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가 사실상 없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

 

 

역사는 있지만 傳統(전통)은 거의 사라져 없는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가 그렇다, 대한민국. 전통이란 것이 거의 사라지다 보니 이젠 그 단어의 뜻마저 실은 모르고 사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물론 전통이란 말의 의미나 뜻에 대해 모두들 대충 대강 알고들 있다. 하지만 왜 전통이 있어야 했는지 왜 그걸 지켜가야 했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어제가 설날이었다. 몇 년 전부터 설이나 명절에 관한 뉴스를 볼 것 같으면 가족이나 친지간에 화기애애한 모습에 관한 것보다는 갈등에 대한 것이 더 많다. 고향집을 찾아야 하는 남편과 가기 싫은 아내 간의 갈등, 고향에 내려가면 취업이나 결혼 등등 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느라 스트레스만 받는다는 청년들의 이야기.

 

 

전통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전통과 관련해서 한 번 생각해봄직한 얘기들을 해보겠다. 사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지만 꽤나 무거운 주제인지라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 설을 계기로 힘을 내어본다.

 

먼저 전통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부터 한 번 살펴본다.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 되어 있다.

 

사전의 풀이는 4개의 의미 요소로 구성되고 있다. 집단이나 공동체라고 하는 전통의 주체가 있다. 다음으론 과거로부터 이어져온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이란 뜻이 있고 마지막으론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다는 말이 들어있다.

 

뜻을 알았으니 이제 이를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에 대해 적용해보자.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은 별개의 주체이다. 

 

 

주체인 집단이나 공동체란 측면부터 본다. 우리의 전통이라 하면 우리 민족이 가진 전통이 대상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가진 전통이 될 수도 있다. 한민족과 대한민국은 사실 다른 주체인 까닭이다.

 

우리 민족이라 하면 나름 유구한 역사 흐름을 가진 집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주체는 1948년에 헌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의 이념과 틀을 가지고 출발했기에 이제 겨우 72년을 조금 넘긴 신생의 주체이다.

 

우리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란 말인데 그 이전엔 사실 그랬던 적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였다.

 

엄밀히 말하면 헌법이 제정된 1948년 이전과 이후 사이엔 엄청난 단절이 존재한다.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한 지 겨우 72년 남짓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심지어 노비 또는 머슴 신분인 사람들도 있었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인해 법적으론 사라졌으나 완전히 없어진 것은 1950년 6.25 전쟁 이후였다.

 

게다가 우리 헌법, 즉 대한민국의 지도이념이자 나라를 이끌어가는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는 헌법만 해도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주체적으로 창안하고 다듬어낸 것이 아니라 서구로부터 수입되었다는 점이다.

 

서구민주주의를 기본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헌법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적 전통이란 것이 있다면 그 가장 오랜 淵源(연원)이라 해봐야 겨우 72년 6개월에 불과하다.

 

 

우리 겨레의 전통은 이어져왔지만 

 

 

물론 우리 겨레의 전통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어릴 적엔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란 말을 들었는데 최근엔 반만년이란 말마저 우리 헌법엔 빠져있다, 아마도 단군의 존재와 개국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겨레의 전통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나 호호당의 개인적 견해론 676년 통일신라의 출현을 우리 겨레의 시발점으로 본다.

 

이처럼 통일신라 시절부터 따진다 해도 지금까지 1345년이나 되었으니 오래된 민족이고 겨레라 봐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민족과 언어의 관계에 대해선 이 글에선 논의를 생략하기로 하자.)

 

그러니 그 긴 세월 사이에 많은 전통이 생겨났을 것이고 또 이어져왔을 것이 틀림없다.

 

통일신라 이후 중국의 여러 사상이 유입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유교와 불교, 도교 사상, 음양오행 사상들이 그것이다. 이런 외래 문물들이 그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우리 겨레 고유의 사상이나 풍습과 섞이고 혼합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으면서 시간을 두고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져왔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은 많지도 않고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란 점

 

 

관련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하고 알아보면 약간 변형이 되긴 했지만 그 출처는 기원 전 200년경에 저술된 중국의 회남자란 책이다.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엔 이 속담이 거의 귓전에 들리지 않는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이는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여성의 권리 문제에 대해 엄청나게 변화해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회남자란 책이 어느 시점에 우리 쪽으로 들어왔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통일신라 이후의 어느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앞의 속담이 우리의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른바 우리 것, 우리 쪽 ‘오리지널’로 알고 있는 수많은 금언과 속담들도 알고 보면 외래 사상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것이 대단히 많다. 수많은 전설 또한 그 원형을 살펴보면 시골이나 지방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중국이 오리지널이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만큼 우리 겨레는 이웃의 강국이자 대국인 중국 쪽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전통이라 해서 그것이 우리 고유의 자생적인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 또한 밝혀둔다.)

 

예전에 대중 인기가 엄청나게 많았던 고우영이란 만화작가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남긴 유작으로 ‘일지매’란 연재만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일지매가 우리 쪽 그러니까 조선 시대의 오리지널 설화로 알고 계셨다.

 

하지만 중국 것이다. 일지매 이야기는 임진왜란 이후 중국 소설이 조선시대 양반 계층 사이에서 그리고 나중엔 일반 常民(상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그 시절에 국내로 유입되었다. 제목부터 一枝梅(일지매)이고 매화 한 가지란 뜻이다. 저자는 중국 명나라 말기 베스트셀러 작가인 ‘능몽초’란 사람이고 그가 지은 단편소설 모음집인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란 책의 제39장에 일지매 얘기가 나온다.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는 것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 겨레 또는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에 그 사이에 수많은 방면에서 수많은 전통들이 만들어져왔고 이어져 왔다는 점이 중요할 뿐 그 중에 순수 우리 것이 어느 정도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말이 있긴 하지만 순수 우리 것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만도 아니란 점, 따라서 꼭 우리 고유의 것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를 바탕으로 전통으로 만들어 가면 되는 일이라 본다.

 

 

사실상 모든 전통이 사라지고 단절되었으니 

 

 

그런데 말이다. (이제부터가 이 글의 핵심 대목이다.) 우리 민족 혹은 겨레의 전통이란 것이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실상 거의 파괴되고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파괴되고 단절된 이유를 찾자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단절

 

 

첫 번째로 한국전쟁을 계기로 해서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사실상 몰락하거나 해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특히 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쪽의 대표적 기득권 계층이었던 전라도 지주계층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토지개혁이 그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 또한 복잡다단하고 문제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지주계층이 사라져버렸다.)

 

한국 전쟁 직후만 해도 우리 경제는 농업경제였기에 지주계층의 해체는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 재벌 그룹이 일시에 사라진 것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되겠다.

 

부를 가진 계층이 사라지면 그들이 누리고 즐기던 취향이나 문화도 사라진다. 대표적으로 판소리나 창을 포함해서 우리가 國樂(국악)이라 부르는 것이 그렇다. 오늘에 이르러 국가 보조금이나 지원이 없다면 벌써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대중의 수요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악 하는 예술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중의 수요를 만들어보고자 갖은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전통예술인 문인 수묵화 역시 실은 마찬가지이다.

 

그런 고급의 취향이나 문화는 과거의 엘리트 층, 즉 지주계층이나 벼슬을 하던 양반 계층이 누리고 소비하던 것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과거의 엘리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까닭이다.

 

 

경제구조가 단시간에 모조리 변했으니. 

 

 

두 번째 이유를 들어보면 우리 경제 구조가 불과 수십 년 사이에 획기적으로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1960년대 초반의 농업경제에서 겨우 20년 만에 공업경제로 변했고 다시 20년 만에 정보 디지털 경제로 전환해왔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엄청난 변화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한 나라나 민족 혹은 겨레는 보기 드물다. 그야말로 桑田碧海(상전벽해).

 

근대화를 이룩한 서구 국가들은 적어도 수백 년에 걸쳐 변화해왔고 미국 또한 200년에 걸쳐 변화했다. 이웃의 일본이 상당히 단기간이었지만 그 역시 우리에 비하면 훨씬 길고 아울러 저들 고유의 것을 포기한 게 그다지 크지 않다. 이웃의 중국은 청나라 말기부터 이미 상업경제가 꽤나 고도화되어가고 있었다.

 

경제는 먹고 사는 일이고 따라서 돈과 이익에 관한 일인데 우리는 그게 불과 수십 년 만에 송두리째 몽땅 변해버렸다는 점에서 전통과의 단절은 어쩔 수 없었다.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기에 

 

 

이제 마지막 요인을 얘기해보자. 바로 신생 대한민국, 1948년에 서구 모델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국가 이념인 헌법의 제정으로 그 이전의 통치나 지도 이념과는 철저하게 이별을 고했다. 이 점에 대해선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이 정도에서 일단 오늘의 글은 마무리한다. 생각은 두 번으로 나눌 예정인데 어쩌면 그 이상까지 이어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설인데 이런 글을 올리게 되니 독자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묘한 것은 설을 쇠다 보니 이런 글을 써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