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라 서리 무성하고 

 

오늘 11월 8일 새벽 1시 21분으로서 立冬(입동)절을 맞이했다. 어제부터 기온이 훅 내려서 옷을 입고 워킹에 나선 7시20분, 기온은 3도, 그래도 어제 하루 동안 적응이 되었는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 해가 동쪽에서 이제 막 떠오르고 있었고 새들이 먹이활동을 열심히 시작하고 있었다.

 

霜降(상강) 이후부터 아침 워킹 때마다 새들 먹을 것을 챙겨준다, 이제 굶주림의 기간이 시작되었으니. 걷다 보면 팻말에 ‘비둘기 모이를 주지 말라, 그게 오히려 새들에게도 더 좋다’는 식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개체수 조절 차원에서 물론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나는 주고파서 준다, 어쩌라고.

 

산책길 아래의 저습지 풀밭 위로 서리가 허옇게 깔려있었는데 햇볕이 비쳐오자 빠르게 녹아서 이슬이 되고 있었다. 그래 아직은 된서리가 아니라 무서리의 계절.

 

立冬(입동)이란 단어에 겨울 冬(동)자가 들어가니 겨울이 아닌가 싶겠지만 아직 겨울보다는 늦가을 느낌이 들 것이다. 저 멀리 지평선 쪽에서 겨울의 기운이 이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입동이니 그렇다. 그 겨울 기운이 앞으로 보름 지나 小雪(소설), 즉 11월 22일이 되면 바야흐로 겨울다운 겨울로 접어든다. 이제 서둘러서 겨울옷을 꺼내어 점검해야 할 때.

 

 

만물은 입동에 이르러 가장 튼실하다

 

 

입동, 이 무렵이야말로 겉보기와는 달리 살아있는 모든 것이 가장 부유하고 튼실할 때이다.

 

낙엽 우수수 지고 날이 차가워지니 쓸쓸한 기분이 앞서서 그렇지 사실 영양학적으로 따지면 지금이 가장 實(실)할 때란 사실. 물론 그렇다, 낙엽 길에 가득 뒹굴고 차가운 바람 휙-하고 불어오면 그야말로 罷場(파장) 분위기가 맞다. 하지만 그건 이제 생산이 끝났을 때의 분위기, 다시 말하면 이제 그간 신나게 뜨겁게 즐기던 파티가 끝난 뒤의 허전함 같은 것이다.

 

나무의 경우를 보자.

 

그간 잎사귀를 통해 광합성을 많이 했고 그를 통해 많이 자랐다. 그러니 이제 잎사귀로부터 일종의 영양분이라 할 수 있는 엽록소까지 깨끗이 다 몸 안으로 회수해 들인 뒤 떨어뜨린다. 아래에선 그간 땅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던 잔뿌리들도 모조리 끊어버린다. 이제 곧 땅이 얼 것이니 잔뿌리를 통해 물기가 들어오면 얼어 죽을 수 있으니 밀봉해버린다. 이제 생산은 끝이 났고 따라서 나름 가장 부유해진 나무는 그간에 축적한 영양분을 가지고 겨울을 나면 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 한해살이 벌레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해놓고 죽었을 것이고 여러해살이 동물들은 그간 영양분을 최대한 축적해서 토실하고 튼실하다. 겨울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사람도 실은 마찬가지이다. 한해 농사가 이맘때면 다 끝이 나서 창고에 곡식이 가득할 것이고 그것으로서 내년 여름까지 지낼 양식을 마련했을 것이니 입동 무렵이야말로 농부가 가장 부유한 때이다.

 

 

우리 국운에 적용해보면

 

 

그렇다면 이제 입동에 만물이 가장 부유하고 튼실하다는 이치를 확대 적용해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주기 국운에 있어 입동은 2009년이었다. 따라서 2009년을 전후한 5년간, 2007-2012년간이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부유했던 때였다.

 

그 무렵 우리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강국과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며 2010년의 서울 G20 정상회의와 2012년의 핵안보정상회의가 우리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주는 좋은 행사였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우리 경제가 비교적 쉽게 회복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무렵 우리 기업들의 높은 기술력이 받쳐주었기 때문이고 이에 중국 시장에서 크게 재미를 볼 수 있었다.

 

나라의 부강함을 말할 때 흔히 1인당 GDP를 얘기하지만 사실 그건 하나의 지표일 뿐이고 그냥 2009년을 중심으로 하는 2007-2012년 사이에 우리 경제가 가장 부강했었다고 보면 절대 틀림이 없다.

 

2009년에 가장 부강하고 부유했으니 그로부터 30년, 즉 60년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이르면 또 한 차례 우리 경제는 가장 빈곤한 때를 맞이할 것이니 때는 2039년이다. (물론 이 때 빈곤해진다고 해서 우리가 과거와 같이 빈한하고 가진 것 없던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2024년부터 우리 경제는 내리막을 갈 것이고 

 

 

그러니 내년 2024년, 우리 국운의 새로운 60년 주기가 시작되는 立春(입춘)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가난해지고 어려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2009년부터 30년간의 내리막길에서 내년은 그 중간에 해당되기에 어쨌거나 2009년부터 15년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면 이제부터 15년간은 고난과 새로운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란 얘기이다.

 

우리 경제의 근원적인 문제점은 우리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상품을 수출하고 그 액수만큼 수입을 해와야만 현 상황을 유지해갈 수 있는 체제, 즉 외부환경의 변화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근 대두된 새로운 상황, 미국이 반도체 기술을 통제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화가 멈칫거리고 블록화되는 상황은 우리 경제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감소로 인한 문제가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내수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를 맞이할 것이고 그에 따라 성장률 또는 잠재성장률 또한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 들어갈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와 경제를 보면 겉으로야 그런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불안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가계대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국가부채 또한 저번 문재인 정부 시절 엄청나게 늘려놓았기에 훗날 반드시 커다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 없다.

 

게다가 수출 또한 예전만큼 흑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에 안팎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유튜브를 보면 증시나 경제 부동산에 관한 비관적인 전망도 상당히 많고 또 조회 수도 많이 나온다. 각자의 불안한 마음을 좀 더 확인시켜주는 것, 즉 그래 맞아, 전문가들도 저렇게 생각하잖아, 그러니 어려워질 거야! 하는 것이다.

 

 

2027년 여름, 우리 경제에 커다란 충격이 찾아올 것이니 

 

 

그래서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어려워지는 시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아직은 아니고 2027년 4월부터 기미가 나타나서 7-8월 이후가 되면 우리 경제에 한 차례 큰 충격이 찾아들 것이다. 아직 몇 년 더 남은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 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서서히 지속적으로 어려워져갈 것이란 얘기이다.

 

오늘 글은 어제부터 쓰기 시작해서 오늘 9일 점심 무렵에 마무리했다. 금연으로 인한 금단증세로 글 쓰는 게 절대 쉽지가 않다, 어서 편해져야 할 터인데 말이다.

이제 운명에 대해 예전만큼의 관심과 흥취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 나 호호당은 운과 명 즉 운명이란 것에 대해 예전처럼 호기심이 많지 않다. 웹(web)이란 것이 생겨난 이래 정보는 넘쳐났고 그 덕택에 상담만이 아니라 웹상의 무수한 자료들을 통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연구해보았고 그 결과 알만큼 알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일정한 한계, 내 혼자만의 머리와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기에 그렇다.

 

물론 나 호호당이 운과 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이나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머진 또 다른 이들이 더 연구해서 알아내리라 여긴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보다가 다시 한 번 운명의 묘한 이치를 절감케 해주는 흥미로운 사례를 만났다. 야, 이거 참 신박하네! 이래서 운명에 대한 연구를 그만 둘 수가 없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운이 한창 좋을 때 황액을 당했지만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어느 젊은 검사가 운전 중에 마피아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마피아들 입장에서 협박이 통하지 않자 일종의 처형을 단행한 것이다.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 1990년 9월 21일이었는데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2020년 12월 1일자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복자로서 승인했다.

 

이로서 검사는 사후 30년 만에 가톨릭교회 準(준)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검사의 이름은 로자리오 라바티노(Rosario Livatino), 38세의 나이였다. 생일을 살펴서 운세 흐름을 확인해보았다.

 

1952년 10월 3일생이고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壬辰(임진)년 己酉(기유)월 壬午(임오)일이다. 생시를 모르는 까닭에 확신할 순 없지만 이 검사의 입추는 1982년이라 본다. 따라서 1990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의 때였다.

 

한 해의 순환에 있어 9월 20일 경의 추분은 가을 수확이 시작되는 때, 따라서 추분의 운 또한 이제 바야흐로 모든 면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는 때이건만 이 좋은 운에 라바티노 검사는 마피아들에게 졸지에 살해당하면서 비명횡사하는 厄(액)을 당했다.

 

하지만 이 대목이야말로 나 호호당으로 하여금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게 만들었고 또 글을 쓰게 만들었다.

 

 

세상이치와 셈법이 절대 허술하지 않아서 

 

 

사람들을 마피아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용감하게 수사를 지휘하던 정의의 검사가 한창 좋은 운에 비명횡사를 했으니 그간의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며 나아가서 正義(정의)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에 불과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이런 대목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정을 떠나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일까? 선악이란 그저 헛된 관념인 걸까? 어쨌거나 돈을 벌고 성공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 말이다.

 

학교를 다니는 청년 시절까지는 도덕과 선악, 정의와 불의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사회에 진출하고 현실을 경험하고 또 그 속에서 시달리다 보면 그런 문제는 점차 별 것이 아니란 생각과 회의도 들기 마련이다. 심지어 어쨌거나 먼저 먹고 잘 먹는 놈이 장땡! 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세계는 ‘셈법’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기준도 애매하다. 객관적인 셈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운명을 오래 연구하면서 알게 되고 느껴서 절감하게 된 바, 세상의 가치와 셈법은 절대 허술하지 않다는 점이다.

 

 

죽어서 부활한 라바티노 검사

 

 

사람의 운세는 60년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부터 小雪(소설)까지 10년간이 최전성기이고 그간에 성취한 것이 쌓이고 누적되다 보면 冬至(동지)의 운까지 15년간 무난하게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로사리오 라바티노 검사는 그 어떤 영광도 누리지 못하고 망각되어 질 법도 했으나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은 법, 지역 가톨릭 교회 주교가 나서서 그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자료들을 적극 수집했고 이에 마침내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르 2세로부터 “정의의 순교자”란 평을 받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2020년에 와서 마침내 교황으로부터 福者(복자)로서 시복을 받게 되었다. 이를테면 라바티노 검사는 죽은 지 30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그가 피격당한 것은 날은 1990년 9월 추분의 운이었고 시복이 승인된 것은 2020년 12월이었으니 이는 라바티노에게 있어 봄이 되어 다시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의 운이었다. 해가 짧아졌다가 새해가 되어 다시 길어지는 자연의 순환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바티노 검사가 세상을 떠난 뒤 시칠리아 현지에선 분위기가 많이 변해서 오늘날에 이르러 시칠리아 마피아는 그 세력과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해외 관광객이 많이 찾다 보니 이탈리아와 또 지역 정부도 마피아를 몰아내는 끈질긴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셈법은 엉성한 듯 하나 정확하다는 얘기

 

 

이처럼 세상은 공이 있으면 포상을 받을 것이요 덕을 베풀면 언젠가 돌려받기 마련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우리가 세간에 시달리며 살다 보면 회의가 들기 마련이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간의 상담과 연구를 통해 검증해왔기에 이런 글을 올린다.

 

넷플릭스에서 “믿음의 미스터리”란 다큐 4회차 내용에서 라바티노 검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곧 변화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은 내년 2024년이 立春(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순환의 시작점이다.

 

방금 ‘새로운 순환’이란 말을 했다. 하지만 선뜻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늘 아침이 오고 또 저녁을 맞이한다, 그런 까닭에 으레 아침과 저녁이 되풀이 반복되는 줄로 여긴다. 하루하루의 일상은 대개의 경우 별다른 변화가 없이 흘러가기에 우린 그걸 日常(일상)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변화가 없이 그냥 흘러가기에 그렇게 느낀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긴 시간을 놓고 보면 하루하루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어느새 누적된 그 무엇이 있었기에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된다. 세월 속에서 늘 일정한 변화가 누적되어서만이 아니라 어떨 땐 크게 변화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런저런 변화가 쌓이는 가운데 긴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낯선 환경을 맞이하기도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이 그래서 그렇다.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순환이란 결국 헌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이고 따라서 현 상태 그대로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냥 이어갈 수 없다는 말,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면 이렇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현재의 우리 경제를 유지해갈 수 없다는 말이고 현대차의 수출만으로 이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배터리 시장은 당초의 전망만큼 그렇게 고속성장만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고 기존의 조선이나 화학 기술만으로 현재의 우리 경제 수준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없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뿐만 아니라 현 우리의 정치 체제와 구도 또한 이미 우리의 현실에 부합되지 않고 있으니 변화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우리를 에워싼 외부환경도 조만간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수출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대 중국 수출로 재미를 보던 시절도 이미 지나갔고 새롭게 떠오르는 유망한 시장 또한 잘 보이지가 않는다.

 

 

목하 우리 국운의 갈수기가 진행 중인지라 

 

 

우리 국운은 2012년을 기점으로 30년에 걸친 渴水期(갈수기)에 들어갔다.

 

갈수기, 가뭄 등의 원인으로 하천 따위의 물이 한 해 중 가장 적어지는 시기인데 여기에서 물이란 발전과 성장의 모멘텀을 뜻한다.

 

그 갈수기의 최정점은 2012년 4월부터 15년이 흐른 2027년 3월말 경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지속적으로 마르고 쪼그라드는 시기란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 국민들 모두 2027년 4월 무렵이 되면 더 이상 이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어지간하면 그냥 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그 때가 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지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2027년 4월은 새로운 우리 국운 60년 순환에 있어 雨水(우수)가 된다. 세상사 아무리 힘들어도 죽은 란 법은 없다고 하듯이 그 무렵이면 겨울 끝무렵이라 解冬(해동)의 단비가 어느 정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비를 가지고선 고 오랜 가뭄을 끝낼 수야 없는 법, 좀 더 본격적으로 활로를 찾아 나서야 하겠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작은 기틀이라도 변화와 발전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면 최선을 다해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털어놓고 가야할 옛 일이 하나 있어 얘기한다. 2027년으로부터 60년 전인 1967년 무렵 국운의 雨水(우수)에 우리가 돌파구를 찾았던 계기는 당시 베트남전에 우리 장병들을 대거 증원해서 투입하고 그로서 금쪽같았던 달러벌이에 나섰으니 그게 실은 우수의 단비였다는 얘기이다.

 

훗날 베트남전 파병은 나름 진보 측 정치인들과 민주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젊은 청년들의 피를 팔아서 달러벌이를 했으니 그게 옳은 일이냐? 하면서. 하지만 당시 우리 입장에서 베트남전 파병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또 그를 통해 해외 수출의 길을 튼 것은 사실상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이제 오는 2027년 4월, 국운의 雨水(우수) 운에는 다소 어렵고 구차하더라도 어금니 꽉 다물고 또 다시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 본다. 아무리 그래도 60년전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의 어려움은 2027년으로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다시 15년간에 걸친 어려운 길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2042년이 되어야만 그런대로 또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모두가 그런대로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할 것이니 말이다.

 

당장은 어렵고 요원한 얘기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방식의 남북한 통일 또는 통합을 이루어야만 살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북한이 열려야만 기운이 움직여서 북한 쪽으로 돈이 들어가고 정보와 기술이 들어가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과제라 하겠으나 어쩌면 2042년에서 2047년 사이에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해보고 있다.

 

 

긴 시간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꽤 긴 시간 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담배를 끊은 뒤 오는 금단증세란 생각을 한다.

 

코로나 이후 2년간 몸이 불편했던 까닭에 나름 결심을 하고 생활의 루틴을 전폭적으로 바꾸었다. 담배를 끊었고 밤 12시 이전에 자고 7시 이전에 일어난다. 일어나서는 바로 산책을 나가서 40분 정도 걷고 들어온다. 그야말로 건강생활이다.

 

하지만 즐겁다기보다는 고통스럽다. 담배 금단증세 때문이다.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그 바람에 올 해는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고 블로그에 올리는 글 한 편도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툭 하면 도중에 그만 두곤 한다. 독서 또한 거의 하지 못 한다. 농담이 아니라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과 시간들이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무려 49년간이나 가까이했던 담배와 헤어졌으니 喪失(상실)의 고통이 그럴 법도 하겠거니 싶다. 그저 언젠가는 몸이 담배를 망각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앞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올 한 해는 나 호호당에게 본의 아닌 안식년이 되었다. 당초 자연순환운명학의 개론을 쓴다는 명분으로 상담을 당분간 중단했고 사무실도 닫았다. 책을 얼추 다 썼는데 금단 증세로 인해 마무리를 미처 못 하고 있다.

 

참 어이가 없다, 나 호호당이 담배를 끊는 날이 오다니 그리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경우를 겪게 되다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담배 대신에 얻고 있는 가장 큰 기쁨이 아침 산책이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즐거움이 금연의 고통을 어느 정도 달래주고 있음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가을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참으로 특별하다. 직장을 그만 둔 뒤 30년간 늘 아침 10시나 11시나 되어야 일어났던 터라 가을아침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올 가을은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걷고 있으니 가을 아침을 만끽하고 있다.

 

 

증시하락이 심상치 않지만 

 

 

그나저나 증시 하락이 꽤나 심각해 보인다. 어쩌면 장기 대세 하락으로 접어드는 初入(초입)일 가능성도 있다. 증시야말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인데 상태가 양호하지가 않다.

 

혹시나 해서 얘기인데 아직 대세하락이 결정지어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주식을 다 팔고 떠나라는 얘기가 아니다. 조만간 어느 정도 하락세가 진정이 되고 다시 오르는 반등이 나올 때 잘 점검해서 주식 물량을 줄이거나 종목을 교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얘기이다.

 

 

인생 전체의 오버홀 작업

 

 

올 해 호호당은 몸과 마음을 전면적으로 분해 점검하고 또 수리하는 오버홀(overhaul)을 진행 중이다. 잠자는 시간도 정상으로 돌리고 금연했으며 아침 운동을 열심히 하는 한편 치아도 부지런히 손보고 있다.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70, 그러니 장차 20년 정도 더 살려면 손을 좀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선진국이긴 한데...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이다. 선진국이란 고도의 산업 및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로서 국민의 발달 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국가를 일컫는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란 점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정말 그런가? 싶겠지만 여러 객관적 국제기준에서 보면 선진국이라고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OECD 국가이고 또 IMF가 선정한 선진국 목록 안에도 들어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뉴스위크(Newsweek)가 선정한 세계 최고 국가(The world's best countries) 30개국 명단 속에 우리나라는 당당히 15위를 랭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은 비록 톱텐(TopTen)에 들지는 못한다 해도 선진국임이 확실하고 또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은 꿈을 이룬 나라이다. 먼 옛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하고 노래하던 1970년대 초반으로 되돌아가보면 우리는 정말이지 대박이 난 나라임이 분명하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 우리가 얼마나 빈곤한 나라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 분명히 보았고 몸에 새겼다.)

 

원래 우리 스스로를 대한민국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한국 또는 남한이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당시 응원가 가사 속에 대한민국이 들어가면서 그 이후 대한민국이 되었다. 4강까지 진출하면서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졌고 물론 그 배후에는 경제적 성취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한 계기는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당시부터였다. 그 무렵부터 자타 공히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우를 받고 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60년 우리 국운을 살펴보면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사실

 

 

이쯤에서 우리 국운의 흐름과 함께 살펴보자. 우리의 장기국운, 즉 360년에 걸친 국운은 1904년에 시작되어 2264년까지 이어진다. 나 호호당은 이를 6개의 시기로 나누어 파악한다.

 

따라서 1904년부터 1964년까지가 국운 제1기였고 1964년부터 2024년까지가 국운 제2기에 해당된다. 국운 제1기는 으레 그렇듯이 시련과 수난의 시기였다. 일제 치하 그리고 6.25 전쟁 등 엄청난 시련이었다. 국운 제2기는 힘찬 도전의 시기에 해당되는데 우리의 그간 흐름을 보면 참으로 부합이 된다.

 

국운 제2기, 1964년 2월에 시작해서 내년 2024년 1월말로 마무리가 되는 60년 순환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나누어 살펴보면 앞의 일들이 정확하게 일치가 된다.

 

한 해의 수확을 알 수 있는 때는 9월 23일 경의 추분 무렵인 바, 60년 우리 국운으로 보면 그 때는 2002년이었다. 한국이 대한민국으로 격상된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한 해의 수확이 확정이 되어 창고에 풍성하게 들어차는 때는 11월 초의 입동 무렵이니 우리 국운 상으로 2009년이 된다. 바로 그 이듬 해 앞서의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그로서 글로벌 선진강국의 반열에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9년 국운의 겨울부터 소비와 부채가 기본이 되다 보니  

 

 

겨울은 생산의 시기가 아니라 소비의 시기이다. 그렇기에 2009년부터 우리 경제는 생산이 아니라 그간에 만들어내고 일궈낸 수확물을 소비하면서 경제를 운영해왔다. 소비 경제는 으레 부채를 늘림으로써 더욱 확산이 되는 법인데 그게 오늘날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정확하게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 무렵부터 중요해진 경제용어가 바로 LTV, DTI, DSR, 즉 담보인정비율, 총부채상환비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이 그것이다. 목돈이 없어도 거액의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주고 카드를 긁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장치들이다. 결국 모두를 빚쟁이로 만들어놓는 현대금융의 놀라운 기술이다.

 

우리 모두 빚의 늪에 빠져서 허덕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탈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유일한 희망은 레버리지(leverage)를 사용하는 것이다. 생산이 아니라 금융투기가 희망인 까닭에 또 다시 원금보다 더 큰 빚을 내어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금융게임은 늘 그렇지만 승자는 적고 패자는 다수가 된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 빚투와 영끌이 대거 유행했고 정부 또한 재정적자를 마구 늘려서 경제를 운영하면서 국가도 엄청난 빚을 떠안고 말았다. 물론 수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좀비기업 또한 일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모두가 빚쟁이, 개인도 가계도 기업도 국가도 전부 빚투성이가 되었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소비수준은 유지하고자 하니 자연스럽게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인구감소 지방소멸은 기본이요 외부 환경으로 인해 고금리 고유가 고환율이 되고 있다. 더불어 중국 경제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면서 그 악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이젠 약간의 충격에도 견디기 힘든 체질이 되어버린 우리 대한민국

 

 

추석 연휴가 끝나고 증시가 개장되자 그야말로 겁나게 급락하고 있다. 증시보다도 더 중요한 지표는 원달러 환율이라 하겠는데 이게 오늘은 더욱 치솟고 있다.

 

물론 하루 이틀의 환율도 중요하겠지만 나 호호당이 유심하게 살피고 있는 지표가 하나 있으니 원달러 주봉차트에서 과거 미국 금융위기 당시 52주선이 1326.04원을 고비로 꺾인 바 있는데 지금의 52주선이 장차 이 가격을 넘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원달러 52주선은 1313.03을 기록하고 있다.)

 

왜 이렇게 달러가 강세인가? 그 이유도 참 이상하고 해괴하다.

 

미국 정부는 현재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그 국채를 사줄 고객이 많지가 않다. 예전엔 독일과 일본이었고 지금은 일본과 중국인데 최근 미중 갈등으로 중국은 미국 국채를 사줄 마음이 별로 없다. 그러니 나라로 치면 미국 국채를 사줄 나라는 사실상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이야말로 미국의 가장 큰 호구이고 고객인 셈이다. 그러니 미국 또한 립서비스의 경우 넉넉하게 일본에게 해주고 있다. 미국에게 협조적인 일본의 자민당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중대한 국익에 들어간다.)

 

이처럼 사줄 나라가 많지 않다보니 국채 수익률을 높게 해줄 필요가 있겠고 그러니 국채 수익률을 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연준은 그 어느 선진국보다 가장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글로벌 시장에서 돈이 빠져서 미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결과 달러 강세가 된다.

 

빚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경우 신용이 우려되어서 그 나라 통화가 약세가 되어야하건만 미국 달러는 빚이 많아서 이자 더 쳐준다고 해서 오히려 강세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가령 우리나라 정부나 국가가 돈이 없어서 국고채를 마구 발행할 경우 또 수익률을 높게 해줄 경우 그걸 보고 얼씨구 하면서 외부로부터 달러나 여타 통화들이 유입될 턱이 없다. 오히려 달러가 왕창 빠져나가서 자칫 외환위기가 될 터인데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기축통화라고 해도 참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수퍼 파워이고 우리는 그냥 여느 선진국, 그 차이라고 하겠다.

 

 

 

역시 부동산이 걱정이다

 

 

최근 연준의 태도를 보면 내년에도 고금리를 유지해갈 모양새이다. 그러면 어디선가 약점을 가진 나라가 먼저 뻥-하고 터지기 십상이다. 그 대상국으로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우리가 될 수도 있겠고 나아가서 중국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과거 외화위기처럼 동남아 국가에서 서먹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부동산 가격이 고금리에 오래 견딜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부채를 쌓고 쌓아서 만들어진 부동산 가격인 까닭이다. 그러니 부동산 하락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그 즉시 전체 경제가 무너질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 우리 경제는 간당간당한 상황에 처해있다. 당장은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2002년으로서 대한민국으로 격상이 되고 2009년으로서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이다. 하지만 역시 국운의 겨울이 되자 생산할 것은 없고 소비를 중심으로 해오다 보니 빚만 잔뜩 쌓여서 이젠 운신과 거동이 몹시 어려워지고 불편해진 우리 대한민국이다.

 

 

선진국이지만 살기 엄청 어려운 우리나라 

 

 

선진국이 되긴 했지만 현 시점에선 희망이 없는 사회가 바로 우리사회이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니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회장은 젊은이들아, 한국을 떠나시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장 희망이 없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떠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내년 2월이 되면 국운 제3기 60년이 시작된다. 그 때가 되면 우리의 현 실정이 진짜 어떤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내년이면 70, 쉽게 실감이 나지 않는 일

 

 

곧 추석, 연휴가 끝나면 올 한 해도 거의 다 지난 셈이다.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 된다. 옛날엔 70이면 古來稀(고래희)라 해서 드물다 했고 나 또한 예전부터 그 나이 정도가 되면 다 살은 사람이란 생각을 해왔는데 내가 바로 그 70이 된다. 내가 다 살았다는 얘기가 되니 쉽게 실감이 가질 않는다.

 

나이 50을 넘길 때 이제 야, 나도 드디어 쉰이 되는구나, 이제 본격 내리막이네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어느 사이에 또 다시 20년이 훌쩍 흘러서 이젠 70이 된다.

 

그 사이에 체력은 떨어지고 또 이런저런 증세도 있고 해서 고생 좀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아주 멀쩡하기만 하다. 기억력이 조금 감퇴했지만 사고력이나 이해력은 반대가 되고 있으니 그냥 퉁 치면 되리라. 아직 죽을 때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이 모두 영양이나 의류, 방한, 의료 등등 여러 면에서 시절을 잘 만난 덕분이리라.

 

 

생전 처음으로 건강을 돌보게 되었으니 

 

 

최근 담배를 끊었고 잠자는 습관을 정상화시켰으며 하체 근력을 열심히 키우고 있다. 게다가 걷기도 하루에 40분 이상 하고 있으니 생전 처음으로 건강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몸을 관리하고 만들어서 老年(노년)을 잘 지내보자는 마음이다.

 

오래 산다, 사실 이런 의욕보다는 최근 내가 느낀 것은 내 몸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이었고, 이에 다시 잃어가는 내 몸을 어느 정도까지는 되찾아보자는 것이다. 바둑에 비유하면 이제 마무리 국면이고 작은 끝내기 수순들로 이어져가는 것과 같다 하겠다.

 

옛날에 70이면 벌써 죽었고 오늘날 70은 관리 여하에 따라 남은 삶의 시간을 큰 탈 없이 잘 꾸려가거나 아니면 고생 고생하다가 가게 되는 初入(초입)인 것이다. (물론 그 어느 쪽이든 나 호호당이 언제까지 살 것인지 그거야 모르는 일.)

 

 

영원하지 않기에 삶은 아름답다는 사실

 

 

산다는 것, 이건 좋은 일이고 애틋한 데가 있다는 것을 일본의 옛 수필 “쓰레즈레구사”, 한자로 徒然草(도연초)를 읽다가 명확하게 배운 바 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이 어여쁜 이유 또한 피었다가 곧 질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예쁘고 때론 애처로운 것처럼 말이다.

 

젊은 날 나이 드신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면서 아이고, 아까워라!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속으로 아깝다니, 이게 무슨 뜻이지? 했다. 세월이 가면서 그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옳았다. 당장은 활짝 피어있는 꽃 같은 젊은 청년이지만 언젠가는 늙고 초췌해져서 사라져갈 것을 생각하면 아깝다는 말씀이셨다.

 

나 또한 길에서 또 어떤 장소에서 젊고 싱싱한 젊은이들을 만나거나 대할 것 같으면 속으로 참 아깝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 호호당 또한 나이가 들었고 늙었으며 삶의 황혼녘에 서 있음이다.

 

언제 스러질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영원하지 않다는 것, 기한이 있다는 것, 모든 생명은 기한이 있기에 삶과 삶의 날들이 아름다울 수 있고 애틋할 수가 있다.

 

 

추분은 한 해의 일몰이어서

 

 

며칠 있으면 秋分(추분)이다. 추분이 무언가 하면 한 해의 日沒(일몰)이다. 2023년의 일몰인 것이다. 하루의 해는 저녁 6시 반에 지고 한 해의 해는 9월 23일에 진다. 따라서 올 추분은 2023년의 이브닝인 것이다.

 

하루의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겠지만 2023년의 해는 이제 곧 질 참이다. 이처럼 나 호호당의 삶 또한 그러하다. 내일 아침이면 아마도 다시 아침빛을 받아 일어나서 활동하겠으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이제 어둠 속으로 즉 죽음 속으로 또 있음에서 없음의 세계로 서서히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이다.

 

 

나 호호당의 귀에도 상여소리가 들려오나니 

 

 

그러니 이제 내 귀에 輓歌(만가), 꽃상여가 나갈 때의 노래 소리도 들려온다.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저 건너 안산이 북망이로구나, 하는 노랫말이 들려온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나 호호당 만으로 아직 68세이니 액면 그대로 숨 꼴까닥 하고 넘어가는 때는 아직 꽤나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북망산천이 멀어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나이 곧 70, 이제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 실은 북망산천을 향해 이미 출발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노랫말처럼 저 건너, 개울 건너 案山(안산) 즉 맞은 편 낮은 산이 바로 북망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이 이번에 담배를 끊고 매일 열심히 걷고 잠시간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은 새 삶을 살아보자는 게 아니라 이제 삶의 집문을 나서서 북망으로의 걸음을 떼어놓은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간 잘 살았으니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젠 잘 죽기 위한 노력이다.

 

 

이미 북망산천을 다녀온 적도 있다는 사실

 

 

북망, 한자로 北邙(북망)이다. 그런데 사실 나 호호당은 젊은 날 죽어서 가는 북망산천이 아니라 실재의 북망산천을 다녀온 적이 있다.

 

1994년이었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 것이 1992년이었고 이에 나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 두고 중국에서 전산망 구축, 즉 SI 사업을 해보고자 중국으로 떠났다. 일단 답사를 해보고 시장 상황을 알아보고자 중국을 두루 돌아다닐 때 우연히 북망산을 갈 수 있었다.

 

처음에 그 북망산이 우리 상여소리에 등장하는 그 북망산인줄 몰랐다. 그러다가 거기에 엄청난 무덤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여기가 바로 북망산천이구나! 하고. 살아서 저승을 가보는 묘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현지 중국인들은 우리 문화 속에서 북망산천이 나름 큰 상징의 하나란 것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1994년의 일이니 그 또한 29년 전의 일이다. 요즘엔 옛일을 떠올리면 곧잘 30년 전의 일이다. 거 참!

 

북망산천은 오늘날 중국 허난성 뤄양, 즉 洛陽(낙양)의 북쪽에 있는 산이고 그 너머 북쪽에 황하가 흘러간다. 그래서 북망산천이다. 낙양은 중국 역사에 있어 서쪽의 長安(장안)과 함께 양대 古都(고도) 중의 하나이다.

 

낙양이 수도였으니 권력자들은 죽어서 북쪽의 망산에 묻혔다. 그 바람에 북망산에 가면 역대 황제의 능묘들과 왕후장상들의 무덤이 즐비하다. 따라서 죽어서 북망산천을 간다는 말은 살아선 호강을 누리지 못했더라도 죽어서 만큼은 그 반열에 들어가서 冥福(명복)을 누려보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살아선 고생 많았던 서민이지만 저승에선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아보라는 축원.

 

어려웠긴 했으나 옛 농경사회 또는 씨족사회 시절의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그런 축원을 듬뿍 받았다. 온 마을 사람과 집안사람들이 꽃상여 위에 태운 뒤 온 마음을 다해 선산의 장지에까지 그런 축원의 노래를 부르며 갔다. 그러니 부럽다. 간단하게 2박3일 영안실에 사진 한 장 올려놓았다가 아침 일찍 화장터에 가는 오늘날에 비하면 말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몸을 가꾸어서 힘차게 저승길을 달려가보자

 

 

오늘 아침에도 7시 반에 집을 나가서 근처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속력을 올려서 걷는다. 40분 정도 지나 언덕을 오를 땐 숨이 헐떡댄다. 좋은 유산소 운동이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갑지만 열이 난 나는 땀에 흠뻑 젖는다. 좋은 아침이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의 삶은 내 스스로의 걸음으로 북망산천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거야! 거의 도달할 무렵이 되면 엉금엉금 기어갈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힘차게”

 

오랜 시간에 걸쳐 언어학과 운명학에 관해 연구해왔다. 하지만 여기까지란 생각을 한다. 물론 앞으로도 새로운 무언가를 더 알아내고 통찰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보다는 지금까지의 것을 정리하는데 더 신경을 쓸 생각이다. (물론 자연순환운명학 그리고 실용기술인 증시 투자하는 기술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줄 생각이다.)

 

늘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행동이다. 연어는 산란을 위해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른다, 오르는 과정에서 힘이 다 빠지고 잡혀 먹히기도 한다. 그런 연어들에게 있어 성공이란 다름이 아니라 최종목적지에 도달해서 알을 낳고 수정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그러곤 죽는다.

 

젊은 날엔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산란과 그 직후의 죽음을 위해 저처럼 맹렬하게 죽을힘을 다해 물을 거슬러 오른다, 뭐가 좋지? 이해가 가질 않네, 했다. 가수 “강산에”의 노랫말처럼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일 뿐이었다.

 

최근엔 생각이 좀 바뀌고 있다. 세대를 이어가는 것과 죽음은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내 경우 자녀 하나는 낳았으니 본전은 건졌고 혹시나 죽을 때 또는 죽고 나면 생각하지 않은 望外(망외)의 이득을 하나 건지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싶은 것이다.

 

오늘의 얘기는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애틋하고 아낄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심히 건강을 회복해서 저승길 또한 힘차게 달려가 보자는 약간은 이상한 얘기였다.

 

#1. 更生(갱생)

 

거의 3주간 글을 올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못했다”. 책 쓰는 일 때문이 아니라 어쩌다가 덜커덕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어서 그랬다.

 

최근 2년 사이 이석증과 그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어지러운 증세가 날로 심해졌는데 우연한 계기에 이틀 정도 담배를 참아보니 상태가 한결 좋아졌다. 이에 어렵사리 담배를 끊게 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 쓰는 중국말이 있으니 하오뿌롱이, 好不容易(호불용이)가 되시겠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 너무나도 생경스러웠다. 이 행동에서 저 행동으로 넘어갈 때 으레 내 오른 손가락은 담배를 가져와 입에 물렸고 그러면 또 라이터를 더듬어서 가져왔다. 무의식적인 루틴이자 습관.

 

그런데 그걸 하지 않으니 모든 행동의 마디마다 어색함을 느낀다. 내 오른 쪽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경련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며 절로 담배 한 대, 생각을 하다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또 한 대,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또 한 대, 이처럼 모든 행동의 마디,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가는 모든 이음새를 담배가 연결해주었는데 이제 그 절차가 없어졌다.

 

뇌세포의 작동이 멈춘 것 같은 뻑뻑함, 특히 뭔가 먹고 난 뒤의 입가심으로서의 담배는 거의 절대적이었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 엄청난 허탈감과 상실감에 시달렸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어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도중에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대거나 아니면 냉장고를 뒤진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한 글이 그 사이에 6개 꼭지는 될 것이다.

 

이에 이번 글만큼은 기필코 마무리해서 올려야지 하고 다짐을 하면서 쓰고 있다. 또 그만큼 금단증세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전엔 늙어간다는 것이 그냥 나이가 들고 기능이 조금씩 약해지는 정도로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란 사실, 노화와 함께 이런저런 탈이 생기고 생각하지 않은 통증과 문제점이 수반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전혀 알지 못 했다.

 

이처럼 삶은 늘 새롭다. 하루하루는 어제와 비슷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가 있다. 새롭다는 것이 뭐 좋다는 게 아니라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생각하지 않았던 경우와 만나게 된다는 얘기이다. 나이가 들었고 늙었지만 그럼에도 삶은 늘 初步(초보)이고 또 初行(초행)길이란 생각이 드니 참 묘하다.

 

암튼 담배를 끊은 것은 나 호호당으로선 엄청난 更生(갱생)의 노력이다.

 

 

#2. 적절한 죽음

 

 

푸틴에게 반기를 들었던 프리고진이 죽었다. 그런데 그 사망시기가 너무나도 적절한 타이밍이다.

 

1961년 6월 1일생이니 辛丑(신축)년 癸巳(계사)월 乙丑(을축)일이다. 그간의 경력을 보면 내후년 2025 乙巳(을사)년이 입춘 바닥의 운이다.

 

죽은 날자를 보면 2023년 8월 23일이다. 癸卯(계묘)년 庚申(경신)월 癸丑(계축)일이다.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 大寒(대한)의 年運(연운)이고 달은 작년 5월 乙巳(을사) 바닥월로부터 15개월, 이제 힘든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때, 사실 보통 이런 때 벗어나지 못하고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날은 8월 15일이 乙巳(을사)일 바닥 날인데 그로부터 8일, 아주 제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푸틴이 저승으로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푸틴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날은 6월 23일이었는데 그로부터 사실상 60일이 지난 8월 23일에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다. 60일 최소 순환 단위를 더 살았을 뿐이다.

 

프리고진, 푸틴이 키웠는데 주인을 향해 덤벼드니 푸틴이 처리했다.

 

그리고 체면을 구긴 푸틴 또한 이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참고로 푸틴의 경우 입춘 바닥이 2036 丙辰(병진)년임을 밝혀둔다. 늦어도 올해로부터 10년 뒤인 2033년이면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다.

 

 

#3. “중국의 40년 호황(boom)이 끝났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선언적 진단이다. 이제 미국 쪽에선 중국의 호시절이 끝났다는 점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그리고 1979년 초 미중간의 국교 수립 이후 이어져온 중국 경제의 놀라운 발전과 약진이 이제 멈추고 있다. 그러니 나름 感慨(감개)가 크고 또 크다.

 

그간 경제 방면의 수많은 道士(도사)들과 일류의 碩學(석학)들이 중국 경제의 붕괴를 예측했고 예언해왔지만 중국 경제는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잘 굴러왔다.

 

나 호호당은 중국 경제가 진짜 어려워지는 때를 2026년으로 잡고 있다. 예전부터 나 호호당의 블로그를 봐 오신 독자라면 알 것이다.

 

올 해로서 중국의 좋던 시절이 끝났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이에 중국 정부 즉 중국 공산당이 갖은 노력과 대책을 쓰다가 결국 이거 안 되는구나 하고 대충 손을 드는 시점이 2026년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2-3년은 더 걸릴 것이라 본다.

 

중국 당국자들은 1990년 일본 경제의 붕괴 그리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지켜보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2001년 WTO 가입 이후 엄청난 무역흑자를 통해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으니 이에 중국 당국자들은 의기양양 자신만만이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 독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과감하게 엄청난 경기부양책을 실행에 옮겼다. 거대한 국토 전역에 도로와 다리 고속철, 비행장 발전시설 등등 엄청난 인프라를 깔았다. 인프라가 갖추어지자 덩달아 아파트 개발이 뒤를 이었다.

 

지금 중국이 안고 있는 모든 경제적 문제점들은 15년 전의 엄청난 부양책의 후유증이다. 무지막지한 부채로 인해 더 이상 중국식 경제시스템, 인프라 투자와 부동산 개발을 기초로 하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역시 더 이상 돈이 갈 곳, 즉 돈이 생산적으로 쓰일 곳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중국 당국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그 대안으로서 내세운 것이 선진기술을 통한 경쟁력 강화, 즉 “중국제조 2025”였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대응 특히 반도체 기술에 대한 미국의 단속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4. 교차로의 우리와 일본

 

 

중국 그리고 우리의 경우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성장세가 상당하다. 올해 2분기에만 1.5% 성장했다고 하니 이 추세라면 올해 일본의 성장률이 6%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나 호호당의 경우 오래 전부터 2023년 무렵이면 우리가 일본에게 추월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는데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니 그 또한 약간 신기한 감이 든다.

 

얼마 전 뉴스, 한국경제학회가 작성한 “한국경제 성장의 현황과 도전”이란 보고서 내용도 사뭇 심각하다. 반도체 이후 성장에 힘을 실어줄 혁신 산업이 부족해지며 2010년 이후 생산성이 급락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금년도 고용탄성치가 작년의 1/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성장도 어차피 저성장이지만 그에 앞서 취업 자체가 늘어나지 않는 국면이라 하겠다.

 

내년 2024년이 우리 대한민국 60년 사이클의 입춘 바닥인 까닭이다. 앞으로 15년 이상의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반면 일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랜 기간의 조정을 거쳐서 나름의 어떤 활력을 찾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의 국운은 60년 순환에 있어 2005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올 해 2023년은 이제 소만, 즉 초여름의 국면, 즉 前進(전진)의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온난화가 무섭지만

 

 

올 여름 너무 덥다, 기억하기로 가장 더운 여름인 것 같다. 밤 12시에도 29도, 정말이지 식을 줄 모른다. 그런 판국에 거 봐라, 더 더워질 거다! 하면서 아주 신이 난 기상전문가들도 많다. 정말 짜증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저 사람들 나라에서 돈 좀 주세요, 그러면 날씨가 조금 식어들지 않을까요?

 

온난화가 되어가는 거, 또 설령 백두산이 2025년에 터진다 해도 그건 우리가 뭐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돈이다. 돈이야말로 畏敬(외경)의 대상이다. 두려워하면서도 떠받드는 존재가 바로 돈인 것이다.

 

 

돈이야말로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란 사실

 

 

돈, 뭐 특별히 큰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대로 기본을 유지해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어느 수준과 정도가 “기본”이 되는지 이게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에 기초해서 상담도 하고 또 강좌를 하다 보니 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그런 가운데 각자의 살아가는 얘기도 무수히 접하게 된다.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하던 이가 서울 외곽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며 지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최저임금 200만원을 받으면서 그게 진정한 자신의 몸값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한탄하고 있었다.

 

또 어떤 50대 가장은 권고사직을 받고 퇴직금을 받아 치킨집을 열었는데 한 달에 무려 400만원이나 벌고 있으니 성공한 셈인데 문제는 아침 8시에 나가서 밤 10시까지 14시간을 가게에서 보낸다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 둬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는 친구도 있다.

 

미술 전공 후 지방대학 미대 시간 강사를 뛰다가 도저히 돈이 어려워서 라이더로 전향했는데 한동안 벌이가 괜찮았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꽤 장시간 치료와 재활을 받고 지금은 절뚝이는 다리로 모텔에서 밤 시간 일을 봐주고 있는 60대 초반의 인생후배,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냐고 얼마 전 내게 전화로 투정을 부렸다. 살아야지, 이 사람아!

 

 

압력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50대 가장들

 

 

가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압력을 받고 또 견뎌야 하는 중심 세대는 50대가 아닌가 싶다.

 

상당수가 권고사직 아니면 정리해고로 밀려나오고 있고 여전히 자녀 학비 등등 부양책임도 크다. 대출 끼고 산 아파트 한 채가 있긴 하지만 그걸 건들 순 없고 퇴직금 얼마 가지고 편의점이나 치킨집 같은 사업을 해보자니 자신이 없고 다른 데 찾아본 들 써주는 곳도 없다. 보험 영업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6개월 안에 그만 둔다.

 

약간 여유가 있다 보면 일단 도서관 같은 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상황을 살피기도 하지만 그래본들 결국 별 대책이 없다. 알바로 시작해서 서서히 경험의 폭을 넓히는 사람들도 있고 중소기업 들어가서 생전 해보지 않은 영업이란 걸 좀 하다가 충격을 받고 그만 두는 이도 많이 본다.

 

또 어떤 이는 가정에서 아내나 자녀들에게 무시당하는 바람에 멘붕이 된 이도 있다. 당신이 그렇게 무능한 줄 몰랐어! 하는 아내의 매정한 말에 순간 殺氣(살기)까지 느꼈지만 그래도 참고 그날 밤으로 간단히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는 이가 있다. 정말 잘 참았다고 격려를 해주었지만 그 가정은 결국 해체되었을 것이다.

 

그 아내가 했다는 그 말, 무능하다는 말 정말 심했다. 이전에 그 친구가 대기업이나 좋은 직장에 있을 때 받던 급여는 사실상 그 직장이 더 얹어준 보너스 같은 것이고 그런 보호막이나 가림막 없이 그냥 날 몸뚱이, 그나마 건강해야만 받을 수 있는 능력급이 바로 최저임금이다.

 

 

노동의 가격

 

 

최저시급, 내년이면 시간당 9,860원이 되는데 이게 그냥 보통 사람의 몸값이다. 월급여로 환산하면 206만원,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특별한 연고나 능력이 없이 그냥 열심히 일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이다. 현재 집을 나온 그 친구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데 오히려 금전적으론 여유가 있다고 한다, 가정을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자녀들은 어떤지 아내와는 이혼을 했는지 등등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골치 아픈 얘기들, 나 호호당 또한 전혀 알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묻지 않아도 대충 짐작은 간다.

 

이처럼 우리 사회 50 대 가장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그들, 해마다 100 만명씩이나 태어나서 가장 숫자가 많은 그들인데 남녀 성별을 떠나서 그들이 받고 있는 압력, 금전적 압력은 실로 엄청 나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세대들은 어떨까? 살펴보면 간단하다. 빈곤층이 되었거나 때론 부양책임을 벗어나서 그런대로 편안하다.

 

 

아직은 낙관적인 40대 세대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의 40대를 보면 굉장히 소비성향이 높고 럭셔리한 경향이 보인다. 물론 잘 풀린 케이스일 경우 그렇다. 급여도 세게 받고 있고 이직도 흔하며 차도 외제차, 해외여행도 많이 다닌다.

 

그런데 저축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저축을 하느니 주식투자를 한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보인다. 이른바 “경제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용감하고 과감한 이 세대들이 아마도 최근 2차 전지 주식들의 열풍을 이끌어낸 주도세력들일 것이다.

 

 

재테크, 공부만으론 어렵다는 얘기

 

 

주식 또는 증시 얘기가 나왔으니 조금 해본다.

 

노후가 불투명한 세상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중시나 재테크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에는 증시를 좀 더 거시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

 

공부 좀 해가면서 유튜브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의 해설이라든가 미국 경제와 연준의 움직임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미 국채 10년물 가격의 동향이라든가 장단기 금리 갭, 소비자 물가지수(CPI)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해주려는 말이 하나 있다. 그런 방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가는 것은 물론 좋다. 그 결과 유튜브에 나와서 이런저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말뜻이나 미국 쪽에서 흘러나오는 보고서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지식 또는 상식을 가지고 증시의 향배를 예측하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드린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증시의 폭락이나 폭등을 사전에 제대로 예측한 이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이럴 수도 있다는 정도의 우려나 기대가 나중에 뛰어난 예측을 했다는 식으로 포장될 뿐이다.

 

 

미국 경제가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하긴 하네

 

 

최근 흥미로운 논쟁이 하나 있다. 누구는 결국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거란 주장을 하고 있고 또 누구는 금리 긴축으로 인해 연말이면 침체가 올 것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살벌하게 오를 것이란 주장도 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장기채 국채금리가 오랫동안 높게 유지되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살 때란 주장도 있다.

 

모두 흥미로운 얘기들이다. 다만 이 점에 대해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나름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지 그를 넘어서 어느 쪽을 택할 것 같으면 이미 그 순간 리스크를 안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과 글로벌 정치 경제에 관한 상식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그게 주식투자와 직접적인 관련은 크지 않다는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얘기이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면서 

 

 

7월 14일에 글을 올리고 나서 거의 3주 만에 글을 올린다. 기간이 너무 길었다. 글을 올리지 못한 데에는 여러 변명이 있겠으나 역시 날이 너무 더워서 그렇다고 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다.

 

날이 선선해지면 글도 자주 올릴 것을 약속하면서 이만 마친다. 오늘 글은 다소 무겁지만 그래도 그간의 안부 인사로 받아주셨으면 한다.

멋진 글을 썼던 "밀란 쿤데라"가 죽었다는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죽었다. 젊은 날 그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실로 대단했다. 우와!-어쩌면 글을 이렇게 멋지고 ‘뽀대’나게 쓸 수가 있지? 했다.

 

먼저 생년월일을 살펴본다. 1929년 4월 1일, 생시는 미상. 己巳(기사)년 丁卯(정묘)월 丙子(병자)일이다. 생시를 모르니 그간의 프로필을 감안하여 입추를 추정해보면 1926년과 1986년의 丙寅(병인)년이 된다. 왜냐면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앞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1984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란 게 과연

 

 

소설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가볍게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무겁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다. 동시에 가볍든 무겁든 다 중요하지가 않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 삶이란 한 번에 그치는 것이고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가볍게 살다보면 추를 내리지 못 하고 깃털처럼 공중으로 날아갈 정도로 의미가 없기도 할 것이고 무겁게 사는 것 또한 너무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고 묻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볍게 살고 싶어도 삶은 절로 무거워지고 무겁게 살고 싶어도 삶은 절로 가벼워진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

 

소설은 니체의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니체는 삶이 순환의 연속이란 사상을 갖고 있으니 이를 니체는 “영겁회귀”라고 불렀다. 동일한 매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얘기인데 사실 이는 불교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미래라든가 과거는 개념일 뿐 그저 주어진 것은 바로 “이 순간이 전부”라는 생각과 통하다.

 

우리 앞에 주어진 매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삶의 전부라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쿤데라는 소설을 통해 가볍게 살든 무겁게 살든 두 가지 태도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얘기한다. 매 순간 가볍다 싶으면 좀 무겁게 하고 무겁다 싶으면 좀 가볍게 살아라, 하면서 삶의 기교를 소설의 주제로 삼고 있다.

 

쿤데라는 소설 속의 또 다른 여주인공을 통해 어떤 주의(-ism)에 대한 집착은 ‘키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삶의 태도를 이상적이고 절대적이라 간주하려는 의지야말로 엉터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니체 철학이나 쿤데라의 소설 속 내용 그리고 불교철학을 잘못 이해하면 허무주의가 된다. 하지만 쿤데라는 어떤 주의(-ism)란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존재에 대한 우리들의 집요한 갈망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받아들이고 있는 般若心經(반야심경)의 내용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 내가 있다, 이런 생각이 바로 고통의 원천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통일체인데 사실 그건 어떤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결합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조건이 변경되거나 사라지면 나 또한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생로병사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나라고 하는 존재는 결국 없어지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런 일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어떤 힘든 苦厄(고액)도 잠시의 것이고 항구불변의 것이 아니다.

 

조건을 떠나 진짜의 모습, 반야심경의 표현으로 諸法(제법)의 空相(공상)은 태어나서 늙어죽는 것도 아니고 늙어죽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원천적으로 그런 것은 없다, 바로 이게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라고 것이 있다는 왜곡된 생각, 반야심경의 말로는 顚倒(전도)된 夢想(몽상)을 버리게 되면 그로서 마침내 涅槃(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한다.

 

이거 허무주의 아닌가? 싶겠지만 그 허무를 감지하는 ‘나’ 자체가 일시적인 설정이란 얘기인 것이다. 自我(자아)란 것이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자아가 느끼는 허무와 슬픔, 고통, 행복도 모두 잠시의 일, 꿈속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싯다르타의 가르침이었다.

 

그렇다고 自我(자아)를 원천 부정하지도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니 그렇다. 하지만 그 자아라는 게 어디까지나 조건이 지워진 限時(한시)적인 것이니 그것 또한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게 싯다르타의 가르침이다. 줄여 말하면 存在(존재)에 구애받지 말라는 얘기이다.

 

존재하고픈 욕망, 이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이를 싯다르타는 無名(무명), 즉 밝게 살피지 못함에서 생겨나는 집착과 갈애라고 말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결국은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는 심술궂은 쿤데라 

 

 

쿤데라는 묻고 있다. 어차피 한 번의 삶인데 의미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떠냐고.

 

다만 재미난 점은 사람을 포함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의 어떤 영고성쇠를 거치는 週期(주기) 즉 사이클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나 호호당이 말하는 자연순환이고 운세의 변화이다.

 

 

우리 모두 번창하고 싶고 존재하고 싶다

 

 

이와 관련해서 얘기할 것이 있으니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영화롭고 번창하길 갈구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역시 지속적으로 존재하고픈 욕망의 확장 버전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세에 대해 궁금해 한다. 지금 힘들다 싶으면 앞으론 번창하기를 기대하고 지금 그런대로 좋다면 앞으로도 쭉 이 상태로 이어지거나 또는 더 크게 번창할 수 있기를 갈구한다. 이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런 갈망이다. 이 모든 게 존재에 대한 욕구이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바로 이 자연스런 욕망이야말로 無明(무명)에서 오는 집착과 갈애라고 지적하면서 존재에 대한 욕망에 구애받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 호호당은 자연스런 욕망, 어차피 우리는 그렇게 생겨먹었고 만들어져 있기에 그를 틀렸다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존재하면서 번창하길 바라는 욕구는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싯다르타야말로 헛된 가르침을 남겼던 것일까? 하고 곰곰이 따져 묻는다면 그 또한 절대 틀리지 않다.

 

너 존재해본들 그거 얼마 되지도 않는 거야, 사실 우리가 겪는 것은 눈앞의 찰나 찰나에 불과한 것인데 긴 스토리룰 구상하거나 멋진 플랜을 세워본 들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거든, 그러니 존재에 집착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할 거야, 하고 엄청 쿨(cool)하게 지적해오고 있는 싯다르타이다. 결국 涅槃(열반)이란 것은 존재 그리고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집착으로부터의 탈피라 하겠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존재에 대해 묻고 있는 작품이다. 집착과 갈애를 많이 가지다보면 삶이 무거울 것이고 그로부터 벗어나자니 그 또한 너무 허무해지고 맥이 빠져서 참을 수 없는 우리의 삶이라 얘기한다. 대략난감한 우리의 삶이다.

 

 

세속의 삶 그리고 본질의 삶

 

 

세속의 삶, 존재하고 싶고 존재를 확장하고 싶은 삶을 나 호호당은 世俗(세속)의 삶이라 부른다. 세속의 삶에선 운세가 중요하다, 저는 언제쯤이면 꽃을 피울까요? 저는 언제쯤이면 이 곤궁에서 벗어날까요? 모두 사뭇 중차대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알게 된다, 삶이 그다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건강한 몸도 한 때의 일이고 부귀영화도 잠시 지나쳐가는 것임을 우리는 살다 보면 깨닫게 된다. 그저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곤 지금 눈앞을 스쳐가는 찰나의 시간들이 전부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여기에는 순서가 없다, 당연히 이것의 逆(역)도 가능하다. 삶과 세상을 다 버렸다가도 또 다시 맹렬하게 세상 속으로 들어와 욕심을 부려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삶이기에 그 무엇을 하든 욕구하든 다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나 호호당은 이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무의미의 축제”를 읽은 적이 있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찮은 삶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축제처럼 즐겨야 한다는 말 같기도 하고 삶이란 축제를 즐겨보고자 하지만 결국 무의미하다는 말 같기도 하구나.’

 

“무의미의 축제”를 읽은 뒤 자연스럽게 정현종 시인의 詩(시)가 떠올랐다. “고통의 축제”란 시집 안에 실린 “기억제”란 시의 마지막 구절들이 떠올랐다.

 

쓰레기는 가장 낮은 데서 취해 있고/ 별들은 천공에서 취해 있으며/ 그대는 중간의 다리 위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음을.

 

 

비밀이란 것은 알고나면 시시해지는 법

 

 

나 호호당은 오랜 연구 끝에 運(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으니 적어도 나 호호당에겐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비밀인 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비밀만큼 섹시한 것이 다시 있으랴!

 

장마야 이제 고마해라, 마이 뿌렸다 아이가!

금의환향의 이중근 회장

 

 

얼마 전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이 고향 순천 사람들에게 무려 1400억이란 거액을 나누어주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좋은 일이다.

 

이 회장을 2016년 무렵에 만나서 운세 상담을 해준 적이 있다. 을지로 롯데호텔 안의 일식집에서였다. 만나서 생년월일시를 듣고 운세를 판단해보니 2009 己丑(기축)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러니 향후 몇 년간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

 

앞으로 좀 어떻겠오, 내 운세가? 하고 물어보시는데 약간 난처해진 나는 그간 일도 많이 하셨는데 이젠 좀 쉬시지요, 하고 애매하게 답을 했다.

 

나 호호당이 성공한 기업가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운세 상담보다도 그간 어떻게 해서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자신의 성공 스토리에 대해 흥미를 갖고 들어주고 또 질문도 해가다 보면 당사자 역시 신이 나는 법, 이 회장님은 내 질문에 잠시 과거로 되돌아가서 자랑스러웠던 과거 일들과 성공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부영 아파트가 촌스럽다고 악평이 많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대목, 스스로를 난 촌놈이야 그러면 뭐 어때서? 하는 대목에선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 분의 무공담을 들으면서 속으로 이 분은 나름 剛斷(강단)도 있고 俠氣(협기)도 있는 분이네 싶었다. 그랬으니 집을 짓는 건설업, 나름 험한 데가 있는 업종에서 무너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 싶었다.

 

자리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나는 이미 큰 功(공)을 이루었으니 앞으론 부디 조심하시고 조금 쉬어간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건강도 신경 쓰시고요, 하는 당부의 말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 얼마 안 가서 구속되는 일이 생겼고 2021년이 되어서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나름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기업가로서의 이 회장님

 

 

만나본 이후 나 호호당은 이중근 회장은 사업적으로 비판도 많이 받았고 그 바람에 獄苦(옥고)도 치르긴 했으나 훌륭한 대목이 있는 기업인으로 평가해왔다. 무엇보다도 학자들을 동원해서 일제36년의 역사, 그리고 해방 이후의 역사 또 6.25 전쟁에 대한 소중한 1차 사료들을 수집 정리토록 해서 방대한 책으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사실 그 분을 만나게 된 동기도 그 책들을 한 질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식사 자리에서 좋은 책을 엮으셨으니 얻었으면 한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니 그 자리에서 즉각 비서를 통해 책 한 질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고향 사람들에게 거액을 나누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역시 이 분은 멋이 있는 분이네 하고 찬탄을 했다. 아울러 이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계신다는 판단도 들었다. 올해 나이가 82세이니 이제 首丘初心(수구초심),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니 그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그간 상담일을 해오면서 적지 않은 기업가와 부자들을 만나 보았다. 그 중에는 이른바 재벌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상당한 규모의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어받은 부자들도 많다.

 

 

창업주와 그 2-3세의 차이점 

 

 

그들을 만나보면서 느낀 대표적인 인상은 바닥에서 일어나서 기업을 키워낸 창업주와 이어받은 사람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창업주들은 대부분 돈에 대해 어떤 외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겸손한 면모와 내적 자신감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발버둥을 치다보니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오는 겸손함, 그러면서도 장차 힘든 상황이 닥칠 경우 어떻게든 잘 대응해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반면 이어받은 이들, 흔히 2세 그리고 특히 3세의 경우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 뿐 겸손이나 자신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스로 성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불안감도 엿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으레 이슬람의 역사가인 “이븐 할둔”이 쓴 “역사서설”, 아랍어로 “무깟디마” 속의 글들이 상기되곤 했다.

 

 

田野(전야) 문명과 都會(도회) 문명의 차이

 

 

이븐 할둔은 문명을 田野(전야)의 문명과 都會(도회)의 문명으로 구분하면서 그것이 되풀이된다고 말하고 있다. 전야 문명이란 간단히 말해서 척박한 들판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문명이고 도회문명이란 문자 그대로 오늘날 대도시의 그것이다.

 

척박한 들판에서 일어나고 강해져서 세력을 이룬 사람들은 오늘날의 경우 창업주와 비슷한 데가 있고 상속을 받은 2세나 3세는 도회문명의 그것과 유사하다.

 

창업주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와 기반을 이어갈 2세나 자녀들의 태도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한마디로 돈 귀한 줄 모르고 열심히 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3세의 경우엔 대단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들의 장래에 대해선 우려하고 있었다.

 

그럴 경우 “고생을 안 해봤잖아요, 부모 잘 만났으니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때가 많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대하노라면 우리나라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 호호당이나 그 이전 세대들은 들판의 감각이 있었다면 최근 젊은이들은 그런 감각이 없다. 사치하게 살 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더 크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을 비판하고픈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소비와 사치가 기본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니 그렇다.

 

앞에서 소개한 이중근 회장도 자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사업이 얼마나 어렵고 때론 돈 한 푼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 모른다면서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나는 그냥 웃었다. ‘그거야 다 그런 거죠 뭘!’ 하고 속으로 답했다.

 

缺乏(결핍)이 常數(상수)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과 나름 풍요가 상수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우리 대한민국은 그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기에 더 이상 田野(전야)적 감각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그 속의 젊은 세대에게 들판의 감각을 요구하거나 주입시키긴 실로 어렵다.

 

이븐 할둔 말하길 도회문명은 때가 되면 어차피 기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속감도 약하고 시련을 통해 단련되지 않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 호호당이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근거 있는 노파심

 

 

현재 우리 경제의 기반은 척박한 환경 즉 田野(전야) 속의 사람들이 일구었는데 지금의 도회적 환경 속의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다.

 

물론 아직은 1세의 태도를 어느 정도 흡수한 2세들이 경영하고 있기에 여전히 탄력이 살아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주역이 될 때가 되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구심이다. 이런 생각은 나이가 든 나 호호당의 老婆心(노파심)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우려만도 아닐 것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수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체 내부의 시장만으론 결코 현 수준의 경제를 유지할 수가 없다는 근원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이 약해졌네, 도무지 희망이 없네, 등등 말이 많지만 일본의 현 기술력을 감안할 때 자체 내수 시장만으로도 어느 정도 충분히 유지가 가능하다. 수출입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조금 더 가난해진다고 해서 그런대로 굴러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1세대들은 산업을 일구었고 2세대들은 신기술의 습득과 발전 게다가 특히 문화 산업 방면, 영화라든가 공연 예술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한류 붐”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3세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 지금 한창 주역으로 발돋움해가고 있는 그들이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분명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있다

 

 

내년 2024년이 우리 국운의 새로운 立春(입춘) 바닥이자 시작이다. 그러니 전해 생각하지 못했던 도전과 과제들이 우리 앞길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과연 그게 어떤 문제일까? 를 놓고 무수히 생각해보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60년 국운을 맞이하여 金蟬脫殼(금선탈각) 즉 금빛 매미가 허물을 벗고 새롭게 등장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서초 동굴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교보타워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나오기로 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것이 변하더니 마침내 작업실을 그만 두는 일로 이어졌다.

 

오스피텔은 일렬로 방이 두 개 있는데 현관쪽의 방과 창이 있는 방 사이에 주방 세트와 화장실이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어 마치 가운데가 오목한 호리병처럼 생겼다. 그간 나는 이곳을 “서초 동굴”이라 불러왔다.

 

왜 동굴이라 했는가? 하면 어느 날 작업실이야말로 내게 있어 도교에서 神仙(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洞天福地(동천복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설의 무릉도원 이야기를 읽어보면 계곡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무심결에 들어갔는데 점점 좁아져서 두려웠지만 인내하고 끝까지 들어갔더니 갑자기 앞이 툭-하고 트이면서 별천지의 낙원이 있더라는 얘기에서 유래한 것이 洞天(동천)이다.

 

2005년 지금의 서초 동굴로 들어갔다. 나 호호당은 1997년이 立春(입춘) 바닥이라 당시 운 흐름은 60년 순환에 있어 많은 것들이 참담하고 초라한 春分(춘분)의 때였다. 건강을 포함해서 모든 면에서 힘들던 시절이었다.

 

운명상담 일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연구였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전래의 중국 명리학은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있고 운세 예측도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서초 동굴에서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운명학을 원점에서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리 말하면 바로 그 알려지지 않은 것이 지금 나 호호당이 강의하고 실제 적용하고 있는 60년 순환을 기초로 하는 자연순환운명학이다.)

 

2000년 초부터 구글이나 위키피디어가 보급되었기에 연구해볼 데이터는 무궁무진했다. 또 그를 바탕으로 상담객의 사연을 들어가면서 추리를 했고 검증을 했다.

 

2007년 초 급기야 60년 순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포착할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2012년경에는 그것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에 조금 더 검증을 거듭하면서 이론체계를 세웠다. 그리하여 2014년 봄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운명의 과학이 탄생했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바로 서초 동굴 안에서 창안되었다.

 

 

서초 동굴 안에서 상처를 씻어내고 또 많은 것을 얻었으니 

 

 

2005년 서초 동굴 안으로 기어들 갈 적에는 참담한 심정이었으나 참으로 그 속은 별천지였다. 내실의 창밖 밑에 목련이 몇 그루 있는데 봄이면 그야말로 그 優美(우미)하고 밝은 상아빛의 꽃망울을 해마다 어김없이 터뜨려주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보내면서 목련은 진정한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겨울이 되어 목련 잎사귀가 다 시들어 떨어지고 일부는 가지에서 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면서 말을 건네곤 했다. 자네 모습이 마치 나 호호당과 같구나, 오피스텔 건물이 오래 되었기에 혹시라도 재건축을 하는 날엔 자네, 목련도 싹둑하고 베어지겠지, 자네들을 남겨 놓을 사람들이 아니잖아, 그러니 부디 그날이 늦게 오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래 내가 기도할께! 우린 친구잖아.

 

예전에 반포 주공 3단지는 봄이면 벚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최신의 타워형 아파트로 재개발되면서 그 무수히 많은 묵은 벚나무들이 몰살당했다. 항거할 힘이 없었기에 그 살육의 현장에서 나는 조용히 나무들의 怨靈(원령)을 달래고 좋은 데 가서 다시 태어나라고 빌어준 기억이 난다.

 

서초 동굴은 참으로 내게 있어 세파의 고달픔으로부터 나 호호당을 지켜준 동천복지의 別(별)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수묵화에 빠져 지냈고 또 수채화를 그렸다. 밥벌이도 했지만 찾아오는 사람 중에 인연이 닿아서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을 창안했고 언어학에 관한 많은 연구를 했다. 근처에 강남교보문고가 있어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책을 보기도 하고 사서 읽기도 했다. 강남교보문고는 사실상 나 호호당의 서재였다. 작업실은 이미 천 권 넘는 책으로 들어차 있었기에 해마다 백여 권의 책을 샀고 늘 그 정도의 책을 해마다 폐기했다.

 

 

때가 되니 절로 계기가 생겨나고 

 

 

2005년 8월 12일에 들어갔으니 이제 18년이 되어 떠난다. 이 세상은 알게 모르게 15년, 즉 60년 사계절의 한 계절이 지나면 변화의 계기가 생겨나서 다시 2.5년, 즉 시작으로부터 17.5년이 흐르면 변화가 뚜렷해진다.

 

변화의 계기는 두 가지였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하나는 2020년 초 코로나19의 대유행이었다. 그 바람에 상담 일이 대폭 줄었다. 또 하나는 2020년 5월 동작동에서 지금 살고 있는 우면동으로 이사를 한 일이 그것이다. 상담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작업실에 나가는 일이 적어졌고 백신을 맞은 이후 이석증이 생겨서 택시를 타야 했는데 한동안 택시 대란으로 작업실 나가는 일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사로 인해 공간적 여유가 생기자 집안에 畵室(화실)을 마련하고 컴퓨터를 놓고 또 서가를 놓고 책도 많이 가져오다 보니 더더욱 작업실 나갈 일이 없어졌다. 몸이 아니라 영혼의 거주지가 우면동 집안으로 들어왔음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작업실에 그림 도구가 있고 책이 있었으니 내 영혼의 거주지는 서초 동굴이었는데 그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슬쩍 영혼의 이사를 한 셈이었다.

 

올 초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실을 뺄까 말까. 작업실이 있어야 될 이유는 상담 일 그리고 작업실에 천여 권의 책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책들을 집으로 들여놓을 공간은 절대부족하다.

 

그런데 상담은 웹켐으로 해도 되고 영상통화로 해도 가능하다. 굳이 작업실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남는 것은 오로지 하나, 책이었다. 몇 달을 두고 숙고를 거듭했다.

 

 

책을 버리겠다는 결심이 가장 어려웠지만 

 

 

작업실에 있는 천여 권의 책 중에 절반 이상은 절판되었거나 또는 예전에 중국이나 타이완을 드나들 때 입수한 책이다. 영문 원서도 많다. 하지만 사실상 책 보관용 공간으로 한 달에 임대료 관리비 등등 포함해서 백만 원 이상을 쓴다는 게 아무래도 이치에 맞질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결단을 내렸다. 귀한 책이고 다시 구하기도 어렵지만 대거 폐기하자는 생각. 어차피 언젠가는 저 책들과 이별해야 하지 않는가!

 

최근 들어 나이가 들고 건강에도 이상이 좀 생기다 보니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곧 68세가 되니 장차 길어야 20년을 이 세상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나 호호당은 생각이 많다.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 호호당의 경우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링거로 영양분을 공급받다가 마감하는 죽음을 단연코 거부한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穀氣(곡기)를 끊어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작정이다. (그럴 경우 행정처리가 좀 불편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책들과도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생각이 없었으나 이젠 삶을 마감할 준비도 해놓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구하기 힘든 책이지만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즐겨볼 책들도 아니다. 그러니 폐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넓은 세상과 시간에 관한 지식의 세계를 탐닉할 이유도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정리를 하자 더 이상 작업실을 유지할 이유도 사실상 없다.

 

 

道士下山(도사하산)

 

 

작업실에서 나오게 되면 그 전날 나름의 祭(제)를 올려야지 싶다. 무려 18년, 인생의 거의 1/4 이상의 기간 동안 내 영혼은 서초 동굴에 머물렀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건물과 작업실의 터주 어르신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작별을 고할 생각이다. 그간 고마웠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를 드릴 생각이다.

 

60년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에 들어가 18년, 내년이면 나 호호당의 운세는 한창 뜨거운 大暑(대서)의 운이 된다. 지치고 약해져서 찾아들어간 동굴이었는데 그 동굴은 그간 나를 참으로 알뜰하게 돌봐주었으니 그야말로 기대 밖이었다. 잘난 맛에 엄벙덤벙 대충 살다가 다친 상처들, 內傷(내상)도 말끔히 가셨다. 그간에 몸은 조금 늙었으나 정신은 더 없이 건강해졌다.

이제 동굴을 나와 진정으로 下山(하산)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道士下山(도사하산)이란 제목의 중국 영화가 생각난다. 성장 스토리인데 코믹과 액션을 버무린 철학 영화였다. 이제 洞天(동천)을 나와 산을 내려가야지 싶다. 나이 50에 들어가서 68세가 되어 산을 내려가니 너무 늦은 감도 있지만 아무튼.

 

 

이제 練丹(연단)이 끝났으니 

 

 

이 세상 속에서의 삶, 불교 용어로 器世間(기세간)의 삶은 참으로 경이롭다. 다만 그것들이 너무나도 교묘하게 얽히고설켜 있어서 좀처럼 그 경이로움을 감지하기 어려울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 호호당의 앞날이 가장 어둡다 느꼈을 때 서초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지만 실은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또 훗날 이 때를 되돌아보면 서초 동굴 안에서의 세월이야말로 물질적으로야 힘든 고비가 많았으나 그럼에도 나 호호당의 정신이 가장 광휘를 발하던 시절로 다시 한 번 기억될 것 같다. 그때야말로 전성기였다고 말이다. 나 호호당은 서초 동굴에서 마법의 돌 또는 현자의 돌, 엘릭서(Elixer), 도가의 仙藥(선약)인 丹(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나간다, 그리고 나가자.

 

(알림: 작업실을 나오는 때는 빠르면 7월 중순, 늦어도 8월 중순이 될 것이니 그 전에 상담 약속을 잡으신 분은 그냥 작업실로 오시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