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막 지고 나서의 북서쪽 하늘, 멀리서 날아온 빛이 여름 대기를 만나서 색깔놀이를 하고 있다. 왼쪽 멀리 관악산 송신탑과 기상 레이더가 보인다. 세상은 카멜레온과 같아서 참 신기한 곳이다. 그런데 나는 또 그 속에서 숨 쉬고 있으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혹시나 저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도 빛과 어둠의 놀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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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참고로 뜨거운 여름 한낮의 모습으로 그렸다. 기초 칠을 실수하는 바람에 찢어버리려 하다가 완성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다지고 다 그렸다. 구도가 좋아서 그런지 그런대로 봐 줄 만 하다. 독자들도 즐겨주시길... 더위에 쪄 죽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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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예언서? 

 

 

최근에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것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한 번 보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들어가 보니 중국 명태조 주원장의 창업공신인 유백온이 남긴 예언서 중에 하나가 화제라는 것이었다. 그냥 깔깔 웃었다, 그리고 감히 장담한다, 그 양반이 그런 예언서를 남길 까닭이 없다고.

 

중국의 항간에선 유백온이 네 권의 주요 예언서를 남겼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그 중의 하나, 중국 섬서성 태백산에서 출토된 秘記(비기)라고 한다. 거기에 우한 폐렴을 무려 6백 년 전에 예언했다고 하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일까?

 

 

흥행요소가 워낙 충분해서 

 

 

먼저 중국 섬서성 태백산에 대해 얘기해본다. 태백산은 웅장한 산줄기인 秦嶺(진령)산맥의 주봉으로서 해발 3,700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이다. 먼 옛날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나라가 秦(진)인데, 당시 또 하나의 강대국인 楚(초)나라가 이 산맥을 경계로 무수히 각축전을 펼쳤다. 산맥 사이의 계곡 길을 통해 부단히 치고받고 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연의에서 촉의 제갈량이 여섯 번이나 魏(위)를 정벌하기 위해 절벽 옆구리를 깎아서 棧道(잔도)를 낸 곳도 바로 이 진령산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갈량이 진을 쳤다가 숨을 거둔 “오장원”이란 곳 역시 진령산맥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와 처음 만나는 구릉지대이다. (나 호호당은 1995년에 그 오장원이란 곳을 답사한 바 있다.)

 

진령산맥, 참으로 소개할 얘기도 많지만 줄인다. 아무튼 그런 역사의 ‘아우라’가 서린 진령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어딘가에서 유백온이란 천하의 기재이자 도사가 미래를 예언하는 비밀의 글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귀가 솔깃하다.

 

유백온이 누구인가? 중국 남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한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책사인 제갈량과 함께 중국 3대 참모이자 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니 흥행성을 이미 빵빵하게 깔고 시작하고 있다.

 

 

이른바 예언서란 것에 대해

 

 

이제 이른바 예언서란 것에 대해 얘기 좀 할 차례가 되었다.

 

예언서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이렇다. 처음 소개될 때 보면 놀랍도록 정확하다. 어떤 양반이 몇 백 년 전에 남긴 글로서 그간 바깥에 유출되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秘傳(비전)되다가 어찌어찌하다가 실수 또는 뜻한 바가 있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니 과연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혹 해서 야, 대단하다! 하면서 한동안 화젯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장차 앞 일에 대해선 뭐라고 적혀있지? 하는 호기심에 책이 왕창 팔린다.

 

그런데 기억을 되살려 보시길, 이상하게도 화제가 되거나 책이 나온 시점 이후론 전혀 통 들어맞지가 않는다는 사실을.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몇 백 년 전에 쓰여 졌다는 그 예언서란 게 실은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작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내는 시점까지의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인데 그것을 마치 몇 백 년 전에 예언하고 있으니 무진장 정확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간단한 트릭이다. 그런데 책이 출판된 시점 이후론 전혀 맞지 않는다.

 

예로서 2000년대 초반에 ‘송하비결’이란 책이 출판되어 엄청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한 번 상기해보라. 출판된 시점까지의 내용을 보면 엄청난 적중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책이 나온 다음해인 2004년부터는 전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선 역사상 인기 많은 사람의 이름을 차용하는 일이 잦아서  

 

 

돌아가서 얘기이다. 유백온이란 분이 그런 도참서나 예언서를 남겼을 까닭이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유백온이란 사람이 워낙 대단한 인물이기에 그의 권위를 借用(차용)했다고 보시면 되겠다.

 

유백온은 명리학 방면에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이 역시 냉정히 따져들면 그 분이 명리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항간에 전해지는 말로서 유백온이가 대단한 예측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식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가 적천수란 책, 즉 하늘의 骨髓(골수)를 누출시키는 글이란 뜻의 명리철학서를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그간 남긴 글은 몇 백자 되지도 않는다. 적천수 원문 자체는 사주팔자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유교의 성리학에 더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글 내용 중에 사주팔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유백온이가 죽고 나서 3백년 뒤인 중국 청대의 명리학자들이 적천수 천미라든가 더 나중에는 적천수징의란 책을 만들어내면서 유백온의 권위에 얹혀갔다는 게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이 점은 나 호호당이 예전에 중국에 체류할 때 방면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중국 사람들은 곧잘 이런 식의 권위 차용을 한다.

 

 

유백온,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나 호호당은 유백온이가 남긴 것이 확실한 郁離子(욱리자)와 百戰奇略(백전기략)이란 책을 오래 전에 원문으로 읽어보았다. 뿐만 아니라 明史(명사) 列傳(열전) 제128권에 적혀진 그에 대한 소개도 읽었다. (중국어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원문을 접할 수 있다.)

 

욱리자란 책은 권력싸움에 질려서 아니면 밀려서 낙향한 그가 백성들을 어떻게 교화하고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통치이상을 글로 남긴 책이다. 그런 까닭에 때론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비교될 때도 있다.

 

백전기략은 전략가로서의 유백온이란 사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대로부터 많은 전쟁과 투쟁이 어떤 식으로 이기고 졌는가를 분석 소개하는 책이다. 아직도 백전기략은 국내에선 번역되지 않았으나 중국판 책은 지금도 나 호호당의 작업실 책꽂이에 꽂혀 있다.

 

유백온의 백온은 字(자)이고 이름은 基(기), 따라서 유기가 그의 이름이다. 그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워낙 인기가 많은 인물이다 보니 그에 관해 전해지는 野史(야사)도 많고 逸話(일화)도 많다. 거의 어사 박문수 수준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근거가 별로 없다.

 

제갈량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가 뛰어난 외교 전략가이자 행정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 방면의 전문가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삼국지연의에서만 그럴 뿐이다. 이처럼 유백온 역시 神機妙算(신기묘산)의 道人(도인)이자 軍事(군사)의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크게 형세를 판단하는 전략가였다고 보면 된다.

 

 

유백온은 중국의 이순신 격이라서 

 

 

하지만 그의 인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대단하다. 왜 그럴까? 하면 그가 너무나도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죽을 땐 거의 굶어 죽었다는 점 등으로 해서 두고두고 중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동정표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전포도 입지 않고 거의 자살하다시피 생을 끝냈기에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듯이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남긴 책이나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나 호호당은 그의 글을 통해 그가 대단히 강직하고 청렴했다는 점을 능히 느끼고 있다. 그런 훌륭한 사람이 예언서나 도참서를 남길 까닭이 없다고 본다.

 

 

세상이 혼란해지면 으레 예언서가 등장하나니 

 

 

사실 이번에 유백온의 태백산 비기와 같은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사실 코로나19 때문이다. 사회가 혼란하거나 역병이 유행할 때면 으레 이런 도참서나 예언서가 나타난다. 자, 봐라, 이미 여기에 다 예언되어 있지 않느냐! 하면서.

 

어쩌면 나중에 또 다른 사회적 재앙이나 문제가 생기면 유백온의 또 다른 비기가 소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다! 하면서. 그의 인기가 워낙 절대적이기에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이번 일이 흥미로운 것은 이제 중국은 우리와 워낙 교류가 많다 보니 그런 예언서가 나오면 당연히 우리에게도 제법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제법 오래 전에 소개된 중국 예언서인 “추배도”가 그랬다.

 

 

이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때문이다. 백신이 절대 부족한 판국에 감염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약만 있었다면 우리나라 행정능력으로 볼 때 이미 90% 이상 접종을 끝내고도 남았을 것인데, 우리 정부는 왜 무슨 이유로 당초에 백신 구입을 예약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다가 이제 와서 급해지니 백신을 다른 나라에게 구걸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른 나라처럼 크게 확산이 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이 알아서 조심해서 그런 것이지 솔직히 정부는 크게 판단 착오를 범했다고 여긴다. 예약 시스템도 국민들을 골탕 먹이고 등등 사람들을 정말 피곤하게 만들고 있으니 거 참! 제발 어서 냉큼 좀 백신이 들어왔으면 싶다. 해군 사병들을 방치했다가 문제가 생기자 국방장관이 사과를 하는데 그 표정을 보니 워낙 ‘시크’해서 사과하는 것인지 아닌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요즘 날은 왜 이리도 뜨겁냐고! 

 

2000년대 중반 가을에 찍었던 정동길의 사진을 보고 그렸다. 분방하게 그리고 칠했다. 괜찮은 것 같다, 만족한다. 그 땐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약간은 초록빛을 보이면서 변해가던 계절이었다. 신아기념관 인근의 찻집과 식당 풍경인데 최근엔 사라져버린 것 같다. 정동길에 돈이 들어가면서 이미 많이 변해버렸다. 그래서 추억 속의 정동길이란 제목을 붙였다. 사람이 몰리면 돈이 들어가고 임대료가 올라가서 낡은 건물은 사라지고 영세 식당들은 쫓겨 나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사진으로 내 컴퓨터 속의 이미지로 남아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날이 워낙 더워서 가을이 그리워졌고 그러다보니 가을날의 정동길 정취가 떠올랐다. 독자들도 더위 잘 보내시길 바란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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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여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선사를 찾아갔었다.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운악산 자락에 위치한 절이다. 절 바로 인근에 광릉, 즉 국립수목원이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을 한글로 "큰법당"이라 쓰여있다는 점이다. (큰법당은 오른 쪽 그림 밖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먹펜으로 드로잉하고 담채를 올렸다. 그리는데 불과 20분 걸렸는데 이는 연필 스케치를 하지 않고 그냥 대충 어림으로 그리니 그렇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분방한 맛이 있어서 좋다. 나 호호당은 그냥 마구 그리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즐겨주시길...

하늘은 빛과 구름으로 마술을 부린다. 평생 사는 재미 중에 가장 큰 재미라 할까, 그건 하늘을 바라다보는 재미이다. 거의 평생을 사진을 찍어왔기에 늘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같은 하늘을 본 기억은 없다, 엇비슷하지만 같은 하늘은 없다. 하늘은 커다란 캔바스, 빛과 구름을 레시피로 해서 갖은 환타지를 연출한다. 매료될 밖에. 더운 여름의 저녁놀이 장엄하고 휘황하다. 언젠가 죽고 나면 저런 풍경들을 다시 볼 수 없을까봐 걱정일 정도이다. 즐겨주시길...

 

큰 도식과 작은 도식

 

앞글에서 제시했던 큰 도식을 다시 올려본다.

 

1941년-1971년-2001년-2031년.

 

가까운 과거는 아무래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게 된다. 우리가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렇다.

그렇기에 위 도식 중에서 최근의 부분에 대해 다시 작은 도식을 제시한다.

 

2001년-2007년-2013년-2019년-2025년-2031년.

 

이는 6년 간격인 바 단계별로 살펴본다.

 

 

#1. 2001년-2007년 사이

 

 

2001년부터 미국 경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9.11 테러를 기화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이에 막대한 戰費(전비) 마련을 위해 연준은 기준금리를 2% 이하로 내리면서 한 때 1%까지 극단적으로 낮추었다. 이는 1960년대 초반 이후 처음 있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금리를 낮춘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고 디플레이션 압력을 막기 위함인데 초저금리까지 낮추었다는 것은 상황이 대단히 엄중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이후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던 연준은 2004년부터 금리를 다시 5%대로 올렸는데 그러자 즉각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은 집 자체를 담보로 해서 수입이 거의 없는 사람들, 이자를 낼 돈마저 없는 이들에게 마구 대출을 해주었다. 이자낼 돈이 없으면 그 또한 대출을 해주었다. 돌려막기가 시작된 것인데 이는 결국 2007년 1월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결국 2008년 3월 여름 베어스턴스,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로서 재무구조도 튼튼하던 우량은행이 유동성 악화로 자금난을 겪자 미 재무부는 파산을 시켰다. 그러자 바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2. 2007년-2013년 사이

 

 

버냉키의 연준은 세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실시했는데 실은 마지막 제3차, 즉 QE3에 대해선 꽤나 논쟁이 있었다. 사실 그게 문제였다, QE3는 2012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사실 그건 무기한의 경기부양책 성격을 보이는 바람에 별명이 “QE-Infinity”, 즉 무제한 양적완화였다는 사실이다.

 

QE3가 결국 문제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2013년으로서 경제가 이제 다소 어렵더라도 그간의 거품을 제거하는 정상화의 수순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월가의 금융가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던 셈이다. 이는 逆行(역행)이었다. (QE3는 결국 2014년 10월에 중단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때를 놓친 셈이었다. 버냉키와 비둘기파 재닛 옐런의 공동 실수이고 책임이다.)

 

 

#3. 2013년-2019년

 

 

그 이후 연준은 금리 정상화를 위해 금리 인상을 실시했지만 2019년이 되자 글로벌 경제는 또 다시 경기 후퇴와 디플레이션의 압력이 완연해졌다.

 

근본 원인은 통화의 부족이 아니라 실물 부문에서의 글로벌 공급과잉이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까닭에 발생한 경기하방 압력이 있었고, 더불어서 인구통계학적으로도 장기적으로 수요가 더 줄어들 요인도 충분해지고 있었다.

 

이에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한때나마 2%까지 올리긴 했지만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었다. 그 결과 눈치만 살피던 연준이었다. 재닛 옐런!

 

 

#4. 2019년-2025년: 무제한 양적완화와 금리 정상화의 문제

 

 

그런데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졌다. 연준은 에라, 잘 된 일이다 하면서 즉각적으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양적완화, 이번에야말로 무한정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주역은 제롬 파월이고 보조역은 역시 재닛 옐런.

 

현재 연준과 미 재무부는 내심 조바심을 내고 있다. 사고를 쳤으니 당연하다. 저러다가 경기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나 한 번 흐름을 타면 통제불능일 수가 있다. 일본을 보라, 잃어버린 20년 운운 하고 있다. 그렇기에 금리 인상의 적절한 타이밍이란 건 사실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플레이션은 고사하고 글로벌 공급과잉 추세와 OECD 국가들 게다가 중국까지 인구 감소로 인해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부터는 예측의 영역이다. 지금은 2021년 7월, 그러니 향후의 일에 대해 나 호호당의 생각을 얘기하겠다.

 

예측을 함에 있어 기준이 되는 시간의 틀이 있으니 자연순환의 원리이다.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기에 그 1/4인 15년이 지나면 변화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양적완화가 시작된 것이 2008년, 따라서 15년 후인 2023년이면 뭔가 커다란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능히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연준은 금리 정상화 수순을 밟기 시작할 것이 거의 명확해 보인다. 면피는 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단서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것은 1992년 8월이었다는 점이다. 만물은 60년의 절반 즉 30년이 지나면 반대 포지션에 오게 된다. 따라서 2022년 8월이면 우리 자금시장에서 외국 자본들의 유출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왜 유출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단 하나, 금리인상밖에 없다.

 

(외국자본의 유출이 시작된다고 해서 말을 그게 일시에 일거에 다 빠져나가는 비상시국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 점 다시 한 번 얘기해둔다.)

 

미국 연준의 금리 정상화란 요인, 거기에 우리만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향후 글로벌 금리 인상 국면에서 우리가 입게 될 타격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 강도가 훨씬 더 세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말해서 외국투자자본의 포트폴리오 내용 중에서 ‘한국물’을 팔겠다는 생각이 커질 것 같으면 그건 우리 기준금리의 인상 필요성과 그 폭이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한은의 기준금리는 미국 연준의 인상보다 선제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리인상에 미리 적응을 해둘 필요가 있는 우리의 상황이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즉 내년 초가 대통령 선거인 마당에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한은의 선제 인상에 우호적일 수가 없다, 그러니 선제 인상은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2025년이면 글로벌 금리는 이미 상당히 인상되어 거의 정상화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리인상으로 인한 충격으로 불경기가 글로벌 경제를 뒤덮고 있을 거란 얘기이다. 국내의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간 한 번도 심하게 하락해본 적 없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의 극심한 하락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30대마저 빚을 내어 아파트를 샀으니 이젠 더 이상의 수요가 한동안은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 돈이 아니 통화가 워낙 저렴하다보니 빚투와 영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이 비정상이 2025년이면 대거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5. 2025년-2031년: 극심한 글로벌 불경기 또는 세계적 대공황

 

 

이 기간 중에 글로벌 경제는 금리정상화로 인해 그냥 불경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공황이 닥칠 수 있다고 본다.

 

그때가 되면 경기 침체나 디플레이션이 오더라도 그러면 또 다시 예전처럼 돈을 더 찍어서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해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방식은 그저 당장의 문제를 훗날로 미룰 뿐이란 것, 그리고 지연되는 만큼 비용이 더 커질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어차피 한 번 치를 비용, 이제 치르고 가자는 생각이 더 우세할 것이란 얘기이다. 결국 글로벌 공급과 수요가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때까지 조정을 봐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미 현 시점, 2021년 7월의 시점에서 전 세계 GDP보다 부채가 더 많아져 있다. 부채는 갚거나 인플레이션을 통해 희석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경우 파산신청을 통해 부채를 탕감하고 신용을 회복할 순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가가 그 부채를 대신 짊어진다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제 두 가지 대목이 중요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간에 누적된 거품을 해소하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통화(currency)가 돈(money)의 구실을 하게 된다.

 

또 한 가지는 명목금리야 어떻게 되든 간에 실질금리가 플러스(+)이냐 마이너스(-)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기간 중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 또 어떠한 정책적 대응이 가능할 것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현 시점에서 부채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주체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아니라 바로 국가 자체이다. 우리를 비롯한 OECD 국가들, 일본 미국은 물론이요 중국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어떤 비용을 치를지언정 국가 부채의 축소가 최우선시된다면 국가가 주도해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다. 아울러 국가마다 각자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미국 주도의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 것인지조차 이젠 예측할 수가 없다.

 

가령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미국이 그들이 패권에 도전해오는 중국을 꺾어놓기 위해 내 살을 주고 상대의 뼈를 깎는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양적완화라고 하는 상궤와 상식을 벗어난 방식이 적용되고 그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문제점이 누적되어온 상황이기에 이 기간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 지 예측할 수가 없다. 다만 장기불황이나 공황 상태를 면하긴 어려울 것이란 점만 거의 확실시된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 누적된 거품과 지나치게 많은 통화 공급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의 글로벌 초과 공급이 서서히 해소될 것이며 그로서 대단히 고통스럽긴 해도 그나마 새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금리 정상화가 아니라 경제의 정상화란 얘기를 하면서 이번 글을 맺는다.

오랜 만에 본격 수묵화를 그려보았다, 참으로 오랜 만이다. 그리고 나서 썼다, 눈앞의 것은 유한하지만 마음은 무한을 볼 수 있다고,  바위산을 좋아한다, 운무가 감싸고 도는 풍경을 좋아한다, 바위는 단단함이고 운무는 미세한 수증기이니 그로서 만들어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즐겨주시길...

먹으로 드로잉을 하고 동양화 물감과 수채화 물감을 섞어서 칠했다. 잠시 망설였다, 그림의 오른 쪽에 그린 소감을 먹붓으로 써넣으면 완전 수묵산수가 될 터인데, 그러지 않고 사인을 흰색 과슈로 표시했다. 그러니 수채화에 더 가깝다. 혼합 미디어의 그림인 셈이다. 올 10월 전시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 도시의 복잡한 픙경을 이렇게 그려넣어도 될 것도 같고. 즐거운 고민 중이다. 8월부터 전시용 작품을 시작하면 망설이지 말고 거침없이 그려야 할 것이니 지금은 잠깐의 모색 시간이다. 두 사람이 앞의 바위 산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림은 내게 그냥 환타지. 환타지는 초월을 가능케 하기에 즐겁다. 독자님들도 즐겨주시길...

 

당장의 우려

 

먼저 당장 걱정되는 얘기 하나. 올 해 초부터 혹시나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나지 않을까 걱정해왔다. 해가 辛丑(신축)이고 지금 달이 乙未(을미)라서 천간 지지가 모두 충돌하고 있으니 그렇다. 올림픽 직전, 비록 무관중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지진이 나면 재앙일 것이다. 특히 오늘 16일부터 22일까지가 고비가 될 것으로 계산해보고 있다. 제발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은 경제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아무래도 두 번에 걸쳐 써야할 것 같다.)

 

오래 전부터 거듭 얘기해왔지만 글로벌 경제나 우리 경제에 대해선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달러 본위의 경제이다. 달러 본위란 말은 전 세계에 통화를 공급하는 곳이 미국 연준(Fed)이란 얘기이다. 미국 연준이 이른바 기준금리 즉 Fed Rate를 통해 글로벌 경제에 통화를 공급하는 저수지 역할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저수지의 수문을 여는 것이고 올리면 수문을 닫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이 말에 대해 우리나라엔 한국은행이 있어서 우리 스스로의 재량으로 우리 통화인 원화를 공급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의문도 들겠지만 그게 사실 그렇지가 않다.

 

예컨대 연준 기준금리가 그대로라 하고 한은이 우리 기준금리를 내려서 통화공급을 늘릴 것 같으면 그건 즉각적으로 미국 달러와 우리 원화의 교환비율 즉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한은이 무단히 원화의 공급을 늘리면 달러에 대한 우리 원화의 가치가 떨어진다. 우리를 포함해서 각 나라의 통화는 달러를 기준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령 일시에 한은이 원화 공급을 10배로 늘리면 달러는 지금의 1,140원에서 11,400원으로 올라버린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웃기는 점은 달러는 그 자체가 최종 기준인 탓에 공급을 늘려도 약간의 변동밖에 없고 그저 글로벌 경제 전체에 대한 통화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만 있다는 점이다. 오늘의 글로벌 경제는 달러 본위 경제인 것이다.

 

 

큰 그림

 

 

그럼 이제 큰 그림을 제시해본다.

 

도식은 이렇다. 1941년-1971년-2001년-2031년

 

설명해본다.

 

 

1941-1971년의 기간

 

 

1941년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명분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 들었다. 그 전까지 미국 경제는 불황이었는데 전쟁을 기화로 엄청난 달러 공급과 함께 군수물자의 생산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미국 내수경제는 엄청난 호황을 맞이했다. (여성들도 산업현장에 투입되면서 발언권이 크게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군수산업의 문제는 평화 시의 경우 사격훈련에 필요한 탄약을 제외하면 여타 탱크나 전투기, 군함과 같은 고가의 물건들은 소비가 되지 않는다. 그게 문제이다. 그냥 생산에 돈이 들어갈 뿐 소비가 되지 않기에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연관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 군수산업의 문제점이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 거꾸로 공급이 수요, 즉 전장에서의 소비를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가 된다. 이에 정부는 국공채를 마구 찍어내어 시중의 돈을 끌어 모으거나 아니면 중앙은행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군수 생산 증가에 따라 일자리도 급격히 늘어나기에 전시 경제는 그 자체로서 호황이 된다.

 

미국은 1941년 전쟁 참여를 통해 1929년의 대공황에 따른 불황을 일거에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부채를 마구 늘려서 군수생산에 투입했고 그 돈은 다시 시중으로 유입되어 경제는 초호황을 구가했다. 뿐만 아니라 제2차 대전이 끝나자 기존의 강국들, 대영제국은 해체되었고 프랑스는 몰락했으며 독일은 아예 동서독으로 분할이 되었다. 미국만 홀로 독보적인 경제 초강대국이 된 것이다. (소련은 잠시 경제대국으로 등장할 뻔 했지만 체제의 문제, 즉 공산주의로 인해 주저앉고 말았다.)

 

전후에 유럽 각국과 일본은 미국으로의 수출을 늘렸고 미국은 열심히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과 유럽 특히 서유럽의 공산품들을 수입해주었다. 미국의 ‘꼬붕’들이었기에 혜택을 주었다. 그 결과 달러가 동이 날 정도에 이르렀다.

 

이 대목에서 지적할 점은 당시 달러는 그냥 찍어내는 통화가 아니라 금으로 교환이 가능한 통화, 진짜 돈, 리얼 머니였다는 점이다. 

 

 

1971-2001년의 기간

 

 

미국이 소련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달러가 서유럽과 일본으로 유출되니 이젠 미국 자체가 달러 부족으로 경제가 불황이 이어져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면서 미국은 경제가 거덜이 날 판국이 되었다.

 

 

달러가 가짜 돈이 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번성했으니 참!

 

 

이에 미국은 1971년, 그러니까 1941년으로부터 30년, 즉 60년 순환의 절반이 되자 달러를 금으로부터 풀어버리고 미국 연준이 그냥 무단히 찍어낼 수 있는 통화, 리얼 머니가 아니라 가짜 통화로 만들었다. 나, 이제 마음대로 할 거야, 하는 식이 되었다. 

 

달러가 금 보유량과 상관없이 마구 찍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장차 큰 일이 가겠구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 경제 전체가 크게 번영했다.

 

그 이전엔 달러가 귀해서 돈이 돌지 않을 지경이었는데 달러 공급이 넉넉해지자 글로벌 산업 전반에 걸쳐 투자가 왕성해졌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호황이 시작되었다. 이로서 1971년부터 2001년까지 30년에 걸쳐 글로벌 경제는 줄곧 번영 일로를 달렸다. 중국으로 엄청난 달러가 쏟아져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도 왕성한 투자와 왕성한 수출을 통해 번영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2001년이 되자 미국 경제가 이상하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원인이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약발이 다 된 까닭이었다. 1971년부터 30년간 넉넉한 달러 공급을 통해 글로벌 전체가 혜택을 누렸지만 이젠 어딜 가도 달러가 넉넉해진 탓이다. 이로서 번영의 호시절이 지나가버렸다.

 

 

거꾸로된 연준의 약방문

 

 

그런데 마침 9.11 테러가 터졌고 이에 미국은 이빨을 갈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춰서 더 많은 달러를 공급했다. 그게 오늘날에 이르는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긴축 정책을 한 10년만 했더라면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을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달러를 더 공급하는 가장 안일한 해결책을 썼으니 약방문을 거꾸로 쓴 셈이다.

 

당장은 미국과 글로벌 전체가 또 다시 번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바로 한계에 봉착했다. 그 결과 불과 6년 뒤인 2007년부터 미국엔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2008년 여름엔 빵-하고 터졌다.

 

그런데 미국 연준은 내친 김에 아예 돈을 노골적으로 찍어서 공황을 타개하고자 나섰으니 바로 저 유명한 ‘양적완화’였다. 이젠 대놓고 찍어대기 시작한 셈이다. 일시적으로 돈이 부족해서 기업은 부도가 나고 은행은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고? 그건 안 되지, 달러를 넉넉히 찍어서 계좌에 넣어주면 되는 일 아니겠어! 하는 배짱이었다.

 

뿐만 아니라 달러 부족으로 나머지 우방국가, 또는 종속국가 중에서 혹시나 외환위기가 터질 것을 우려해서 ‘꼬붕’들에게 넉넉하게 달러 마이너스 통장을 터주었다. 그 바람에 외환위기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로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에 공황이 닥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늘 원기부족으로 빌빌거렸다.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전체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훨씬 많다는 것, 공급과잉의 문제였지 돈의 부족, 달러 부족이 문제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경 글로벌 경제 전체에 디플레이션과 불황의 조짐이 완연했다. 그런데 2020년 들어서자마자 코로나19가 터졌다. 비상시국이 닥치자 연준은 이거야말로 오히려 잘 된 일! 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무제한”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무제한! (양적완화라 하더라도 제한이 있는 것과 제한이 없는 것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불확실성만 확실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연준이 엄청난 돈을 직접 찍어서 풀었음에도 미국을 비롯해서 글로벌 전체 경제에 우려되던 인플레이션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 원인은 간단하다, 시중의 돈이 돌아다니는 속도, 줄여서 통화의 회전속도가 완전히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 바닥을 들어낸 것이라 봐도 된다. 그저 올 해 들어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기껏이다.

 

현재 전 글로벌이 나름 알아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줄여가고 있다. 전반적인 생산축소가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게 마침 코로나19가 원인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바이든 정부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으니, 반도체만큼은 아예 중국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없도록 중국으로의 기술이전과 유출을 틀어막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 주요 경제대국들 내부에서 인구감소의 압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공급의 축소 조정이 예상보다 더 깊어지고 오래가야만 수요와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연준은 열심히 동향을 살피고 있다, 여차하면 테이퍼링은 물론이요 금리 인상으로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가시고 경제가 정상화될 때 어떤 충격이 올 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일 수도 있고 디플레이션일 수도 있겠다. 그냥 불황이 이어지다가 잠시 호전되다가 또 다시 불황국면이 되풀이될 수도 있겠다.

 

아무도 모른다는 점만 확실하다. 불확실성만 확실하다. 말장난 좀 하면 불확실성의 확실성이라 할까. Uncertainty is certain!

 

 

최종 아웃풋은 2031년에 나오겠지만 

 

 

하지만 그 어떤 결과나 결론이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틀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현 흐름의 최종적인 결과는 2031년이면 확정될 것이다. 정확하게 10년 뒤가 되겠다. 그렇다면 대략 어떤 경과를 거쳐서 그렇게 될 것인지 하는 궁금증도 생길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 경과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제시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