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는 물주사가 아니었다. 

 

 

어제 아침 ‘아제’를 맞았다.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오후까지 전혀 특이사항이 없어서 혹시 이거 물 주사 아닌가? 하며 약간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저녁 에 그림을 한 장 그리니 망쳤다.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은 몸이 시원치 않을 조짐. 이 때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어야 했는데...

 

밤에 오한이 나고 추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기요를 다시 꺼내서 깔고 잤다. 그 때 역시 타이레놀을 먹었어야 했는데 잠에 취해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완연한 몸살, 머리가 무겁고 등판이 뻑적지근, 어쩐지 물주사는 아니었구나! 이에 타이레놀을 한 알 먹으니 한 결 편안해졌다.

 

결론, 백신은 역시 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걱정인 것이 인도 발 변이가 기승을 부린다니.

 

 

아침 루틴

 

 

이에 평소의 아침 루틴을 그대로 했다. 강아지 산책, 집안 청소, 아침 기도,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책을 펼쳐놓고 읽는다. 책은 도처에 놓여 있다. 화실 모니터 옆에 한 권, 화실 창가에 한 권, 식탁 뒤 수납공간에 한 권, 화장실에 한 권, 침대 머리맡에 한 권, 수시로 바꾼다. 작업실에 나가면 모니터 옆에 두어 권. 평생의 버릇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영국기업사, 1650-2000”, “위진세어”, “스페인사”, “유럽사 이야기”, “비잔티움”, 이렇다.

 

 

영국기업사, 1650-2000

 

 

"영국기업사"는 국내 학자가 지은 책인데, 산업혁명 당시 영국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 발전했으며 경영관리라든가 노사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 대목이다.

 

하나는 당시 영국의 해외 식민지들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보다 영국 국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더 나빴다는 지적이 있어 흥미롭다. 또 하나는 1900년대 초반 미국과 독일은 거대기업이 되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간 반면 영국 기업들은 왜 어떤 이유에서 가족기업 수준에서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았는가 하는 대목이다. 저절로 ‘경로의존성’이란 단어가 생각이 난다.

 

경로의존성, 그토록 잘 나가던 일본 기업들이 오늘날 저 모양인 것, 중국은 결국 황제 체제로 회귀하다는 점,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우리의 사회관습과 문화 속애 내재된 문제점들이 장차 우리의 발걸음을 묶어 놓을 것이란 걱정을 지울 수 없다.

 

 

魏晉世語(위진세어)

 

 

魏晉世語(위진세어)란 책은 그간에 접한 적이 없다. 책을 보니 원본이 망실되었기에 국내 중문학자가 진수의 三國志(삼국지), 이른바 正史(정사) 삼국지에 註釋(주석)을 달았던 배송지의 책에 인용된 내용들을 주로 모아서 엮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내용인 즉 삼국지의 조조가 활동하던 魏(위)나라와 그 이후 사마 집안이 세운 晉(진)나라 당시의 얘기들을 모은 것이다. 일찍이 世說新語(세설신어)는 여러 차례 원문으로도 읽고 번역본으로도 읽었지만 그 책과 시대가 비슷한 탓에 즐겁게 읽고 있다.

 

 

“스페인사”

 

 

“스페인사”는 까치에서 번역 출간한 책인데 그간에도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다. 서구의 스페인 역사 전문학자들의 글을 모은 책이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스페인 역사에 관한 책은 두루 다 읽어보았지만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화려했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스페인 제국이 어쩌면 저렇게 쉽게 몰락했을까? 하는 점을 묻고 있지만 저자의 생각은 그 반대, 스페인은 출발부터 세계 제국이 되기엔 여러 모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 정도까지 팽창했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것이다. 대영제국을 두고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어찌어찌하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제국’이란 표현이 있는 것과 같은 지적이다.

 

 

“유럽사 이야기”

 

 

“유럽사 이야기”는 정말이지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저자가 바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란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을 지은 D. H. 로렌스인 까닭이다. 최고의 글쟁이가 유럽사의 중요한 대목들에 대해 너무나도 흥미롭고 생생하게 당시의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으니 그렇다.

 

로렌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그림처럼 생생하거나 아니면 과학처럼 전후관계가 명확해야 한다고. 전자를 감성의 역사라 한다면 후자는 이성의 역사라고. 로렌스의 책은 생생한 역사 즉 감성의 역사이다. 하지만 감성의 역사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私的(사적)인 얘기를 많이 창작(?)해서 넣으면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책은 생동감으로 넘친다.

 

십자군 전쟁, 또 로마 교황청이 어떻게 권력을 잃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박력 넘치는 글을 쓰고 있다. 로렌스는 역사를 꾸준한 진보로 보는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민중사관이라든가 영웅사관 모두 배척하면서 역사란 그저 인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숲과 같을 뿐이란 얘기이다.

 

국내 번역 출판의 제목은 “유럽사 이야기”이지만 원제는 “유럽사의 움직임” (Movements in European History)이고 1921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간행했다.

 

이 책은 로렌스가 생활비 마련 차원에서 썼다고 한다. 천재는 역시 생활이 궁핍해야지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다. 배부른 천재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남기는 게 적을 것이니 말이다.

 

구글에 가서 영문 제목을 치면 영어 원문 전체가 올라와 있다. 시간 나면 천천히 한 번 읽어볼 생각도 든다. 물론 아마존에서 책을 구독할 수도 있다.

 

책을 거의 다 읽은 마당이라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 역사를 저처럼 멋지게 써낼 작가는 언제쯤이면 나올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국사학자들의 많은 연구가 아직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비잔티움”

 

 

마지막으로 “비잔티움”이다. ‘글항아리’란 곳에서 번역했다. 천년 이상 존속된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책을 그간 여러 권 읽어봤지만 골치 아픈 것은 황제들의 이름이 늘 똑 같아서 연대기 순으로 기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고 중요한 주제 별로 소개하고 있어서 술술 읽힌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입문서로서는 최고의 책이 아닌가 싶다.

 

얘기가 나온 김에 책 한 권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란 책이 그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유난히 글로벌했던 唐(당)제국 당시 여러 타국들로부터 수입된 다양한 문물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미국 중국학 연구가의 力作(역작)이다.

 

최근 번역 출간되었는데 읽다 보니 너무 재미가 있어서 700 페이지나 되는 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버렸다. 여전히 흥미롭고 두고두고 또 읽어볼 것 같다. 미처 소개하진 못하지만 진짜 재미가 있다. 우리와 관련되는 내용도 풍부해서 더 그렇다.

 

 

D. H. 로렌스의 사주와 운명

 

 

마지막으로 유럽사 이야기란 걸작을 남긴 D. H. 로렌스의 사주가 흥미로워져서 알아보기로 한다.

 

1885년 11월 11일 오전 9시 45분이라 되어 있다. 사주를 뽑아보면 乙酉(을유)년 丁亥(정해)월 庚午(경오)일 辛巳(신사)시가 된다. 따라서 1910년 庚戌(경술)년이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가 된다. 척 보기에도 文才(문재)가 넘친다.

 

살펴보니 마침 그 해 1910년에 그의 첫 번째 소설이 나왔고 저 “유명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928년에 나왔다. 그의 운세 상으로 小雪(소설)의 때였음을 알 수 있다. 로렌스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기에 평생 외설작가란 비난을 받아야 했던 불운한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작고한 마광수와도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소설이나 여타 책들 그리고 특히 시집을 읽어볼 것 같으면 그야말로 20세기 최고의 知性(지성)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글을 쓰고 시를 쓴 사람이었다.

 

 

나미의 슬픈 인연

 

 

토요일 오후 강좌를 마치고 귀가하니 몸이 완전 지쳐 있다. 다시 열이 나서 한 알 더 먹으니 열이 내린다. 그냥 자기가 아쉬워서 나미의 “슬픈 인연”을 여러 번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나미 저 분, 어쩌면 저렇게 잘 부를까? 탄복하다가 스케치 한 장 하게 된다. 이러다가 내일 아침 또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슬며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