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잘도 가는 까닭은 

 

 

시간이 잘도 가고 세월도 잘 간다. 하루란 시간 간격이 정말이지 국수 삼키듯 후루룩 지나간다. 이는 생활이 나름 편하다는 얘기이고 큰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 하루하루가 전투의 날이고 결전의 순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런 날들을 보내봤기에. 그런 까닭으로 이렇게 살 수 있으니 그저 하루하루 고마울 따름이다.

 

간밤에 생각했다. 왜 이렇게 세월이 금방 가는 걸까? 창밖에 달이 둥그렇게 떠 있어서 화실의 등을 끄고 앉았노라니 달빛이 방안에도 찾아들었다. 아, 나는 ‘루틴’이 많구나, 그래서 하루가 금방 가는구나 싶었다.

 

 

데일리 루틴 

 

 

아침 8시 반 기상, 세라젬으로 척추를 펴고 단백질 분말 반 컵에 칼슘 한 알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9시, 증시가 개장하면 잠시 본다. 그런 후에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갔다 오면 10시, 온 집안에 흰 강아지 털이 날리니 정전기 청소포로 거실과 안방을 쓸고 물걸레 자루를 가져와 닦는다. 그러면 땀이 나고 열이 오른다, 시원한 보이차 물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증시를 잠깐 보면서 거래 여부를 판단해본다. 11시 정도가 되면 수채화 종이를 화판에 테이핑해서 스트레칭을 한다. (가급적 밤까지 기다려서 완전히 말려야 한다.)

 

11시 반, 아점을 먹은 다음 설거지를 마친다. 사실 물 적시는 것을 좋아하기에 설거지를 즐긴다. 어머니가 계실 땐 눈치가 보여서 참았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한다. 그리고선 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화실 모니터 앞에 앉는다. 증시를 1-2분간 살펴보고 하루 일정도 확인해보고 잠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그림에 손을 댄다. 그러다가 화장실 가서 일을 보고 샤워를 하고 오후 1시 반 정도에 집을 나선다. 고맙게도 아내가 차로 작업실까지 태워다 준다.

 

작업실 나가서 상담이 있는 날엔 상담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다. 물론 그 사이에 간단히 뉴스도 확인하고 구글에 들어가 해외소식도 좀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본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보고서를 읽기도 하고 최근엔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소위 “중국 견제법” 전문을 모두 읽어보았다. 무려 281쪽에 달하는 내용이라 중국에 대해 미국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혹시 관심 있다면 구글에 가서 “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 | SLC | download”, 이렇게 치면 전문이 나온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약속이 있는 날은 사람을 만나고, 아니면 근처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소화시킬 겸 교보문고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귀가한다. 8시 반이 되기 전에 버스를 타야 한다.

 

집에 가면 강아지들의 강렬한 환대-주로 뽀뽀와 배 만져주기-를 받은 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그러다가 밤 10시가 되면 아내와 아들, 강아지들과 함께 전 가족 산책을 나간다. 11시 경엔 아들과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고 아들이 야식거리를 만들면 조금 먹기도 한다.

 

12시가 되면 슬슬 하루를 마무리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루의 증시 내용을 살펴보고 글을 쓰기도 하며 그림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아니면 책을 좀 더 본다. 1시 반이 되면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잠깐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최근엔 이 구역의 미친 X가 재미가 있었고 일본 애니 “오늘부터 신령님”이란 시리즈를 하루 한 편씩 보고 있다.

 

나 호호당은 일본 妖怪(요괴)물을 엄청 좋아한다. 요괴 이야기는 공포스럽지가않다. 오히려 요괴나 정령들은 귀엽고 애교가 있다. 요괴에 대해 일본사람들이 가진 관념이랄까 아니면 문화를 애호한다. 중국의 “수신기”라든가 “당송전기” 그리고 “요재지이”는 아무래도 옛날 것이라 일본 요괴물보다는 덜 흥미롭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책 읽고 상담하고 때론 사색하고 간간히 사람 만나고, 이게 전부이다. (그러니 텔레비전은 야구 중계를 잠깐 보는 것을 빼면 거의 보지 못 한다.) 거의 매일 이 루틴들의 반복이다. 그러니 시간이 잘도 가고 하루가 금방 가며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거의 없다.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걱정도 해가면서 살아야지

 

 

물론 걱정거리가 없진 않다.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견디고 기다리고 참다 보면 해결이 된다.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이 된다.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게 문제일 수 없다, 어떻게 애를 쓰고 노력하면서 길을 찾다보면 이윽고 길을 만나게 되니 그건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해결책, 또는 솔루션이란 것을 좋아하는 미국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가 지났으니 만물이 활개를 치는구나

 

 

계절은 夏至(하지)를 지났으니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열이 오르고 수분이 땅속에서 공기 속으로 맹렬히 증발하고 있다. 벼는 물론이고 갖은 풀들이 서슴없이 자랄 것이고 벌레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가 지나면 만물이 모두 부지런만 떨면 먹고 사는데 별 문제가 없어진다. 예전 농민들은 하지감자를 삶아서 배불리 먹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지로서 모든 생명들이 활개를 친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면서 말이다. 일제 약진의 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운 상으로 1987년이 하지였다. 우리가 먹고 살만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자 마침 아파트 붐이 일었다. 이젠 나이가 든 가수 윤수일 씨가 “아파트”란 노래를 부른 것은 1982년이었는데 이미 5년 전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미리 알리는 대중가요 

 

 

대중적으로 빅 히트를 치는 노래는 새로운 시대를 미리 알리는 일종의 嚆矢(효시), 즉 전투를 시작할 때 쏘던 화살, 살촉에 속이 빈 깍지를 달아 붙였기에 날아가면서 강렬한 파공음을 내는 화살과도 같은 것이다.

 

방탄소년단, 나로선 전혀 관심이 없지만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워낙 열광을 해대니 노랫말을 가끔 음미해 보기도 한다. 2013년에 나온 첫 앨범의 타이틀 곡이 No More Dream.

 

시시한 꿈이나 강요된 희망을 억지로 가질려 하지 말고 그냥 너답게 삶을 살아보라고! 하는 얘기이다. 이젠 더 이상 꿈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거, 즉 “이생망” 세대들을 위한 노래, ‘희망이 없지만 혹시 모르잖아, 네 식대로 하다 보면 뭔가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니? 하는 얘기이다.

 

2013년의 노래 역시 2018년을 미리 노래했다고 볼 것 같으면 우리 국운의 小寒(소한), 겨울 추위가 본격화되는 때이니 실로 시국과 잘 맞는다. 오늘에 이르러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누구인들 꿈이 있겠는가 말이다.

 

 

2007년으로서 글로벌 경제는 '아작'이 났으니 

 

 

사실 글로벌 경제는 2007년 미국 금융위기로 해서 ‘아작’이 났다. 디플레이션을 감추기 위해 돈을 남발하고 있는 오늘이다.

 

이 대목에서 약간 심각한 얘길 좀 하면 이렇다. 미국이 달러가 곧 금이던 시절을 정식으로 포기한 것은 1971년이었다. 辛亥(신해)년, 그리고 36년이 흘러 2007년 丁亥(정해)년이 되자 금이 아닌 종이돈 달러가 과잉으로 넘쳐나면서 금융위기가 닥쳤다. 모든 사물은 36년이 경과하면 어떤 결정적인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바로 종이 달러가 사실상 절대적인 가치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챈 결과로서 일종의 부산물이다.)

 

미국 연준은 더 많은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위기를 일단은 해결했다, 참으로 기발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연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의 후속 대책이 없다.

 

 

총결산의 날이 올 것이니

 

 

그러니 총결산의 날이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문제를 지연시킬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란 얘기이다. 그 결산은 아마도 2025년부터 시작되고 2031년경이면 마무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보고 있다. 미국으로선 그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자빠뜨려야만’ 한다고 단단히 作心(작심)을 한 것 같다.

 

세계제패의 꿈을 꾸던 중국 또한 자빠져서 코가 깨질 준비를 다 마쳤다. 난데 아닌 황제 체제가 되면서 모든 언로를 다 막아 놓았으니 그야말로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격이다. 며칠 전 초강경 논조의 중국 관영 영자신문인 “글로벌 타임즈”의 책임자가 너무 약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는 이유로 경질되었다고 한다.

 

새롭게 자리에 앉은 사람은 보나마나 “이 구역의 미친 X”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잘 하는 짓이다.

 

나 호호당 개인의 삶은 루틴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느낌만 든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으면 첫 부분에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의 언덕과 숲 사이로 가다 보면 드라큘라 백작의 성이 나온다는 소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란실바니아, 뭔가 울림이 있는 이름 아닌가!  뜻을 찾아보니 '숲 너머 저쪽'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구글 어스에서 찾았고 정취가 있어서 그렸다. 올 가을 전시회를 준비해서 맹렬 정진이다. 하루에 두 장씩 그린다. 8월부터는 작품을 준비해야 하니까. 다 올리진 못 한다, 독자들이 질려할 것 같아.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일도 없을 것이다. 담배를 참을 수 없는 터라 그냥 저런 곳이 있구나 한다. 그리면서 즐거웠다. 독자들도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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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여름, 수시로 천둥번개에 소나기가 지나간다. 물 나간 바닷가, 사람들이 물가에서 놀고 있다. 날은 저물고 있다. 아침 시각 집안 청소를 마치고 그냥 무심하게 종이에 칠을 하다가 이걸로 뭘 그리지? 하다가 전에 본 사진이 기억나서 그렸다. 서해안 어디일 것이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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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가장 지극한 곳에 이르렀으니 

 

 

오늘은 夏至(하지), 여름이 가장 至極(지극)한 곳에 이르렀다. 해가 가장 긴 날이다.

 

오늘 서울에서 해는 05시 11분에 떴고 저녁 7시 54분에 진다. 하루 길이가 1440분인데 해가 떠있는 시간이 무려 1003분이니 일조시간이 하루의 70%나 된다. 밤은 겨우 30%. 오늘 점심 무렵 해가 남쪽 하늘 중앙에 가장 높이 떴을 때의 고도는 무려 근 76도, 해를 보려면 목을 완전히 꺾어서 하늘을 올려다봐야 한다. 볼 것 같으면 아마도 현기증이 날 것이다.

 

至極(지극)하다는 것은 어떤 무엇이 그것의 최고 최대치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지극한 곳에 닿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와 반대되는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 때마다 그리고 동지 때마다 아! 하고 감탄하고 또 感動(감동)한다. 極限(극한)이란 것만으로도 그렇다.

 

 

극한이란 것

 

 

수학을 잘 알진 못해도 그것이 극한의 값을 상정해내고 또 그 극한의 값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수학에 대해 畏敬(외경)의 마음을 갖는다. 수학은 감히 쉽게 넘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숫자인 0과 1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찔해진다. 1이란 숫자,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지만 너무나도 비범하다.

 

가령 1.001이란 숫자를 무한히 제곱하면 무한대로 커진다. 하지만 1이란 놈은 제 아무리 제곱해고 또 제곱해도 그 값은 1로 남는다. 1보다 조금만 크면 무한히 커질 수가 있고 1보다 조금만 적어도 무한히 0에 수렴하지만 1은 절대 불변이다. 어떤 이유에서 1은 무한히 제곱해도 1로 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0 이란 숫자는 아시다시피 툭 하면 不定(부정)이라 하고 또는 不能(불능)이라 하면서 접근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神聖(신성) 혹은 禁斷(금단)의 영역이다.

 

이처럼 가장 쉬운 숫자인 0과 1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에 나 호호당은 수학자들이 꽤나 시건방을 떨어도 그냥 외면하거나 못 본 척 한다. 그들 역시 성직자들인 까닭이다.

 

 

夏至祭(하지제)를 올리나니 

 

 

잠시 전 낮 12시 30분을 조금 넘길 무렵, 해가 남쪽 하늘 가장 높이 떴을 무렵에 방충망을 열고 해를 치켜다 보았다. 목을 완전히 꺾어서 올려보니 해는 天頂(천정) 가장 높은 곳에서 강렬한 빛으로 자신의 둥근 몸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내 몸을 제대로 볼 것 같으면 진한 색안경을 쓰시든지.

 

잠시 남쪽 창가에 시원하고 차가운 물을 한 잔 놓고 두 손을 모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해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하지의 祭(제)를 올렸다. 나 호호당은 세상 만물 모든 것에 神性(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믿는 사람이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하지제 즉 미드섬머, Midsummer를 지낸다는 사실.)

 

저녁 9시 30분, 밤 시간이다. 아까 보니 해가 진 뒤 30분이 지나서야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음을 확인했다. 긴 해가 저물었고, 오늘 떴던 저 해를 다시 보기까진 또 다시 1년이 걸릴 것이다.

 

 

하지로서 한 해의 전망과 미래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기에 

 

 

이제 그러면 자연순환과 운명의 관점에서 하지에 대해 약간 얘기해본다.

 

해마다 하지가 되면 한 해의 전망, 달리 말하면 견적서가 명확하게 나오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하지에 생기는 일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전체적으로도 향후의 흐름을 전망할 수 있게 한다.

 

가령 예컨대 영국이 EU 탈퇴를 놓고 찬반투표를 했던 것은 2016년 6월 23일, 거의 하지였는데 그 투표에서 탈퇴 쪽으로 결론이 났고 이에 마침내 2020년 1월 정식 탈퇴했다. 브렉시트는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향후 글로벌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 하지의 변화와 조짐들

 

 

올 해의 경우 G 7 정상회담이 영국의 콘월 바닷가에서 개최되었던 바, 이번 회담의 핵심 이슈는 反(반)중국이었다. 뿐만 아니라 6월 초 중국 충칭에서 열린 중국과 아세안간의 협력 회담 역시 중국의 의도가 불발되고 말았으며 미국은 이른바 쿼드를 결성해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최근 외교부 발표를 보면 그렇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조화로운 발전 입장 아래 중국과의 소통을 지속하겠다”고 한다. 미국의 액션 없이는 당신들과 뭔가 해볼 여지가 없으니 양해바람이란 뜻이다.

 

이처럼 사실상 글로벌 전체가 사실상 反(반)중국으로 돌아서고 말았기에 향후 3-4년이 지나면 중국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중국의 패권도전은 확연하게 제동이 걸렸으며 심지어는 상당 기간 동안 쓰라린 맛을 보게 될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중국을 꺾어놓으려는 미국 입장에서 “차이나 바이러스”란 문구는 전 세계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있어 결정적인 好材(호재)가 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슈는 G 7 정상회담 자리를 통해 보여준 바와 같이 한일 관계는 이제 위험한 단계는 지났어도 여전히 냉각기가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바이든이 너희들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마! 하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내년 새 정부가 들어서야 진전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문제 또한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연장했다. 사실상 올 해로선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면에서 올 해 하지에 생겨난 변화 중에 하나가 미국의 금리 논쟁이다. 하지만 이른바 FOMC, 즉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존 윌리엄스 미국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21일자로 통화정책의 긴축 전환은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봐서 금리 인상은 아직 아니라고 봐야 하겠다.

 

하지만 내년 하지 무렵이 되면 금리인상 문제에 대한 답이 확연해질 것이라 본다.

 

다만 우려되는 것 한 가지는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가 하지 무렵에 와서 이슈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비드 19와의 전쟁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판단이 든다. 신약 노바백스가 어느 정도 해주느냐에 달려 있지 않은가 싶다.

 

 

사람 역시 하지의 운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이처럼 하지 무렵에 생겨나는 변화는 시간을 두고 좀 더 구체화되면서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60년 운세 흐름에 있어서도 입춘으로부터 22.5년이 경과한 하지의 상황을 보면 향후의 흐름을 이미 그 속에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얼마 전 유튜브에 보니 조던 피터슨이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탁월한 생각이라 본다. 특히 사람의 운명에 있어 60년 순환의 하지 운에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느냐 하는 점, 바로 그게 그 사람의 미래 비전(vidion)이기에 그 사람은 그를 향해 움직일 것이니 그로서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 난다고 나 호호당도 생각하기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에 보이는 것, 실은 그게 전부이다. 남은 것은 그 본 것을 향한 움직임만 있을 뿐이다. 물론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여가려면 힘이 들고 노력이 필요하며 도중에 무수한 장애물과 만난다. 그래서 삶은 苦生(고생)이다.

 

지금 이 시각은 어제 하지로부터 근 24시간이 지난 22일 점심 시간이다. 여전히 해가 길고 또 길다. 지금이라도 고개를 들어 중천의 해를 한 번 바라보면서 올 한 해 나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시길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작업실 건너편 먹자 골목의 풍경, 카페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찍은 사진으로 그렸다. 이 일대는 분위기가 묘한 동네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동네이다. 그림 속의 오른 쪽 담배 피우는 남자가 왼쪽 남자에게 살짝 다리를 꼬으면서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흥미로웠다. 나 호호당은 이 길거리에 있는 수제 버거집을 자주 찾아간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커피 전문점이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흥미롭다. 커피 종류가 워낙 많아서 어떤 걸 마시는 게 좋겠냐고 물었더니 살짝 썩소를 짓는 것이었다. 뭐 이런 커피라곤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작자가 왜 내 가게에 찾아와서 그러는 거지? 하는 표정. 커피의  신성한 전당에 무례하게 찾아들어간 느낌이 들어 그 다음부턴 절대 가지 않는다. 재미난 동네이다. 요즘 선으로 그리고 담채하는 재미가 나서 연일 그리고 있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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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이태원 우사단길의 한광교회 길에 올라 이슬람 서울 중앙 성원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겨울 해질 무렵의 모스크 정면의 저 푸른 색, 코발트 블루가 내 망막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거리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온통 전선줄. 여기저기 전봇대, 자그마한 가게들, 언젠가 그려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내일이 하지, 해가 가장 긴 날에 겨울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림은 환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그럼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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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는 물주사가 아니었다. 

 

 

어제 아침 ‘아제’를 맞았다.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오후까지 전혀 특이사항이 없어서 혹시 이거 물 주사 아닌가? 하며 약간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저녁 에 그림을 한 장 그리니 망쳤다.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은 몸이 시원치 않을 조짐. 이 때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어야 했는데...

 

밤에 오한이 나고 추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기요를 다시 꺼내서 깔고 잤다. 그 때 역시 타이레놀을 먹었어야 했는데 잠에 취해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완연한 몸살, 머리가 무겁고 등판이 뻑적지근, 어쩐지 물주사는 아니었구나! 이에 타이레놀을 한 알 먹으니 한 결 편안해졌다.

 

결론, 백신은 역시 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걱정인 것이 인도 발 변이가 기승을 부린다니.

 

 

아침 루틴

 

 

이에 평소의 아침 루틴을 그대로 했다. 강아지 산책, 집안 청소, 아침 기도,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책을 펼쳐놓고 읽는다. 책은 도처에 놓여 있다. 화실 모니터 옆에 한 권, 화실 창가에 한 권, 식탁 뒤 수납공간에 한 권, 화장실에 한 권, 침대 머리맡에 한 권, 수시로 바꾼다. 작업실에 나가면 모니터 옆에 두어 권. 평생의 버릇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영국기업사, 1650-2000”, “위진세어”, “스페인사”, “유럽사 이야기”, “비잔티움”, 이렇다.

 

 

영국기업사, 1650-2000

 

 

"영국기업사"는 국내 학자가 지은 책인데, 산업혁명 당시 영국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 발전했으며 경영관리라든가 노사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 대목이다.

 

하나는 당시 영국의 해외 식민지들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보다 영국 국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더 나빴다는 지적이 있어 흥미롭다. 또 하나는 1900년대 초반 미국과 독일은 거대기업이 되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간 반면 영국 기업들은 왜 어떤 이유에서 가족기업 수준에서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았는가 하는 대목이다. 저절로 ‘경로의존성’이란 단어가 생각이 난다.

 

경로의존성, 그토록 잘 나가던 일본 기업들이 오늘날 저 모양인 것, 중국은 결국 황제 체제로 회귀하다는 점,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우리의 사회관습과 문화 속애 내재된 문제점들이 장차 우리의 발걸음을 묶어 놓을 것이란 걱정을 지울 수 없다.

 

 

魏晉世語(위진세어)

 

 

魏晉世語(위진세어)란 책은 그간에 접한 적이 없다. 책을 보니 원본이 망실되었기에 국내 중문학자가 진수의 三國志(삼국지), 이른바 正史(정사) 삼국지에 註釋(주석)을 달았던 배송지의 책에 인용된 내용들을 주로 모아서 엮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내용인 즉 삼국지의 조조가 활동하던 魏(위)나라와 그 이후 사마 집안이 세운 晉(진)나라 당시의 얘기들을 모은 것이다. 일찍이 世說新語(세설신어)는 여러 차례 원문으로도 읽고 번역본으로도 읽었지만 그 책과 시대가 비슷한 탓에 즐겁게 읽고 있다.

 

 

“스페인사”

 

 

“스페인사”는 까치에서 번역 출간한 책인데 그간에도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다. 서구의 스페인 역사 전문학자들의 글을 모은 책이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스페인 역사에 관한 책은 두루 다 읽어보았지만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화려했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스페인 제국이 어쩌면 저렇게 쉽게 몰락했을까? 하는 점을 묻고 있지만 저자의 생각은 그 반대, 스페인은 출발부터 세계 제국이 되기엔 여러 모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 정도까지 팽창했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것이다. 대영제국을 두고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어찌어찌하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제국’이란 표현이 있는 것과 같은 지적이다.

 

 

“유럽사 이야기”

 

 

“유럽사 이야기”는 정말이지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저자가 바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란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을 지은 D. H. 로렌스인 까닭이다. 최고의 글쟁이가 유럽사의 중요한 대목들에 대해 너무나도 흥미롭고 생생하게 당시의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으니 그렇다.

 

로렌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그림처럼 생생하거나 아니면 과학처럼 전후관계가 명확해야 한다고. 전자를 감성의 역사라 한다면 후자는 이성의 역사라고. 로렌스의 책은 생생한 역사 즉 감성의 역사이다. 하지만 감성의 역사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私的(사적)인 얘기를 많이 창작(?)해서 넣으면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책은 생동감으로 넘친다.

 

십자군 전쟁, 또 로마 교황청이 어떻게 권력을 잃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박력 넘치는 글을 쓰고 있다. 로렌스는 역사를 꾸준한 진보로 보는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민중사관이라든가 영웅사관 모두 배척하면서 역사란 그저 인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숲과 같을 뿐이란 얘기이다.

 

국내 번역 출판의 제목은 “유럽사 이야기”이지만 원제는 “유럽사의 움직임” (Movements in European History)이고 1921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간행했다.

 

이 책은 로렌스가 생활비 마련 차원에서 썼다고 한다. 천재는 역시 생활이 궁핍해야지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다. 배부른 천재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남기는 게 적을 것이니 말이다.

 

구글에 가서 영문 제목을 치면 영어 원문 전체가 올라와 있다. 시간 나면 천천히 한 번 읽어볼 생각도 든다. 물론 아마존에서 책을 구독할 수도 있다.

 

책을 거의 다 읽은 마당이라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 역사를 저처럼 멋지게 써낼 작가는 언제쯤이면 나올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국사학자들의 많은 연구가 아직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비잔티움”

 

 

마지막으로 “비잔티움”이다. ‘글항아리’란 곳에서 번역했다. 천년 이상 존속된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책을 그간 여러 권 읽어봤지만 골치 아픈 것은 황제들의 이름이 늘 똑 같아서 연대기 순으로 기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고 중요한 주제 별로 소개하고 있어서 술술 읽힌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입문서로서는 최고의 책이 아닌가 싶다.

 

얘기가 나온 김에 책 한 권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란 책이 그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유난히 글로벌했던 唐(당)제국 당시 여러 타국들로부터 수입된 다양한 문물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미국 중국학 연구가의 力作(역작)이다.

 

최근 번역 출간되었는데 읽다 보니 너무 재미가 있어서 700 페이지나 되는 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버렸다. 여전히 흥미롭고 두고두고 또 읽어볼 것 같다. 미처 소개하진 못하지만 진짜 재미가 있다. 우리와 관련되는 내용도 풍부해서 더 그렇다.

 

 

D. H. 로렌스의 사주와 운명

 

 

마지막으로 유럽사 이야기란 걸작을 남긴 D. H. 로렌스의 사주가 흥미로워져서 알아보기로 한다.

 

1885년 11월 11일 오전 9시 45분이라 되어 있다. 사주를 뽑아보면 乙酉(을유)년 丁亥(정해)월 庚午(경오)일 辛巳(신사)시가 된다. 따라서 1910년 庚戌(경술)년이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가 된다. 척 보기에도 文才(문재)가 넘친다.

 

살펴보니 마침 그 해 1910년에 그의 첫 번째 소설이 나왔고 저 “유명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928년에 나왔다. 그의 운세 상으로 小雪(소설)의 때였음을 알 수 있다. 로렌스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기에 평생 외설작가란 비난을 받아야 했던 불운한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작고한 마광수와도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소설이나 여타 책들 그리고 특히 시집을 읽어볼 것 같으면 그야말로 20세기 최고의 知性(지성)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글을 쓰고 시를 쓴 사람이었다.

 

 

나미의 슬픈 인연

 

 

토요일 오후 강좌를 마치고 귀가하니 몸이 완전 지쳐 있다. 다시 열이 나서 한 알 더 먹으니 열이 내린다. 그냥 자기가 아쉬워서 나미의 “슬픈 인연”을 여러 번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나미 저 분, 어쩌면 저렇게 잘 부를까? 탄복하다가 스케치 한 장 하게 된다. 이러다가 내일 아침 또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슬며시 든다.

예뻐하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여전히 그립다. 푸들과 말티즈의 잡종이었다. 나 호호당이 2000년대 초반 운세가 바닥을 치던 시절에 데려온 강아지였다. 강아지와 정말이지 꿈 같은 세월을 보냈다. 강아지는 2011년 숨졌다. 여전히 그립다. 그림은 환타지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강변에 데려가 본 적은없지만 한강 둔치에는 자주 놀러갔다. 강아지가 죽던 날 나는 토요일 강의 때문에 집을 나섰는데 강아지는 잘 다녀오라고 꼬리를 힘겹게 슬쩍 올렸다. 그런 뒤 나는 강아지를 내 가슴 속에 묻었다. 가슴을 쓸어본다. 아버지와 엄마가 계시고 강아지가 웃으며 나를 반긴다. 꼭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보고프니까. 맹렬 연습 중이다. 즐겨주시길... (그림을 클릭하면 더 크게 팝업된다.)

 

 

 

어려웠던 시절의 우스개 

 

 

예전에 달러가 귀해서 원유 수입이 어렵던 시절, “맹물로 가는 자동차”란 말이 한 때 유행했었다. 피 같은 달러였고 림프 액 같은 석유였던 그 시절, 맹물로 가는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 뭐든 아껴 씁시다, 근검절약 합시다 하는 말이 일반 유행어였다. (최근 젊은이들은 그 때의 그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무한히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즉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다. 옛날 한 때 근대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절, 무한동력장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이에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했지만 당연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해준 것이 바로 열역학 제1법칙이다. 물체가 움직이면서 일을 하고 열이 방출되기에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에너지 유입이 없는 한 무한히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장치는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오늘에 와서 무한동력장치라든가 맹물로 달리는 자동차에 대한 생각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정신도 하나의 힘이라 여기는 착각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에 대해선 무한동력이 내부에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대단한 착각이자 맹신이라 여긴다. 대표적으로 “정신력”이란 단어가 그렇다. Mental Power!, 이런 것은 세상에 없건만 실생활에선 너무나도 흔히 사용하고 있고 또 그런 게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니? 노력을 하라고 노력! 또는 넌 정신이 썩어 빠졌어, 그래가지고서야 뭔들 하겠니? 정신력이 문제야 문제, 멘탈이 문제야 멘탈, 이런 표현 살아오면서 무수히 들었다. 선배들이나 상사, 그리고 윗분들로부터.

 

정신이란 결국 뇌를 비롯한 우리 신체의 유기적 작용이고 메카니즘인데 그게 어떻게 힘 즉 力學(역학)적 접근이 가능한가? 하는 게 어려서부터의 궁금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운명학을 연구해오면서 이젠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정신은 있어도 정신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최소한 힘 즉 force 는 아니란 사실이다.

 

初心(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다시 처음처럼 열심히 해보자는 말인데 ‘처음처럼’이 ‘처음’과는 다르다는 얘기.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아주 오래 전에 유명한 철학자가 말을 남겼지 않은가!

 

오늘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물론 이유가 있다.

 

 

삶과 운명의 비극을 초래하는 착각

 

 

그간 상담해오고 또 연구해온 결과 삶의 무수한 비극이 바로 그런 착각으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예전에 오랜 세월 동안 사업을 잘 해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방심도 하고 자만에도 빠지고 해서 지출만 커지고 수입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거나 예전만 못 하게 되거나 어려워졌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경각심이 생긴다. 아차, 내가 그만 그간에 너무 안일했구나! 하고 말이다. 이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해보자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또 다시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해면서 열심히 해도 더 이상 과거의 좋던 시절로 되돌아가진 못한다.

 

과거 좋던 시절의 70-80% 정도만 만회할 수 있으면 최상이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가는 게 고작이다.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오는 길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조해진 나머지 이른바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질 경우 그건 패망을 자초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적 부진이 단기간 즉 1-2년 정도의 흐름이라면 몰라도 장기에 걸친 흐름의 경우 한 번 정점을 찍고 나면 더 이상 돌아가기 어렵다.

 

 

원한다고 또 다시 전성기로 되돌아갈 순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 대답은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고 무한 동력 장치는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람의 運(운)이란 것 역시 한정된 에너지를 소비하고 나면 바닥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다시 앞에서 말한 열역학 제1법칙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도 같다. 즉 ‘닫힌 계’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에너지 유입이 없는 한 그 계가 힘을 써서 일을 하게 되면 열을 방출하게 되고 그로서 ‘닫힌 계’의 내부 에너지는 떨어질 뿐이란 사실.

 

 

60년 순환이란 것 역시 열역학 제1법칙의 틀 안에 있기에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운의 순환은 60년을 주기로 하는 바, 이 얘기는 60년에 걸쳐 에너지의 유입과 방출이 일어난다는 얘기와 같다.

 

지구상의 모든 환경은 기본적으로 한 해를 하나의 순환주기로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서서히 지열이 오르고 여름이 되면 뜨거워지며 가을이 되면 선선해지다가 다시 추운 겨울, 에너지 레벨이 낮은 때가 된다. 이것의 무한반복이 한 해의 순환이다.

 

에너지는 저 먼 태양으로부터 빛을 통해 유입이 된다. 빛이 땅 표면에 와서 닿으면 열에너지로 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 물이 위로 상승하면서 대기 중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공기가 뜨겁고 수분의 활동이 활발하면 풀은 물론이요 벼와 같은 농작물들이 거침없이 위로 뻗어간다. (최근 풀 자라는 속도를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다가 열에너지와 수분의 활동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로서 어느 때가 되면 알곡이 완성되고 이에 수확한다.

 

이 과정이 60년에 걸쳐 동일하게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15년은 봄의 기간이고 15년은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이며 다시 15년은 수확을 보는 때이며 그러고 나면 열에너지가 거의 다 방출되어 쉬게 된다.

 

한창 잘 나간다 싶으면 그건 이미 60년 주기에 있어 가을이라 보면 된다. 15년의 가을 말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면 누적으로서의 성과가 가장 큰 입동의 때가 되고 겨울이 시작된다. 더 이상 실질적인 성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사업에 있어 外形(외형)매출은 조금 늘어난다 해도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또는 현금흐름이 저조해지기 시작한다. 한계이익이 한계비용을 넘어서지 못하는 시점이 온 것이고 그로서 겨울인 것이다.

 

 

초심으로 돠돌아갈 순 없기에 

 

 

이럴 때 안 되겠다 싶어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해도 또 다시 즉각 가을로 되돌아가지는 못 한다. 다시 가을이 되려면 겨울과 봄, 여름의 45년이 지나야만 겨우 가을의 초입을 맞을 것이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60년이 걸린다.

 

긴 시각에서 볼 때, 장기적인 견지에서 보면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고 나면 60년 안에선 더 이상 그런 것은 오지 않는다. 제2의 전성기는 60년이 흘러야 와도 온다는 얘기이다.

 

증시를 보면 부침을 반복하면서 장기적으로 오르고 다시 부침을 거듭하면서 장기적으로 내린다. 그처럼 단기적인 흐름은 단기인 것이고 긴 흐름에선 60년에 걸친 에너지의 유입과 방출이 있을 뿐이다.

 

줄여 말하면 운의 흐름이란 것 역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인간들은 노력과 운이란 것 역시 그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물리 세계를 관찰하고 그 이치를 알아낸 사람이다. 그런데 그 또한 사람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으니 그게 어떤 면에서 놀랍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빠져나올 때를 알아야 

 

 

나 호호당은 최근 수채화를 또 다시 맹렬히 연습 중이다. 이에 관련해서 얘기를 좀 하면 그림을 그려 나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표현을 하고 디테일을 더 추가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적당하다 싶은 순간이 되면 붓을 멈추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잘 그려진다고 재미가 나서 계속 칠을 하고 표현을 하다 보면 나중에 전체적으로 너무 조밀해지고 무거워진다. 그래서 경험이 필요하다. 대충 다 그렸다 싶을 때가 오면 그래, 이 정도 쯤에서 그치자 하는 판단이 서야 한다. 아직 흥이 남아 있어서 아쉬우면 붓질 한 번 정도 더 하고 끝을 내는 게 좋다.

 

사람의 일도 그렇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 선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빠져나갈 생각도 해야 하는 법이다. 그걸 못 해서 나중에 커다란 비극을 스스로 초래한다, 역사와 현실 세상 속에서 늘 볼 수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듯 사람의 재능과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당연히 운에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있다.

간밤에 이어 펜으로 그리고 워시 처리한 그림을 올린다. 역시 우사단 길로 오르는 골목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렸다. 강렬했다, 이쪽은 그림자가 지고 기와 지붕 위엔 잡동사니들을 올려서 바람 피해를 막고 있는 낙후된 동네, 저 편엔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들, 둘로 갈라진 우리인 남한과 북한과도 같았고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실상 같기도 했다. 해질 녘이라 저녁빛이 아름다웠다.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