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로 전통과 단절되었는가? 

 

 

앞의 글에서 우리 민족은 예전의 전통을 상실했고 단절했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이 여전히 전통이라고 인식하고 여기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도 들 것이다.

 

여전히 유교적인 효와 충의 관념도 남아있는 것은 무엇이며 절을 찾는 수백만 신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싶을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다. 그래서 답을 해야 하겠다, 그건 전통이 아니라 전통의 잔재라고 말이다.

 

먼저 유교부터 살펴보면 예전 시절에 유교는 그야말로 나라의 가르침, 즉 國敎(국교)였으니 오늘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유교는 사라지고 그저 묵은 동양철학의 일부로서 일부 대학의 인문학부에서 남아있다. 일종의 문화유적, 심하게 말하면 문화적 殘在(잔재)라 하겠다.

 

따라서 유교적 가치인 효라든가 충에 관한 관념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강도와 정도는 예전과는 비할 바가 없다. 그저 遺風(유풍)에 불과하다.

 

불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불교는 이미 조선시대를 통해 일종의 하위문화 정도로 격하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엔 심한 통제를 받았다. 현재 우리 불교의 주류인 조계종만 해도 그 명칭이 생겨난 것은 고려 시대이지만 그로부터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 아니다. 19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모든 절을 통폐합하고 나서 ‘대한불교조계종’이라고 새롭게 붙였다. (그 뒤에 대처승의 심한 반발과 법정 투정을 통해 태고종이나 천태종 등도 인정을 받았다.)

 

불교의 경우 종교이자 국가통치이념인 유교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새롭게 중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시아를 통틀어 기독교가 뿌리를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유일한 나라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한 가지만 지적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수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아시아 지역의 무수히 많은 나라들 중에 기독교(로마가톨릭과 개신교)가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필리핀의 경우 기존의 토속 신앙 위에 로마가톨릭이 덧씌워졌을 뿐이다. 일본에서 교회는 이국적 취향의 결혼식 장소로나 이용될 뿐이고 사회주의 이념의 중국은 기독교가 거의 없다, 다만 도교적인 관념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중국이다.

 

왜 우리 대한민국만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종교에 관해선 그다지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는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겠지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전통의 종교가 지녔던 가치와 권위가 사실상 사라져버렸고 여기에 6.25 전쟁을 거친 뒤 우리가 세계 최강국이자 선진국인 미국을 모델로 하는 발전해가는 과정, 즉 美國化(미국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종교가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슬람이 주류인 서남아시아 지역에 기독교가 들어갈 수 있었던가? 어림도 없는 얘기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인도 사상과 혼합된 이슬람이 들어가서 불교와 섞이긴 했으나 새로운 종교가 우리처럼 단시간 내에 들어와 자리를 확실하게 잡은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이전의 전통과 엄청난 단절을 겪었음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모든 면에서 미국을 모델로 미국화되고 있는 우리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미국화(Americanization)되고 있는 나라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젊은이들이 우스갯말로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르고 反美(반미)운동권하던 이들이 기득권이 되면서 자녀들을 대거 미국 유학을 시키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의 일개 주로 편입되지 않는 이상 완전히 미국화되진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방면에서 미국적 요소들이 가득 듬뿍 들어차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수학의 微分(미분)처럼 미국 쪽으로 무한히 수렴한다고 할까!

 

섹스는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엄청나게 강한 욕구, 즉 본능의 하나로서 모든 문화와 전통의 뿌리에 자리한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가 방영된 이래 우리의 성윤리는 사실상 미국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

 

예전에 ‘혼전 성관계’란 말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가십거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녀가 혼전에 섹스를 하면 이른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섹스와 결혼은 별 관련이 없게 되었다. 성 모럴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뀐 셈이다.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나날이 엄청난 변화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라면 좋은 게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변화는 그 자체로서 우리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변화 스트레스에 대해 이젠 만성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일상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일상으로 느낀다 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성이 되었을 뿐인데 이는 우리의 멘탈이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 몸은 정직하게 그 고통과 갈등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이번에 전통과 단절된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꺼내게 된 배경 역시 바로 이 대목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고 소비도 과거와는 비할 바 없이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구성원이 힘들어하고 갈등의 총량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까닭이라고 나 호호당은 보고 있다.

 

자고 나면 변화해있고 또 변화에 따라가고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겪는 갈등의 근원적인 이유는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 문제, 어려운 취업, 좋은 일자리의 절대 부족, 무지막지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상승, 정치적으론 극심한 진영 갈등과 투쟁 등등 당면한 문제점들이 태산과도 같이 산적해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어려움과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하기 보다는 그 바탕에 깔린 전통의 부재와 단절이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런데 말이다, 전통의 부재와 전통의 단절로 인해 우리가 심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어쩌면 독자들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나 호호당 또한 이 대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오래 전부터 이 주제에 대해 말하길 망설였다.

 

 

전통이란 결국 세월 속에서 잘 다듬어진 루틴(routine)이기에 

 

 

앞의 글에서 전통의 의미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얘기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해보자.

 

전통이란 것이 생기려면 그 이전에 모범적이고 준거가 되는 틀이나 式(식)이 있어야 한다.

 

틀이나 식은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령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가장 적합하다 싶은 방법이 제시될 것이고 그게 나중에 틀이 되고 式(식)이 된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해 대처하는 기준이자 표준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번 틀이나 식이 정해졌다고 해서 그게 영구적으로 반복되고 답습되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이 생겨나면 다시 그에 걸맞게 수정이 가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처음에 어렵사리 정해진 틀이나 식이라 해도 그것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새로운 요소가 가미되면서 세월의 경과와 함께 더욱 세련되어진다. 결국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어지다 보면 그게 훗날에 가서 전통적인 틀 또는 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니 그를 줄여서 전통이라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국가나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려면 법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법치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법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이전 오랜 세월 동안에 생겨난 전통적인 처리방법과 절차 등에 대해 그 국가나 사회가 명문화된 룰(rule)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도 실은 기본적으로 전통문화란 사실이다. 새로운 풍속이나 유행이 생겨나면 그를 문화라 부르진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과 세월이 흘러서 그게 나름 정착이 되면 新(신)문화라 부르고 그게 나중에 더 오래 되면 수식어 없이 그냥 문화라 한다. 이에 더 오래 되면 전통문화가 된다. (전통문화가 반드시 자생적으로 사회 내부에서 생겨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롭게 해법을 모색하다 보니 힘들기만 한 우리 대한민국

 

 

지금까지 전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을 했는데 그렇게 한 까닭은 전통이 없다면 다시 말해서 전통이 없거나 단절된 사회일 경우 생겨나는 모든 새로운 문제와 상황에 대해 준거가 되는 틀이나 식이 없다는 얘기가 되고, 그 결과 늘 새롭게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변화가 생길 때마다 문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름의 루틴(routine)이나 방법론이 없다면 그 사회는 그를 해결하기 위해 늘 엄청난 갈등과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또 누적될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사회이다. 전통이 없다는 말, 전통과 단절되었다는 말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검증되고 다듬어지고 확립된 좋은 루틴이 없다는 뜻이기에 그 결과 전 구성원이 더 많은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바로 우리가 그렇다.

 

다음 글에서 최종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