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엔 책이 많다, 집에도 많다. 세어보지 않아서 몇 권이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예전에 한 번 세어보다가 지쳐서 그만두었다. 장마가 가셨지만 여전히 비가 내린다, 태풍 ‘마이삭’이 몰고 오는 비. 울적한 기분이 들어 작업실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빼들었다.

 

“全眞七子 全書(전진칠자 전서)”란 제목의 중국책이다. 오래 전 상하이의 신화서국에서 샀던 기억이 난다. 그러자 책을 산 뒤 부산한 거리를 조금 걸어서 난징동루의 동쪽 끝, 와이탄과 만나는 지점에 있는 고급호텔 화평반점에 가서 필레미뇽 스테이크를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의 스테이크 향이 코끝에서 살아난다. 이젠 먼 옛 일, 그 때가 1996년이었으니 아련하다.

 

책은 전진칠자와 그 스승인 왕중양의 얘기들을 담고 있다. 왕중양은 중국 고대 新(신)도교의 개창자로서 전진파를 열었는데 그에겐 일곱 명의 뛰어난 제자 道士(도사)들이 있었으니 전진칠자라 한다. 그 중 한 명인 장춘진인 구처기는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에도 등장해서 현대에 와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長春眞人(장춘진인)은 물론 실존 인물이다. 당시 중국 북방을 정벌하던 몽골의 대 영웅 칭기즈 칸을 만나서 不死(불사)는 불가능하고 그저 살생을 금하고 덕을 베풀면 편히 오래 살 수 있다는 솔직한 말로 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사람이다. 영원한 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니 그 호가 참으로 멋지다.

 

왕중양도 그렇고 구처기를 포함한 전진칠자들 모두 도를 닦는 道士(도사)였을 뿐인데 훗날 무협작가들에 의해 엄청난 무공의 고수로 재탄생된 셈이다.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앞으로 또 다시 이런 책을 진지하게 접할 날이 있을까? 생각하니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내 서가엔 중국에서 나온 책들, 영문판 책들 번역판이지만 큰 도서관이 아니면 쉽게 만나기 어려운 책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젠 좀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젠가 아들 녀석에게 야, 이담에 내가 가고 나면 이 책들 보관 아니 보존해 줄 거니? 하고 물었더니 아뇨!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여전히 많이 사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지런히 폐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냥 넋 놓고 살 때가 아니라 언제든 가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까닭이다.

 

서가로 다시 눈을 돌리니 ‘헬레니즘 철학’이란 놈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의 앤소니 롱이란 학자가 쓴 책이다. 그래 좋다, 헬레니즘 그리고 철학, 그런데 어쩌라고, 이제 인생 다 살았다 해도 되는 내가 오래 전 철학자란 사람들이 생각하고 다듬어낸 생각들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그 책 역시 이젠 이별해도 될 것 같았다. 창밖에선 여전히 빗소리가 들려왔다.

 

철학, 젊은 날엔 꽤나 진지하게 접했던 대상이다. 하지만 오래 살아보니 저런 것들, 저런 사람들의 생각을 몰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철학이란 그저 옛날 명석했던 사람들의 생각이고 그런 것의 群集(군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대략 20년 전부터 들었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생각들과 접하게 된 뒤론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애당초 철학이란 것은 그 자체로서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그의 말은 나름 충분히 옳다. 철학자는 자신이 쓰는 용어부터 그 의미가 규정되어 있지 않기에 심하게 얘기하면 헛소리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

 

가령 자유에 대해 논한다고 해보자. 철학자들 저마다 생각하는 자유란 말이 의미하는 바가 같을 순 없다. 그러니 자유에 대해 논의하려면 먼저 자유의 개념에 대해 합의를 보아야 할 것이고 또 그러다 보면 자유를 규정하는 단어들 역시 또 다시 합의를 보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그 어떤 것도 규정할 수 없고 따라서 논의할 수가 없게 되니 철학은 애당초 성립 불가능이란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저 말은 고대 힌두철학의 한 갈래인 니야-야(Nyāya) 학파의 因明(인명)철학과 유사한 맥락이 있다. 불교철학과도 연관이 깊은데 소개하자니 독자들 머리만 아플 것이고 해서 예를 하나 들겠다. 여기에 소가 있다고 하자, cow 말이다. 니야-야 학파에선 소는 소가 아닌 것을 배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소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지를 자세히 따지고 들면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소는 토끼라든가 양, 염소 등등의 것들이 아닌 것을 지칭하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나아가서 가령 진리라든가 실체 그리고 보편자 등과 같이 서양 철학에서 중요시여기는 개념들은 그저 인간의 환상이고 착각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이어진다. 즉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같은 얘긴 죄다 헛소리란 것이다.

 

대충 동의한다, 머리를 끄덕거린다. 그러니 내게 있어 인류 역사에 있어 존재했던 수많은 현자들과 철학자들의 말들은 그저 그들이 남긴 좋은 수필, 즉 에세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아끼던 책들을 이젠 좀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좀 더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것들을 내가 지니고 끝까지 보관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생각이 이런 식으로 미치자 서가에서 책들을 대략 수 십 여권 뽑아내었다. 잘 하면 책꽂이 하나 정도는 여유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해마다 2월 하순의 우수가 되면 책을 버린다. 벌써 몇 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아낀다고 여기던 책들은 절대 폐기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런 생각들이 일종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끼던 책들마저 이젠 필요 없게 여겨진다.

 

지금 저 책들과 이별을 하면 나중에 또 찾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은근히 생긴다. 뭐 또 다시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구해도 더 이상 입수할 수 없는 책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뭐.

 

창가에 다가가 비 내리는 거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모든 생각은 장마가 길고 비가 많아서 생긴 울적함 때문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다. 멜랑꼴리라고 하는 놈 말이다. 가끔 살다보면 이 한 몸뚱이가 그저 구차하게 여겨질 때도 있는 법이니 책 정도야 능히 그럴 법도 하다 싶다. 하지만 이까짓 몸뚱이 하다가도 코로나19에 걸릴 까봐 조심하게 되는 우리 아니겠는가.

 

사실 난 이제 수시로 바뀌는 내 기분이나 정서 같은 것은 스스로도 신뢰하기가 그렇다. 오늘 기분이 나쁘다, 또는 더럽다 해도 내일이면 또 바뀔 수 있는 것,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이 또 그렇다.

 

처음에 책들을 확 버릴 생각으로 마구 뽑아내었지만 이윽고 생각을 돌려서 며칠 더 두기로 했다. 바닥에 어지럽게 벌려 놓을 순 없어서 구석으로 밀었다. 그간 아끼던 것들이니 내일 기분이 바뀌면 또 모를 일이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운명의 입춘 바닥을 지내오면서 한 가지 나아진 점도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을 많이 한 뒤에 결정을 하고 또 결정을 내렸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진 계속 해간다는 식이다. 그때그때의 분위기나 정서에 휘둘리지 않는다. 의지가 강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워낙 내 스스로 나에게 속아봤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를 믿지 않는다.

 

밤이 되니 비는 더 내린다. 굵어졌다가 가늘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줄기차게 내린다. 기온도 많이 내리고 있다. 오늘밤 그러니까 태풍 지나가는 아침엔 기온이 21도까지 내리고 이후로도 줄곧 내려서 이제 열대야는 끝이 났다.

 

이제 열흘 정도만 지나면 여름 내 무성하던 연밭도 시들 참이다. 넓적한 잎사귀 간 곳 없고 앙상한 가지만 수면 위에 그림자 비치는 처량한 연밭에 내리는 가을비도 계절의 한 정취인데 말이다.

 

윈디(windy)에 들어가 보면 태풍 마이삭이 지난 뒤에도 하나가 더 온다고 나와 있다. 태풍 3연타인 셈이다. 그러니 맑은 날씨는 다음 주 월요일 이후에나 볼 수 있겠다.

오늘 글은 문자 그대로 雜文(잡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