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예언서? 

 

 

최근에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것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한 번 보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들어가 보니 중국 명태조 주원장의 창업공신인 유백온이 남긴 예언서 중에 하나가 화제라는 것이었다. 그냥 깔깔 웃었다, 그리고 감히 장담한다, 그 양반이 그런 예언서를 남길 까닭이 없다고.

 

중국의 항간에선 유백온이 네 권의 주요 예언서를 남겼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그 중의 하나, 중국 섬서성 태백산에서 출토된 秘記(비기)라고 한다. 거기에 우한 폐렴을 무려 6백 년 전에 예언했다고 하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일까?

 

 

흥행요소가 워낙 충분해서 

 

 

먼저 중국 섬서성 태백산에 대해 얘기해본다. 태백산은 웅장한 산줄기인 秦嶺(진령)산맥의 주봉으로서 해발 3,700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이다. 먼 옛날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나라가 秦(진)인데, 당시 또 하나의 강대국인 楚(초)나라가 이 산맥을 경계로 무수히 각축전을 펼쳤다. 산맥 사이의 계곡 길을 통해 부단히 치고받고 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연의에서 촉의 제갈량이 여섯 번이나 魏(위)를 정벌하기 위해 절벽 옆구리를 깎아서 棧道(잔도)를 낸 곳도 바로 이 진령산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갈량이 진을 쳤다가 숨을 거둔 “오장원”이란 곳 역시 진령산맥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와 처음 만나는 구릉지대이다. (나 호호당은 1995년에 그 오장원이란 곳을 답사한 바 있다.)

 

진령산맥, 참으로 소개할 얘기도 많지만 줄인다. 아무튼 그런 역사의 ‘아우라’가 서린 진령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어딘가에서 유백온이란 천하의 기재이자 도사가 미래를 예언하는 비밀의 글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귀가 솔깃하다.

 

유백온이 누구인가? 중국 남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한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책사인 제갈량과 함께 중국 3대 참모이자 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니 흥행성을 이미 빵빵하게 깔고 시작하고 있다.

 

 

이른바 예언서란 것에 대해

 

 

이제 이른바 예언서란 것에 대해 얘기 좀 할 차례가 되었다.

 

예언서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이렇다. 처음 소개될 때 보면 놀랍도록 정확하다. 어떤 양반이 몇 백 년 전에 남긴 글로서 그간 바깥에 유출되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秘傳(비전)되다가 어찌어찌하다가 실수 또는 뜻한 바가 있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니 과연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혹 해서 야, 대단하다! 하면서 한동안 화젯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장차 앞 일에 대해선 뭐라고 적혀있지? 하는 호기심에 책이 왕창 팔린다.

 

그런데 기억을 되살려 보시길, 이상하게도 화제가 되거나 책이 나온 시점 이후론 전혀 통 들어맞지가 않는다는 사실을.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몇 백 년 전에 쓰여 졌다는 그 예언서란 게 실은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작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내는 시점까지의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인데 그것을 마치 몇 백 년 전에 예언하고 있으니 무진장 정확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간단한 트릭이다. 그런데 책이 출판된 시점 이후론 전혀 맞지 않는다.

 

예로서 2000년대 초반에 ‘송하비결’이란 책이 출판되어 엄청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한 번 상기해보라. 출판된 시점까지의 내용을 보면 엄청난 적중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책이 나온 다음해인 2004년부터는 전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선 역사상 인기 많은 사람의 이름을 차용하는 일이 잦아서  

 

 

돌아가서 얘기이다. 유백온이란 분이 그런 도참서나 예언서를 남겼을 까닭이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유백온이란 사람이 워낙 대단한 인물이기에 그의 권위를 借用(차용)했다고 보시면 되겠다.

 

유백온은 명리학 방면에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이 역시 냉정히 따져들면 그 분이 명리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항간에 전해지는 말로서 유백온이가 대단한 예측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식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가 적천수란 책, 즉 하늘의 骨髓(골수)를 누출시키는 글이란 뜻의 명리철학서를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그간 남긴 글은 몇 백자 되지도 않는다. 적천수 원문 자체는 사주팔자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유교의 성리학에 더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글 내용 중에 사주팔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유백온이가 죽고 나서 3백년 뒤인 중국 청대의 명리학자들이 적천수 천미라든가 더 나중에는 적천수징의란 책을 만들어내면서 유백온의 권위에 얹혀갔다는 게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이 점은 나 호호당이 예전에 중국에 체류할 때 방면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중국 사람들은 곧잘 이런 식의 권위 차용을 한다.

 

 

유백온,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나 호호당은 유백온이가 남긴 것이 확실한 郁離子(욱리자)와 百戰奇略(백전기략)이란 책을 오래 전에 원문으로 읽어보았다. 뿐만 아니라 明史(명사) 列傳(열전) 제128권에 적혀진 그에 대한 소개도 읽었다. (중국어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원문을 접할 수 있다.)

 

욱리자란 책은 권력싸움에 질려서 아니면 밀려서 낙향한 그가 백성들을 어떻게 교화하고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통치이상을 글로 남긴 책이다. 그런 까닭에 때론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비교될 때도 있다.

 

백전기략은 전략가로서의 유백온이란 사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대로부터 많은 전쟁과 투쟁이 어떤 식으로 이기고 졌는가를 분석 소개하는 책이다. 아직도 백전기략은 국내에선 번역되지 않았으나 중국판 책은 지금도 나 호호당의 작업실 책꽂이에 꽂혀 있다.

 

유백온의 백온은 字(자)이고 이름은 基(기), 따라서 유기가 그의 이름이다. 그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워낙 인기가 많은 인물이다 보니 그에 관해 전해지는 野史(야사)도 많고 逸話(일화)도 많다. 거의 어사 박문수 수준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근거가 별로 없다.

 

제갈량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가 뛰어난 외교 전략가이자 행정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 방면의 전문가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삼국지연의에서만 그럴 뿐이다. 이처럼 유백온 역시 神機妙算(신기묘산)의 道人(도인)이자 軍事(군사)의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크게 형세를 판단하는 전략가였다고 보면 된다.

 

 

유백온은 중국의 이순신 격이라서 

 

 

하지만 그의 인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대단하다. 왜 그럴까? 하면 그가 너무나도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죽을 땐 거의 굶어 죽었다는 점 등으로 해서 두고두고 중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동정표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전포도 입지 않고 거의 자살하다시피 생을 끝냈기에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듯이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남긴 책이나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나 호호당은 그의 글을 통해 그가 대단히 강직하고 청렴했다는 점을 능히 느끼고 있다. 그런 훌륭한 사람이 예언서나 도참서를 남길 까닭이 없다고 본다.

 

 

세상이 혼란해지면 으레 예언서가 등장하나니 

 

 

사실 이번에 유백온의 태백산 비기와 같은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사실 코로나19 때문이다. 사회가 혼란하거나 역병이 유행할 때면 으레 이런 도참서나 예언서가 나타난다. 자, 봐라, 이미 여기에 다 예언되어 있지 않느냐! 하면서.

 

어쩌면 나중에 또 다른 사회적 재앙이나 문제가 생기면 유백온의 또 다른 비기가 소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다! 하면서. 그의 인기가 워낙 절대적이기에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이번 일이 흥미로운 것은 이제 중국은 우리와 워낙 교류가 많다 보니 그런 예언서가 나오면 당연히 우리에게도 제법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제법 오래 전에 소개된 중국 예언서인 “추배도”가 그랬다.

 

 

이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때문이다. 백신이 절대 부족한 판국에 감염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약만 있었다면 우리나라 행정능력으로 볼 때 이미 90% 이상 접종을 끝내고도 남았을 것인데, 우리 정부는 왜 무슨 이유로 당초에 백신 구입을 예약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다가 이제 와서 급해지니 백신을 다른 나라에게 구걸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른 나라처럼 크게 확산이 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이 알아서 조심해서 그런 것이지 솔직히 정부는 크게 판단 착오를 범했다고 여긴다. 예약 시스템도 국민들을 골탕 먹이고 등등 사람들을 정말 피곤하게 만들고 있으니 거 참! 제발 어서 냉큼 좀 백신이 들어왔으면 싶다. 해군 사병들을 방치했다가 문제가 생기자 국방장관이 사과를 하는데 그 표정을 보니 워낙 ‘시크’해서 사과하는 것인지 아닌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요즘 날은 왜 이리도 뜨겁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