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절에 고생만 했다는데 

 

 

상담 오신 분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저는요, 여태껏 살아오면서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요..., 한숨과 함께 힘들게 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호호당도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런대로 괜찮은 가정에서 성장해서 명문대학은 아니라 해도 무난히 학교도 마치고 결혼해서 아이 둘 낳아서 열심히 잘 키워온 가정주부의 독백이었다.

 

남편이 받아온 급여로 빠듯하게 아껴가며 알뜰하게 살아왔기에 한 번도 호사나 사치를 누린 적도 없었는데 그 시절이 운이 한창 좋았던 시절이라고 하니 실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

 

지금의 얘기는 특별한 누군가를 지칭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상담하다 보면 늘 만나게 되는 사연들이다. 무수히 만났던 사람들의 사연들이다.

 

서울 인 대학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한 결과 중소기업을 거쳐 대기업에 근무했지만 어쩌다가 정말 억울하게 직장을 그만 두게 된 중년 남자의 사연, 중소기업을 거쳐 대기업에 들어갈 때의 운이 실은 한창이었다는 나 호호당의 얘기를 듣고선 망연자실하는 표정.

 

아니 그때가 좋은 시절, 호시절이었다고요? 그땐 전 정말 고생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었는데요, 그 때를 운이 좋던 시절이라고 하시니 이거야 원! 하고 허탈해하는 표정들이 나 호호당의 눈앞을 무수히 스쳐간다.

 

 

운이 좋다는 것이 만사가 충족되는 때는 아니란 사실

 

 

얘기한 적이 있다. 운이 좋다는 것은 만사 오케이, 모든 욕망이 달성된 시점이 아니라 내적 에너지가 충실한 때라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또 한 가지 얘기, 우리의 이런저런 욕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때라도 모두 충족되는 법은 결코 없다는 사실.

 

우리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거친 생존 경쟁과 투쟁을 통해 살아남았기에 하나의 욕구가 달성되면 바로 이어서 더 큰 욕구를 갖도록 되어 있고 또 그를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도록 만들어져왔기에 그렇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種(종)이다. 만족했다면 진작에 자연계에서 도태되지 않았을까?

 

나 호호당을 찾아오는 분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올 때가 많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상대의 운세 순환을 얘기해준다. 상담오신 손님은 약간 풀이 죽어서 돌아가고 나 호호당은 묵묵히 창밖을 바라볼 때가 참으로 많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서도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제부터 30년간 운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 얘기해주면 그간 좌절만 겪은 상대방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럴 거라고 약간 힘주어 얘기해줄 때도 많다.

 

늘 겪는 현실의 얘기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제조업 강국이지만 내수시장만으론 태부족이다. 해외로 내다 팔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수출 시장을 잃었다.

 

그간 열심히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내다팔면 그로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필요한 물품과 재화를 수입해다 쓰고 또 저축해서 국부를 쌓아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그 내다팔 시장의 근간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이 우리의 좋은 시장이던 시절은 2020년대 들어서면서 끝났는데 이제 급기야 미국이, 트럼프의 미국이 아주 까다로운 조건, 거의 횡포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고 나섰다.

 

국내에서 만든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지 말고 미국 안으로 들어와서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팔라는 것이다. 정부가 최선을 다해 협상을 하겠지만 어쨌거나 피해를 어느 정도까지 줄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과거 한미 FTA를 통해 생겨난 무관세 수출시장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것은 수출입의 균형, 우리로선 흑자 시장을 잃는 꼴이 된다.

 

사실상 양대 수출시장을 잃고 있다. 나머지 시장, 즉 유럽이나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만으론 우리 경제의 성장은커녕 유지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우리나라의 방위만이 아니라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전체의 방위 역량으로 활용할 생각을 노골화하고 있다.

 

가령 중국이 타이완이나 여타 지역을 공격할 경우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방식이고 그 결과 자동적으로 우리는 중국 또는 북한과 전쟁 상태로 돌입한다.

 

아울러 병력 상당수를 빼겠다는 으름장도 놓으면서 주한미군의 유지비를 대폭 올리라고 마구 푸시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조치는 우리 대한민국이 밟아온 성장과 발전의 틀과 기반을 근원에서부터 흔들어놓고 있다.

 

이에 미국이 왜 저럴까? 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트럼프 본인의 으스대고 괴팍한 기질 탓도 있겠으나 문제의 본질은 이제 미국이 더 이상 예전의 글로벌 리더이자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없어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간 미국은 글로벌 유동성의 유일한 공급자 역할을 해오면서 갖은 특권과 혜택을 누려왔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서 글로벌 경찰 역할을 비롯해서 많은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이제 의무나 역할 부담은 내려놓고 그저 글로벌 유동성 공급자로서의 특혜만 누리려고 하고 있는 미국이다. 한 마디로 맛이 간 셈이다.

 

물론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측 통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국이 달러를 가지고 횡포를 부릴 수도 없을 것이다.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전 글로벌의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모두가 가난해지거나 또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갈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핵심 시장을 잃었다. 중국 시장 그리고 미국 시장 모두.

 

이제 미국이 더 이상 그 미국이 아닌 것이고 중국 또한 예전에 알던 그 중국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우리와 일본 그리고 중국, 그리고 아시아 여타 지역 나라들을 연결하는 거대 아시아 자유 시장을 만들어내면 어떨까?

 

당연히 쉽지 않은 얘기이다. 중국이나 일본 모두 우리와 함께 기본적으로 수입보다는 수출, 그러니까 무역흑자를 통해 경제를 유지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나라들인 까닭에 더더욱 그렇다.

 

당연히 내수만으론 현재 우리 경제의 현상유지마저 불가능하다. 대거 축소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잠재성장률 저하, 인구 감소, 생산성 저하 등등 이런 것들을 떠나 그간 우리 경제가 성장 발전해올 수 있었던 근간은 뭐니 해도 수출이었는데 그 수출시장의 근간인 미국과 중국을 잃어가고 있다.

 

2024년이 우리 국운순환 60년의 새로운 시작점이자 바닥점이다. 그렇기에 60년 전 박정희 개발독재, 수출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던 성장모델은 이제 사실상 끝이 났다. 따라서 새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게 찾아질 턱이 있으랴!

 

2032년이 되면 우리 경제의 허약한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날 것이다. 그 사이에 어떤 문제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지 감히 상상하기도 두렵고 무섭다.

 

2032년, 그 때가 우리 국운 60년 순환의 춘분, 즉 동이 트는 때이니 지금 그러니까 2032년까지의 흐름은 그저 동트기 전의 캄캄한 어둠이고 未明(미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현실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갖은 노력과 시도야 해보겠으나 2032년까지 우리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미스터리를 사주분석을 통해 규명해본다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은 그 사건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대표적인 수수께끼이자 悲劇(비극)이라 하겠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자세한 내막이야 결코 알 수 없다 하겠으나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주를 분석해보면 대충의 정황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영조는 1694년 10월 31일생이니 甲戌(갑술)년 甲戌(갑술)월 戊寅(무인)일 생이다.

 

생시를 모르지만 서른이 되던 1724 甲辰(갑진)년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봐서 1718년 戊戌(무술)년, 24세 때가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임을 알 수 있다.

 

영조는 어머니가 비천한 출신이라 평생 그 열등감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딸은 여럿 보았으나 아들을 얻지 못해 고생했다.

 

1719년, 25세에 얻은 첫 아들이 1728년, 열 살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으며 그 이후로도 무려 6년간 아들을 얻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런 영조가 마침내 왕위를 이을 아들을 다시 얻은 것은 그의 나이 39세였다. 당시 오래 살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노년에 들어가기 직전에 간신히 얻은 귀하고 귀한 아들이 바로 훗날 사도세자였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리고 사도세자의 생년월일을 보면 1735년 3월 7일 생이다. 乙卯(을묘)년 己卯(기묘)월 甲寅(갑인)일이고 태어나기 직전인 1734 甲寅(갑인)의 해가 입추였다.

 

태어날 적에 운기가 좋았으니 어려서부터 분명 총명했을 것이다.

 

 

참으로 묘한 사도세자의 탄생 시점

 

 

영조는 크게 한시름 놓았을 것인데 묘한 것은 바로 사도세자가 태어난 1735 乙卯(을묘)년은 영조에게 있어 小雪(소설)의 운세였다는 점이다.

 

사실 60년 순환에 있어 운세가 미묘하게 기울기 시작하는 첫 출발점이 바로 小雪(소설)인데 바로 이런 대목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훗날 비극을 슬쩍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영조의 운세가 기울어 가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상황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세자를 심하게 박대한 일이다.

 

물론 명분은 엄하게 가르쳐서 훗날 좋은 통치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얼마나 엄하게 다그쳤는지 사도세자는 부친 앞에 서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부친은 운이 바닥이고 아들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으니 

 

 

1748 戊辰(무진)년이 영조의 운세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인데 그 다음 해인 1749년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다음 연신 엄하게 문책하기만 했다. 어쩌면 영조 자신의 스트레스를 사도세자를 통해 해소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도세자 또한 이 무렵부터 운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기에 부친 영조로부터의 엄한 문책을 받아줄 멘탈이 무너져가기 시작했다고 본다.

 

간단히 줄이면 영조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1694년생인 영조였기에 사실 이 무렵 나이도 근 오십이고 운세 또한 입춘 다음 해였기에 당시로선 으레 죽어도 되는 나이였다.

 

영조의 경우 건강이 좋지 않긴 했으나 죽지 않고 끝내 건강을 회복하면서 장수한 것이 사도세자의 명을 단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노론과 소론의 갈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기득권 세력인 노론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영조는 아들의 이런 나약한 태도가 못마땅했을 것이고 사도세자로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1752년 훗날 정조가 되는 영조의 손자가 출생했다는 사실이다.

 

1752년은 1748년이 입춘 바닥인 영조에게 있어 그야말로 어려운 재바닥 무렵의 일이었기에 병석에 누워 지냈고 1735년이 입추였던 사도세자에겐 小雪(소설)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정조 이산의 출생은 양쪽 모두로부터 공식적으로야 기쁜 일이었으나 내막으로 보면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세자 또한 아들의 미래에 대해 무척이나 불안해했다.

 

1760 庚辰(경진)년, 1764년이 입춘 바닥인 사도세자에게 있어 그야말로 殺運(살운)이었는데 이 무렵부터 사도세자는 거의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내관과 나인 백여 명을 별 이유도 없이 죽였고 불에 달궈 지지는 악형을 가했다고 하니 완전히 싸이코가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소식이 2년 뒤인 1762년에 이르러 뒤주에 갇혀 삶을 마치게 되는 비극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영조 또한 1748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그로부터 14년, 즉 입하 무렵의 일이라 대단히 괴로웠던 때가 되고 말았다.

 

 

영조와 사도세자간의 거래

 

영조는 68세의 나이에 유일한 아들이자 왕세자인 사도세자를 저 세상으로 보낸 후 또 다시 원기를 회복해서 당시로선 보기 드문 82세까지 장수했다.

 

이에 영조의 長壽(장수)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서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 나흘 전부터오르기 시작한 증시 

 

 

증시가 많이 올랐다. 대통령 선거 나흘 전인 5월 28일부터 증시가 전 고점을 넘어서는 걸 보면서 아, 저건 이재명 당선이네 싶었다. 이틀 더 지켜보면서 저건 판을 깔고 있는 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나라 증시는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오른다. 돈을 풀기 때문이다. 돈을 풀면 증시가 오른다. 예로서 문재인 정부는 엄청나게 돈을 풀었다. 앞의 세 정권이 풀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풀었다. 190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선거가 2017년 5월 9일이었지만 그 훨씬 이전, 즉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된 2016년 12월 8일부터 증시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선거 훨씬 전부터 문재인 정부 등장이 확실시되고 있었기에 모든 증권사와 펀드들이 일제히 판을 깔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승의 명분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 문제를 획기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 남북 경협이 본격화되면 우리 경제에 대형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이재명 정부 역시 좌파정부이고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거리낌이 없다. 그러니 일단 증시는 오른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선거하기도 전인 5월 28일부터 힘차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개미들이 손해를 좀 보았을 것이니

 

 

보름 사이에 증시가 10% 이상 상승했다. 처음에 개미들은 열심히 주식을 팔고 있었다. 심지어는 코스피 인버스를 사고 있었으니 전부 손실이 났을 것이다.

 

온갖 악재가 흉흉하고 트럼프가 계속 이상한 소리 해대고 우리 경제 성장률이 엉망이란 소식만 매일 들려오는 와중에 상승이니 처음엔 납득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나 호호당만 해도 4월 초 트럼프 관세 건으로 대폭락했을 때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관세를 유예하면서 증시가 급등했고 다시 희토류 문제로 트럼프의 ‘뻥카’가 탄로나면서 좀 다른 상황이네 싶었다.

 

하지만 선거 나흘 전인 5월 28일부터 연 사흘 증시가 오르는 것을 보면서 아, 이재명 당선! 그리고 큰손들 증권사와 펀드 그리고 외국인들이 판을 깔기 시작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마침내 작년 7월의 고점인 코스피 2896 포인트를 넘기면서 좀 센스가 있는 개미들은 눈치를 차리기 시작했다.

 

 

명분도 있고 세력들이 호응하니 일단 오르겠지만 

 

 

명분은 아주 좋다, 자산시장의 비중을 부동산에서 증권 쪽으로 옮겨놓아야만 좋다는 것, 그래야 이른바 선진국형 자산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중에 코스피 시장 5,000까지도 보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에 큰손들이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판을 깔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중에 어느 선 이상 증시가 올랐을 때 큰손들이 물량을 개미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증시가 다시 내리면 결과적으로 대형 작전으로 끝이 난다. 개미들의 손실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큰손들이 물량을 계속 보유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선진국형 자산시장으로 가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경제성장이 멈춘 대한민국이고 전 세계 교역이 축소되기 시작한 마당이라 증시가 견뎌줄 수 있을지 아니면 도루묵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우리 국운은 바닥을 기고 있기에 

 

 

증시나 주식은 장기적으로 보면 실적을 반영하기에 합리적이지만 단기간만 놓고 보면 얼마든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렵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024년이 우리 국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란 점이고 2032년까지 날로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運(운)이란 것이 결국 사계절의 변화와 정확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때가 2007년 초였다.

 

숨겨져 있던 비밀을 발견했으니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파고 들어가니 더욱 흥미진진한 것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으니 처음 발견한 것은 거대한 광맥의 첫 부분에 불과했다.

 

이에 7년간 위키피디어와 구글을 통해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프로필을 연구한 결과 전체적인 이론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에 2014년 5월 25일에 원래의 블로그인 www.hohodang.com에 "자연운명학 선언"이란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찾아가서 읽어줄 독자도 드물 것이기에 다시금 당시의 글을 여기에 올려보고자 한다.

 

2014년의 글

---------------------------------------------------

며칠 전 그간 연구해오면서 종합해낸 이론에 대해 ‘자연운명학’, 정식으로는 ‘自然循環運命學(자연순환운명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

 

그동안 나는 내 이론에 대해 그냥 일반적으로 써오던 ‘命理學(명리학)’이라고 해왔다.

 

내 연구가 기존의 이론과 많은 점에서 차별화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음양오행과 십간십이지, 그리고 육십갑자에 토대를 두고 있었기에 그냥 그렇게 해왔다.

 

내가 이 분야와 처음 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인 1971 년이었고, 그 이후 궁금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손에서 놓지 않다보니 어느덧 끝을 보자는 생각이 들어 이 방면의 책이란 책은 다 읽어보았다.

 

심지어는 중국 청나라 시절 발간된 四庫全書(사고전서) 속의 방대한 術學(술학)편까지 다 읽어가면서 연구했고, 이 방면에서 나름 유명한 ‘적천수’라는 책은 100 번도 더 넘게 정독했으며, ‘궁통보감’이란 책 역시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긴 세월 찾아다니며 물어보기도 하고 책을 파고 들기도 했지만, 끝내 내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半信半疑(반신반의)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엉터리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너무나 신통한 구석도 있어서 도무지 이렇다 하고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중간에 내린 결론으로 ‘음양오행과 명리학이란 것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미비된 구석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진화 발전해가고 있는 학문이란 생각을 했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명리학은 1600 년대의 수준에서 답보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1982 년 무렵 서양의 점성술이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러다보니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서 天動說(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책인 ‘알마게스트’에까지 손이 미치게 되었다.

 

특히 그가 천구 상에서 행성들의 역행과 순행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周轉圓(주전원), 영어로는 'epicycle'이란 개념에 크게 매료되었다.

 

‘주전원’이란 큰 원의 운동궤도, 즉 圓周(원주) 위를 굴러가는 작은 원 운동이란 뜻이다. (이 개념은 지금의 내 이론인 ‘자연운명학’의 핵심개념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중국과 홍콩 등지의 나름 이름이 있는 고수들을 찾아서 묻고 다녔지만, 대부분이 그저 그렇고 그런 수준이었기에 내심 크게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끝내 徒勞(도로)에 그친 것은 아니었으니 우연히 한 선생을 만나서 내 연구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리하여 1995 년 어느 겨울날, 나는 기존의 명리학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대목에 대해 전혀 다른 발상에서 접근해보자는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옛 책이나 어떤 누군가로부터 배울 수 없는 막다른 경지에 도달했으니 이제는 내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처음에는 금방 새로운 이론적 돌파구가 만들어질 것으로 확신했었으나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1995 년으로부터 또 다시 무려 12 년의 세월이 흐른 2007 년이 되어서야 운명의 순환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순환의 起點(기점)을 확정짓는 법에 대해 결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환의 시작점을 정하는 법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여전히 미비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2010 년이 지나서야 더 이상 부동의 완비된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사실 그 무렵 나는 이제 운명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성공했구나 하고 快哉(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그 역시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순환의 비밀을 알고 나자, 무슨 양파껍질처럼 그로부터 또 다시 무수한 것들이 파생되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주 하는 얘기지만, 인터넷 상에 떠있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야말로 내 연구에 있어 더없는 반려자가 되어주었다.

 

그간의 상담 경험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위키피디아에 실려있는 저 방대한 정보와 지식이야말로 내 연구의 결정적인 도구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십 수 년에 걸쳐 대략 3 만명 정도의 삶과 운명에 대해 연구해볼 수 있었다.)  

 

물론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도 역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위키피디아라는 수정구슬까지 있었으니 마침내 내 연구는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순환에 관한 이론 설정과 검증만이 아니라, 또 다시 사주의 만들어진 구조에 대한 새로운 눈이 생겼고, 이는 다시 순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 겨울, 사색에 침잠해있으면서 또 다시 많은 것을 새롭게 밝혀내고 검증해낼 수 있었다.

 

출발은 기존의 이론인 음양오행과 명리학이었지만, 이젠 내 스스로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떨어져온 것이 아니라, 이제는 半信半疑(반신반의)의 대상이 아니라 확고하고도 명증한 과학의 차원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내 연구는 끝이 나지 않았다. 끝이 나기는 고사하고 漸入佳境(점입가경)이란 말처럼 새로운 경지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수년 전에 강의한 내용과 지금 강의하는 내용 간에도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부터의 연구는 科學(과학)으로서의 연구인 것이다.

 

수치화되고 수치적으로 검증하고 증명해낼 수 있으니 과학인 것이다. 이로서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과학의 영역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오랜 질곡을 극복하고 오늘날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나라가 되긴 했지만, 학술이나 문화 방면에선 역사의 변두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과학’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후예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무수한 지성인들이 자연운명학을 배우러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때가 되면 나 호호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에겐 영예가 아니겠는가!

 

이에 며칠 전 기존의 명칭인 음양오행과 명리학이란 타이틀에 머물기보다는 새롭게 命名(명명)을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몇 가지 검토안 중에서 ‘자연순환운명학’, 줄여서 ‘자연운명학’이란 명칭으로 정했다.

 

이에 내 스스로는 상당히 민망하고 부끄럽긴 하지만 감히 ‘자연운명학’이란 과학이 탄생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름을 붙여놓긴 했지만, 여기에서 ‘자연’이란 단어와 ‘순환’이란 단어, 또 ‘운명’이란 단어 모두에 대해 과학의 수준에서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학에선 사용하는 用語(용어)부터가 최대한 명확하게 정의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론은 정체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검증되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며 그러다보면 또 다른 영역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파생물들이 생겨난다.

 

이에 ‘자연운명학’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름 이 시점에서 커다랗고도 명확한 선을 하나 그어보는 것이다.

 

2021 년 무렵에는 그간의 이론을 총 정리하고 종합한 이론서를 만들어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때가 되면 내가 명리학과 처음 조우한 1971 년으로부터 50 년이 된다.

 

---------------------------------(이상)

 

이처럼 당초 계획은 2021년경에 자연순환운명학의 개론서와 각론서를 집필할 예정이었는데 마침 그 무렵부터 건강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늦어지고 있다.

 

현재 올 해 안으로 간단한 개론서라도 한 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현재 작업 중이다.

 

그리고 각론 부분은 아무래도 전문적인 내용이라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영문 자막도 달고 해서 완성한 다음에 어느 때에 가서 한꺼번에 공개할 생각도 해본다.

 

2014년에 저런 글을 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다시 11년이 흘렀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가나 보다. 덩달아 삶도 그러하니 때론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 호호당이 우리 국운의 순환에 대해 처음 얘기한 때는 2007년의 어느 시점이었다. 당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김태규의 명리학이란 이름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우리 국운의 흐름에 대한 내용을 얘기했다.

 

(그 칼럼을 읽고 싶은 분은 예전 블로그인 www.hohodang.com 에 가서 김태규의 명리학 코너를 들어가시면 된다.)

 

1964년이 우리 대한민국 국운의 立春(입춘)바닥이고 1994년이 立秋(입추)이며 이에 또 다시 2024년이면 입춘 바닥이 될 거라고 얘기했다.

 

무려 18년 전에 우리 국운의 흐름을 얘기했는데 지금껏 너무나도 정확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또 자랑스럽다. 예전 프레시안 시절부터 나 호호당의 칼럼을 읽어온 독자님들이 지금도 적지 않게 계시는데 그 분들은 지금 이 말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2008년 말, 2008년 11월 17일자로 프레시안에 올린 칼럼 “다섯 개의 겨울 설산”에서 장차 우리 경제가 넘어야 할 어려운 고비에 대해 얘기한 바 있는데 다음의 다섯 가지였다.

 

-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그리고 그 이후 앞의 과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어려운 변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트럼프이다.

 

미국이 어려워지니까 저런 이상한 생각도 하는구나 싶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결론적으로 2028년 내후년에 가서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어려움을 안겨다 줄 것이라 본다. 특히 중국 경제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해결되지 않은 다섯 개의 어려운 고비에 또 하나의 숙제가 더해진 셈이다.

 

이에 우리 경제는 2030년부터 2032년경에 가서 그야말로 바닥을 칠 것이란 비관적인 생각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2042년부터 또 다시 일어설 것이란 확신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2042년에 가서 어떤 까닭으로 다시 일어서는가? 하면 그 때가 우리 국운 60년 흐름에 있어 초여름인 小滿(소만)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기력을 차질 때라고만 말씀 드린다.

 

그 때가 되면 우리 사회는 그간의 시련을 통해 단련되어 있을 것이니 대단히 인내심 강하고 쉽게 굴하지 않는 마인드를 장착해있을 것이다. 싱싱한 대한민국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큰 눈에서 볼 때 적어도 2264년까지의 흐름은 크게 엇나가지 않으리란 자신감도 있다.

 

우리 국운을 처음 예측한 때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적지 않게 놀라고 감탄한다. 이에 오늘 이렇게 짧은 글로 소회를 표현해보았다.

 

최근 자연순환운명학 수업을 언제 또 할 것인지요? 하는 문의가 잦다.

 

이에 8월 중순 경에 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연순환운명학이 어떤 것인지 그 개요를 얘기하는 일종의 소개 강좌를 7월 중에 1회성으로 한 번 실시할 생각이다.

 

멀리 갔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다시 돌아오는 것을 運(운)이라 한다. 運(운)이란 글자를 들여다보면 軍(군)과 쉬엄쉬엄 간다는 뜻의 辶(착)의 합성이다. 이는 군대가 적을 무찌르고자 멀리 싸우러 원정을 나갔다가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운이란 글자는 되돌아온다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돌아올 것 같으면 또 다시 멀어져간다. 쉼이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바의 “영겁회귀”는 결국 운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영원회귀의 신화”란 책을 통해 원형과 반복, 그리고 시간의 갱신을 설파하고 있다. 시간의 갱신이 무엇인가?

 

하면 시간이 일직선으로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지나면 해마다 다시 되돌아오는 해의 순환이다.

 

이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것이니 사실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과 갱신이다. 카를 융은 “원형(Archetype)”을 말하고 있는 바, 그 원형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흐름 속에서 생겨난 근본적인 의식을 일컫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면 오고, 오면 다시 가는 영원한 움직임, 이는 우주와 자연의 끊임없는 리듬이고 율동이다. 이것은 힌두 신화에서 “춤추는 시바”, 나타라자(Nataraja)로서 표상되고 있다. 시바의 춤은 우주의 창조와 소멸 그리고 재탄생의 순환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순환은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표현되고 있다. 고대 로마에선 모든 사람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그 수레바퀴를 돌리는 여신이 있으니 그 이름을 포르투나(Fortuna)라 했다.

 

바퀴 위로 오르면 성공과 권세를 누리고 내려가면 몰락한다.

 

 

포르투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티케(Tyche)에 해당한다.

 

나 호호당은 기존의 중국 명리학을 연구했지만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이에 전혀 다른 각도에서 연구하고 탐색한 결과 운명의 수레바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규율까지 알아내었다.

 

수레바퀴를 돌리는 자는 포르투나가 아니었고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따라 정해져 있으며 그에 따라 그 사람의 운이 오르고 내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생년월일시는 우연일까?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 호호당은 그간의 연구를 통해 충분히 검증해내었다. 나아가서 이 세상에 과연 우연이란 것이 존재할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나 호호당은 부정적이다. 모든 일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란 생각이다.

 

나 호호당은 새롭게 발견된 이 이론에 대해 자연순환운명학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구글과 위키피디어를 통해 무수히 검증해보았는바 그 정확성 면에서 가히 과학의 경지라 자부한다.

 

사실 오늘의 내용은 이미 그간에 무수히 얘기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일종의 자연순환운명학을 안내하는 팜플렛이란 생각으로 써보고자 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이에 돌이켜보고 또 내다본다

 

 

저번 우리 국운은 1964년 10월에 시작해서 60년, 이에 2024년 9월로서 마무리되었다.

 

저번 순환은 1904년에 시작해서 2264년까지 360년에 걸쳐 이어지는 장기국운의 두 번째 마디였다. 360년의 장기순환은 60년씩 여섯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바, 이에 또 다시 2024년 10월부터 2084년까지의 세 번째 순환이 시작되었다. 나 호호당은 이를 국운 제3기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 눈앞의 상황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답답하다. 이에 저번 60년 순환을 되돌아보고 그를 바탕으로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60년 순환, 국운 제3기의 흐름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다섯 걸음으로 파악해본 저번 우리 국운 60년의 흐름

 

 

60년의 흐름을 다섯 단계, 또는 다섯 걸음으로 나누어 살필 것 같으면 무척 간단명료하게 파악이 된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오보격(五步格) 즉 pentameter 으로 되어 있듯이 운의 흐름에도 어떤 리듬이 있다.

 

이에 우리 국운의 저번 순환에 있어 다섯 걸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64-1976: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단계

1976-1988: 잘 살아보기 위한 약진과 투쟁의 단계

1988-2000: 발전이 구체화되는 양적 성장의 단계

2000-2012: 양적 성장이 끝나고 성숙하는 질적 단계

2012-2024: 모든 것이 쇠락하는 퇴조 단계

 

가장 신명이 나던 세월은 1988년부터 2000년까지의 12년이었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전반부인 1988년부터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기까지의 10년이었다.

 

이 무렵 우리 산업은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엄청난 수출을 통해 국부를 늘려갔다.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동시에 벌어들인 달러를 통해 증시와 부동산이 급등했다.

 

마치 누구나 노력만 하면 부자가 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던 희망찬 세월이었다.

 

(사실 외환위기는 그와 같은 양적 팽창이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모두들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 결국 탈을 일으켰다.)

 

그 이후 2000년부터 2012년까지의 12년간은 질적 성장의 단계라 하겠으니 이것의 또 다른 측면은 양극화란 하겠다. 일자리도 양극화를 보이기 시작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었다.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져갔다.

 

그리고 그 중간 시점에 미국 금융위기가 터졌지만 이미 고도화된 우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수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2012년부터 2024년까지, 그러니까 최근까지의 흐름은 사실상 성장이 정체되고 잠재성장률 또한 지속적으로 떨어져왔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려 했고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란 이상한 정책을 펼쳤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미국의 쇠락, 그야말로 골치아픈 얘기

 

 

그런데 이제 미국이 쇠락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트럼프 정부가 등장해서 이상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관세, 환율, 무이자 국채강제판매 등등의 그야말로 괴이한 手法(수법)들이다.

 

사실 미국은 6.25 전쟁 이후 우리에겐 더 없이 은혜로운 후원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일부나마 대가를 치를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우리 경제는 지난 10년간 나름 교묘하게 원화 약세를 유도함으로써 수출 호조세를 이어왔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더 이상 그럴 순 없다고 제지하고 나선 마당이라 일단 1250원까지는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구체적인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상수지 흑자가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선까지 원화가 절상될 경우 과연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원화 절상이 수입 물가를 낮출 것이니 내수경기 부양에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순 있겠으나 어차피 우리 내수는 한계가 명확하다. 남은 것은 오로지 정부의 재정정책, 즉 돈 풀기 밖에 없는데 이게 정도를 넘어설 것 같으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다시 서바이벌 게임

 

 

그러니 2024년부터 2036년까지의 시간은 또 다시 우리 경제의 서버이벌 게임으로 전개될 것 같다. 물론 저번 국운순환의 제2기와는 다른 양태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2027년 한 차례 심각한 자산가격의 하락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아마도 부동산 쪽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해서든 2036년까지 버텨서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찾아들 때 저마다 나름의 기회를 잡아서 발전해갈 수 있기를 모쪼록 바라는 마음이다.

 

 

소환된 기억 하나 

 

 

며칠 전 넷플릭스를 통해 사제지간인 조훈현과 이창호를 소재로 하는 영화 “승부”를 보면서 아주 오래 전 기억이 소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의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이창호 국수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당시 이창호 국수는 스승의 집을 나와서 강남 고속터미널 인근, 지금 반포 자이 아파트의 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한신아파트였던가?

 

이창호 국수의 생년월일시를 알고자 함이었고 혹시 만나게 된다면 사인도 받을 겸 해서였다.

 

(그 무렵 나 호호당 또한 한창 바둑에 재미를 붙였던 시절이라 기원에 가면 어느 정도 대접해주는 아마추어 3단 정도의 수준이었다. 당시엔 아마가 무슨 단이냐? 그냥 아마 강3급이지 했다.)

 

그런데 이창호 국수는 집에 없고 어떤 할머니가 나오셨는데 조모님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 소개를 하고 은행원이지만 사주명리를 연구하는 중이고 이창호 국수를 엄청 좋아하기에 이렇게 직접 물어보고자 찾아왔다고 사연을 얘기했다.

 

그러자 조모님께서는 헛걸음 하셨으니 아쉽네요 하시면서 그래도 이창호 국수의 생년월일시를 알려주셨다. 전혀 헛걸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종로2가 관철동 시절에 만나본 프로기사들

 

 

당시 한국기원은 1994년 이전하기 전까지는 종로2가 뒷골목인 관철동에 있었다. 그 바람에 1980년대 시절 지금은 사라진 조흥은행 광교 본점에 근무했던 나는 한국기원을 자주 찾았었다. 큰 길 하나 건너면 되니. 그곳에서 조훈현, 서봉수, 장수영 등등 내가 좋아하는 기사들이 쉽사리 눈에 띄었다. 천상병 시인도 기원에서 자주 만났다.

 

조훈현 국수는 날렵한 몸매에 발걸음도 엄청 빨라서 “역시 제비네!” 했다. 바둑의 행마 또한 워낙 경쾌해서 별명이 “조제비”였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어렵사리 직접 만나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 기사들의 사주를 입수하고 있었는데 1990년대 들어서자 조훈현 국수는 제자인 이창호 국수에게 연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스승 조훈현의 집에서 기거하던 내제자 이창호 국수는 생각보다 일찍 스승의 집을 나왔다. 

 

 

중국 명리에 대한 심한 회의감

 

 

당시 이미 십 수 년 동안 사주연구에 미쳐있던 바둑기사들만이 아니라 궁금한 사람이 있으면 불원천리 찾아가서 만나보곤 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사주를 통해 확인해보았지만 도저히 그 이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억지로 갖다 붙이면 모를까 사전에 그들의 미래를 알아낼 순 없었기에 기존의 중국식 사주명리에 심한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결국 이 모든 회의와 의심은 훗날 2007년에 가서 운명에는 “자연순환의 이치”가 작용한다는 것을 얼추 감을 잡게 되면서 정리가 되었다.

 

자연순환운명학으로 두 사제의 운세를 정리해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스승인 조훈현 국수는 일간이 甲木(갑목)으로서 1953년생이고 운기의 절정인 입추는 1964년이었으며 가장 화려한 시절은 그로부터 15년 뒤 입동인 1979년 무렵이었다. 당시 이른바 모든 타이틀을 차지하는 전관왕의 위업을 여러 차례 달성하고 있었다.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인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으니 

 

 

그런 그가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인 것은 1986년이었으니 운세가 한창 기울고 있던 冬至(동지)의 운이었다.

 

동지, 겨울이 되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비전(vision)이 없다 보니 제자를 받아들여서 미래를 향한 포석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묘한 이치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작 조훈현과 이창호 두 사람 모두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운명학적 관점에선 아직은 스승이 제자보다 낫다 

 

 

그리고 이창호 국수의 경우 일간이 丙火(병화)로서 1996년이 立秋(입추)가 되고 2011년이 立冬(입동)이 되는데 살펴보면 스승 조훈현 국수와는 제법 차이가 난다.

 

세계대회에서 엄청나게 우승을 많이 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포함해서 바둑계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입동 무렵엔 이미 쇠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스승 조훈현 국수의 경우 1994년 입춘 5년 전, 운세가 이미 한창 기울었던 그 시점에 응창기배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리 바둑의 위상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혁혁한 위업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운세가 바닥을 기는 와중에도 절치부심 엄청난 노력을 통해 戰神(전신)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서운 전투바둑으로 다시 살아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바둑의 역사를 보면 일본에서 활약한 중국출신 기사 우칭위엔의 신포석 이후 계산과 끝내기로 승리를 차지하는 이창호 국수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으며 최근에는 AI가 등장하면서 신진서 9단이 일세를 풍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우칭위엔 이창호 신진서의 시대는 있어도 조훈현의 시대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조훈현, 쇠락했다가 다시 부활한 유일한 케이스

 

 

하지만 한 번 쇠락했다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기사는 여태껏 조훈현 국수가 유일한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나 호호당은 그 점을 더 크게 인정을 해주고 싶다.

 

참고로 이창호 국수의 경우 내년 2026 丙午(병오)년이 60년 순환에서 다시 한 번 입춘 바닥이 된다. 부디 스승 조훈현처럼 또 다시 힘을 내어 활기를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리하면 운명학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스승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보다 더 훌륭하다. 그런 면에서 바둑 평론가들의 관점과는 정반대라 하겠다.

 

예전에 도화살 그리고 함지살, 이런 거 사주에 있으면 좋지 않다고 했고 그래서 煞(살)자가 붙었다. 그런데 최근 사람들은 상당히 좋아한다.

 

내가 팔자에 도화살이 있어서 그렇게 섹시한 가봐! 하는 식으로 ‘은근히’가 아니라 내놓고 반긴다.

 

도화살에서 桃花(도화)는 복숭아꽃, 벚꽃과 유사하지만 좀 더 濃艶(농염)해서 섹시한 느낌이 있다. 함지살의 咸池(함지)는 태양이 신화 상에서 아침에 하늘로 떠오르기 전에 목욕을 하는 연못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졌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몸을 씻는다는 의미에서 나중에 섹스(sex)의 상징이 되었다.

 

도화살이나 함지살 모두 남녀관계가 문란한 바람에 신세를 망친다는 의미에서 煞(살)이라 했는데 그게 오늘에 와서는 이성을 유혹하는 매력이 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성을 유혹하는 힘이 강하다, 섹스 어필한다, 오늘날엔 커다란 무기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도화살이나 함지살이나 모두 음양오행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허무맹랑하다.

 

앞의 글에서 三災(삼재)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세속의 헛된 믿음이라 했는데 도화나 함지 역시 거의 同級(동급)이다.

 

저번 글에서 三災(삼재)를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 亥(해)와 卯(묘), 未(미), 즉 돼지띠와 토끼띠 그리고 양띠는 이른바 木(목) 기운의 시작점이자 종말점인데 그런 목의 기운이 화로 가면 木生火(목생화)해서 소진될 것이니 좋지 않다는 의미에서 삼재라고 했다. 실로 근거없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화의 경우 예를 들면 亥(해)와 卯(묘), 未(미), 즉 돼지띠와 토끼띠 그리고 양띠는 이른바 木(목) 기운의 시작점이자 종말점인데 그를 받쳐주는 기운은 물이다.

 

그래서 사주에 물의 정중앙 글자인 子水(자수)가 바로 도화살이 된다. 앞글의 삼재와는 반대 논리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도 그리고 임상적으로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함지살의 경우 도화살과 유사하지만 조금 더 까다롭다. 하지만 그 역시 별 의미가 없다.)

 

三災(삼재)를 위시하여 역마나 도화나 함지 등의 각종 煞(살)을 중심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방법을 古法(고법) 명리라 부른다. 이는 나중에 月支(월지)와 日干(일간)을 중심으로 보는 명리이론이 등장하기 전의 운명학 이론을 말한다.

 

神煞(신살)로 보는 법은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고 임상적인 가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을 갖는 바람에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을 뿐이다.

 

나 호호당은 고법은 물론이고 오늘날 사용하는 중국 명리이론을 넓게 그리고 심도 있게 연구해보았지만 그다지 정확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바람에 나 호호당은 제로 베이스에서 오랜 세월 집요하게 연구한 결과 운명의 과학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론을 정립했으니 그게 바로 “자연순환운명학”이다. 멀지 않아 전 세계에 퍼져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