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시절의 우스개 

 

 

예전에 달러가 귀해서 원유 수입이 어렵던 시절, “맹물로 가는 자동차”란 말이 한 때 유행했었다. 피 같은 달러였고 림프 액 같은 석유였던 그 시절, 맹물로 가는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 뭐든 아껴 씁시다, 근검절약 합시다 하는 말이 일반 유행어였다. (최근 젊은이들은 그 때의 그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무한히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즉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다. 옛날 한 때 근대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절, 무한동력장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이에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했지만 당연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해준 것이 바로 열역학 제1법칙이다. 물체가 움직이면서 일을 하고 열이 방출되기에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에너지 유입이 없는 한 무한히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장치는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오늘에 와서 무한동력장치라든가 맹물로 달리는 자동차에 대한 생각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정신도 하나의 힘이라 여기는 착각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에 대해선 무한동력이 내부에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대단한 착각이자 맹신이라 여긴다. 대표적으로 “정신력”이란 단어가 그렇다. Mental Power!, 이런 것은 세상에 없건만 실생활에선 너무나도 흔히 사용하고 있고 또 그런 게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니? 노력을 하라고 노력! 또는 넌 정신이 썩어 빠졌어, 그래가지고서야 뭔들 하겠니? 정신력이 문제야 문제, 멘탈이 문제야 멘탈, 이런 표현 살아오면서 무수히 들었다. 선배들이나 상사, 그리고 윗분들로부터.

 

정신이란 결국 뇌를 비롯한 우리 신체의 유기적 작용이고 메카니즘인데 그게 어떻게 힘 즉 力學(역학)적 접근이 가능한가? 하는 게 어려서부터의 궁금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운명학을 연구해오면서 이젠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정신은 있어도 정신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최소한 힘 즉 force 는 아니란 사실이다.

 

初心(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다시 처음처럼 열심히 해보자는 말인데 ‘처음처럼’이 ‘처음’과는 다르다는 얘기.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아주 오래 전에 유명한 철학자가 말을 남겼지 않은가!

 

오늘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물론 이유가 있다.

 

 

삶과 운명의 비극을 초래하는 착각

 

 

그간 상담해오고 또 연구해온 결과 삶의 무수한 비극이 바로 그런 착각으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예전에 오랜 세월 동안 사업을 잘 해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방심도 하고 자만에도 빠지고 해서 지출만 커지고 수입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거나 예전만 못 하게 되거나 어려워졌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경각심이 생긴다. 아차, 내가 그만 그간에 너무 안일했구나! 하고 말이다. 이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해보자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또 다시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해면서 열심히 해도 더 이상 과거의 좋던 시절로 되돌아가진 못한다.

 

과거 좋던 시절의 70-80% 정도만 만회할 수 있으면 최상이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가는 게 고작이다.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오는 길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조해진 나머지 이른바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질 경우 그건 패망을 자초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적 부진이 단기간 즉 1-2년 정도의 흐름이라면 몰라도 장기에 걸친 흐름의 경우 한 번 정점을 찍고 나면 더 이상 돌아가기 어렵다.

 

 

원한다고 또 다시 전성기로 되돌아갈 순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 대답은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고 무한 동력 장치는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람의 運(운)이란 것 역시 한정된 에너지를 소비하고 나면 바닥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다시 앞에서 말한 열역학 제1법칙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도 같다. 즉 ‘닫힌 계’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에너지 유입이 없는 한 그 계가 힘을 써서 일을 하게 되면 열을 방출하게 되고 그로서 ‘닫힌 계’의 내부 에너지는 떨어질 뿐이란 사실.

 

 

60년 순환이란 것 역시 열역학 제1법칙의 틀 안에 있기에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운의 순환은 60년을 주기로 하는 바, 이 얘기는 60년에 걸쳐 에너지의 유입과 방출이 일어난다는 얘기와 같다.

 

지구상의 모든 환경은 기본적으로 한 해를 하나의 순환주기로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서서히 지열이 오르고 여름이 되면 뜨거워지며 가을이 되면 선선해지다가 다시 추운 겨울, 에너지 레벨이 낮은 때가 된다. 이것의 무한반복이 한 해의 순환이다.

 

에너지는 저 먼 태양으로부터 빛을 통해 유입이 된다. 빛이 땅 표면에 와서 닿으면 열에너지로 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 물이 위로 상승하면서 대기 중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공기가 뜨겁고 수분의 활동이 활발하면 풀은 물론이요 벼와 같은 농작물들이 거침없이 위로 뻗어간다. (최근 풀 자라는 속도를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다가 열에너지와 수분의 활동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로서 어느 때가 되면 알곡이 완성되고 이에 수확한다.

 

이 과정이 60년에 걸쳐 동일하게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15년은 봄의 기간이고 15년은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이며 다시 15년은 수확을 보는 때이며 그러고 나면 열에너지가 거의 다 방출되어 쉬게 된다.

 

한창 잘 나간다 싶으면 그건 이미 60년 주기에 있어 가을이라 보면 된다. 15년의 가을 말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면 누적으로서의 성과가 가장 큰 입동의 때가 되고 겨울이 시작된다. 더 이상 실질적인 성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사업에 있어 外形(외형)매출은 조금 늘어난다 해도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또는 현금흐름이 저조해지기 시작한다. 한계이익이 한계비용을 넘어서지 못하는 시점이 온 것이고 그로서 겨울인 것이다.

 

 

초심으로 돠돌아갈 순 없기에 

 

 

이럴 때 안 되겠다 싶어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해도 또 다시 즉각 가을로 되돌아가지는 못 한다. 다시 가을이 되려면 겨울과 봄, 여름의 45년이 지나야만 겨우 가을의 초입을 맞을 것이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60년이 걸린다.

 

긴 시각에서 볼 때, 장기적인 견지에서 보면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고 나면 60년 안에선 더 이상 그런 것은 오지 않는다. 제2의 전성기는 60년이 흘러야 와도 온다는 얘기이다.

 

증시를 보면 부침을 반복하면서 장기적으로 오르고 다시 부침을 거듭하면서 장기적으로 내린다. 그처럼 단기적인 흐름은 단기인 것이고 긴 흐름에선 60년에 걸친 에너지의 유입과 방출이 있을 뿐이다.

 

줄여 말하면 운의 흐름이란 것 역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인간들은 노력과 운이란 것 역시 그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물리 세계를 관찰하고 그 이치를 알아낸 사람이다. 그런데 그 또한 사람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으니 그게 어떤 면에서 놀랍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빠져나올 때를 알아야 

 

 

나 호호당은 최근 수채화를 또 다시 맹렬히 연습 중이다. 이에 관련해서 얘기를 좀 하면 그림을 그려 나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표현을 하고 디테일을 더 추가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적당하다 싶은 순간이 되면 붓을 멈추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잘 그려진다고 재미가 나서 계속 칠을 하고 표현을 하다 보면 나중에 전체적으로 너무 조밀해지고 무거워진다. 그래서 경험이 필요하다. 대충 다 그렸다 싶을 때가 오면 그래, 이 정도 쯤에서 그치자 하는 판단이 서야 한다. 아직 흥이 남아 있어서 아쉬우면 붓질 한 번 정도 더 하고 끝을 내는 게 좋다.

 

사람의 일도 그렇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 선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빠져나갈 생각도 해야 하는 법이다. 그걸 못 해서 나중에 커다란 비극을 스스로 초래한다, 역사와 현실 세상 속에서 늘 볼 수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듯 사람의 재능과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당연히 운에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