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

 

 

지구는 북극에서 남극으로 이어진 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번 빙그르 돌아간다. 스스로 돈다 해서 自轉(자전)이라 한다. 지구가 돌아가면서 햇빛을 만날 때 우리들은 그를 日出(일출)이라 하고 빛이 서산 너머로 사라지면 日沒(일몰)이 된다. 이게 근대 이전의 시간이었다.

 

현대의 시간은 다르다. 같은 것 같지만 그 본질적인 생각에 있어선 전혀 다르다.

 

 

현대적 시간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시작된다. 

 

 

지구를 하나의 커다란 수박이라 해보자. 그러면 위 꼭지가 북극이 되고 아래는 남극이 된다. 수박을 보면 위에서 아래로 진초록의 줄무늬가 있는데 지구에선 이것을 經線(경선)이라한다. 경선이 정해지면서 현대적 시간이 탄생했다. 북극에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 남극으로 이어지는 선을 경도 0도로 정했기에 본초자오선(Prime Meridian)이라 부른다. 이를 기준으로 지구 주위를 360도로 나눈 뒤 그리니치 서쪽을 西經(서경)이라 하고 동쪽을 東經(동경)이라 한다. 현대의 시간은 바로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시작된다.

 

현재 토요일 우리나라 시각은 오전 11시 43분인데 영국 그리니치 시간을 컴퓨터에 물어보니 새벽 03시 44분이다. (컴퓨터에서 찾는데 1분이 걸렸다.) 아직 영국은 해뜨기 전 즉 밤이다. 9시간 차이인데 이는 영국 그리니치의 경도가 0도이고 우리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시각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으니 시간이 좀 흘렀다.)

 

그런데 사주를 뽑을 때의 출생 시는 글로벌 표준시가 아니라 진짜 태양시, 줄여서 진태양시로 한다. 서울의 경우 경도가 동경 126도 58' 39"이기에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각보다 대략 32분 조금 더 되는 오차가 있다. (정밀한 계산법은 생략한다.)

 

서울의 진태양시는 현재 표준시가 12시 25분이니 32분 정도를 빼야 하고 따라서 11시 53분 정도, 아직 오전인 셈이다.

 

(냉장고를 열어 보리음료인 맥콜을 따라 마시고 뒹굴다가 오니 어느새 오후 1시 40분, 시간 참 잘도 간다. 내 수명이 그 사이에 벌써 1시간 15분 줄었다. 모래시계, 그 물건은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되지만 삶의 시간은 뒤집어놓을 수가 없다, 또 뒤집어놓기도 싫다. 한 번 사는 게 딱 좋다.)

 

저번 글에 이어 이번에 시간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나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널섬(Null Island)

 

 

며칠 전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리니치 천문대가 경도 0도란 것을 떠올렸고 그러다보니 위도 0도는 적도란 사실도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문득 경도 0도, 위도 0도인 지점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났다. 당연히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평생 한 번도 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나로선 꽤나 신기했다. 시간에 대해선 좀 안다고 자부하는 내가 이걸 생각하지 못했다니 하며 약간 자책을 했고 동시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난 천재야 천재! 하고 자뻑도 했다.

 

구글지도와 위키로 검색했더니 과연!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미 인간들이 그 지점, 바다 한 가운데에 浮漂(부표), 물에 둥둥 떠 있으면서 제 위치를 지키는 물건을 띄워 놓고선 명칭도 붙여 놓았다는 점이었다.

 

그 명칭은 Null Island. 옮기면 널섬이 된다. 널값(null value)이란 수학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서 아무 것도 없다는 뜻,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널섬은 따라서 경도 위도 제로의 인공 섬이다.

 

널섬이 어디 있느냐 하면 아프리카 대륙 서남쪽으로 크게 움푹 들어간 바다가 있는데 명칭은 기니만, Gulf of Guinea이다, 널섬은 바로 그 바다 한 가운데에 떠있다.

 

어떤 작자들이 이미 벌서 이런 신박한 짓을 했지 싶어 알아보니 미국과 프랑스, 브라질의 공동작업이었다. 미국이야 당연한 것이고 브라질로선 건너편 바다, 프랑스 쟤네들은 꼴에 자존심이 있어서 합작투자를 했을 것으다. 더 검색해보니 널섬은 그 이전에 환타지 소설의 제목이었음도 확인했다.

 

여기에 재미난 것이 하나 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들은 늘 자신의 좌표를 위성 GPS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데 널섬, 즉 위도 0도 경도 0도인 지점에 다다르면 컴퓨터의 좌표값이 널값(null value)으로 변해서 에러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그냥 지구상의 아무 이상할 것 없는 바다 위 한 점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널섬은 비행사들이 피해 다니는 구역이 되었다.

 

 

현대적 시간의 모순이 충돌하는 곳, 날자 변경선 

 

 

돌아가서 얘기하면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을 0도로 해서 서쪽으로 180도, 동쪽으로 180도를 가면 두 선은 일치하게 된다. 이 선을 날자 변경선 또는 국제 날짜 변경선이라 한다. International Date Line.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미국 쪽에서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비행기는 태평양 상에 위치한 이 선을 넘는 순간 하루가 더해진다. 그 반대론 하루가 빠진다. 태평양을 건너다니는 모든 여객기들은 자동적으로 그렇게 한다.

 

본초 자오선이나 일자 변경선이나 모두 인간이 그어놓은 작위적인 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에 따라 하루가 더해지기도 하고 감해지기도 하니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적 시간이 만들어낸 모순이다.

 

지금은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전날의 섬”이 떠오른다. 17세기 배경으로 태평양에서 배가 난파를 당했다. 바로 눈앞에 날자 변경선이 있어 그 너머로 가면 배가 난파를 당하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니 그곳으로 가기 위해 애쓰는 선원의 얘기, 물론 에코의 소설은 복잡다단하고 중중무진의 구조라서 결코 쉽지가 않지만 어쨌거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제 토요일이었고 지금은 일요일 낮이다. 날자 변경선을 넘어간다면 어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 호호당 생각에 에코는 꽤나 외로웠던 것 같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했지만 독자들은 에코의 얘기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 외로웠을 것이다. 모든 소설에서 에코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장미의 이름”의 엔딩 부분에 묘사된 대목은 평생 기억에 남아있다. 견습 수도사인 주인공 아드소가 훗날 늙어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혼자 내뱉는 독백은 바로 에코 자신의 얘기가 아닌가 싶다.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독백.

 

 

진짜 시간은 늘 갱신되고 되풀이하고 있어서 

 

 

이제 정리해보자. 현대적 시간, 우리 모두를 초치기로 만들어놓은 시간은 사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이란 점이다.

그런 면에서 진짜 시간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 지구의 자전에 불과하다. 해는 매일 뜨고 매일 진다. 매일 시간이 갱신되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과거로부터 날아와 눈앞을 지나 미래로 흘러가버리는 화살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늘 되풀이되고 갱신되는 시간이 진짜 시간이 아닌가 한다.

 

해가 지면 시간이 없어지고 어두운 밤에 리셋(reset)되며 해가 뜰 때 또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 진짜가 아닐까 싶다. 세월이 흘러서 우리가 노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건은 그냥 두면 절로 노화될 뿐 그게 시간이 흘러서 삭아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나 호호당은 운명의 순환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다. 순환이란 되풀이되는 것을 말한다. 되풀이된다는 것은 시간이 되돌아오는 것이란 것을 전제로 한다.

 

나 호호당은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의 강의장을 찾아간다. 걷다 보면 늘 20대 젊은이들 사이로 지나가게 된다. 10여 년 전에도 20대 젊은이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곳엔 늘 20대 젊은이들로 붐빈다.

 

무엇이 변했을까? 늘 같은 젊은이들이 늘 그곳에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상점 유리창 위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쟤들은 그대로인데 나만 잘도 삭아가네! 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 유리창을 쳐다보던 늙은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강남역엔 20대 젊은이들로 붐빌 것이다. 크게 변할 것은 없을 것이다.

 

어제는 芒種(망종)이었고 오늘은 현충일이다. 그리고 현충일도 불과 3분 뒤엔 어제가 된다. 현대적 시간에서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망종이나 현충일 모두 다시 돌아온다.

 

 

망종의 개망초

 

 

망종이다. 산책로 주변의 풀들이 사정없이 맹렬히 자라고 있다. 잡초 중에 으뜸이자 미니 국화라 할 수 있는 ‘개망초’들이 일제히 뻗어가면서 초여름 풀밭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가히 여름 풀밭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이제 한 해를 통해 해가 가장 긴 한 달이 시작되었다.

 

산다는 것은 황홀한 고통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그 끝엔 영원한 安息(안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할 것 전혀 없다. 어쩐지 나 호호당도 늙은 아드소 수도사의 심정을 닮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