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힘든 날 편한 날도 있구나!

 

 

한 땐 사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아직 삶의 날들이 많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서 언젠가는 편한 날들도 오겠지 싶었다.

 

어제 7월 25일로서 66년을 살았다.

 

다행히도 그 사이에 형편도 많이 좋아졌고 또 아직 큰 질환은 없기에 앞으로 20년은 살 지 않을까 싶다, 목표는 우리 어머니처럼 세는 나이로 90을 찍어보는 거다. 물론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20년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삶의 날이 대략 20년 정도는 남았다고 여긴다.

 

20년, 길다 하면 길겠지만 그간 살아온 느낌으론 그다지 길 것 같진 않다. 후딱은 아니겠으나 국수 넘어가듯 후루륵- 하고 흘러가지 않겠나 싶다.

 

 

주어진 20년을 어떻게 해야 잘 쓰고 갈까? (가성비를 생각하면서.)

 

 

아무튼 20년이 주어졌으니 그것들을 잘 사용할 생각 또는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사람들이 노후를 준비할 때 돈이나 자금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 호호당 생각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과 세월을 어떻게 해야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정리하고 매듭지어야 할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 할 일이 제법 남았다는 말을 하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웃음을 짓는다. 일본 고대 수필문학의 한 정점을 장식했던 요시다 켄코(吉田兼好)가 지은 “도연초”라는 책 속에 사람은 “길어도 마흔 전에 죽는 것이 남 보기에 흉하지 않고 적당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있어서 그렇다.

 

그가 살았던 14세기 무렵의 삶은 고작 50 이었기에 늙어서 추한 꼴을 보이지 말고 아직 형색이 살아있는 40 이전에 죽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정작 그런 말을 남긴 그는 당시로선 대단히 이례적인 70 까지 살다갔다는 점이다. 마음을 비우고 살아서 오래 살았나?

 

돌아와서 얘기이다.

 

해야 하고 정리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은 두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 손주를 보는 일

 

 

먼저는 손주를 보는 일이다. 낳고 또 낳아야만 기본을 달성한다고 본다. 내가 아들 하나를 얻었으니 그 아들이 다시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야만 내게 주어진 생명으로서의 기본 과업을 마무리한다고 여긴다.

 

아들은 올 해로서 39세, 하지만 그간에 운세 순환이 바닥을 기는 바람에 이제 겨우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작년이 立夏(입하)였다. 현재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자리를 잡아야만 결혼을 해서 자식을 볼 게 아닌가. (아들은 ‘비혼’이 아니다. 여건만 되면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손주를 보아야만 죽은 다음 누대의 조상들을 만나도 “내 할 일은 와고 왔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칠 게 아닌가. (조상령이란 게 있는지 없는지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여름 오후나 저녁, 짝을 지으려 정신없이 날고 있는 하루살이들을 보노라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또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에 알을 낳아서 품을 수 있는 둥지를 틀고자 열심히 집주인 눈치를 보는 비둘기 쌍만 보아도 그렇다. 치열한 삶의 8할은 새끼 낳고 키우는 일이다.

 

 

자연순환운명학을 세상에 남기고 전파하는 일

 

 

다음으로 마무리할 일은 2014년에 성립되었다고 내 스스로 얘기했던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을 사례와 함께 책으로 엮어서 세상에 남기는 일이다. 올 초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세부 사항까지 다 마치려면 3년은 걸릴 것이라 본다.

 

그런 다음 그 책을 바탕으로 영문판 책을 만들어서 대략 3천권 정도 찍어서 전 세계 주요 도서관 앞으로 발송하는 일이다. 올 해로부터 10년 사업이라 여기고 있다. 2031년까지 마무리할 생각이다.

 

자연순환이론은 종전의 사주명리학과는 차원이 다른 이론이고 예측의 정확도 면에서 추종을 불허한다. 사람의 운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일에 적용이 되는 틀이기에 그냥 나 혼자 가지고 놀다가 가기엔 너무 아깝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늘날 글로벌 권력 지형 상에서 주목받는 나라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만 해도 운명에 관한 정교한 이론이 있다고 제 아무리 소리쳐본들 미신 비슷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가끔씩 상상해보는 꿈이 있는데, 하버드 대학이나 영국의 명문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속는 셈치고 어디 한 번 내 이론을 들어보렴, 하고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기에 꿈이다.

 

그러니 책을 남겨야 한다, 그것도 오늘날의 표준 언어인 영문판 책으로. 글로벌 권력의 핵심 중추가 인지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가령 미국 동부 보스턴의 핵심들에게 자연순환 운운하는 따위는 머나 먼 로키 산맥 저 편 인디언의 알 수 없는 북소리 혹은 주문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기대 혹은 상상

 

 

단지 하나 믿는 구석은 ‘옳고 강한 것은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점이다.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에서 보면 ‘절대 반지는 인두인 큰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어도 결국은 누군가를 시켜서 자신을 세상에 등장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어 단어 right 를 생각해보라, 옳다는 뜻도 있고 권리라는 뜻도 있다. 다시 말해서 Right has right, 옳은 것은 권력(힘)을 갖는다. 이에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진짜일진대 그렇다면 그냥 맥없이 사라지진 않으리라 스스로 굳게 믿고 있다.

 

자연순환운명학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14년, 그러니 60 년 뒤인 2074년에 가서는 온 세상 천지에 퍼져있으리라 기대한다. 당연히 그 때 나 호호당은 세상에 없겠으나 말이다. (아니면 저승에서 키득대고 있을라나?)

 

이상 두 가지 해야 하고 마무리를 지을 일에 대해 얘기했다. 나머진 모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간의 다른 목표들은 이제 다 정리했으니 

 

 

젊은 날엔 적지 않은 목표와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진리에 대한 탐구, 특히 인간의 철학과 종교, 역사에 대한 탐구가 그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 발로 걸어서 중국 시안에서 이스탄불까지 여행해보는 일이었다, 땅의 크기를 알려면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건 40대 초반에 벌써 버렸다.

 

그러니 진리 탐구만 남았었는데 그 또한 이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싯다르타를 따르자니 너무 힘이 들어서 

 

 

불교철학만 해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선불교는 원래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르친 것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어떤 면에서 대승불교라고 하는 전체가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인도 자체에서 이미 틀려졌을 뿐 아니라 중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중국식 철학과 사고방식이 곁들여져서 탄생한 것이 화엄경이고 법화경 원각경 등등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비교적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조금은 더 가까운 이른바 소승불교라고 대승불교 쪽에서 폄하하는 쪽도 열심히 진지하게 탐구해보았다. 대표적으로 ‘아비달마구사론’이나 ‘대승오온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세상엔 그 어떤 실재도 실체도 없다고 말한 싯다르타의 가르침과는 달리 실재나 실체를 인정하고 창조해내고 있었다.

 

유식불교는 모든 것이 幻(환)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의식의 근저에는 근본적인 실체인 ‘아뢰야식’이란 게 존재한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그 역시 결국 실재론이다. 이는 사물 자체의 궁극적인 실체를 얘기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이상학적 원리나 아뢰야식이나 방향이 다를 뿐 동등하다.

 

싯다르타가 얘기한 것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지하여 생겨나는데 그 모든 것엔 실체가 없다, 즉 無自性(무자성)이다. 전부가 실체가 없으니 그로서 모이고 집합된 나라고 하는 존재 또한 실체가 없다, 그저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임시의 구조물이고 그게 끊임없이 변해가면서 이어가는 게 삶의 모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니 임시의 나라는 것은 있지만 실체로서의 나는 아예 태어난 적도 없고, 태어난 적도 없으니 죽는 법도 없다. 生(생)이 있어야 死(사)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실체, 즉 고유의 自性(자성)이 있다고 착각하는 까닭에 고통 받는 게 삶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 실체 없음을 알고 나면 고통 받는 나라는 존재는 임시 구조물로서 실체 없는 것들의 이합집산일 뿐이란 게 싯다르타의 얘기이다.

 

 

욕망이 결국은 앞선다는 사실

 

 

하지만 인간적 욕망은 싯다르타의 가르침만으론 너무나도 성에 차지 않는다. 내가 있는데 왜 없다고 하시나? 하면서 부단히 나라는 존재의 영원불멸을 믿고 싶어한다. 이어가야 하지 않겠어! 하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욕망이다.

 

그래서 사후 세계가 있기를 바라고 하느님이 계시는 천당이 있기를 바란다. 다만 고대 인도 방식에선 사후에 다시 윤회 전생한다는 식이고 기독교에선 영원히 하느님 곁으로 간다는 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김 팍 빠지는 설법을 남겼다, 현실의 삶에서 너라는 존재의 실체가 없는데 네가 죽은 뒤 갈 곳이 따로 어디 있겠느냐고.

 

너무나도 머리가 명석했던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보다 훨씬 더 똑똑한 천재였고 실천적 수행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쿨(cool)한 가르침은 뜨거운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 땡큐! 하는 우리들이다.

 

 

고민 끝에 내린 헤징(Hedging) 또는 양다리 걸치기

 

 

저번 겨울 동안 ‘대승오온론’과 ‘화엄경’ 일부를 두어 차례 다시 읽으면서 고민했다. 나 호호당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제자인가 아니면 중국 대승불교의 제자인가, 또는 육조 혜능의 추종자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뿐만 아니라, 사후 세계라든가 절대 神聖(신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가득해서 그야말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더 이상 제대로 알고자 하지 않기로. 그냥 몽매한 중생으로 살다가기로 작정을 했다.

 

이에 생각을 두 가지로 나눠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는 쿨한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가진다, 또 한 편으론 은근히 또 다른 좋은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기로 말이다.

 

나름 知的(지적)이긴 하지만 실은 대단히 교활하고 천박한 잡놈의 생각이고, 말도 되지 않는 얘기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살아갈 날도 그리 많지 않으니 이제 좀 더 현실적으로 간다. 그런 나 호호당은 삶과 죽음 앞에서 천박하고 비굴함을 인정한다.

 

 

지적 바람피우기와 수채화에 빠져서 

 

 

그러니 이제 나 호호당의 길고 긴 지적 旅程(여정)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남은 것은 이 책 저 책, 이 사람 저 사람의 주장을 들어가면서 마치 난봉꾼처럼 독서 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열심히 조금이라도 더 멋진 수채화 작품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열심히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구경하는 일이 그것이다. 

 

66세의 삶을 이 글로서 정리해보았다. 조금 어려운 얘기들도 있었지만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솔직한 글도 가끔은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해가 막 지고 나서의 북서쪽 하늘, 멀리서 날아온 빛이 여름 대기를 만나서 색깔놀이를 하고 있다. 왼쪽 멀리 관악산 송신탑과 기상 레이더가 보인다. 세상은 카멜레온과 같아서 참 신기한 곳이다. 그런데 나는 또 그 속에서 숨 쉬고 있으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혹시나 저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도 빛과 어둠의 놀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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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참고로 뜨거운 여름 한낮의 모습으로 그렸다. 기초 칠을 실수하는 바람에 찢어버리려 하다가 완성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다지고 다 그렸다. 구도가 좋아서 그런지 그런대로 봐 줄 만 하다. 독자들도 즐겨주시길... 더위에 쪄 죽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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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예언서? 

 

 

최근에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것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한 번 보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들어가 보니 중국 명태조 주원장의 창업공신인 유백온이 남긴 예언서 중에 하나가 화제라는 것이었다. 그냥 깔깔 웃었다, 그리고 감히 장담한다, 그 양반이 그런 예언서를 남길 까닭이 없다고.

 

중국의 항간에선 유백온이 네 권의 주요 예언서를 남겼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그 중의 하나, 중국 섬서성 태백산에서 출토된 秘記(비기)라고 한다. 거기에 우한 폐렴을 무려 6백 년 전에 예언했다고 하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일까?

 

 

흥행요소가 워낙 충분해서 

 

 

먼저 중국 섬서성 태백산에 대해 얘기해본다. 태백산은 웅장한 산줄기인 秦嶺(진령)산맥의 주봉으로서 해발 3,700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이다. 먼 옛날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나라가 秦(진)인데, 당시 또 하나의 강대국인 楚(초)나라가 이 산맥을 경계로 무수히 각축전을 펼쳤다. 산맥 사이의 계곡 길을 통해 부단히 치고받고 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연의에서 촉의 제갈량이 여섯 번이나 魏(위)를 정벌하기 위해 절벽 옆구리를 깎아서 棧道(잔도)를 낸 곳도 바로 이 진령산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갈량이 진을 쳤다가 숨을 거둔 “오장원”이란 곳 역시 진령산맥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와 처음 만나는 구릉지대이다. (나 호호당은 1995년에 그 오장원이란 곳을 답사한 바 있다.)

 

진령산맥, 참으로 소개할 얘기도 많지만 줄인다. 아무튼 그런 역사의 ‘아우라’가 서린 진령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어딘가에서 유백온이란 천하의 기재이자 도사가 미래를 예언하는 비밀의 글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귀가 솔깃하다.

 

유백온이 누구인가? 중국 남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한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책사인 제갈량과 함께 중국 3대 참모이자 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니 흥행성을 이미 빵빵하게 깔고 시작하고 있다.

 

 

이른바 예언서란 것에 대해

 

 

이제 이른바 예언서란 것에 대해 얘기 좀 할 차례가 되었다.

 

예언서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이렇다. 처음 소개될 때 보면 놀랍도록 정확하다. 어떤 양반이 몇 백 년 전에 남긴 글로서 그간 바깥에 유출되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秘傳(비전)되다가 어찌어찌하다가 실수 또는 뜻한 바가 있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니 과연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혹 해서 야, 대단하다! 하면서 한동안 화젯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장차 앞 일에 대해선 뭐라고 적혀있지? 하는 호기심에 책이 왕창 팔린다.

 

그런데 기억을 되살려 보시길, 이상하게도 화제가 되거나 책이 나온 시점 이후론 전혀 통 들어맞지가 않는다는 사실을.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몇 백 년 전에 쓰여 졌다는 그 예언서란 게 실은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작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내는 시점까지의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인데 그것을 마치 몇 백 년 전에 예언하고 있으니 무진장 정확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간단한 트릭이다. 그런데 책이 출판된 시점 이후론 전혀 맞지 않는다.

 

예로서 2000년대 초반에 ‘송하비결’이란 책이 출판되어 엄청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한 번 상기해보라. 출판된 시점까지의 내용을 보면 엄청난 적중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책이 나온 다음해인 2004년부터는 전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선 역사상 인기 많은 사람의 이름을 차용하는 일이 잦아서  

 

 

돌아가서 얘기이다. 유백온이란 분이 그런 도참서나 예언서를 남겼을 까닭이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유백온이란 사람이 워낙 대단한 인물이기에 그의 권위를 借用(차용)했다고 보시면 되겠다.

 

유백온은 명리학 방면에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이 역시 냉정히 따져들면 그 분이 명리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항간에 전해지는 말로서 유백온이가 대단한 예측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식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가 적천수란 책, 즉 하늘의 骨髓(골수)를 누출시키는 글이란 뜻의 명리철학서를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그간 남긴 글은 몇 백자 되지도 않는다. 적천수 원문 자체는 사주팔자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유교의 성리학에 더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글 내용 중에 사주팔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유백온이가 죽고 나서 3백년 뒤인 중국 청대의 명리학자들이 적천수 천미라든가 더 나중에는 적천수징의란 책을 만들어내면서 유백온의 권위에 얹혀갔다는 게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이 점은 나 호호당이 예전에 중국에 체류할 때 방면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중국 사람들은 곧잘 이런 식의 권위 차용을 한다.

 

 

유백온,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나 호호당은 유백온이가 남긴 것이 확실한 郁離子(욱리자)와 百戰奇略(백전기략)이란 책을 오래 전에 원문으로 읽어보았다. 뿐만 아니라 明史(명사) 列傳(열전) 제128권에 적혀진 그에 대한 소개도 읽었다. (중국어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원문을 접할 수 있다.)

 

욱리자란 책은 권력싸움에 질려서 아니면 밀려서 낙향한 그가 백성들을 어떻게 교화하고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통치이상을 글로 남긴 책이다. 그런 까닭에 때론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비교될 때도 있다.

 

백전기략은 전략가로서의 유백온이란 사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대로부터 많은 전쟁과 투쟁이 어떤 식으로 이기고 졌는가를 분석 소개하는 책이다. 아직도 백전기략은 국내에선 번역되지 않았으나 중국판 책은 지금도 나 호호당의 작업실 책꽂이에 꽂혀 있다.

 

유백온의 백온은 字(자)이고 이름은 基(기), 따라서 유기가 그의 이름이다. 그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워낙 인기가 많은 인물이다 보니 그에 관해 전해지는 野史(야사)도 많고 逸話(일화)도 많다. 거의 어사 박문수 수준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근거가 별로 없다.

 

제갈량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가 뛰어난 외교 전략가이자 행정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 방면의 전문가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삼국지연의에서만 그럴 뿐이다. 이처럼 유백온 역시 神機妙算(신기묘산)의 道人(도인)이자 軍事(군사)의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크게 형세를 판단하는 전략가였다고 보면 된다.

 

 

유백온은 중국의 이순신 격이라서 

 

 

하지만 그의 인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대단하다. 왜 그럴까? 하면 그가 너무나도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죽을 땐 거의 굶어 죽었다는 점 등으로 해서 두고두고 중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동정표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전포도 입지 않고 거의 자살하다시피 생을 끝냈기에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듯이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남긴 책이나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나 호호당은 그의 글을 통해 그가 대단히 강직하고 청렴했다는 점을 능히 느끼고 있다. 그런 훌륭한 사람이 예언서나 도참서를 남길 까닭이 없다고 본다.

 

 

세상이 혼란해지면 으레 예언서가 등장하나니 

 

 

사실 이번에 유백온의 태백산 비기와 같은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사실 코로나19 때문이다. 사회가 혼란하거나 역병이 유행할 때면 으레 이런 도참서나 예언서가 나타난다. 자, 봐라, 이미 여기에 다 예언되어 있지 않느냐! 하면서.

 

어쩌면 나중에 또 다른 사회적 재앙이나 문제가 생기면 유백온의 또 다른 비기가 소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다! 하면서. 그의 인기가 워낙 절대적이기에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이번 일이 흥미로운 것은 이제 중국은 우리와 워낙 교류가 많다 보니 그런 예언서가 나오면 당연히 우리에게도 제법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제법 오래 전에 소개된 중국 예언서인 “추배도”가 그랬다.

 

 

이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때문이다. 백신이 절대 부족한 판국에 감염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약만 있었다면 우리나라 행정능력으로 볼 때 이미 90% 이상 접종을 끝내고도 남았을 것인데, 우리 정부는 왜 무슨 이유로 당초에 백신 구입을 예약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다가 이제 와서 급해지니 백신을 다른 나라에게 구걸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른 나라처럼 크게 확산이 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이 알아서 조심해서 그런 것이지 솔직히 정부는 크게 판단 착오를 범했다고 여긴다. 예약 시스템도 국민들을 골탕 먹이고 등등 사람들을 정말 피곤하게 만들고 있으니 거 참! 제발 어서 냉큼 좀 백신이 들어왔으면 싶다. 해군 사병들을 방치했다가 문제가 생기자 국방장관이 사과를 하는데 그 표정을 보니 워낙 ‘시크’해서 사과하는 것인지 아닌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요즘 날은 왜 이리도 뜨겁냐고! 

 

2000년대 중반 가을에 찍었던 정동길의 사진을 보고 그렸다. 분방하게 그리고 칠했다. 괜찮은 것 같다, 만족한다. 그 땐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약간은 초록빛을 보이면서 변해가던 계절이었다. 신아기념관 인근의 찻집과 식당 풍경인데 최근엔 사라져버린 것 같다. 정동길에 돈이 들어가면서 이미 많이 변해버렸다. 그래서 추억 속의 정동길이란 제목을 붙였다. 사람이 몰리면 돈이 들어가고 임대료가 올라가서 낡은 건물은 사라지고 영세 식당들은 쫓겨 나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사진으로 내 컴퓨터 속의 이미지로 남아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날이 워낙 더워서 가을이 그리워졌고 그러다보니 가을날의 정동길 정취가 떠올랐다. 독자들도 더위 잘 보내시길 바란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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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여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선사를 찾아갔었다.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운악산 자락에 위치한 절이다. 절 바로 인근에 광릉, 즉 국립수목원이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을 한글로 "큰법당"이라 쓰여있다는 점이다. (큰법당은 오른 쪽 그림 밖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먹펜으로 드로잉하고 담채를 올렸다. 그리는데 불과 20분 걸렸는데 이는 연필 스케치를 하지 않고 그냥 대충 어림으로 그리니 그렇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분방한 맛이 있어서 좋다. 나 호호당은 그냥 마구 그리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즐겨주시길...

하늘은 빛과 구름으로 마술을 부린다. 평생 사는 재미 중에 가장 큰 재미라 할까, 그건 하늘을 바라다보는 재미이다. 거의 평생을 사진을 찍어왔기에 늘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같은 하늘을 본 기억은 없다, 엇비슷하지만 같은 하늘은 없다. 하늘은 커다란 캔바스, 빛과 구름을 레시피로 해서 갖은 환타지를 연출한다. 매료될 밖에. 더운 여름의 저녁놀이 장엄하고 휘황하다. 언젠가 죽고 나면 저런 풍경들을 다시 볼 수 없을까봐 걱정일 정도이다. 즐겨주시길...

 

큰 도식과 작은 도식

 

앞글에서 제시했던 큰 도식을 다시 올려본다.

 

1941년-1971년-2001년-2031년.

 

가까운 과거는 아무래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게 된다. 우리가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렇다.

그렇기에 위 도식 중에서 최근의 부분에 대해 다시 작은 도식을 제시한다.

 

2001년-2007년-2013년-2019년-2025년-2031년.

 

이는 6년 간격인 바 단계별로 살펴본다.

 

 

#1. 2001년-2007년 사이

 

 

2001년부터 미국 경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9.11 테러를 기화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이에 막대한 戰費(전비) 마련을 위해 연준은 기준금리를 2% 이하로 내리면서 한 때 1%까지 극단적으로 낮추었다. 이는 1960년대 초반 이후 처음 있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금리를 낮춘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고 디플레이션 압력을 막기 위함인데 초저금리까지 낮추었다는 것은 상황이 대단히 엄중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이후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던 연준은 2004년부터 금리를 다시 5%대로 올렸는데 그러자 즉각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은 집 자체를 담보로 해서 수입이 거의 없는 사람들, 이자를 낼 돈마저 없는 이들에게 마구 대출을 해주었다. 이자낼 돈이 없으면 그 또한 대출을 해주었다. 돌려막기가 시작된 것인데 이는 결국 2007년 1월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결국 2008년 3월 여름 베어스턴스,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로서 재무구조도 튼튼하던 우량은행이 유동성 악화로 자금난을 겪자 미 재무부는 파산을 시켰다. 그러자 바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2. 2007년-2013년 사이

 

 

버냉키의 연준은 세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실시했는데 실은 마지막 제3차, 즉 QE3에 대해선 꽤나 논쟁이 있었다. 사실 그게 문제였다, QE3는 2012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사실 그건 무기한의 경기부양책 성격을 보이는 바람에 별명이 “QE-Infinity”, 즉 무제한 양적완화였다는 사실이다.

 

QE3가 결국 문제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2013년으로서 경제가 이제 다소 어렵더라도 그간의 거품을 제거하는 정상화의 수순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월가의 금융가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던 셈이다. 이는 逆行(역행)이었다. (QE3는 결국 2014년 10월에 중단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때를 놓친 셈이었다. 버냉키와 비둘기파 재닛 옐런의 공동 실수이고 책임이다.)

 

 

#3. 2013년-2019년

 

 

그 이후 연준은 금리 정상화를 위해 금리 인상을 실시했지만 2019년이 되자 글로벌 경제는 또 다시 경기 후퇴와 디플레이션의 압력이 완연해졌다.

 

근본 원인은 통화의 부족이 아니라 실물 부문에서의 글로벌 공급과잉이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까닭에 발생한 경기하방 압력이 있었고, 더불어서 인구통계학적으로도 장기적으로 수요가 더 줄어들 요인도 충분해지고 있었다.

 

이에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한때나마 2%까지 올리긴 했지만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었다. 그 결과 눈치만 살피던 연준이었다. 재닛 옐런!

 

 

#4. 2019년-2025년: 무제한 양적완화와 금리 정상화의 문제

 

 

그런데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졌다. 연준은 에라, 잘 된 일이다 하면서 즉각적으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양적완화, 이번에야말로 무한정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주역은 제롬 파월이고 보조역은 역시 재닛 옐런.

 

현재 연준과 미 재무부는 내심 조바심을 내고 있다. 사고를 쳤으니 당연하다. 저러다가 경기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나 한 번 흐름을 타면 통제불능일 수가 있다. 일본을 보라, 잃어버린 20년 운운 하고 있다. 그렇기에 금리 인상의 적절한 타이밍이란 건 사실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플레이션은 고사하고 글로벌 공급과잉 추세와 OECD 국가들 게다가 중국까지 인구 감소로 인해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부터는 예측의 영역이다. 지금은 2021년 7월, 그러니 향후의 일에 대해 나 호호당의 생각을 얘기하겠다.

 

예측을 함에 있어 기준이 되는 시간의 틀이 있으니 자연순환의 원리이다.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기에 그 1/4인 15년이 지나면 변화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양적완화가 시작된 것이 2008년, 따라서 15년 후인 2023년이면 뭔가 커다란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능히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연준은 금리 정상화 수순을 밟기 시작할 것이 거의 명확해 보인다. 면피는 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단서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것은 1992년 8월이었다는 점이다. 만물은 60년의 절반 즉 30년이 지나면 반대 포지션에 오게 된다. 따라서 2022년 8월이면 우리 자금시장에서 외국 자본들의 유출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왜 유출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단 하나, 금리인상밖에 없다.

 

(외국자본의 유출이 시작된다고 해서 말을 그게 일시에 일거에 다 빠져나가는 비상시국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 점 다시 한 번 얘기해둔다.)

 

미국 연준의 금리 정상화란 요인, 거기에 우리만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향후 글로벌 금리 인상 국면에서 우리가 입게 될 타격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 강도가 훨씬 더 세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말해서 외국투자자본의 포트폴리오 내용 중에서 ‘한국물’을 팔겠다는 생각이 커질 것 같으면 그건 우리 기준금리의 인상 필요성과 그 폭이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한은의 기준금리는 미국 연준의 인상보다 선제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리인상에 미리 적응을 해둘 필요가 있는 우리의 상황이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즉 내년 초가 대통령 선거인 마당에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한은의 선제 인상에 우호적일 수가 없다, 그러니 선제 인상은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2025년이면 글로벌 금리는 이미 상당히 인상되어 거의 정상화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리인상으로 인한 충격으로 불경기가 글로벌 경제를 뒤덮고 있을 거란 얘기이다. 국내의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간 한 번도 심하게 하락해본 적 없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의 극심한 하락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30대마저 빚을 내어 아파트를 샀으니 이젠 더 이상의 수요가 한동안은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 돈이 아니 통화가 워낙 저렴하다보니 빚투와 영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이 비정상이 2025년이면 대거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5. 2025년-2031년: 극심한 글로벌 불경기 또는 세계적 대공황

 

 

이 기간 중에 글로벌 경제는 금리정상화로 인해 그냥 불경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공황이 닥칠 수 있다고 본다.

 

그때가 되면 경기 침체나 디플레이션이 오더라도 그러면 또 다시 예전처럼 돈을 더 찍어서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해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방식은 그저 당장의 문제를 훗날로 미룰 뿐이란 것, 그리고 지연되는 만큼 비용이 더 커질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어차피 한 번 치를 비용, 이제 치르고 가자는 생각이 더 우세할 것이란 얘기이다. 결국 글로벌 공급과 수요가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때까지 조정을 봐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미 현 시점, 2021년 7월의 시점에서 전 세계 GDP보다 부채가 더 많아져 있다. 부채는 갚거나 인플레이션을 통해 희석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경우 파산신청을 통해 부채를 탕감하고 신용을 회복할 순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가가 그 부채를 대신 짊어진다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제 두 가지 대목이 중요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간에 누적된 거품을 해소하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통화(currency)가 돈(money)의 구실을 하게 된다.

 

또 한 가지는 명목금리야 어떻게 되든 간에 실질금리가 플러스(+)이냐 마이너스(-)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기간 중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 또 어떠한 정책적 대응이 가능할 것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현 시점에서 부채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주체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아니라 바로 국가 자체이다. 우리를 비롯한 OECD 국가들, 일본 미국은 물론이요 중국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어떤 비용을 치를지언정 국가 부채의 축소가 최우선시된다면 국가가 주도해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다. 아울러 국가마다 각자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미국 주도의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 것인지조차 이젠 예측할 수가 없다.

 

가령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미국이 그들이 패권에 도전해오는 중국을 꺾어놓기 위해 내 살을 주고 상대의 뼈를 깎는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양적완화라고 하는 상궤와 상식을 벗어난 방식이 적용되고 그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문제점이 누적되어온 상황이기에 이 기간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 지 예측할 수가 없다. 다만 장기불황이나 공황 상태를 면하긴 어려울 것이란 점만 거의 확실시된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 누적된 거품과 지나치게 많은 통화 공급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의 글로벌 초과 공급이 서서히 해소될 것이며 그로서 대단히 고통스럽긴 해도 그나마 새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금리 정상화가 아니라 경제의 정상화란 얘기를 하면서 이번 글을 맺는다.

오랜 만에 본격 수묵화를 그려보았다, 참으로 오랜 만이다. 그리고 나서 썼다, 눈앞의 것은 유한하지만 마음은 무한을 볼 수 있다고,  바위산을 좋아한다, 운무가 감싸고 도는 풍경을 좋아한다, 바위는 단단함이고 운무는 미세한 수증기이니 그로서 만들어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즐겨주시길...

먹으로 드로잉을 하고 동양화 물감과 수채화 물감을 섞어서 칠했다. 잠시 망설였다, 그림의 오른 쪽에 그린 소감을 먹붓으로 써넣으면 완전 수묵산수가 될 터인데, 그러지 않고 사인을 흰색 과슈로 표시했다. 그러니 수채화에 더 가깝다. 혼합 미디어의 그림인 셈이다. 올 10월 전시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 도시의 복잡한 픙경을 이렇게 그려넣어도 될 것도 같고. 즐거운 고민 중이다. 8월부터 전시용 작품을 시작하면 망설이지 말고 거침없이 그려야 할 것이니 지금은 잠깐의 모색 시간이다. 두 사람이 앞의 바위 산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림은 내게 그냥 환타지. 환타지는 초월을 가능케 하기에 즐겁다. 독자님들도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