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잘도 가는 까닭은
시간이 잘도 가고 세월도 잘 간다. 하루란 시간 간격이 정말이지 국수 삼키듯 후루룩 지나간다. 이는 생활이 나름 편하다는 얘기이고 큰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 하루하루가 전투의 날이고 결전의 순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런 날들을 보내봤기에. 그런 까닭으로 이렇게 살 수 있으니 그저 하루하루 고마울 따름이다.
간밤에 생각했다. 왜 이렇게 세월이 금방 가는 걸까? 창밖에 달이 둥그렇게 떠 있어서 화실의 등을 끄고 앉았노라니 달빛이 방안에도 찾아들었다. 아, 나는 ‘루틴’이 많구나, 그래서 하루가 금방 가는구나 싶었다.
데일리 루틴
아침 8시 반 기상, 세라젬으로 척추를 펴고 단백질 분말 반 컵에 칼슘 한 알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9시, 증시가 개장하면 잠시 본다. 그런 후에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갔다 오면 10시, 온 집안에 흰 강아지 털이 날리니 정전기 청소포로 거실과 안방을 쓸고 물걸레 자루를 가져와 닦는다. 그러면 땀이 나고 열이 오른다, 시원한 보이차 물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증시를 잠깐 보면서 거래 여부를 판단해본다. 11시 정도가 되면 수채화 종이를 화판에 테이핑해서 스트레칭을 한다. (가급적 밤까지 기다려서 완전히 말려야 한다.)
11시 반, 아점을 먹은 다음 설거지를 마친다. 사실 물 적시는 것을 좋아하기에 설거지를 즐긴다. 어머니가 계실 땐 눈치가 보여서 참았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한다. 그리고선 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화실 모니터 앞에 앉는다. 증시를 1-2분간 살펴보고 하루 일정도 확인해보고 잠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그림에 손을 댄다. 그러다가 화장실 가서 일을 보고 샤워를 하고 오후 1시 반 정도에 집을 나선다. 고맙게도 아내가 차로 작업실까지 태워다 준다.
작업실 나가서 상담이 있는 날엔 상담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다. 물론 그 사이에 간단히 뉴스도 확인하고 구글에 들어가 해외소식도 좀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본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보고서를 읽기도 하고 최근엔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소위 “중국 견제법” 전문을 모두 읽어보았다. 무려 281쪽에 달하는 내용이라 중국에 대해 미국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혹시 관심 있다면 구글에 가서 “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 | SLC | download”, 이렇게 치면 전문이 나온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약속이 있는 날은 사람을 만나고, 아니면 근처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소화시킬 겸 교보문고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귀가한다. 8시 반이 되기 전에 버스를 타야 한다.
집에 가면 강아지들의 강렬한 환대-주로 뽀뽀와 배 만져주기-를 받은 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그러다가 밤 10시가 되면 아내와 아들, 강아지들과 함께 전 가족 산책을 나간다. 11시 경엔 아들과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고 아들이 야식거리를 만들면 조금 먹기도 한다.
12시가 되면 슬슬 하루를 마무리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루의 증시 내용을 살펴보고 글을 쓰기도 하며 그림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아니면 책을 좀 더 본다. 1시 반이 되면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잠깐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최근엔 이 구역의 미친 X가 재미가 있었고 일본 애니 “오늘부터 신령님”이란 시리즈를 하루 한 편씩 보고 있다.
나 호호당은 일본 妖怪(요괴)물을 엄청 좋아한다. 요괴 이야기는 공포스럽지가않다. 오히려 요괴나 정령들은 귀엽고 애교가 있다. 요괴에 대해 일본사람들이 가진 관념이랄까 아니면 문화를 애호한다. 중국의 “수신기”라든가 “당송전기” 그리고 “요재지이”는 아무래도 옛날 것이라 일본 요괴물보다는 덜 흥미롭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책 읽고 상담하고 때론 사색하고 간간히 사람 만나고, 이게 전부이다. (그러니 텔레비전은 야구 중계를 잠깐 보는 것을 빼면 거의 보지 못 한다.) 거의 매일 이 루틴들의 반복이다. 그러니 시간이 잘도 가고 하루가 금방 가며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거의 없다.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걱정도 해가면서 살아야지
물론 걱정거리가 없진 않다.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견디고 기다리고 참다 보면 해결이 된다.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이 된다.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게 문제일 수 없다, 어떻게 애를 쓰고 노력하면서 길을 찾다보면 이윽고 길을 만나게 되니 그건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해결책, 또는 솔루션이란 것을 좋아하는 미국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가 지났으니 만물이 활개를 치는구나
계절은 夏至(하지)를 지났으니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열이 오르고 수분이 땅속에서 공기 속으로 맹렬히 증발하고 있다. 벼는 물론이고 갖은 풀들이 서슴없이 자랄 것이고 벌레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가 지나면 만물이 모두 부지런만 떨면 먹고 사는데 별 문제가 없어진다. 예전 농민들은 하지감자를 삶아서 배불리 먹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지로서 모든 생명들이 활개를 친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면서 말이다. 일제 약진의 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운 상으로 1987년이 하지였다. 우리가 먹고 살만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자 마침 아파트 붐이 일었다. 이젠 나이가 든 가수 윤수일 씨가 “아파트”란 노래를 부른 것은 1982년이었는데 이미 5년 전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미리 알리는 대중가요
대중적으로 빅 히트를 치는 노래는 새로운 시대를 미리 알리는 일종의 嚆矢(효시), 즉 전투를 시작할 때 쏘던 화살, 살촉에 속이 빈 깍지를 달아 붙였기에 날아가면서 강렬한 파공음을 내는 화살과도 같은 것이다.
방탄소년단, 나로선 전혀 관심이 없지만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워낙 열광을 해대니 노랫말을 가끔 음미해 보기도 한다. 2013년에 나온 첫 앨범의 타이틀 곡이 No More Dream.
시시한 꿈이나 강요된 희망을 억지로 가질려 하지 말고 그냥 너답게 삶을 살아보라고! 하는 얘기이다. 이젠 더 이상 꿈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거, 즉 “이생망” 세대들을 위한 노래, ‘희망이 없지만 혹시 모르잖아, 네 식대로 하다 보면 뭔가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니? 하는 얘기이다.
2013년의 노래 역시 2018년을 미리 노래했다고 볼 것 같으면 우리 국운의 小寒(소한), 겨울 추위가 본격화되는 때이니 실로 시국과 잘 맞는다. 오늘에 이르러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누구인들 꿈이 있겠는가 말이다.
2007년으로서 글로벌 경제는 '아작'이 났으니
사실 글로벌 경제는 2007년 미국 금융위기로 해서 ‘아작’이 났다. 디플레이션을 감추기 위해 돈을 남발하고 있는 오늘이다.
이 대목에서 약간 심각한 얘길 좀 하면 이렇다. 미국이 달러가 곧 금이던 시절을 정식으로 포기한 것은 1971년이었다. 辛亥(신해)년, 그리고 36년이 흘러 2007년 丁亥(정해)년이 되자 금이 아닌 종이돈 달러가 과잉으로 넘쳐나면서 금융위기가 닥쳤다. 모든 사물은 36년이 경과하면 어떤 결정적인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바로 종이 달러가 사실상 절대적인 가치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챈 결과로서 일종의 부산물이다.)
미국 연준은 더 많은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위기를 일단은 해결했다, 참으로 기발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연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의 후속 대책이 없다.
총결산의 날이 올 것이니
그러니 총결산의 날이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문제를 지연시킬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란 얘기이다. 그 결산은 아마도 2025년부터 시작되고 2031년경이면 마무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보고 있다. 미국으로선 그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자빠뜨려야만’ 한다고 단단히 作心(작심)을 한 것 같다.
세계제패의 꿈을 꾸던 중국 또한 자빠져서 코가 깨질 준비를 다 마쳤다. 난데 아닌 황제 체제가 되면서 모든 언로를 다 막아 놓았으니 그야말로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격이다. 며칠 전 초강경 논조의 중국 관영 영자신문인 “글로벌 타임즈”의 책임자가 너무 약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는 이유로 경질되었다고 한다.
새롭게 자리에 앉은 사람은 보나마나 “이 구역의 미친 X”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잘 하는 짓이다.
나 호호당 개인의 삶은 루틴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느낌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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