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운운은 너무 이른 생각일 수 있어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범유행 사태 즉 팬데믹이 되자 대번에 이젠 더 이상 과거의 산태로 되돌아갈 순 없으리란 비관론이 득세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운운이 그것이다. 잽싸게 책도 나왔고 나름 세계적인 碩學(석학)이란 사람들도 인터뷰와 강연에 나서면서 인기몰이와 돈벌이에 한창이다.

 

석학이란 불리는 사람들 전혀 석학이 아닌 것 같다. 가령 지금의 사태가 어느 정도 가신 뒤 한 3년 정도 신중히 생각해본 다음에 진중하게 말문을 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피디하게 끼어들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대고 있으니 그렇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비로소 그 날개를 편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있어 결정적인 승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나 호호당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면서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이 인류가 바이러스를 극복해가는 기나긴 투쟁에 있어 어쩌면 결정적인 勝機(승기)를 잡는 일대 전환점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세간의 비관론과는 180도 다른 생각, 그것도 대단히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해보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올 초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가자 바이러스에 대해 관심이 부쩍 커졌고 이에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법이 1796년에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다. 

 

 

우두법은 천연두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일대 시작점이 되었다. 천연두는 흑사병과 더불어 엄청난 치명률을 가진 감염성 질병으로서 신종 독감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지금의 코로나19 정도는 사실 천연두에 비하면 그야말로 그저 조심해야 되는 유행병에 불과하다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연두는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위키백과에 나온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의 경우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0,000 명을 죽였으며, 시각장애자 중 3분의 1은 천연두로 인해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감염자들 중 20-60 %가 사망했고, 아동은 감염될 경우 80% 꼴로 사망했으며, 20세기에도 3억에서 5억 명이 천연두로 인해 죽었다. 1967년에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는 그해 한 해 동안 1천 5백만 명이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그 중 2백만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면 천연두가 얼마나 무서운 감염병인가를 충분히 알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천연두가 백신 접종으로 인해 1979년엔 사실상 박멸되었다는 것이다. 백신의 위대함이다.

 

이에 계산하기 좋아하는 나 호호당은 사이클을 체크해 보았더니 어쩌면 이번 코로나 사태야말로 하나의 역사적인 전환점에 해당될 수 있다는 아주 흥미로운 계산이 나왔다. 이 점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먼저 백신에 대해 알아보자.

 

 

초유의 백신 개발 속도

 

 

그간 바이러스 백신 개발엔 결정적인 장애가 있었으니 개발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이상한 바이러스가 나와 유행하면 백신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 놈의 바이러스 유행이 개발 도중에 멈추는 일이 잦아서 연구소나 제약소들로선 투자한 비용을 손실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흔히 백신 개발엔 최소 10년이란 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는 최대 피해국이 바로 미국이란 사실이다. 이에 미국은 백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살포했다. 선입금 후개발 방식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돈이 먼저 들어가자 전 세계 두뇌들이 풀가동되기 시작했고 그간에 발표된 신기술들이 최대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3월에 착수한 백신 개발이 사실상 7개월 반 정도에 임상 3상이 완료되었고 이르면 12월 중에 투여가 시작될 참이란 것이다. 돈 퍼붓고 두뇌들을 마구 갈아 넣기 시작하자 약이 만들어졌으니 초유의 속도전이었다.

 

지원금을 두둑이 받은 거대 제약사들이 죄다 나름의 신기술을 동원해서 개발했고 이에 조만간 위탁생산 업체들을 통해 양산에 들어간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일이다.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컸지만 최근 나온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바이러스 변이가 코로나19 백신 효능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더더욱 다행한 일이다.

 

 

자연순환의 원리에 따른 계산 근거

 

 

그럼 이제 앞에서 얘기한 나 호호당의 계산을 제시해본다.

 

세상 변화엔 여러 주기가 있는데 이 블로그를 통해 가장 흔하게 제시하는 주기는 60년 사이클이다. 그런데 그 상위의 사이클로서 360년이 있다.

 

360년 주기에선 그 절반인 180년이면 서서히 반전의 흐름이 시작되고 그 반전의 흐름은 225년이 되었을 때 그 반전의 흐름이 보다 구체화되고 현저해진다. 그렇기에 역사 흐름을 볼 때 가장 드라마틱한 시점이 되기도 한다.

 

이에 살펴보면 우두법, 즉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괄목할 만한 치료법이 나온 것이 1796년이었다. 이 시점에 180년을 더해보면 1976년이 되는데 이 무렵이면 어떤 좋은 흐름이 나올 수 있는 때가 된다. 그런데 천연두 바이러스가 박멸되었다고 세계보건기구가 선언한 것이 1979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3년 차이.

 

따라서 1976년이야말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이기기 시작한 시점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1796년에서 225년이 경과하는 시점을 뽑아보면 바로 2021년 내년이 된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백신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개발이 되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바이러스가 미국을 공격하자 세계 최강국 기술 제일의 미국답게 신속한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승기를 잡는 순간일 수 있다. 

 

 

그렇기에 백신 개발에 10년 걸린다는 기존의 얘기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인류가 마음만 먹으면, 즉 돈을 넉넉하고도 과감하게 투입하고 두뇌들을 집중 투입하면 6개월 정도에 백신이 만들어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바이러스는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중간자라서 박테리아처럼 공격할 포인트를 잡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백신 개발에 활용된 신기술은 코로나19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모든 바이러스 퇴치에 널리 활용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어쩌면 내년 2021년이야말로 ‘바이러스 프리’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元年(원년)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흥 종교같은 얘기를 하는 선배를 만난 뒤 

 

 

며칠 전 친한 선배를 만났더니 이번 코로나19는 예고편이다, 내년엔 식량난이 닥치고 더 무서운 질병이 번져서 인류를 대청소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냥 웃고 말았다, 물론 미래의 일이니 아니라고 단정을 짓긴 어려워도 최근 내가 하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얘기였기에 말이다.

 

그래서 형, 무슨 약간 신흥종교 교주님 같은 얘기 하시네, 하고 약간의 핀잔만 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서 이렇게 올린다.

중앙에 섰을 때 당신은 진정으로 살아있다. 

 

 

가령 당신이 표창장을 받는다고 해보자. 강당 안엔 모든 구성원이 모여 있다. 당신은 약간 상기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연단에 오를 것이다. 조직의 장이 수여하는 표창장을 받는 순간 일제히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가 당신을 주목하고 있고 아울러 연단에 올랐으니 물리적으로도 구성원들보다 높은 자리에 서 있다.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의 實在(실재)함, 생생히 살아서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누구나가 있고 싶은 곳은 이처럼 세상의 중앙이고 중심이다. 물론 중앙이나 중심은 당연히 다른 곳보다도 높기 마련이다. 일본 영화중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런 제목이 있는데 제목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문제는 세상의 중앙 혹은 중심이란 곳이 어떤 곳이냐 하는 점이다. 어려서 세상 알지 못하던 시절엔 만인이 인정하고 수긍하는 중앙이나 중심만을 생각하고 그곳에 서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중앙은 한 점에 불과하기에 그 자리엔 한 사람밖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된다. 그 중앙엔 나만 서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만인이 그리 하고자 하기에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철이 들면 그렇다.

 

사람은 중앙 또는 중심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하지만 만인이 바라는 그 중앙엔 확률적으로 설 수가 없다. 그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만 초래할 뿐이다.

 

물론 이 세상은 하나의 중앙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문과 분야에 걸쳐 저마다 중앙 그리고 중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그 어떤 사회도 그 구성원 숫자만큼의 중앙을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진 않다.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려면 인구 숫자만큼의 중앙이 필요한 데도 말이다.

 

 

세상이 작았을 땐 오히려 행복했는데 

 

 

과거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의 산골 동네로 돌아가 보자. 전체 합쳐서 20 가구라 하자. 모두들 감자나 메밀을 주식으로 먹고 살았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배를 주리는 집이 있고 그런대로 배 주리지 않고 사는 집이 있었다. 그런 산골 동네에서 가장 여유롭게 사는 집의 가장은 세상의 중앙 그리고 중심에 살고 있었다. 산골 동네가 모든 세상이었기에 말이다.

 

옛날에 천하장사는 읍내 씨름 대회에서 가장 씨름을 잘 해서 황소를 상으로 차지한 사람이었다. 그는 씨름꾼으로서 천하의 중앙에 우뚝 서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씨름꾼에겐 읍내와 그 주변 마을이 온 세상이고 천하였기 때문이다.

 

바둑을 예로 들어본다. 지방 각 도시마다 바둑천재 혹은 영재가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쟁의 무대는 도시 안의 일이 아니고 전국이 무대이고 나아가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날고 기는 기사들을 꺾어야만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무수한 바둑천재들은 어느덧 사라져버리고 만다. 중앙으로의 길은 너무나도 멀고 험하다.

 

 

글로벌 세상은 모두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오늘날 재산으로 가장 부자를 꼽으라 한다면 우리나라에선 고 이건희 삼성회장 한 사람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미 글로벌 세상이라 이건희 회장도 내가 세상 제일 부자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로벌 세상은 쉽게 오가고 왕래할수록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최고는 한 사람밖에 없는 까닭이다.

 

사람은 중앙이나 중심에 설 때만이 삶에 만족할 수 있는데 만인이 인정하는 중앙이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오늘날 너무나도 어렵다. 그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격화시킬 뿐이다.

 

 

우리 각자는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기도 해서 

 

 

그러니 달리 생각해봐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과연 가능할까?

 

이 세상은 넓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고 죽고 하기에 나 스스로는 사실 세상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인류 전체로 놓고 보면 각자는 그야말로 겨자씨 정도도 되지 않는다. 그냥 무수한 衆生(중생) 중의 일원일 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없거나 죽고 나면 세상도 우주도 사라진다는 점이 있다. 나는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각 개인은 각자에게 있어 세상과 우주만큼의 비중이 있다. 따라서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읊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설화는 지극히 옳고 당연한 말인 셈이다. 각자에게 각자의 존재가 우주이고 세상인 것이다.

 

각자는 세상에서 아무런 비중도 없다는 것과 각자는 각자에게 우주와 세상 그 자체란 생각, 이 두 생각은 참으로 극단적인 대립과 모순을 이룬다. 그렇지만 두 가지 모두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모두 타당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같은 관점에서 동시에 그것을 긍정하면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이를 모순율(矛盾律)이라 부르지만 앞의 두 생각은 관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의 중앙 그리고 중심에 서라.  

 

 

그렇기에 세상의 중심이나 중앙에 서되 그 중심이나 중앙이 만인이 인정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중앙이나 중심에 서고 또 위치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앞부분에서 일본 영화 “세상의 중앙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보면 세상의 중심이란 결국 주인공이 중심이라 여기는 것이 바로 세상의 중앙이 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중앙이나 중심에 선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는 점에 대해 알면 되겠다.

 

사실 알고 보면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서고 싶은 중앙 그리고 중심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대통령이 꿈이었다면 그 시절엔 대통령이 중앙이었던 것이고 나이가 들어 사업으로 입신출세를 하거나 대기업의 고위 간부가 되고 싶다면 물론 그것이 그 사람의 중앙이고 중심이라 하겠다.

 

 

우리 각자는 중앙을 향해 가고 있거나 중앙에 섰을 때 삶에 만족한다.  

 

 

이처럼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있어서의 중앙과 중심은 조금씩 변해가기도 하고 때론 갑작스럽게 변할 때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람은 중앙이나 중심에 서거나 또는 그 중앙이나 중심을 향해 다가서고 있을 때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점이다. 목적지가 중앙이고 중심이라면 그곳으로 가는 道中(도중)에 있을 때 말이다.

 

저마다의 목적지로서 중앙이 있고 중심이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해 가고 있을 때 만족할 수 있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목적지로서의 중앙이나 중심이 바뀔 때도 있다. 이 산이 아니라 저 산이로세! 하면서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때론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길을 잃은 것은 큰 문제가 사실 아니다, 시간이 걸려서라도 길을 찾으면 된다. 그보다 더 문제는 기존에 생각하던 중앙이나 중심을 버리고 난 후 미처 새로운 중앙과 중심을 찾지 못했을 때 사람은 힘들어 한다. 실은 그게 바로 방황이다.

 

예컨대 돈을 벌어 부자가 되면 인생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정작 돈은 벌었으나 그 사이에 잃은 게 너무나 많다면 문득 내 헛살았구나 싶을 때도 있다. 이에 돌이켜 진정한 자신의 중앙이고 중심이다 싶은 길을 찾아 나서려 하니 너무 때늦은 감이 들기도 한다. 세월을 되돌릴 순 없으니.

 

 

방황과 전락의 삶이란 

 

 

그 바람에 사람은 더러 그냥 막 살기도 한다. 세월만 가라시구려 하는데 그건 이제 방황의 단계가 아니라 일종의 轉落(전락)이 하겠다.

 

스스로 자신의 중앙으로 그리고 중심으로 향해 가는 이를 두고 우리들은 그 사람답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자기답게 자신답게 살 때 그는 자신의 중앙과 중심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중앙과 중심으로 다가서고자 함에 있어 대단히 어려운 하나의 문제와 봉착하기도 한다.

 

 

희생하는 삶은 없다. 

 

 

바로 현실의 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현실의 여건 때문에 다시 말해서 호구지책 때문에 자신의 중앙이나 중심을 생각하고 있음에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그냥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내 꿈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에 스스로 변두리의 삶이라 여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젊은 시절 가졌던 꿈이 있었는데 살아가면서 가정을 이루다 살다 보니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이에 마냥 자신의 꿈만을 쫓아갈 수 없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자녀들을 잘 부양하기 위해 내 꿈을 포기할 때 이를 두고 흔히 자신을 희생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보면 그건 희생이 아니다. 자신의 꿈보다도 가정이 더 소중하고 아이들이 더 소중하기에 그런 것이고 이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중앙을 가정과 아이들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그건 절대 희생이 아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당초의 목적지, 오로지 그 중앙과 중심을 향해 다가갈 수도 있다. 요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하느냐 하는 취사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오늘 글로서 사람은 자신의 중앙이나 중심에 설 때 더불어 그곳으로 향해 다가설 때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다음의 마지막 글에선 이런 개개인의 삶과 사회 간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마무리할 생각이다.

 

2박 3일 일정으로 여수를 다녀왔다. 소설 이맘때의 여수를 좋아한다, 서울은 겨울 기운이 완연한데 여수는 여전히 늦가을 같아서 시간을 며칠 더 늦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시내를 다니다 보면 남국의 야자수도 보이고 동백도 여전히 푸르다. 해마다 찾아가는 여수 돌산의 별장에 가서 묵었다. 이번으로서 흥국사를 세 번 다녀왔다. 일주문 지나 절로 들어가는 길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무지개 돌다리가 있다. 물은 말랐고 그 위로 낙엽이 수북하다. 초겨울의 산사는 절로 청빈하고 적막하다. 한기 가득한 법당에 들어가 복전함에 돈을 넣고 절 세 번 올리고 잠시 묵념하고 달아서 나온다. 흥국사 법당엔 견훤의 최측근이었던 김총 장군의 신위가 있다. 그간 잘 지내셨냐고 문안도 드렸다. 개울의 저 낙엽들은 물과 어울려 내년 봄이면 삭아서 사라지리라. 저렇게 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슬프기도 하다. 여수 바다는 겨울 구름 아래 생각에 잠긴 듯 했다. 해풍도 많이 들이마시고 왔다. 서울이 또 다시 거리두기 2단계 들어간다는 소식을 여수에서 들었다. 이번엔 자영업자들이 견뎌낼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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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 있을 때 사람은 불행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변두리에 있거나 가장자리에 처해있다고 느낄 때 우울해지고 불행해한다. 이런 생각이나 감정은 큰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민족감정이라 부르는 것의 상당수가 그 민족이나 나라가 변방이나 가장자리에 처해있을 때 나타나고 만들어진다.

 

변두리에 있거나 가장자리에 있을 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달리 표현하면 ‘소외감’이라 부른다. 소외감이란 즉 자신이 중앙이나 중심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 하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상대적 박탈감’이란 표현을 잘 쓰는 데 이 역시 꼭 돈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이나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의 감정이기도 하다.

 

 

소외감이란 변두리에 처한 감정이다. 

 

 

다시 하는 얘기지만 이런 소외감 또는 중앙으로부터의 괴리는 반드시 금전이나 돈, 나아가서 사회적 지위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예를 들면 9급 공무원 직의 청년이 있다고 하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의 급여는 훗날의 연금까지 합산할 경우 일류 대기업의 사원보다도 더 많다. 그런데도 그 청년이 불만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업무나 역할이 무한정 반복되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작은 부품, 또는 볼트 혹은 너트와 같은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중앙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감정이다.

 

갱년기의 주부가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남편은 바깥일로 바쁘고 자녀들은 이제 어느 정도 컸기에 엄마와는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간 열심히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은 가정에 있어 절대적이었는데 이제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앙에서 밀려났다는 감정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앙등으로 엄청난 불만이 생겨났다. 그리고 부동산하면 으레 강남 서초 송파의 중심 지역이 거론되곤 한다. 바로 그곳이 서울 거주지의 중심이고 중앙인 까닭이다. 이에 서울 변두리에 사는 이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나아가서 변두리라 하더라도 자가 보유 집에 사는 사람에 비해 전세나 월세에 사는 이들 또한 소외감 또는 박탈감을 느낀다. 점점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중앙 혹은 중심이란 것이 세상엔 존재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한사코 서울로 올라오거나 진출하고자 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한양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지금도 역시 취업했을 때 지방보다는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기를 선호한다. 서울은 중앙이고 중심인 까닭이다.

 

서울,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거대한 중심이다. 돈과 권력, 문화와 예술, 학술, 교육과 의료 모든 면에서 서울은 중앙이고 중심이다. 대한민국의 인재나 나름 잘 났다고 하는 이들은 거의 모두 서울에 있다.

 

서울은 모든 방면에서 중앙이고 중심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계층과 단계로 나뉜다. 지방보다 구분의 정도가 엄청나게 크고 깊다. 그렇기에 소외를 느끼고 불행을 느끼는 것은 지방에 사는 이들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줄여 말하면 서울이라고 다 같은 서울이 아닌 것이고 그런 까닭에 박탈감은 지방보다도 서울이 더 심하고 극단적일 것이다.

 

학벌 또한 그렇다. 충분히 의대에 들어갈 만한 실력을 갖추고서도 재수도 아니고 3수를 하고 있는 수험생을 보았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서울 의대를 가야만 하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서울의 다른 의대론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 학생으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품게 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니.

 

옛날엔 평생 태어난 곳에 살다가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각 고을마다 가장 높은 산이나 그 고을을 지켜주는 鎭山(진산)이 있었다. 그 고을 사람들은 그 신령한 산의 정기를 받아 고을에 인재도 나고 태평하게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들 했다. 고을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고을의 진산이야말로 세상 중심에 있는 가장 높고 신령한 산일 수 있었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지방의 신령한 산들은 죄다 위신을 잃고 말았으니 

 

 

하지만 KTX 타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고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는 오늘날, 시골의 鎭山(진산)들은 죄다 과거의 위신과 신령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인재와 돈은 다 서울로 모여들기에 지방의 마을, 요즘 말로 지자체가 잘 살려면 중앙 정부에서 내려주는 지원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지방 사람들은 예전에 가졌던 고을의 성스런 산에 대한 믿음이나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고을마다 존재하던 중앙 혹은 중심이 이젠 그냥 지방의 변두리 산으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예전엔 읍내에 살면 나름 중앙에 산다는 생각 또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오늘날엔 읍내든 아니든 상관없이 죄다 변방이 되어버렸다. 이젠 중앙이란 오로지 서울 한 곳으로 집중되어 버린 것이다.

 

 

서울이라고 해서 같은 서울이 아닌 탓에

 

 

교통과 통신 그리고 물류가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었고 그 바람에 서울은 그냥 중앙이 아니라 그야말로 超(초) 거대 중앙이 된 것이다. 서울 자체만으로도 무수히 많은 기준과 격차에 의해 그냥 서울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변두리와 가장자리를 가진 서울인 까닭이다.

 

수평의 서울이 아니라 수직 격차의 서울이란 얘기인 것이니 그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예로서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에 처음 지어진 타워팰리스를 보라. 그로서 서울 안에 지어지는 신규 아파트는 복도식이 아니라 수직의 타워형 아파트였고, 지방에도 타워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중앙은 그 높이를 높여가면서 낮은 변두리와 차별화되어 왔다. 중앙에 우뚝 높이 솟은 산의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끊임없이 분화되어 변두리로 밀어내는 중앙의 힘

 

직장 또한 그렇다. 정규직은 중앙에 속한 직장이고 비정규직은 변두리, 물론 비정규직 안에서도 층차가 나뉜다. 끊임없이 중앙은 중앙대로 분화해서 핵심 중앙과 亞(아)중앙, 말단 중앙이 생겨나고 변두리는 변두리대로 분화해서 차별이 이루어진다.

 

학술이나 예술 또한 그렇다. 대학원을 마친 다음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해도 물 건너가서 그 학문의 중앙에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받지 못하면 그건 학위가 아니라 변두리 학위이기에 잘 해야 ‘지방시’가 고작이다. 그러니 그런 정도론 서울 인 대학의 전임교수 직을 꿈꾸기란 아예 難望(난망)이다.

 

 

글로벌 시대엔 서울 또한 변두리일 뿐

 

 

물 건너간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이참에 얘기를 해본다.

 

오늘날은 이른바 글로벌 시대이다. 글로벌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중심이고 중앙인 서울 또한 일종의 변두리 혹은 변방이다. 서울대학교 졸업장만으로 통용되던 시절은 까다득한 옛날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모 대학에서 수료하거나 학위를 받아야만 학계에서 또 취업에 있어서도 나름 엘리트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을 보라.

 

 

반대의 노력도 없진 않지만 역부족

 

 

물론 이런 중앙과 변두리의 차별화에 대한 반대 흐름도 없진 않다. 정치인들이 지방분권을 외치고 세종시를 만들어 행정수도로 하고 있지만 세종시를 중앙으로 생각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을 채용하는 일에서도 이른바 블라인드 면접을 통해 차별 없이 인재를 뽑겠다곤 하지만 과연 글쎄? 그게 잘 될까. 지방대학을 배려하기 위한 노력도 있지만 서울의 명문 대학과 서울 인 대학, 그리고 소위 ‘지잡대’의 격차가 어디 가겠는가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중앙은 존재한다. 

 

 

중앙의 높은 산, 이는 인류 역사를 관통해오는 권력의 상징이다. 힌두 신화 속의 수메르 산,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구중궁궐의 높은 계단, 이 모두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건 중앙이고 중심이며 높은 곳이다. 그러니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성공과 출세를 상징하는 말이 되고 있다.

 

한때 존재했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 역시 재산과 소득의 차별은 어떻게 해서든 줄일 수 있어도 권력의 공평한 분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포지션을 부단히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까닭이다. 권력의 공평한 배분은 이론적으로 무정부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점.

 

오늘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족을 느끼고 자족하면서 살아가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중앙에 속해 있거나 중앙에 서 있기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양극화의 시대가 아니다, 무수한 많은 기준에 따른 다극화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에 행복하기란 너무나도 힘들다.

 

 

오늘은 문제제기에 그치지만

 

 

제법 긴 글이기에 오늘은 문제 제기에 그친다. 다음 글에서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갈 수 있는지, 나아가서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비는 내려도 날씨는 포근하다. 비에 젖은 은행잎 가로에 수북하게 쌓이고 빈가지 사이로 공간이 드러나는 가을의 마지막 날들이다. 모쪼록 시간 내어 젖은 낙엽이라도 한 번 밟아보시길...

소양춘, 포근해서 헷갈리는 계절

 

 

오늘 최고 기온은 18도 , 내일은 19도, 최저 기온 역시 10도 근처, 며칠 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11월 7일 겨울이 들어선다는 立冬(입동) 무렵 한 차례 찾아왔던 추위가 물러간 후 며칠 사이 무척 포근한 것은 동풍이나 남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추위가 오기 전 한 차례 포근한 기간을 두고 옛 사람들은 마치 봄이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해서 小陽春(소양춘)이라 불렀다.

 

언제나 이맘때면 북쪽의 찬 공기가 잠시 물러나고 따뜻한 북태평양 기단이 마지막 힘을 쓰는 까닭이다. 하지만 오는 일요일 小雪(소설)이 되면 따뜻한 기단은 아주 물러가고 찬 공기가 본격적으로 내려온다. 그로서 사실상의 겨울이 시작된다.

 

그러니 이번 한 週(주)야말로 늦가을의 끝자락 餘韻(여운)을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라 하겠다. 추워지다가 다시 잠깐 반전해서 포근해지는 날씨, 하지만 이는 본격 겨울이 시작되기 전의 마지막 회광반조와도 같은 것, 이에 한진해운이 생각난다.

 

 

한진해운의 비극

 

 

2009년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는 우리 국운에 있어 立冬(입동)의 때였고 2012년은 小雪(소설)이었다. 그러니 2009년에서 2012년 사이는 우리 국운 상으로 일종의 小陽春(소양춘)에 해당되는 기간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한진해운의 비극이 발생했던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연준은 종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파격적인 招式(초식)을 선보였으니 ‘돈 찍어내기’였다. 그러자 글로벌 경제는 그 이후 2년 정도 회복세를 보였지만 그 약발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진해운은 양적완화에 따라 급감하던 글로벌 물동량이 다시 급증하자 이를 기회라 보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운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화물선을 최대한 많이 임차했던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는 2012년부터 급격히 침체로 들어갔고 이에 고가의 선박 임차료 즉 용선료를 견디지 못하고 2017년에 이르러 결국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11월 입동에서 소설 사이 잠시 기온이 온화해지는 것을 보고 다시 봄이 왔구나 싶어 소중한 알곡을 죄다 파종해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 결과 뿌려진 씨앗들은 겨울이 깊어가면서 다 얼어 죽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은 그 자체로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해운력에 대해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혔고 이로서 최근 보시다시피 수출을 하고자 해도 실어 나를 배를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소양춘의 때, 한 번 잘못된 판단이 고생을 자초하나니  

 

 

개인의 운세 순환에 있어서도 입동에서 소설 사이 즉 소양춘의 기간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니 허다하다. 이 시기에 한 번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한 것이 두고두고 장애가 되고 짐이 되는 바람에 길고 긴 고생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유명 인사들을 실례로 들자면 너무나도 많지만 그들의 개인사인 탓에 구체적으로 호명하긴 부담스런 점이 있다. 하지만 나 호호당 역시 운세 순환의 소설 무렵에 가졌던 생각이 훗날에 가서 철저하게 패망하는 아픔을 겪었다는 얘기 정도만 밝혀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당시 젊은 나이에로 인한 血氣(혈기), 즉 공격적인 남성 호르몬의 탓이라고나 하겠다.

 

 

젊은이와의 상담

 

 

얼마 전 젊은 친구가 와서 상담을 하고 갔다. 자격증 시험을 해볼 생각이란 것이었다. 그 젊은이는 이미 국가공무원으로 기반을 충분히 잘 갖추고 있었는데 일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나머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세를 보니 小雪(소설)이었다. 그간 열심히 노력해서 이제 결혼도 하고 생활을 즐기면 되는 일인데 조직생활이 힘들어서 차라리 자격증을 따서 개인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얘기해주었다. 조직생활 특히 공무원 생활이란 게 젊은 사람의 왕성한 혈기와는 다소 부합되긴 어렵다는 말,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울러 개인사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었다.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봉급을 받다 보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실은 매달 일정 일자가 되면 통장에 급여가 입금된다는 것이 엄청난 일이란 얘기를 해주었다. 개인사업을 할 경우 필요한 금액을 매달 자동으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매달매달 창출해내어야 한다는 것, 그런 일이 얼마나 신경 쓰이고 피곤한 일인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사업을 하면 휴일이 사라진다는 말, 쉬다가도 일 생각, 간단히 말해서 돈 생각이 드는 그 순간부터 긴장상태에 들어간다는 점, 이에 생활의 리듬, 월요일에 시작해서 주말이면 긴장이 풀리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긴장을 하게 되는 그 리듬이 사라지면 건강에도 몹시 해로우며 적응할 때까지 꽤나 마음고생 한다는 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급여를 받다 보면 그게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것의 고마움보다는 늘 정해진 급여라는 점에 대해 오히려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어떤 일로 인해 지출이 생기면 마이너스 통장을 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 젊은이의 불만은 사실 어떤 면에서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활발하고 자유롭게 생활해보고 싶은 바람이니 전혀 나무랄 것이 없다. 하지만 이미 그 친구의 운은 소설, 서서히 기울고 있는 마당, 다시 말해서 이제 본격 겨울이 닥치기 직전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은 장차 전혀 예기치 않은 풍파와 고생길의 시작이란 점을 나 호호당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제 생활과 취미를 즐기고 결혼도 생각해보라고 얘기해주었다.

 

 

늘 도전하는 삶, 그건 거짓말

 

 

가끔 보면 어떤 이는 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에 도전해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식의 칭찬을 하곤 한다. 얼핏 듣기에 대단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단언컨대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절대로! 과잉 스트레스로 명줄 단축하거나 아니면 어느 순간 크게 몰락한다.

 

 

우리의 생각이나 소망은 늘 조금씩 변해간다는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 평소 하는 생각도 있고 소망이나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대 그런 생각이나 소망 등은 최근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격무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면 정말이지 한 1년간 푹 쉬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정작 두어 달 쉬다보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는 얘기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예전에 한창 쪼들리면서 살 때 가졌던 소망이 있었다. 한 1년치 생활비를 아내에게 맡겨놓은 뒤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사람과의 연락 두절하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그림을 그리고 책도 읽으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생활이 편해지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그렇게 지낼 자신이 없다. 사람도 만나고 술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은거하면서 살고픈 마음은 아예 없다.

 

한 때의 생각이고 희망일 때가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따듯한 바람이 불다가 찬 공기 들어오면 움츠리는 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포근해지면 가슴을 펴는 삶이다. 하지만 이맘때 소양춘의 때, 추워지다가 잠시 포근해지면 생각이 바뀐 나머지 이제 시작될 본격적인 겨울을 봄의 시작으로 잘못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환율하락에 대해 

 

 

마지막으로 최근 원 달러 환율이 급격한 내림세를 보이고 있어 이 점에 대해 얘기해둔다. 바이든 당선으로 달러 약세를 예상하는 시장 전망 때문인데 저점은 달러 당 1065원 선까지인 것 같다. 하지만 늘 얘기해왔지만 우리 경제에게 있어 1104원 이하로 내리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럽다는 점 또한 함께 일러둔다.

 

입동은 헌 해가 죽는 때

 

이제 立冬(입동)이 지났다. 입동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한 해가 숨을 거두는 때이다.

 

해가 죽었다고 해서 바로 내다 버리진 못한다. 사람이 숨을 거두면 주변에 訃告(부고)도 보내고 시신을 수습해서 殮(염)을 하고 관에 넣은 상태에서 祭儀(제의)도 치르고 일정 시일이 지나면 산으로 가서 매장을 하거나 또는 화장을 하듯이 나름의 절차가 있다. 이처럼 입동으로서 해가 죽었다고 그냥 버리진 않는다. 나름의 절차가 있으니 3개월의 시일이 소요된다. 이에 그 모든 것이 끝나면 새로운 해의 탄생인 立春(입춘)을 맞이한다.

 

입동에서부터 다음 해의 시작인 입춘까지 3개월의 기간을 줄여 말하면 묵은해를 폐기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送舊迎新(송구영신)에서 送舊(송구)의 기간인 것이다.

 

 

주기적으로 시간을 폐기해야만 새 삶을 얻는다. 

 

 

歷史(역사)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발생한 사건의 기록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또 정기적으로 폐기하면서 살아간다.

 

이제 지난 일은 다 잊고 새 삶을 시작해보자, 과거는 지워버리고 새롭게 출발해보자, 우리들은 살면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고 또 해야 한다. 지난 일을 잊는다는 것, 과거를 지운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시간을 廢棄(폐기)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폐기야말로 그 자체로서 淨化(정화)인 까닭이다.

 

역사는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고 연속적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앞의 말처럼 사실 우리들은 시간의 연속성을 싫어한다. 시간이 연속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건 우리가 끊임없이 힘든 현실을 견디며 누추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까닭이다.

 

현실의 삶은 그 누구에게도 팍팍하고 감내하기 힘들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어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 현실의 삶이 즐겁냐고? 돌아오는 답은 결코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당신보다 더 나아보이는 그 사람의 삶 역시 힘든 현실 속에서 그리고 그 앞에서 간신히 견디고 버텨나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현명해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충고해준다, 安分(안분)하고 知足(지족)하라고, 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고 만족하면서 살라고 말이다. 그런데 글쎄 그게 그럴까? 듣는 순간 그렇구나 싶어도 돌아서면 즉시 당신 속에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이런저런 근심과 걱정이 옹골지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현실은 늘 우리를 배신하기에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 있어 현실의 삶이란 늘 기대는 배반당하고 소망에 비해 늘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다. 아울러 예기치 않은 불행이 불쑥 찾아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처럼 힘든 역경으로 얼룩이 진 현실의 시간은 해가 끝날 때마다 폐기하고 지워버려야만 새 꿈과 새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게 된다.

 

올 해 2020 庚子(경자)년, 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특히 자영업 하는 분들의 경우 더더욱 살 길이 막혀버렸는가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어서 이 지긋지긋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말해서 폐기해버리고 새해에 새 희망을 품어보고 싶은 것이다. 즉 시간의 更新(갱신)이야말로 그 자체로서 새 삶의 출발점이자 새 희망의 토대가 된다는 얘기이다.

 

새해 첫날이 되었다고 해보자. 엄밀히 얘기하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어제 저문 해가 한 바퀴 돌아서 또 다시 동녘에서 밝아올 뿐이다. 그냥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새해 새 희망을 이야기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까지의 시간은 묵은해, 우리가 폐기해버렸기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버렸기에 우리 모두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음이다.

 

 

시간의 폐기는 그 자체로서 종교인 것이니 

 

 

시간의 갱신, 낡은 해의 폐기를 통한 새해맞이, 사실 이건 근본에 있어 종교적 감성이고 그 자체로서 종교라 할 수 있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려면 일단 먼저 때 묻은 옷을 빨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를 새 옷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했고 승리 연설을 했다. 연단에 선 바이든은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청중들은 환호했고 함성을 지르고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실 이 역시 우리들 모두의 속에 자리 잡은 종교적 감성의 표출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 새 대통령은 새 희망을 제시했다. 지지자들은 그 연설을 들으면서 가슴 뭉클해했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역시 일종의 사회적 심령대부흥회였다. 낡은 정권의 시대를 폐기하고 새 정권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행사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은 남루해져간다. 나날이. 그리고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저번 대통령은 최악이었다는 얘기가 무성해질 것이다. 새 정권을 맞이하고 그를 통해 새 희망을 가져보려면 과거의 정권은 그 자체로서 積幣(적폐)가 되고 舊惡(구악)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나 반대 진영이라면 더더욱 천하에 몹쓸 정권이었다고 사정없이 斷罪(단죄)할 것이다.

 

 

묵은 시간은 언제나 적폐이고 구악인 까닭에  

 

 

과거가 구악이고 적폐로 단죄가 되어야만 다시 말해서 시간이 갱신되어야만 카타르시스 즉 淨化(정화)가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시작할 당시엔 언제나 새 시대를 열어가자고 했던 과거의 모든 정권은 나쁜 정권으로 전락한다. (물론 그 중의 최악은 가장 최근에 폐기된 정권이 된다.) 이 점에 대해 굳이 우매한 대중이라 비판할 것만은 아니다, 실은 그것 자체가 바로 송구영신을 통한 일종의 정화 작업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 주기적으로 시간을 갱신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의 삶, 현실의 팍팍한 무게를 견디어간다.

 

기독교의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주현절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과거를 폐기하고 새 시간의 시작, 그로서 새 생명의 시작을 뜻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묵은 시간의 폐기와 새 시간의 시작에 관한 종교적 감성은 기독교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종교적 의식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유교의 옛 경전인 禮記(예기)라든가 여타 경전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大學(대학) 속에 나오는 문구로서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뜻의 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역시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고대의 여러 종교와 신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하게 종교로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인들 사이에서 연말까지는 밀린 외상과 빚을 다 정리 결제하는 것 역시 새해엔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식이 그 밑에 놓여있다. 연말연시 보신각의 타종 행사 역시 지긋지긋한 묵은해, 흔히 하는 표현으로 다사다난했던 해를 보내고 새롭게 시간을 시작해보겠다는 일종의 半(반)종교적 의식이고 행사인 것이다.

 

 

경자년을 죽이고 새 해를 준비해보자. 

 

 

입동이 지났다. 한 해가 이제 사망했고 남은 일은 한 해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동시에 새해에 대한 기대가 벌써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 저 몹쓸 놈의 물건도 내년 그래 길게 봐서 내후년이면 없어지겠지? 하는 기대도 생겨난다.

 

올 한 해야말로 참으로 망쳤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새해에 대한 기대를 강하게 가지고자 할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새해는 언제나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우리 모두 또 다시 새로운 기대를 안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힘차게 도전해갈 수 있을 것이다.

 

 

한 해를 일생이라 여기면서 

 

 

나 호호당은 해가 지나면 그를 묵은해라 하지 않는다. 아예 前生(전생)이라 부른다. 그래야만 송두리째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해마다 동지가 되면 동해 낙산사 홍련암에 찾아가서 그 좁은 마당에 낡은 목숨을 내려놓고 다음 날 떠오르는 해와 함께 새 생명을 받아오는 의식을 십년도 넘게 치렀었다. 한때는 제자들도 함께 가기도 했다.

 

그냥 어영부영 대충 살다가 정작 죽을 날이 왔을 때 후회막급할 수 있으니 해마다 一生(일생)으로 해서 해를 보낼 때마다 반성하고 정리하기로 했고 새해는 새로운 삶으로 살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이니 실은 그게 나 호호당에게 있어 일종의 종교였던 셈이다.

 

이제 해가 죽었다, 우리 역시 올해의 묵은 삶과 작별을 준비하면서 또 다시 새해의 새 삶을 준비할 때라 하겠다.

 

강아지들과 아침산책을 나서니 하늘이 그러 푸르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靑藍(청람)의 하늘이다. 해의 활력을 뜻하는 수증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니 이제 해가 죽어가고 있기에 그렇다고 봐도 되리라.

 

수증기를 앗아가는 차갑고 건조한 북쪽 공기는 따라서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기가 건조하면 호흡기 질환이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19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도 같아서 염려가 된다.

 

지는 해 처량해서 

 

끝자락의 가을이 아침녘 내린 비에 젖어 凄然(처연)하다. 남쪽 창 맞은 편 산은 옅은 운무에 가려 푸르스름한 잿빛이고 그 위의 하늘 역시 구름에 가려 쥐색의 잿빛이다. 하늘과 산 사이의 먼 공간만 그나마 밝은 잿빛으로 빛나고 있어 때가 한낮임을 알리고 있다.

 

처연하다는 표현을 쓰고 나니 문득 입에 달라붙는 구절이 하나 있다.

 

 

도연명의 시 한 구절

 

 

秋日凄且厉(추일처차려),百卉具已腓(백훼구이비).

 

옮기면 “가을날 처량하고 매서우니 풀들은 이미 시들고 있구나,” 정도가 된다.

 

이 구절은 도연명의 시 맨 앞부분 구절이다. 오래 전 시의 結句(결구)가 마음에 남아서 전체를 암기했었는데 이젠 잊은 지 오래이다. 구글에 가서 앞부분 구절을 가지고 검색해보니 나온다. 고맙네, 구글!

 

시의 내용은 늦은 가을날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친구를 위한 송별의 자리에서 가진 아쉬움이다. 이런 스타일은 漢詩(한시)에 흔히 보인다. 다만 표현이 절묘해서 한때 기억하게 되었었다.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눈은 떠나가는 배를 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지만 결국 지금의 이 아쉬움은 세월 따라 변해가다가 이윽고 사라지겠지” 하는 표현이다.

 

그렇다, 당장이야 아쉬움이 크겠지만 그 또한 시간이 가면 어떤 형태로든 변하고 옅어져서 나중에 잊히게 된다는 표현이 당시 내겐 꽤나 인상 깊게 남았던 모양이다. 원문은 目送回舟遠(목송회주원) 情随萬化遺(정수만화유).

 

 

불행을 통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시인

 

 

도연명은 그 증조부가 陶侃(도간)이라고 하는 일대의 영웅이었다. 이 사람은 중국 삼국시대 이후 생겨난 사마 일족의 晋(진)나라가 내부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망하게 되자 그 일부가 양자강 남쪽으로 도망가서 세운 망명 왕조인 東晋(동진)을 건립할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망명왕조 동진은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인물의 증손자이니 도연명 역시 귀족 중심의 동진 왕조에서 한 자리 떵떵거리며 해먹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증조부 도간 자체가 출신이 한미해서 크게 공을 세웠어도 사후 그 후손들은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귀족문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게다가 증조부 도간이 비록 상당한 유산을 남겼어도 아들이 무려 열여섯, 게다가 으레 큰 아들이나 적자에게 몫이 가는 법이니 도연명 쪽은 거기에 속하질 못해서 전혀 물려받은 것도 없었다.

 

돈도 없고 지위도 없었지만 그래도 도간의 후손이란 점에서 그나마 조정에서 나름 보살펴준 것이 후미진 시골의 縣令(현령) 자리였다. 젊어서 나름 큰 포부를 가졌던 도연명은 급여가 적은 마당에 거들먹거리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사는 것이 싫어서 자리를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시를 지으며 살다간 사람이다.

 

이때 지은 시가 저 유명한 歸去來辭(귀거래사)이다. 나 돌아갈래, 하는 시.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철길 위에서 “나 돌아갈래,” 하고 외치는 그 장면과 대사 역시 결국 오리지널은 도연명인 셈이다. (명작을 만들려면 앞의 명작을 잘 살펴서 변용해야 하는 법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기에.)

 

 

007 제임스 본드, 사망하다. 

 

 

비가 계속해서 오락가락하더니 이젠 좀 그칠 내릴 모양이다.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은 11월 1일, 어제가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구나 싶다. 시월을 흐지부지 보냈다는 아쉬움이 가슴 속에 차오른다.

 

숀 코너리가 죽었다고 한다. 아침 텔레비전 BBC를 보고 있으니 그에 관한 보도가 시간을 메우고 있다. 그럴 법도 하지.

죽은 장소가 바하마 군도의 작은 섬 안, 초부유층만이 살고 있는 특별구역의 별장이라 한다. 돈도 엄청 벌었고 기사 작위도 받은 양반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 황량하고 차가운 구름 음울한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햇빛 많은 바하마의 별장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부러운 일이다. 게다가 그냥 잠자는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하니 그 또한 복이다. 고생 전혀 없었고 아들 말로는 한동안 몸이 편치 않았다는 것이 전부이다.

 

이렇게 편히 갈 수 있는 것은 사실 큰 복이다. 그런데 나 호호당은 편히 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알려드린다.

 

 

운이 좋아야 죽을 때도 편히 간다. 

 

 

숀 코너리는 운세가 한창 좋을 때 죽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을 때 가면 편히 가고 쉽게 간다. 3년 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본인은 가는 줄도 모르고 멀쩡히 계시다가 순간에 혼절하시면서 돌아가셨는데 역시 좋은 운이 남아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숀 선생은 1930년 8월 25일 저녁 6시 05분에 태어났다. 따라서 庚午(경오)년 甲申(갑신)월 丁未(정미)일 己酉(기유)시가 된다. 입추가 丁酉(정유)가 되니 1957년 그리고 60년이 흘러 2017년이 입추였다.

 

영국 영화계는 상당히 특이한 면이 있는데, 영화배우로 성공하려면 일단 출신이 중상층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국도 아니고 스코틀랜드, 게다가 한미한 출신인 그가 영국 영화계에서 성공하긴 실로 어려웠다. (유명한 영국 배우들에 대해 알아보면 거의 모두 집안 배경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으니 입추로부터 5년 뒤인 1962년의 일이었다. 흔히 ‘황금관운’이라고 내가 부르는 운이다. 미국 헐리우드 쪽에서 기획 중인 스파이 액션물인 007이란 시리즈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007 영화가 대성공을 보자 제작사 쪽에선 연이어 후속편을 준비했고 그 바람에 숀 코너리는 1971년에 개봉된 7편까지 계속 주연을 맡으면서 영화 속 인물 제임스 본드가 되어 세계적인 인기스타가 되었다.

 

숀 코너리는 인간적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다. 1987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보다 진지하게 영화 속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이다. 입춘 바닥 직전인 1986년에 개봉된 영화 “장미의 이름”에선 세속을 떠난 수도사의 모습을 참으로 훌륭하게 역할을 해냈던 숀 코너리였다. 그가 바닥이었기에 어쩌면 그런 역할을 더 잘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그는 2000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2006년 미국 영화연구소에 평생공로상을 수여받은 뒤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50녀의 연기 생활이었고 76세의 나이였다.

 

그 이후 그는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이번에 아주 편안하게 생을 마쳤다. 2017년이 또 한 번의 입추였기에 별다른 고통이나 고생 없이 수면 중에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돈도 실컷 벌었기에 바하마의 럭셔리 별장에서 멋진 여생을 누리다가 간 셈이다.

 

운이 좋은데 죽게 되면 아깝다는 생각, 더 살면서 좋은 세월 누리다가 가지 왜 일찍 가? 하고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항간의 말처럼 죽음도 상황이 좋을 때 찾아드는 것 역시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최후의 거인, 세상을 떠나다. 

 

 

그리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이로서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巨人(거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 현실이지만 그가 세운 공적과 업적은 역사에 남을 것이라 본다. 그가 키워놓은 삼성전자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이 명실 공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 까닭이다. 삼가 고인의 영면을 빈다.

 

코리 시거, 월드시리즈 MVP가 되다. 

 

 

다저스가 미국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는데 MVP는 팀의 유격수 코리 시거가 선정되었다. 류현진 선수가 있던 팀이라 꽤나 전에 소속 선수 전원의 생년월일을 살펴본 적이 있기에 이 선수가 대성할 것을 진작부터 내다보고 있었다.

 

1994년 4월 27일생이니 甲戌(갑술)년 戊辰(무진)월 癸未(계미)일이다. 사주 구성상 신경이 대단히 예민하다는 것, 특히 움직이고 있는 사물을 인식하는 동체시력(動體視力)이 대단히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세를 보면 2013년 癸巳(계사)가 60년 순환에 있어 氣(기)의 절정인 立秋(입추)가 된다. 입추란 운은 이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때, 그 사람의 존재가 주변에 부각되기 시작한다는 얘기이다. 코리 시거는 2015년 가을에 다저스 1군 선수로 선발된 뒤 본격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 해 2020년은 그에겐 秋分(추분)의 운이다. 추분은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 번 얘기했듯 登龍門(등용문)의 해인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최고 선수상을 차지했다. 그러니 향후 10년간 그는 최고의 활약을 보일 것이고 훗날 명예의 전당에 당연히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본다.

 

이번 월드시리즈를 지켜보면서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류현진 선수이다. 떠나지 않고 그냥 남았더라면 월드시리즈에서 당연히 좋은 활약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우승 트로피도 함께 들어 올렸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도 한화 소속이라 빛을 보지 못했고 미국 가서도 팀이 우승하기 직전에 이적했으니 아무래도 류현진 선수는 실력에 비해 상복이 없는 것 같다.

 

 

억새밭, 늦가을 정취의 꽃

 

 

창밖엔 늦가을의 정취로 가득하다. 어제 오후 나절 강아지 산책을 위해 아파트 인근의 양재천으로 나가보니 억새꽃들이 석양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억새는 逆光(역광)을 받을 때 가장 아름답다. 저 억새,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했을까!

 

 

두이노의 비가, 이맘때면 생각나는 시

 

 

언제나 늦가을 이 무렵, 10월 말 11월 초가 되면 나름의 감상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시인들의 시를 찾아서 읽곤 한다. 몇 년 전부턴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남긴 “두이노의 비가”를 이맘때 자주 읽게 된다. 여러 번 읽다 보면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다르다.

 

悲歌(비가)란 영어의 elergy 를 우리말로 옮긴 단어이다. 비탄이나 슬픔을 표현하는 시나 노래인데, 흔히 대중가요 제목에 용두산 엘레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릴케가 여자인 줄 알았다. 중간 이름이 ‘마리아’라고 되어 있는 까닭이다.

 

흔히 릴케는 애인에게 장미꽃을 꺾어주려다 가시에 찔려서 사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맨틱한 얘기이지만 백혈병을 앓고 있던 그였기에 면역력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균이 침투해서 죽은 것이라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과 운명 

 

 

이에 간단하게나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과 운명에 대해 애기해볼까 한다.

 

릴케는 1875년 12월 4일 늦은 밤 11시 넘어 태어나서 51년을 조금 더 살다가 1926년 12월 29일에 세상을 떴다. 사주를 보면 乙亥(을해)년 丁亥(정해)월 庚子(경자) 丁亥(정해)시이다. 60년 운세 흐름을 보면 1910 庚戌(경술)년이 立秋(입추)였고 사망한 것은 1926년이니 立冬(입동) 다음 해였다.

 

사주 상으로도 금방 혈액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울에 태어났는데 火氣(화기)가 대단히 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간 기능이나 심장,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다.

 

돌아가서 얘기하면 그가 남긴 ‘두이노의 비가’는 릴케 일생을 통해 최고 최후의 걸작이라 말할 수 있다. 1912년에 시작해서 무려 10년이 흐른 1922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완성한 시점은 그의 운세 상으로 霜降(상강)에 해당이 된다. 제목이 두이노의 비가가 된 것은 그가 이 시를 쓰기 시작한 곳이 당시 이탈리아 북쪽, 아드리아 해에 접한 두이노 성이었기 때문이다.

 

상강은 가을 추수를 하는 때, 릴케 역시 시인으로서의 일생을 통해 운세 상강 무렵에 이 시를 완성했으니 단연코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의 시를 소개하기에 앞서 간단하게나마 릴케의 삶과 운세 순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875년생인 릴케는 다섯 살인 1880년에 입춘 바닥의 운을 맞이했다. 부친은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고 소녀 감성의 모친은 그에게 여자아이 옷을 입혀 키웠다. 그러다가 부모님들이 불화로 이혼하는 바람(1884년)에 울적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허약한 체질에 감수성이 예민한 릴케는 1894년 立夏(입하) 직전에 어느 후원자의 도움으로 최초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제 시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입하는 땅속에서 싹이 나오는 때인데 이 무렵에 시집을 출간했으니 시인으로서의 운명이 정해졌던 것이다.

 

 

소만의 운에 귀인을 만난 릴케

 

 

그런 릴케가 시인으로 성장해감에 있어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 14세 연상의 ‘루 살로메’라고 하는 여성 작가이자 당대의 名士(명사)였다.

 

릴케가 그녀를 만난 것이 1897년이니 바로 운세 상 小滿(소만)의 때. 이제 새싹이 힘찬 성장을 시작할 무렵 만난 후원자였기에 결정적이라 말할 수 있다.

 

루 살로메는 대단히 분방한 지적 엘리트 여성으로서 저 유명한 니체라든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와도 연애를 했던 여성이다. 루 살로메는 릴케보다 14세나 연상이었기에 연인 사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나중에 그녀는 ‘릴케’란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다.)

 

4년 뒤 릴케는 그녀와 헤어진 뒤 연하의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루 살로메가 그에게 미친 영향은 평생을 두고 이어졌다.

 

릴케는 1903 癸卯(계묘)년 夏至(하지)의 운에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집에 머물면서 로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1910년 立秋(입추)의 운이 되자 릴케는 시인이자 작가로서 유럽 문단에서 명성을 얻었고 또 그로 인해 여러 부유한 귀족들의 후원을 많이 받기도 했다. 이 무렵 어느 후작부인의 초청으로 머물렀던 곳이 두이노 성이었기에 시 제목이 그렇게 붙여졌다.

 

그 이후 릴케는 또 다시 1911년 늦가을부터 1912년 5월까지 두이노 성에 재차 머물게 되었는데 바로 이때 열편의 ‘두이노의 비가’ 중에서 1편과 2편을 쓰게 되었다. 그가 시를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22년,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의 운세 霜降(상강)이었다. 일생에 걸친 천재시인의 모든 것이 ‘두이노의 비가’란 장편 시로서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26년 12월 29일에 시인은 숨을 거두었다. 51년의 생애였다. 운은 立冬(입동) 직후였다.

 

 

웅장하고 비장한 삶의 찬가 혹은 비가, 릴케의 시

 

 

그가 남긴 詩(시)들은 무척이나 난해하다. 다앙한 각도에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 상징적 단어들이 많다는 점 등 때문이다. 특히 ‘두이노의 비가’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세월을 두고 여러 번 접하다 보니 나 호호당은 그의 시를 나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즐기고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처음엔 그 의미를 잘 알 순 없어도 뭔가 웅장한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조용한 정적 속에서 갑자기 교향악단의 모든 연주자가 일제히 악기를 울리면 화들짝 놀라게 되듯 그런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인간 존재의 한계와 또 그 한계를 끌어안고자 몸부림치는 영웅의 悲壯美(비장미)같은 것으로 가득한 장편 시가 ‘두이노의 비가’이다.

 

열 개로 이루어진 장편의 시이지만 제1편의 첫 부분을 소개해본다. 마치 음악이 시작할 때의 첫 부분이 중요한 것처럼. (독일문학자이면서 시인인 김재혁이란 분이 번역한 것을 옮겨본다.)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여러 천사들 중에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따윈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처음 접했을 때 알듯 모를 듯 했고, 한편으론 황당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천사’는 기독교의 천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릴케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니 그냥 여러 神(신)들이라 보면 되겠다. 완벽한 아름다움 또는 완벽 그 자체를 릴케는 천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완벽함은 상대의 세계이자 불완전한 세속의 존재인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의 감정을 릴케는 표출하고 있다. 시는 삶과 죽음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늦은 가을이다. 곧 겨울이 온다. 독자들도 저마다 좋아하는 시 한 편은 외우진 못해도 기억하고는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찾아서 감상해보는 것 역시 늦가을의 향기로운 정취일 것이다.

보건당국의 수상한 변명

 

 

오늘로서 霜降(상강)이다. 새벽 무렵 강원도 산간 지방엔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갔다 한다.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다고 하니 마치 내 등줄기로 내려오는 느낌이다. 그리고 상강부터는 공기마저 건조해져서 코로나19와의 투쟁은 이제부터라 하겠다.

 

정부가 독감 백신을 가지고 수상한 짓을 하더니 상온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약효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궁색한 변명이다, 문제가 없다면 왜 냉장 보관을 하라고 하겠는가, 식약처와 질병관리본부에서 금년 7월 제시한 “백신 보관및 수송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도 콜드체인을 유지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탈이 나자 문제가 없다고 하니 거 참.

 

께름칙해진 나 호호당은 무료를 포기하고 4만원 주고 유료 백신을 맞았는데 정말 잘 한 것 같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무료 백신의 사망자가 30명을 넘어서고 있으니 이건 또 뭐야!

 

이에 보복부 장관이란 사람은 70대 이상은 하루에도 수 백 명 단위로 죽고 있으니 백신 탓이 아니라는 투의 변명을 하고 있다, 참으로 어설픈 논리. 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을 정도면 고령자라 해도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님, 내일 가시더라도 오늘 백신은 꼭 맞으셔야 합니다,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여러 정부 부처가 관련되어 있다는 말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결국 책임질 부서는 없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사람의 목숨이 이미 벌서 수십 명이나 희생된 판국에.

 

 

오늘의 농촌이 과거와는 달라서 

 

 

돌아가서 얘기이다. 상강이 되었으니 전원에선 가을걷이가 한창일 것이다. 해도 짧아져서 분주히 몸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 가을 수확이 얼마나 되는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모처럼 농민신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수확에 관한 소식은 없고 다른 것이 눈길을 끈다. “문재인정부의 고위공직자 1862명 중 38.6%인 719명이 농지 소유자”라는 경실련의 발표가 그것이다.

 

고위공직자 719명이 보유한 전체 농지는 311㏊로 1인당 평균 0.43㏊, 전체 농지가액은 1359억 원으로 1인당 평균 1억9000만 원이라 한다. 우리나라 농가 전체의 절반가량이 경지가 없거나 0.5㏊ 이하를 소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0.43㏊는 결코 적지가 않다는 경실련의 설명이다.

 

모두들 陶淵明(도연명)이란 말인가! 쥐꼬리같은 봉록을 받기 위해 지조를 굽히느니 차라리 전원으로 돌아가 농사나 짓겠다는 歸去來辭(귀거래사)를 남길 사람들도 아닐 것 같은데 왜 우리나라 고위직 공무원들은 농지 보유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지. 그저 땅이다 땅. 쩝.

 

기사가 전체적으로 가을 수확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고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거나 불공평하다, 아니면 땅 투기 의혹이다 뭐 이런 얘기가 대부분이다. 하기야 오늘날의 농촌이 과거의 농촌은 아니지! 싶어 홈페이지에서 빠져나온다.

 

 

이제 길고 긴 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상강부터는 기온도 내려가지만 밤 시간도 부쩍 길어진다. 밤 시간이 13시간을 넘어선다. 오후 6시 이전에 해가 떨어지니 일찍 퇴근해도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이미 어둠이 짙었을 것이다. 이제부턴 넉 달 동안은 어두운 밤의 날들이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우리는 보통 한 해를 사계절로 나누지만 세 개의 계절로 끊어볼 수도 있다. 10월 상강부터 2월 20일 경의 우수까지 4개월은 밤이 긴 계절, 4월 22일 경의 곡우부터 8월 23일 경의 처서까지 4개월은 낮이 긴 계절, 그리고 그 사이 두 달씩은 낮과 밤이 비슷한 계절로 하면 된다.

 

 

시방 우리 대한민국은 캄캄한 밤중을 걸어가고 있어서 

 

 

우리나라는 현재 60년 국운 순환에 있어 길고 긴 밤의 세월,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작년 2019년이 맹추위가 닥치는 小寒(소한)이었으니 춥고 밤도 길다.

 

운세 순환에 있어 추위라고 하는 것은 활력이 없다는 얘기, 열에너지가 저하된 시기란 뜻이다. 이를 현실에 적용해보면 성장이나 발전의 모멘텀이 없거나 약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강고하기 그지없는 기득권 노조로 자신들의 고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비정규직이란 것을 만들어놓고 유지하고 있으니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배달원들이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책임이 결국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취업도 어렵지만 소득 수준도 대단히 낮아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비전을 가질 수가 없다.

 

밤이 길다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춥다는 것은 활력이 없다는 것이니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춥고 어두운 밤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도박으로 내몰고 있는 세태

 

 

최근 젊은 세대들이 영끌로 집을 사고 빚투로 주식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주식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게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확률이 희박한 도박인 까닭이다.

 

돌이켜보면 금년의 증시는 3월 춘분부터 6월의 하지까지가 급반등 국면이었고 그 이후 9월의 추분까지는 상승폭이 완만해지다가 보합권 이른바 박스권 장세에 갇혀버렸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8월 13일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두 달 여 동안 갇혀있는 박스 장이다. 코스피는 그 사이에 등락의 폭이 10% 미만이고 코스닥은 12% 정도 된다.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는 것이 보합권 박스 장인데 실은 이게 개미지옥이다.

 

인기가 많은 주식의 경우 등락의 폭이 30% 정도로 심하고 게다가 내린다 싶어서 팔고 그랬다가 다시 오르면 따라갔다가 다시 내려서 되판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두 달 여 사이에 어느새 손실이 30-40% 에 달하게 된다.

 

저점인 3월에서 6월 사이에 증시에 뛰어든 개미라면 그나마 벌어놓은 것은 까먹고 있다 하겠지만 6월 이후에 증시에 들어온 이른바 ‘주린이’들은 이미 손실이 상당할 것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글에도 썼지만 추분 무렵에 거의 다 팔아 치우고 그저 현장감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금의 10% 정도만 가지고 놀고 있다. 잃어도 그만 따도 그만, 조금만 발을 담근 상태에서 관망하고 있다.

 

 

박스권 장세야말로 개미지옥인 것이니 

 

 

박스권 장세야말로 지옥이란 것을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뼈저리게 느꼈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냥 보고 있다가 나중에 방향이 확실해지면 그 때 천천히 들어가고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하는 분들에게 얘기지만 이 말은 절대 헛말이 아니다.

 

한 예로 ‘씨에스베어링’이란 풍력 관련 종목을 매수한 것은 6월 중순 경이었다. 9,800원에 매수해서 8월 14일 19,800원에 팔았고 다시 22,000원에 사서 9월 초 35,000원에 팔았다.

 

3월 저점에서 급반등할 때 시험 삼아 매수에 나섰고 5월 말 경 반등 장세가 확실해진 다음에 본격 뛰어들었다. 하지만 늦게 들어왔어도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주식놀이의 요령

 

 

주식과 같이 위험한 놀이를 할 때 중요한 점은 천천히 들어가고 남보다 한 발 더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일단 나왔으면 섣불리 다시 손대지 말고 지켜볼 줄 아는 것이 실은 실력이란 얘기이다. 늦게 들어가기, 빨리 나오기, 지켜보기,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어긋나도 수익이 대폭 줄거나 아니면 원금 손해를 보게 된다.

 

또 한 가지 얘기. 흔히 주식은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또 듣게 되는데 그건 웃기는 얘기이다. 우량종목을 사서 묻어두면 돈이 된다는 얘기도 흔히 하지만 그 역시 그렇지가 않다. 주식이란 변동성이 심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어렵다. 적절하게 들락날락해야 수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증시의 경우 미국 대선이 끝나고 연말 연초 무렵 또 다시 방향성이 위쪽으로 잡히면 그걸 확인하고 천천히 들어가면 될 일이고 만일 방향이 다시 아래쪽이라면 그냥 본연의 생업에 매진하면 된다고 본다.

 

 

한 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법인데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한 번 도박에 맛을 들인 젊은 층들이 과연 그런 절제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가진 것은 물론이고 빚을 내어 마련한 자금도 다 털리고 나중에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증시에 관한 얘기를 자주 올리는 이유 역시 이처럼 젊은 층의 증시 참여가 몹시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올 해 상강은 어쩐지 돌아가는 분위기가 적잖이 수상쩍다.

일설에 의하면 속초 위 고성군 화진포 바닷가에 있는 금거북섬, 금구도는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고성군에선 광광 진흥을 위해 섬 앞에 광개토대왕릉이라고 소개하는 팻말도 세워놓고 있다. 그렇다면 만주 지안시의 무덤은 그냥 공적비만 세워놓으았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아무튼 저 섬은 예사롭지가 않다. 인터넷에서 바다 풍경을 찾다가 만난 사진이고 그를 바탕으로 시원한 바닷가를 그려보았다.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