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한 해의 윤곽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



춘색이 현저하고 완연하다. 오는 목요일 21일이 春分(춘분)이다. 들을 덮었던 안개가 걷히고 해도 길어질 것이다. 이로서 2019년 한 해가 과연 어떤 모습의 한 해가 될 것인지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하노이 협상 결렬로 오리무중에 갇힌 비핵화 문제, 이제 집권 3년차로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의 향배,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경제의 문제,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이슈가 되기 시작한 페미니즘 갈등, 이웃 일본과의 갈등 등등 많은 현안들이 이제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밖으로 살펴보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영국의 브렉시트 문제, 미중 간의 무역협상과 중국의 경제 침체 문제, 우려되는 글로벌 경기 침체, 프랑스의 내부 갈등, 갈 데까지 가고 있는 이탈리아의 내정 문제, 날로 거칠어져가고 있는 트럼프와 미국 반대 세력 간의 갈등 문제들도 마찬가지.


저 문제들은 인간 사회의 문제이건만 그것이 해가 길어지는 춘분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의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 영향의 정도가 일반의 생각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직접적이란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서 그럴 뿐이지 자연의 변화는 인간의 생리는 물론이고 사고와 행동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로서 세상과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춘분은 한 해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 갈 것인가를 우리 눈앞에 펼쳐주는 첫 날인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속에서 어떤 풀들이 고개를 내밀지 모르는 것처럼 춘분이 되기 전까진 한 해의 땅 밑에 어떤 새로운 것들이 잠재해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과 계절의 변화란 결국 일조량과 땅의 온도, 또 대기와 땅을 넘나드는 습기의 변화라 할 것이니 그런 기본적인 요소들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변화해간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점에 대해선 나중에 좀 더 얘기를 드리고자 한다.) 



생각에 몰두하는 바람에



지난 한 주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골똘한 생각에 빠지게 만든 하나의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몰두해있다 보니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사회적 사건 또는 커다란 변화가 그 나라 또는 사회의 운세 변화와 어떤 관련을 맺게 되는가 하는 문제, 아울러 그것을 일으키게 하는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思念(사념)이었다. 


자연의 변화, 운세 변화, 사회의 변화



이 문제에 대해 현대 미국 역사에 있어 치욕을 안긴 베트남 전쟁을 예로서 시작해보자. 


베트남 전쟁은 제2차 대전의 종료와 함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과 이어서 미소간의 냉전 속에서 발생한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베트남 전쟁은 1946년 12월부터 1975년 4월까지 이어진 길고 긴 전쟁, 사실상의 30년 전쟁이었다. 


미국은 그 길고 긴 전쟁 기간 중 1961년부터 개입하기 시작해서 1973년 발을 뺄 때까지 무려 12년 동안 전쟁을 이끌었고 또 패배했다. 


1961년 임기를 시작한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멋진 소리를 했다. “얼마를 지불하든, 져야할 짐이 얼마이든, 얼마나 어려운 일이 닥치든, 모든 우방들을 지원하고 자유의 승리와 생존을 확약한다.” 훗날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악몽이 되어버린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기야 그랬을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과 태평양의 강자 일본제국을 무너뜨린 미국이었기에 멀고 먼 베트남의 정글 속 성가신 게릴라들이 무얼 그리 부담이 되었겠는가! 계획을 세워서 철저하게 밀어버리면 그만 아니겠느냐는 생각의 미국이었을 것이다. 프랑스가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북베트남의 오합지졸들에게 항복을 하긴 했지만 그거야 맛이 간 프랑스였으니 그랬을 것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 확대에는 물론 43세의 혈기 넘치는 케네디의 오판도 있었겠으나 그 배경에는 당시 침체해있던 미국 경제를 살리려는 여망, 특히 군수업자들의 전쟁 특수를 기대하는 기대심리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고 이에 미국은 더 많은 병력을 베트남으로 보내고 대대적인 물자 투입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고자 했다. 


미군 증파가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의 경우 미군 병력만 해도 55만에 달했고 전비 또한 그 한 해에만 오늘날 달러가치 기준으로 무려 5,57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었지만 비용만 해도 미국에게 있어 실로 엄청난 출혈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정도까지 갔으면 끝이 보여야 했건만 상황은 전혀 정반대였다. 1968년 초 북쪽의 당시 월맹은 음력 1월1일의 설날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규모의 본격 기습 공세를 가해왔다. 이른바 ‘뗏 대공세’였다. 


뗏 공세 자체는 월맹군과 베트콩 게릴라의 엄청난 피해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미국의 장군들은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도무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을 자신감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전투에선 비록 미국 측이 이겼으나 전쟁의 저울추는 북베트남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1968년, 승부의 저울추가 기울던 때



뗏 공세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이 베트콩 진압 작전에서 무구한 양민들을 대거 학살한 ‘미라이 학살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어버렸다. 도무지 전쟁을 지속할 더 이상의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국내에서 거센 반전 운동과 함께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는 국고가 텅 빌 지경이었으며 시민들도 전쟁 수행에 넌더리를 내던 참이었다. 그렇기에 미라이 학살 사건은 미국 시민들의 여론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제 무의미한 전쟁은 그만! 하는 것이 절대적인 여론이었다. 


당시 인기를 한창 끌던 록 그룹 CCR의 노래 “Who'll Stop the Rain”, 누가 저 비를 멈추랴, 하는 노래는 1970년 발매되자 즉각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과연 어느 누가 저 잘못된 전쟁을 멈출 수 있겠느냐는 대표적인 반전 노래였던 것이다. 


그 바람에 케네디에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지지율의 격하로 재선에 출마하지 못했고 이에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끝낼 것을 다짐한 야당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1968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출구전략의 어려움



하지만 미국은 깊게 개입된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나중엔 갖은 굴욕과 수모를 당하면서 사실상 도망쳐 나와야 했던 미국이었다. 그때가 바로 1973년 3월이었으니 손을 떼는 데에만 무려 4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니 출구전략이란 것 역시 대단히 지난한 일인 것을 말해준다.) 


그 이후 낙동강 오리알 격이 된 남베트남 정부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75년 4월 30일에 북베트남군의 무력침공으로 남쪽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무력 통일되었다. 남쪽 베트남의 수많은 인사들이 처형당하고 희생당한 것은 물론이고 그 바람에 이른바 ‘보트 피플’이 동남아시아의 바다와 태평양을 방황하고 다녀야 했다. 



왜 1968년이었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왜 1968년에 이르러 미국은 급작스럽게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큰 테두리에서 말하면 그 해답은 1968년은 1953년부터 시작된 미국 국운의 60년 흐름에 있어 15년이 경과한 때, 즉 여름이 시작되는 때인 立夏(입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하는 新舊(신구)가 교체되고 동시에 가장 빈한한 때이기에



해마다 5월 5일 경에 찾아오는 立夏(입하)의 때는 작년의 묵은 기운들이 최종적으로 사라지고 새해의 기운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결정적 교체의 시기인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입하의 때야말로 가장 빈한한 때이기도 하다. 가을에 수확한 식량이 다 떨어지고 겨울에 심은 보리는 미처 익지 않은 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1968년으로서 입하의 운을 맞이한 미국은 사실상 국고가 비고 경제가 침체일로에 빠졌던 시점이었다. 참고로 금 보유와 연결되던 달러 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때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1968년으로서 미국은 탈탈 털렸던 때란 얘기이고,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월남전 수행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미국만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라마다 국운의 立夏(입하) 무렵이 그 나라가 가장 가난한 때가 된다. 사람 역시 그렇다. 


글을 더 이어가자니 분량이 많아졌다. 다음 글에서 입하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춘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입하를 얘기하니 조금 이른 감이 들지만 이 점에 대해서도 다음 글에서 얘기하겠다.


塵土(진토)의 나라 중국



1994년 4월 나는 한 달 여에 걸쳐 중국을 여행했다. 중국과 수교한 지 만 2년도 안 된 때였다. 그 직전 겨울 12월 직장을 무단히 그만 둔 뒤 이제 중국길이 열렸으니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해볼 생각을 했다. 무려 25년 전의 일이다. 


사업기회를 찾기 위해 일단 먼저 중국을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이에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자신감 하나로 카메라와 가방 하나 들고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산동성의 웨이하이로 건너가면서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과 무역을 하던 선배의 조언대로 필수 품목은 물 티슈였다. 수시로 한 장 씩 꺼내어 손과 얼굴을 문질렀다. 그럼에도 호텔이나 숙소에 들어가면 머리카락이 뻣뻣해져있었고 하얀 남방셔츠는 깃과 소매가 시커멓게 변해있었으니 과연 塵土(진토)의 대륙이었다. 


중국 화북지방, 그러니까 양자강 북쪽은 푸른 보리밭을 제외하면 초록빛을 쉽사리 찾기 어려웠다. 우리처럼 푸른 강산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황갈색의 거대한 땅덩어리였다. 어딜 가나 희부연 흙먼지 바람이 일고 있었고 그나마 길가의 가로수들도 먼지를 잔뜩 덮어쓴 채 메말라 있었다. 어딜 가나 물은 희귀한 자원이었다. 


그 이전인 1986년 일본에 다녀온 뒤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 지저분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중국을 다니면서 생각이 완전 바뀌었다. 일본이 지나치게 깨끗한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 비하면 너무나도 깨끗한 나라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이 부족하고 오염된 나라 중국



중국에선 어딜 가나 사람들이 끓인 물, 그들 표현으로 카이수이, 한자론 開水(개수)를 마시고 있었다. 젊은 날 누구나 으레 그렇듯이 냉수만 마시던 나였지만 중국에선 큰 일 날 일이었다. 배가 냉해져서가 아니라 그냥 찬물은 장염의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찬물을 마시고 싶으면 값이 꽤 되는 광천수를 사셔 마셔야 했다. 


논과 밭 사이의 개울 역시 전혀 맑지 않았고 강이라고 해봐야 수량도 얼마 없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시커멓게 오염된 물이었다. 냄새도 아주 역했다. 가정이나 공장들은 오폐수를 그냥 강이나 개천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 말로 어지간한 시골의 우물마저도 그냥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달 보름에 걸쳐 중국을 대충 한 바퀴 돌아온 나는 장차 중국이 경제적으론 엄청나게 발전할 것 같지만 환경문제는 당분간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좋아질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환경오염,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 건



그 이후 베이징에 꽤나 장기간 머물기도 하고 또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 바라본 중국은 장차 환경문제가 중국의 경제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리란 생각을 더욱 더 굳히게 했다. 


내가 1994년 중국에 들렀을 땐 지하수나 우물을 식수로 쓸 수 없다고 했는데 2012년 무렵이 되자 중국 친구가 해주는 얘기인 즉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괜찮았다 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우물물이나 지하수가 공업용수로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더더욱 나빠진 셈이다. 


중국은 20년 사이에 눈부신 공업화를 통해 나름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허공에 배출하고 있고 수자원 역시 썩은 물이 되고 말았다. 



궁하면 더 큰소리치는 중국



오늘 아침 뉴스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냐면서 우리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 발언을 마치 꾸짖듯이 반박하고 있었다. 


루캉, 陸慷 이란 이름의 대변인인데 이 친구는 늘 권위적인 외모에 권위적인 목소리로 敎示(교시), 즉 가르치는 말투를 쓴다. 그 바람에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들이 당의 절대권위를 잘 살려낸다고 하면서 무척이나 아끼는 관료이다. 


중국은 이런 나라이다. 공산당 일당독재는 인민에 대한 당의 절대적인 권위 하나로 가능한 것이기에 가령 이번 루캉의 강경한 발언에 대해 중국 친구들과 속내를 트고 얘기해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 뻔하다. 전 중국 인민이 지켜보는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난처한 질문이면 더 세게 맞받아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우리 중국인들도 미세먼지 때문에 맘대로 숨을 못 쉬고 사는데, 원인을 떠나서 당장 뾰족한 해법도 없는 마당에 너희들 조그만 이웃까지 대국인 우리의 체면을 구기려 하니? 하는 것이 루캉 발언의 속내이다. 실로 어이가 없지만 그게 중국이다. (중국이 저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글 말미에 명하겠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더하면 더 했지 절대 중국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최고 존엄의 나라가 아닌가. 그러니 중국보다 한 수 더 뜬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우리로선 이웃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상대하기도 까다로운 북한과 중국을 두고 있는 셈이다. 


나 호호당은 몇 년 전부터 공기의 질을 즉각 파악할 수 있는 사이트를 거의 매일 들여다보고 있다. Airvisual Earth 라고 하는 사이트. 공기의 질은 물론이고 바람의 방향까지 보여주기에 미세먼지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최근 최악의 대기오염이 지속되면서 문 대통령의 입장이 제법 난처한 지경이다. 바로 미세먼지 30% 감축 공약 때문이다. 재작년 그런 공약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저건 실수하는 건데 싶었다.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 참모의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대기오염의 대략 60% 정도가 중국발이고 우리 것이 40%라고 할 때, 30%를 감축하려면 우리 자체의 먼지 발생을 1/4 수준으로 낮추어야 가능하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중국의 에너지 정책



우리 스스로 제 아무리 미세먼지 발생원을 낮춘다 해도 중국발 미세먼지는 앞으로 더더욱 늘어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사실 암담한 심정이다. 중국의 경우 전력생산의 70%가 석탄발전이고 게다가 석탄발전 용량을 현재보다 25% 정도 더 늘리기 위해 추가로 2-3년 이내에 수백 기의 석탄발전소를 더 세울 예정이라 한다. 


더 문제는 석탄발전소를 짓는 위치가 대부분 중국의 동부지역 바닷가 쪽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와 더 가까운 쪽이 된다. 그래야만 서풍이 불면 미세먼지가 우리의 서해상으로 빠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쪽으로 더 많은 미세먼지를 날려 보낼 것이란 얘기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측의 항의에 대해 무슨 군거가 있어서 그러냐고 마구 무시하며 대드는 이유 또한 그런 까닭이다. 만일 중국이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 원인이 크다는 것을 인정할 것 같으면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중국의 에너지 수급 계획에 근본적인 차질을 줄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적 채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이다. 


그렇기에 미세먼지의 중국 책임 문제는 나 호호당 생각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중국이 결코 절대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여긴다. 마치 북한이 오랫동안 핵개발에 대해 일관되게 거짓말을 해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중국 요인으로 인하여 당분간은 해법이 없으니



따라서 하고픈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더더욱 화력발전과 석탄 난방에 의존하는 중국 요인으로 인해 장차 장구한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에너지 수급은 국가 경제의 기본 동력에 관한 것이고 그 문제를 중국은 화력발전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서해 바다의 폭이 지금보다 두 배로 넓어지지 않는 한 미세먼지 문제만큼은 중국이 향후로도 우리의 요구와 항의를 들어줄 입장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일이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선 사실 10년 전부터 얘기하고 싶었으나 해법이 없는 문제란 점에서 글로 쓰지 않았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차라리 희망이다.



만 한 가지 나 호호당이 기대하는 구석이 있기에 말을 한다.


중국 국운으로 볼 때 중국 경제는 장차 수년 안에 급격한 저성장 국면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붕괴의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빠르면 내년부터이고 늦어도 5년 뒤가 되면 대단히 엄중한 상황이 중국을 엄습해올 것이란 점이다.

 

그럴 경우 에너지 수요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니 그나마 우리 하늘로 불어오는 미세먼지가 다소 줄어들게 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이다. 물론 중국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많이 상하겠지만 말이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거란 말을 들을 때부터 나 호호당은 멀지 않아 중국발 미세먼지의 폭풍이 한반도를 뒤덮어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냥 흙먼지로 해서 塵土(진토)의 나라였던 중국이었는데 이젠 석탄에 기반한 산업화로 인해 또 다른 차원의 유해한 塵土(진토)를 우리가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별 다른 기대가 없었던 이번 하노이 회담

 

 

나 호호당은 이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결렬될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실상 의미 없는 회담으로 끝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전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할 생각이다.)

 

 

이번 회담에선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어야 했기에

 

 

작년 싱가포르에서 정상 회담은 비핵화를 해보자는 원칙적인 합의였지 그 이상의 내용이 없었다.

 

그 바람에 트럼프로선 약간 체면을 구겼고 미국의 야당으로부터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는 비판을 꽤나 받았다. 그렇기에 이번 회담은 트럼프에게 있어 뭔가 실질적인 진도, 그러니까 비핵화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까지 진척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정상회담이 되어야 했다.

 

이번 회담 결과 알려진 바, 북한의 의도는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1개 중에서 5개를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북한 측 주장인 즉 일부 해제라고 했지만 그게 모두 2016년 이후의 강력한 신규제재로서 미국 입장에서 볼 때 그걸 풀어주는 것은 전면 해제나 다름이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 입장에서 영변 해체만으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트럼프는 최근 진행된 실무협상에서 원하는 바의 진척이 없는 것을 보고 이번 회담에선 사실상 합의를 포기했던 모양이다. 대신에 최후의 승부수를 준비했다, 만찬장에서 제시된 볼턴 보좌관의 서류가 그것이었다. 빅딜을 할 거면 하고 아니면 더 이상의 정상 간 합의는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김정은 측에서 빅딜에 응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북미 간 정상회담은 없을 공산이 크다.

 

이로서 비핵화 협상 자체가 결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내용과 북한의 그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여간해선 진척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교착 상태가 시작된 셈이다.

 

 

너무나도 일관된 김씨 3대의 장기전략

 

 

이쯤에서 북한의 전략을 한 번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북한의 전략은 아주 명확하다. 핵과 미사일을 만든 다음 그것을 지렛대로 해서 절대 강자 미국을 상대로 담판을 짓고 그로서 북한 체제의 안전과 번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년 3월 이전까지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면서 긴장상태를 높여가던 김정은의 깜짝 카드, 즉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지어보자는 제안은 돌발적으로 만들어진 전략이 아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으로부터 부친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게까지 근 30년에 걸쳐 이어져온 김씨 3대의 일관된 전략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런 면에서 비핵화 협상은 북한 측에서 전혀 그만 둘 마음이 없다.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온 핵과 미사일의 목적 자체가 미국을 상대로 하는 담판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선 미국이 초라한 독재국가 북한에게 눈길을 줄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저한 입장의 차이, 깊어지는 김정은의 고민

 

 

따라서 이번 담판 결렬로 인해 이제부터 김정은의 고민이 본격화되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곤 핵과 미사일밖에 없으니 그걸 최대한 활용해서 얻을 것 다 얻고 취할 것 다 취해야만 하는데 미국은 초장부터 빅딜, 그러니까 다 내려놓을 것 같으면 잘 봐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그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영변을 폐기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 마당에 핵심 제재 5개를 풀어주었다가 나중에 북한이 또 다시 예전의 입장으로 회귀할 것 같으면 그 때 가서 또 다시 안보리 제재 과정을 힘들게 답습해야 할 것이니 그렇다. 그럴 경우 또 다시 북한에게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미국의 위신과 체통이 서지 않는다.

 

 

북한은 크레딧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사실 북한의 접근법은 하나씩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호 신뢰를 확보해가자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런 것들이 다져진 연후에 언젠가 궁극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수십 년 동안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오는 과정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고 블러핑을 쳐왔다, 그런 까닭에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신용 즉 크레딧이란 무형의 자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나마 트럼프가 많이 밀어주는 편이다.

 

양자의 입장이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현실과 마주치게 된 김정은이다.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하여 살펴보는 비핵화 전망

 

 

자, 이제 그러면 나 호호당의 생각과 전망을 얘기한다.

 

비핵화 과정에 대해 자연순환의 이치를 적용해볼 것 같으면 빠른 프로세스가 있고 중기적인 프로세스가 있을 수 있다.

빠른 것은 6개월에서 7.5개월 안에 끝나는 과정이다.

 

작년 3월 김정은의 제의로 시작된 비핵화 협상이 빠른 과정을 거쳤다면 6월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있은 뒤 9월에서 11월 중순까진 이른바 빅딜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작년 9월경부터 협상은 오히려 교착상태로 들어갔기에 빠른 프로세스는 이미 작년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중기 프로세스가 된다. 이는 30개월에서 36개월에 걸치는 과정이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협상과정이니 이번 회담은 12개월이 경과한 시점이 된다. 하지만 중기 프로세스가 1년 만에 타결되는 법은 자연순환의 이치 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하노이 회담에 대해 나 호호당은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잘 해야 중간의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회담으로 끝나겠구나 싶었다.

 

36개월짜리 중기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때는 24개월, 즉 2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이 무렵의 상황을 보면 결말을 거의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내년 3월을 전후한 때가 이번 북미 비핵화 협상의 성패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이란 얘기를 한다. 그때 가서 실질적인 진척이 이루어질 경우 전체적인 마무리는 2021년 3월, 즉 36개월이 흐른 시점에 가서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비핵화 협상이 잘 될 것인지 아니면 실패할 것인지에 대해선 나 호호당이 함부로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이번 협상의 진행을 지켜보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이고 빠른 과정이 실패했기에 중기 프로세스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내년 3월경에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얘기이다.

 

 

60년 순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망

 

 

그러면 이제 북핵 문제에 대해 좀 더 큰 시간 스케일의 차원에서 정리해보자. 큰 흐름을 볼 경우 15년 단위로 체크하는 방법이 아주 유효하다.

 

1976년경으로 거슬러간다. 그 무렵은 우리나 북한 모두에게 있어 國運(국운) 상으로 향후 먹고 살 씨를 뿌려야하는 파종의 때였다. 다행히도 우리 대한민국은 당시 중화학 공업에 대한 거국적인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김일성은 별다른 일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김일성의 잘못인지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문제인지 그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로서 남북의 체제경쟁은 사실상 1976년 무렵으로서 남한의 승리로 귀결이 났다는 점이다.

 

15년이 흘러 1991년이 되자 모든 상황은 확연해졌다. 우리 남한은 중화학 제품의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력이 나날이 신장되었던 반면 북한으로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했으니 북한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덩달아 중국마저 대한민국과 친해지면서 급기야 1992년에 수교를 했다. 북한으로선 중국의 일대 배신이었다.

 

이에 김일성은 체제의 안전을 위해선 핵 개발밖에 없다는 단안을 내렸다. 바로 북핵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고 이로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발했다. 하지만 경제는 더더욱 낙후되었고 이에 설상가상 ‘고난의 행군’ 시절이 찾아들었다.

 

김정일은 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햇볕 정책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보당국에게 탄로 나면서 우리 측의 북한 지원은 미국에 의해 저지되었다.

 

1991년으로부터 다시 15년이 흘러 2006년, 급기야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로서 핵개발의 완성을 과시했다.

 

그러니 다음 단계는 2006년으로부터 15년이 흐른 시점, 즉 2021년이 된다. 앞에서 설명한 비핵화 중기 프로세스가 36개월짜리라고 했는데, 그 또한 최종 시점이 2021년 3월이 된다.

 

 

중기와 장기가 맞물리는 2021년을 기다려보자.

 

 

따라서 2021년은 45년에 걸친 북한체제의 서바이벌 게임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때이자 작년 3월에 시작된 비핵화 협상의 최종 시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2021년 3월은 장기 흐름과 단기 흐름이 맞물리는 때란 얘기이다.

 

참고로 15년 단위로 살펴보는 방법의 이론적 근거는 60년 순환에 있어 15년은 하나의 계절을 뜻하기 때문이다. 1년에 있어 4계절은 각각 3개월인 것과 같다.

 

그러니 현재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이지만 너무 실망할 일은 아니라 본다. 일이 되려면 도중에 진통도 으레 따르는 법이니 그렇다. 내년 3월을 기다려서 그때 확인해보면 되겠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온 감각을 동원해서 지켜보는 때는 금년 9월에서 11월이 된다, 그때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분수령인 까닭이다, 그게 왜 분수령이 되는지에 대해선 글의 분량 상 생략한다.)

 

알림: 강좌안내란에 고급반 강좌 개최를 공지하고 있다. 아직 여유가 있기에 그간 기초이론을 수강하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희망한다.

제자의 메일에 대한 답신



결혼해서 첫 아기를 키우고 있는 제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18개월이 되어가는 아들의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 이제 18개월, 세상 아무 것도 모르는 그 눈빛이 생기에 넘치고 있었다. 


이렇게 답신을 썼다. 


“아기가 엄청 힘차 보이네요. 예쁘죠? 지금의 모습과 행동들을 잘 기억해두세요, 평생 그리울 것이니, 그냥 하루하루 자라는 것 같지만 훗날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는지를 알게 되거든요. 지금 눈앞에 삶의 보석을 대하고 있는 것이라는 거.” 


아기 엄마인 제자는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아기가 신통방통할 것이고 예쁠 것이다. 물론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제자는 아기와 함께 하는 지금의 이 순간순간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 그 얼마나 빛나는 절정의 때인지를 결코 실감하진 못할 것이다. 왜냐면 절정의 때는 과거에 있었거나 아니면 미래에 있을 것이라 여기는 우리들인 까닭이다. 



좋은 때를 좋다고 느낄 수 없는 이유, 시간의 비밀



지금을 절정이라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욕심이 많아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시간 속에 있을 때엔 그 시간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물건은 우리가 어떤 시간의 바깥에 있을 때만이 감지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지금 그리고 이곳’은 시간의 속에 있기에 그건 시간으로 감지되지 않는다, 그냥 눈앞의 일일 뿐이다. 그렇기에 절정의 때란 것 역시 어떤 시간이기에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감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자에게 ‘지금의 모습과 행동들을 잘 기억해두세요, 평생 그리울 것’이며 ‘훗날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는지를 알게 될 거’란 말을 답신에 썼다. 



인생 최고의 순간은 즐겁지가 않다, 오히려 힘들다.



상담을 하다보면 어떤 경우 찾아온 사람이 마침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있다. 최근 있었던 상담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게 최고의 시간인 줄 알지 못한다. 나는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통해 눈앞의 시간들이 그 사람의 삶 전체에 있어 최고의 순간들인 것을 알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바쁘고 불안해하고 때론 너무 힘들다고 내게 속내를 토로하곤 한다. 


가령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빌려 얘기하면 모든 것이 치열하고 아슬아슬해서 숨이 막히는 장면들이 있다. 미나스 티리스 요새를 둘러싼 긴박한 공방전과 전세 역전의 장면 또 엄청난 압박 속에서 모르도르의 척박한 땅을 헤치며 운명의 산을 향해 나아가는 프로도의 모습이 이른바 클라이막스, 절정의 순간들이다. 


모든 주요인물들이 고생하고 있고 매 순간이 고비이다. 하지만 그 대목들이 바로 소설 속 최고의 절정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반지가 화산의 불길 속에 녹아버리고 사우론은 사라진다. 그런 다음엔 결말의 얘기들이 나오고 소설은 끝이 난다. 


나를 찾아온 테이블 맞은 편의 상담자는 지금 절정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힘들어서 때론 숨이 막힌다는 토로를 한다. 나 호호당은 그 사람에게 있어 지금의 시간들이 절정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그런 줄 모른다. 이럴 때면 늘 기분이 묘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 당신이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최고의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 점, 그리고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이란 얘기를 해준다. 그러면 상대방은 ‘아니, 지금은 많이 힘이 든다니까요’ 하면서 항변 아닌 항변을 해온다. 이에 대해 ‘물론 힘이 들겠지만 소설 속 절정의 장면들을 보세요, 느긋하고 편안한 절정이 있던가요?’ 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최고의 순간은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 법



절정이 지나면 힘든 순간들이 사라지고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느긋한 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날수록 편안하고 느긋한 결말보다도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던 그 때가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서서히 또는 문득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아, 내가 그 때가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좀 더 그 시간들을 즐길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 또는 아쉬움이 든다. 그 사람은 절정의 시간 저편 즉 시간의 바깥에 있기에 그 시간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최대의 고비를 넘는 순간이 최고의 순간인 법이니



그렇기에 인생 최고의 순간은 당신이 인생 최고의 고비를 넘거나 또는 최대의 난관을 헤쳐 나갈 때인 것이다. 나중에 고비를 넘은 뒤 또 난관을 헤쳐 나왔을 때의 안도감 역시 대단히 기쁜 순간이 되겠지만 그 장면은 클라이막스가 아니란 사실. 


그런데 묘한 것은 클라이막스는 한창 진행 중일 땐 알 수가 없고 결과가 나왔을 때만이 사후적으로 귀착이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최대의 험한 고비를 맞이하여 그 고비를 넘고자 하는 자가 이 순간을 즐겨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 호호당은 그 사람이 그 고비를 이미 거의 다 넘었으며 또 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이고, 그 말을 듣는 그 사람은 오로지 눈앞의 고비를 넘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힘들어 죽을 지경인 것이다. 


예를 들면 난생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젊은 축구 선수가 큰 시합에 나가는 각오를 묻는 질문에 즐기고 오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픽-하고 웃는다. 그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큰 시합에 처음 나갔다면 엄청 긴장할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실수만큼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서 꽤나 경직된 자세로 운동장을 뛰어다니게 되어있지, 신나는 게임이니 즐겨야지 하는 마음일 순 없는 법이다. 


그처럼 인생 최고의 순간에 그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은 당신의 일이 어차피 잘 되게 되어있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정도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 최대의 고비야말로 실은 최고의 순간이란 이 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얘기해보자. 


우리 현대사에 있어 최고의 시간은 언제였을까? 하면 바로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와 그 극복과정이었다는 점이다. 1964년에 시작된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바로 그 때가 최고의 클라이막스였다. 



우리 현대사 최고의 순간은 1997년 외환위기와 그 극복과정



당시 문자 그래도 최대의 國難(국난)을 맞이했던 우리였다. 물론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위기를 잘 극복한 결과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 대한민국은 럭셔리한 세월을 맞이했고 구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강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니 외환위기와 그 극복과정이 바로 60년 흐름에서 최고의 때였던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강국 미국 역시 그렇다. 최근 60년 흐름에 있어 미국이 맞이했던 최고의 고비이자 최고의 순간은 1985년 무렵이었다. 당시 악성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든 미국이었지만 살인적인 고금리 긴축 정책을 통해 미국은 힘차게 일어섰고 그 이후 소련을 무너뜨리고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때가 미국 최고의 순간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생 최고의 순간은 가장 험난한 고비를 맞이하여 그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때인 것이다. 당장은 힘들어 죽을 지경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때야말로 힘차고 살아있던 시절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된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 그 시간들



결국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그에 대해 최고의 역량으로 응전할 때, 위대한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한 바의 Challenge and response, 즉 최대의 도전에 대해 최고의 응수를 하는 그 순간이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 그리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때가 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영광의 세월, 안도의 시간들이 찾아들지만 이미 최고 절정의 때는 시간 저편에 있음을 훗날 어느 때에 이르러 알게 된다.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



호호당의 젊은 시절, 영국본토 항공전을 배경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을 샀던 적이 있다. 공중전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는데 검색해보니 1989년에 발매되었다. (그러니 나 호호당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제2차 대전 초기인 1940년, 히틀러의 독일은 폴란드와 프랑스를 파죽지세로 쓰러뜨리고 영국을 위협했다. 독일이 영국 상륙에 앞서 막강한 공군력을 동원해서 영국 공군을 무력화시키고자 대규모 공중전을 개시했던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그런데 게임의 제목이 “Their Finest Hour” 였다. 그 제목이 당시 나로선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조국의 명운을 걸고 나선 영국 공군의 활약을 다룬 내용이건만 ‘그들 최고의 시간’이란 제목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최고 위기의 시간이란 표현이 더 부합되지 어떻게 최고의 시간이란 표현을 썼지? 하는 생각은 꽤나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 어떤 시점부터인가 과연 그 제목은 실로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일부터 연휴라서 해마다 찾아가는 여수에 다녀온다. 월요일까진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서 알려드린다. .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은 사실상 苦肉之策(고육지책).



자영업자를 영어로 ‘self-employed person’이라 한다. 스스로를 고용한 사업자란 뜻이다. 


물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경우는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높다고 하면 그건 취업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자영업의 비율이 높다는 말은 벌어먹기는 해야겠는데 채용해주는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채용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 다름이 아니라 일종의 苦肉之策(고육지책)이라 하겠다. 


2017년 현재 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대단히 높다. 차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영업자의 비율이 1/6, 즉 16.7%를 넘어서면 사회적 안정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려 25.4%로 표시되고 있다. 


(자료; data.oecd.org/emp/self-employment-rate.htm#indicator-chart)


우리보다 더 좋지 않은 OECD 나라를 보면 칠레, 멕시코, 브라질, 터키, 그리스, 콜롬비아 밖에 없다. 터키와 그리스는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나라들이고 나머진 모두 중남미 국가들이다. 우리나 중남미나 동격인 셈이니 우리나라 고용의 질적 측면이 많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근 들어 우리가 아주 만만하게 여기는 일본의 경우 자영업 비율은 10.4%에 불과하고 독일이나 프랑스와 거의 같다. 



고용율 또한 좋지가 않아서.



말이 나온 김에 전체 고용율도 한 번 살펴보자. 


고용율 역시 42개 OECD 국가 중에서 32위로서 중위값의 고용율이 71% 정도인데 우리는 66.6%로서 4.4%나 떨어진다. 전체 고용율도 좋지 않다. 



임시직 또는 일용직의 비중 또한 높아서.



내침 김에 임시직 또는 일용직 비율(Temporary employment)도 한 번 살펴보자. 


이 역시 무척이나 좋지 않다. OECD 42개국 중 중위값의 나라는 독일로서 12.8%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무려 20.6%에 달한다. 우리보다 좋지 않은 나라는 42개국 중 7개 나라에 불과하니 우리는 하위권이다. 


전체 고용율도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는 마당에 그 내용을 보면 자영업 비율과 일용직 또는 임시직 비율이 엄청 높다. 



高齡(고령)에도 벌이를 해아 하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좋지 않은 게 또 있으니 바로 연령별 고용율이다. 우리의 경우 55세 이상의 고용율이 66.5%에 달한다는 점이다. 고령자의 고용율이 높다는 것은 물론 전문직이나 공직자가 아닌 이상 고령에도 불구하고 소득활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고령자의 비율이 높다는 말은 반대로 핵심연령층인 25-54세까지의 고용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도 된다. 자료를 봐도 역시 그렇다. 우리의 25-54세 고용율은 OECD 나라의 중위값보다 훨씬 떨어진다. 35위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의 양과 질, 모두 좋지가 않으니.



따라서 우리나라는 고용의 질적인 측면과 양적인 측면 모두 좋은 점이 거의 없는 사회라고 하겠다. 고용율 자체도 낮은 편이고 그 내용을 보면 자영업 비율도 아주 높은 실정이고 고령자들 역시 벌어먹기 위해 일하는 비율도 높으며 일용직이나 임시직의 비율도 아주 놓다. 바람직한 구석은 전혀 없다. 


경제 규모로만 보면 OECD 국가 중에서 상위권에 드는 나라인 것이 사실이지만 삶의 질과 직결되는 고용의 질이나 양 모두 전혀 좋지 않은 것이다. 



압박과 스트레스 극심한 우리 사회



안정된 소득이 있어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은 바로 孟子(맹자)의 말이다. 恒産則恒心(항산즉항심)


앞에서 자료를 통해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 사회는 恒産(항산) 즉 안정된 소득기반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떨어지는 나라라 하겠으니 전체 구성원들이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도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쉽게 짐작이 간다. 



공교육과 교육 현실 간의 첨예한 모순



런가 하면 오늘 인터넷 기사에서 본 바, 미국의 모 경제학자는 워싱턴 포스트에 최근 기고한 글에서 “나라마다 다른 양육 방식 차이의 뿌리는 경제, 특히 경제적 불평등에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고 한다.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내모는 양육 방식이 대세인 나라들의 공통점은 빈부 격차가 크다는 점이고, 반면 빈부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고 사회 안전망이 잘 구비된 나라들에서 부모들의 양육 방식은 훨씬 느긋하고 아이들의 상상력 키우기 등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용의 질이나 양이 좋지 않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빈부격차가 심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크다는 것과 같은 말인데, 반면 최근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사회적 불평등이 크지 않은 사회가 택하는 방식 쪽으로 초점이 모여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따로 노는 우리의 교육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설학원을 통한 치열한 학력경쟁이 엄연한 현실이건만 공교육은 이미 사회적 평등이 구현된 것을 전제로 해서 흘러가고 있다. 과거 20년간 공교육은 평등교육을 지향해왔으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빈부격차가 더욱 커져가면서 학력경쟁이 더 첨예화되고 있다. 矛盾(모순)이고 그 모순이 더 커져가고 있다. 



잘해보려는 마음은 익히 알겠으나



현 정부가 밀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역시 그 취지와는 반대로 소득분배 특히 어려운 계층의 소득분배가 더 악화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최저임금의 인상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상위 계층이나 일부 계층에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정작 개선이 되길 원하는 하위 계층의 소득분배에는 역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는 정부의 정책이 표적을 제대로 겨냥하지 못하고 있거나 달리 말하면 더 이상의 뾰족한 수단이 없음을 말해준다. 


이는 마치 공교육이 지향하는 바와는 달리 실제 교육 현장은 전혀 따로 놀고 있는 우리의 치열한 교육현실과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뉴스에 보니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여당 의원들에게 ”소득분배 악화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떻게 해서든 잘 되게끔 해보려는 정부의 고충과 충정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정부가 목표하는 바와는 달리 역으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 정부의 목표가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나? 하는 생각, 현실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그물망을 너무 쉽게 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심지어는 눈앞의 어려운 현실은 어떤 사람이 와도 바람직한 쪽으로 바꾸기엔 이미 때를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우울한 소식만 듣게 되니



그런가 하면 또 하나 우울한 뉴스를 접했다. 서울의 신혼부부는 남편이나 아내 모두 평균나이가 전국 평균보다 0.7세가 더 높다는 것이었다. 결혼이 늦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결혼이 어렵다는 말이 된다. 


더불어 남편의 경우 67%가 관리자나 전문직 또는 사무직 종사자였고 아내의 경우 58.3%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관리자나 전문직 또는 사무직 종사자가 아니면 사실상 결혼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서울의 경우 2017년 신혼부부의 건수도 2년 전에 비해 무려 9.7%나 감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서울을 포함해서 부동산 시세가 전체적으로 너무 높아서 수입이 괜찮고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아니면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결혼이 가능한 서울특별시이고 대한민국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최근 수년 간 지내오면서 뭔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들리는 것이라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해마다 견실하게 수익을 내던 한국전력이 졸지에 적자로 전환했다는 소식 같은 것밖에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어려워질 것이란 점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물론 2024년을 우리 대한민국의 立春(입춘) 바닥임을 알고 있는 나로선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모든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노력 또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 의해 악화되어가는 현실을 다소라도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마음에서 놓아본 적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올 해 2019년은 우리 국운의 小寒(소한)이다. 소한은 해마다 1월 초에 맞이하는 본격 추위의 때를 의미한다. 국운의 추위란 나라의 힘 또는 에너지가 극도로 소진되고 떨어져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各自圖生(각자도생)인가?



힘이 약해지면 그나마 뭉쳐야 살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눈앞의 현실은 예전보다 더욱 더 제 갈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저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만 소란스럽다.


자녀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엄마, 우리 주변의 흔한 스토리



엄마가 아이를 엄하게 다그친다, ‘성적을 떠나서 네겐 간절함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할 것이냐’고. 야단을 친 엄마는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나머지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분풀이를 한다. 당신도 아이에게 신경 좀 써야 할 게 아니냐고. 남편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알았어, 알았다고, 연구 좀 해보자고’ 하는 말로 모면한다. 


‘쟤는 도대체가 해보자는 마음이 없어, 혼을 내면 잠시 하는 시늉만 할 뿐 금방 풀어져서 태평세월이야, 누굴 닮아서 저 모양이지?’ 하며 아내는 남편을 쬐려보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뭐’, 이런 식의 혼잣말로 끝을 내는 아내. 


며느리로부터 아들이 험한 추궁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시어머니 즉 아이의 친할머니는 이래저래 속도 상하고 걱정도 되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전화를 해왔다. 우리 손주 사주팔자 좀 볼 수 있소? 잘 보신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하고. 나로선 너무나 뻔한 일인지라 ‘아, 네, 오실 것 없습니다, 먼저 손주 생일과 생시나 알려주시지요, 잠깐 봐드리지요’ 한다. 


손주의 운세를 보니 小雪(소설)을 막 지난 터였다. 이제 막 본격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가 더 이상 성가신 학업에 집중할 힘이 사라졌다는 것, 그러니 공부를 잘 하기가 어려운 손주의 운세였다, 짐작하던 대로였다. 


그러니 좋은 말로 둘러댈 수밖에 없다,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제 구실 잘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런 일로 굳이 찾아오실 일도 아닙니다, 하곤 빠져나간다. 할머니가 찾아와서 꼬치꼬치 캐물으면 손주가 공부 잘 하긴 틀렸다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으니 골치만 아플 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서울 강남의 좀 사는 집 아이인 그 손주는 올해 중학교로 진학했다, 아이들의 경쟁이 치열한 학교로 소문이 난 학교다. 중학교 1학년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없다는데 그것과는 관계없이 학원에 가서 고등학교 진학에 대비해서 살벌하고 무지막지한 선행학습에 시달려야 하는 딱한 처지의 손주였다. 


그러니 그 손주의 심정도 십분 이해가 갔다. 급우들에게 뒤지긴 싫으니 공부는 해야겠는데, 이상하게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학원에도 빠지지 않고 다니지만 수업시간엔 수시로 멍을 때린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매만진다, 게임 한 판 하고픈 마음에. 벌써 여러 차례 스마트폰의 게임을 모조리 삭제 당한 바 있고 때론 기계 자체를 압수당한 적도 많다. 


공부 잘 하고 못 하고는 사실상 운에 달린 문제라서



아이들 사주를 보면 거짓말 보태지 않고 10초만 살펴봐도 그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지 아닐 지를 판별할 수 있다. 98% 정도의 확률로 맞혀낸다. (100%가 아닌 이유는 타고나길 끈기가 있거나 아니면 남에게 뒤지길 대단히 싫어하는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부를 잘 할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한마디로 말해서 보통의 지적 능력만 갖췄다면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다. 지적 능력이 정상적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타고난 命(명)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으니 나머진 운의 흐름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괜찮은데 노력을 안 해서 문제란 말, 흔히 듣는 얘기이다.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미 공부 잘 하긴 글렀다는 얘기, 성적이 좋을 수가 없다. 학업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지능과는 별 상관이 없다, 크게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아니라면 학업 성적은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좋아지게끔 되어있다. 



‘노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제는 왜 노력을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이 아이의 운세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사람의 운이 하락할 때의 전형적인 현상이 바로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진지한 노력을 할 수 없게 된다. (못 하는 것이나 안 하는 것이나 사실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사람의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운이 내리막일 뿐이다.

가령 다재다능한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아이의 노력은 분산이 되고 자칫 흩어져버릴 수 있을 것이다. 다재다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라 하겠지만 그 어느 것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 문제점을 가진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노력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 노력이란 바로 한 군데에 힘을 집중해서 이어나가고 있을 때 우리들은 그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노력이란 벡터(vector)값이다.



약간 어려운 얘기가 될 것도 같지만 수학에서 벡터(vector)라는 하는 개념이 있다. 어떤 힘의 방향과 크기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령 동쪽으로 100의 힘이 작용한다고 말하면 그게 바로 벡터 값이다.

 

다재다능한 아이의 총체적인 능력이 가령 200이라 하더라도 동서남북 모두 골고루 힘을 쓰고 있다면 어떤 한 방향으로 향하는 힘은 50이 된다. 그런데 힘은 100에 불과해도 그 모두를 한 방향으로 쓰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다재다능한 아이를 그 방향에 있어서만은 앞설 것이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아이의 경우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학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라 봐도 무방하다. 능력이 100이냐 200이냐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노력하기란 왜 그리 어려운가?에 대해



렇다면 왜 어떤 아이는 자신의 힘을 학업에 집중하고 반대로 어떤 아이는 그 힘이 분산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 모두 누구나 그러하듯이 관심이나 흥미가 한 가지만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돈 벌이에도 신경을 쓰지만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쪽에도 관심이 많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취미가 있어서 그 방면에도 많은 시간 투자를 하기도 한다. 실은 이게 정상이다. 자신의 힘을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의와 에너지를 여기저기 다양한 방면에 분산시키는 아이가 실은 훨씬 정상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런 아이보다는 주로 학업에만 집중하는 아이, 실은 오히려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보다 성적이 좋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력한다는 것, 그게 오히려 비정상적이어서



이 세상은 온갖 유혹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학생의 경우 해보고 싶고 가져보고 싶은 대상이 실로 엄청나게 많다. 사춘기를 보내다 보면 이성에도 관심이 생길 것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싶을 것이며 남자 아이라면 게임도 해야 할 것이며 자신만의 개성을 인정받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그런 유혹을 잘 뿌리치는 편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공부 잘 하는 아이 역시 정상적인 욕구와 감수성을 가졌건만 어떤 까닭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그런 유혹을 잘 뿌리치고 자신의 힘을 상대적으로 학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로 귀착이 된다. 


이제 오늘 글의 결론에 도달할 때가 되었다. 


한 곳에 그것도 학업에 자신의 능력과 힘을 집중하는 아이 혹은 학생은 주변의 보통의 아이들, 여기저기에 한 눈을 팔고 있는 정상적인 아이들에 비해 공부에 집중해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동기란 것이 그냥 부여되는 법은 드물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까닭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 또는 학생은 그렇게 해야 하는 간절하고 특별한 動機(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동기는 가정 형편이 별로이거나 가난한 탓에 좋은 학교를 마치고 좋은 직장이나 자격증 또는 가령 고시패스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자신의 미래가 있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 학생이라면 갖은 유혹을 꾹 참고 눈앞의 공부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수강료가 엄청 고가인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의 지도 선생들은 엄청난 정보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고 강의 기술도 탁월하기에 학생의 진학 지도에 뛰어나다,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강남 대치동의 유명 학원을 다닌다 해도 그 안에서 어떤 학생은 이른바 SKY에 진학하고 어떤 학생은 실패한다. 그 역시 학생 스스로가 학업에 대한 강한 집착 혹은 동기를 가졌느냐 그 여부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 생각에 최근엔 ‘학종’이란 것 때문에 예전에 비해 가난한 집안의 강한 동기를 가진 아이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수능시험도 예전보다 난이도가 높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푸는 기술이나 숙련도에 의해 성적이 죄우되는 경향이 있어서 이 또한 예전에 비해 가난한 집의 강한 동기를 가진 학생들에겐 더 불리한 것 같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긴 어렵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모든 현실적인 조건을 떠나 강한 동기를 가진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이고 보통의 아이들보다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겠다. 



결핍은 動機(동기)를 부여하고 그러면 노력을 통해 성공한다.



강한 동기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缺乏(결핍)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결핍되지 않은 아이들 혹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기란 실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결핍이 동기를 부여하고 동기를 가진 자는 힘과 방향을 한 곳에 모은다. 그게 바로 노력이고 노력하면 성취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향후 글로벌 경제는 침체 기조로 갈 것이니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의 인구 구조는 역삼각형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 역시 그렇다. 이는 결국 왕성한 투자/소비 인구가 줄고 있다는 얘기이기에 향후 30년간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경제는 침체 기조가 될 것을 예고한다.

 

글로벌 침체는 어떤 면에서 이는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장기간의 평화와 과잉된 글로벌 번영에 대한 역작용 또는 조정기라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OECD 나라들의 內需(내수)가 줄어들 경우 저마다 그 부족분을 수출로 메우려고 필사의 노력을 펼칠 것이다. 이제 수출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비중이 커지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보호무역 또는 신 중상주의 시대?

 

 

그런데 동시에 이 말은 역으로 보호무역 추세가 더 강화될 것이란 얘기도 된다. 무역 전쟁의 시대 또는 일종의 ‘신 중상주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수출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력이 없는 제품은 어려울 것이다. 보호무역이 일반화된다 해도 자국 내에서 만들지 못하는 첨단기술 제품의 수입만큼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수출을 통해 성장해온 대표적인 나라, 하지만 앞으론 수출이 더더욱 중요하다. 이제 수출 의존도를 탈피해보자는 주문은 그야말로 현실성 없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장차의 글로벌 침체 시대에 우리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우리 산업의 수출경쟁력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첨단제품의 개발과 수출이 관건

 

 

현 시점에서 우리의 강점은 단연코 전자산업이다. 전자제품의 수출액은 2017년 기준 중국,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절대량은 1위이지만 핵심 부품은 우리나라에서 수출된 중간재가 들어간다.

 

우리가 글로벌 전자강국인 이유, 아울러 전자제품 수출 강국인 까닭은 전 세계 전자제품 메이커 랭킹 1위인 삼성전자 때문이다. (LG전자나 SK하이닉스도 있지만 매출액 규모에서 각각 삼성전자의 1/4, 1/8 이다.)

 

작년 2018년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은 1,267억 달러로서 전 세계적으로 단일 부품 수출액이 1,000억 달러를 넘긴 것은 세계 무역 역사상 처음이라 한다. 최근 10년간 무역 흑자를 유지하면서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긴 나라는 중국, 독일, 네델란드에 이어 우리 대한민국이라 하는데 그 역시 전자 산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 있어 삼성전자 그리고 전자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산다고 할 때 으레 삼성전자가 빠지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우리 경제가 몇 년 사이 내수가 얼어붙으면서 정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것 역시 전자제품의 수출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LG 화학을 필두로 하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통해 몇 년 이내에 우리의 핵심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로서 수소차는 미지수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산업전쟁 혹은 기업전쟁 시대

 

 

이처럼 여전히 전자가 강세이고 전기차 배터리가 유망하긴 하지만 기술경쟁의 장에선 그 어느 것도 장기적인 미래를 보장할 순 없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 간의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삼성과 애플이 시장을 지배하고 기존의 강자였던 노키아나 모토롤라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보라.

 

예를 하나 더 들자면 항공 여객기 시장 또한 그렇다,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항공여객기 시장에서 프랑스 에어버스사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이 미국 보잉의 중형 여객기 B787 드림라이너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항공수요의 침체로 초대형 A380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2021년 생산을 마지막으로 중단이 결정된 반면 B787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는 글로벌 기업경쟁의 시대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첨단제품 수출과 경쟁력 또한 10년 이후의 저 너머를 예상하긴 어렵다고 하겠다. 그런가 하면 가령 전기차가 급속하게 보급될 경우 휘발유나 경유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인해 정유 기업 쪽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유제품 수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기대는 접어라!

 

 

수출과 관련해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이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해서 전혀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드린다.

 

오래 전 중국이 시장을 개방했을 때 전 세계가 흥분했다. 거대한 인구의 중국 시장이니 면도기 하나만 팔아도 수억 개가 팔려나갈 것이란 기대가 그것이었다. 중국 또한 그 점을 강조하면서 외국의 투자와 기업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중국이 의도한 것은 결국 자본의 유입과 아울러 기술 빼내기였을 뿐, 여전히 중국 내수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사례는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보아도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대 중국 수출 또한 중간제품이 대부분이지 내수시장 제품 즉 소비자 제품의 경우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삼성 갤럭시 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겨우 0.8%, 현대차의 중국 생산 물량은 수익이 의심스럽다. 기껏해야 화장품 정도가 고작인 현실이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무역을 국가 간의 전쟁, 즉 商戰(상전)으로 인식해왔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붕괴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국과 관련해서 얘기할 것은 중국 경제의 붕괴 리스크이다. 실은 이 점이 더 중요하다. 중국 경제의 리스크를 더욱 가중 시키는 요소는 바로 정치, 공산당 1당 독재이고 사실상 시진핑 1인 체제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 역시 날로 정체되고 있지만 정치가 경제에 결정타를 가할 우려는 별로 크지 않다. 현재 민주당 정권이지만 국민들이 싫어하면 대선이든 총선을 통해 바꾸면 그만이다. 나중에 보수야당이 정권을 잡았다 해도 그 역시 싫으면 교체하면 그만이다.

 

정치판은 늘 싸움이고 반대만을 외치지만 결국 선택권은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우면 그만, 그러니 리스크가 적다. 데모크라시의 장점이다. 유권자들의 수준을 걱정하는 이도 있지만 전체로서 볼 때 장기적으로 끝내 어리석은 대중은 없다는 점에서 전혀 걱정할 것 없다.

 

하지만 중국은 정치가 경제를 결정하기에 한 번 빗나가면 되돌리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나 호호당의 예상으로 내년 2020년부터 크게 어려워질 것이라 보는데 거기에 정치 리스크까지 가미되면 상상하기 어려운 충격이 글로벌 경제 전체에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북한 혹은 통일 문제는 단기적으론 오히려 부담이 크다.

 

 

또 하나 북한 문제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미지수, 설령 비핵화가 되고 통일이 된다 해도 30년 이내로만 국한할 경우 오히려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뿐이란 점에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줄어드는 내수 경제

 

 

이제 내수 경제에 대해 얘기해보자.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은 기정사실이다. 인구 감소와 왕성한 투자/소비 층의 감소로 인해 특히 교육시장과 건설 주택 시장은 위축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의 경착륙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현 정부에 의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과 주52시간 근로제의 정착은 그것의 당위성도 크다 하겠으나 동시에 수백만에 달하는 자영업자들과 경쟁력 약한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유발하는 부작용도 가져오고 있다.

 

일자리 문제와 관련하여 나 호호당의 마음이 영 편치 않은 분야가 바로 택배 서비스이다. 우리나라의 홈 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이 급증한 배경에는 택배 서비스 종사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 또 택배 수수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택배 서비스 종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을 중에 을,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보수를 받고 일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최근 10년 사이 생겨난 일자리 중에서 숫자 면으론 가장 많다고도 하겠지만 질적인 면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직장 대략 10년 다니다가 잘리고 그러면 닭 튀기는 자영업 사장하게 되고 또 그러다가 망하면 택배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까닭에 새벽 2시에 치킨 시켜먹는 대한민국, 최고란 말은 전혀 반갑지가 않다. 오죽하면 새벽 2시에도 몇 푼 벌자고 닭을 튀기고 배달에 나서야만 하는가 말이다. 대기업 택배 회사의 직원들이나 파업할 수 있지, 절대 다수의 택배 종사자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현실이 더욱 그렇다.

 

국가의 재정적자는 급속도로 늘어날 기세이고 장차 그를 메워야 할 젊은 세대는 급속도로 줄어드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나마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가고 있기에 전체적인 수지의 균형은 유지한다 해도 내수 규모는 줄어들고 일자리의 질 또한 정부의 말과는 달리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가운데 이미 기득권화된 공무원이나 정규직 노조들은 조금치도 양보할 기색이 없는 2019년의 대한민국이다.

 

 

2024년은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시작점이니

 

 

2024년 甲辰(갑진)년은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나 호호당은 멀지 않아 기존의 양대 정당은 크게 물갈이되거나 아니면 개혁되리라 여긴다. 만만치 않은 과정이 이어지겠지만 우리 정치 또한 때가 되면 우리 식의 ‘제3의 길’을 찾게 될 것이라 본다. 길고 긴 고난의 행군이 되겠지만 우리 모두 때가 되면 마침내 올바른 길을 찾아서 움직이게 되리라 믿는다.

 

 

시리즈 글을 마치면서

 

 

입춘 직전인 2월 3일부터 여섯 차례에 걸친 시리즈 글을 마친다. 쓰면서 후회도 많이 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쓰게 되었나 싶어 많이 힘들었지만 간신히 마무리를 짓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雨水(우수), 하늘과 땅이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 우수에 대청소를 하면 심신이 맑아진다.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할 수 있다. 그간 뜸했던 ‘그림 그리기’도 힘차게 도전해보자는 각오를 다진다. 그간 이 무거운 주제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미소 냉전의 종말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1989년 11월 8일이었다. 그 다음 해 독일은 재통합되었고 미국과 소련 간의 오랜 냉전도 미국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2년 뒤인 1991년 말 소련의 돌연한 붕괴는 그저 에필로그였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희한한 것은 미소간의 냉전은 전 지구촌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자신의 진영, 이른바 ‘자유진영’을 붙잡아 놓기 위해 무지막지한 서비스를 베풀었던 까닭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냉전의 산물이었다, 소련의 위협이 없었더라면 미국이 과연 우리 대한민국을 거들떠보기라도 했을까 싶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은 己巳(기사)년이었다. 그리고 올 2019년은 己亥(기해)년이다. 이제 30년이 흐른 것이다. 


늘 얘기한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순환하고 있기에 30년이 흐르면 원주상의 위치, 즉 位相(위상)은 정반대가 된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부터 30년이 흘렀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흐름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1989년부터 시작된 ‘포스트 냉전 시대’가 올 해 11월로서 끝이 나고 이제 또 다른 글로벌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글로벌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자유로운 運身(운신)이다, 셰일 가스와 막대한 천연가스를 통해 에너지 자급을 이룬 미국이기에 더 이상 중동에 개입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간 맡아온 글로벌 질서 유지의 책임 또한 이젠 명분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익에 근거해서 움직일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자면 최근 베네수엘라 문제가 있다. 예전에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때문에 미국은 신경을 써야 했지만 지금은 굳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명분을 만들어 개입할 수도 있겠고 다른 나라 내부 문제이니 모른 척 해도 그만인 것이다. (사실 이 대목에 관해선 별도의 글이 필요하지만 일단 그냥 넘어간다.)


그렇다면 나머지 나라들은 이제 알아서 각자의 안전과 질서를 책임지는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各自圖生(각자도생)!


또 하나 가능성이 아주 큰 변화는 이른바 인구 구조가 역 피라미드로 변하게 될 나라들, 대부분의 이른바 선진국들은 장기에 걸쳐 경제 불황과 침체를 겪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영국의 탈퇴로 비틀거리고 있는 유럽연합(EU)에게 더더욱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 중국 또한 인구 구조가 무너졌기에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미국의 경우 여전히 신생아 출산이 왕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가장 장래가 약속된 나라라고 하겠다. 


그리고 경제대국 중국의 쇠퇴는 필연적이란 사실이다. 그간 급속한 성장의 후유증으로 몇 년 안에 본격적인 침체 기조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는 중국이다. 중국이 힘을 쓰는 시절은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스쳐 지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과 관련해서



오늘의 글은 글로벌 전체적으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수출과 깊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앞글에서 얘기했듯이 우리 경제의 한 축인 內需(내수)는 그야말로 희망이 없다. 투자/소비를 이끌어갈 인구 유입이 대폭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을 것은 역시 수출인 것이고 그렇다면 향후 우리의 수출 환경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향후 글로벌 정세는 우리 수출에 있어서도 대단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게 된다. 


주요 선진국들이 경제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선 저마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호무역은 조만간 일반화될 것이란 생각이다. 블록(bloc)으로 엮어서 산업을 보호하는 한편 나머지 나라에 대해선 높은 관세를 매기는 방법 말이다. 



첨단기술과 제품만이 살 길이다.



그렇다면 수출을 유지하고 확대할 방법은 단 하나, 다른 나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어서 수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나 기업이 별로 없기에 각 나라가 비록 보호무역을 한다 해도 수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더욱 희소식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해 본격적인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점도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미국이 에너지 수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액화천연가스, LNG가 있다. LNG 운반선은 우리 조선업체들의 강점이 두드러진 분야라 하겠으니 장차 우리 조선 산업이 다시 힘을 내는 데 있어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중국은 품질불량으로 연신 퇴자를 맞고 있고 일본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엘지화학의 배터리 사업이 있다. 특히 자동차 전지 분야는 장차 전기차가 일반화될 경우 향후 우리의 중요한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묘한 대목은 미래의 자동차로서 현대차는 최근 수소차에 기업의 명운을 걸고 나섰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전기차와 수소차가 상호 보완하는 형태로 간다면 그야말로 다행한 일이 아니겠나 싶다. 


개다가 아직까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우리에겐 향후 기대해볼 수 있는 첨단 분야가 적지 않다. 산업용 로봇이라든가 삼성이 곧 출시할 폴더블 폰의 ‘폴더블’ 기술은 다른 쪽으로 많은 응용분야를 만들어낼 것이란 점이다. 그리고 엘지전자가 최근 소개한 롤러블 OLED 텔레비전 또한 미래가 기대되는 신기술이란 점이다. 



글로벌 강소기업에 대한 기대



지금까지는 대기업들의 얘기였지만 사실 우리의 중소기업들 중에는 조만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등장할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크게 희망적이다. 독일 경제의 강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바로 그 글로벌 강소기업 말이다. 


대표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급속도로 발전해오고 있는 기계/부품 산업이 그것이다. 글로벌 수준에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만들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순환의 이치로 풀이해본 그간의 변화와 전망



이제 글을 정리해보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의 철폐는 독일의 재통합에 직결되는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자유진영의 리더인 미국의 찬란한 승리의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로부터 파생된 사건과 일들을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하여 번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60년의 순환에 있어 주요한 마디가 되는 자리들은 12라는 숫자이다. 동시에 18은 12의 1.5배이기에 또한 중요하다. 


1989년은 己巳(기사)년이었는데 12년이 흘러 2001년 빈 라덴에 의한 9.11 테러가 터졌다. 그로서 미국의 글로벌 세계를 대하는 근본 자세가 바뀌었으니 ‘테러와의 전쟁’이 그것이다. 동시에 그간 호황을 누려오던 미국 경제가 피로의 기색을 내보인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미국은 돌연 이라크에 쳐들어갔고 아프간에도 개입했다. 그 바람에 미국은 지금까지도 중동에서 이어오고 있다. 무려 18년에 걸친 초장기의 전쟁이다. 그간 미국의 국력 소모가 엄청났음은 물론이다. 이에 최근 트럼프가 이제 철수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1989년으로부터 18년이 흘렀을 때 미국은 결국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로서 전 세계가 경기 후퇴와 침체로 돌입했다. (그나마 양적완화라고 하는 초유의 조치를 통해 극단적인 상황은 회피했지만 말이다.) 


1989년으로부터 12의 배수인 24년이 흐른 2013년으로서 미국의 국운은 60년 순환의 입춘 바닥을 맞이했고, 그 결과 전혀 새로운 리더인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등장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올 해 2019년은 1989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해, 그렇기에 그때와는 정반대의 位相(위상)에 도달해있고, 그렇기에 새로운 글로벌 시대가 시작된다는 말을 한다. 


1989년으로부터 36년, 12년이 세 번 흐른 때, 2025년은 더욱 중요한 때가 된다. 지금 미국에서 시작된 흐름, 소련 붕괴 후에도 여전히 그리고 지나치게 나머지 세계와 나라들에 대해 개입하고 있던 것으로부터의 철수, 즉 글로벌 세계에 대한 선택적 손 떼기 또는 철수의 흐름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되리라 본다. 


아마도 2025년 무렵은 주한미군의 문제에 대해서도 변동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비핵화가 잘 되어 남북한 간에 긴장이 완화될 경우, 또 중국이 무력해질 경우 그런 일이 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또 그 무렵이면 현재 악화일로를 달리는 일본과의 문제도 잘 정리될 공산이 크다.


인구 구조로 보면 그저 암담한 우리 경제의 장래

 

 

우리나라 인구의 연령별 구조를 보면 대한민국 경제의 장래는 그냥 암담하다.

 

경제는 투자와 소비이다. 투자 자본은 40-60대의 저축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는 25-40대가 왕성하다. 즉 25-60대까지의 연령이 경제의 주축이다.

 

반면 60대 이상의 은퇴자와 25세 미만의 학생과 영유아는 그냥 소비만 하는 이른바 ‘재원 소모자’일 뿐이기에 국가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1년까진 연간 신생아가 100만을 넘었는데 그 이후 감소하더니 2002년부터는 50만 이하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꾸준히 하락해서 작년 2018년의 경우 32만 정도였고 어쩌면 올 해 30만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에 통계청은 2024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경제가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투자 재원을 만들어내는 40-60대도 많아야 하지만 왕성한 소비를 뒷받침하는 25-40대의 연령층이 더 두터워야 한다. 거기에 25세 미만의 연령이 더 많으면 그야말로 미래의 경제까지 탄탄하다. 이른바 인구의 ‘피라미드’ 구조가 그것이다.

 

 

멀지 않아 역 피라미드가 될 우리의 인구 구조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라 중간이 두터운 방추형 혹은 다이아몬드 구조인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신생아의 급감으로 10 년 뒤엔 ‘역 피라미드’ 구조가 된다. 노년층이 많고 나이가 어릴수록 적어지는 구조 말이다.

 

그러면 왕성한 소비를 뒷받침해줄 25-40세까지의 청년층이 극도로 얇아진다는 얘기가 되고 그 결과 지금에 비해 현저한 내수부진 현상이 나타날 것은 기정사실이다. (지금도 이미 내수부진 상태가 심각한 상태이지만 말이다.)

 

2002년부터 출생아수가 50만을 밑돌았으니 그들이 30세가 되어 본격 소비층으로 진입하는 2032년이 되면 극심한 내수부진 현상이 몰아닥칠 것이란 얘기이다.

 

 

이미 충격은 시작되었으니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경제의 내수가 부진해지고 있는 이유도 인구 구조로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1955년생부터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가 이미 맹렬히 은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메르스 사태가 시끌벅적했던 2015년부터 내수부진이 부쩍 심화되었는데 그렇게 된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던 영향도 크다고 본다.

 

우리 경제의 현실 상 평균 60세면 사실상 은퇴한다고 볼 때 금년은 1959년생이 은퇴할 것이다. 1959년생만 해도 100만이 넘고 1955년생부터 계산하면 올해까지 근 490만 명 정도가 빠져나간다. 10년 뒤인 2029년까지 추산하면 추가로 1천만 명이 왕성한 경제활동 인구에서 더 빠져나간다.

 

2015년부터 2029년까지 무려 1500 만의 왕성한 투자/소비 인구가 빠져나가는 반면에 유입되는 숫자는 880만 명에 불과하다. 미처 60%가 되지 않는다.

 

 

현재의 국가 재정 역시 지속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2029년이 되면 60세 이상의 연령층, 더 이상 소득은 없고 그간에 벌어놓은 재산이나 또는 국가의 보조로 생활하게 되는 숫자는 그와 반비례해서 엄청나게 불어날 것이다. 국가의 복지비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커질 것이란 얘기이다.

 

복지비 등의 비용은 稅收(세수)나 국채발행으로 마련되는데, 이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투자와 소비가 왕성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2029년이 되면 투자/소비 계층이 거의 반으로 줄어들 것이니 상황은 정반대가 되고 나라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글머리에서 얘기한 바, 우리 경제의 장래가 암담하다는 말을 한다.

 

최근 기사에 보니 지난해 2018년의 초과세수가 25조4천억으로 사상최대였으며 3년 연속 초과세수라고 한다. 그를 보면서 아, 이제 頂点(정점)을 찍고 있구나 하는 감회가 들었다. 조만간 아니 어쩌면 올해부터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 본다.

 

인근의 일본 경제가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지금까지도 맥을 못 쓰고 있는 이유 역시 결국은 왕성한 투자/소비 계층의 감소, 이른바 단카이 세대의 은퇴를 메울 인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우리의 인구 구조

 

 

그렇건만 우리의 경우 고령화 진행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출생아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출산율 또한 줄곧 떨어지기만 할 뿐 그 사이에 한 번도 반등한 적이 없는 우리 사회인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인구절벽이 온다고 말이 많지만 그건 드라마틱한 이벤트인 것이고, 인구 구조와 경제의 관계를 고려하면 우리 사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2000년대 초반에 지나쳐왔다, 늦어도 2006-2007년 무렵엔 출산율이 회복되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1986년으로부터 30년이 흘러 2016년이 되었으니

 

 

돌이켜보면 1986년 무렵, 수출이 처음으로 흑자를 내면서 달러 사정이 급기야 넉넉해졌고 또 그 무렵부터 뭐든지 만들고 짓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아파트는 분양공고만 내면 즉각 완판, 자동차 역시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가는 시절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수요가 무궁무진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 수출도 펄펄 날고 내수도 만발하던 시절이 바로 1986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에 1986년 11.2%의 성장, 1987년 12.5%, 1988년 11.9%, 이런 식으로 단 3년 만에 우리 경제의 외형이 무려 40%나 불어났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이유는 단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수출이 잘 되면서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를 맘껏 수입해올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또 하나는 바로 이 무렵부터 투자/소비를 이끄는 경제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60년 순환에 있어 30년이 지나면 위상은 반대가 된다. 이에 1986년으로부터 30년이 흘러 2016년이 되자 우리 경제는 그 때의 逆順(역순)을 밟기 시작했다. 수출은 여전히 무역흑자를 유지하고 있어 원자재나 소비재의 수입에 별 어려움은 없다, 그러니 이유는 단 하나, 왕성한 투자/소비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투자/소비를 이끌어갈 주축 경제활동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라고 하는 양적 상황만이 아니라 질적 상황 역시 어려워서

 

 

인구 구조를 경제와 관련지어 얘기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量的(양적) 상황에 관한 것이다. 우리 경제의 質的(질적)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인데, 알다시피 우리 경제의 질적 상황 역시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좋지 않다.

 

가장 소득이 높아야 할 40-60대 계층은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서 과당경쟁으로 인해 저축은커녕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의 악영향으로 인해 유지조자 힘든 실정이다. 게다가 2000년대 중반의 아파트 붐으로 인해 거대한 가계부채를 안고 있어 부동산 가격의 하락 시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위태롭다.

 

뿐만 아니라 25-40대의 경우 2001년부터 시작된 비정규직의 일반화로 인해 소득 자체가 줄어들면서 왕성한 소비가 위축되었으며 최근엔 결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신생아수도 급감하고 있다.

 

게다가 또 문제는 일반 선진국의 경우 25세부터 소비 대열에 끼어들고 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 30세까지 비정규직일지라도 그나마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왕성한 소비층을 20-40대로 보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30-40대로 그 폭이 10년에 불과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 경제의 가까운 미래, 즉 향후 30년 정도는 암담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블로그를 통해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은 2024년이란 얘기를 그간 수도 없이 해왔는데 이제 그 때가 가까워지니 그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해법이나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속 시원한 해법이나 대책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미봉책 또는 임시방편의 대책 정도라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간에 무수히 궁리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번 시리즈 3회에서 언급했던 북한 그리고 통일 문제이다. 하지만 얘기했듯이 남북한의 통일은 그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2500만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오히려 憂患(우환)이고 災殃(재앙)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책에서 제외한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수출이라도 현 수준에서 유지해가는 방법이다. 수출은 실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는데 앞으론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라 본다.

 

그런데 수출에 있어 문제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향후 글로벌 경제는 보호무역이 더 강화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또 다른 글을 통해 얘기하고자 한다.)

 

둘째는 향후 수출은 다른 나라나 기업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첨단 제품이나 첨단 기술이 아니면 수출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보호무역이 강화되면 서로마다 수입을 막고 수출을 장려할 것이기에 저마다 자국 경제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면 장벽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여전히 우리의 동맹국이자 글로벌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종전보다 더 각별하게 유지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장차 다른 글을 통해 얘기하겠지만 미국의 위상은 장차 지금까지보다 더 특별해질 것이고 우리 경제가 생존하고 발전함에 있어 미국의 비중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 가벼운 감기몸살로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제 회복되었기에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볼 생각이다.

북한, 커다란 부담이 되어버린 우리의 반쪽



이번의 시리즈 글은 停滯(정체) 상태에 빠진 우리 대한민국이 장차 어디로 가야 할 것이며 또 어떻게 가야 할지를 살펴보는 내용이다. 


그러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장차 맞이하게 될 환경의 변화, 있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제 문제를 살필 때에도 역시 거시적인 환경을 빼고 국기적인 변수만 살피다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북한이란 존재 그리고 통일에 관한 얘기이다. 



百藥(백약)이 無效(무효)였던 대북한 관계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긴 하지만 북한이란 존재는 보기에 따라 우리에게 있어 실로 골치가 아픈 존재, 성가신 존재라고 말해도 되겠다. 


우리 측에서 무력을 동원하는 일 결코 없을 터이니 핵을 없애자 라고 열심히 설득해도 그쪽 입장에선 그런 제안에 선뜻 동의할 것 같지도 않고, 말로는 없애겠다고는 해도 실제론 어느 세월에? 이다. 마치 정서가 몹시 불안정한 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울러 더 문제는 그 아이가 저 나름 대단히 계산적이고 치밀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대 북한 문제는 역대 정권이 치성을 들일 만큼 들였음에도 여전히 미해결의 숙제 혹은 과제로 남아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역대 정권이 정말이지 어르고 달랬으며 그게 전혀 효과가 없자 한동안 그냥 내버려두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다 썼으며, 미국 또한 유화적인 자세와 함께 국부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순식간에 핵심 시설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등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게다가 북한은 그 사이에 핵과 미사일을 개발 완료하고 실전 배치까지 해놓았다, 버튼이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다고 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그래도 물꼬가 터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북미 협상은 미국이 북한을 나름 봉쇄해놓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쨌거나 트럼프와 김정은이란 아주 특이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이 정도까지 대화가 진척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에 대해선 봉쇄 상태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약간이라도 물질적 지원을 해줘야만 북한이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고 또 북한에 대해선 미국이 절대 북한을 손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미국의 말을 믿어도 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을 설득해오고 있다. 정말이지 문재인 대통령,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에 대해선 현 시점에서 실로 단정 짓기 어렵다. 그간 북한이 보여준 행동은 늘 실망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북한 그리고 비핵화 문제가 잘 마무리되고 타결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넘어야 할 산이 疊疊(첩첩) 또 重疊(중첩)이다. 



남북한의 통합 혹은 통일이 장기적으론 好材(호재)이겠으나



나 호호당 생각에 북한과의 문제가 잘 해결이 되고 더 나아가서 남북한이 하나로 통일이 될 경우 장기적인 견지에선 그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이 도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엄청난 발판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시야를 30년 이내의 단기로 좁힐 경우 북한과의 통일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일이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덧붙이면 자연순환의 견지에서 역사를 살피는 나 호호당에게 있어 30년은 문자 그대로 짧은 기간이고 60년 이상은 되어야 장기란 생각을 갖고 있다.)


남북한이 통합된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가상해본다. 



1990년 동서독 재통합 사례



먼저 1990년 독일의 재통합 사례를 보자. 


당시 서독의 인구는 6,325만이었고 동독의 인구는 1,611만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동서독 인구의 비가 4대1이었다. 시쳇말로 ‘쪽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1인당 소득수준을 비교해보자. 명목이 아닌 실질 GDP 기준으로 1990년 재통합 당시 서독의 1인당 소득은 18,690 달러였고 동독은 9,193 달러였다. 서독이 동독의 2배였다. 


따라서 서독이 인구는 4배, 소득은 2배였으니 서독이 동독에 비해 약 8배 규모였다고 할 수 있다. 


약간 놀라운 점은 동독 경제가 낙후되었긴 했으나 1인당 소득 면에서 그래도 서독의 절반은 되었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우리에겐 특히! 



남북한 통일을 단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면 이제 남북한의 비교로 돌아와 보자. 


인구는 우리 남한이 5천만이고 북한은 그 절반인 2천5백만이다. 미국 정부 자료에 나온 구매력 기준(PPP)에 따를 것 같으면 우리는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 정도이고 북한은 1,700 달러라고 되어있다. 


북한의 1인당 소득 1,700 달러는 우리의 4만 달러에 비해 4.25%에 불과하고, 인구수를 감안한 총 규모로 볼 것 같으면 2.12%, 즉 우리 경제력 규모의 1/50에 불과하다. 


(이처럼 경제규모에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까닭에 북한은 돈이 많이 드는 재래식 군사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오로지 핵 개발에 매진했던 것이라 하겠다. 나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런 수준에서 남북한이 정치 경제적으로 통합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한 번 상상해보라. 그냥 일대재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의 남북한 통일은 결과적으로 5천만 인구의 우리가 북한의 2천5백만 명에 달하는 難民(난민)을 받아들이는 결과나 같지 않겠는가. 


독일 재통합, 즉 서독과 동독의 통합은 그래도 동독의 소득수준이 서독의 절반 정도는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1900년 재통합 이후 서독 지역의 중산층들은 세금이란 명목으로 소득의 막대한 부분을 탈탈 털렸다는 심정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독일 교포로부터 통합 이후 소득을 엄청나게 세금으로 뜯겼을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고금리 정책 때문에 이자 부담도 막대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괜히 통합이란 것을 해가지고선 국민들 ‘개’고생 시켰다는 것이었다. 


독일이 저럴진대 우리 경제규모의 1/50에 불과한 북한이 우리와 통합된다고 가상해보면 그 결과는 그냥 災殃(재앙)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우리 쪽은 인구가 줄어들고 노령화가 되고 있어 미래세대가 짊어질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2,500만의 군식구 또는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그게 재앙이 아니면 뭣이겠는가? 


1990년 독일의 재통합만 해도 그토록 서독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남북한이 짧은 기간 내에 통합이 된다는 것은 실로 상상을 불허하는 일이라 하겠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한의 관계개선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정작 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해서 통일하게 된다 하더라도 또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같은 민족의 두 나라가 되어 그냥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말이지 절묘한 곡예를 펼쳐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통합에 따른 각종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 처음엔 같은 민족이라고 환호하겠지만 조만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사실상 조선왕조 시절의 유교적 전통과 권위적인 풍토가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고 우리는 어쨌거나 민주화되고 또 상업화되고 돈이 최우선인 사회가 되었으니 그 간극은 미처 상상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목전의 우리 경제가 停滯(정체) 일로를 가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북한과의 통합은 그 어려움의 정도가 실로 대단할 것이 틀림없다. 



The long and winding road!



우리 대한민국, 남북한을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의 우리 한겨레는 장차 첩첩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할 것이며 그 사이를 끼고 흐르는 무수한 깊은 강을 건너가야 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라 본다. 방법은 모르겠으나 그래야만 길게 볼 때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이 지속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당장은 너무 막연하다, 막막하다, 북한은 우리에게 이래저래 너무나도 큰 부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 글의 제목에 어디로? 란 표현과 함께 어떻게? 란 말을 집어넣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앞길은 멀고 구부러진 길, the long and winding road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