이 쌓여 왔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긴 하다.

 

얼마 전부터 이 책을 암기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자 3,119자로 이루어진 책이고 옛날 학승들은 일단 외우고 나서 연구했다고 하니 흉내를 내보고 있다. 암기력 저하를 다소 늦추어보자는 의도도 있다.

 

외우는 것은 힘이 들긴 해도 여러모로 편리하다.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아니면 길을 걷다가 또는 산책하면서 떠올릴 수 있고 그러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을 떠올려놓고 한 단어씩 따져가며 궁리해볼 수 있다. 지루한 체력단련, 가령 스쿼트 같은 것을 할 때도 시간이 잘 간다. 암송하다 보면 때론 전혀 읊조리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뇌 속에서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니 참 묘하다.

 

삼장법사 현장스님, 손오공이 나오는 西遊記(서유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삼장법사 현장의 엄청날 정도의 멍청함과 고지식함에서 나온다.

 

척 봐도 나찰이고 나쁜 악귀들이건만 삼장법사는 순진하게 속는다, 오히려 손오공을 나무란다. 그 탓에 삼장법사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손오공은 투덜거리면서 악귀나 나찰을 물리치고 스승인 삼장법사를 구출해낸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반성하거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법이 없다, 또 다른 악귀들에게 속아 넘어간다. 병신! 바보, 이렇게 열을 받게 하면서 서유기는 이어진다.

 

막장 드라마에선 악당이 드라마의 힘이듯이 서유기에선 삼장의 멍청함이 전재해가는 원동력이다. 요즘 '펜트하우스'란 드라마에서 흰 눈동자 다 드러내고 악쓰는 여배우가 얼핏 보이던데, 촬영 끝나면 눈 좀 아플 것이다.

 

그런데 실제의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옮겨놓은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면 기가 막힌다. 저거야말로 천재의 파워! 이에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유전자의 조합에서 만들어진 극소수 천재들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의 우리들은 그냥 먹고 살기 바쁘고.

 

 

능력의 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별 차이가 없을 때 오십보 백보란 말을 쓴다. 그런데 내 생각엔 오십보와 오십일보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대다수 사람의 경우 능력의 차이란 사실 뭐 있겠는가 싶다. 경상도말로 “니나 내나”.

 

천하갑부 빌 게이츠, 나 호호당과 동갑이다. 내가 생일이 두어 달 빠르다. 저 친구와 나와의 차이, 돈에 있어선 내가 좀 밀리는 편이고 사는 재미는 내가 저보다 앞선다 여긴다. 피장파장.

 

그런데 피장파장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하고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알려드린다. 원래 말은 彼丈夫我丈夫(피장부아장부)였다. 이 말을 빨리 발음해보면 피장파장이란 축약어가 된다. 뜻은 너도 사내 나도 사내이니 무슨 차이가 있으리! 하는 말이다.

 

집의 모든 창을 30분 이상 열어놓고 있어도 전혀 춥지가 않다. 화창한 초봄의 하늘, 동풍이 불어와 중국발 먼지를 거꾸로 중국 내륙 쪽으로 쑤셔박고 있으니 서해 바다마저 깨끗하다. 상쾌통쾌, 공기가 좋아서 상쾌하고 중국 미세먼지들을 도로 돌려주고 있으니 통쾌하다. 正義(정의)가 구현되고 있음이다.

 

 

하루가 지나 다시 달님과 마주하니 

 

 

다시 늦은 밤이 되었고 간밤의 달과 다시 마주한다. 24시간이 지난 셈이다.

 

어제와는 달리 환한 달빛 속에 10년 전에 죽은 우리 강아지 가을이의 미소도 보이고 달 토끼 그림자를 찾다 보니 강아지보다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미니토끼 초롱이의 활달하던 모습도 보인다. 情(정)이란 놈은 한 번 들면 단박에 잊히는 법은 없고 세월의 거리만큼 조금씩 멀어져서 그저 아스라해지는 모양이다.

 

달빛에 취한 글이라 지울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마무리하기로 한다. 글을 마치고 창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둥글고 환하다.

가족도 사라지고 고향도 없어졌으니 

 

 

앞글에서 가족이나 가정 등등의 말이 오늘에 이르러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족은 이미 소멸되고 해체되었다는 것을 얘기했다. 아울러 씨족집단 즉 가족이 살고 있던 곳이 편안하고 의지할 수 있던 故鄕(고향)이었기에 이젠 사실 고향마저 소멸했다는 말도 잠깐 했다.

 

그 결과 호적법이 폐지되고 그 대신에 핵가족을 전제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게다가 상속에 관한 법률인 가족법도 역시 그 적용이 크게 변해가고 있다. 가족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서양은 해체가 천천히 진행되어 왔기에 

 

 

그렇다면 서구 또는 서양은 어떨까? 하고 알아보면 정도는 달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와는 달리 몇 백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우리보다는 크지 않았다는 얘기.

 

가족을 뜻하는 것이 패밀리(family)인데 그 원뜻은 다소 놀랍게도 그 집안의 노비나 하인을 뜻하는 famulus란 라틴어에서 왔다는 점이다. 그곳 역시 가족들과 그 노비들로 이루어진 집단, 우리의 예전 가족과 뜻이 비슷하다. 영어의 하우스(house) 역시 원래는 귀족 씨족 집단이 거주하는 공동체의 공간인 일종의 장원을 뜻하던 말이었다.

 

우리는 아직 閥(벌)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대기업을 이루거나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의 사람들을 일러 재벌가라고 하고 있다. 그저 예전 단어의 殘在(잔재)일 뿐이다.

 

 

가족 안전망의 붕괴

 

 

이제 가족의 해체가 가져온 결과 특히 가족 안전망의 붕괴에 따른 현실을 얘기해보자.

 

독일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의 이론으로서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와 이익사회(게젤샤프트)가 있다. 오늘날의 현상은 공동사회 특히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사회가 거의 소멸되고 그것이 계약으로 맺어진 이익사회로 대체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공동사회의 대표적인 것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었다. 물론 같은 핏줄이라고 해서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지는 않았고 가장 큰 몫은 宗家(종가)가 물려받아 관리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혈연관계라 해도 직계부모의 유산을 물려받는 상속이 거의 전부이고 친척 간엔 이익을 공유하는 일이 거의 없다.

 

예로서 부자 삼촌이 있다고 해서 조카가 혜택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부자 삼촌의 자녀는 금수저일 수 있어도 그 금수저의 사촌 동생은 흙수저인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친척이 부자라고 해서 그 득을 보긴 정말 어렵다, 요즘말로 짤없다.

 

예전에 가족의 일원이면 차별이 있긴 해도 그 자체로서 안전망이자 복지의 역할을 했는데 그 잔재가 바로 오늘날 결혼이나 장례 시의 賻儀(부의)이다. 예전 시절 종가가 부유하고 윤택할 경우 그 먼 친척 즉 가족의 일원이 빈한하면 체면 때문에라도 나름 돌봐주었다. 종가집 며느리는 손이 크고 볼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예전엔 가문이나 가족, 문중이 개인의 능력보다 더 중요했다.

 

오늘날엔 가족이 없으니 안전망이 철저하게 사라졌다. 그저 핵가족 안에서의 안전망이고 복지가 사실상 전부이다.

 

 

핵가족 안에서마저 안전망이 붕괴되고 있다는 점

 

 

그런데 핵가족에서 부모 중에 한 명, 특히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 집안 사정은 급격하게 어려워진다. 아내가 중병에라도 걸리면 아빠가 직장 일도 하면서 자녀도 돌보고 아내 병 치료 비용도 대야 한다. 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혼을 할 경우 핵가족 내의 안전망도 사실상 무너진다. 예전엔 문중에서 공동으로 아이들을 돌봤다. 무수한 숙모와 숙부, 때론 많은 이모와 이모부들이 부모 노릇을 했다. 그렇기에 약간의 그늘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장성하면 당연히 그 은혜에 보답했을 것은 물론이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느껴지고 있으니 

 

 

최근에 보면 자녀가 독립해서 가정을 이루고 나가면 그 뒤에 부모를 돌보는 경우도 사실상 없다. 이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공정치 않다. 이치에 맞지 않다. 자녀들을 키웠다면 나중에 자녀들로부터 부양을 받는 것이 옳은 이치이고 도리이지 않는가.

 

이렇게 된 데에는 오늘날 부모들의 잘못이 크다. 내가 낳은 자식 잘 되고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훗날 키워준 자녀에게서 일부라도 돌려받을 생각은 해야 그게 정상이고 이치이다.

 

이렇게 된 바탕을 보면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1980년대까지 먹고 살기가 정말 너무나도 어려웠기에 우리 부모들은 어차피 힘든 마당에 자녀 너희들이라도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으로서 고생한 恨(한)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까닭이다.

 

좋게 보면 숭고한 희생정신이라 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오늘날 무수히 많은 가난한 독거노인과 고독사를 양산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부모의 은혜마저 나 몰라라! 하면 어떤 세상이 되는가!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다. 세상에 공짜 없는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자녀가 훗날 받은 것의 상당 부분을 갚음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식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의 膏血(고혈)을 빨아먹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부모의 고혈을 당연시하면서 빨아먹은 자녀가 성장해서 사회에 나가면 일반 타인들에겐 어떻게 행동할까? 타인의 등골을 빼먹고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지!

 

孝(효)라든가 유교 정신을 떠나서 이건 아닌 것이다. 시대의 새로운 정신, 공정한 마인드와도 맞지 않다. 나 호호당 생각에 우리 사회가 극도로 살벌해진 바탕에는 나만 잘 살고 잘 누리면 장땡이란 극도의 이기심이 놓여 있다고 여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견 역할을 하는 중년의 부모들, 좀 윤택하게 살아가는 중산층 또는 중상층을 한 번 살펴보자.

 

자녀 교육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붓고 있다, 스스로도 골프 좀 쳐야할 것 같고 산티아고 순례도 힐링차 다녀와야 하겠으며 차도 가능하면 뱀인지 BMW인지 그런 것도 좀 빼서 다녀야 할 판이다. 그러니 연로한 부모님에게 크게 갚음할 돈은 어렵고 그저 명절에 얼굴 내밀고 가끔 온라인으로 용돈 보내드리는 것이 고작이다. 다른 데 쓸 곳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아직은 孝(효)라고 하는 관념이 남아있어서 일종의 양심 해결이라 하겠는데 지금의 자녀들이 훗날 그 정도 양심 해결이라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의 기성 중년층에게 한 번 묻고 싶다.

 

왜 나를 금수저로 키워주지 못했느냐 하면서 원망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한 일이라 본다.

 

 

핵가족마저 흔들리고 있는 오늘의 세상

 

 

이처럼 가족을 통한 복지와 안전망은 오늘에 이르러 철저하게 붕괴되고 핵가족마저 흔들리고 있다. 

 

명절에 고향의 부모님을 찾는 것 역시 며느리 입장에선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친정 부모도 독립하면 거의 타인처럼 변해가는 판국에 시댁 부모님이 한 재산 움켜쥐고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명절에 찾아갈 이유가 없다. 반가운 일이라곤 전혀 없고 가고 오면서 힘만 든다. 그러니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족의 해체는 지금도 맹렬한 속도로 진행 중이고 가족 집단이 안전망을 제공하던 곳으로서의 故鄕(고향) 역시 이젠 관념 속 존재일 뿐이다.

 

형제일지라도 각자 독립하고 나면 각자의 능력으로 살아갈 뿐이고 서로 바쁘다 보니 얼굴을 볼 일도 거의 없다. 그나마 명절 때 한 번 보는 정도이니 오가는 情(정)도 별로 없다. 그러니 사촌지간이야 말할 것도 없다.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으니 무슨 정이 붙겠는가. 앞으론 더더욱 그럴 것이다.

 

情(정)이 무엇인가? 이익을 주고받음에 있어 손익을 철저하게 따지지 않는 게 정이라 본다, 나 호호당은 그렇게 생각한다.

 

 

무정하고 살벌해진 우리 대한민국 

 

 

그런데 오늘날 가족의 해체로 인해 부모가 돌아가시면 형제 사이라도 사실상 남남인 판국이니 가족 안전망은 철저하게 사라졌다. 정도 사라졌다. 그저 살벌한 우리 대한민국이다.

 

돌이켜보면 2012년 대선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복지였다. 다른 말로 사회안전망이 가장 큰 이슈였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하는 논쟁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나 호호당의 생각은 이렇다. 그 이전 성장하던 시절엔 각자 열심히 좀 하면 돈 많이 벌어서 본인도 누리고 자녀들도 잘 키우고 부모님께도 잘 해드리겠다는 희망 혹은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이 되자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각자살기만으론 너무나도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던 시점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는 생각이다.

 

 

복지 논쟁의 바탕에 깔린 생각

 

 

그러자 갑자기 복지논쟁, 이젠 나라가 나서서 해결해주시오 하고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입장에선 그 역시 모순이다. 복지비용을 늘리고 싶어도 저성장 국면이 되면 세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장차 인구가 줄어들 것이니 미래는 더더욱 어둡다. 남은 것은 이른바 가진 자들로부터 더 뜯어내거나 국채발행을 늘려 미래의 세수를 미리 앞당겨 쓰는 적자재정이 전부이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했으니 돈 풀기에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마구 적자재정을 행해 치닫기 시작한 현 정부이다. 아마도 다음 정부는 더더욱 미친 듯이 적자재정을 늘려갈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갈구하는 바람직한 기업은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이는 옛날로 치면 종가집에서 넉넉한 인심을 베풀길 바라는 심정과 동일하다. 오늘날 복지와 안전망 역할은 일자리가 해주고 있는 셈이고 일자리를 베푸는 것은 기업인 까닭이다. 그러니 사회적 기업, 기업의 이익보다 직원들의 복지와 안전을 책임져주는 기업이 많아지길 바라는 심리의 반영이라 하겠다.

 

틀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란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바뀌었고 물질적 풍요는 비할 바 없이 커졌지만 먹고 사는 이치는 예전에 비해 어떤 면에선 더 가혹해지고 살벌해진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가족이 해체되었으니 각자살기이고 고향이 사라졌으니 심적으로 기댈 데도 없다, 그저 내 몸뚱이 하나가 밑천이다.

 

그러니 복지! 복지! 하면서 복지타령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국가가 적자재정을 통해 복지비를 마냥 늘려갈 수 있을까? 참, 그게 문제로다. That is the question!

오늘에 이르러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점

 

 

최근 올리는 글들은 다소 무겁다. 한 해의 가장 추운 1월 丑(축)월에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던 주제들인 바, 우리 한국 사회의 과거 60년 이상에 걸친 근대화와 변화의 과정에 대한 글들이란 점에서 그렇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의 가족 해체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내적 모순이 날로 첨예화되면서 빈부의 격차를 말하는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깊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정도를 돌이키기 어려운 경지까지 몰아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팬데믹이 끝났을 때 빈부의 격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 있을지 솔직히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가족의 해체 그리고 사회안전망

 

 

이에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예전 근대화 이전의 농경사회에선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바로 가족이라고 하는 테두리였다. 가족이야말로 각종 위험이나 질병, 빈곤 등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방벽이었고 울타리였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가족이 맡고 있었다는 이 말에 대해 아마도 글쎄 그럴까? 싶은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지금부터 이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아 그게 그랬었구나! 하고 수긍을 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가족이란 어휘 

 

 

보통 우리가 가족이라 하면 한 쌍의 부부와 그들의 미혼 자녀들을 떠올린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 한 둘 정도, 그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은 그건 가족 중에서도 너무나도 작아서 물질로 치면 거의 原子(원자)급이라 해서 核家族(핵가족)이라 부른다. 우리들은 가족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핵가족을 연상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大家族(대가족)은? 하고 묻거나 생각해보면 조부모와 부모, 자녀와 며느리, 손주 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역시 예전엔 그 정도 가족에 대해 대가족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그 역시 핵가족 즉 원자 단위는 아니라 해도 거의 分子(분자) 수준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사회에서 가족이란 하면 구성원이 몰락한 집안의 경우 수십, 적게는 수백, 보통은 수천, 많게는 수만에 이르는 거대한 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원래 의미의 가족과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단어만 같을 뿐 그 의미는 지금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얘기이다.

 

가족과 비슷한 단어로서 가정이 있고 좀 올드한 뉘앙스의 단어로서 家門(가문)이란 말도 있다. 또 가문과 연관되어 門中(문중이란 단어도 있다.

 

가족, 가정, 가문이란 단어들의 고통 요소는 家(가)라는 글자이다. 따라서 家(가)를 이해하고 나면 오늘에 이르러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하게 될 것이다. 또 그로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심한 변화에 노출되어 있는가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家(가)란 무엇이었던가. 

 

 

먼저 家(가)란 무엇이었는지부터 알아본다.

 

家(가)란 때론 증조부와 조부모의 가족들과 형제들 그 자손들과 자손의 손주 손녀들, 때론 증손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뿐만 아니라 여기에 그 집안에서 봉사하는 하인들과 노비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손주들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家(가)에 속한 전체 구성원들을 예전엔 食率(식솔)이라 표현했다. 따라서 家(가)는 씨족 집단과 그 씨족에 봉사하는 노비와 머슴들을 포함하는 거대 집단이었고 그렇기에 그 구성원의 수가 때론 수만에 달하기도 했다.

 

예전엔 그런 집단이 방대한 田畓(전답)을 가문의 이름으로 소유한 채 노비와 함께 공동으로 경작하고 먹고 사는 공간 또는 실체를 莊園(장원)이라 불렀다. 중세 ‘장원경제’에서의 그 장원 말이다. 장원을 이루고 있을 경우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자체 무장조직 즉 자경단을 운영하기도 했기에 시국에 따라선 지방의 거대 무장세력으로 할거하기도 했다. 그런 家(가)를 일러 族閥(족벌) 또는 門閥(문벌)이라 불렀다.

 

가령 삼국지연의에서 曹操(조조)를 보면 어쩌다가 부친이 성이 조씨인 환관의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曹(조)씨가 되었지만 원래는 夏候(하후)씨였다. 하후씨는 그 조상이 유방이 항우와 쟁패해서 漢(한)제국을 세웠을 때 개국공신 제8위였던 하후영으로부터 이어져온 명문 벌족이다. 하후 집안, 즉 하후씨 가족은 후한 말기의 삼국정립 시기까지 이미 400년에 걸쳐 이어오면서 엄청난 자손과 함께 방대한 전답을 소유한 거대 족벌 집단이었다.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거병한 조조는 하후 가문의 수천에 달하는 식솔들을 무장시키고 군자금 역시 집안에서 조달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거대 세력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조조의 핵심 부하 중에는 조인과 같이 6촌 동생도 있었으나 조조의 최정예 병력은 1만에 달하는 철갑기병대였는데 그 지휘를 맡았던 사람은 조씨가 아니라 ‘하후연’이었다. 같은 집안 즉 가족이었던 것이다.

 

삼국지에서 남쪽 오나라의 손권 역시 북방에서 대규모로 이주해온 손씨 가족집단의 일원이고 노숙이나 주유 역시 북방에서 난리를 피해 이주해온 거대 씨족 집단의 일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말 대단한 인물은 유비이다, 몰락한 황실의 후손으로서 돗자리나 만들어 팔던 영세한 자영업자가 황실의 혈통이란 점 하나를 마케팅해서 장비와 관우와 함께 나중에 나라까지 세웠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유비야말로 亂世(난세)의 영웅이었다.

 

이제 가족이란 것이 원래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가족은 옛날로 치면 가족의 지극히 작은 일부였던 것이고 이에 핵가족이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엔 이혼의 일반화로 인해 부모 중 한 쪽만 있고 거기에 자녀 역시 하나인 가족도 대단히 많다. 원자보다 더 작은 미립자 즉 ‘쿼크’ 가족이라고나 할 까.

 

 

가문이란 무엇이었는가. 

 

 

이제 家(가)를 이해했으니 家門(가문)이란 단어를 알아볼 차례이다.

 

예전에 家(가)가 공동으로 거주하던 마을,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에 이르는 대장원의 경우 방비를 위해 거주구역은 木柵(목책)으로 둘러져 있었고 입구에는 커다란 대문이 하나 있었으니 이를 家門(가문)이라 했다.

 

이에 그 문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 혈연적 관계인 사람들과 그 가문의 노비나 하인들 역시도 門中(문중), 문 안에 사는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때론 기존의 전답만으론 인구 압력이 커져서 차남이나 삼남 등이 일부 식솔을 이끌고 외지로 나가 별도 땅을 개간하거나 투쟁을 통해 빼앗은 땅에 자리 잡기도 했는데 이를 分家(분가)라고 했다.

 

이 경우 원래의 문중이 있는 곳을 本貫(본관)이라 하고 그 본관을 이끌어가는 핵심 그룹을 宗家(종가)라 불렀다. 또 그에 속한 일원을 宗中(종중) 사람이라 했다.

 

 

가정이란 단어 역시 뜻이 달랐으니 

 

 

이제 家庭(가정)이란 말도 알아보자. 집안의 마당이란 뜻이지만 사실 뜻은 그렇지가 않다. 단어에 포함된 庭(정)이란 글자 역시 오늘날과는 전혀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예전에 임금님 앞에서 신하들이 모여서 아침 회의를 하던 것을 두고 朝廷(조정)-오늘로 치면 국무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 회의실-이라 했다.

 

이를 확대 연장해서 한 家門(가문) 안에서 가장 권력자인 집안 어른이 자녀와 며느리, 하인과 노비 등등 수십 혹은 수백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대청마루에 서서 지시하고 훈계하던 앞의 마당을 廷(정)에서 약간 작다는 의미의 한자를 만들어 庭(정)이라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그런 의미의 가정은 없다.

 

오늘날 단출해지고 또 규모가 작아진 가정에서 庭(정)은 바로 아파트의 거실이다. 그곳에서 식구가 다 모여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부 좀 열심히 해라, 엄마가 딸에게 일찍 좀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이 항변도 하고 힘들다는 변명도 한다. 바로 그 거실이 家庭(가정)이다.

 

 

가족, 화살촉으로 구분이 되던 씨족 집단 

 

 

이제 마지막으로 家族(가족)에 대해 알아보자. 家族(가족)이란 단어의 뒤에 붙은 族(족)이란 단어는 화살촉을 의미한다. 촉이란 말 자체가 한자 族(족)의 우리말 변형이다.

 

옛날 중국 북방이나 만주 몽골 지역의 경우 여러 씨족으로 이루어진 부족이 가을이면 함께 수렵에 나서곤 했다. 일종의 전투 훈련이기도 했다. 이때 가족 즉 가문마다 화살촉에 각자 다른 색실이나 끈을 매달았는데 이는 다른 씨족이나 가문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노루나 사슴, 산돼지 등의 짐승을 잡을 것 같으면 일단 노비들이 뛰어다니면서 한 곳에 모은다. 사냥이 다 끝나면 짐승의 몸에 꽂힌 화살촉을 보고 어느 가족 또는 가문의 소유인 가를 구분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가족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가족은 어느 집안의 화살촉이었던 것이다.

 

가족 역시 씨족집단이기에 그 수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천에 이르기도 했으니 오늘날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는 그것, 엄마 아빠 그리고 자녀 한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家(가)는 莊園(장원)을 운영했고 북방 유목 수렵 사회에서 가는 화살촉으로 구분되는 家族(가족)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제 家(가)란 단어와 그와 관련된 가족이나 가정, 가문, 문중, 종중, 종가 등등에 대해 다 설명했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족이 사라졌기에 고향 역시 사라지고 말았으니. 

 

 

지금까지 가족이나 가정, 가문 등의 원래 뜻을 알았으니 오늘날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말이 사실임을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 조금 덧붙이면 우리가 흔히 故鄕(고향)이라 부르는 말의 원뜻은 씨족집단인 가족이 터를 잡고 있던 곳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러 고향이란 것도 실은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말이다.

 

다음 글에선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점, 그리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사회안전망과 복지와의 관련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고령화에 대한 공포

 

 

“재수 없으면 120세까지 살 게 된다”, 일본의 공포괴담이다. 흐흐흐, 설마? 하지만 전혀 틀린 말도 아니다. 60세에 은퇴해서 60년을 벌지 않고 까먹으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호러 스토리가 된다.

 

원래 은퇴란 것은 餘生(여생), 즉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 예전엔 대충 5년에서 길면 10년 정도의 시간을 편하게 쉬다가 가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여생이 이젠 길어도 너무 길어졌다. 기술의 혁신과 발전으로 인해 영양분 공급이나 醫療(의료)가 너무 좋아져서 생겨난 새로운 모순이다.

 

바이오 기업들이 퇴행성 관절염이나 치매, 암 발병에 듣는 약까지 개발할 것 같으면 공포괴담 정도가 아니라 120세가 현실이 될 것도 같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들

 

 

이에 오늘은 늙어가면서 겪는 일에 대해 약간 얘기해본다. 블로그 독자들은 아마도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니 이런 얘기를 들어두면 각자 나중의 삶에 대비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이다.

 

나 호호당은 이제 66년하고도 7개월을 살고 있다. 노년 같기도 하고 때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늙으면서 생겨난 신체의 변화

 

 

먼저 노년이다 싶은 점부터 따져본다. 작년에 디스크 문제로 인해 좌골신경통을 겪었다. 처음엔 왼쪽 다리가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마비되고 심하게 통증이 왔다. 타고나길 유연해서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으리라 여겼던 착각이 깨지면서 심적인 충격은 더 컸다.

 

여름엔 어쩌다 한 번씩 눈의 흰자위 실핏줄이 터지면서 붉은 눈이 되곤 한다. 마치 뱀파이어의 눈처럼 된다. 안압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매주 한 번씩 왕진 오는 한의사 분이 침으로 해결해주고 있다. (나 호호당에겐 실력이 비범한 한의 주치의가 있다.)

 

작년 가을엔 귀에서 소음이 들려서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돌발성 난청이란 것이었다. 테스트를 했더니 왼쪽 귀의 청력이 정상에서 조금 밑으로 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양반 약간 엉터리였다. 한의 주치의가 와서 이문혈에 침 한 대를 놓았더니 달팽이관 쪽에 청량한 느낌이 오더니 그냥 나았다.

 

작년 가을엔 또 갑자기 혈압이 생겼다. 약간 어질어질해서 혹시나 하고 혈압을 재봤더니 140에서 160까지 오르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여태껏 늘 120-80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운동, 특히 스쿼트를 조심해서 무리하지 않고 한 달간 했더니 혈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체 근력이 약해지면서 그랬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젠 저녁 8시 이후에 뭔가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서 불편하다. 정 출출하면 쌀밥 두 숟가락 정도 김에 싸서 잘 씹어서 삼키고 물을 마신다. 전체 식사량도 40대 시절에 비하면 40% 정도로 줄었다. 소식하면 장수한다고 하지만 실은 소화가 되질 않으니 소식하게 되는 것 같다.

다행한 점은 평소 육류를 그다지 자주 먹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아서 혈당이 지극히 정상이란 점이다. 당뇨 걱정은 전혀 없다는 얘기. 술 먹다 보면 기름진 고기를 먹게 되고 그 결과 통풍으로 고생하는 이도 많다. 친구가 통풍인데 아파도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통풍은 치료도 어렵고 재발도 잘 된다.

 

생각해보니 뇌기능도 많이 퇴화되었지 않나 싶다.

 

어려서부터 암기력이 정말 좋았다. 가령 연도나 명칭을 많이 기억해야 하는 國史(국사)의 경우 깡그리 다 외웠기에 국사시험은 늘 백점이었다. 영어 단어도 한 때 3만 단어까지 외웠던 적이 있다. 두꺼운 영어사전을 펼치면 거짓말 좀 보태서 절반은 아는 단어였다.

 

40대 초반까진 적는 게 귀찮아서 웬만하면 외우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게 힘들고 성가셔서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바람에 암기력이 많이 떨어지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 여유가 생겨나기에  

 

 

나이가 들면 이해력이 더 좋아진다는 통설이 있는데 내 생각엔 살면서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하면서 다양한 데이터베이스가 생기는 탓에 보다 종합적인 사고력을 갖추는 것 같다.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들어본다. 어떤 젊은이가 내게 거짓말을 한다. 척 봐도 거짓말인 것은 알겠는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하는 점에 대해선 함부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단순한 상황 같아도 그 젊은이가 내게 거짓을 고할 땐 그래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순식간에 여러 개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엔 그 이유가 몇 개 되지 않아 보여서 바로 확인해보려는 시도를 했으나 이젠 왜 그럴까? 하면서 일단 판단을 유보한다. 그 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천천히 확인해간다. 거짓을 말할 땐 실로 여러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래 살다 보니 거짓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요즘 말로 빅 데이터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내침 김에 얘기하면 젊은 사람의 경우 상대방이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 정신이 멀쩡해 보인다면 궁색하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장 너 거짓말 하는구나! 하고 추궁은 하지 않아도 거짓말이란 사실 자체는 금방 알아차리고 그 점을 기억해두기 때문이다. 오히려 솔직하게 사정을 얘기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늙은 생강이 괜히 맵다는 말 하는 게 아니란 얘기.

 

판단을 유보하게 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살아온 햇수가 좀 되다 보니 데이터베이스가 쌓여있긴 하지만 그 역시 실은 숱한 偏見(편견)들의 집합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확률이 조금 더 줄었을 뿐이기에 여전히 섣부른 판단이나 확신을 경계한다. 거짓말만이 아니라 생각이 달라도 쉽사리 부정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그로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일종의 여유 공간 즉 버퍼(buffer)는 항상 간직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말들을 간단히 줄여보면 상대방의 궁색한 변명이나 거짓말에 대해 알아도 속아주면서 넘어가는 게 때론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경륜 즉 삶의 ‘짬밥’이 있는 노년의 너그러움이 아닌가 싶다.

 

 

몸이 늙어갈 뿐

 

 

지금까지는 67세나 되었으니 이젠 노년이구나 싶은 점에 대해 얘기했는데 반대로 여전히 별로 노년도 아니구나 싶은 점에 대해서도 얘기해본다.

 

세는 나이로 예순하고도 일곱이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거울을 보니 목주름이 쳐져있고 눈 아래도 축 처졌음을 확인하고 왔다. 그러니 피지컬리 노년임은 인정하고 시작한다.

 

내 생각에 예순 일곱의 사람은 그 안에 어린 아이도 있고 10대의 반항기도 있으며 20대의 왕성함, 30-40대의 뜨거움, 50대의 노련함, 그리고 60대의 느긋함이 모두 함께 同居(동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다 있다!

 

가끔 코털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뽑게 된다. 그 결과 콧속에 염증이 생겨서 며칠 불편하다. 이건 40대 정도에 하던 버릇인데 이 바보짓을 내가 또 했구나 싶으면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아이고, 아직도 젊었어!, 뻔히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순간의 장난기 그리고 약간의 쾌감에 빠져 이 짓을 또 했구나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론 바보짓을 반복하는 것이 꼭 싫지만은 않다. ‘바보짓은 젊음의 특권’인데 아직도 그 특권을 누리고 향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근히 기분이 좋기도 하다. 난 젊었어, 이런 짓을 또 하고 있으니! (그런데 말이다. 난 젊었어! 하는 자체가 늙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늙긴 늙은 것이다. 인정!.)

 

하고자 하는 얘기는 몸은 분명 한 해 한 해 늙어가고 있으나 정신은 여전히 멀쩡하다는 점이다. 물론 호르몬 변화, 즉 체내 케미스트리의 변화로 인해 생각이나 사고의 변화야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게 실은 전혀 나쁘지 않다. 눈앞의 삶을 훨씬 더 편안하게 관조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 ‘노년의 축복’이라 하겠다.

 

 

늙어가면서 정말로 조심해야 하는 한 가지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말로 조심해야 할 점 한 가지만 알려드린다. 주변의 후배나 젊은이들을 상대로 ‘지적질’을 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였으니 당연히 어린 후배들의 행동이나 생각에 부족한 점이 느껴질 법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점을 지적하거나 훈계하려 들지 말라는 점이다.

 

앞에서 바보짓은 젊음의 특권이란 말을 했는데 바로 그렇다. 젊은이나 후배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세련되어 진다. 그런데 그런 점들이 말로 지적하거나 훈계한다고 해서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냥 두면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알아서 잘 하게 될 것이다.

 

가르침은 스스로가 가르치고 스스로가 배우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말을 해주고 싶다면 상대가 당신의 생각에 대해 들어볼 用意(용의)가 있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다면 그냥 지켜봐 주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들을 생각도 없고 받아들일 준비도 없는 후배에게 나름 도와준답시고 말을 쉽게 꺼내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간섭이고 무례한 언행에 불과하다. 그게 바로 ‘꼰대질’이다.

 

젊은이는 失手(실수)할 자유가 있어야 하고 늙은이는 젊은 후배가 실수를 하면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도닥여주면 된다. 반성은 젊은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그렇다. 우리 모두 실수를 통해 더 세련되어진다. 그게 삶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