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 알고 보면 생사가 나뉘는 때

 

 

21일은 小滿(소만)이었다. 따뜻한 봄 같기도 하고 초여름 같기도 한 때, 하지만 놀랍게도 소만은 모든 생명들의 생사가 가름되는 때이다.

 

소만에 이르러 어떤 나뭇가지에 잎이 피어나지 않았다면 그 가지는 죽은 가지이고 나무에 잎사귀가 매달리지 않았다면 그건 죽은 나무이다. 지난 해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 날려 온 풀씨 역시 땅위로 힘차게 줄기를 뻗고 있지 않다면 그건 죽은 풀씨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새 풀이 땅위로 올라오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 생명의 몸부림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풀이나 나무만이 그런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생명이 그렇다. 물론 우리들도 그렇다. 소만으로서 모든 생명들의 죽고 살고가 가름된다. 소만으로서 죽은 놈은 보이지가 않아서 무시되고 산 놈만 힘차게 자라고 뻗어간다. 작은 것들이 벌판에 가득 찬다고 해서 小滿(소만)이다. 그 작은 것들을 이름 하여 싹수라고 부르고 있으니 온 세상이 싹수로 가득하다. 그 작은 것들은 여름에 힘하고 무성하게 자랄 것이고 가을이 되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싸가지가 나오는계절

 

 

싹수가 있다는 말은 장차 발전할 낌새나 징조가 보인다는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싹수의 방언으로서 싸가지란 말이 있는데 이를 사전에선 지방 방언이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되었다. 실은 싸가지가 표준말이자 순수 우리말이 되어야 하겠고, 거꾸로 싹수가 실은 애매한 말이다.

 

어린 소를 송아지라 하고, 어린 개를 강아지라 하는데 이게 방언인가? 우리말은 어린 생명에 대해 “-아지”란 말을 붙이고 있으니 어떤 풀이나 나무의 어린 싹을 싸가지라 한다. 이게 무슨 사투리이고 방언인가 말이다. 반면 “싹수”란 말은 싹이라 우리말에 한자의 數(수)를 결합한 말이니 애매한 합성어이다. 참고로 싸가지의 정식 한자어는 萌芽(맹아)가 된다.

 

돌아와서 얘기한다. 소만으로서 온 산과 들, 그리고 논과 밭에 이런저런 싸가지로 가득 차게 되니 그 놈들이 노랗고 비실대지만 않는다면 그 모두 가을에 가서 결실을 볼 생명들이다. 파랗고 싱싱하게 올라오니 그를 보고 싸가지가 있다고 한다.

 

 

사람 역시 소만으로서 결정이 난다. 

 

 

수 십 년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만 전까지 봄을 타거나 입맛이 없다가도 소만이 지나면 식욕이 되살아나고 체력도 강해진다. 물론 의욕도 강해진다. 그게 정상인 징조이고 그로서 한 해를 건강하게 살아간다. 따라서 소만이 지나 6월이 되어도 여전히 입맛이 없고 체력이 부실하다면 그건 최소한 올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내긴 어렵다는 징조라 봐도 무리가 없다.

 

나이 들어 세상을 뜨는 것도 마찬가지, 죽는 때는 8월일 수도 있고 11월일 수도 있지만 실은 소만으로서 숨을 거둘 모든 징조가 다 나타난다. 다만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를 뿐이다.

 

강조하지만 소만은 이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때이고 거침없이 욕망을 뿜어내면서 세상을 자신의 품으로 빨아들이고 흡수해가는 때이다. 잡아먹고 잡아먹히고의 투쟁과 전쟁, 그리고 사랑, 얼핏 모순되는 두 가지 활동이 본격화되는 것이니 줄이면 생명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순환, 생명의 순환, 그게 바로 운이란 것이니 

 

 

생명과 성장의 계절은 석 달간 이어진다. 그 이후 석 달은 결실의 마무리 계절이고 이에 11월 20일 경의 소설이 되면 죽음이 3개월간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다가 다시 새 해가 와서 2월 20일의 雨水(우수)가 되면 생명의 씨앗들이 땅 밑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서 꿈틀대면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간다. 바로 이게 순환이자 생명의 순환이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다년생, 아니 수 십 년을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들과 산의 초목이나 동물에 비해 우월한 존재란 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우리 또한 세포 차원에서 보면 한해살이나 별 다름이 없다.

 

인간보다 더 오래 사는 나무들도 알고 보면 한해살이 생명이다. 작년의 나무는 새 해가 되면 죽어서 시체가 되니 그것이 바로 해마다 한 겹씩 쌓여가는 木質(목질)이다. 생명으로서의 나무는 바깥의 껍질과 목질 사이에 존재하는 엷은 층이란 사실.

 

다만 우리 인간이란 동물은 뇌의 활동을 통해 해마다 살고 죽는 세포들을 통합해서 전체로서 연속적인 ‘하나’라는 총체적 인식을 발전시켜왔으니 이를 흔히 自我(자아) 의식이라 부른다. 자아 또는 자아의 정체성이란 것은 결국 뇌에서 만들어진 의식작용에 불과하다.

 

동물이나 풀이나 우리 인간이나 그리고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가는 것 같은 나무들, 그 모두가 한해살이 생명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 역시 해마다 살고 죽고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이 오래 산다는 것은 결국 세포의 자기복제기능 또는 재생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는 말이나 같다. 예컨대 우리 피부의 세포들은 부단히 재생과 복제를 거듭해가고 있으며 이때 죽은 세포는 각질이 되거나 아니면 피부에서 때가 되어 떨어져나간다. 물론 피부세포를 비롯해서 모든 장기의 세포들이 영원무궁토록 복제하고 재생해낼 수가 없기에 결국엔 총체적인 기능 부전에 도달하게 되니 그를 우리는 죽음이라 부른다.

 

생명이란 것, 생각하면 할수록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이런 멋진 유기체가 지구상에 생겨났을까나!

 

(이처럼 한 해를 순서대로 채워가는 24절기 중에서 소만이란 놈 하나만으로도 200자 원고지 1천장 정도는 너끈히 메울 수 있을 것 같으니 언제나처럼 나 호호당의 모든 글은 축약일 수밖에 없다.)

 

 

운이란 게 사실 순환이란 말의 다른 표현이기에 

 

 

60년 순환에 있어서도 논리는 정확하게 동일하다. 참고로 순환의 다른 말은 運(운)이다. 운의 변화란 결국 60년 순환에 있어 절기의 변화이고 계절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운세 변화를 볼 것 같으면 입춘 바닥으로부터 17.5년이 흐른 소만의 때에 향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눈에 들어온다. 小滿(소만), 작지만 이제 구체화되고 시작된 것이니 다음은 그것의 성장이고 결실이고 죽음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에 소만으로서 모든 것이 결정이 난다. 다시 말하면 소만으로서 그 사람의 싸가지를 보면 30년 뒤의 小雪(소설)에 구현될 모습을 대강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소만에 나온 한미정상회담의 내용

 

 

그렇다, 마침 소만으로서 한미 정상회담의 전문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이 꽤나 대단하다. 지금까지 이토록 긴 장문의 정상회담 결과를 대한 적이 없다. 게다가 영문 전문에 비해 한글 전문의 내용은 약간 축약한 감이 있다. 국내 정치 상황을 감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문을 읽을 수 있다면 한 번 살펴보시길.)

 

간단히 내용을 얘기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전속 에이전트, 달리 표현하면 여느 하청국가가 아니라 전속하청국가로 격상되었다고 하겠다. 반도체와 배터리, 그리고 백신을 미국 스스로 자국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유지하자니 계산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전략물자라 하겠기에 코리아, 너희들이 생산을 전담해라, 물론 어느 정도까지 물량 개런티를 해주겠다, 이런 정도이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선 당장 확약할 순 없지만 아무튼 최우선적으로 공급해주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다만 미군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군 전 병력에 대해선 백신을 준다고 하니 이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염두에 둔 생각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제재는 비핵화가 확실해지지 않은 한 어림도 없지만 인도적 지원, 다시 말해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숨통은 열어주겠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남지나해와 인도양-서태평양에서의 중국을 견제한다는 언급과 함께 대만 문제에 대해 우리가 미국과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언급을 ‘대만해협’이란 말로서 우회하고 있으니 이는 중국 외교의 慘敗(참패)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시진핑 방한의 가능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그간 국내정치에서 사실상 중도 좌파 노선을 표방해왔는데 이번에 보면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한 시늉에 불과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번 내용은 과거 한미 FTA 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그렇다. 민주당이란 게 포퓰리즘을 위한 좌파 지향이었을 뿐, 우리 정치에 있어 사실 보수도 진보도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증시, 이제 상승 모멘텀을 되찾게 생겼으니 

 

 

정치야 그렇다 치고 달리 중요한 점은 이제 증시가 오르게 생겼다는 얘기이다. 1월 초부터 지금까지 조정 양상을 계속해오던 증시였는데 배터리와 반도체, 백신, 자동차 등의 종목들은 나름 미래의 시장이 확보되었다는 차원에서 주가 상승이 시작될 것 같고 반면 그간 주도주 역할을 해오던 화학이나 조선, 철강 등은 이제 상승에 제약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시장이 중요한 화장품 종목은 부정적일 것이고.

 

줄여 말하면 증시도 이제 싸가지가 보인다는 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은 5월 24일 월요일 새벽 1시, 이제 자고 나서 내일 아침 장을 보면서 서서히 매수를 늘려가야 할 것 같다.

왔다리 갔다리 하며 거슬러 오르는 발걸음

 

 

어제에 이어 비가 내린다. 내일까지 이어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생각은 앞서의 일들로 되밟아간다. 앞서의 일을 헤아리다 보니 다시 그 이전의 일과 인연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계속 되밟아가게 된다. 생각이 걸음을 천천히 옮겨간다. 걸음은 때때로 되돌아 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꾸만 더 과거의 일, 더 먼 시간 속으로 밟아간다. 그래, 이 역시 길이지, 길의 일종이야 하면서.

 

길을 되밟아가다 보니 문득 잊혔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툭-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아, 그렇구나! 그때 그 사람과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선명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한편으로 지금 내 눈앞을 흐르는 강줄기의 위를 향해 머나먼 河源(하원)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도 같다.

 

물론 강의 웃 줄기는 줄곧 하나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갈래가 나타나서 이 갈래를 따라 거슬러 오르다가 그만 두고 다른 갈래를 따라 오르기도 한다. 위로 오를수록 생각의 걸음은 갈팡질팡이다. 이에 먼 과거에서 가까운 과거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다른 줄기를 따라 오르기도 하며 다시 돌아와 또 다른 줄기를 따르기도 한다.

 

 

생각이 멈추면 빗소리가 들려오고 어느새 다시 생각은 걸음을 떼고

 

 

그러다가 생각의 걸음을 멈추면 갑자기 귓전에 빗소리가 들린다. 눈길을 돌려 창밖 먼 곳을 보노라니 빗소리가 더욱 커진다. 이건 눈이 귀를 따르는 건지 아니면 귀가 눈을 따르는 건지 헷갈린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시 빗소리 멀어지고 생각이 걸음을 옮긴다.

 

과거로 거슬러 가다보니 즐거운 일도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즐거운 일은 잠시 또는 순간이었던 것 같고 힘들었던 일은 더욱 선명하고 또렷하게 되새겨진다는 점이다. 아픈 일,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는 말도 그저 허튼 소리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픈 일이 있었던 시간 속으로 우리 스스로 가기 싫어하는 것일까? 팔목이나 신체 어딘가에 난 소소한 생채기들은 지워지지만 워잊힐 만도 하지만 큰 상흔은 죽는 날까지 남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다시 귀가 열려서 빗소리 들려오고 그러다가 어느덧 멍해지고 고요해지면서 생각이 걸음을 떼어놓는다. 아 그렇구나, 생각이 걸음을 재촉하면 눈과 귀가 머는구나! 귀가 빗소리를 들어서 생각을 일깨웠건만 생각은 그 은혜를 모르고 자꾸만 감각을 멀리 하니 이놈은 잘도 이기적이다. 하지만 생각은 시간 속 먼 과거의 감각을 일깨워서 냄새도 떠올리게 하고 모습도 되살려내니 아주 몹쓸 놈은 아니다.

 

 

영웅 조조의 강개한 시가 떠올라서 

 

 

갑자기 지친다. 어깨가 처지고 군데군데 통증이 되살아난다. 여보시오, 나도 좀 살펴주시오 한다. 잠시 어깨를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하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그곳으로 가본다. 이번에 시간 여행이 아니라 머릿속 기억의 창고에 저장된 물건이다.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 曹操(조조)가 남기고 간 시 한 편이다.

 

번역이 아니라 조조의 생각과 마음을 내 식으로 임의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풀이 시작)

 

두어 잔 술을 마시다 보니 속에 차오르는 것이 있어 그를 노래로 뽑아봐야 하겠네, 산다는 게 길어야 또 얼마나 된다고 속에 담아 두고만 있겠는가. 해가 뜨면 말라 버리는 아침 이슬과도 같은 짧은 삶일진대 그 또한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니 고생 투성이, 그러니 그 소회를 엮어 길게 한 가락 노래로 뽑아봄직도 하지 않겠는가.

 

지나간 슬픔 힘차게 소리 내어 내질러본들 금방 또 다른 근심으로 이어져가니 떨쳐낼 수 없구나, 그저 눈앞에 놓인 술에 의탁할 수밖에.

 

지나간 날 그처럼 창창했던 그대의 어엿한 모습 긴 세월 지나온 지금까지도 내 속에 머물고 있으니 바로 그런 까닭으로 그대는 지금도 내게 깊은 시름만 한 아름 안겨주고 있다네, 봄날 사슴들이 햇쑥을 뜯으며 기분 좋은 울음을 울고 있던 먼 옛날 그대는 내게 귀한 손님으로 찾아왔으니 그때 우리는 금을 뜯고 피리를 불면서 시간을 보냈었지. 밝고 또 밝은 달은 바로 발치 위에 있어서 한 번 따서 내릴 것도 같지만 소용 없듯이 떠나간 그대 생각하는 이 마음 지워버릴 수 없으니 그저 논둑과 밭둑을 서성대면서 그리운 마음만 달래고 있으니 참 헛된 일이지.

 

그래도 우리 서로 정답게 나누었던 말들을 되새기면 새삼 그 은혜 고맙기만 하다네, 이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예전의 그날 밤처럼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날아오더니 의탁할 나뭇가지를 찾는지 나무 주변을 세 번이나 맴돌고 있을 뿐이라. 어허! 저를 어쩐다. 그냥 내 심정과 같구나.

 

그래 좋다, 산은 높다고 해서 꺼리는 법 없고 바다는 깊어진다 해도 저어하는 일 없지 않느냐? 먼 옛날 주나라를 반석에 앉혔던 周公(주공)을 생각해 보렴, 천하의 민심을 얻고자 애쓰던 시절, 식사 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나서 입안에 씹던 고기도 내뱉고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하지 않았던가! 내 사사로운 근심 그리고 걱정 따윈 오늘 이 술로 달래면 되는 일, 뜻을 품고 나선 거 어디 끝까지 가보자꾸나.

 

(풀이 끝)

 

시는 처음에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과 悔恨(회한)으로 시작해서 끝부분에는 그래도 처음 품었던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각오로 맺고 있다. 장부의 기개이다. 

 

 

조조, 문무쌍전의 영웅 

 

 

말을 타고 전장을 내달리던 영웅이자 감성으로 충만했던 시인 조조의 모습이 눈앞에 역력하지 않은가. 삼국지연의에선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조이지만 실은 당시의 시류를 정확히 읽어냄으로써 민심을 얻고 말을 달려 覇者(패자)로 군림했던 조조였다.

 

게다가 문예를 부흥시킨 才士(재사)이자 최고의 詩人(시인)이었다. 훗날 중국 漢詩(한시)라 하면 唐詩(당시)라 하겠는데 그 詩風(시풍)은 조조와 그 아들 조비와 조식의 세 부자와 당시 '건안칠자'라 불렸던 시인들이 다져놓은 바탕 위에 만들어졌으니 사뭇 의의가 깊다 하리라. 

 

훗날 최고의 시인 李白(이백)은 당시의 문학과 시를 일러 建安骨(건안골), 즉 건안 시대의 굵직한 骨氣(골기)라고 찬양했을 정도였다. 조조는 그야말로 文武(문무) 雙全(쌍전)의 기재였던 것이다.

 

다시 아침이다. 맞은 편 산이 구름을 둘렀고 비는 사흘 째.

 

 

상담을 하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람마다 타고난 命(명)은 달라도 運(운)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 60년에 걸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보낸다. 다만 그 계절의 시작이 저마다 다를 뿐이다. 이것으로 각자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선 참으로 드라이하다 말할 수 있다.

 

그 계절을 지내면서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曲折(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굽이굽이, 언덕과 산을 오르내리고 개천과 강을 건넌다. 그럼에도 나 호호당은 애써 그 곡절을 모른 체 하려 한다. 찾아온 상대의 감성에 함께 빠져서 젖어들다 보면 필요한 어드바이스를 제대로 해줄 수 없기 때문이고 아울러 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다. 감상에 빠졌다가도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앞의 저 조조의 시처럼 말이다.

 

 

노래의 원문 

 

 

短歌行(단가행)이라 하고 흔히 對酒當歌(대주당가)라고 칭하는 조조의 시를 원문을 올리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對酒當歌(대주당가) 人生幾何(인생기하)

譬如朝露(비여조로) 去日苦多(거일고다)

慨當以慷(개당이강) 憂思難忘(우사난망)

何以解憂(하이해우) 唯有杜康(유유두강)

青青子衿(청청자금) 悠悠我心(유유아심)

但為君故(단위군고) 沈吟至今(침음지금)

呦呦鹿鳴(유유녹명) 食野之苹(식야지평)

我有嘉賓(아유가빈) 鼓瑟吹笙(고슬취생)

明明如月(명명여월) 何時可掇(하시가철)

憂從中來(우종중래) 不可斷絕(불가단절)

越陌度阡(월맥도천) 枉用相存(왕용상존)

契闊談讌(계활담연) 心念舊恩(심년구은)

月明星稀(월명성희) 烏鵲南飛(오작남비)

繞樹三匝(요수삼잡) 何枝可依(하지가의)

山不厭高(산불염고) 水不厭深(수불염심)

周公吐哺(주공토포) 天下歸心(천하귀심)

치과 가기 싫은 진짜 이유  

 

 

월요일 오후 1시, 비가 조금 내리는 날 수원 행 시외버스를 탔다. 제자가 수원 영통에서 치과를 하는데 참으로 꼼꼼하게 치료를 해주기에 이미 몇 년째 다니고 있다. 주로 임플란트 이식이다. 올 해 6개 정도 하고 내년에 두어 개 하면 더 이상 할 이빨도 없다. 그러면 죽는 날까지 이빨은 정비가 거의 끝날 것으로 기대한다.

 

수술 자체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 내 스스로 내 몸에 침을 놓고 하는 나이기에 마취 주사도 그렇고 드르륵 뼈에 구멍 내는 것도 전혀 부담이 없다. 하지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말 역시 그렇지도 않다. 치과 바로 인근에 영통사란 절이 있는데 임플란트 하는 날이면 으레 절을 찾는다. 특히 약사여래 앞에 다가가 복전함에 만원 짜리 두어 장 넣고 삼배를 올린다. “약사여래님, 무사히 수술 잘 끝나도록 해주십시오, 비나이다.”

 

진짜 문제는 수술 후 거즈를 꽉 물고 세 시간 정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역시 괜찮다. 정확한 이유는 출혈이 멈출 때까지 담배를 참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경질이 난다.

 

담배는 왜 배워서 평생 수시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독이라 금연이 되질 않는다. 그 바람에 장거리 여행도 가지 않는다. 해마다 치과 선생의 고향이 여수라서 해마다 다녀오지만 KTX가 아니었다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여수까지의 소요 시간이 정확하게 3시간인데 앞뒤 합치면 3시간 30분, 나로선 신경질 내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최대한이다.

 

버스 안에서 그리고 수술대 위에 누워 아침에 본 기사 하나를 놓고 이모저모 생각해본다. 드르륵- 하든 말든. 마취 상태인데 뭐, 그러라지.

 

 

참 난처한 사회적 문제

 

 

50대 배달원이 배달 도중 불법 차선변경을 하다가 차량에 부딪쳐 사망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라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모 인터넷 신문의 기자는 현재의 법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사망한 배달원은 주말도 없이 매일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50~60건 정도의 배달을 소화해야만 한 달에 230만원의 수입을 올렸고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배달원이 지내던 곳은 지하 월세 방은 패널로 세워진 가건물로서 곰팡이가 잔뜩 퍼져 있는 공용 화장실이었고 한 겨울에는 전기난로 하나로 버텼다 한다.

 

사정이 참으로 딱하다.

 

그런데 기사 아래의 댓글을 보니 동정하는 마음보다 배달원들의 마구잡이 난폭 운전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이 더 많다.

어떤 글은 배달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동차 주인의 정신적 부담은 그 또한 얼마나 크겠냐고 얘기하고 있다. 또 어떤 글은 하루 50-60건 배달이면 일당이 20만원은 될 거라고 하면서 기자의 글이 과장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배달 시켜놓고 늦게 온다고 닦달 하는 사람들이 배달원을 죽게 만들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댓글을 보니 그 또한 모두 일리가 있으니 

 

 

기사를 포함해서 댓글까지 모두 나름의 충분한 일리가 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총체적인 모습이라 여긴다. 배달원의 운전, 나 호호당 역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순간순간 아찔한 것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노란 승합차, 그야말로 난폭하다. 어린이 안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 놓았더니 ‘난폭허용운전법’이 되고 말았다. 툭-하면 차선을 째고 들어오면서 다른 차들이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자. 저렇게 난폭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면 그 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크게 다칠 것이 아닌가.

 

앞서의 기사는 배달원의 사망이 산재 대상이 아니어서 유가족들이 안타깝게 되었으니 법률을 수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하지만 과연 법을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될까? 물론 개선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마저도 쉽진 않을 것 같아서 얘기이다.

 

 

문제가 존치되는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는 사실

 

 

다른 이야기 하나 또 들려드린다. 동원 예비군 훈련 기간 중 부대에서 제공하는 식사의 맛과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군에선 개선한답시고 부대 인근의 사설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하도록 조치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맛과 질이 떨어졌다. 왜 그런지 사회생활 특히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외부 업체에게 위탁하고 비리가 발생하면 그럴 때마다 해당 업체는 물론이고 관련된 장교 몇 명만 어김없이 옷을 벗기면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은 군의 개선의지가 별로 크지 않다고 본다. (군이 식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오랜 역사가 있다. 명나라, 청나라, 조선왕조, 아니 나 호호당이 군대 복무 시절만 해도 심하다 싶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앞서의 배달원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개선이 절대 쉽지 않다.

 

 

문제의 현장에 가보면 나름 합리적이라서 

 

 

우선 배달 플랫폼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배달 단가의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배달 시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단가를 맞추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달원들은 죽어라 달려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건당 수익이 크지도 않으니 어서 후딱 배달해야만 그나마 잠깐 쉴 수라도 있다.

 

플랫폼 업체들은 사고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배달원들은 대부분 자영업자 또는 프리랜서들이다. 교통법규 위반은 배달원의 책임이란 얘기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수익을 올려야 하고 배달원들 역시 각자 나름의 원하는 수입을 올려야만 한다.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배달을 시켜 먹는 소비자들은 신속한 배달과 저렴한 배달비를 요구한다. 거기에 플랫폼 업체들 간의 엄청난 경쟁이 존재하니 이 모순은 도저히 해결될 수가 없다. “신속한 난폭운전”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 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이다.

 

간단해 보이는 어떤 사회 문제나 비리, 악폐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나름 모든 이가 합리적 주장과 요구를 하고 수용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 업체의 입장 충분히 이해가 가고 배달원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소비자들의 요구도 당연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보면 문제가 크고 또 많다. 이에 그로 인한 해악은 우리 사회 전체가 골고루 나누어서 부담하거나 감내해야 한다.

 

 

어떻게 바꾸어도 비용은 발생하고 결국 약자에게 전가된다. 

 

 

모든 일은 뭘 어떻게 바꾸어도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 동시에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느냐 하는 점도 달라진다. (심적 스트레스는 따지지 않아도 그렇다.) 사회 비리나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야기하는 비용과 문제점도 크겠지만 비리나 문제를 그냥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편리성과 이익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리나 문제가 그냥 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선에 반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리나 문제점이 바뀌지 않고 존치되는 것은 그와 관련된 당사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비리나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변의 압력 즉 환경적 압력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말이다. 비리와 문제점이 그대로 유지되든 바뀌든 개선이 이루어지든 관계없이 그에 따른 비용 발생은 현실에서 대부분 弱者(약자)에게 더 전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강자가 더 부담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현대 사회의 경우 약자에게 전가되는 비용의 일부를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일부를 대신 지불해주기도 한다. (기억하기로 2000년대의 버스 준공영제라든가 대중교통 환승시스템, 버스 전용차선과 같은 제도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럴 경우 정부나 지자체는 물론 그 비용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사회 전체에게 전가한다. 때론 특정계층에게 부담시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기업들이 내는 사실상의 세금인 ‘부담금’이 바로 그렇다.

 

 

정치야말로 종교와도 같아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후보들은 목청을 높여 떠들어대고 다닌다. 이번 정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으니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저건 과거 중국 전설의 堯舜(요순)시대에나 가능한 얘기가 아닌가! 시진핑의 중국몽이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야말로 公約(공약)이 아닌 空約(공약)의 극한치였다.

 

이는 비난의 소리가 아니다. 정치야말로 종교란 사실, 나 호호당 역시 임플란트 수술 전에는 절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초파일이 가깝다. 연등 하나 비싸게 올려볼까?

 

 

여름 선생, 좀 천천히 오시지... 

 

 

갑자기 여름이 시작되었다. 긴 팔 셔츠에 자켓을 걸쳤더니 겨드랑이에 땀이 흘렀다. 그리고 보니 벌레들이 많아졌다. 새들이 이제 굶주리지 않겠구나 싶다. 모두가 먹고 살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여름이 왔다. 그리고 동남풍이 연일 불어대면서 중국 발 먼지를 중국 안으로 다시 말아 넣고 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 모양인지 수술 후 사흘이 지나서야 글을 올린다.

 

나름 성의를 다 했던 일본의 몰락

 

 

예전에 일본의 무역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 흑자로 인한 잉여 달러를 미국 국채를 사는 데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로서 미국은 달러 가치의 하락을 막을 수 있었고 일본은 수출 제조업이 가동될 수 있었기에 두 나라 모두 그런대로 만족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글로벌 경제를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G2란 말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갈 순 없었다.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이에 방위 문제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마당이라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했다. 엔화를 달러에 비해 대폭 절상하고 그에 따른 문제와 부작용은 투자를 늘려 해결해 보려다가 대거 실패했다. 1990년 말의 일본 거품 붕괴가 그것이었다. 그 이후 일본은 지금까지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반면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시스코, 그 이후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혁신 기술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제를 번영시킬 수 있었다.

 

 

중국은 일본과 입장이 달라서

 

 

그 다음 타자는 중국이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중국에 대해 우린 G2라고 립 서비스를 해주었다. 중국은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통해 국내 국영기업들의 덩치를 키워왔고 또 기술도 축적해왔다. 물론 중국 역시 막대한 무역흑자를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균형을 유지했다. 미국 또한 이득을 보았는데, 저렴한 중국산 생필품으로 인해 미국 중하층 사람들의 생활고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이 균형 역시 2009년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은 과거 일본 사례를 들먹이면서 중국이 미국의 물건을 더 사줘야만 한다고 압박했고 그게 먹히지 않자 기술을 훔쳐가고 있다면서 관세 인상 등등 갖은 제재와 압박을 중국에게 가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오늘날 중국에 비하면 무척이나 순순하게 수용했다. 방위 문제가 전적으로 미국의 손에 달려 있었던 까닭이고 미국이야말로 일본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일본과는 입장이 다르다. 무엇보다 국가 방위를 미국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도전하려는 기미까지 있다. 게다가 중국의 막대한 부채는 대부분 국영기업들의 것이기에 부채로 인한 버블이 붕괴할 확률 또한 일반의 생각보다는 그렇게 높지 않다. (물론 미래는 모르는 것이지만 말이다.)

 

중국이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굳이 미국에게 통 큰 양보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독일은 동서독 통일 이후 사실상 미국에게 아쉬운 점이 사라졌다. 방위 부담을 덜어내면서 더 이상 미국에게 굽신거릴 필요가 없어졌고 이에 마침내 유럽연합의 단일화폐인 유로를 만들면서 떨어져나갔다. 물론 유로를 사용하다보니 역내의 다른 문제들, 대표적으로 그리스 부채 위기와 같은 또 다른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달러가 유지되는 것은 협력국가들의 희생 혹은 희생이 있기에 

 

 

달러를 기축통화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축통화인 달러는 일본과 독일, 그리고 중국 등의 미국 국채 보유가 없었다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미국이 제멋대로 달러를 찍어낸다고 괘씸하게 여긴 나머지 무역 결제 시 달러 수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럴 경우 달러의 붕괴와 함께 글로벌 경제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그렇기에 달러 패권이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건 전 세계가 지난 50년의 세월보다 훨씬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달러를 놓고 ‘종이돈’이라 하면서 비아냥거릴 순 있어도 정작 감히 그 종이돈을 받지 않거나 처분하겠다고 나서는 국가는 없다. 종이돈이지만 그래도 그걸 유지하는 것이 미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저 일부 극소수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달러가치 폭락에 대한 대체재로서 금이나 ‘코인’을 매수하고 있을 뿐이다. 코인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현재로선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국제 정치와 글로벌 패권의 영역인 까닭이다.)

 

 

일본모델을 따라했던 아시아 각국의 성장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수출 위주 성장 모델은 아시아 각국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고 중국 역시 그러했으며 타이완이나 싱가포르, 태국, 인디아 등의 나라들도 죄다 일본 모델을 따라했고 각자 나름의 성과를 보았다.

 

아시아 각국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미국 때문이었다.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인 미국이 자국 시장을 줄곧 개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수출국들을 일종의 하청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엔 하청기업이란 말보다는 협력업체라고 하고 있듯이 수출 국가들을 협력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도 1차 2차가 있듯이 원자재에서부터 부품, 그리고 중간재인 묘듈 등등에 있어 국가별 역할 분담을 통한 공급망, 달리 말하면 하청 국가들로 이루어지는 공급 사슬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라 부른다. 그 사슬에서 각자가 가져가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 바로 밸류 체인(Value Chain)이다.

 

우리 수출에 있어 겉보기엔 중국이 중요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부품이나 중간재가 중국으로 넘어가면 중국에 진출해있는 국내 대기업의 공장에서 완제품이 되어 미국이나 유럽 시장 등지로 수출이 되니 그렇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인건비 따먹기”에 불과하다.

 

예로서 삼성 갤럭시 폰의 중국 내수시장 판매는 너무나도 초라해서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중국 내수 시장은 우리에게 전혀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꽤나 그럴 것이다. 나 호호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몇 년 들락거리면서 중국인들과 교우도 했기에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 물건을 사주지 않을 거란 점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우리 경제의 장래 역시 미국에게 달려있다는 점이고 그게 바로 우리의 한계란 점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일본이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특별한 수법을 썼다가 쫄딱 망했듯이 우리 역시 별다른 대책이 없다. 북한과 통일한다 해도 내수시장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최소한 20-30년간은 우리 경제에 크나큰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 시장은 어쩌면 우리에게 영원히 차가운 상태로 남을 것이다.

 

 

우리 수출 경쟁력의 실체

 

 

우리 경제를 끌고 가는 바탕은 여전히 수출이고 앞으로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수출 기업들의 강점과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느냐를 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에 살펴보면 우리 수출기업들은 경쟁력이 있다. 첫째, 미국 유학을 통해 선진기술을 습득해온 우수한 이공계 기술 인력이 있다는 점이고 그 다음으론 신속한 대응 능력이라 하겠다.

 

현재 시각은 밤 11시54분이다. 나 호호당의 아파트는 우면동에 있는데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내 방의 남쪽 창밖으론 우뚝 선 LG 전자 연구센터가 내다보이고 북쪽 부엌 쪽으론 삼성전자 연구센터가 보인다. 이 시각에도 불이 꺼진 창문보다 불이 켜진 창문이 더 많다. 기술 개발을 위해 알아서들 야근을 하고 있다. 야근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되었는데 두 곳 모두 불이 전부 꺼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공휴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동부 역시 뻔히 알면서도 못 본 척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연구실이나 센터란 곳은 죄다 인력을 사정없이 갈아서 마모시키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바로 저 모습이 앞에서 언급한 우리 기업들 특히 수출기업들이 가진 신속한 대응능력의 실체라 하겠으니 소위 ‘워라밸’이란 게 수출국가 또는 하청국가 더 달리 말하면 협력국가인 우리에게 가능한 일일까?

 

한 때 일본 여성들의 출산율이 엉망이라고 힐난했었는데 이제와 보니 우린 더 심하다. 국가별 출산율 187위, 글로벌 꼴찌이다. 한동안 비혼 풍조가 걱정이다 하더니 이젠 결혼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자녀를 갖는 것은 끔찍하게 비싼 사치품을 소유하는 것과 진배없는 우리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일부 근로자,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일부 귀족노조를 제외하면 죄다 갈림과 갈굼을 당하고 있고 전체 근로자의 1/3 이상은 비정규직이다. 그런 판국에 비정규직마저 되지 못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더불어서 자영업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니 전부 ‘공시족’이 되고 있다.

 

(특권층이란 사람들은 갖은 편법을 동원해서 자녀들을 공기업이나 전문직이 되도록 하고 있고 그를 지켜보는 젊은이들은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그게 바로 “조국 사태”의 본질이다!)

 

 

갈려나가버린 우리 대한민국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실상 전 국민이 磨耗(마모)되고 消耗(소모)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부단히 마모되고 소모되다가 이젠 극도의 疲勞(피로)사회가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연준이 금리라도 조금 올렸다간 경제 전체가 부채의 무게로 인해 무너질 판국이다.

 

수출 주도의 성장 모델을 제외하곤 달리 생각해볼 수가 없고 이젠 그마저도 과연 우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으니 갑갑하다. 저번 글에서 “일본의 굴레”란 책을 여러 번 읽어가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한 점은 우리 사회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당분간은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믿는 것은 궁하면 결국 통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할 것 같다. 마무리를 하면서 창밖을 보니 바람 불고 비오고 있다. 스산한 초여름이다.

코로나19, 이제 퇴치되지 않는다는 음울한 얘기

 

 

“백신을 맞으며 코로나19와 함께 살게 될 것”, “바이러스 근절 대신 중증 환자와 피해 최소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는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이다. 백신을 통해 항체가 생겨도 주변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을 막진 못할 것 같다는 얘기, 즉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이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지만 공신력 있는 전문가 집단의 소견이기에 일단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퇴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앞으론 어쩌면 평생토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나 진배없다.

 

희망하기로 장차 코로나19가 변이를 거듭하면서 독감 정도로 독성이 약해지면서 인간과 공존하게 되기를. 꽤나 우울한 소식이다.

 

올 해 만 66세가 되는 나 호호당의 경우 각별히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자료를 보면 연령별 코로나19의 감염률과 입원률, 사망률이 잘 정리되어 있다.

 

 

스치면 간다!

 

 

감염 자체는 연령대와 큰 상관없이 골고루 발생한다. 하지만 사망률을 보면 가히 충격이다. 5세-17세 연령층의 감염에 따른 사망률을 1이라 할 때 나머지 연령대의 사망률을 보면 다음과 같다.

 

18-29세는 10배, 30-39세는 45배, 40-49세는 130배, 50-64세는 440배, 65-74세는 1,300배, 75-84세는 3,200배, 85세 이상은 8,700배라 한다. 올 해 만 66세가 되는 나 호호당의 경우 감염되면 바로 저승 문턱이란 얘기이니 각별히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www.cdc.gov/coronavirus/2019-ncov/covid-data/investigations-discovery/hospitalization-death-by-age.html)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그간 100세까지 산다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거 웃기고 있네, 다 안배해놓은 게 있다네, 노령화가 문제라면서? 그러니 정리해주지, 마치 자연이 이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생각.

 

동시에 이젠 사람이 모이는 일 자체가 지극히 위험한 일이 될 것 같다. 스포츠 경기장, 댄스 클럽이나 유흥주점, 영화관, 관광이나 여행 등등의 산업, 그리고 집단 시위나 데모와 같은 정치 활동 등은 근본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인파로 북적대는 모든 장소, 재래시장이나 백화점, 쇼핑센터 등의 물리적 공간은 사라지고 디지털로 돌아가는 시장으로 바뀌고, 3만 관중이 운집한 야구장, 나아가서 10만이 들어선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의 개막식이나 폐막식 등은 역사 속의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면 대도시의 오피스 빌딩 지역이나 다운타운 지역이 원천적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상상이 들고 난다. 가령 국제선 여객기도 격리된 좌석이 될 것 같고 자연스레 비행기 운임은 엄청나게 비싸질 것이란 생각, 택시 역시 앞좌석은 사라지고 승객석과 운전석이 차단되고 인터폰으로 통화하게 될 것 같다.

 

 

격리사회의 도래인가? 

 

 

정말이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조금 더 비약하면 이제 인간 사회가 “격리 사회”로 변할 것도 같다.

 

Quarantined Society! 이런 거 말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하진 말자. 코로나19가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소프트’하게 변이될 가능성도 열어두자.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주요 선진국들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효능의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비관론, 그리고 낙관론, 이를 절충해보면 장차 최소한 5년 정도는 과다위생과 격리의 시대가 될 것 같고 10년 후가 되면 마스크를 쓰긴 쓰되 어느 정도 접촉은 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정리해두자.

 

 

독한 너마저 이혼하니? 

 

 

그리고 놀랍게도 빌 게이츠 부부가 이혼한다고 한다. 워낙 냉철한 인물이라 끝까지 그럭저럭 버티면서 살 줄 알았는데 말이다. 빌 게이츠의 운세가 이제 절정이던 1994년 1월 1일에 결혼했기에 보통 사람이면 당연히 이혼했을 것으로 추측했는데 그러질 않는 것을 보고 야, 대단하다 싶었다.

 

빌 게이츠의 경우 1994년은 그의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霜降(상강)의 운이었다. 이럴 경우 최근의 젊은 커플이라면 97% 정도 이혼한다는 데 베팅한다. 하지만 그는 올드 세대이고 워낙 냉정 침착한 인물이라 속으로야 파경에 들어서도 겉으론 아닌 척 하면서 끝까지 살 줄 알았다.

 

그래도 빌 게이츠의 이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내년 2022년은 그의 운세가 淸明(청명), 새 삶을 시작하는 때인데 새 삶을 위해선 이혼이 필요하다고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1994년에 결혼했으니 24년이 경과한 2018년부터 사실상 더 이상의 결혼 관계는 무리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본다.

 

워낙 엄청난 재산을 가진 커플이라 세인들의 큰 관심거리이겠지만 사실 그 두 사람에게 있어 돈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혼을 한다는 말인 즉 새 사람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이미 연인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거야 그의 사생활이니 별 관심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빌 게이츠 그리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이 이혼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냥 부자일 뿐 미국 사회 내에서 귀족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국의 귀족들 역시 영국과 더불어 이혼하지 않는다.

 

 

박인비를 잇는 골프 천재의 등장

 

 

반가운 소식 하나, 장차 박인비를 능가할 수도 있어 보이는 천재 골퍼가 등장했다. 바로 김효주이다. 그간 실로 많은 골프 톱 클래스들이 등장했지만 김효주는 그들과는 또 다르다.

 

1995년 7월 14일, 乙亥(을해)년 癸未(계미)월 丙午(병오)일 생이다. 2016년이 입추의 운이었다. 그런데 2014년에 LPGA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으니 이런 일은 우리 골퍼 중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며칠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다. 마지막 날엔 무려 8타를 줄였다.

 

이로서 확실해졌다. 골프 여제 박인비를 능가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싱가포르 시합은 5월 2일이었다. 辛丑(신축)년 壬辰(임진)월 庚戌(경술)일이었다. 머릿속으로 추산해보니 우선 올 해 자체가 황금의 財運(재운)이라 올 해로서 월드 클라스 프로 골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날 일진 또한 대단했다. 그러니 마지막 날 보기 없이 버디만 무려 8개를 낚았고 그로서 우승했다.

 

다시 얘기지만 김효주는 2016년이 입추의 운이다. 따라서 2014년 에비앙에서 우승한 것은 입추 2년 전이었다. 타고난 골프 천재임이 확실하다. 박인비와 비교할 것 같으면 그녀 역시 대단한 천재이지만 첫 LPGA 투어 우승은 입추의 운인 2008년 US 여자 오픈이었는데 김효주는 그에 비해 2년이 빠르다.

 

사주를 보면 가장 뛰어난 점은 탁월한 공간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근육이 부드러워서 부상을 당해도 회복이 빠른 체질이다. 물론 골퍼에게 필수인 자기 제어도 좋다. 타고난 천재 골퍼임이 확실하다.

 

장차 94승에 빛나는 안니카 소렌스탐에 버금가는 전설의 선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박인비의 경우 이제 겨울을 앞두고 추수를 하는 형국이다, 액면 그대로 이룰 건 다 이룬 셈이다.)

 

 

글을 한동안 올리지 못한 이유

 

 

며칠간 글을 올리지 않았다. 책 한 권에 푹 빠져있었던 까닭이다. 근 열흘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세 번 연이어 읽었다. 658 페이지나 되는 제법 두툼한 책이고 내용 자체도 곱씹어볼 것이 많아서였다. 처음엔 흥미로운 부분부터 읽었지만 나중에 이게 아니다 싶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고 그를 무려 세 번 반복했다.

 

책의 국내번역본 제목은 “일본의 굴레”, 일본에서 오래 활동했던 미국 학자가 썼는데 원 제목은 “Japan and the Shackles of the Past”. 지나간 겨울 동안 읽었던 불교철학서들만큼이나 읽고 생각하고 다시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 호호당은 일본에 대한 책을 여러 수십 권 이상 읽었지만 이번 책만큼 감명을 받은 적은 없다. 그리고 머릿속이 띵-하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우리나라가 떠올랐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홀쭉한 참새, 억만의 빗방울 속에서

 

 

낮 시간 전선줄에 앉아있는 참새 한 마리를 보았다. 그야말로 홀쭉했다. 이맘때가 가장 먹을 게 없는 때라서 그렇다. 초겨울 무렵엔 야구공처럼 빵빵하던 놈들이 저토록 ‘슬림’해 졌으니 얼마나 힘들까나.

 

밤 시간 우산을 쓰고 귀가하면서 가로등 밑에서 위를 올려보니 반짝이는 빗줄기가 그야말로 無數(무수)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無數(무수)란 말은 數(수)가 없다는 말인데 어떤 연유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으로 쓰이는 걸까? 이에 우산을 잠시 내려 얼굴에 비를 맞으면서 거 참! 알 수 없는 일일세, 했다.

 

글을 마치려 하니 갑자기 창밖의 빗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새벽 1시. 이제 자야지.

자연은 지금이 가장 부실하다. 

 

아침 강아지 산책길에 나서니 벚나무들이 어느새 나무 그늘을 제법 진하게 드리웠다, 잎사귀 사이의 공간이 없어졌다. 걷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휙-하고 젓게 된다, 민들레 홀씨가 둥둥 떠다니면서 사람을 성가시게 한다, “민들레 홀씨 되어” 하는 노랫말은 예쁘건만. 일요일,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보니 한가로운 찻길에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날로 넓어져가고 있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창 아래 목련도 며칠 사이 잎사귀를 부쩍 키웠다. 신록의 계절이다, 이건 5월의 풍경인데 근 보름을 앞당겨서 보게 된다.

 

올 해 이상고온으로 미처 꽃을 피워내지 못한 벚나무들도 많이 보았다. 아픈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사실 나무들은 이맘때 가장 궁핍하고 부실하다. 늦가을까지 저장했던 양분은 다 소진했는데 또 다시 양분을 들여서 신록을 매달아 올려야 하니 나무들은 지금 몹시 부실하다. 나무만 그런 게 아니라 새들도 지금 가장 홀쭉하다. 아직 벌레가 나오지 않으니 먹을 것, 특히 단백질 보충이 절대 부족하다.

 

늦가을 참새를 보면 마치 야구공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참새들을 보면 홀쭉하다. 기름이 쫙- 빠졌다. 지금 계절은 신록의 계절이라 新鮮(신선)하지만 실은 영양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자연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부실하다.

 

독자들도 이 글을 보고 나중에라도 생각이 나면 먹다가 남은 빵조각이나 고기 부스러기들을 산책 시간에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에 뿌려주라고 부탁의 말씀 드린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니, 당연히 길고양이들도 좀 챙겨주고 말이다.

 

4월 하순의 곡우에서 5월 하순의 소만까지 한 달 동안 자연은 가장 가난하다, 궁핍하다. 보기엔 싱그러운 신록의 때에 가장 부실하고 궁핍하다. 가진 것 없는 청년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같다.

 

 

우리 국운 또한 그랬으니 

 

 

사람의 모습 또한 60년 순환에 있어 이 무렵, 즉 입춘 바닥으로부터 12.5년에서 17.5년까지의 5년 동안에 가장 초라하다. 윤기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국운으로 치면 1977년에서 1982년까지가 그랬다.

 

그 무렵 우리는 지극히 궁핍했는데 중화학 공업에 모든 자원을 다 모아서 투자를 했고 그게 성공해서 오늘날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독한 리더십이었다. 나 호호당의 경우 젊은 시절 엄청나게 그 분을 미워했으나 세월이 흘러 사물의 이치를 알고 난 지금에 이르러선 그 분을 존경한다. 나라를 일으켜 세웠으니 참으로 고마웠다고.

 

세상 이치가 그렇다,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 나중에 보면 시원치 않고 당장엔 쓴 소리 하는 사람 나중에 보면 고마워진다.

 

그렇다고 이제 박정희 시대의 리더십은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멀지 않아 나라가 정말 어려워지면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 단합하고 뭉쳐서 길을 열어갈 것이라 본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니게 될 것이고 우리는 또 다시 하나가 될 것이다.

 

궁색해보이지만 生氣(생기)가 있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活氣(활기)가 없는 이 逆說(역설), 묘하고 또 묘하구나! 왜 그런가? 하고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바로 지금의 때, 4월과 5월의 모습을 보라, 자기의 눈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 서서 유심한 눈으로 살피면 바로 알게 된다.

 

 

주식이 되질 않자 코인이라 거 참!

 

 

최근 상담하다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으니 ‘저 주식 해도 될까요?’ 이다. 말리는 것도 지겹다. 관련해서 며칠 전 어쩌다 유튜브를 보니 작년 증시가 코로나 바닥에 새롭게 뛰어든 신규 개미들의 수익률이 수수료까지 계산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났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낄낄 웃었다. 당연하다 싶다.

 

주식은 도박이다, 도박이란 게 원래 망하는 길은 천 가지도 더 되고 사는 길은 몇 개 없으니 그럴 밖에. 실수를 해서 다신 이런 실수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면 다른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곤 다시 배우고 결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진다. 그것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아예 계좌를 살펴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다는 말도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울 턱이 없다.

 

가장 흔한 케이스는 소액으로 시작해서 좀 벌게 되면 더 많은 돈을 넣게 되고 그 결과 다 털어먹는다. 다 털어먹고 손을 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제야 뭘 좀 알 것 같은 느낌, 거기에 더하여 복수심까지 발동하니 돈을 빌려서까지 본격 나선다. 그리곤 인생 종치게 된다. 최근엔 주식이 잘 되지 않자 20-30대 개미들은 온통 코인 쪽으로 몰려들었다. 부나방 같아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망설이던 얘기를 햐본다. 

 

 

해가 길어져서 저녁 7시 50분, 미처 어둡지 않은 맑은 저녁 하늘에 커다란 夜光珠(야광주)가 환한 빛을 뿌리고 있다. 조금은 모자란 것 같아 달력을 보니 음력 14일이다. 옛 사람들은 얼마나 궁금해 했을까나, 달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달의 실제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

 

갑자기 무거운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한다. (실은 이 얘기를 꺼낼까 말까 계속 망설이면서 지금까지 다른 얘기들을 해왔다. 이제 결심이 서서 시작한다.)

 

며칠 전 연쇄살인범 정남규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에 걸쳐 13명의 살인과 20명의 사람에게 중상을 입힌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다. 시청하다가 궁금해져서 생일을 검색해보니 1969년 3월 1일로 나온다. 그 시절에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가 출신이라면 음력 생일의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己酉(기유)년 戊辰(무진)월 壬戌(임술)일이 되는데 이게 맞는 얘기라면 정남규의 범행 동기가 대번에 이해가 간다.

 

 

정남규, 연쇄 살인범의 동기에 대해 

 

 

나 호호당의 추리는 이렇다.

 

극도로 소심하지만 내심으론 강한 반발심을 갖는 성향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연쇄살인범이 되진 않는다. 게다가 형편이 어려웠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것은 강렬한 환상을 갖는 타입이란 점에 있다.

 

자라면서 당했던 숱한 수모와 굴욕에 대해 늘 복수하고 응징하고픈 마음이 있었을 것인데 응징하고 복수하는 모습을 늘 상상 속에서 무수히 그려보았을 것이라 본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환상인지 현실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리얼’ 살인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강렬한 성적 만족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자 살인 당시에 느꼈던 강렬한 쾌감을 잊을 수 없었고 이에 또 다시 살인을 시도했다. 보통의 사람이 한 번 섹스를 경험하면 계속 하고 싶어 하듯이 정남규는 계속 살인을 해야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검거되었다.

 

壬(임)이나 癸(계)의 날에 태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환타지에 대한 추구 혹은 집착이 강하다. 그렇기에 술이나 도박, 그리고 섹스 등으로 인해 운세가 하강할 때 실수를 많이 한다. 가령 강원도 정선에 가서 가져간 돈 다 털리는 바람에 타고 간 승용차까지 저당 잡힌 사람들의 사주를 알아보면 壬(임)이나 癸(계)의 날에 태어난 사람이 절반 이상일 것으로 확신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술 중독이 되기도 하고 도박 중독자도 많으며 섹스 중독자도 많다. 물론 그렇다고 壬(임)이나 癸(계)의 날에 태어난 사람은 다 그렇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라든가 워렌 버핏과 같은 사람들 역시 壬(임)의 날에 태어났다. 오해마시길...

 

壬(임)의 날에 태어난 정남규는 어쩌다가 그만 살인중독에 빠진 것이라 보면 된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고 했다는 데 진심이라 본다.

 

정남규에 대해선 이렇게 간단하게 얘기할 내용은 아니지만 전문적인 설명을 요하기에 생략한다. 다만 놀란 것은 환타지에 대한 집착이 그냥 부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反(반)사회적으로 강화된 결과 저렇게 살인중독증세도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은 후 2009년 11월 21일에 자살했다.

 

날을 보니 그 역시 마지막 환타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어떤 고통과 함께 그를 보상해주는 어떤 희열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기였을 것으로 본다.

 

정남규는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살해당하는 상대의 공포와 고통을 인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적 희열로 느꼈다는 점에서 소시오패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운명학적 관점에서 그간에 인터넷을 통해 수백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했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을 연구해보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가령 정남규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생년월일까지 다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 언젠가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현대의 주류 과학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절로 다 밝혀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무거운 얘기였다, 악몽과도 같은. 인간은 정말이지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동물이란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친다.

 

 

백신 수급, 정부의 안일한 대응

 

 

코로나19 백신은 툭 하면 수천만 명 분 확보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지만 구체적인 인도 일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다른 곳에 다 주고 나서 더 생산하면 넘겨드리겠다는 얘기가 아니면 달리 무엇이랴! 다시 말해서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이다. 정부의 초기 대응이 너무 안일했던 까닭이라 본다. 그저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씨뿌리는 계절에 비가 충분하다니 좋구나! 

 

 

오늘 4월 20일은 穀雨(곡우), 씨를 뿌림에 있어 비가 내리면 한 해 농사가 순조롭다는 의미의 절기이다. 지난 토요일 비가 내렸는데 그게 곡우 비였다고 보면 되리라. 어제 환경부 보도에 따르면 최근 잦아진 봄비로 가뭄에 대비한 전국 댐 저수량이 충족됐다고 한다. 이에 장마 전까진 가뭄은 없을 것이라 하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풍류의 때, 곡우

 

 

곡우 무렵이면 땅의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땅속에 머물던 수분들이 땅위로 올라오고 그 기운을 받아 씨앗을 심으면 그 또한 자라면서 뿌리가 내리고 줄기는 땅거죽을 향해 힘차게 꿈틀대며 위로 오른다. 땅위로 올라온 수증기는 대기 온도의 상승과 함께 하늘로 오르니 구름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면 높은 하늘에 있던 찬 공기가 위로 내려오니 하늘의 위와 아래에 걸쳐 대기의 활발한 對流(대류)가 생겨난다. 공기 흐름이 많아지니 봄바람이 분다. 때론 서늘하고 시원한 공기가 때론 따뜻한 훈풍이 분다. 이게 바로 風流(풍류)라고 하는 것이다. 어디로도 불어가고 파고드는 바람이 활발한 때이니 곡우는 풍류의 계절인 것이다.

 

이 무렵에 바깥에 나가 하늘과 땅 사이의 활발하고 활달한 공기흐름을 코로 들이마시게 되니 그게 바로 풍류이고 봄나들이의 때이다. 옛날로 치면 하루 시간을 내어 화전놀이 나갈 때인 것이다. 본격 농번기를 앞두고 하루 쉬고 놀면서 공동체 간의 결의를 다지는 세시풍속이었다.

 

 

하늘과 땅이 서로간에 큰 것을 교환하고 섞으니

 

 

하늘의 氣(기)는 내려오고 땅의 氣(기)는 치솟으니 천지의 기가 서로 만나서 합하고 교류한다. 이를 주역에선 그 모습을 地天泰(지천태)의 괘로 형상화하고 있다. 땅을 상징하는 坤卦(곤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乾卦(건괘)이 아래에 있으니 이는 천지가 뒤집힌 것이 아니라 땅이 오르고 하늘이 내려오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를 달리 天地交泰(천지교태)라고도 한다. 하늘과 땅이 교류해서 큰 것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땅이 서로 큰 것을 뒤 섞는다 등등의 말이 된다. 이는 陰陽和合(음양화합)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천지교태는 생산의 출발점이 된다.

 

경복궁 안에 있는 왕비의 寢殿(침전) 즉 왕비가 왕과 함께 자던 곳을 交泰殿(교태전)이라 하니 이는 왕과 왕비가 性交(성교), 섹스를 통해 나라를 이어갈 왕자들을 생산하는 곳이란 의미이다. 섹스는 생산의 시작이고 이는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것 역시 생산의 시작이다. 바로 곡우로서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가서 수확을 보기 위함이다. 밭을 일구는 행위, 농사짓는 것 등을 동서양에선 남녀의 섹스와 생산에 곧잘 비유하는 것 역시 같은 이치라 하겠다.

 

 

생산에 이상현상이 생기고 있으니 

 

그러나 오늘날 남녀가 섹스만 즐길 뿐 생산을 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는 주로 선진국에서 그러한 데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이 오늘에 와서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닭이기도 하고, 책임 지지 않고 ‘프리’하게 살려는 젊은이들의 욕구가 반영된 탓이기도 하다. 내 삶을 즐기면서 아이들까지 잘 키우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 호호당은 이런 생각도 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1960년대의 농업 혁명으로 인한 식량 증산과 육류 공급으로 먹을 것은 대충 해결되었으며 피임 기술의 발달로 섹스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프리섹스’ 풍조로 인해 섹스와 결혼은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종교의 쇠퇴로 인해 유산이나 낙태에 대한 부담 또한 줄었다. 이에 식욕과 성욕은 해결이 된 셈이다. 기본 욕구가 해결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IT 혁명으로 인해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력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양극화가 생겨났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를 포함해서 선진국에 속하는 지역의 사람들은 개개인의 생각을 떠나 집단적으론 스스로 미래 인구를 줄이는 흐름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곡우는 생산의 출발점

 

 

다시 한 번 얘기지만 곡우는 播種(파종) 즉 씨를 뿌리는 때이다. 씨앗을 물에 담근 뒤 보면 물위에 뜨는 놈은 가벼워서 부실한 놈이고 바닥까지 가라앉는 놈만을 건져서 씨앗으로 쓴다. 무거운 놈 즉 重(중)한 놈이 실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씨앗 種(종)이다. 벼 禾(화)에 무거울 重(중)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 해의 흐름 전체를 놓고 보면 1월 20일의 大寒(대한)에서부터 오늘 곡우 4월 20일까지의 석 달간은 생산의 준비단계였다면 오늘 곡우부터 7월 24일 경의 大暑(대서)까지 석 달 간은 양적 성장의 단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석 달 간 즉 10월 20일의 霜降(상강)까지는 성장이 아니라 결실을 보는 단계 또는 질적 성장 단계에 해당된다.

 

그리하여 한 해 중에서 9개월은 생산 준비와 양적 성장, 그리고 생산의 마무리로 이루어지고 나머지 3 개월, 즉 10월 20일부터 이듬해 1월 20일까진 쉬는 때라 하겠다.

 

곡우의 때는 농사만이 아니라 인간사 모든 일에 적용된다. 될 법한 일에 사람은 집중하고 전망이 있어 보이는 아이템에 기업은 투자를 한다.

 

이제 곡우로서 올 해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시작되고 있다. 증시를 볼 것 같으면 1분기까지는 작년 겨울부터의 실적에 따라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법이고 이제부턴 기업들의 투자 내용에 따라 금년 하반기와 내년 1/4분기까지의 예상실적을 감안하면서 주식들의 상승과 하락, 정체를 판단한다.

 

정치 또한 그러하다. 4월 7일의 보궐선거로서 문재인 정권은 사실상 끝이 났다. 정권 초반의 정책들 가령 소득주도 성장이라든가 적폐청산, 공정한 인사정책 등등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이른바 “조국 사태”였으니 재작년 8월이었고 그로부터 18개월이 흐른 금년 2월로서 정권은 수명을 다했다. 이에 내년 대선을 향한 차기 후보들의 레이스가 시작되고 있다.

 

 

국운의 순환에서 보면 대한이기에 

 

 

오늘은 한 해의 곡우이지만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서 보면 올 해 2021년은 가장 열에너지가 고갈된 1월 20일 경의 大寒(대한) 무렵에 가깝다. 나라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쉬고 있는 때인 셈이다. 그러니 일자리가 늘어날 까닭이 없고 그저 돈을 풀어서 만들어내는 가짜 성장, 마치 성장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집값이 너무 올라서 난리인데 실은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돈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돈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의 노동에 대한 代價(대가)가 떨어진다는 것이고 나아가서 결국 사람의 가치가 저렴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떻게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느냐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렇기에 이제 ‘중산층의 시대’는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으니 중산층의 시대는 1987년에 시작되어 2002년으로서 정점에 달했고 그 이후 다시 15년이 흘러 2017년으로서 끝이 났다. 30년의 세월이었다.

 

그러니 이제 부자와 빈자의 시대가 다시 2017년부터 시작되었고 이는 15년이 흘러 2032년으로서 정점에 달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중산층이다, 하지만 멀지 않아 아파트 가격이 내리면 그런 虛像(허상)의 중산층이란 생각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갈 것이니 말이다.

 

 

곡우, 위대한 시작

 

 

한 해의 투자와 씨뿌리기는 곡우로서 시작된다. 그러니 독자 각자들도 올 해의 주제와 테마를 정했다면 이제 그 길에 나서야 하겠다. 사람의 60년에 걸친 운세 순환 역시 입춘 바닥으로부터 12.5년이 흐른 곡우 무렵에 무엇에 대해 투자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날 것이다.

 

곡우는 참으로 위대한 생산의 시작점이다.

 

(이 글은 어제 낮에 쓰기 시작해서 오늘 마무리한 글이다.)

수액 주사를 맞으며 

 

심한 설사를 했다, 임플란트 이식한 뒤 먹은 항생제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틀 동안 죽만 먹었더니 기력이 떨어져서 동네 의원에 가서 영양제 수액주사를 맞았다. 작년에 처음 맞아보았는데 1시간이 꽤나 무료했었다. 그래서 이번엔 작은 책을 한 권 들고 나섰다. 마침 봄비도 내리니 우산도 쓰고 말이다.

 

책 제목은 徒然草(도연초). ‘내키는 대로 대충 써 내려간 허튼 글’이란 뜻인데 이를 오늘날의 문학 장르로 치자면 바로 隨筆(수필)이 된다. 700 년 전 일본 중세의 글인데 여태 다 읽어보진 않았고 읽다 말다를 반복했을 뿐이다. 워낙 심심하다고나 할까, 간도 약하고 향도 연한 국물 맛.

 

누운 채 수액을 맞으면서 한 손으로 치켜들고 읽다보니 팔이 저리고 졸음이 왔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밝아져서 눈을 떠보니 간호사가 등을 켜고 바늘을 빼는 것이었다. 어느새 1시간이 지났으니 역시 들고 간 책 덕분인 셈이다.

 

 

봄비 내리니 좋아서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비가 오고 있었지! 의원으로 다시 올라가서 우산을 들고 나섰다. 길가 쪽의 소리가 요란했다. 빗물을 치고 나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 물이 튀어 오르면서 만들어지는 희부연 물안개, 저런 소리와 풍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비를 좋아하는 것이다.

 

 

수필이란 단어

 

 

앞의 얘기인 바, 隨筆(수필)이란 말은 일본에서 도연초가 만들어진 것과 거의 같은 때, 중국 南宋(남송) 시절에 지어진 容齋隨筆(용재수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목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容齋(용재)라는 수식어이다.

 

그 뜻하는 바는 室僅容膝書齋(실근용슬서재), 풀이하면 겨우 무릎이 들어갈 정도의 아주 작은 서재가 된다. 가난한 文人(문인)이 옹색하게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가 앉을 정도의 아주 작은 서재에서 글을 썼다는 것이니 글쓴이의 모습과 상황이 마치 눈앞에 환하게 보이는 듯도 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간간이 우산을 내려서 일부러 찬 이슬비가 얼굴을 적시도록 했다. 이슬비 올 때 특히나 이런 짓을 좋아한다. 이는 마치 미용실에서 커트할 때 머리를 축이기 위해 뿌리는 스프레이와도 같다.

 

 

비에 젖어 함초롬한 철쭉

 

 

오면서 보니 철쭉이 싱그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분홍과 하양, 그리고 영산홍이라 부르는 주황의 철쭉들이 새로 돋은 잎사귀들과 함께 촉촉이 젖고 있었다. 영산홍,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는 뜻의 이름인 映山紅(영산홍)이다. 철쭉은 원래 중국에서 躑躅(척촉)이라 하는데 이게 변해서 철쭉이 되었다.

 

척촉? 왜 이렇게 어려운 漢字(한자)를 썼을까? 하면 그 뜻이 산에 꽃이 하도 아름답게 피어나니 길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기에 머뭇거리고 저기에서 또 머뭇거리게 만든다는 뜻이다. 머뭇거릴 躑(척), 머뭇거릴 躅(촉)이다. 봄날 산길을 가는 사람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어려운 한자를 쓰긴 했으나 나름 용납이 된다.

 

철쭉은 이름도 다양하다. 앞의 영산홍을 비롯하여 杜鹃花(두견화)라 하기도 하고 온산이 가득 붉다 해서 满山红(만산홍), 山石榴(산석류)라 부르기도 한다. 몇 년 사이 지어진 아파트 단지는 그야말로 온통 철쭉으로 가득하다. 보기 좋고 잘 자라고 비용도 적게 들어서 조경의 ‘가성비’가 꽤나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오늘 글은 마침 도연초 즉 ‘내키는 대로 대충 써 내려간 허튼 글’이란 제목의 책을 두 어 페이지 읽고 온 터라 액면 그대로 徒然(도연)하게 써 보고픈 마음에서 쓰고 있다. 그러니 좀 더 생각을 따라가 본다.

 

 

실은 진달래를 더욱 좋아하기에

 

 

사실 난 철쭉보다는 그와 친척 관계인 진달래를 훨씬 더 좋아한다. 철쭉은 꽃에 독성이 있지만 진달래는 순해서 그 꽃을 부침개로 해서 먹기도 한다. 花煎(화전)이 바로 그것이니 우리 풍속에 화전놀이란 것이 있었다는 사실.

 

음력 3월 경, 정확히 말하면 음력 삼월삼짇날, 대충 바로 이맘때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서 전병에 올려 먹던 봄놀이 풍속이 그것이다. 당연히 막걸리도 한 잔 함께 마시면서 노래하고 춤도 추고 놀았을 것이다. 경기민요 중에 “명년 춘삼월에 화전놀이를 가잔다.”, 이런 가사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진달래를 더 좋아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 아니다. 진달래는 환한 양지에서 피어나기 보다는 소나무 그늘 밑에 피어나는 꽃, 哀調(애조) 어린 꽃이라서 더 좋아한다. 철쭉이야 아파트 단지, 가까운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진달래는 바깥으로 나가야 볼 수 있다.

 

좀 더 얘기하면 진달래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기 보다는 멀리 산그늘 속에 서린 분홍빛 안개와도 같은 모습이 훨씬 정취가 있다. 봄날 먼 산 아지랑이도 그렇지만 연분홍의 안개와도 같은 진달래,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그냥 얌전하게 피어있는 꽃이 진달래라 하겠다. 국도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고 또 지나쳐 가게 되는 꽃으로서의 진달래를 더욱 사랑한다.

 

꽃잎도 철쭉처럼 억세지 않고 하늘하늘 거린다. 빛깔도 연하고 성질도 순하고 여리다. 그렇기에 김소월의 시는 참으로 대단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님이여, 굳이 나를 버리고 떠나간다면 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으나 여리고 순한 저 진달래꽃을 마구 짓밟고 가셔야 할 것이오, 하는 절규의 노래인 것이다.

 

그러니 세월 참 많이도 흘렀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볼 것 같으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참으로 가볍고 또 가볍다. 세월이 변한 탓이란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비 그치고 글도 끝나고 

 

 

글을 쓰다 보니 비가 그쳤다. 아니, 해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늘 이상하다,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는 나 호호당이다. 그런데도 토요일이 되면 마음이 가벼워지니 말이다. 나로선 토요일에 강좌를 하기에 가장 바쁜 날인데 홀가분해지니 이게 무슨 조화 속인가! 사람의 행동거지에 습관이 있듯 마음이나 생각에도 습관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 이런 생각 하지 말아야겠다. 4월부터는 곰곰이 헤아려보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느낌적으로 감성적으로 그리고 생각보다는 행동적으로 지내다가 10월 하순이 되면 다시 생각 속으로 침잠하기로 올 봄에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환한 계절이 왔으니 내 속을 들여다보느니 바깥으로 눈을 돌려 차라리 하늘에 떠가는 무심한 흰 구름을 보는 게 백배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창밖을 보니 마침 흰 구름이 피어오른다. 뭉게구름 같기도 한데 몽글몽글한 맛은 나지 않는다. 아직은 여름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시인이 얘기해주었다. 몽골에 가서 한 철을 보냈는데 망망한 초원이라 그저 떠다니는 구름만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 좀 무심하게 지내보자 그리고 살아보자 무심하게.

 

(이 글은 어제 토요일 점심 무렵에 쓴 글이다.)

3월 21일자로 증시 서바이벌 키트 강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증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적인 기술들을 모아서 강좌를 한다는 말씀을 드렸던 바, 그게 유튜브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기존의 기법들인 것으로 여겼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강좌가 끝난 후 다시 할 생각이 없느냐는 문의가 꽤나 많았습니다. 3월 21일 강좌를 이수한 분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좌가 끝난 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술들을 배워서 고맙다는 인사 메일도 여러 통 왔습니다.

 

이에 망설이다가 저번 강좌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하고자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가르쳐드리는 내용은 기존의 책이나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는 기법들이 아닙니다. 저 호호당이 38년간 증시를 해오면서 독자적으로 알아내고 정립한 저 호호당만의 특별한 기법들입니다.

 

사실 저번 강좌에선 당초 하고자 했던 내용의 절반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가을 정도에 가서 나머지 내용을 마저 할 것을 약속하고 끝이 났습니다.

 

 

저번 강좌를 경험 삼아 이번 강좌에서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기법입니다.

 

먼저는 박스권 장세에서 손실을 보지 않는 방법과 나아가서 박스장이 끝난 뒤 장세의 방향성을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론 매수 후 ‘물렸을 때’ 빠져나오거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두 가지 주식투자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박스권 장세야말로 개미들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면 물리고 팔면 다시 반등하고 이런 상황에서 몇 번 손실을 보다 보면 금방 원금의 20-30% 정도 손실이 발생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장이 상승으로 방향을 잡았어도 망설이디가 또 다시 나중에 한참 오르고 난 뒤에 매수하게 되고 그 바람에 수익도 별로 나지 않게 됩니다.

 

두 번째로 물렸을 때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주식을 하다 보면 소위 “물릴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 “물 타기”를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언제 어떻게 물을 타야 할지를 알고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섣불리 이 정도면 많이 내렸다 싶어서 물을 탔다가 오랜 기간 마음 고생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손절하는 경우를 겪게 됩니다. 그렇기에 물 타는 요령에 대한 저 호호당만의 기술을 배우고 나면 더 이상 물리거나 “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식투자란 것이 얼핏 보기에 운만 좀 따라주면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분야입니다. 이에 앞에서 얘기한 두 가지 저 호호당만의 기법을 배우기만 해도 한결 수월하게 주식을 해가면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강의 내용

 

1. 박스권 장세에 대처하는 방법

2. 매수 후 ‘물렸을 때’ 빠져나오거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

 

 

강의 개최 일시

- 2021년 5월 2일(일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50분 강의와 10분 휴식하는 방식)

 

강의 장소

-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강의장은 1인당 테이블 하나를 원칙으로 합니다.)

 

수강료

- 60만원

 

강좌신청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또는 평일 오후 3시 이후에 제 작업실 전화로 신청하셔도 되지만 가급적 메일 신청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02-534-7250).

강의장 장소관계로 선착순 신청을 받습니다.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강좌에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이에 심화반 강좌 작년 10월에 한 번 진행했을 뿐입니다. 이에 심화반 강좌를 열고자 합니다.

 

기초 강좌는 운명의 24절기와 60년에 걸친 운의 순환, 그리고 사주에 따른 입춘 입추가 어떤 것인가를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공부입니다. 하지만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입춘과 입추를 제대로 구분하려면 사주 자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해집니다.

 

그렇기에 심화반에선 무려 50만 가지에 달하는 사주를 24절기와 10干(간)에 따른 240개의 體(체)로 구분한 다음 그를 기초로 개개 사주 命式(명식)의 특성을 파악하는 공부라 하겠습니다. 이를 저는 사주의 象(상)을 보는 공부라고 부릅니다.

사주 명식에 따른 저마다의 타고난 개성 즉 象(상)을 볼 수 있어야만 60년 순환에 있어 立春(입춘)과 立秋(입추)를 보다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심화반 강좌는 자연순환 운명학 기초 클라스를 이수한 자에 한정됩니다.

 

 

강좌 개요

 

 

강좌 개최

- 2021년 5뤌 1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까지.

 

강좌 기간

- 매주 토요일 1회, 총 8번의 강좌 (도중에 연휴가 있으면 자동 순연됩니다.)

 

강좌 시간

- 3시간 30분간. 도중에 잠깐씩 휴식시간을 갖습니다.

 

수강료

- 8회분 44 만원 (2회 분납도 가능합니다.)

 

강의 장소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예전에 하던 장소입니다.)

 

 

신청 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또는 제 작업실로 전화를 주셔도 됩니다.

(Tel 02-534-7250 / 통화는 평일 오후 3~6시 사이에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