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찍은 사진을 보고 그렸다. 위치는 용산구 우사단로 10길 131이다. 한남대교 남단에서 강북으로 건너가다 보면 보이는 왼쪽 언덕 위의 한광교회 앞이다. 마치 랜드마크와도 같은 그곳에 가보았다. 늘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그림의 반대편 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이슬람 성전이 나온다. 사진 속의 저 커다란 글자 '음'이 뭔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음 레코드'란 곳이었다. 찬란할 정도로 남루한 우리의 삶이구나!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찬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마구 펜을 달려서 긋다 보니 드로잉이란 게 되었다. 차가운 겨울 하늘을 가득 날아다니는 저 전선줄들, 겨울의 저녁 햇빛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시간 여행? 어릴 적 늘 어디서나 보던 광경이 그곳에 화석처럼 남아있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정현종 시인의 시 "기억제"를 떠올렸다. "금인 시간의 비밀을 알고 난 뒤의"로 시작하는 시, "쓰레기는 가장 낮은 데서 취해있고"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의 삶은 저랬었어, 하지만 그때도 꿈이 있었어, 하면서 연기를 길게 내뿜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래서 지금은 다른가? 하고 묻게 된다. 며칠 그림에 빠져서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곧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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