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동남쪽 산마루를 올라오는 햇님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예수님이 태어난 날, 저 해는 따라서 예수님인 셈이다. 사실상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는 광경이다. 문득 "의사 지바고"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죽기 얼마 전에 남긴 '동지'에 관한 시가 생각난다.  잘 이해할 수 없었으나 뭔가 이해한 것도 같았던 시였다. 찰나와 영원이 마치 하나인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하는 그런 시였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삶을 모르기에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음을 모르기에 삶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 하지만 다 지우고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온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기를! 

 

 

동지 지난 아침 일출시각, 동남쪽 창이 눈부시다. 내가 글을 쓰는 방이다. 문이 얼어서 열리지 않았다. 보다가 창위에   Baby  Sun ! 이라고 손가락으로 썼다. 그래 이제 새해가 시작되고 있잖아, 다시 한 번 열심히 달려보자고, 하면서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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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 해가 탄생했으니

 

  

한 해의 가장 어둔 곳이자 깊은 深淵(심연)인 동지가 지났다. 늙은 해는 깊은 연못에 들어가 죽었고 베이비 해가 태어났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인데 서구에선 동지와 크리스마스를 하나로 묶어서 취급한다, 그냥 미드윈터(Midwinter)이고 크리스마스 연휴는 사실상 동지부터 시작된다.

 

중앙아시아의 탱그리 문화에서도 동지를 해가 새롭게 태어난 날이라 해서 날도칸(nardoqan)이라 하는데 여기서 ‘날’은 우리말의 해를 뜻하는 날과 같은 말이다. 그런가 하면 고대 로마에선 農神祭(농신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해서 가장 큰 축제 명절이었다.

 

크리스마스하면 예수님이 태어난 날 즉 성탄절이지만 그 역시 동지에 이르러 베이비(baby) 태양이 태어난다고 여기던 오랜 문화적 전통의 연장선에서 생겨났을 뿐이다. (예수님의 진짜 생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 동지와 오늘을 비교하니 해시간이 1분 더 길다. 일출 시각은 7시 43분으로 같았는데 일몰이 오늘 5시 18분으로 어제보다 1분 더 늦다. (초로 따지면 1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내겐 참으로 힘들었던 한 해

 

 

나 호호당에게 2023년은 나름 많이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60대 중반을 넘으면서 생겨난 허리 디스크와 이석증, 어지럼증, 피부의 이상한 자극 등등 몇 가지 증세로 인한 통증과 스트레스, 여기에 담배 금단 증세까지 더해져서 꽤나 우울하고 힘들게 시간을 보냈다. 간단히 말해서 사는 게 苦役(고역)이었다.

 

참으로 강건하던 내 몸이었고 지칠 줄 모르던 체력이었는데 삽시간에 이렇게 망하다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순 없으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실 금연한 것도 그 대책 중의 하나였지만 당장은 힘든 게 더 많았다.)

 

 

궁리 끝에 두 가지 방법을 택했으니 

 

 

결국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명상 또는 수련이라 부르는 것, 국내에선 단전호흡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것의 기본은 道敎(도교)의 內術(내단술)인데 이를 수련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겨울이 되어 아파트 단지 외곽을 돌아가면서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이 그것이다. 시작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20일 경의 霜降(상강) 때부터였다. 단지 안의 고양이들은 캣맘들이 있어서 괜찮다. 그래서 새들에게만 내년 초여름 5월 小滿(소만)까지 6개월간 모이를 주기로 했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모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겨울엔 새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다. 

 

기본은 보리쌀과 쌀, 해바라기 씨앗, 이렇게 3가지를 섞어서 준다. 여기에 먹다 남은 마른 음식이 있으면 함께 넣는다. 대략 2.5 킬로그램 정도의 분량을 들고 나가서 뿌려준다. 하루 비용이 대략 1만원이 조금 안 되는 것으로 계산하는데 담배를 끊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갈음이 된다.

 

매일 해가 뜰 무렵에 나가서 모이를 주었는데 최근 강추위 탓에 아침 10시에서 정오 사이에 주는 것으로 루틴을 변경했다. 그런데 이게 왜 우울증에 대한 방책인가? 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뭔가를 먹이고 돌보는 일은 즐겁고 우울한 삶에 큰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새들은 기억력이 좋다, 동네 까치나 까마귀는 물론이고 비둘기들, 그리고 이름 모르는 여러 새들까지 해서 모두들 모이 주는 나 호호당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까치 한 마리가 망을 보다가 비닐 지퍼백에서 모이를 한줌 집어서 정해진 장소에 내려놓으면 깍-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치고 그러면 순식간에 까치들이 날아든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모이를 놓아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후 비둘기가 날아들고 거의 동시에 숲속 가지에서 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와 박새,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이 날아든다. 까마귀도 온다.

 

아파트 외곽 산책길로 해서 1.5 킬로미터에 걸쳐 모이를 뿌려주면서 돌아온다. 그러면 수백 마리의 새들이 연신 소리를 지르며 내려앉아선 열심히 모이를 쪼아댄다. 그 바람에 나 호호당은 우면동 아파트 단지의 새들 양아버지가 되었다. 흐뭇하다, 내가 너희들 애비다, 많이 먹어라, 내 새끼들아!

 

수련은 내 몸을 養生(양생)하는 방법이지만 새들 모이 주는 것 또한 나 자신을 넘어선 생명 전체의 관점에서 그를 더하고 늘리는 방법이니 그야말로 좋은 양생법이라 여긴다.

 

2024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동갑내기인 집사람 말로는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그간 뭘 했다고 벌써 70이 되었을까?

 

 

이젠 진짜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며칠 전 주중에 아주 추운 날 대학 과동기 모임을 했다. 한 친구가 말하길 우리 나이에서 기대수명은 82세라는 것이었다. 현재 만으로 68-69세 정도니까 13-14년 정도가 餘生(여생)이란 얘기였다.

 

살아봐서 익히 알고 있지만 10년 세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니 그날 동창회 모임에 나온 모든 멤버들은 이미 날 받아놓은 거나 다름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 호호당 역시 말로는 운세가 받쳐주고 있으니 아흔까지 살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갈 수 있느냐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소식을 들어 알게 되었으니 불교학교의 훌륭한 학자이신 김성철 교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타계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 양반 아직 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면서 생일을 검색했더니 1957년생, 나 호호당보다 2년 후배인 셈인데 참 일찍 떠났구나 싶다.

 

생년월일을 검색해보니 1957년 11월 8일이라 되어 있다. 그 나이면 아마도 음력일 것 같아서 사주를 뽑아보니 그럴 것도 같다. 일단 심장 기능이 좀 약해 보인다, 그리고 2014년이 입춘이란 점이다. 그러니 올 해는 춘분 직후이니 능히 갈 법도 하고 또 심장마비도 납득이 간다.

 

아쉽긴 하지만 몸 고생 많이 하지 않고 순간에 떠났으니 한 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선생, 잘 가시오! 윤회를 부정하면 불교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주장하신 분이니 다시 좋은 곳에서 태어났겠지요.

 

 

그럼에도 새로운 여정을 기대하는 호호당

 

 

사실 나 호호당은 2024년에 대해서 적지 않은 기대를 품고 있다.

 

1994년 4월부터 시작된 오랜 방황의 여정이 이제 내년 4월이면 30년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제 또 다른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새 해는 이미 동지 다음날인 오늘부터 이미 준비(?) 또는 시작되고 있다.

 

부디 독자님들과 독자님들의 가정에 안녕과 행복, 새로운 희망이 가득차기를 바라면서 연말 인사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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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지, 7시 43분에 베이비 햇님이 떠오르고 있다. 그 여린 빛이 거실 벽에 와 닿고 있다. 벽시계는 8시 4분. 오른쪽 그림은 오래 전에 그린 그림이고 그림자는 당연히 사진을 찍는 나 호호당이다. 새빛이 내게 새삶을 준비하라고 권유해오고 있다. 그래 또 살아봐야지, 힘을 내야지 한다. 

 

 

지난 밤 자정 넘은 시각, 거실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게 동지 전날의 밤이다. 동지는 죽음의 가장 깊은 곳 즉 深淵(심연)이니 2023년의 호호당은 이제 죽었고 2024년의 호호당을 준비해야 하겠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존재가 비정상이고 無(무)가 정상으로 느껴지니 내 살아있음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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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부터 내리는 눈. 이번 겨울 첫눈이다. 눈 내리는 거야 좋지만 오후부터 기온이 급강하해서 근 열흘간 강추위라는데 저거 다 얼어버리면 골치 아프다. 반갑지 않은 눈인 셈이다.  그레도 첫눈이라 예쁘긴 하다. 마음이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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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짓달 해는 동남쪽에서 올라온다. 사진 속 건물의 아주 오른 쪽이다. 여름 하지 때엔 해가 건물의 아주 왼쪽에서 오르는데 말이다. 해뜨는 하늘 높이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방향은 동해쪽. 일본이나 테평양 방향. 저 비행기는 화물기일까 아니면 중국이나 더 서쪽에서 날아오는 여객기일까? 를 보면서 비행하는 기분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제 곧 2023년의 묵은 해를 보낼 참이다. 올 해 여러 모로 부진했다, 담배 금단 증세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독자님들의 많은 성원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지낼 수 있었다, 진심 감사 인사 올린다. 고마웠습니다! 새 해에는 훨씬 활발하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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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보낸다는 것

 

 

이제 한 해가 다 갔다. 2023 癸卯(계묘)년은 곧 과거의 年表(연표)가 될 것이고 2024 甲辰(갑진)년이 진행형이 될 참이다.

 

젊어선 한 해가 간다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 해가 갔다? 뭐 그게 어떻다고, 또 새해가 올 거 아냐? 그냥 이어져가는 거지 정도로만 치부했다.

 

중년이 되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게 되었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들어가네, 중년이 되면 뭐 좀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더니 현실은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허송세월했구나 하는 자괴감 같은 심정도 들었다. 또 한 편으론 뭐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인생 다 그렇지 하면서 드라이한 생각, 마른 감정도 가져보았다.

 

 

삶의 햇수가 좀 되다 보니 

 

 

이제 나 호호당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칠십이다. 옛날엔 70까지 사는 일이 드물다 해서 古來稀(고래희)라 할 정도였으니 일단 長壽(장수)한 셈이라 하겠으나 오늘의 기준에서 얘기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냥 좀 나이가 있는 아저씨 정도(?).

 

하지만 내 스스로 느끼기로 이젠 적지 아니 살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가령 호호당이 죽었다 하자, 그럴 것 같으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저 양반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네, 아쉽다 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나 평균의 개념이 적용되는 법이니 90까지 살았다 하면 장수했다고 할 것이고 80 중반에 운명하셨다 하면 살만큼 살다 가셨다 할 것이며 70 중반이면 좀 빠르다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시대가 가니 사람도 떠나네 

 

 

글머리에서부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연말이 가까울 무렵 갑자기 생각하지 않은 訃音(부음)들이 많아서이다. 얼마 전 20세기 후반의 글로벌 세계를 만들어낸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헨리 키신저 박사가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키신저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대 후반 중국을 개방시켜서 미국 쪽으로 끌어들인 중미동맹을 성사시켰고 그를 통해 1991년말 소련의 붕괴를 유도해내는 커다란 업적을 만들어낸 핵심 당사자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 이제 세월이 가도 많이 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로벌화란 것을 들여다보면 결국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인 동맹체제로부터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미중 관계는 삐걱대면서 또 다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향해 움직여가고 있으니 달라진 세상인 것이고 이에 옛 사람인 키신저는 떠났다.

 

그런가 하면 나 호호당의 청춘 시절 국내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쳤던 미국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클래식인 “러브 스토리”의 남자주인공 “라이언 오닐”이 8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러브 스토리, 에릭 시걸이란 작가가 쓴 소설이었는데 히트를 치자마자 즉각 영화로 만들어져서 또 다시 초대박이 난 작품이다. 영화 제작비의 무려 62배에 달하는 수익을 만들었던 영화인데 그도 그럴 것이 두 대학생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영화인 탓에 특별히 들어간 비용이 없는 저렴한 영화였다, 그런데 엄청나게 흥행했으니 초대박이었다.

 

라이언 오닐이 죽었으니 순애보의 러브 스토리도 끝이 났다. 이 또한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고 있다.

 

글로벌 구도를 스케치했던 희대의 전략가 키신저가 죽었고 청순한 사랑의 대명사였던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이 죽었으니 마치 나 호호당이 살았던 시대가 이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서 이제 나 호호당도 멀지 않아 옛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약간 서운한 감정.

 

 

자승스님, 그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런가 하면 진짜로 충격적인 일은 자승스님의 돌연한 타계이다.

 

종단 쪽에선 소신공양으로 정리하고 있으나 그게 참 어이가 없다. 그 것의 옮고 그름을 떠나서 요사채에 휘발유를 두르고 불을 붙여서 목숨을 끊었으니 무섭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저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반야심경에선 不生不滅(불생불멸)이라 해서 생사란 원래 없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지만 현실의 세상은 어딜 가나 죽기 아니면 살기의 아귀다툼과 이전투구란 식으로 해석이 되니 처절한 심정마저 든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감히 판단하기도 어렵고 그저 며칠간 먹먹할 따름이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서 생년월일을 찾아보니 나무위키에 1954년 4월 23일이라 되어 있고 춘천시 출생이라 되어 있다. 그 연도면 음력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렇게 검색해보니 甲午(갑오)년 己巳(기사)월 辛巳(신사)일이 된다.

 

음력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2001년이 입추였을 것이니 秋分(추분)인 2009년에 총무원장에 취임했고 또 재선되어 2017년까지 재임한 것이 된다. 역대 총무원장 중에서 최고 실세였던 분이 갑자기 무슨 사유로 저처럼 가야 했을까? 그저 올해 2023년은 자승 스님의 운세에 있어 冬至(동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인가? 그간 무엇을 구했으며 이제 와서 달리 구할 것이 없다는 저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스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치 쪽 특히 좌파진영의 날선 비판도 많다. 그간 잘 몰랐지만 스님이 평소 그쪽과는 친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무튼 우리 사회는 종교계에도 날카로운 진영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생사 없는 곳이 없다는 스님의 말이 실감이 간다.

 

그런데 스님을 다비했더니 푸른 옥구슬과 같은 사리가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삶은 거친 압력 속에 놓여있기에 

 

 

하지만 자승스님의 선택은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여전히 아쉽고 실망스러운 바가 있다. 우리들이 기독교든 불교든 그 어떤 종교에서든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합리성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인 까닭이다. 더불어서 최근 우리 사회의 종교계 인사들이나 종단이 정치적 좌우 이념의 싸움터가 되고 있는 것 역시 대단히 실망스럽다.

 

종교의 근원적 역할은 우리들에게 위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왜냐면 삶의 현장은 늘 거친 압력 즉 暴壓(폭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그를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영위하려면 우리들은 늘 다양한 압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친 삶의 현장을 지키고 또 이어가려면 다소 근거가 희박하더라도 그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을 지녀야만 한다. 동시에 우리 서로가 힘들 때마다 위안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이 있어야만 삶의 거친 압력으로부터 견디고 또 다시 내일을 기약할 수가 있다.

 

 

해를 보낸다는 말, 다시 새겨보자. 

 

 

헌 해를 보낸다는 말, 그 말 속에는 묵은해를 보내면서 맞이했던 모든 어려운 일들과 좌절된 희망. 또 그로 인한 상처들도 함께 실려 가기를 기원하는 바람이 깃들어있다.

 

그래야만 새해에는 또 다시 말끔하게 언제 힘들고 아픈 일이 있었을까 싶은 멀쩡한 표정과 자세로 새로운 한 해의 기원과 희망을 다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만 

 

 

올 한 해는 다를 거야, 아니 달라야 해! 하는 다짐과 기원 말이다. 물론 그 다짐과 기원은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또 다시 변색되고 빛이 바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늘 어떤 지점을 기점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어려선 잘 모르겠지만 철이 들고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한 번 주어진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삶의 경륜이 생기고 쌓이다 보면 막연하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하고 기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닌 가장 강한 힘이라는 사실, 아울러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이 유지되는 원동력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올 한 해 나 호호당으로선 여러모로 힘든 해였다. 건강 문제로 인해 담배를 끊었는데 그 금단 증세가 실로 엄청났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저하되면서 심한 우울증도 함께 왔다. 50년을 피워온 담배였으니 그걸 그만 두는 것이 결코 만만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껏 금연을 유지하고 있고 아마도 끝내 금연에 성공할 거란 예상을 해본다.

 

올 겨울 보내고 내년 봄이면 다시 상담 사무실도 낼 생각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글도 자주 쓰고 그림도 열심히 그려볼 생각이다. 나 호호당 또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하고 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삶이 이어지는 한 말이다.

 

 

독자님들에게 감사 인사 드리면서 

 

 

내년에는 독자님들과 그 주변 그리고 가정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송년의 인사를 마친다. 올 한 해 많은 점에서 부진했지만 그럼에도 독자님들의 지지와 성원, 메일을 통해 보내오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있었다,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뿐이다.

 

여수를 다녀왔다. 장소는 일반 관광객들이 몰라서 찾아가기 어려운 화양면 서쪽 여자만 쪽 포구이다. 해가 서쪽 바다로 떨어진 직후, 5시21분이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돌아오는 나 호호당의 실루엣을 여수의 지인이 순간 멋지게 포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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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밝았지만 실은 아직 어둡다. 노출과다로 처리한 것이고 아직 땅엔 가로등불이 훤히 커져있다. 해뜨기 25분전의 모습이다. 초겨울의 아침답게 건물에서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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