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독서를 마치고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소설부터 2월 우수 전까지 석 달 동안 꽤나 많은 생각과 독서를 했다. 이번엔 주로 불교 철학이었다. 대승오온론부터 시작해서 아비달마구사론, 나중엔 난해함의 극치를 달리는 대승기신론과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고생해가며 읽어 보았다.

 

고생했다는 말인 즉 여전히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 혼자만의 힘으론 부쳐서 일본 불교학자들의 국내 번역서도 여러 권 함께 읽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꾸러미로 꿰어내지 못한다.

 

 

바깥으로 나가야지  

 

 

겨울 동안 그림 작업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화실을 정리하고 화구를 닦았다. 양기 뻗치는 봄날이 왔고 곧 개나리와 목련이 만발할 때가 왔으니 어찌 마냥 사색에 빠져있을 수 있으리. 슬슬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내 속으로 침잠하고 봄이 와서 땅이 풀리고 남풍이 불어오면 내 속의 그림벌레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이르다. 봄비라도 한 번 흠뻑 대지를 적셔주어야 호호당의 수채화도 물을 머금을 것 같으니 말이다. 水彩畵(수채화)는 물이 있어야 한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시 

 

 

봄비 얘기를 하니 “캔터베리 이야기”의 序詩(서시) 중에서 첫 네 문장이 떠오른다. 현대 영어 버전으로 외우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라서 서시 전체를 그냥 풀어서 얘기해본다. (평생 연구해봤지만 외국의 시는 그냥 그 자체로서 읽고 음미해야지 번역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럴 뿐 실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4월이 되자 감미로운 소나기 흠뻑 내려서 메말라 있던 대지의 밑바닥까지 적셔놓으니 세상 모든 나뭇가지들은 그 물을 잎맥을 통해 다시 빨아 올려 꽃들을 피워 올리고 마침 불어오는 西風(서풍)은 그 달콤한 입김을 삼나무 밭 어린 가지의 끝 속으로 불어넣고 있다, 이제 막 여정을 출발한 태양은 白羊宮(백양궁)의 절반을 갓 지났으니 작은 날짐승들이 저처럼 쉬지 않고 지지배배- 노래를 하는 것은 자연이 그들의 가슴을 마구 설레게 해서 밤에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도록 했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순례를 갈망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지, 성지순례자들은 먼 異國(이국)에 마음이 쏠리니 이는 먼 나라 여러 고장마다 널리 칭송되는 성인들의 묘소를 찾으려 함이라, 특히 영국에서는 마을마다 앞을 다투어 캔터베리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이는 병들어 고생할 때 그들을 도와준 거룩하고 복된 순교자를 찾아가기 위함이라.

 

“캔터베리 이야기”는 英詩(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가 14세기 말 경에 해마다 4월이 되면 영국 각지에서 남쪽 바닷가의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를 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이야기책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보카치오가 남긴 “데카메론”과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다.

 

 

조금 풀이해보면 

 

 

위의 시에서 태양이 막 여정을 출발했다는 것은 태양이 3월 21일경의 춘분으로서 황도대 위로 올랐다는 것, 즉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백양궁의 절반을 지났다는 것은 4월 5일경의 청명절을 이제 지났다는 뜻이다. 늦은 봄이 시작된 것이다. 이럴 때 한 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니 봄 가뭄이 가시게 된다. 이에 목마른 모든 나뭇가지마다 잎맥이 수액으로 가득차서 한껏 부풀어 오르고 꽃을 피워낸다, 삼나무의 새로 뻗어난 여린 가지 끝에는 대서양에서 불어온 부드러운 미풍이 살랑대고 있다는 얘기이다.

 

춘분을 지나서 해가 점차 길어지니 새들은 늦은 밤까지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시끄럽게 울어대니 이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러니 자연의 일부인 사람들 또한 슬슬 먼 길을 떠나고 싶어지니 영국에선 남쪽 바닷가 근처의 캔터베리 대성당에 묻혀있는 성인들을 찾아가 기도를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한다. 다양한 직업과 동네의 사람들이 순례를 떠나니 시인은 그들의 얘기를 이야기책으로 담아내기 시작한다.

 

40년 전 탐구당의 문고판 책에서 읽고 외웠던 초서의 서시는 영어 문구와 함께 내 머릿속에서 이렇게 시작된다. “4월의 감미로운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그 뿌리에까지 뚫고 들어가...”

 

 

모두가 자연의 순환에 따를 뿐

 

 

이제 나 호호당이 화실을 정리하고 그림 그릴 준비를 하는 것처럼 독자들도 각자 활발하게 그 무엇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겨우내 침잠했던 것들이 우리 모두의 속에서 깨어나고 있으니 이는 이른 새벽부터 삼나무 여린 가지 위에서 울어대는 저 새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가 자연의 순환에 따를 뿐. (그저 코로나19의 현실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고픈 욕망을 당장은 눌러두고 있겠지만.)

 

 

대청소와 책 이야기 

 

 

작년 5월에 지금의 우면동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냥 대충 지내왔다. 그러다가 2월의 우수로부터 시작된 대청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손볼 데가 너무나도 많았던 까닭이다. 창틀을 닦고 베란다의 잡동사니들을 왕창 내다 버리고 바닥은 물로 씻어내고 화장실의 구석은 물론이요 천정까지 세제로 닦고 다시 물로 씻어내고 서가의 책들을 정리하고 등등. 그러다 보니 손가락 마디에 주부습진이 생겨서 보습제 열심히 바르고 엷은 고무장갑을 쓴다.

 

서가가 너무 부족해서 5단짜리 책꽂이를 두 개 더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배송에 2-3주 걸린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오는 토요일 춘분까진 청소와 정리를 완전히 마치려던 당초의 계획이 어그러졌다. 나사 풀리는 소리, 푸르르-.

 

한 때 책이 도대체 몇 권이나 되는지 헤어보려고 했다. 내친 김에 아예 목록까지 작성할 참이었지만 도중에 포기했다. 그래서 책꽂이가 몇 단인지 어림셈으로 하면 대충 알 수 있으리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헤아려보니 작업실과 집 다 합쳐서 48단, 한 단에 책이 대충 28권 정도 들어가니 대충 1350권 정도가 된다. 다 들어가지 않아서 뉘어놓은 책도 꽤 되니 아마도 1500권 정도가 되겠다.

 

예전에 구반포 아파트에 살 때 책이 대충 4천권 정도 된 적이 있다. 서재가 아니라 그냥 책 창고였다. 쌓아놓은 책 더미 사이로 한 권 찾다가 무너지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그 이후 신세가 망해서 셋집을 전전하다 보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2천권 정도를 버리기로 작심하고 1층 출입구 앞에 내다 놓으니 청소 아주머니들이 바로바로 가져갔다. 그 이후론 해마다 50-60권 정도는 버리고 있다. 올 해 역시 마찬가지. 중고 사이트에 팔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 하겠지만 귀차니스트인 나 호호당이다.

 

사실 내가 귀차니스트란 사실은 망한 뒤 그러니까 운명의 입춘을 지나면서 깨달았다. 출세도 성공도 부지런해야 하고 악바리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귀차니스트가 부귀와 영화를 바란다면 그건 좀 양심 없는 거라 여긴다.

 

 

옛 지혜를 새롭게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니 

 

 

그런데 호기심은 식어들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된 나만의 연구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나름의 결실을 맺었으니 말이다. 자연순환이 존재한다는 것, 대단히 규칙적이란 것, 나아가서 사람의 일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다시 알고 보니 옛 先人(선인)들과 현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만 나 호호당은 그것의 철저한 규칙성과 예외 없음을 알아내었을 뿐이다.

 

자랑스러웠다, 나 자신이. 선인들과 현자들의 지혜에 내가 닿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해했다. 요하네스 케플러와 아이작 뉴턴, 프리드리히 니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더 가깝게는 미르체아 엘리아데, 멀리 거슬러 오르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서 헬레니즘과 로마의 순환 사상, 고대 중국 동중서의 춘추번로와 회남자까지 이어지니 여러 천년에 걸쳐 이어져오는 맥의 줄기를 발견했다. 망각된 옛 지혜를 재발견했을 뿐 아니라 과학의 경지로 올려 세웠으니 참으로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올 해부터 천천히 글로 옮겨서 후세에 전하는 일이다. 아마도 내후년이면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지 않을까 싶다. 돈을 모아서 3천권 정도는 전국 도서관에 기증하고 더 여력이 된다면 영문판으로 제작해서 여러 나라의 국립도서관에 메일을 통해 받아달라고 요청을 할 생각이다.

 

세상이 알아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선 아무런 갈등도 걱정도 없다.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참으로 옳은 것이라면 절로 힘을 얻어 세월의 경과와 함께 온 지구촌에 널리 퍼질 것이고 혹시라도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없어져버릴 것이니. 하지만 자신만만하다,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 여긴다. 아마도 100년 후가 되면 전 세계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누군가 내 묘비 앞에 한 송이 꽃이라도 놓아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국발 먼지가 하늘을 수시로 덮어오는 봄날이다. 중국을 차이나라고 한다. 나는 중국을 먼지의 나라, 이에 먼지 塵(진)에 저쪽 那(나)를 붙여서 盡那(진나)라고 부른다. 곧 맑고 더 밝아질 질 것이다, 동남풍이 들어올 것이니.

어쩌면 우주 자체가 엄청나게 많을 가능성도 있으니 

 

 

우리의 우주 즉 유니버스(universe)가 빅뱅으로 해서 생겨났다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다양한 데 그 중에 하나로서 어쩌면 우주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무진장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다. 멀티버스(Multiverse) 가설이 그것이다. 평행우주란 말도 있는데 이 역시 우주가 중중무진일 때 가능한 얘기이다.

 

어차피 현재로선 빅뱅 이론이든 다른 주장이든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론이야말로 맘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담론의 영역이란 점에서 멀티버스 가설도 능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1921년까지만 해도 우주란 우리가 속한 은하계가 전부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에드윈 허블이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밖에 존재하는 별개의 은하란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면서 우주는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은하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특히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딴 허블 망원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멀고 먼 우주 저편의 은하들로부터 날아온 빛들을 사진으로 찍어내고 있다. 이에 천문학자들은 오늘날 “관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우리가 은하라고 부르고 있는 것들이 2조 개나 되며 은하 속의 별은 지구에 있는 모래알의 개수보다도 더 많다고 보고 있다.

 

 

멀티버스는 아주 오래 전 인도에서 이미 제시되었으니 

 

 

그런데 이 대목에서 돌이켜보면 멀티버스라든가 평행우주와 같은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은 사실 대단히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힌두철학 내지는 불교철학의 우주론이 바로 그것인데 그 시기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서 우리에게도 친근한 불교의 세계관이자 우주론인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가 그렇다.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멀티버스 혹은 평행우주란 점은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고대 인도 사람들의 생각부터 알아보자.

 

 

위치값 기수법을 발명해낸 힌두인들

 

 

고대 인도사람들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십진법 체계를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으며 기원후 400년 무렵엔 ‘0’이란 숫자를 발명함으로써 숫자를 표시함에 있어 그야말로 위대한 혁신인 “위치값 기수법”을 창안했다.

 

Positional notation!

 

이게 생소한 말 같지만 사실 우리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가령 320,671이란 숫자를 생각해보자. 이 숫자 안의 ‘0’은 천 단위에 붙는 숫자란 점이다. 즉 숫자의 위치에 따라서 수의 크기를 우리 모두 거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숫자를 한자 기수법으로 표시하면 三十二萬六百七十一이 된다. 얼마나 불편한가!

 

거기에 이런 식의 기수법으로 곱하기나 나누기를 하려면 그야말로 골 때린다. 더 골 때리는 건 로마식 기수법으로 곱셈이나 뺄셈을 하려면 일반인은 아예 불가능하다. 가령 6천명의 군단이 석달 동안 작전하기 위해 보급해야 할 식량을 계산한다고 해보자. 하루 세 끼, 3달간 보급, 필요한 물자는 밀과 우유, 버터, 치즈라 한다면 그 계산만으로도 하루의 시간으론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흔히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힌두(고대 인도)식 위치값 기수법이 발명되었기에 힌두인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큰 수를 상상해내고 만들어내고 자유자재로 계산해낼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 역시 그런 기수법 때문에 개념화될 수 있었다.

 

 

우주 속에 우리와 같은 생명체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란 것이 오늘날 와서 보니 우리 은하계 속의 무수히 많은 별 중에서 그저 그런 별인 태양, 그리고 태양이 거느린 아주 작은 먼지 알갱이에 불과한 여러 행성들 중에 하나인 行星(행성)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계에 속한 행성 중에 생명체가 사는 있는 행성은 우리 지구밖에 없다. 혹시라도 화성 지하에 미세한 유기체 또는 생명이 살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에서 이 시각에도 미국이 보낸 로봇이 화성 표면을 삐그덕-대면서 돌아다니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우주 안에 존재할 확률을 수천 兆(조)분의 1로 추정하고 있다. 거의 없다고 해도 되는 희박한 확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지구 밖에 또 있을 거란 점에 대해 희망을 걸어보고 있는 것은 나름의 충분한 근거가 있다.

 

앞에서처럼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 은하계만도 2조개나 되고 별은 지구에 있는 모든 모래 알갱이보다 더 많다고 하니 별에 속한 행성은 더더욱 많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행성의 숫자가 거의 무한대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 또한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봄직도 한 것이다.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멀티버스

 

 

그러면 이제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가 무엇인지 간단히 얘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지구를 그냥 하나의 세계라 하면 그것이 천 개 모인 세계를 小天(소천)세계라 하고 또 그것이 천 개 모인 세계를 中天(중천)세계, 다시 그것이 천 개 모인 세계를 大天(대천) 세계라 한다.

 

천 배씩 세 번 곱한다고 해서 三千(삼천), 즉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와 같은 행성이 전체해서 10억 개가 있는 세계인 셈인데 부처님은 바로 이 대천세계를 하나의 교화영역으로 한다고 인도 불교의 초기철학이론서인 “아비달바구사론”에 적혀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선 부처님 또한 무수히 많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삼천대천세계 역시 무수히 많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그게 바로 멀티버스이고 동시에 평행우주론이 되기도 한다.

 

 

힌두사상, 인류 최고의 환타지

 

 

고대의 인도 즉 힌두 사상과 불교철학을 접해보면 그 스케일과 깊이에서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기존의 그 어떤 환타지보다 더 뛰어난 환타지가 아닌가 싶다.

 

최근 들어 다양한 우주이론이 등장하고 있다. 앞서의 멀티버스라든가 평행우주만이 아니라 초끈이론이란 것도 제법 자주 귓전에 들려온다.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론이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되지 않는 바람에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제시된 이론이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모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로선 그저 그런 게 있나 보다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에 관한 과학교양서들이 적지 않지만 글이 아니라 수학 또는 數式(수식)으로 제시된 것을 이해하지 못 하는 한 그건 이해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불교에선 하나의 세계는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欲界(욕계)를 포함해서 色界(색계), 無色界(무색계)로 이루어진 33天(천)의 수직적 구조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시공간에선 도무지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혹시나 초끈이론이 말하는 11차원의 세계가 바로 그런 구조를 허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초끈이론은 물리학자들의 아이디어일 뿐이지 검증할 길이 전혀 없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상상은 변함이 없고 또 기발하다.

얼마 전 저에게서 자연순환운명학 강의를 이수한 자를 대상으로 그간에 연구한 결과 알아낸 호호당만의 특별한 주식투자기술에 대한 강좌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일종의 기술 전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 독자님들 중에 참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의를 상당히 많이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두 달 여에 걸쳐 박스권 조정장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주린이들은 물론이요 경력이 좀 되는 사람들도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주식투자란 것이 얼핏 보기에 운만 좀 따라주면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분야입니다.

 

이에 이번에는 특별기술 강의가 아니라 증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적인 기술들을 모아서 강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개최 일시: 2021년 3월 21일(일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50분 강의와 10분 휴식하는 방식)

 

강의 장소: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강좌 내용: 증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생존 기술 세트.

 

1. 박스권 장세에 대처하는 방법

2. 매수 후 ‘물렸을 때’ 빠져나오거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

3. 60일 이동평균선을 활용하여 중기 혹은 장기투자하는 방법

4. 주식와 증시의 꼭지점을 가장 빨리 확인하고 빠져나오는 방법.

5. 주식과 증시의 바닥점을 가장 빨리 확인하고 매수하는 방법.

6. 눌림목 매수와 추격 매수의 핵심 요령.

7.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만들어가는 방법.

 

수강료: 60만원

 

강좌신청방법: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또는 오후 3시 이후에 제 작업실 전화로 신청하셔도 되지만 가급적 메일 신청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02-534-7250)

 

수강 대상자: 아래 글 ‘강좌개최 이유’를 읽어보신 후 도움이 되겠다 싶은 분.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운 분들도 신청 가능.)

 

강좌 개최 이유;

 

 

(아래 글을 잘 읽어보시고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주식을 시작한 이들, 주린이 중에 벌써 그간 수익도 올리지 못한 채 주식 중독증에 빠진 이가 많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은 물론이다. 큰 자금들이 회사의 투자설명회를 충분히 새겨듣고 곰곰이 따져본 후에 투자하는 것 역시 베팅인데, 그저 HTS나 모바일 앱에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투자정보만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그야말로 도박이다.

 

거기에 주식을 해 본 경험마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오르는 장에서도 수익이 없을 것이고 중간에 조정을 거칠 때면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대세가 꺾어진 하락장에선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손실을 보고 그로서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주식을 하고 있으니 장차 그 피해가 얼마나 심할까!

이에 걱정이 되고 안타까워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 호호당이 증시하는 방법부터 얘기해보겠다.

 

나 호호당은 매일 증시를 한다. 오전 10시 무렵에 장세를 한 번 살펴보고 끝날 무렵에 한 번 확인해본다. 소요 시간은 합쳐서 10분 정도. 그리고 저녁 시간에 장 전반을 한 번 살펴보고 분석해보면서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사고파는 거래 또한 자주 한다. 하지만 거래금액은 전체 자본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량이다. 일평균 거래금액으로 말하면 자본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스스로 ‘간을 본다’고 표현한다. 가령 관심 종목이 생기면 1주 정도 사보는 식이고 수익이 제법 된다 싶으면 조금씩 분할 매도한다.

 

이런 식으로 소량거래만 하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가격이 되었다 싶을 때 자본의 10-15% 정도의 액수를 투입하기도 하고 반대로 가진 주식을 절반 정도 매도하기도 한다. 이런 거래는 1년 동안에 매수가 4회, 매도가 4회, 합쳐서 8회 정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른바 원금 중에서 주식에 투입된 액수, 소위 포지션 액수가 보통의 경우 40% 정도이고 기회가 왔다 싶으면 60%까지 올린다. 최근과 같이 오르락내리락만 반복하는 박스 장세에선 포지션 비율이 25% 정도에 불과하다.

 

아니? 그렇다면 나머지 원금은 그냥 놀린다 말인가?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냥 잠재워둔다. 증권계좌에 넣어두고 있으니 이자도 한 푼 없다. 하지만 놀리는 돈이야말로 주식게임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증시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예기치 않은 큰 폭의 조정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럴 때를 대비해서 놀려두고 잠재워둔다. 대폭의 하락이나 조정이 나오면 참고 인내하다가 이쯤이다 싶을 때 나머지 원금의 절반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절반은? 그건 내 생각이 틀릴 때도 있기 때문이고 이에 더 하락할 경우 그야말로 이 정도면 물려도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지점에서 다 밀어 넣는다.

 

이런 방식은 전쟁이 났을 때 일단 정규 병력으로 싸우게 하고 불리하다 싶을 때 동원예비군을 투입하고 그마저도 어렵다 싶을 때 지약예비군을 투입하는 방식과 같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나 호호당이 수익을 대폭 올릴 수 있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늦은 밤 시간 미국 증시가 오르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린다 한들 손실이 별로 크지가 않고 오르면 물론 좋은 일이고 그렇다. 수십 년 간 증시를 해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불안하다면 그건 패배한 게임,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름 터득했기 때문이다.

 

초심자들은 주식을 하다 보면 마음이 늘 불안하거나 불편하다. 그러다가 생각 이상으로 주가가 오르면 그야말로 신이 난다. 하지만 그 또한 실은 위험하다는 것을 초보 즉 주린이들은 모른다. 불안과 희열이 반복되는 상태가 바로 주식중독증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8,000원에 사서 12,000원에 팔았는데 그게 나중에 보니 30,000원까지 올랐다 치자. 진짜 기분이 나빠진다. 스스로 자신의 머리통을 때린다. 바보, 병신, 줘도 못 먹나 싶어 자탄에 빠진다. 그 결과 교훈을 얻게 된다. 다신 성급하게 팔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 하지만 실은 그건 교훈이 아니다. 팔아야 할 때 그냥 쥐고만 있다가 다시 내려서 매수했던 가격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면 또 교훈을 찾는다, 그리고 또 한 수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 또한 배운 것이 아니다. 주식이란 끊임없이 헛된 교훈을 터득해가는 과정이고 그것의 반복이 된다.

 

꾹 참는 것도 방법이 아니요, 수익 났을 때 얼른 팔아버리는 것도 방법이 아니다. 단타 치는 것도 방법이 아니요 장기 투자도 답이 아니다. 유튜브 들어가서 종목 추천을 따라하는 것도 운이 따라야 수익이 나지 아예 엉터리 추천도 허다하다.

 

주식 투자-실은 투기지만-에 있어 배울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배우고 터득해도 끝이 없는 게 주식게임이란 사실이다. 이는 증시에 참가한 모든 이들, 수백 수천만의 집단지성을 상대로 나 혼자 싸우는 것과 같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본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必敗(필패)의 게임이 바로 주식이다.

 

이에 주식을 오래 해보면 느끼게 되지만 주식은 실로 위험하다는 점이다. 오늘 예로 든 사항들만이 아니라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위험과 함정, 칼날이 도사린 세계가 주식이란 사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히 정답을 말하면 증시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종목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오르내림을 봐서 팔고 살 때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주식이란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기본기술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기본기가 있는 자만이 본전을 지킬 수 있고, 여기에 운이 따르면 수익도 난다. 그래서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 싶은 기본기술들만 모아서 하나의 강의 세트로 준비했다.

 

일요일 저녁 드라마에서 엄마가 군 입대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오래 전 기억 속의 한 장면이 툭-하고 눈앞에 떠올랐다. 쌀쌀하고 찌푸린 봄날 아침, 대문을 나서는 내 뒤를 조금 뒤따라오시던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팔을 어깨 위로 올려 손짓을 한 번 하시면서 “이젠 가니” 하고 한 말씀 하셨다.

 

이젠 가니,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가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잘 가라는 것도 아니고 어서 가라는 것도 아닌 그 한 말씀. 사실 그 날 하늘이 정말 흐렸던 것인지 아니면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서운한 눈빛이 그랬던 것인지 이젠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소리의 기억이 눈의 기억보다 더 오래가는 것일까?)

 

입대한 날자를 기억한다. 1978년 3월 4일, 그러니 어머니와 작별한 그 아침은 3월 3일의 아침이었을 것이다. 헤아려보니 43년 전의 일이다. 그때 어머니는 오십이셨고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지금 어머니는 故人(고인)이 되셨고 나는 예순일곱이다. 눈앞으로 그간의 세월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낮은 소리로 “엄마!” 하고 중얼거려본다.

 

중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봄날 밤이었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울고 있던 내게 어머니가 다가와 왜 우니, 속상한 일이라도 있니?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 아무 일도 없어...” 하고 답했다. 어머니는 자리로 돌아가시고 나는 다시 누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조용히 한참을 울먹였다.

 

울먹였던 이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엄마가 훗날 어느 날엔가는 돌아가시리란 생각에 슬퍼서 울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 눈동자엔 물기가 서린다. 그래서 어머니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니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신다. 엄마!

 

솔직히 말해서 나 호호당은 평생 단 한 번도 엄마 앞에서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 앞에서 ‘우리 어머니께서’, 이렇게 얘기했을 뿐이다. 아버지께서 먼저 가신 후 16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모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저 엄마와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을 뿐이다. 아내 입장에선 시어머니를 모셨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께서 융으로 만들어주신 잠옷 바지의 가랑이가 낡아서 결국 찢어졌다. 잠옷이라든가 또 여름철엔 마로 된 바지나 셔츠를 늘 재봉틀로 만들어주셨는데 이젠 남은 옷이 거의 없다. 아내는 이제 입을 수가 없으니 버리자고 했지만 아쉬워진 나는 아내에게 다른 천으로 바지의 헤어진 곳을 덧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땜방!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취들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그럴 때마다 그만큼씩 멀어져가서 아스라해지는 느낌이다. 면적에서 점으로 그리고 더 작은 점으로. 이젠 그 분들이 먼 지평선 언저리에서 있고 없고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나 또한 늙어가고 있으니 다시 보게 될 날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멀어져가는 것인지 가까워져가는 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이 50이 될 무렵까진 저승이라든가 영혼의 존재를 전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저승이라든가 영혼의 문제는 내가 죽어보지 않는 한 규명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죽으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자연 속으로 환원될 거란 생각만 했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을 좀 더 보내면서 저승과 영혼의 ‘있음’을 기대하는 쪽으로 조금식 옮겨왔다. 그렇게 바라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아선 모르는 일이니 낙관하는 것이 비관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겠는가.

 

엄마가 남긴 옷가지와 물건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니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시 만날 날이 한 해 한 해 가까워진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더 좋다는 얘기.

 

혹여라도 저 세상이 있다면 부모님은 물론이요 얼굴을 모르는 조상님들이 반겨줄 것이며, 동작동에서 내가 주던 밥을 먹다가 세상을 떠난 저 많은 길고양이들이 떼로 몰려나올 것이고 또 먼저 보낸 강아지들도 왈왈, 반갑다고 뛰어와 내 품으로 안길 터이며 귀엽던 토끼 ‘초롱이’도 깡총하고 폴짝 뛰어들 것이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온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가엾고 애처롭다는 생각만 든다. 모두들 살아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늙어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드라마 장면에서 시작된 기억을 글로 옮겨놓다 보니 마치 꿈속 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올려본다. 그냥 호호당의 환타지 정도로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