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새 해가 탄생했으니

 

  

한 해의 가장 어둔 곳이자 깊은 深淵(심연)인 동지가 지났다. 늙은 해는 깊은 연못에 들어가 죽었고 베이비 해가 태어났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인데 서구에선 동지와 크리스마스를 하나로 묶어서 취급한다, 그냥 미드윈터(Midwinter)이고 크리스마스 연휴는 사실상 동지부터 시작된다.

 

중앙아시아의 탱그리 문화에서도 동지를 해가 새롭게 태어난 날이라 해서 날도칸(nardoqan)이라 하는데 여기서 ‘날’은 우리말의 해를 뜻하는 날과 같은 말이다. 그런가 하면 고대 로마에선 農神祭(농신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해서 가장 큰 축제 명절이었다.

 

크리스마스하면 예수님이 태어난 날 즉 성탄절이지만 그 역시 동지에 이르러 베이비(baby) 태양이 태어난다고 여기던 오랜 문화적 전통의 연장선에서 생겨났을 뿐이다. (예수님의 진짜 생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 동지와 오늘을 비교하니 해시간이 1분 더 길다. 일출 시각은 7시 43분으로 같았는데 일몰이 오늘 5시 18분으로 어제보다 1분 더 늦다. (초로 따지면 1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내겐 참으로 힘들었던 한 해

 

 

나 호호당에게 2023년은 나름 많이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60대 중반을 넘으면서 생겨난 허리 디스크와 이석증, 어지럼증, 피부의 이상한 자극 등등 몇 가지 증세로 인한 통증과 스트레스, 여기에 담배 금단 증세까지 더해져서 꽤나 우울하고 힘들게 시간을 보냈다. 간단히 말해서 사는 게 苦役(고역)이었다.

 

참으로 강건하던 내 몸이었고 지칠 줄 모르던 체력이었는데 삽시간에 이렇게 망하다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순 없으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실 금연한 것도 그 대책 중의 하나였지만 당장은 힘든 게 더 많았다.)

 

 

궁리 끝에 두 가지 방법을 택했으니 

 

 

결국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명상 또는 수련이라 부르는 것, 국내에선 단전호흡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것의 기본은 道敎(도교)의 內術(내단술)인데 이를 수련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겨울이 되어 아파트 단지 외곽을 돌아가면서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이 그것이다. 시작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20일 경의 霜降(상강) 때부터였다. 단지 안의 고양이들은 캣맘들이 있어서 괜찮다. 그래서 새들에게만 내년 초여름 5월 小滿(소만)까지 6개월간 모이를 주기로 했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모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겨울엔 새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다. 

 

기본은 보리쌀과 쌀, 해바라기 씨앗, 이렇게 3가지를 섞어서 준다. 여기에 먹다 남은 마른 음식이 있으면 함께 넣는다. 대략 2.5 킬로그램 정도의 분량을 들고 나가서 뿌려준다. 하루 비용이 대략 1만원이 조금 안 되는 것으로 계산하는데 담배를 끊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갈음이 된다.

 

매일 해가 뜰 무렵에 나가서 모이를 주었는데 최근 강추위 탓에 아침 10시에서 정오 사이에 주는 것으로 루틴을 변경했다. 그런데 이게 왜 우울증에 대한 방책인가? 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뭔가를 먹이고 돌보는 일은 즐겁고 우울한 삶에 큰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새들은 기억력이 좋다, 동네 까치나 까마귀는 물론이고 비둘기들, 그리고 이름 모르는 여러 새들까지 해서 모두들 모이 주는 나 호호당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까치 한 마리가 망을 보다가 비닐 지퍼백에서 모이를 한줌 집어서 정해진 장소에 내려놓으면 깍-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치고 그러면 순식간에 까치들이 날아든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모이를 놓아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후 비둘기가 날아들고 거의 동시에 숲속 가지에서 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와 박새,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이 날아든다. 까마귀도 온다.

 

아파트 외곽 산책길로 해서 1.5 킬로미터에 걸쳐 모이를 뿌려주면서 돌아온다. 그러면 수백 마리의 새들이 연신 소리를 지르며 내려앉아선 열심히 모이를 쪼아댄다. 그 바람에 나 호호당은 우면동 아파트 단지의 새들 양아버지가 되었다. 흐뭇하다, 내가 너희들 애비다, 많이 먹어라, 내 새끼들아!

 

수련은 내 몸을 養生(양생)하는 방법이지만 새들 모이 주는 것 또한 나 자신을 넘어선 생명 전체의 관점에서 그를 더하고 늘리는 방법이니 그야말로 좋은 양생법이라 여긴다.

 

2024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동갑내기인 집사람 말로는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그간 뭘 했다고 벌써 70이 되었을까?

 

 

이젠 진짜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며칠 전 주중에 아주 추운 날 대학 과동기 모임을 했다. 한 친구가 말하길 우리 나이에서 기대수명은 82세라는 것이었다. 현재 만으로 68-69세 정도니까 13-14년 정도가 餘生(여생)이란 얘기였다.

 

살아봐서 익히 알고 있지만 10년 세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니 그날 동창회 모임에 나온 모든 멤버들은 이미 날 받아놓은 거나 다름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 호호당 역시 말로는 운세가 받쳐주고 있으니 아흔까지 살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갈 수 있느냐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소식을 들어 알게 되었으니 불교학교의 훌륭한 학자이신 김성철 교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타계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 양반 아직 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면서 생일을 검색했더니 1957년생, 나 호호당보다 2년 후배인 셈인데 참 일찍 떠났구나 싶다.

 

생년월일을 검색해보니 1957년 11월 8일이라 되어 있다. 그 나이면 아마도 음력일 것 같아서 사주를 뽑아보니 그럴 것도 같다. 일단 심장 기능이 좀 약해 보인다, 그리고 2014년이 입춘이란 점이다. 그러니 올 해는 춘분 직후이니 능히 갈 법도 하고 또 심장마비도 납득이 간다.

 

아쉽긴 하지만 몸 고생 많이 하지 않고 순간에 떠났으니 한 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선생, 잘 가시오! 윤회를 부정하면 불교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주장하신 분이니 다시 좋은 곳에서 태어났겠지요.

 

 

그럼에도 새로운 여정을 기대하는 호호당

 

 

사실 나 호호당은 2024년에 대해서 적지 않은 기대를 품고 있다.

 

1994년 4월부터 시작된 오랜 방황의 여정이 이제 내년 4월이면 30년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제 또 다른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새 해는 이미 동지 다음날인 오늘부터 이미 준비(?) 또는 시작되고 있다.

 

부디 독자님들과 독자님들의 가정에 안녕과 행복, 새로운 희망이 가득차기를 바라면서 연말 인사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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