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뜻밖의 일이로구나!

 

최근 2-3년 사이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올 해 세는 나이로 일흔이 되자 아, 이제 다 살았구나, 삶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생각은 금년 내내 변함이 없었는데 갑자기 아내에게 황달이 생겨서 간신히 대학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랬더니 담낭 또는 담도 쪽의 암이 간에까지 전이되어 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가 곧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게 생겼으니 너무나도 황당하고 넋이 나갈 지경이지만 일부러 시름을 덜기 위해 운명이란 것 그리고 나 호호당이 발견하고 창안해낸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해 곱씹어보고자 애쓰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선은 발견이었다.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거기에 일정한 룰과 규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립했으니 그건 창안이다.

 

 

운명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에 모르는 것 또한 너무 많아졌으니 

 

 

자연순환운명학은 그간 몇 만의 사람을 직접 만나서 상담해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으며 그 이후로도 무수히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보다 폭 넓은 연구를 위해 인터넷을 통해 십 수만의 사람들이 밟아간 인생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 오늘에 이르러 나 호호당은 정말이지 운명이란 것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운명이란 것에 알게 되면 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에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뭘 좀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예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 뭘 모르는지를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생명체

 

 

상담해오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생각이 하나 있다. 우리 인간들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한 상태에서 그냥 머물지 못하도록 진화되어 온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욕구가 달성되면 물론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하고 즐겁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으니 그 즐겁고 편한 상태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 계속 여기에 이렇게 머물고 있을 거니? 그럼 안 되지!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하면서 속에서 불만과 경각심을 일으키는 어떤 호르몬이 우리 속에서 솟구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 보니 “회복탄력성”이란 베스트셀러 책을 쓴 김주환 교수가 우리 인간이 갖는 원초적인 감정은 딱 하나, 불안에 기초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우리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불안해하면서 경각심을 가지도록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잠시 만족하고 또 편안해하는 것은 5분의 휴식에 불과하고 그러면 또 다시 55분간 빡세게 애쓰고 힘을 쓰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욕망을 내려놓아라, 현재의 상황에 만족 또는 自足(자족)해라, 이런 말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그냥 어지간히 해라,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이런 말을 내게 하거나 또는 타인에게 해주는 편이다.

 

 

이젠 부처님의 말씀도 내려놓게되네

 

 

오랫동안 석가모니 또는 부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나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써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 마음 또한 내려놓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포기했다.

 

渴愛(갈애)와 執着(집착)으로 인해 생사윤회와 고통을 거듭 반복한다고 부처님이 얘기하셨다. 하지만 이젠 그 갈애와 집착을 떨치려는 마음 또한 내려놓았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생사윤회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부처님 그게 되는 게 아니잖소, 그냥 이렇게 가려 합니다, 하는 마음이다. 죽는 날까지 갈애하고 집착하다가 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한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상담을 재개한 이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와 사연으로 찾아오고 얘기를 나누고 조언을 듣고는 돌아간다. 그렇지만 묻고자 하는 내용, 갈등하는 내용, 욕망하는 내용은 예전과 전혀 변함이 없다.

 

다만 변했고 또 변해가는 것은 찾아오시는 분들을 대하는 나 호호당 자신이다. 사람이 갖는 실로 다양한 욕구와 갈등 등을 대한 나 호호당의 이해가 예전보다 훨씬 깊고 넓어졌음을 느낀다. 아마도 그간의 누적된 경험 때문이리라.

 

 

이젠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할 때

 

 

그간 자연순환운명학 강좌를 하면서도 그 全貌(전모)를 강의한 적은 없다. 일부러 숨긴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걸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자연순환운명학을 오프라인으로 기초반 강좌를 개최할 생각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젠 체력도 한계를 느끼고 있어 올 겨울 동안 기초반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 강의 버전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나아가서 당초부터 나 호호당이 바라는 바, 자연순환운명학의 디테일한 부분들과 응용편, 실제 사례들을 곁들인 내용까지 상세한 내용을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동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빠르면 내년 중반기쯤에 시작해서 만들어놓을 계획이다.

 

수십 년 연구해온 내용을 遺失(유실)되지 않게 남겨놓아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호호당은 無名(무명)으로 잊히겠지만 자연순환운명학은 결코 소실되지 않을 것이고 어느 때가 되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다.

 

집사람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그러니 나 호호당 또한 마찬가지. 마무리 작업을 열심히 해가야지 않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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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꼬박 고생했는데 

 

 

돌이켜보니 작년 시월부터 만 1년 동안 개인적으로 참으로 多事多難(다사다난), 힘든 일도 많고 탈도 많았으며 몸도 많이 아팠다. 이제 겨우 그런대로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는 차에 또 다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내가 갑자기 급성으로 많이 아파서 동분서주한 결과 간신히 모 대학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담관암 말기란 진단을 받고 며칠 간 넋이 나가있는 나 호호당이다.

 

지금 시각 2024년 10월 31일 밤 10시 30분.

 

태어나서 지금까지 69년과 석 달 여를 살아왔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라 하겠건만 새삼 느끼는 바, 삶의 시간은 덧없고 산다는 게 거창한 무엇이라기보다 그냥 그런 것, 별 것이 없구나 싶다.

 

 

아내의 건강을 늘 염려해왔는데

 

 

늘 걱정해왔다, 아내의 사주 구조상 간담 쪽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염려 그리고 어쩌면 나 호호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아내는 그간 그런대로 잘 버텨주었기에 너무나도 고마웠다. 나 호호당의 입춘 바닥이 1997년이었고 아내는 2002년이었다. 그렇기에 2000년대는 두 사람 모두 몸고생 돈고생도 많이 했다.

 

그리고 올 해 2024년은 아내 운세 상으로 夏至(하지)의 때라서 이제 올 해만 잘 넘기면 큰 탈이 없으리란 생각을 해왔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

 

甲辰(갑진)년에 甲戌(갑술)월이라 위는 甲木(갑목)으로 같은데 아래는 辰(진)과 戌(술)이 부딪치는 운이라 갑작스럽게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甲木(갑목)의 일이니 간과 담의 문제라 하겠다. 게다가 아내는 日干(일간)이 壬水(임수)이기에 甲(갑)은 건강운에 해당이 된다.

 

 

절망하거나 비관하는 것은 시기상조 

 

 

의사가 말기라 하기에 처음엔 너무나도 충격이었지만 아들이 폭풍 검색을 해보더니 6주 진단을 받고도 5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암환자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들은 검색을 워낙 잘 하는 터라 미국이나 영국 등지의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 항암이라든가 치료에 대해 그리고 예후에 대해 검색한 결과 전혀 다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암 사이트에선 말기 환자나 그 가족에게 담당의는 절대 얼마 살지 못한다는 말 자체를 해선 안 된다는 말까지 해놓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자료에선 우리나라 전문의들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힘을 내기로 했다. 암환자의 경우 급한 것은 치료를 하되 일단 안정이 되면 병상에 누워있지 말고 운동과 식이오법을 잘 하면 항암치료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려웠지만 나름 풍족했는데 

 

 

2000년대 초반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어머니와 나, 그리고 아내, 아들, 강아지 세 마리, 미니토끼 한 마리, 고슴도치 한 마리. 모두 아홉 식구가 함께 좁은 집에서 살았다. (강아지와 고슴도치 모두 유기된 녀석들을 데려와 너무나도 잘 지냈다. 토끼는 엽기토끼 마시마로 붐 때문에 아들이 주문해서 데려온 놈이었다.)

 

게다가 동네 길냥이들과 동작동 뒷산의 새들까지 먹이를 주고 모이를 주면서 정말이지 대가족으로 풍족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와 강아지 세 마리 다 떠났으며 토끼와 고슴도치도 물론 저 세상에 있다. 이에 부부와 아들 그리고 다시 입양한 강아지 한 마리가 함께 살았는데 아내가 떠날 경우 식구는 나와 아들 그리고 강아지만 남는다. 2000년대 어렵던 시절 집안은 북적거렸는데 이제 운이 좀 돌아서고 있는데 가족의 구성원은 더 초라해질 판국이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얘기들

 

 

하지만 스스로 다짐해본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날까지 굳세게 살아보자는 각오를 다져본다.

 

이제 다시 글도 정상적으로 올릴 것이고 삶의 얘기 죽음의 얘기 많이 해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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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저승 문턱을 밟았던 사내

 

 

1849년 12월의 어느 날, 제정 러시아 시절. 이제 총살형이 집행되기 5분 전, 28세의 청년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급진적 정치모임에 가담했던 지식인들이 죄다 사형 선고를 받고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하는 때가 눈앞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집행을 중지하시오! 하고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다. 황제(짜르)로부터 형 집행 중단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마차를 타고 달려왔던 것이다. 형 집행은 중단하되 시베리아로 流刑(유형)을 가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는 혁명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체포된 급진파 지식인들의 혼줄을 빼놓고자 했다. 이에 사형을 선고하되 마지막 순간에 가서 감형해줄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문턱을 거의 넘었다 하겠다. 형을 면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충격으로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혼비백산.

 

그 안에 포함된 28세의 청년은 그 이름이 너무나도 유명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작가,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근대소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그 도스토옙스키 말이다. (지금부터 축약해서 ‘도스토’라 쓰겠다.)

 

도스토는 비록 사형은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5년간의 유형을 가야 했다. 여름엔 너무 덥고 벌레가 연신 물어뜯으며 겨울엔 너무 추운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낮엔 강제노동, 밤엔 좁은 감옥에서 지내는 그야말로 처절한 세월이었다.

 

 

대문호의 팔자와 운명 흐름

 

 

그럼 이쯤에서 도스토의 팔자와 운명흐름에 대해 얘기해보자.

 

1821년 11월 11일 아침 9시 47분생이라 되어있다. 이에 사주는 辛巳(신사)년 己亥(기해)월 甲午(갑오)일 戊辰(무진)시가 된다.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甲戌(갑술)로서 1874년이 되고 立春(입춘) 바닥은 甲辰(갑진)으로서 1844년이 된다.

 

앞에서 그가 사형을 당할 뻔 했던 일은 1849년의 일이니 입춘 바닥으로부터 5년이 흐른 때, 이른바 財運(재운)이 최바닥일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시베리아 유형을 마친 때는 1855년이니 입춘에서 10년 뒤 즉 淸明(청명)의 운이었다. 이제 비로소 늦봄이 온 것이다.

 

그가 데뷔작을 발표한 것은 1846년, 입춘으로부터 2년 뒤였는데 운세가 이럴 때에도 많은 찬사를 받은 것을 보면 천부적인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걸작 “죄와 벌”을 발표한 것은 1866년의 일로서 그의 운세가 이제 한창 뻗어가는 夏至(하지)의 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금전적으론 빈곤했다.

 

그가 그런대로 소설을 써서 돈을 번 것은 그의 운세가 입추, 즉 운기절정인 1874 甲戌(갑술)년의 일이었다.

 

도스토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나쁜 버릇이 있었으니 바로 도박이었다. 돈이 좀 생기면 도박으로 금방 돈을 탕진하곤 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게 되면서 생긴 발작, 즉 뇌전증과 시베리아 유형 생활에서 골병을 얻은 터라 도스토의 건강은 늘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운이 좋아지자 돈과 명성은 얻었으나 

 

 

건강은 좋지 않았으나 운세가 입추를 지나면서부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그였고 이에 황제 알렉산드르 2세로부터 부탁을 받고 황제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도 했다.

 

1880년이 되자 그의 사회적 명성은 더욱 치솟아서 슬라브 자선협회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쉬킨 기념관 제막식에 그가 한 연설은 청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심지어 오랜 라이벌인 투르게네프조차 그를 껴안았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은 지속적으로 나빠져서 마지막 걸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할 무렵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시력이 나빠져 있었다. 이에 침대에 누워 말로 불러주면 아내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 도스토는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 행렬은 십만 이상의 사람들이 전송했다고 한다.

 

1874년이 입추였기에 그의 죽음은 그의 운세가 한창 운명의 가을, 즉 호시절 수확철을 향해 달려갈 때였다. 그 바람에 장례식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과 애도를 표했던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부럽기보다 가엽네

 

 

나 호호당은 젊은 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며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 여년이 흘러 다시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살펴보니 전혀 부럽지가 않다. 몸이 아파서 늘 고생했던 삶, 뇌전증과 호흡 곤란 등등 그런 병환을 안고 살았던 그가 가엽기까지 하다.

 

평범하더라도 무난하고 그럭저럭 건강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가장 복 받은 운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안일한 삶이야말로 복받은 삶

 

 

安逸(안일)하다는 말이 있다. 편안하고 한가롭다는 뜻인데 동시에 비판적인 의미도 있다. 너무 쉽고 편하게 생각하여 적당히 처리하려는 태도를 지적하는 말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뜻은 원래의 의미가 아니다.

 

안일한 삶, 그야말로 좋은 삶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따져보면 그렇게 편하게 살다가는 인생은 사실 없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 한 평생 산다는 게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것을 나 호호당은 이제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안일한 삶이 가능하다면 그거야말로 최상이라 여긴다.

 

젊어선 드라마틱한 삶을 바라지만 나이가 들면 안일한 삶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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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때론 갑갑할 때가 있다.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니면 좀 변화해야 할 것 같은데 상태가 그대로 이어지다 보면 답답하거나 갑갑해진다. 마치 흘러가야 할 개울인데 어딘가에 갇혀 그냥 늪이 되어 머물고 있는 것 같은 심정.

 

꼭 어려워서만 그런 건 아니다. 일이 그런대로 잘 되고 있어도 그 상태가 오래 이어지다보면 그 역시 좀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어려운 상태에서 버티면서 고생하는 세월이 오래 이어지면 당연히 좀 좋은 일 없을까 싶은 마음에 변화를 갈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실은 커다란 고비가 될 때가 많다. 다시 말해서 이럴 때 어떻게 마음먹고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 인생 전체의 흐름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어지간하면 능동적으로 스스로 선제적으로 나서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라는 것이다.

 

답답하거나 갑갑할 때엔 거의 대다수의 경우 비유컨대 솥 안의 쌀이 한창 끓어서 거의 밥이 다 지어지기 직전의 상황이라 보면 된다. 그러니 성급하게 솥의 뚜껑을 열게 아니라 조금 더 기다리면 밥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무렵이면 이미 어떤 변화의 단초가 만들어지고 있을 때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미리 이거다 하고 변화의 방향이나 단서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보면 절로 변화의 단초가 제 모습을 나타나게끔 되어있다는 얘기이다.

 

작은 일이라면 며칠 만에 변화의 모습이 구체화되겠으나 인생 전체에 걸친 일이라면 사람의 예감이나 예측이 30개월을 앞서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오늘 글을 쓰는 것 역시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것이다.

 

가령 사업의 업종을 바꾼다거나 여태 걸어온 경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경우 30개월 정도의 시간은 절대 길지 않다.

 

얼마 전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는 분이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만 둘까? 싶은 생각에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분의 경우 그만 두고픈 생각이 든 것은 작년의 일이었는데 나 호호당은 그 분의 팔자와 운세를 보고 나서 그런 결정은 내년 2025년 가을 쯤에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역시 대략 30개월의 기간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로부터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30개월이 걸리는 것 역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를 글로 설명하기엔 무척이나 복잡다단하다. 그렇기에 그냥 앞에서 얘기했듯이 밥이 충분히 될 때까지 뜸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약간의 성급한 판단이 30년의 흐름을 망쳐놓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바로 그 사람의 운세가 내리막길을 갈 때이다.

 

반대로 운이 한창 오르막일 적에는 다소 성급한 판단을 했는데 어떤 사정 때문에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된다. 본인 스스로는 에이, 왜 이러지? 하고 짜증을 내거나 성질을 낼 수도 있겠으나 실은 운이 좋아서 그 길로 접어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조상님이 보호했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짧은 글이었지만 오늘의 얘기는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운 고비에 관한 나 호호당 나름의 성심어린 조언이었다.

 

 

 

병약한 반도체 거인이라니!

 

최근 증시에서 삼성전자의 하락이 심상치가 않다. SK하이닉스는 그런대로 반등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연일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7월 이후 외인들이 지속적으로 팔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더니 또 다시 맥쿼리가 투자의견을 “중립”, 사실상 매도하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를 “병약한 반도체 거인”이라고 내리깔고 있다.

 

“병약한 반도체 거인”이란 저 표현,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게 있다.

 

19세기 말 중국, 당시로선 청나라를 유럽 열강들이 맹렬히 침탈해갈 때 상하이의 외국인 조차지에서 발행되던 어떤 영문판 신문의 논설은 청 제국을 두고 東亞病夫(동아병부), 즉 ‘동아시아의 병든 사내’라고 멸칭했다. 덩치만 크지 무력하고 병든 중국이란 뜻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글로벌 탑 클래스이던 삼성전자가 졸지에 19세기 말 거대하지만 무력했던 청 제국에 비유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맥쿼리의 논지인 즉 삼성전자는 HBM에서 하이닉스에게 밀리고 있고 미국 현지 공장 가동이 2026년까지 연기되면서 비용 부담만 커졌으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의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증권가에선 모간 스탠리나 맥쿼리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아무튼 삼성전자 측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더 나아가서 나 호호당의 관점, 자연순환운명학의 관점에서 말을 하자면 삼성전자는 이미 위기가 맹렬히 진행 중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10년의 법칙을 삼성전자에 적용해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시작한 것이 1983년 2월 8일이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소위 ‘동경(東京) 구상’을 통해 반도체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공표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앞의 글 “10년의 법칙 라미란”이란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10 년 단위로 추이를 따라가 보자.

 

대략 1993년 무렵 삼성전자는 16M D램의 개발과 양산에 성공했다. 이로서 삼성전자는 당시 선진국의 전유물이자 최첨단 분야인 반도체에서 제1군에 합류했다.

 

사실 그 의의는 실로 대단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노동집약형, 즉 인건비 따먹기 분야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는데 삼성전자가 그런 후진국형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2003년 무렵 삼성전자는 플래시메모리 방면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상했다.

 

또 다시 10년 뒤인 2013년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스마트폰 메이커 자리를 차지했다. 이로서 이른바 백색가전과 메모리, 그리고 스마트폰이란 세 개의 영역에서 월드 탑 클래스에 오르면서 최전성기를 열었다.

 

1983년으로부터 30년간의 발전이고 성장이었으며 그 주역은 다름 아닌 고 이건희 회장이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작스럽게 쓰러져서 사실상 사망했다.

 

세상 모든 흐름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돌아간다. (더 크게는 360년이고 더 작게는 60개월 5년이다.) 한 바퀴 돌아오는데 60년이 걸리는 원주를 상상해보라.

 

 

2013년 최전성기로부터 시작된 하향의 흐름

 

 

1983년 시작을 원의 가장 밑의 지점이라 한다면 30년이 흘러 2013년이 되면 원의 가장 꼭대기 지점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리고선 서서히 다시 밑으로 내려갈 것이다.

 

6년이 흐르면 뭔가 수상해지기 마련이다. 바로 2019년이다. 하지만 외형 실적이라든가 여러 면에서 그야말로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는 겉보기에 최전성기 속에서 생겨난다.

 

바로 그 한 해 전 삼성전자는 주식을 1/50로 액면 분할했다. 당시 나 호호당은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기분이 어쩐지 찜찜했다.

 

그리고 2019년 11월 노조가 설립되었다. 노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삼성은 그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왔고 그러면서도 직원복지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는데 그게 변했다는 점에서 기분이 다시 묘했다. 물론 그 배경엔 당시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 본다.

 

 

파운드리가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이 모두를 떠나 잘못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했다는 점에 있다. 2017년부터 본격 시작해서 2019년 세계 최초로 EUV(극자외선)를 사용하는 초미세공정으로 7 nm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파운드리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기존의 최강자 TSMC를 제치고 시장을 석권해보겠다는 야심찬 투자였고 생산이었다. 그리고 일견 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실패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지었으며 또 짓고 있는 엄청난 공장과 설비, 이를 삼성전자 쪽에선 P1, P2, P3, 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는데 P자 하나 당 대략 30조원씩 투자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P2와 P3 공장 라인의 일부 설비, 즉 파운드리 생산설비의 경우 아예 전원을 꺼버리는 ‘콜드 셧다운’을 단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콜드 셧다운이 되면 설비의 진공과 청결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에 사실상 폐쇄나 진배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설비가 많이 들어갈 예정이던 텍사스 공장의 가동 시기 또한 뒤로 미루었다. 아울러 각국을 순회하면서 오프라인으로 고객유치를 하던 포럼 개최도 아예 온라인으로 돌렸다고 하니 사실상 영업을 포기한 셈이다.

 

이 모든 것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쪽에서 사실상 철수하기 시작한 것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백기를 든 셈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AI 붐을 계기로 해서 다시 원래 하던 D램 쪽에 충실하려는 쪽으로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P4 라인은 원래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의 동시생산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 역시 파운드리 부진으로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공사가 재개되었는데 아예 D램 전용 생산설비로 채우려 한다고 한다.

 

수치상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의 실패로 입은 손해 그리고 앞으로 입게 될 손실 규모는 대략 70-80조원 정도는 될 것으로 추산해본다.

 

 

2028년을 지켜보면 답이 나올 것이니 

 

 

2013년이 삼성전자의 최정점, 즉 서밋(summit)이었기에 그로부터 15년, 즉 60년의 1/4이 경과하는 시점인 2028년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4년 뒤가 되는데 그 사이에 그간의 실패와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할 것인가의 문제라 하겠다.

 

삼성전자, 우리 대한민국 경제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기업이기에 함부로 앞날을 예단하진 않겠다. 다만 삼성전자가 엄중한 위기에 처했다는 것 그리고 장래를 그냥 낙관적으로 바라볼 순 없게 되었다는 점만 얘기하면서 오늘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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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법칙이란 표현은 나 호호당이 쓰고 있는데 

 

 

유재석의 “유퀴즈” 프로그램에서 화면 왼쪽 위에 “10년의 법칙 라미란, 길거리에서 물건 팔다 걸려온 전화”란 자막이 붙어 있었다.

 

10년마다 행운이 연결되는 것 같다는 라미란의 소감이었는데 보면서 빙긋 웃었다. 맞는 말, 하지만 그 반대 즉 10년마다 불운으로 이어지기도 하지, 하고 혼잣말을 했다.

 

라미란 씨는 나무위키에 양력 1975년 4월 17일 양력이라고 명확히 나와 있어서 운세의 흐름을 쉽게 알 수 있다. 생시를 몰라서 약간의 디테일에서 차이야 있겠으나 그간의 이력이 있으니 굵직한 일은 오차 없이 판단할 수 있다.

 

乙卯(을묘)년 庚辰(경진)월 癸巳(계사)일이다. 경력을 볼 때 2013 癸巳(계사)년이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인 것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하지의 운에 뻗어가기 시작한 라미란 

 

 

사람은 夏至(하지)의 운, 입춘 바닥으로부터 22.5년이 흐르면 앞날의 서광이 비쳐온다.

 

이는 마치 해마다 6월 22일 경의 하지가 되면 모든 것들, 가령 벼가 한 나절에 한 뼘씩 쑥쑥 자라는 것처럼 급성장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가 1964년 바닥에서 22.5년이 흘러 1987년이 되자 엄청난 무역흑자와 함께 민주화를 맞이한 것과 같다.

 

2005년 이전까지 결혼을 했으나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가난한 연극배우 라미란에게 갑자기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가 왔고 또 합격하는 바람에 “친절한 금자씨”의 조연으로 출연할 수 있었다.

 

라미란 씨 스스로도 오디션 받으러 가는 도중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살려줄 배역을 찾느라 필사적이다. 박찬욱 감독 역시 그런 노력의 와중에 라미란이란 보석을 원석 상태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10년 뒤 처서의 운에 마침내 성공을 했으니 다시 2025년에도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 라미란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치타여사가 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배우로서 대성공을 했다. 이게 라미란 씨가 말하는 10년의 법칙인 셈이다.

 

그렇다면 다시 10년이 흘러 또 다시 커다란 행운이 따를 것인가?

 

이에 대한 나 호호당의 대답은 “예스, 그렇다”이다.

 

라미란의 운세는 2013년 癸巳(계사)년으로서 입추의 운이었으니 2023년 癸卯(계묘)년은 寒露(한로)의 운이고 내년 2025년이 되면 10월 하순의 霜降(상강)과도 같은 운이기에 그야말로 라미란 연기 일생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올 것이고 또 대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런데 왜 2005년 그리고 2015년 다시 2025년에 그런 행운이 따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하면 그건 라미란 씨의 사주 年干(연간)이 乙卯(을묘)이고 그게 라미란 씨에게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서 빛을 발하는 食神(식신)의 기운인 까닭이다. 재주가 빛을 발하는 해가 라미란 씨에겐 乙(을)이란 글자가 붙는 해인 셈이다.

 

라미란 씨는 2020년 秋分(추분)의 운에 만든 영화 “정직한 후보”를 통해 청룡영화제 주연상을 받으면서 명실 공히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른바 리즈 시절이 시작된 것이다. 리즈 시절은 2030년까지 10년이라 보면 되겠다.

 

그 이후론 본인의 말처럼 작은 역할을 맡으면서 계속 연기 생활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훌륭한 배우.

 

 

못내 궁금한 라미란의 속얘기

 

 

라미란 씨는 1975년생이고 1983년에 입춘 바닥이었으니 1990년 무렵에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인데 유퀴즈에 나와선 전혀 내색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무슨 일이었을까? 하고 꽤나 궁금했다.

 

왜냐면 어떤 사람의 개성을 만드는 것은 결국 상처 또는 트리우마이기 때문이다.

 

 

진푸른 하늘 높이 새털 날리고  

 

 

하늘에 새털구름 날리고 천지가 환하다. 세상이 사정없이 깊은 가을 深秋(심추) 속으로 행보를 하고 있다. 조만간 저 밝고 화사한 빛과 경물들이 겨울이 되어 사라지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속절없이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지라도/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라고 노래했던 워즈워드였지만 나 호호당에겐 그런 믿음이나 신념이 없으니 슬퍼한다. 그저 살아있는 날까지 최대한 많이 보고 만끽하고 싶을 뿐이다.

 

독자님들아, 가을이 늘 있지가 않답니다, 그 또한 어쩌면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어느 순간 휘리릭-하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답니다. 그러니 이 가을을 즐기시길.

 

중국 당국이 총력을 다해 증시를 부양하고 있다. 지난 주 통화정책 위주의 부양책 발표 이후 오늘까지 상해증시가 단 1주일만에 무려 25%나 폭등하고 있다. 나 호호당 눈엔 그저 미쳐 날뛰고 있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하는 갈등이 개미들 사이에서 커지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들어가도 된다, 도중에 흔들림이야 제법 강하게 나오겠으나 결국 오를 것이니 과감하고 기민하게 진입하라고 어드바이스하는 사이트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결국 말짱 도루묵 형국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조금 더 오른다 하더라도 2022년 7월의 고가 즉 3,424.84 포인트를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어제 월요일 종가가 3,336.50 포인트였으니 사실상 더 오를 폭도 거의 없다.

 

그러니 지금 들어가면 물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지금은 그간 중국 증시에 물렸던 중학개미라면 사실 당장이라도 팔고 나왔어야 했고 다행으로 연휴 뒤의 4일 개장 시 보합이거나 약간 상승한다면 일단 정리하고 볼 일이다.

 

혹시라도 지금 요행수를 바라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기왕에 물린 것 본전 바라면서 들고 있으면 내년 상반기 안에 “반드시” 2646 포인트를 깨고 내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나 호호당이 장담한다.

 

중국 당국이 이번에 부양하는 모습을 보니 어설프기만 하다. 下手(하수)의 티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력 없는 우리 금융 당국보다 더 못한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중국 상해증시나 관련된 홍콩이나 심천 등의 증시에 들어가지 마시라고 당부의 말씀 전한다.

 

10월 1일 아침, 컴퓨터를 켜서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렇다, 시월이 시작되었다.

 

1시간 전 산책을 다녀왔다. 실비가 내리고 있었고 길가엔 나팔꽃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늦가을인데 아직도 피고 있네, 멀리 청계산이 안개구름에 가려 희부옇고 길바닥엔 젖은 낙엽들이 찰싹 붙어있었다.

 

걷는 도중에 문득 아름다운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그 소리는 바깥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기억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아즈마 아키가 부르는 “언제나 몇 번이라도(이츠모난도데모)”의 일본어 노랫말이었다. 일본어를 모르니 모든 가사는 내게 그저 소리일 뿐. 그런데 그 소리가 비오는 시월 첫날 아침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소리가 높아지고 낮아지면서 춤을 추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가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가사의 정확한 의미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대강의 의미는 알겠으나 일본어를 모르는 탓에 作詞(작사)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충분히 음미하긴 어렵다.

 

그저 나 호호당이 느낀 대목에 대해 조금 얘기해본다.

 

살아가면서 갖는 슬픔을 전부 말로 주저리주저리 털어내기보다는 함께 입을 맞추어 가볍게 노래해보자는 의미의 가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산산 조각난 거울, 그 모든 파편들마다 또 다시 풍경이 비쳐져온다는 가사, 삶은 아픔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再生(재생)과 治癒(치유)의 힘을 지녔다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이 간다.

 

살아간다는 것의 신비함, 일본어 표현으론 不思議(부사의), 동시에 죽어가는 것의 신비함이란 가사, 그러니 삶과 죽음 모두 우리가 끝내 알기 어려운 그 무엇이란 표현, 무언가 肅然(숙연)하게 하고 敬畏(경외)의 심정을 갖게 만든다.

 

이어서 꽃도 바람도 거리도 모두 그렇다 하니 즉 신비하다고 하니 삶의 마당에서 만나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이라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아까 길에서 만난 늦가을 나팔꽃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한 번 태어나 살다가 죽어서 사라지는 이 과정, 이 전체를 작자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감이다, 69년을 살아온 나 호호당 또한 살면 살수록 삶이 무엇인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노래는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삶의 이런저런 일들은 저장이 되고 추억이 되었다가 세월이 가면 절로 잊혀져가지만 그래도 잊고 싶지 않은 속삭임이 있어서 비어버린 몸과 마음을 다시 채워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한다.

 

빛나고 소중한 것은 바다 건너편 그러니까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여기 우리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로 노래가 마무리된다.

 

그러니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몇 번이라도 원하기만 하면 꿀 수 있으니 힘들 때마다 다시 힘을 내어 씩씩하게 살아가보자는 노래로 받아들인다.

 

그렇다, 삶은 때로 힘들고 지치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몇 번이라도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고 함께 노래할 수 있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가사를 음미하다보니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2024년의 시월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의 운세

 

 

 

“어린 왕자”란 제목의 짧은 동화책이 잇다는 것을 들어보셨거나 어쩌면 읽어보셨을 것이다. 성인을 위한 동화책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나 호호당도 아주 오래 전 젊은 시절 국내에 처음 번역본이 나왔을 때 읽었는데 장미와 나누는 대화가 너무 아름답고 가슴이 저려서 그 이후로 다시 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런대로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작가는 생텍쥐페리란 이상한 발음의 프랑스 사람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이름 앙투안(Antoine)은 영어식으론 앤써니(Anthony) 정도가 되겠다.

 

오늘은 이 사람의 운명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한다.

 

1900년 6월 29일 아침 9시 15분에 출생했다. 庚子(경자)년 壬午(임오)월 癸酉(계유)일 丁巳(정사)시가 된다.

 

태어난 해가 庚子(경자)라서 충분한 기운을 받고 있기에 기의 절정인 입추는 癸未(계미)년이 되겠다. 계미년은 1943년인바 그 해가 입추였다는 점은 그가 남긴 최고의 작품 어린 왕자가 바로 1943년 바로 그 해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된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것은 1944년 7월 31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망이 아니라 비행 임무를 수행하다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실종되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운기가 한창인 입추 다음 해에 사망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다.

 

 

생텍쥐페리가 운세가 한창일 때 세상을 떠난 까닭은 

 

 

하지만 오랜 경험과 연구를 거친 지금에 이르러선 2차 대전에 종군 중이었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아가서 그 속에 담긴 더 깊은 의미도 알고 있다.

 

어린 왕자를 읽어보면 소행성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년이 어쩌다 지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막에서 한 송이 장미를 만나서 가슴 저리게 애틋한 사랑의 대화를 나눈 후 결국 뱀에게 물려서 원래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즉 이승에선 독에 중독되어 사막에서 쓰러져 죽는다.

 

생텍쥐페리 또한 운세가 한창일 때에 자신이 몰던 비행기의 추락으로 이승을 떠났다.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것이다.

 

독일군 전투기에게 피격을 당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바다 속으로 비행기와 함께 다이빙을 했는지 그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그로서 그는 진짜 ‘어린왕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60년이 흘러 우리에게 되돌아온 생텍쥐페리 또는 어린 왕자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1943년 그의 운세 입추의 해 4월에 어린 왕자가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으로 출간이 되었고 그로부터 60년, 정확하게 60년 한 순환주기가 지나간 2003년 가을, 9월 27일에 그가 몰았던 비행기의 잔해가 지중해 바다 속에서 인양되었다.

 

60년 전에 실종으로 처리되었던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가 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비행기의 잔해는 프랑스의 박물관에 보존되었다.

 

 

한 번밖에 읽지 않았으나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한 책

 

 

1943년에 출간된 어른을 위한 동화책 “어린 왕자”는 전 세계적으로 1억 3,4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보나마나 1등은 성경책일 것이고.)

 

어린 왕자, 젊은 날의 나 호호당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일러준 소중한 책이고 인연이었다. 두 번 다시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번밖에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몇 대사가 있다. 그 중에 하나,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란 구절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은 사막이기도 하고 저마다의 샘을 찾아 헤매는 여정인 것도 같다. 물론 그 샘이 있는 오아시스는 신기루 속에서만 보이는 환상일 수도 있으리라.

 

 

사람은 가도 운의 순환은 그대로 이어져간다는 사실

 

 

사람은 죽어도 운세의 순환은 그대로 이어져간다. 1943년이 입추였던 생텍쥐페리는 60년이 흘러 2003년에 다시 입추의 운을 맞이했고 또 다시 2963년에 세인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보니 청람의 하늘에 새털구름 높고 사뿐하게 떠있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허덕이다가 불현듯 더위 가시고 나니 이미 늦가을이다. 한 해가 다 갔구나 싶다. 그러니 우리의 삶도 어느 날 문득 다 살았음을 느끼는 것과 같구나 싶다.

 

이에 이 가을, 내 블로그의 글을 읽어주는 모든 독자님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한다.

 

(주식강좌 내용을 준비하느라 며칠 글을 올리지 못했다. 다시 열심히 글을 올리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남보기에 순탄한 인생은 있어도 

 

두어 달 전 내게서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운 한 인생 후배가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은 평생 부자이고 삶의 굴곡도 별로 없고 게다가 건강 장수하니 얼마나 좋을까요? 진짜 복을 온몸에 두른 사람이네요, 하는 것이었다.

 

자넨 그간 헛공부했네, 워렌 버핏의 삶이 그렇게만 보인다니 말일세, 하기야 그 또한 아직 구력이 부족한 탓이지, 하고 약간 핀잔을 주었다.

 

억만장자 워렌 버핏, 겉보기에 인생 순탄해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어떤 사람도 순탄한 삶만 살다가는 이는 없다.

 

 

워렌 버핏의 운명 구조

 

 

이에 오늘은 워렌 버핏의 삶과 운명에 대해 좀 얘기해볼까 한다.

 

미국 오마하에서 1930년 8월 30일 오후 3시에 태어났다. 출생 시각이 오후 3시란 것은 아마도 대충 그때쯤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곳의 경도가 95도 56분 15초이니 아마도 오후 3시 전인 未時(미시)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따라서 사주는 庚午(경오)년 甲申(갑신)월 壬子(임자) 丁未(정미)시가 된다.

 

아직 더위가 남아있는 계절에 태어났으니 壬寅(임인)을 立秋(입추)로 잡는 게 타당하다. 이에 살아온 궤적을 점검해보니 과연 그렇다. 壬寅(임인)이 입추가 되고 壬申(임신)이 입춘 바닥이 된다.

 

따라서 입추 壬寅(임인)년은 1962년(32세)와 2022년(92세)이고 입춘 壬申(임신)년은 1932년(2세)와 1992년(62세) 때였다.

 

 

춘분에 이미 싹수가 보였으니 

 

 

버핏의 생애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운세가 春分(춘분) 무렵, 그러니까 1932년 입춘 바닥으로부터 8년이 지났을 무렵 즉 1940년에 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그로서 주식 투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해 11살 무렵에 처음으로 주식을 매수했다.

 

입춘을 지나 춘분이 되면 처음으로 그 사람의 비전(vision)이 비치기 시작하는 때인데 바로 이 운세에 주식 거래에 흥미를 가졌으니 워런 버핏은 훗날 증권투자로 대성할 사람임을 이미 기약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것을 두고 싹이 파랗게 올라온다, 즉 싹수가 보인다고 표현한다. 그를 시골 오마하에서 비싼 비용을 써가며 뉴욕까지 데려가서 증권거래소를 견학시킨 아버지의 공이 크다.

 

워렌 버핏의 생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할 대목이 너무나 많지만 생략하고 그런 그가 주식의 스승을 만난 것 또한 小滿(소만)의 운, 즉 입춘으로부터 18년, 싹이 나온 춘분으로부터 10년이 지날 무렵이란 점이다.

 

(사실 모든 일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면 10년 단위로 변화 발전해간다. 이를 나 호호당은 10년의 법칙이라 부른다.)

 

1950년 그는 증권분석의 창시자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벤저민 그레이엄이 당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그를 만나서 배울 수 있었고 그로서 그 다음 해 1951년부터 투자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자 대략 10년 뒤인 1962년에 이미 버핏은 당시로선 부호에 해당되는 백만장자, 즉 백만 달러를 번 사람이 되어 있었다. 1962년은 壬寅(임인)년이고 그의 운세 상으로 입추, 氣(기)가 절정인 때였다.

 

참고로 얘기할 건 입추에 이르러 氣(기)가 절정이란 얘기지 그것의 결과물 즉 아웃풋 또는 성과는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立冬(입동)이 되었을 때 최고조에 달한다는 점이다. 강의할 때 늘 강조하는 대목이다.

 

 

"정확하게 틀리는" 골드만 삭스

 

 

이런 이치를 잘 이해하면 실로 정확하게 세상을 내다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유명한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의 예측은 항상 틀린다. 그 까닭은 성과물이 가장 융성한 모습을 보고 앞으로 더욱 더 융성해질 거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2007년인가 대충 그 무렵에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2050년이 되면 세계 2위를 할 거라고 전망했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국운이 추수를 보는 霜降(상강)의 운이었고 그로서 마무리였는데 그를 보고 우리의 앞날을 엄청 부풀려서 전망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대단히 어둡게 보고 있는데 그 또한 나중에 보면 크게 틀릴 것이다.

원래 수재들을 모아 놓으면 늘 저렇다. 아무튼 골드만 삭스는 참으로 “정확하게 틀린다”. 그래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버핏의 어려웠던 시기에 대해

 

돌아가서 얘기한다.

 

그 이후 버핏은 승승장구를 했지만 1992년 壬申(임신)년이 되어 입춘 바닥을 맞이한 뒤부터 상당 기간 동안 어려운 일을 많이 겪는다.

 

그 단초는 그의 운세가 내리막을 걷던 1987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당시 잘 나가던 투자은행인 살로먼 브라더스에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이 투자회사는 불법 부정으로 결국 파산하게 되는데 버핏은 자신의 투자원금을 살려내기 위해 이 회사의 회장직까지 맡아서 해결하느라 정말 생고생을 했다. 상당 액수를 날리긴 했지만 그래도 선방했다.

 

1992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 6년 뒤인 1998년 보험사를 하나 인수했다가 결국 수년에 걸쳐 많은 손실을 보고 정리했다. 2004년에는 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잃는 커다란 슬픔을 겪어야 했다.

 

2007-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에도 사실 상당한 손실을 보았으나 중요한 점은 그 일로 인해 쓰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간에 벌어놓은 돈이 워낙 많았고 기초가 튼튼했기에 그 이후 증시가 되살아나면서 버핏은 그야말로 진정한 부호가 되었다.

 

1992년 입춘 바닥에서 15년이 흘러 立夏(입하) 무렵은 실로 힘든 시기가 되는데 2007년이 바로 입하였기에 힘든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리고 2010년 小滿(소만), 본격 여름을 맞이하면서 버핏은 완전 되살아났다.

 

 

버핏의 장점, 원칙에 철저하고 인내심이 많다

 

 

버핏의 장점은 증시의 위험성을 잘 알고 어느 선에선 멈출 줄 안다는 점, 장기적으로 복리의 위력을 최대한 살린다는 점에 있다. 그는 종목 발굴에 있어 비범한 천재도 아니요 위기타개 능력이 귀신같은 사람도 아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세운 투자원칙에 따라 꾸준히 이어가는 보수적인 투자자, 그렇기에 탁월한 투자자인 것이다.

 

그에 대해선 많은 자료가 있기에 운명학적으로 자세히 분석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한 편의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누구도 순탄한 인생은 없다

 

 

워렌 버핏, 그 역시 인생의 많은 굴곡을 겪었다는 얘기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그가 그냥 대부호로만 알고 있기에 무슨 힘든 일이 있었으랴 여기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알림: 티스토리의 “좋아요” 누르기 기능에 버그가 있어서 웃긴다. 새 글을 올리면 앞글의 수치가 다 없어진다. 카카오가 지금 정신이 없는 게 확실하다. 그래도 열심히 눌러주시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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