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이 되살아나서 

 

 

늦은 밤 창밖의 차갑게 얼어붙은 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오래 전의 기억 한 토막이 다시 떠올랐다. 늦은 봄 저녁 무렵, 바깥엔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방안은 더욱 고요해졌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어느 순간 깊은 상념에 들었다. 그러다가 빗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늦은 밤 시각이었다. 봄날이었지만 기온이 내려 약간 추웠던 몸의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게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아니면 더 이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저녁에 했던 생각들 중에 하나가 또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의 國運(국운)과 관련된 생각이었다.

 

 

丙(병)자가 머리에 오는 해마다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丙(병)이란 글자가 머리에 오는 해를 보면 나라의 활력을 확인하고 점검해볼 수 있다는 생각, 이에 오늘 다시 그 생각을 이어가 본다. 같은 생각을 시간 간격을 두고 또 다시 해보고 또 해보면서 생각을 다듬어가다 보면 훨씬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과거 흐름을 살펴보자. 10년 단위로 보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1966년 丙午(병오)년, 빈곤 국가에서 수출입국을 향한 몸부림이 있었으니 당시의 구로수출공단이 그것이다. 저렴한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가발에서 섬유 등 경공업 위주의 수출 기업들이 주로 활약했다.

 

1976년 丙辰(병진)년,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었다. 당시 재벌 기업들에게 대출 재원을 집중시켰고 산업은행이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에 대출이란 수출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만 주어지는 그 자체로서 특혜였다.

 

1986년 丙寅(병인)년,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이었다. 처음으로 무역 흑자가 달성되었고 이에 국내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증시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세가 오르기 시작했으니 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불패신화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부터 처음으로 우리 국민들도 밝은 내일을 전망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인 1987년 민주화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1996년 丙子(병자)년, 그간의 성과로 인해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달성되었고 그로서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풍조, 투자만 하면 성공한다는 분위기는 곧바로 다음 해인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2006년 丙戌(병술)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했다. 그 해 우리의 수출산업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전기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등 모든 면에서 일제히 약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이 심해지면서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되는 문제도 생겨났다.

 

2016년 丙申(병신)년에 이르러 급기야 우리 경제와 산업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강경하고도 완고한 기득권 노조로 인해 생산성은 떨어지고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었으니 이로서 양극화는 고착화되고 말았다. 아울러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고 그나마 일부 대기업들만 맹렬한 연구와 투자를 통해 약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우리 경제의 탄력은 사실상 고갈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증시는 2011년부터 2016년 말까지 장기 박스 장세를 연출했으니 실은 그게 한계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이니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본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대거 재정투입을 단행하기 시작했으니 그로서 국가 채무가 마구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 채무의 증가란 간단히 말해서 미래로부터 돈을 가불해 쓰는 방식이라 보면 된다.) 그 바람에 증시와 부동산이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 글로벌이 돈을 마구 찍어내었고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 역시 덩달아 재정투입과 금리인하 그리고 소규모이긴 해도 일종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이고 동시에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고 그로서 필요한 물자를 수입해 사용하는 철저한 교역 중심의 국가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수출입국을 지향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한미FTA를 결정지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적이 실로 크고 위대하다 하겠다.

 

 

2026 `병오년이 되면 어떨까? 

 

 

그런데 이제 다시 2026변 丙午(병오)년이 되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60년 전인 1966년엔 너무나도 자원이 없고 기술이 없어서 시골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수거해온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을 했던 나라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60년 사이에 크게 한 단계 도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기술도 있고 자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곤경에 처하는 것을 모면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무엇보다 전 글로벌이 그간에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경제가 정상화될 경우 금리를 올려 흡수할 것이기에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가자니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압력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양육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출산을 기피하는 심리와 더불어 양극화로 인해 젊은 층의 소득기반이 크게 위축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산업의 근본 경쟁력은 반도체 산업이고 여기에 신재생 에너지와 2차 전지 그리고 전기차 방면에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의 경우 아직 표준규격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향후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근본적인 실패야 없겠으나 도중에 상당한 진통이 수반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조선업의 경우 대표적인 경기산업이란 점에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 좌우된다.

 

향후 글로벌 경제는 상당 기간의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처리되어야 했던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고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 큰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2026년부터는 진짜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니  

 

 

따라서 2026 丙午(병오)년이 되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이긴 해도 여전히 우리 경제의 앞길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마도 과거 우리가 중화학 공업으로의 일대 전환을 도모했던 1976년 丙辰(병진)년으로부터 60년이 흐른 2036년 또 한 번의 丙辰(병진)년이 되면 경제 전반에 있어 거대한 변혁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에 앞서 2026년부터 2036년 사이의 10년 동안 경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면에서 수많은 구조조정과 변혁이 잇따르지 않을까 싶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국민연금이라든가 여타 연금들에 대한 개혁, 기득권 노조의 개혁 등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기득권 노조에 대한 개혁 없이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득권 노조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현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각종 개혁 아젠다들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낡은 틀에 얽매어 있는 현 정치권의 진영 구도 역시 대변혁이 수반되지 않겠는가 싶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이라는 하는 엄청난 우발부채를 안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증폭될 수 있는 과제가 북한 문제이다. 핵으로 중무장한 북한이기에 더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숙제가 되어 버렸다.

 

현제로선 별다른 방안이 없긴 하나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특히 중국 경제가 버블이 터지면서 좌초될 경우 기회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 경제의 붕괴 또는 침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되겠지만 말이다.

 

목하 “K형 성장”시대라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만이 아니라 기업들 또한 철저하게 양극화되고 있다. 같은 기업 내에서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의 경우 희망퇴직이 상례화되고 있다. 고용 시장 전반에 걸쳐 한파가 닥쳐오고 있다.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인해 아파트와 증시만 오르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이제 마치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이에 영끌과 빚투가 당연시되는 오늘이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때 역시 올 것이니

 

 

우리 금융시장에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2년 8월부터였다. 그러니 2022년이 되면 반대의 흐름, 즉 빠져나가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그러면 환율이 오를 것이고 금리도 불가피하게 올려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시대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증시와 부동산 역시 아래쪽으로 물꼬를 틀 가능성이 크다. 자칫 영끌과 빚투로 사들인 자산들의 하락이 있을 경우 문제는 일파만파로 커져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증시 상승과 부동산 앙등은 롤러코스터가 내리기 직전의 상황처럼 최고점으로 끌어올려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야말로 우리 앞에는 지금으로선 전혀 감도 잡히지 않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늦은 밤 시각까지 멍 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의 어느 봄날 바람 불고 비 내리던 날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하기야 쉬운 일이겠는가!

 

 

힘찬 선어처럼 뛰어오르는 증시

 

 

이 글은 며칠 전에 썼다. 오늘 증시는 또 다시 3000을 넘어서면서 펄펄 날뛰고 있다. 마치 폭풍 치는 회록색의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힘차게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우리 증시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말, 코리언 디스카운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 그야말로 풍성한 말잔치이고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그래서 웃긴다, 그냥 비정상적인 과열 장세가 이어지고 있을 뿐인데. 곧 조정이 올 것이고 그랬다가 또 다시 올라도 심하게 오를 것이다. 비정상인 까닭이고 훗날 내려도 너무 심하게 내릴 것이다. 일단 돈을 좀 벌고 볼 일이다.

 

(알림: 자연순환운명학 기초반 강좌를 공고했더니 혹시 거리두기가 연장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문의가 제법 있다. 일정을 연기하거나 그게 정 어려우면 일단 수강료를 반환한 뒤 다시 일정을 잡게 된다는 점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