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다 달랐던 시간

 

 

옛날엔 장소마다 시간대가 달랐다. 여기에서 옛날이란 전 지구촌이 사용하는 표준시가 생겨나기 전의 시절을 말한다. 장소에 따라 지구상의 經度(경도)가 다른 탓에 도시나 지자체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계를 조정해서 사용했다. 휴대용 시계가 나온 뒤에도 거리가 좀 되는 이 도시에서 저 마을로 이동할 경우 가는 곳에 따라 시계를 그 지역 시각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가령 영국 런던에서 북서쪽의 맨체스터로 이동할 경우 경도가 2도 정도 차이가 난다. 경도 15도에 한 시간 차이, 따라서 8분의 시간 오차가 발생한다.

 

예전에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시절, 또 휴대용 시계가 없던 시절엔 그런 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 이동하는데 빨라야 열흘은 걸렸기에 몇 분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속 운송 수단, 즉 철도운송이 보급되면서 사정이 변했다. 아시다시피 영국은 전 세계에서 철도가 가장 빨리 보급된 나라이다. 그런데 철도는 철로 위에 기차와 객차 꾸러미 하나만 통과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지나간다. 대도시일 경우 역마다 무수히 많은 기차가 들어오고 나간다.

 

기차 운행이 늘어나자 급기야 몇 분의 시간 오차가 중요해졌다. 자칫 역 플랫폼에 정차해있는 기차를 새롭게 진입하는 후행 기차가 들이받는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맨체스터와 런던의 시간이 다르다면, 이 경우 8분이지만, 큰 일이 날 수도 있었다. 철도 보급에 따라 정밀한 시간 확인이 필요해진 것이다.

 

 

표준시(Standard Time)의 등장 

 

 

철도 운행을 관리하는 쪽에선 정말이지 이게 여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영국 전체를 하나의 시간으로 통일해서 쓰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에 학자들은 궁리 끝에 런던 동남쪽 템스강 건너편에 있는 영국 왕실 천문대를 기점으로 전국의 시간을 통일하게 되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오래 전부터 천체를 관측하는 학자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별의 운행과 천구의 좌표를 표시해왔기에 자연스럽게 영국 통일시간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게 바로 표준시(Standard time)의 등장이다. 1847년의 일이다.

 

 

글로벌 표준시의 등장 

 

 

그런데 아시다시피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 전 세계에 식민지를 보유한 글로벌 제국이었기에 나머지 지구 전체의 시간도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다른 열강들도 그럴 필요성에 동의를 하고 1884년 미국 워싱톤 D.C.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International Meridian Conference, 우리말로 “국제자오선 회의”였다.

 

이 회의에는 발언권이 강한 핵심 열강들만 아니라 곁다리로 일부 나라들도 끼워 주었기에 41개국의 대표가 소집되었다. 사실 이 회의를 주도한 나라는 영국이었지만 일부러 짐짓 미국을 회의주최국으로 삼았다. (이런 방식은 강대국의 상투 수법으로서 오늘날 대다수 국제기구 본부들이 미국에 모여 있지 않고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회의 결과 세계 표준시의 기점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로 정해졌다. 영국을 싫어하는 프랑스만 반대하고 나섰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약간 버티다가 순순하게 그리니치 천문대를 인정했다. 그 결과 지구상의 經線(경선) 중에서 경도 0도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되었다. 달리 말하면 지구상의 모든 시간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글로벌 표준시의 등장이다. 오늘날엔 글로벌 표준시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협정 세계시(Coordinated Universal Time, 줄여서 UTC)란 말을 사용한다. (영국의 국력이 약해지고 미국이 올라서면서 그리니치 천문대 시간이란 말을 없앴지만 내용을 보면 여전히 그리니치 시간이다.)

 

 

시간의 기점이 된 대영제국

 

 

영국에서 표준시가 등장한 것은 1847년이었으니 丁未(정미)년이었고 글로벌 표준시 즉 협정 세계시가 등장한 것은 1884 甲寅(갑인)년이었다.

 

이는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360년 국운 흐름에 있어 출발점인 1582년으로부터 다섯 번째 60년 즉 국운 제5기의 정점 근처, 그리고 국운 제6기의 출발점인 점인 1882년으로부터 2년 뒤의 일이었다. 아직 글로벌 리더로서의 ‘아우라’가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해서 경도 0도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이 되었고, 그를 기점으로 세계 표준시, 협정 세계시(UTC)가 정해졌다.

 

 

산업혁명, 현대적 시간을 탄생시키다.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시간은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생각해보라, 오늘날 우리들이 시간과 장소 약속을 하면 무슨 요일 저녁 7시 반에 어떤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대기업체의 고위 간부들이나 사장의 경우 10분 단위로 미팅 약속을 잡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의 모 장소에서 7시 반에 보자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서울 부산만 해도 이른바 천리길, 예전엔 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보름 이상을 걸려 수도 한양에 도착하던 거리였다. 저녁 7시 반 약속, 이런 따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예전엔 시간이란 것이 엄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저 소수의 엘리트 천문학자들이나 시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 일반 사람들은 기껏해야 몇 월 며칠 정도가 고작이었다. 해가 뜨면 아침이고 해가 중천에 있으면 한낮이고 해가 서산에 걸리면 저녁이며 해 지고 나면 밤이었다.

 

期約(기약)이란 말이 있다. 그냥 약속이 아니라 때를 정해서 약속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期(기)란 한자를 보면 ‘그것’을 뜻하는 其(기)와 달 月(월)의 합성자임을 알 수 있다. 번역하면 ‘그 달’이 된다. 우리 언제 볼까요? 하고 상대가 물어보면 석 달 뒤에 보지요, 하고 답하던 것이 보통이었다는 말이다. 옛 사람들은 만날 장소가 멀리 있으면 날이 아니라 달로 기약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쓰는 시간은 몇 시 몇 분은 물론이고 때론 초 단위에까지 이른다. 최근엔 모르겠지만 나 호호당이 직장 다니던 시절엔 출근 시간에 5분만 늦어도 지각이란 낙인이 찍히고 야단을 맞기도 했다. 현대인들은 지극히 조밀한 시간 단위를 사용하며 살고 있음이다.

 

 

초치기로 살아가는 우리들

 

 

시간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해진 우리들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자기 전 넷플릭스 영화를 본다. 무얼 볼까 고르는 시간 20분이고 정작 들어가서 보기 시작하면 도입부가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다. 그러면 빠져 나오기를 누른다. 대중가요 역시 처음 5초 안에 재미가 없으면 끝이다. 그래서 오로지 ‘후킹’이다.

 

독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재미없거나 흥미가 일지 않으면 정말이지 3초도 기다려주지 않게 된 우리들이니, 그야말로 우리 모두 초 단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러서 “초치기”.

 

그런데 묘한 것은 나 호호당은 아시다시피 운명이란 물건을 다루는 자란 사실이다.

 

 

30년과 3초

 

 

글을 통해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사람이 성공하려면 어떤 분야나 방면, 또는 업에서 30년은 해야 마스터가 된다는 얘기, 30년은 해야 성공한다는 얘기를 수시로 해왔다. 당연히 무수히 많은 사례를 알고 있고 검증해왔기에 절대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 때론 의아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초치기로 살고 있으면서 30년 운운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녀간의 뜨거운 열정이나 사랑, 욕정도 몇 년 지나면 시들해진다. 당연하다고 여긴다. 초치기들간의 사랑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생겨난다. 초치기로 살고 있는 우리들인데 어떻게 30년씩이나 버틸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해서 30년을 버틸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이 질문에 대해 먼저 답을 하자면 인생 한 번 살다가는 게 장난이 아니란 얘기이다. 30년을 버텨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말을 듣게 되려면 그 사이에 그만 두고픈 고비를 도대체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

 

창조적인 마인드? 절대 아니올시다. 긍정적인 마인드, 땡, 틀렸습니다. 적성과 소질? 웃기고 있네. 그럴듯한 말 따윈 다 필요 없고 오로지 하나가 있다. 30년씩이나 버티게 만드는 힘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가장 위대한 힘은 먹고 살려는 의지

 

 

정답은 ‘먹고 살기 위함’이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면, 간단히 말해서 애 낳고 키우면서 먹고 살다보면 싫다고 해서 그만 둘 수 없고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야 한다. 분노가 치밀어도 먹고 사는 일 앞에선 조절이 된다. 그게 일상이고 우리의 삶이다. 먹고 사는데 필요하면 적성도 만들어지고 소질도 발굴하게 된다. 수 백 번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억눌러가면서 하다보면 30년이 가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성공하고 마스터가 된다.

 

나 호호당은 운명을 연구하는 사람인 바, 운명학에 있어서 시간이란 요소는 절대적이다. 그런 까닭에 시간이란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물건으로서 존재하진 않지만 시간이란 놈은 현대 물리학에서 하나의 물리량으로 인정한다. 그런 까닭에 오늘은 시간에 대해 얘기를 해보게 되었다.

 

사실 이번 글은 아직 머릿속의 주제를 꺼내지도 못했다. 얘기가 약간 옆으로 흘렀다. 이에 다음 글에서 제목을 바꿔서 진짜 생각하던 주제에 대해 얘기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