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자연순환운명학”이라고 하는 과학적인 운명학 이론이 성립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 다시 10년이 흘러 2024년, 호호당의 주식 학파 또는 스쿨이 성립되었음을 알린다.

 

주식 학파라고 했지만 가격변동이 있는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채권이나 원자재, 환율 등등 흔히 차트로 나타내지는 모든 방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에 실은 “호호당의 파동이론”이라 하겠다.

 

오래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지난 2년에 걸쳐 가르쳐보았더니 나름 수용이 잘 되는 것 같아서 자신감을 얻게 된다.

 

호호당의 실전이론은 기본적으로 자연순환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실은 “자연순환운명학”에서 파생된 실용이론이라 하겠다.

 

오늘 스쿨을 오픈한다고 했는데 당장 수강생을 위한 강좌를 연다는 말이 아니다. 그간 앞서간 여러 마스터들의 이론을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이론에 접목시킨 결과 새로운 그리고 강력한 증시실전기법이 탄생했을 알린다는 뜻이다. 어쩌면 현재까지 소개된 모든 기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기법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자뻑’도 하게 된다.

 

예전에 돈벌이에 관한 것이라 많이 망설였지만 조만간 부동산 무너지고 소득이 정체될 우리 사회에서 호호당의 증시실전기법은 나름 하나의 出口(출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서 스쿨을 열게 되었다.

 

특히 얼마 전 종료된 주식 강좌는 수강생들의 성원이 많았다. 이에 디스코드에 “호호당의 주식방”이란 것을 만들어 운용하면서 계속적으로 이론을 가르치고 실전 기법을 다듬어줄 생각이다. 

 

장차 호호당의 주식 강좌를 수강한 모든 이에게 오픈할 생각이다.

 

조만간 춘계 강좌를 공지할 생각이다.

 

4년마다 있는 총선은 항상 그 결과에 대해 미리부터 많은 예측이 쏟아지고 또 복잡한 선거공학적 요소들이 판을 흔들어 놓는다.

 

이번 총선은 어떻게 될까? 사실 많이 궁금할 것이고 나 호호당 또한 많이 궁금하다.

 

그런데 그간 봐온 결과 총선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변수는 언제나 선거 3개월 전이면 이미 나타나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의 경우 두 가지 큰 이슈가 있었다. 하나는 1월 2일에 있었던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이고 또 하나는 1월 20일 경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청와대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표 피습은 그 이후 더 이상의 反響(반향) 없이 그냥 그대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과 윤간의 갈등은 나름 국힘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훈의 인기와 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이번 선거판에 있어 한동훈 카드가 국민의 힘으로 하여금 더불어민주당과의 승부에 있어 맞설 수 있는 큰 힘이 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4월 10일에 있을 총선에서 국민의 힘이 승리할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도 나 호호당은 증시를 하고 있다. 선물과 옵션 트레이딩이다.

 

우리 증시가 금년 들어 글로벌 주요 증시 대비 성적이 가장 나쁘다. 어제 기준으로 올해만 놓고 보면 연일 하락하는 중국 증시가 5.63% 하락인데 우리는 7% 하락이니 사실상 꼴지 증시가 되었다.

 

반면 미국 증시는 나름 잘 가고 있고 특히 일본 증시, 니케이225는 8% 넘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어 대비가 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우리 경제는 중국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중국 증시와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른바 서학개미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증시의 매수 여력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작년 11월6일부터 금년 6월말까지 공매도를 금지하는 ‘해괴’한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공매도 금지가 당장은 개미투자자들에게 반가운 소식 같지만 장기적으로 절대 그렇지가 않다. 아마도 금감원장이 금융 조세 방면 수사에 능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출신이라 공매도 자체를 마치 몹쓸 짓인 양 여기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 증시는 현재 일방적으로 장기 상승할 수 있는 모멘텀이 없기 때문에 국내 증시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펀드들은 과도하게 올랐다 싶은 주식을 매도(공매도)하고 실적이 호전되는 주식을 매수하는 양방향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공매도 금지는 외국인들로 하여금 개별 주식선물 매도를 늘리게 했고 오히려 증시 상승을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만일 총선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면 오히려 역효과라 판단한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4%로서 2022년 절반 수준이라 하면서 대단히 부진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호호당 생각에 이제 우리 경제는 저성장 추세이기에 1% 중반대면 그런대로 무난하고 1% 미만이면 경기부진이 되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다시 한 번 얘기지만 우리 경제는 2027년에 가서 큰 쇼크가 한 번 올 것이란 점만 염두에 두시면 되겠다.

 

(알리는 말씀: 이제 짧은 글을 자주 올리되 다소 긴 논문과 같은 글은 빈도를 줄이기로 했다는 점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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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중국 얘기.

 

중국이 저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시진핑 1인 체제란 점에서 중국이 안고 있는 리스크는 실로 크다는 점이다.

 

 

미국이 열어준 동아시아의 발전 모델

 

 

그간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보여준 중국의 모델 또한 과거 일본 그리고 그 이후 동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 즉 우리대한민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성장 발전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시에 이 모델은 현재 인도와 베트남 등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수출을 통해 외화 특히 달러를 벌어들여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도입과 발전을 꾀하는 한편 내수 시장을 키워가는 이 방식은 부가가치가 크지 않은 제조업을 유럽, 특히 미국이 포기했기에 가능했다. 어쩌다보니 2차 산업인 제조업이 1차 산업과 비슷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이 발전 모델은 각 나라의 문화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다행히도 우리의 경우 경제발전에 따라 민주화로 이행할 수 있었고 그로서 향후에도 탄력적으로 글로벌 상황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하지만 중국은 1990년대의 집단지도체제에서 2020년대 들어 1인 체제로 역행했다. 중국은 官(관)이 商(상)을 통제하고 관을 黨(당)이 통제하며 그 당을 시진핑 한 사람이 지도하는 체제가 되고 말았으니 이는 과거 淸(청)제국 시절의 황제 통치모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1인 체제의 차이나 리스크

 

 

이게 바로 “차이나 리스크”이며 그 리스크가 현재 맹렬히 커져가고 있는 오늘이다.

 

우리의 경우 저성장 성숙 경제로 접어들었다. 크게 발전성도 없지만 그런대로 이어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여유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저성장 성숙경제로 넘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1인 체제의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구체화될 경우 엄청난 위기를 유발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중국의 立春(입춘) 바닥은 2028년이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면 이제 중국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상황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1인 독재의 시진핑이 나이가 들어 불가피하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서 극적인 드라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중국은 2026년부터 위기가 심화되면서 10년간 상황에 따라선 커다란 파국이 닥칠 수도 있게 생겼다.

 

현재 중국은 이미 맹렬한 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다. 조만간 커다란 轟音(굉음)이 들려올 것이다.

 

먼저 일본부터 얘기한다.

 

일본은 2022년부터 향후 10년간 모든 것이 부쩍부쩍 자라고 성장하는 長氣(장기)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아베 신조의 돌연한 죽음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있던 利權(이권) 관계가 허물어졌고 그 바람에 일본 전체적으로 미루어왔던 장애물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자민당 내 최대파벌인 아베파의 해체 선언은 이제 일본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이해관계를 재구축하고 조정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

 

이번 일은 동시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아베 정권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일본 내부의 개혁과 통합작업이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음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아베 신조의 손으로 완수하지 못한 개혁 사안들이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있으니 묘한 일이다.

 

과거로 거슬러 가보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번영은 무너졌고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했다. 그 바람에 일본 내부에선 미국에 대해 협조할 것이냐 아니면 독자노선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갈등과 조정이 있었다.

 

2006년 등장한 아베 신조 정권이 反美(반미) 성향 때문에 1년 만에 물러났으며 2010년 들어선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反美(반미) 좀 하다가 1년 만에 퇴출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과 미국은 나름의 절충과 타협을 했고 오늘날에 이르러 거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구축했다. 미국과 일본은 외교 전략적으로 거의 하나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은 이런 미국과의 안정된 관계와 내부의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다듬어낸 새로운 ‘떡 나누기’ 체제가 완성되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에 관심을 두어도 좋을 것이니

 

 

니케이 225 지수가 1989년의 고점을 뚫고 오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며 그 이후 상당한 폭의 상승을 통한 레벌 업이 있을 것이라 본다.

 

2022년부터 2032년까지 이어질 일본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해갈 것인 바, 특히 그 중간점인 2027년엔 나름 괄목할 만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 본다.

 

일본 엔화를 사도 좋고 일본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해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투자 적기는 2025년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젊은이들은 일본에서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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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수 있다면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결혼을 안 한다, 결혼을 못 한다, 다 좋다. 당사자들만 행복할 수 있다면 결혼하고 안 하고는 오늘에 이르러 그저 선택일 뿐이다.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는다, 낳지 않는다, 당사자들만 행복하다면 그 또한 자유 선택일 뿐이다.

 

나라의 인구가 줄고 씨가 말라간다 해도, 잠재성장률이 어떻게 되든 그거야 큰 차원에서의 일이고 정작 당사자들을 강제할 순 없으니 그런 건 다 상관이 없다. 당사자들만 행복하고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리버럴’ 성향의 호호당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하지만 異性(이성)의 반려자를 만들어 함께 삶을 꾸려가는 것, 또 자신을 닮은 아이를 만들어 놓는 것은 길게 보면 엄청난 투자이고 든든한 보험이란 생각을 한다.

 

젊고 건강할 때엔 고정된 짝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다. 수시로 파트너를 만들어 지내다가 성가시면 헤어지면 되는 일이다. 돈이 필요하면 그런대로 알바를 하든가 좀 더 나은 일자리를 통해 충당할 수 있다.

 

그런대로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으면 혼자서 또는 친구와 함께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좀 더 여유가 있으면 도심에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그야말로 프리한 솔로(solo)의 쿨하고 화려한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다.

 

 

 젊고 건강한 시절이 그리 길지가 않아서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젊고 건강하면서 수입이 어느 정도 유지될 때의 얘기이다.

 

먼저 경제적인 것부터 알아보자.

 

최근 '2023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에서 중장년(시니어)의 퇴직 연령은 평균 50.5세로 나타났다. 주된 직장에서 근속기간은 평균 14년 5개월이었으며 50세 이전에 퇴직하는 비율 또한 45.9%로 절반에 달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이어지는 기간은 평균 15년에 시기는 50세까지란 얘기이다. 그 뒤론 당연히 재취업을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당연히 보수도 낮아지고 사업을 하다가 진짜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건강에 대해 얘기해보자.

 

대개의 경우 50대 중반까진 그런대로 크게 문제가 없지만 그 나이를 넘어서면 이런저런 증세와 질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고지혈 고혈압 당뇨의 3대 성인병을 포함해서 허리와 목의 디스크라든가 오랜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라든가 강박, 우울증 등등의 정신신경 질환을 포함해서 실로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

 

이런 증세와 질병들이 특히 60대 중반이 되면 제법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치료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물론 우리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대처를 한다. 독자가 또는 독자 주변의 누군가가 솔로라고 하자. 40대 중반이 되면 아무리 홀몸이라도 노후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다소 안정적이고 보수가 많은 주된 직장에서의 평균퇴직 연령은 50세이니 그 기간 안에 노후 대책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는 거의 없다.

 

그러다가 50대 중반이 되고 60 중반이 되면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 문제에 대해 정말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앓으면서 긴 겨울밤 혼자서 침대를 지키고 누워 있어야 할 때도 생긴다는 말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하는데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가까운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고 엄살도 피울 수 있어야만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때론 강하게 하소연도 할 수 있어야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은 누군가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젊고 건강할 적엔 솔로의 삶도 능히 꾸려갈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더욱 누군가가 필요하다.

 

한동안 졸혼이니 황혼이혼이니 하면서 말이 많았지만 나 호호당 생각에 세월이 좀 더 지나면 “황혼동거”가 크게 유행할 수도 있다고 본다. 솔로로 살다가 나이가 들어 병들고 힘들어지면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해질 것이니 말이다.

 

병들고 힘든 사람이 좋은 동거인이나 반려자를 만나긴 쉽지 않겠으나 同病相憐(동병상련)이라고 처지가 함께 딱하다 보면 가능해지지 않을까? 서로 간에 기대수준의 높이를 왕창 낮추면 말이다.

 

자녀 또한 그렇다. 자녀를 잘 키워서 나중에 자녀로부터 덕을 보거나 양육을 받자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어갈 때 정상적으로 성장한 자녀가 있으면 그야말로 커다란 버팀목이 된다는 사실이다. 가령 병원 좀 가보려고 해도 자녀가 있으면 훨씬 쉽게 알아보고 검색할 수 있듯이 말이다.

 

굳이 유교적 관점에서 대를 이어간다는 그런 관념을 떠나서 부부가 자녀를 낳고 애써 성인으로 길러내면 그야말로 크게 보람이 있다. 옛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란 얘기이다.

 

 

최근의 시류와 풍조는 전혀 가본 적이 없는 사회적 실험이어서

 

 

최근 어떤 지식인 또는 교수란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결혼이나 자녀 낳기를 기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란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봤는데 나 호호당은 그 지식인의 발언에 대해 참으로 쩝! 이다.

 

최근 보면 비혼이 아니라 결혼을 혐오하는 혐혼의 풍조까지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그야말로 어렵고 문제도 많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람은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부비며 살아야 험한 인생 그런대로 건너갈 수 있다. 삶이란 거,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니 누군가가 있어서 위로하고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 서로간의 情(정)으로 산다고 답하고 싶다. 솔로의 삶은 나중에 기대고 부빌 언덕이 없다, 또 아기를 낳지 않은 부부가 병들고 약해진 노년이 되었을 때의 허망함, 실로 굉장하다.

 

 

15년 후가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의 폭풍이 불어닥칠 것 같아서 

 

 

생각하기로 앞으로 15년 후가 되면 비혼과 혐혼, 출산 기피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올 것이라 본다. 그때 가서 때늦게 짝을 만들자니 너무나도 힘들 것이고 아기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건 마치 우리 사회 전체에 몰아닥칠 스트레스의 폭풍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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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60년 순환의 시작

 

 

올 해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은 60년 사이클에선 立春(입춘)이자 새로운 시작점이자 사이클 상의 바닥점이다. 입춘이란 한 해의 시작점인 양력 2월4일 경과 같다. 참고로 금년 2024년의 입춘은 오는 2월 4일 오후 5시 19분에 들어오며 실은 그때부터가 甲辰(갑진)년 청룡의 해가 된다.

 

우리 국운이 60년 순환의 바닥이란 말을 했지만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보충 설명을 한다. 운은 바닥일 땐 오히려 상황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진짜 고난은 바닥을 딛고 일어서고자 할 때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은 초봄부터 초여름 사이가 된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예전에 보릿고개란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때에 해당된다. 우리 국운의 사이클로 치면 2027년부터 날로 어려워져서 2042년까지의 15년 동안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봄이야말로 어려운 시기이다. 봄은 만물이 蘇生(소생)하는 시기, 그런데 소생한다는 것은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니 그게 어디 쉽겠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겪을 고난은 2027년부터 2042년까지의 15년이고 그 정점은 2034년이 될 것이니 지금부터 10년 후가 되겠다. 물론 2034년 이후 2042년까지에도 대단히 어렵겠지만 그때엔 나름 악이 생기고 깡이 생겨서 그런대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엄살 부리지 않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여러 차례 얘기해왔듯이 그렇다고 무조건 어렵기만 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국운의 장기 국운 즉 360년 사이클을 볼 것 같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360년 장기 국운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우리 대한민국의 360년 장기 국운은 1904년에 시작해서 2264년에 이른다. 1904년으로부터 계산해보면 올 해 2024년은 120년이 경과했음을 알 수 있다. 360년의 1/3에 해당되는 세월이 지난 셈이고 360년을 1년으로 치환할 것 같으면 넉 달이 경과한 시점이 된다.

 

2월 4일의 입춘으로부터 넉 달이 지났으면 6월6일의 芒種(망종)이란 말이 되는데 이제 바야흐로 본격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올 해 2024년부터 60년간, 즉 2084년에 이르는 기간은 장기 국운 상으로 본격적인 여름의 기간, 열에너지가 끓어오르는 기간이 될 것이니 이 기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과 전진을 거듭해갈 것이라 본다.

 

6월 초에서 8월 초까지의 기간, 빛이 가득하고 열에너지가 들끓는 이 기간을 나 호호당은 “야망의 계절”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계절은 나름 바람직하지 못한 면도 상당하다. 그야말로 능력주의가 강조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측면은 시늉이나 겉치레에 그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북쪽을 열어야만 한다

 

 

이 기간 동안 어쩌면 우리는 북한 문제를 놓고 서해 바다 저편의 중국과 한 판 뜰 가능성도 충분히 엿보인다. 북한을 중국이 끝내 내려놓지 못할 경우 그리고 우리 또한 북한과의 통일이나 하나 됨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니 그렇다.

 

우리는 북쪽이 막혀있는 이상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고 거래를 하고 있지만 지금이 기껏이다. 새로운 출구는 역시 북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인 것이다. 북한을 열어야만 만주와 러시아 등을 통해 아시아 대륙의 내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와 중국이 충돌 코스를 밟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현재 타이완 문제로 중국과 미국이 전쟁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미중이 전쟁을 하기엔 경제면에서 너무나도 깊숙하게 얽혀 있어서 불가능하며 게다가 미중 모두 그럴 만한 기백을 가진 인물도 없다. 따라서 전쟁은 없다.

 

반대로 우리로선 북쪽이 막혀있다는 사실은 우리 대한민국, 크게 보면 남북한 우리 겨레의 숨통을 죄는 것과 같다. 북쪽을 뚫지 못하면 우리 대한민국과 한겨레는 장기적으로 서서히 고사할 형국이니 중국이 양보해야 한다. 북쪽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死活(사활)에 관한 문제라 하겠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이 있긴 하다. 중국이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럴 경우 우리와 중국의 충돌은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만 중국이 이제 와서 체제 전환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인데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더 희박해 보인다는 게 문제이다.

 

 

2008년에 전망했던 것과 지금의 현실

 

 

예전에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365회에 걸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데 호호당 독립 페이지, www.hohodang.com 에 가면 김태규의 명리학이란 항목에 올려져 있다. (티스토리에 올리는 작업이 모두 수작업 생고생이라 올리지 않았다.)

 

그 코너의 361회차 “다섯 개의 겨울 설산”이란 글이 있는데 그 속에 보면 장차 우리가 맞이하게 될 다섯 가지의 어려움을 열거하고 있다. 2008년 11월에 향후를 전망한 글인데 이렇게 적혀 있다.

 

-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놀랍게도 다섯 가지 문제점들은 2024년이 된 지금까지 어느 하나도 정리되거나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동산 문제라든가 중국 경제 거품 소멸은 현재 진행 형이다. 게다가 우리 산업의 노후화에 따른 경쟁력 저하는 지금도 맹렬히 진행 중이다. 물론 그 사이에 배터리와 같은 성장사업에서 새로운 발전을 보이고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 오늘에 이르러 저출산과 고령화, 이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라고 하는 두 가지 혹이 더 붙었다.

 

얼마 전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률이 가장 높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의 중년 특히 40대의 소득이 OECD 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다는 말도 된다. 그렇기에 세대별 양극화가 엄청나게 커졌음을 말해준다.

또 소득이 평균적으로 높은 40대를 들여다볼 것 같으면 그 안에도 엄청난 양극화가 진행 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대기업이나 유수의 IT 기업에 다니는 젊은 층의 소득은 대단히 높아서 나름 럭셔리한 삶을 누리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청장년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무척 열악하다.

 

그러다 보니 소득 높은 젊은 층은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으로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이 높아졌고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 층은 결혼을 포기한다. 그러니 저출산이다. 뿐만 아니라 남녀의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장차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할 스트레스와 문제도 적지 않다.

 

 

저성장 성숙경제

 

 

하지만 이 모두 크게 보면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저성장 국가가 되었고 좋게 말하면 ‘성숙 경제’로 진입한 나라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제 큰 꿈(Big Dream)을 꾸기가 정말 어려워진 사회가 된 것이다. 연간 성장률이 2% 나오면 호경기, 부진하다 싶으면 1에서 0 % 사이가 되는 성숙경제 말이다. (이웃의 일본이 보여준 모습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본다. 모든 면에서 저성장인데 그간 우리의 많은 것들이 그보다는 훨씬 높은 성장률을 전제로 설정되고 운영되어온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 맞춰 하향 조정되는 과정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이 때론 급격하게 나타날 경우 사회적인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급격한 축소조정이 예상되는 분야 그리고 2027년

 

 

우리의 현실 상 그런 급격한 조정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있으니 부동산 시장과 사교육을 포함한 교육시장이 그렇다. 이 부문에서 급격한 조정이 나타날 경우 자동적으로 그간 끊임없이 늘어난 가계 부채와 기업부채 문제를 동시에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조정이 급격히 대두될 수 있는 시점으로 나 호호당은 2027년, 향후 3년 뒤를 상정하고 있다.

 

새해 벽두의 글인데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게 과연? 싶어서 며칠 망설였다. 그러다 보니 내일이면 10일이 된다. 그래서 역시 글을 올리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불편한 독자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양해의 말씀도 함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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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 해가 탄생했으니

 

  

한 해의 가장 어둔 곳이자 깊은 深淵(심연)인 동지가 지났다. 늙은 해는 깊은 연못에 들어가 죽었고 베이비 해가 태어났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인데 서구에선 동지와 크리스마스를 하나로 묶어서 취급한다, 그냥 미드윈터(Midwinter)이고 크리스마스 연휴는 사실상 동지부터 시작된다.

 

중앙아시아의 탱그리 문화에서도 동지를 해가 새롭게 태어난 날이라 해서 날도칸(nardoqan)이라 하는데 여기서 ‘날’은 우리말의 해를 뜻하는 날과 같은 말이다. 그런가 하면 고대 로마에선 農神祭(농신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해서 가장 큰 축제 명절이었다.

 

크리스마스하면 예수님이 태어난 날 즉 성탄절이지만 그 역시 동지에 이르러 베이비(baby) 태양이 태어난다고 여기던 오랜 문화적 전통의 연장선에서 생겨났을 뿐이다. (예수님의 진짜 생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 동지와 오늘을 비교하니 해시간이 1분 더 길다. 일출 시각은 7시 43분으로 같았는데 일몰이 오늘 5시 18분으로 어제보다 1분 더 늦다. (초로 따지면 1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내겐 참으로 힘들었던 한 해

 

 

나 호호당에게 2023년은 나름 많이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60대 중반을 넘으면서 생겨난 허리 디스크와 이석증, 어지럼증, 피부의 이상한 자극 등등 몇 가지 증세로 인한 통증과 스트레스, 여기에 담배 금단 증세까지 더해져서 꽤나 우울하고 힘들게 시간을 보냈다. 간단히 말해서 사는 게 苦役(고역)이었다.

 

참으로 강건하던 내 몸이었고 지칠 줄 모르던 체력이었는데 삽시간에 이렇게 망하다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순 없으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실 금연한 것도 그 대책 중의 하나였지만 당장은 힘든 게 더 많았다.)

 

 

궁리 끝에 두 가지 방법을 택했으니 

 

 

결국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명상 또는 수련이라 부르는 것, 국내에선 단전호흡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것의 기본은 道敎(도교)의 內術(내단술)인데 이를 수련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겨울이 되어 아파트 단지 외곽을 돌아가면서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이 그것이다. 시작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20일 경의 霜降(상강) 때부터였다. 단지 안의 고양이들은 캣맘들이 있어서 괜찮다. 그래서 새들에게만 내년 초여름 5월 小滿(소만)까지 6개월간 모이를 주기로 했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모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겨울엔 새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다. 

 

기본은 보리쌀과 쌀, 해바라기 씨앗, 이렇게 3가지를 섞어서 준다. 여기에 먹다 남은 마른 음식이 있으면 함께 넣는다. 대략 2.5 킬로그램 정도의 분량을 들고 나가서 뿌려준다. 하루 비용이 대략 1만원이 조금 안 되는 것으로 계산하는데 담배를 끊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갈음이 된다.

 

매일 해가 뜰 무렵에 나가서 모이를 주었는데 최근 강추위 탓에 아침 10시에서 정오 사이에 주는 것으로 루틴을 변경했다. 그런데 이게 왜 우울증에 대한 방책인가? 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뭔가를 먹이고 돌보는 일은 즐겁고 우울한 삶에 큰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새들은 기억력이 좋다, 동네 까치나 까마귀는 물론이고 비둘기들, 그리고 이름 모르는 여러 새들까지 해서 모두들 모이 주는 나 호호당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까치 한 마리가 망을 보다가 비닐 지퍼백에서 모이를 한줌 집어서 정해진 장소에 내려놓으면 깍-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치고 그러면 순식간에 까치들이 날아든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모이를 놓아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후 비둘기가 날아들고 거의 동시에 숲속 가지에서 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와 박새,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이 날아든다. 까마귀도 온다.

 

아파트 외곽 산책길로 해서 1.5 킬로미터에 걸쳐 모이를 뿌려주면서 돌아온다. 그러면 수백 마리의 새들이 연신 소리를 지르며 내려앉아선 열심히 모이를 쪼아댄다. 그 바람에 나 호호당은 우면동 아파트 단지의 새들 양아버지가 되었다. 흐뭇하다, 내가 너희들 애비다, 많이 먹어라, 내 새끼들아!

 

수련은 내 몸을 養生(양생)하는 방법이지만 새들 모이 주는 것 또한 나 자신을 넘어선 생명 전체의 관점에서 그를 더하고 늘리는 방법이니 그야말로 좋은 양생법이라 여긴다.

 

2024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동갑내기인 집사람 말로는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그간 뭘 했다고 벌써 70이 되었을까?

 

 

이젠 진짜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며칠 전 주중에 아주 추운 날 대학 과동기 모임을 했다. 한 친구가 말하길 우리 나이에서 기대수명은 82세라는 것이었다. 현재 만으로 68-69세 정도니까 13-14년 정도가 餘生(여생)이란 얘기였다.

 

살아봐서 익히 알고 있지만 10년 세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니 그날 동창회 모임에 나온 모든 멤버들은 이미 날 받아놓은 거나 다름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 호호당 역시 말로는 운세가 받쳐주고 있으니 아흔까지 살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갈 수 있느냐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소식을 들어 알게 되었으니 불교학교의 훌륭한 학자이신 김성철 교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타계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 양반 아직 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면서 생일을 검색했더니 1957년생, 나 호호당보다 2년 후배인 셈인데 참 일찍 떠났구나 싶다.

 

생년월일을 검색해보니 1957년 11월 8일이라 되어 있다. 그 나이면 아마도 음력일 것 같아서 사주를 뽑아보니 그럴 것도 같다. 일단 심장 기능이 좀 약해 보인다, 그리고 2014년이 입춘이란 점이다. 그러니 올 해는 춘분 직후이니 능히 갈 법도 하고 또 심장마비도 납득이 간다.

 

아쉽긴 하지만 몸 고생 많이 하지 않고 순간에 떠났으니 한 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선생, 잘 가시오! 윤회를 부정하면 불교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주장하신 분이니 다시 좋은 곳에서 태어났겠지요.

 

 

그럼에도 새로운 여정을 기대하는 호호당

 

 

사실 나 호호당은 2024년에 대해서 적지 않은 기대를 품고 있다.

 

1994년 4월부터 시작된 오랜 방황의 여정이 이제 내년 4월이면 30년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제 또 다른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새 해는 이미 동지 다음날인 오늘부터 이미 준비(?) 또는 시작되고 있다.

 

부디 독자님들과 독자님들의 가정에 안녕과 행복, 새로운 희망이 가득차기를 바라면서 연말 인사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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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보낸다는 것

 

 

이제 한 해가 다 갔다. 2023 癸卯(계묘)년은 곧 과거의 年表(연표)가 될 것이고 2024 甲辰(갑진)년이 진행형이 될 참이다.

 

젊어선 한 해가 간다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 해가 갔다? 뭐 그게 어떻다고, 또 새해가 올 거 아냐? 그냥 이어져가는 거지 정도로만 치부했다.

 

중년이 되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게 되었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들어가네, 중년이 되면 뭐 좀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더니 현실은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허송세월했구나 하는 자괴감 같은 심정도 들었다. 또 한 편으론 뭐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인생 다 그렇지 하면서 드라이한 생각, 마른 감정도 가져보았다.

 

 

삶의 햇수가 좀 되다 보니 

 

 

이제 나 호호당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칠십이다. 옛날엔 70까지 사는 일이 드물다 해서 古來稀(고래희)라 할 정도였으니 일단 長壽(장수)한 셈이라 하겠으나 오늘의 기준에서 얘기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냥 좀 나이가 있는 아저씨 정도(?).

 

하지만 내 스스로 느끼기로 이젠 적지 아니 살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가령 호호당이 죽었다 하자, 그럴 것 같으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저 양반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네, 아쉽다 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나 평균의 개념이 적용되는 법이니 90까지 살았다 하면 장수했다고 할 것이고 80 중반에 운명하셨다 하면 살만큼 살다 가셨다 할 것이며 70 중반이면 좀 빠르다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시대가 가니 사람도 떠나네 

 

 

글머리에서부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연말이 가까울 무렵 갑자기 생각하지 않은 訃音(부음)들이 많아서이다. 얼마 전 20세기 후반의 글로벌 세계를 만들어낸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헨리 키신저 박사가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키신저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대 후반 중국을 개방시켜서 미국 쪽으로 끌어들인 중미동맹을 성사시켰고 그를 통해 1991년말 소련의 붕괴를 유도해내는 커다란 업적을 만들어낸 핵심 당사자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 이제 세월이 가도 많이 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로벌화란 것을 들여다보면 결국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인 동맹체제로부터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미중 관계는 삐걱대면서 또 다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향해 움직여가고 있으니 달라진 세상인 것이고 이에 옛 사람인 키신저는 떠났다.

 

그런가 하면 나 호호당의 청춘 시절 국내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쳤던 미국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클래식인 “러브 스토리”의 남자주인공 “라이언 오닐”이 8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러브 스토리, 에릭 시걸이란 작가가 쓴 소설이었는데 히트를 치자마자 즉각 영화로 만들어져서 또 다시 초대박이 난 작품이다. 영화 제작비의 무려 62배에 달하는 수익을 만들었던 영화인데 그도 그럴 것이 두 대학생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영화인 탓에 특별히 들어간 비용이 없는 저렴한 영화였다, 그런데 엄청나게 흥행했으니 초대박이었다.

 

라이언 오닐이 죽었으니 순애보의 러브 스토리도 끝이 났다. 이 또한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고 있다.

 

글로벌 구도를 스케치했던 희대의 전략가 키신저가 죽었고 청순한 사랑의 대명사였던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이 죽었으니 마치 나 호호당이 살았던 시대가 이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서 이제 나 호호당도 멀지 않아 옛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약간 서운한 감정.

 

 

자승스님, 그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런가 하면 진짜로 충격적인 일은 자승스님의 돌연한 타계이다.

 

종단 쪽에선 소신공양으로 정리하고 있으나 그게 참 어이가 없다. 그 것의 옮고 그름을 떠나서 요사채에 휘발유를 두르고 불을 붙여서 목숨을 끊었으니 무섭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저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반야심경에선 不生不滅(불생불멸)이라 해서 생사란 원래 없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지만 현실의 세상은 어딜 가나 죽기 아니면 살기의 아귀다툼과 이전투구란 식으로 해석이 되니 처절한 심정마저 든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감히 판단하기도 어렵고 그저 며칠간 먹먹할 따름이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서 생년월일을 찾아보니 나무위키에 1954년 4월 23일이라 되어 있고 춘천시 출생이라 되어 있다. 그 연도면 음력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렇게 검색해보니 甲午(갑오)년 己巳(기사)월 辛巳(신사)일이 된다.

 

음력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2001년이 입추였을 것이니 秋分(추분)인 2009년에 총무원장에 취임했고 또 재선되어 2017년까지 재임한 것이 된다. 역대 총무원장 중에서 최고 실세였던 분이 갑자기 무슨 사유로 저처럼 가야 했을까? 그저 올해 2023년은 자승 스님의 운세에 있어 冬至(동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인가? 그간 무엇을 구했으며 이제 와서 달리 구할 것이 없다는 저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스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치 쪽 특히 좌파진영의 날선 비판도 많다. 그간 잘 몰랐지만 스님이 평소 그쪽과는 친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무튼 우리 사회는 종교계에도 날카로운 진영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생사 없는 곳이 없다는 스님의 말이 실감이 간다.

 

그런데 스님을 다비했더니 푸른 옥구슬과 같은 사리가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삶은 거친 압력 속에 놓여있기에 

 

 

하지만 자승스님의 선택은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여전히 아쉽고 실망스러운 바가 있다. 우리들이 기독교든 불교든 그 어떤 종교에서든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합리성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인 까닭이다. 더불어서 최근 우리 사회의 종교계 인사들이나 종단이 정치적 좌우 이념의 싸움터가 되고 있는 것 역시 대단히 실망스럽다.

 

종교의 근원적 역할은 우리들에게 위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왜냐면 삶의 현장은 늘 거친 압력 즉 暴壓(폭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그를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영위하려면 우리들은 늘 다양한 압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친 삶의 현장을 지키고 또 이어가려면 다소 근거가 희박하더라도 그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을 지녀야만 한다. 동시에 우리 서로가 힘들 때마다 위안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이 있어야만 삶의 거친 압력으로부터 견디고 또 다시 내일을 기약할 수가 있다.

 

 

해를 보낸다는 말, 다시 새겨보자. 

 

 

헌 해를 보낸다는 말, 그 말 속에는 묵은해를 보내면서 맞이했던 모든 어려운 일들과 좌절된 희망. 또 그로 인한 상처들도 함께 실려 가기를 기원하는 바람이 깃들어있다.

 

그래야만 새해에는 또 다시 말끔하게 언제 힘들고 아픈 일이 있었을까 싶은 멀쩡한 표정과 자세로 새로운 한 해의 기원과 희망을 다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만 

 

 

올 한 해는 다를 거야, 아니 달라야 해! 하는 다짐과 기원 말이다. 물론 그 다짐과 기원은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또 다시 변색되고 빛이 바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늘 어떤 지점을 기점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어려선 잘 모르겠지만 철이 들고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한 번 주어진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삶의 경륜이 생기고 쌓이다 보면 막연하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하고 기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닌 가장 강한 힘이라는 사실, 아울러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이 유지되는 원동력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올 한 해 나 호호당으로선 여러모로 힘든 해였다. 건강 문제로 인해 담배를 끊었는데 그 금단 증세가 실로 엄청났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저하되면서 심한 우울증도 함께 왔다. 50년을 피워온 담배였으니 그걸 그만 두는 것이 결코 만만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껏 금연을 유지하고 있고 아마도 끝내 금연에 성공할 거란 예상을 해본다.

 

올 겨울 보내고 내년 봄이면 다시 상담 사무실도 낼 생각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글도 자주 쓰고 그림도 열심히 그려볼 생각이다. 나 호호당 또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하고 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삶이 이어지는 한 말이다.

 

 

독자님들에게 감사 인사 드리면서 

 

 

내년에는 독자님들과 그 주변 그리고 가정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송년의 인사를 마친다. 올 한 해 많은 점에서 부진했지만 그럼에도 독자님들의 지지와 성원, 메일을 통해 보내오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있었다,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뿐이다.

 

운세 주기가 다르다 보니 생기는 오해

 

 

며칠 전 오래 전 잘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외손주 일로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년 봄까진 사무실도 폐쇄하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가까운 사이였기에 기꺼이 상담해 드리겠다고 답했다.

 

양재역 근처의 커피 집에서 만났다. 몇 마디 들어보니 바로 판단이 섰다.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사정이었겠으나 나로선 너무나도 많이 접해본 아주 흔한 상담 케이스였다.

 

손주의 아버지가 되는 사위는 대기업 간부, 사회적으론 성공 가도를 달려가고 있지만 집에선 자녀들에게 아주 엄한 아버지, 아들 녀석이 말을 안 듣고 공부도 하지 않는다고 수시로 심한 말과 함께 때론 폭력도 행사하고 있었다.

 

외손주의 어머니 즉 지인의 따님은 그런 남편의 심한 행동에는 적극 반대하고 있지만 대신 아들에 대해 깨알같이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외손주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반항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아예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방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일종의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칼을 들고 들어가서 혹시라도 끌어내려고 하면 무슨 일이 날 지 모른다고 부모를 위협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아이의 생년월일시를 보니 2008년생이었고 지금은 중3이었는데 운세를 보니 2020 庚子(경자)년이 입춘 바닥, 따라서 지금은 지금 한창 어렵고 힘든 때, 간단히 말해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학교에서 학업 성적은 물론이고 왕따 당하는 일도 제법 되는 외손주는 이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져버린 것이다. 부모들은 이러다가 아이를 완전 망칠 것 같은 걱정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되는 일인데

 

 

어쩌면 좋겠냐고 묻는 지인의 물음에 답을 했다.

 

“간단합니다. 버리면 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학교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아니요 성적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두면 가장 좋습니다. 용돈을 달라고 하면 물론 적당히 주어야 하고요. 그렇지 않고 강제로 억지로 푸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정말 그건 모를 뿐 더러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남자는 상처를 크게 받으면 일단 자신의 동굴로 들어가서 다 나을 때까지 나오지 않으려 하는 법, 그러니 동굴 밖에서 기다려주면 되는 일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이런 상황은 굉장히 흔하다. 그런데 억지로 문제를 해결하려들면 정말이지 부모 자식 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悲劇(비극)으로 끝나는 수도 대단히 많다.

 

그 아이, 그냥 내버려두면 몇 년 지나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잘 살아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면 절로 잘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상실도 크다. 학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바람에 사회에 진출할 때 상당히 마이너스로 작용하겠지만 큰 눈에서 보면 인생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게 결정적인 것은 절대 아니란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요소가 약이 되어 나중에 더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점은 저마다 각자의 운세 사이클이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아버지는 어려서 고생하면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바람에 중년 이후 어느 정도 성취를 누린다. 하지만 자녀는 어려서부터 운이 계속 하락해서 20대 무렵에 바닥을 치게 되어 이른바 ‘루저(loser)’로 지낸다. 하지만 그 또한 나중에 보면 그런 찌질이 루저들이 중년 이후 만년에 이르기까지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기다려주어야 될 때가 더 많아서 

 

 

따라서 이런 케이스에 있어 일단 부모 쪽에서 먼저 자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럴 경우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고 훗날 자녀가 잘 성장해서 부모의 은혜를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경우 부모 자식 사이가 원수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참으로 허다하다. 상담해오는 과정에서 실로 많이 경험했다, 나 호호당은.

 

물론 이처럼 사람마다의 운세 사이클을 알 수 있다면 살아감에 있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운세 사이클을 몰라도 실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까운 사람 또는 자녀가 상대적으로 부진하고 떨어진다 싶으면 타고난 재능이 떨어지는 까닭도 있겠으나 운세가 부진하면 저렇다는데 하는 식으로 이해해고 양해해준다면 그리고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다면 결국 보람이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저마다 욕심이 앞서서 조금 모자란다 싶으면 다그치고 압박하면서 서로 간에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기다려주는 것, 성숙한 자의 사랑

 

 

소중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어렵다면 같이 걱정도 하고 공감도 해가면서 잘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이런 것을 성숙한 사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