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강변, 해질 녘이다. 낙동강 상류, 오래 전이다. 아마도 청량산 자락이 물과 만나는 어느 곳이었다. 그저 황홀해서 바라보다가 미처 사진을 찍지 않고 돌아온 적이 있다. 물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고 해는 방금 산마루를 넘어간 때였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기억의 기묘한 집합체, 따라서 저 강과 가을 산 역시 나의 일부가 되어있다. 아직도 저 곳에 가면 저렇게 남아있을까? 다소 변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때의 산과 강은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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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이 모일 것이니 대박 나겠네요! 

 

 

천화동인 화천대유, 이제 이 문구들은 바야흐로 전 국민의 상식이 되게 생겼다. 周易(주역)에는 64 개의 점괘가 있는데 그 중에서 13번째가 천화동인이고 14번째는 화천대유이다. 모두 주역의 대표적인 吉卦(길괘)이다. 점을 쳐서 이 괘를 얻으면 아주 길하다는 말이다. 잘 되시겠네요!

 

먼저 그 뜻부터 잠깐 알아본다.

 

天火同人(천화동인)은 드높은 하늘 아래 밝게 빛나는 불(태양)이 있으니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넓은 들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어 큰일을 성취한다, 험난한 일을 치를지라도 무리가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火天大有(화천대유)는 하늘 위로 높이 불(태양)이 올랐으니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늘이 때에 맞추어 호응을 하니 존귀한 자리에 오르게 되고 中道(중도)를 얻어 크게 얻을 것이란 의미를 갖는다.

 

두 괘를 합쳐서 설명하면 어딜 가도 뜻밖의 동지들을 만나게 되니 그들이 모여들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할 것이며 마침 時運(시운)도 따라주니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이란 말이 된다.

 

이를 예컨대 대통령 선거라 치면 많은 득표를 통해 당선된다는 말이 된다.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지주 대신에 일을 관리하는 '마름'만 해도 무려 천 억을 먹었다 하니 

 

 

그리고 돌아가는 판을 보니 크게 해먹기 위해 여야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보상을 해주고 입을 막은 뒤 ‘누군가’ 벌린 프로젝트이다. 야당 의원이 50 억을 가져갔고 모 여당 의원의 자녀는 아파트 분양 등등 흘러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니 또 다른 정치인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다.

 

관련 변호사만 해도 무려 천억을 먹은 뒤 미국으로 잠적했다고 하니 그 ‘누군가’가 가져간 돈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각자 생각할 몫이다.)

 

참 웃긴다, 조국인가 하는 양반,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빚을 졌다고 실토한 그 양반은 블라인드 펀드인가 뭔가를 하다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인 윤석열씨에게 뒷덜미를 잡혔고 그 결과 윤석열씨는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뛰고 있다. 그 펀드 역시 사전에 봉쇄되어서 그렇지 이번 천화동인 화천대유 펀드와 같은 성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탈 없이 잘 되었으면 그 역시 수천억은 大有(대유)했을 것이니, 화천대유할 뻔 했던 것이다.

 

 

해 먹는 게 장땡, 불변의 진리란 말인가! 

 

 

이젠 양심이고 도덕이고 윤리, 이런 것들에 대해선 유권자들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현 정부 들어 이어진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학습 효과가 생겨서 만성이 된 탓이라 본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런데 뭘 굳이 신경을 써! 하는 것 같다. 그저 내 수중에 생기는 게 있으면 그 자를 찍어줄 심산인가 보다.

 

대통령께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선언하고 보장했으니 이젠 그렇게 되었다 치고 일단은 내게 유리한 자를 택해야지 하는 대선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예전에 “해먹는 게 장땡”이란 말이 있었는데 그게 좀 바뀌긴 했다. 해먹는 게 장땡이긴 하지만 그 판에 나도 국물 한 숟가락은 조금 먹어보자는 식으로. 나라꼴이 실로 우습게 되어간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호호당 역시 내년 3월 대선에 대해 흥미가 많다. 하지만 누가 되느냐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어느 누구가 되느냐에 따라 펼쳐질 상황이 많이 다를 것 같아서 그게 흥미롭다는 말이다.

 

낭만파의 윤석열이냐, 개천용인 이재명이냐? (아무래도 이낙연이나 홍준표는 지금 노이즈를 일으키고 있을 뿐 내년 대선의 결선 주자는 아닌 것 같지만 모를 일이다. 그 또한 지켜봐야 한다.) 다만 모든 것이 흥미롭기 그지없다.

 

속내를 밝히자면 나 호호당의 진짜 관심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점에 있지 않다.

 

 

이제 586 정치인들은 물러갈 것이니 

 

 

진짜 관심은 이제 민주화운동권 세대, 87 민주화 세대 정치인, 흔히 586 정치인들이 이제 물러갈 때가 되었는데 그게 어떤 과정을 밟으면서 퇴장하게 되는 걸까? 하는 점이다.

 

 

우리 정치를 되돌아보면 

 

 

이에 우리의 과거 정치를 한 번 되돌아보자.

 

이승만 대통령, 미국을 우리의 후원세력으로 끌어들임으로서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 우리 경제의 발전과 민생 복지의 구체적인 틀을 초석 위에 얹었으니 이 두 분은 우리 현대사는 물론이고 우리 국운의 향후 흐름에 있어서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혁혁한 영웅이다,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1987년의 민주화는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찬란한 한 순간이었다.

 

1987년의 직선제 개헌은 김영삼과 김대중이란 두 분의 위대한 민주 투사, 그들의 노력과 군부 집권에서 민권 이양의 결단을 내린 노태우, 이 세 분의 업적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민주화로의 이양을 강력하게 압박했던 미국의 공로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바로 오늘날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린 87 민주화 세대가 있다.

 

87 민주화 세력 혹은 세대는 그로서 그 이후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동력이 되었으며 그것이 최초로 구체화된 것은 2000년 초반의 노사모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말이다.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古色(고색)이 蒼然(창연)하다.

 

노무현이야말로 87 세대의 진정한 리더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추천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3당 합당에 반대해서 독자의 길을 가는 결단력을 보여주었으며, 호남 지역을 발판으로 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선 전 근대적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각을 세웠다가 야권분열을 정리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과 합세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부산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결과 낙선했다.

 

하지만 그 決氣(결기)야말로 ‘바보 노무현’의 등장이었고 ‘영웅 노무현’의 탄생이었다. 그 결과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팬클럽인 ‘노사모’가 등장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2002년 연말 대선에서 영웅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이로서 군부 독재와 3김의 시대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열린’ 정치를 하자고 했고 모두가 ‘우리’가 되자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당명이 그것이다.

 

열린 정치란 아군과 적군이 오로지 이기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생각이 다를지라도 끊임없이 평화적으로 논쟁하고 타협해가면서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도 결국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노무현은 이제 정치란 투쟁을 止揚(지양)하고 타협을 통해 주고 받으면서 결국 하나이자 우리가 되는 大乘(대승)의 정치를 志向(지향)한 인물이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뒤 야당이 쓸데없이 시비를 걸어오자 ‘정 그러면 우리 권력을 나눕시다, 聯政(연정)을 합시다,’ 하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미 기가 빠지고 그저 출세나 노리는 야당 정치인들은 기겁을 해서 이게 무슨 함정이지? 하면서 받아줄 배짱마저 없었다. 난 그 이후 여태껏 당시 야당과 그 후신인 국민의 힘 모두를 배알도 없고 거세된 내시환관의 무리로 여기고 있다.

 

87 민주화 세대는 노무현의 이상을 따라 정치권 안으로 들어왔고 권력을 잡았다.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될 것임을 굳게 다짐하면서 말이다.

 

 

권력의 단맛에 취한 586 정치인들 

 

 

그런데 말이다. 권력이란 어지간히 굳은 심성의 소유자가 아닌 한, 사람을 타락시키는 모양이다. 권력을 행사하고 그를 통해 단맛을 보던 그들이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놓게 되자 변해버렸다. 이상과 열정은 잃어버리고 그저 복수욕과 권력욕만 남은 모양이다. (역사가 늘 그러했기에 특별히 87 정치인들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대목에서 약간 비약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분량 관계상 생략한다.)

 

현재 우리 정치의 주역이자 기득권은 87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본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의 등장이 바로 87 민주화 세대의 종말점이라 여긴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아니었고 87 민주화 정치인들은 이제 우리 역사와 정치의 발전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저 기득권이 되어 逆行(역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9년 여름의 ‘조국 사태’였다.

 

 

자연순환의 도식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라 도식을 제공하면 이렇다.

 

60년 순환에 있어 15년은 한 마디이자 한 계절이다.

 

1987년 386 민주화 세력의 등장, 15년이 흘러 2002년으로서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함께 민주화의 완성, 15년이 흘러 2017년으로서 87 정치인들의 역할 종료.

 

1987년에서 2017년까지 세어보면 30년이다. 30년은 60년 한 순환주기의 절반이기에 生(생)과 成(성), 消(소)와 滅(멸)의 4단계 과정에 있어 두 번째와 세 번째인 成(성)과 消(소)에 해당이 된다. 그러니 이제 滅(멸)의 단계로 접어들 것이니 그게 2017년이다.

 

아니, 현재 시퍼렇게 살아있는 87 정치인들을 두고 滅(멸)의 단계라 하니 어리둥절하실 수 있겠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여간해선 속내를 밝히지 않는다. 스스로 왕따 되는 일이니.)

 

하지만 지금 남아서 시퍼렇게 활동하는 저들은 혼백이 날아간 뒤 남은 形骸(형해)에 불과하다. 그리고 저 형해들은 1987년으로부터 36년이 흐른 2023년이 되면 순식간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공을 세웠고 그 보상도 받고 누렸으니 이제 물러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간 수고 많으셨다.

 

국민의 힘, 더불어민주당, 모두 향후 10년도 못 가서 해체될 것이고 그 빈들에 새로운 풀과 나무가 들어설 것이다.

“안락사 시킨다는 말을 들었던 것인지 몰라도 내가 그만 눈을 뜨고 말았지, 그래서 지금껏 살아 있는 거요.”

 

콜택시를 타고 귀가 중이었다. 나 호호당은 택시를 타면 기사 분에게 말을 잘 건다. 종일 운전 하느라 지쳐서 무표정해진 기사 양반의 기분 전환이 목적이다. 그래야 거기에 몸을 실은 나 호호당도 무사할 것이니.

 

기사 분이 세상 참 더럽다 하면 네, 더러운 세상 사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한다. 세상 썩었다 하면 네, 그래서 저는 악취 때문에 마스크를 꼭 하고 다닙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란 말씀, 하고 동조한다. 여당을 지지하면 네, 맞습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식으로 맞추어주고 반대로 여당과 대통령을 까면 그럼요, 아주 죽일 놈들이지요, 하고 맞장구를 친다.

 

오늘 그 분은 연세가 여든 둘이라고 했다, 저 옛날 4.19 혁명이 있었던 해부터 택시 보조 운전기사로 출발했다고 했다. 택시 운전 경력이 그렇다면 무려 60년이 넘었다는 얘기. 대단하지가 않고 ‘대다나다’.

 

옛 시절 여의도에 아파트란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 조용기 목사가 교회당을 세우던 얘기, 그러다가 조용기 목사가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는 얘기 등등 이어지다가 갑자기 그런데 말이오,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아무런 소용 없습디다, 하시는 것이었다.

 

왜요? 하고 물었고 이에 오늘의 주제에 해당되는 얘기가 시작되었다.

 

“11 년 전이었오, 동생들과 제주도로 놀러갔는데, 난 생전 생선회라는 것을 먹질 않는데 동생 가족들과 다 함께 어울리다 보니 먹지 않았겠오, 그런데 그리고선 바로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 실려 갔지 뭐요, 나중에 비행기에 실려 서울로 왔다고 합디다, 무려 100일 이상 의식 없이 지냈지 뭐요.”

 

“난 기억도 없지만 의사 놈들이 매일 촬영하느라 내 몸을 이리저리 싣고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말이요, 이상하게 죽지는 않더라는 거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나셨습니까? 하고 물었지만 이미 기사 분은 자신의 얘기에 취해서 내 질문 따윈 들을 생각도 없이 그냥 혼잣말로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난 그저 아, 네, 아, 네, 하면서 듣고만 있었다.

 

“당시 난 몰랐지만 의사 놈들과 동생들이 합의를 본 거요, 안락사로. 나중에 동생들에게 따졌더니 의사 얘기가 환자분께선 전혀 고통이 없으실 거라 해서 그냥 동의했다는 변명인지 해명인지, 그러는 거 아니겠오, 뭐 이해는 가지만 말이유.”

 

“그런데 말이오, 의식이 없던 내가 어떻게 그 얘기를 들었던 모양인지 안락사하기로 날을 잡은 날, 그러니까 거사일 날 아침에 내가 그만 눈을 뜨고 말았던 거요.” 그러면서 기사 양반은 크게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히히히, 핫하하! 웃기는 일이지 뭐요.”

 

순간 생년월일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어르신,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뜻밖에 왜요? 그걸 알아서 뭐 하시려고, 하더니 뒤이어 바로 1940년 6월 26일이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음력이시죠? 하고 확인을 했더니 그야 당연하지요, 했다.

 

어르신 혹시 태어난 시각도 아십니까? 하니 정확하진 않아도 새벽녘이라 하던데, 왜 사주팔자 같은 거 볼 줄 아시유?, 이에 나는 아니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는 사이에 난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어 만세력을 확인했다. 최근에 장만한 스마트폰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1940년 6월 26일 寅(인)시 정도라 하면 庚辰(경진)년 癸未(계미)월 甲戌(갑술)일 丙寅(병인)시 정도가 된다.

 

척 봐서 2004년 甲申(갑신)년이 입춘 바닥이니 2010년은 官運(관운)의 바닥, 불연 사고로 세상을 떠날 운이다. 예전 같으면 저승사자 만났다. 아니, 하느님 곁으로 갔다.

 

그래서 사고가 났던 달을 물어보니 9월이라 했다. 庚寅(경인)년 乙酉(을유)월, 월운 또한 바닥에 怯財(겁재)운, 딱! 이다. 제대로 가는 운이 맞다, 그런데 의식만 잃고 죽지 않았다.

 

원인을 물어보니 간과 신장 기능이 급성 마비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의사 놈들 말이 그렇다고 했어, 개새끼들, 저들이 뭘 알고 하는 말인지 나 원 참.”

 

“100일 이상 자빠져 누웠는데 실컷 검사만 하다가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의사 놈들이 판단했다는 거야, 치료비가 계속 들어가니 미안했던 모양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를 안락사 시키기로 결정했는데 거행 당일에 내가 눈을 뜨고 말았어!” (다시 한 번 기사 양반의 호탕한 웃음.)

 

“근데 말이야, 치료비만 1억2천이 나왔어, 그 바람에 졸지에 집을 팔아 갚아야 했어, 퇴원한 뒤에도 계속 약을 먹느라 또 1억 이상 나갔어. 뭔 놈의 약값이 그리도 비싼지, 도둑놈 새끼들. 에이 씨! 집 팔아서 남은 돈마저 역시 홀랑 날아가고 말았어. 지금 겨우 전세 살아, 겨우. 에이 씨. 문재인 저 놈은 집값만 올리고 말이지.” (문재인 대통령 또 욕을 먹는다.)

 

“그런대로 회복하고 나니 또 문제야,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겠수, 배운 거라곤 운전질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요즘 젊은 것들은 택시 안 해, 배달, 뭐라더라? 라이더? 그게 돈이 된다고 해서 택시 자리가 다시 나더라고, 그래서 여태 택시하고 다니고 있지 않겠수.”

 

크크크, 계속 웃음이 나왔다. 어르신, 교회 다시 나가시지 그래요, 했더니 “아니 무슨 놈의 교회, 그렇게 열심히 돈을 갖다 바쳤어도 봉변을 당하고 집 한 채 전 재산 홀랑 날려먹었으니 내가 왜 교회를 나갑니까, 나가긴 무슨.”

 

어르신, 생각해보세요, 돈은 잃었어도 목숨을 건졌지 않습니까? 그거 다 하느님께서 특별 서비스를 한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넌 있다가 오너라, 하고 말입니다.

 

“여보슈, 그 바람에 내가 아직도 운전질 하느라 이 개고생이요, 개고생. 나이 여든 둘에 말이오.” (난 왜 이럴 때 으레 개가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난 예뻐 죽겠는데.)

 

나는 다시 유쾌하게 웃으면서 그래도 그게 남는 장사 같은데요, 제 생각엔 말입니다, 했더니 그 양반 답하길 하기야, 뭐 그렇지, 살았으니, 쩝.

 

아직 건장해보였다, 허리가 여전히 꼿꼿했다. 운전대를 말아 쥔 주먹도 큼직한 것이 타고나길 강골이었다. 90은 찍어보셔야죠, 하고 말하니 나도 그럴 생각이오, 90 한 번 찍어보고 갈 생각이오, 그래야 본전은 뽑지 않겠오, 안 그래요? 하는 대답이었다.

 

속으로 추산을 했다. 이 분, 아마도 빠르면 2028년이고 대충 2030년에 가실 것 같구나 싶었다. 2028년이면 여든 아홉이고 2030년이면 아흔 하나. 부디 소원대로 아흔 넘어서 가시길, 하고 속으로 기원을 올렸다. 하느님, 마, 그 정도로 해주시죠, 교회 안 나간다고 삐지시지 마시고, 그간 마이 무따아입니까, 네?

 

정리해본다.

 

그 양반, 입춘이 2004년이었으니 2010년이면 죽을 운이었다. 그런데 타고난 체질이 강골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하느님께서 봐주셔서 그런지 100일 이상 코마(coma)에 빠졌다가 의식을 되찾아 살아났다.

 

요금이 자동결제라서 내리기 직전 현금 2천원을 지갑에서 꺼내어 드렸다. 이거 팁이 아니라 祝壽(축수)!, 오래 사시라고 제가 드리는 겁니다, 했더니 아, 네 고맙습니다, 선생께선 하느님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했다. 크하핫! 감-사합니다, 하고 답례하고 내렸다.

 

겨우 2천원에 그런 말을 들었으니 이거야말로 대박 남는 장사! 흥겨워서 담배 한 대 빼어 물고 동쪽 하늘의 달님에게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나가는 꼬마 계집아이 둘이 앗, 담배연기 독가스! 도망가자! 하면서 나를 스치고 멀리 달아났다. 이건 또 뭐야? 하느님 격으로 승격했다가 순식간에 독가스 흩뿌리는 死神(사신)이 되고 말았으니, 미국 의사 놈들과 보험사 사기꾼들이 담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몰아세운 거 아닌가 싶다.

여전히 동풍이 불어 하늘은 맑기만 하다. 아직도 뭉게구름 일었다 지고 습기 머금은 구름들은 무한한 톤의 그레이로 물들고 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의 경계는 유난히 희고 밝게 빛난다. 저 청람의 하늘은 무한의 공간을 등에 엎고 있을 것인대 무한이란 물건은 우리가 감히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경탄하면 되리라. 추석 연휴 동안 "호텔 델루나" 정주행하느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추석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들락거리는 걸 보면서 저 달이 장만월의 한맺힌 그 달인가 싶어서 한참을 번갈아 보았다. 부는 바람에 머리 풀어내리고 난간에 기댄 채 호로병의 술을 넘기는 장만월, 참으로 멋지다. 장만월을 만들어낸  아이유도 대단하다. 끝까지 바른 길을 택하고 걸어가는 구찬성도 대단하다. 환타지는 늘 리얼리티를 이긴다. 오늘밤 마지막 회를 다 보고 나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생각이다. 독자들에게 약간 미안해서 드리는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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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가을, 아니 꼭 그렇지 않다, 아직은 낮으로 약간의 더위도 있다. 며칠 사이 태풍이 지나간 뒤라서 하늘이 아주 맑고 공기도 신선하다. 여전히 동풍이 불고 있어서 그렇다. 저게 어느 날인가 서풍 그리고 서북풍으로 바뀌면 탁하고 매캐해지겠지. 메이드 인 차이나 먼지바람이 가득 불어오겠지, 봄까지. 일몰 직전 혹은 직후였다. 거리는 사진처럼 어둡지 않았다. 하늘에 조리개를 두었기에 마치 밤인양 느껴진다. 장소는 나 호호당의 작업실 앞이다. 현재를 즐기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 서녘으로 슉-하고 넘어가는 해가 뿌리고 가는 빛 알갱이들의 저 황홀한 놀이, 일몰 직전 혹은 직후의 저 광경은 그 순간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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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도전장

 

 

2006년 11월 중국은 글로벌 패권에 대해 대단히 수줍고 얌전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무척이나 샤이(shy) 했다. 대단히丙戌(병술)년 己亥(기해)월의 일이었다.

 

그 달 13일부터 24일까지 중국 국영방송 CCTV는 大國崛起(대국굴기)란 제목의 12부작 다큐를 하루 한 편씩 방영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그게 저들에 대한 도전장이란 것을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졌다. 당시 오바마는 중국에게 G2란 훈장을 달아주면서 협조를 요청했지만 무참하게 거절당했다. 중국은 그저 받을 것을 받았다는 식이었고 이제야말로 좀 더 본격적으로 패권에 도전해볼 만한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시진핑의 헛된 꿈, 중국몽

 

 

수줍었던 중국은 2013년 시진핑이가 권력을 잡으면서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중국의 꿈, 즉 中國夢(중국몽)을 구현해보고자 한다고 했던 것이다. 과거 중화제국이 천하에 군림했던 과거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그게 처음엔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내세웠던 정치적 수사 또는 명분 정도였을 가능성도 있다. 폼 좀 잡아보느라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를 마오쩌뚱이나 덩샤오핑 급으로 격상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2017년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란 명분을 내걸더니 ‘이게 나의 생각이니 잘 학습하라고’ 했다. 그리곤 급기야 2018년엔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天子(천자)가 되었고 황제가 된 것이다.

 

천자가 되었으니 이제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天下(천하)에 군림해야 마땅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런데 과거 천하와는 달리 오늘날의 천하는 글로벌, 스케일이 많이 크다. 미국도 유럽도 모두 들어간다.

 

하지만 시진핑은 어렵더라도 갈 길은 가야 한다는 신념 또는 妄念(망념)을 품고 그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전 글로벌 상에서 중국이 군림하고 자신이 그를 통치해야 한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곧잘 저렇다.

 

 

도전에 대한 응전

 

 

미국이 중국의 속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차린 것은 중국이 2006년 11월 수줍은 도전장을 내민 뒤 5년이 흐른 2011년 무렵부터였다. 그 무렵부터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더니 2016년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에 본격 활용하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 민주당은 월가의 금융계와 밀착되어 있었고 월가는 중국 비즈니스에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기에 대중국 견제심리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예로서 힐러리만 해도 월가 친구들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챙겼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요란스레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했으나 별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이 있었으니 이제 전 미국이 당리당략을 떠나 중국의 도전을 꺾어놓아야 한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점이다.

 

 

메인 게임의 서막이 오르다.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편해졌다.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어젠다가 아닌가, 참 가지고 놀기 좋은 일이다. 바이든은 중국 문제를 명분으로 골치 아프던 아프간에서 철군할 수 있었고 이에 치밀하고도 확실한 중국 죽이기 전략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앞글에서 얘기한 내용이 그것이다.

 

올 해는 2021년, 2006년으로부터 15년이니 60년 순환에 있어 1/4, 즉 한 계절이 지나 이제 메인 게임의 서막이 올랐다.

 

나 호호당은 이번 미중 간의 전쟁에 대해 그 성격을 冷戰(냉전)도 아니고 熱戰(열전)도 아닌 暗戰(암전)이라 규정한다. 조용하고도 비밀스런 전쟁이라 본다.

 

미중 간엔 무역량도 많고 자금의 흐름도 엄청나기에 화끈하게 한 판 떴다간 미국이 승리한다 해도 주변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본격적인 화끈한 전쟁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과거 미소 간의 냉전처럼 진영을 짜고 서로 교류도 하지 않으면서 핵미사일만 잔뜩 쌓아놓고 쬐려보면서 여기저기 소규모 대리전쟁만 벌였던 스타일의 전쟁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국 편에 확실하게 섰다. 그럼에도 중국과 무역을 활발하게 한다. 일본도 그렇고 호주도 그러할 것이며 모두가 그렇다. 그러니 냉전은 절대 아니다.

 

 

패권의 조건

 

 

또 한 가지 특징은 미국은 동맹국들을 우르르 거느리고 게임에 임하는 데 반해 중국은 사실 동맹국이나 꼬붕이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협력하긴 해도 속으론 아래로 본다. 북한 역시 중국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잘 해야 힘없는 파키스탄 정도가 굳이 따진다면 꼬붕이다.

 

覇權(패권)을 영어로는 헤게모니(hegemony)라 한다. 어떤 무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를 통솔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고 또 통솔자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중간 집단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규나 다툼이 잦아지고 또 그를 정리하지 못하면 결국 그 무리는 흩어지거나 소멸한다.

 

국제사회에서의 패권이란 것 역시 이런 식으로 보면 크게 무리가 없다. 헤게모니를 쥔 나라와 그와 협력하는 소수의 강국들이 존재한다.

 

 

깜냥이 되지 않는 중국

 

 

그런데 이제 중국이 지구촌의 통솔자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통솔자의 자격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통솔자가 되려면 무리의 생계 그리고 안전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냥 힘이 세다고 해서 군림할 수 있진 않다. 그건 양아치일 뿐이다.

 

그런데 보면 중국은 大國(대국)이긴 하지만 실은 다른 나라들에게 봉사하는 하청국가란 사실이다. 수출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는 패권국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수입대국만이 패권국이 될 수 있다. 시장을 열어주어야 알아서 온다. 그리고 그 수입을 감당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다른 곳으로부터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 식량에서부터 사료, 철광석과 원유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와야 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원은 수출을 통해 만들어야 돌아가는 경제이다.

 

사실 중국이나 우리나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다만 우리는 패권 같은 거 꿈도 꾸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패권국이 될 수 있을까? 베풀어도 툭 하면 욕을 먹는 게 세상인데 베풀기는 고사하고 필요하면 구걸해서라도 가져와야만 하는 나라가 말이다. 중국은 동맹국이 없다, 왜일까?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저 먹기도 바쁜 중국인 어떻게 동맹을 만들고 그를 통해 패권을 쥘 수 있으랴.

 

 

미국이 패권을 쥐게 된 배경과 경과를 보면

 

 

오늘날 글로벌 리더이자 패권국인 미국을 보자.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맹주로 올라섰지만 그것만으로 그렇게 될 순 없었다.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통해 피폐해진 나라들을 먹여 살렸고 시장을 열어주었으며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마샬 플랜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그것이고 일본의 경우 안전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미국 시장을 열어줌으로써 협력국가로 만들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수출을 해서 이처럼 부강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와 북한의 차이는 그냥 우리가 미국 쪽에 섰다는 점이 전부이다.

 

최근 안정세를 보이곤 있지만 한 때 EU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비판이 많았다 왜일까? 하면 그 맹주인 독일이 그리스 재정위기 시 경제적 지원에 대해 소극적이었기에 그랬다. 그 과정에서 결국 영국은 째고 나갔다. 브렉시트.

 

그런데 중국은 시장을 열어주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체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유통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들어가서 망하고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이 패권국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더 있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죄다 미국으로 돈을 빼돌려 놓았고 자녀들은 미국 언저리의 캐나다나 여타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중국이 어떻게 패권을? 스스로 人質(인질)을 자처하면서 어떻게?

 

패권을 쥐고자 하면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아랫것들에게 뭔가 좋고 이로운 것을 줄 수 있어야 된다. 이는 과거 씨족의 宗家(종가)가 끊임없이 베풀며 지낸 것과 이치가 같다.

 

 

허튼 꿈이 이제 흉몽이 되어가고 있으니 

 

 

그런 까닭에 중국의 패권 도전은 그냥 허튼 짓에 불과하다. 그냥 시진핑이가 종신독재를 위해 떠들어대는 ‘중국몽’은 그냥 ‘개꿈’이었는데 이젠 그게 凶夢(흉몽)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라 전체를 송두리째 말아먹게 생겼기에 그렇다.

 

최근에 보면 중국 인민 전체가 거의 집단 최면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신흥종교집단 같다. 과거 마오쩌둥도 경계하고 비판했던 大漢族主義(대한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과거의 대실패 사례인 문화대혁명을 방불케 하고 있다.

 

원래 그렇다, 못 살다가 갑자기 좀 먹고 살만해지면 졸부 티를 내면서 갑질을 하듯이 지금 중국이 딱 그 꼴이다. (좋게 말하면 ‘성장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중국은 교육을 “세게 당하게” 될 것이다. 과거 우리의 이웃 일본이 ‘깝’을 치다가 미국에게 세게 교육 당했듯이 말이다.

 

(나 호호당이 가장 걱정하는 것 역시 우리 내부의 민족주의 정서가 너무 강해져서 중국과 같은 경향을 보이면 어떻게 하지? 하는 점이다. 사실 한 때, 2000년대 초반 ‘반미’가 한창일 때 걱정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과의 관계도 빨리 풀어야 할 것이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

 

 

결말을 예측해보면

 

 

중국의 패권 도전은 2006년을 기점으로 하기에 18-20년 사이인 2024년부터 2026년 사이에 결말이 날 것이다.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엎어질 것이다. 다소 억지로 내부 희생을 참아가면서 버틸 순 있겠으나 그 역시 2030년을 넘어서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우리 산업기술력이 중국에게 따라잡히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10년 뒤쯤 중국으로 다시 놀러가야지 싶다. 말랑하고 상냥해진 중국인들의 대접을 받으면서 백주 한 잔 반주 삼아 고기만두도 먹고 동파육도 먹으러 말이다. 교육을 “당하면” 그렇게 된다.

미국의 바이든, 중국의 도전을 접수하다

 

 

최근 미국에 부임한 중국대사가 나름 환영해주는 자리에서 미국더러 입을 닥쳐! 하고 고함을 쳤다. 미중 간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한 단면이다.

 

미중 전쟁은 금년 3월로서 이미 시작되었으니 전혀 놀랄 일도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랜 외교통이다. 그래서 중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게 바로 금년 3월 18-19일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외교회담이었다.

 

야, 너희들 정말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는 거니 아니면 시진핑의 1인 장기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너희들 국내에서 명분을 쌓기 위해 그런 척 하는 거니? 하고 물어본 것이다. 이에 중국은 우린 진짜야, 이제 너희 미국을 젖히고 글로벌 패권, 적어도 서태평양 지역에서 짱을 해보고자 해, 그냥 선선히 물러나주면 좋겠어, 뭐 이런 식으로 나왔다.

 

서태평양이 어디인가, 이렇게만 말하면 감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살펴보자.

 

서태평양이란 먼저 우리 대한민국이 있고 일본도 들어간다, 동남아의 수십 여 개의 나라들이 몽땅 이 지역에 들어간다.

옛날 일본제국이 그었던 ‘대동아공영권’과 거의 일치한다. 거길 다 접수하고 통으로 군림해보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천라지망을 펼치기 시작했으니 

 

 

이에 바이든은 중국의 의도를 접수했고 그럼 이제 시작해보지 뭐! 하고 당선 직후부터 구상해왔던 대응전략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금년 3월의 춘분 무렵부터 시작된 天羅地網(천라지망)인데 그게 이제 9월 23일의 추분으로서 그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한 해의 일은 춘분부터 드러나기 시작해서 6개월 지나 추분으로서 사실상 결정이 난다. 앞글에서 얘기했듯이 춘분에 “한 해의 해가 뜨고 추분으로서 한 해의 해가 지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중국 조이기 그물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은 군사 방면이고 여기에 경제 산업 전략이 들어간다.

 

 

군사방면의 천라지망

 

 

이에 군사 방면의 그물망부터 보자.

 

일단 돈만 무진장 들어갈 뿐 아무 실익이 없는 아프간은 과감하게 손절매 처리를 했고 아울러 그간에 느슨해진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다시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을 에워싼 주변의 동맹국들, 일본과 인도, 호주, 거의 중국에게 내어준 대만까지, 마지막으로 중국의 턱밑에 있는 우리 대한민국을 동원해서 새로운 군사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전통의 血盟(혈맹)이자 앵글로 색슨 동맹인 영국마저 서태평양 지역에 최대한 개입하도록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서태평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광폭의 그물망이고 무려 7개국이 중국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선을 긋고 나선 대한민국

 

 

먼저 우리 대한민국부터 보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 약간 친중적 태도를 보였는데 최근 순식간에 중국과 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우리 잠수함에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가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바로 이 일이 계기였다.

 

사실 이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사정거리가 500 킬로미터라 하지만 장차 좀 더 늘리면 간단히 말해서 베이징이나 상하이 모두 포함된다. 수중에서 불시에 발사하면 거리가 워낙 짧아서 방어가 아예 불가능하다. 이제 만일 중국이 우리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위해를 가하고자 하면 그들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직은 500킬로미터이지만 더 늘리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중국은 부랴부랴 중국의 외교부장 왕이를 서울로 보냈다. 단속 좀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전 같으면 왕이가 오면 칙사 대접하듯 했는데 이번엔 왕이, 아 자네 왔는가, 그럼 쉬어가시게! 한 다음 바로 다른 장소로 달려갔다. 바로 SLBM 제2차 시험 발사 현장이었다.

 

그 일 때문에 서울에 왔는데 아예 한 술 더 뜬 셈이다. 문 대통령이 참관한 제2차 발사는 사실 테스트가 아니라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여기에 발사 모습을 담은 동영상까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공개했다.

 

물속 잠수함에서 힘차게 떠올라 상공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의 모습과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동영상, 그리고 그 뿐만 아니다. 그간 비밀리에 추진되어온 각종 신형 미사일들,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에 탑재될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의 항공기 분리 동영상, 고위력 탄도미사일 현무 4의 장면, 서해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중국 수상함을 박살낼 수 있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의 표적 명중 동영상을 동시에 ‘릴리스’했다.

 

이제 서해 바다는 중국 전함들이 함부로 나다닐 수 있는 해역이 아니게 되었다, 발해만과 산동반도의 기지들까지 죄다 사정권에 들어갔으니 서해 바다는 사실상 봉쇄된 셈이다. 이로서 그간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오던 중국의 우리에 대한 외교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실패했다. 그 날이 바로 SLBM 제2차 시험발사 날이었다.

 

참고로 좀 더 얘기하면 미국이 전술핵탄두인 B61을 오키나와나 괌에서 평택 기지로 실어와 저장해두었다가 여차하면 우리 SLBM에 장착하면 그것으로서 사실상 ‘핵무장’이 된다.

 

이번 일은 최근 6개월에 걸쳐 바이든이 펼치기 시작한 천라지망의 첨단 銳鋒(예봉)이라 하겠다.

 

 

당황해하는 중국의 속마음

 

 

그런데 중국 관영의 글로벌 타임즈가 내놓은 기사가 정말 웃긴다, 한국 SLBM의 완성도가 높다, 일본 전역이 사정권 안에 들어갔으니 일본이 쫄고 있다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다, 우리가 일본을 향해 쏠 일이 있겠냐고, 만일 그럴 가능성이 있었으면 미국이 우리의 SLBM 시도를 원천봉쇄했을 것이다.

 

미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앵글로 색슨의 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에 특별회원 자격으로 편입시켰다.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우린 앵글로 색슨이 아니건만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레이더 기지에서 감지하는 중국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함이다. 그 바람에 호주의 외교부장과 정보 실무 총책들이 방한해서 서울에 머물고 있다. 왕이가 머물고 있는 같은 서울 하늘에 말이다.

 

또 있다, 얼마 전 F35 함재기를 실은 영국 최신예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가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과 합동 훈련을 진행했다. 미국과 네덜란드 함정도 1척씩 끼었다. 우리 해군 사상 초유의 훈련이다.

 

이는 장차 우리가 건조하려는 경항모를 위한 화려한 쇼케이스(showcase)였다. 이는 장차 우리의 경항모 모델이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 급으로 정해졌다는 얘기이고 그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그런데 퀸 엘리자베스는 경항모가 아니란 사실, 따라서 처음에 경항모로 시작하겠지만 도중에 점점 뚱뚱해지고 그 결과 완성 시엔 사실상 퀸 엘리자베스 급이 될 것이다.

 

그 항모가 완성되면 남지나해의 남쪽 바다라든가 또는 동해상에서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심지어 인도 해군까지 합세하는 대규모 합동훈련을 통해 위력을 과시할 것은 기정사실이다. (항공모함 건조는 아무래도 이미 영국과 협력한 바 있는 현대중공업일 것이다.)

 

 

대만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호주를 동원하기 시작한 미국

 

 

우리만 해도 이런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게 두루 살펴보면 중국 주변나라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일단 미국은 대만 카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첨단 무기들을 대거 대만에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서 호주에겐 미국의 원전 잠수함 안에 들어가는 소형 원자로 기술을 이전해주겠다고 밝혔다. 잠수함의 모델은 영국 어스튜트 급이다. 이에 호주는 그간 추진해온 프랑스와의 잠수함 건조 계약을 무단히 중단했다. 미국 원자로 기술과 영국 핵잠수함 모델을 기초로 무려 12 척을 건조할 계획이라 한다. 남중국해에서 서태평양 쪽으로 진출하려는 중국 해군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경제면의 천라지망

 

 

이제 경제 산업 측면, 중국 경제를 옥죄기 위한 바이든의 천라지망도 살펴보자.

 

오늘날 일반 소비재는 중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공급된다. 첨단 전자제품은 우리나라나 일본 등지에서 생산한 부품들이 중국에서 조립되어 전 세계로 수출된다. 이처럼 원료와 재료, 부품과 모듈, 소프트웨어,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대단히 복잡한 국가 간의 분업체제를 통해 돌아가고 있으며 그 중에서 중국은 인건비 중심의 조립 생산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Global Supply Chain)”이라 한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그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장단기 행동계획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첨단 부품인 반도체를 보자.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우리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대만의 TSMC, 그리고 쇠락 기미를 보이는 인텔을 되살려서 그 공급망을 우선 통제 대상으로 삼았다. 이른바 “반도체 동맹”이 그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가령 삼성전자가 중국 화웨이에게 반도체를 공급하고자 할 경우 지속적으로 미국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백신의 경우에도 우리나라를 핵심 생산기지로 만들기 위해 미국은 첨단 기술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신기술이나 그 관련 인력이 중국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치밀한 관리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첨단 부품이나 소재가 아닌 일반 소비재의 경우 인도나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대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가령 우리의 경우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조치는 당연히 아세안과 인도에서 적극적인 환영을 받지 않겠는가 말이다.

 

글이 길어져서 아무래도 2회에 나누어 써야 하겠다. 다음 글에서 중국의 국운과 관련해서 이번 일의 시작과 향후 결말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겠다.

 

 

추석 연휴 중에 천천히 읽어보시길 

 

 

추석이라 가벼운 덕담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묵직한 글을 올리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다. 시간을 내어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란다.

깊어가는 가을날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다. 높아가는 하늘엔 뭉게구름 드물어지고 옅은 구름 자주 보이니 대기 속의 수분이 마르고 있는 까닭이다. 수분이 마르고 빠져나가면 모든 성장이 멈춘다.

 

이미 성장을 멈춘 나무들은 가을 햇볕 아래 그저 점잖다, 철을 알고 있음이다. 나무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철을 알고 있다. (오로지 사람만이 철을 모르는 것 같다.)

 

잎사귀 또한 빛이 바래고 성글어지고 있다. 그 사이로 드러난 거미줄 망을 들여다보면 작은 벌레의 시신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저 주검들은 이내 부서져서 風化(풍화)되리라. 그리고 작은 벌레들을 먹고 살던 거미 또한 어딘가에 알을 낳은 뒤 11월의 어느 날이 되면 죽을 것이다. 그 조각들은 겨울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가고 흩어지리라.

 

오늘 14일 서울 지역의 일출은 6시 12분이고 일몰은 18시 43분이다. 낮 시간이 12시간 31분이니 아직은 낮이 밤보다 길다. 하지만 이제 곧 그러니까 23일의 秋分(추분)을 지나면 밤이 더 길어질 것이다.

 

밤이 낮보다 더 길어지는 秋分(추분)은 즉 “한 해의 일몰”이다, 하루의 일몰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9월 23일 추분으로서 2021년의 해가 저물 것이고 그로서 2021년의 이브닝, 즉 저녁이 시작될 것이다.

 

(사람들은 2021년의 해가 2021년 12월 31일 저녁에 저무는 줄 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 날에 저무는 해는 12월 31일의 해인 것이고, 2021년의 해는 9월 23일 추분으로서 저문다.)

 

 

추분부터 이브닝 가든 파티

 

 

해가 지면 저녁이다. 이브닝 타임이다. 대개의 파티는 해질 무렵에 준비되고 정원에 등불을 밝히면서 시작된다. 파티 타임!

 

저녁 6시 반 경에 시작된 가든파티는 3시간 뒤인 9시 반 경이면 대략 마무리된다. 손님들 배웅을 마친 주인은 잠시 알루미늄 접의자에 걸터앉아 파티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해본다. 그러다가 얼른 뒷정리를 하고 밤 11시, 늦어도 11시 반 경엔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다시 꿈속에서 많은 환상을 경험하면서 꿈길을 이리저리 오가리라.

 

한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 60년 순환에서 추분, 즉 입춘에서 37.5년이 흐르면 추분을 맞이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이브닝 파티가 시작된다. 얼마나 성대한 파티인 진 모르겠으나 각자의 나름 정성껏 준비된 파티를 시작할 것이다.

 

 

나 호호당의 과거 회고 

 

 

멀리 갈 것도 없이 그저 나 호호당의 경우를 되돌아보면 충분하다. 그 세월이 참으로 부끄럽다. 스무 살에 추분을 맞이했으니 그게 해가 저문 뒤의 이브닝 파티인 줄 전혀 몰랐다. 철을 몰랐다. 그저 세상에서의 삶이 그럭저럭 대충 해도 굴러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그 사이에 소중한 아들도 하나 얻었다. 돌이켜보면 당시로선 전혀 몰랐으나 그 일이야말로 이브닝 파티 중에 삼신할머니가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파티가 끝났지만 몰랐다. 그저 더욱 성대한 파티가 이어질 줄 알았다. 더욱 더 큰 야심을 품었고 거침없이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그건 꿈속의 일이었다. 많은 갈래 길에서 많은 환상들과 만났다.

 

깨어나니 내 삶은 황폐해져있었다. 앗, 그건 꿈이었구나 싶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자, 그러니까 60년 순환에 있어 또 한 번의 春分(춘분)이 되자 깨우쳤다. 그 각성은 아프고 아픈 각성이었다. 그만 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의 아픔이었다.

 

나 이제 그만 살아도 되지 않겠니?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었다. 이브닝 파티로부터 정확하게 30년의 세월이었고 그 사이에 내 나이는 스무 살에서 오십이 되어 있었다. 인생, 거 참 쉽게 후다닥 흘러간다.

 

길고 긴 인생? 그런 거 없다. 어느 누구의 삶도 어영부영 하다보면 紅顔(홍안)이 白髮(백발)된다. 삶이란 거 특별히 道(도)를 닦겠다고 길 떠날 필요 전혀 없다, 절로 길을 갈 것이고 절로 깨우치게 되어있는 삶이다.

 

천차만별의 삶이고 저마다의 삶인 것 같지만 그 근본은 예외가 없다. 모두가 통으로서 하나의 삶이다.

 

 

2002년에 시작된 대한민국의 이브닝 파티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국운의 추분은 2002년이었다. 화려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월드컵 4강으로부터 시작된 국운의 이브닝 파티였다. 우리 수준에서의 한껏 기껏 민주주의 체제도 완성했다 싶었고 대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활개를 쳤다. 글로벌 코리아가 등장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모든 전자제품 속에 들어갔고 가전제품은 뉴욕과 런던, 파리 등등 글로벌 메가시티의 매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도곡동에 ‘타워팰리스’란 전대미문의 초고층 주거시설이 올라갔고 그 이후 우후죽순이었다. 모두 영어나 다른 외국어 명칭이 붙여졌다.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이 가령 신흥아파트, 이런 식이면 일단 깎이고 들어갔다. 부산 수영만엔 센툼 시티가 들어섰다.

 

승용차도 그냥 차가 아니라 SUV 를 사기 시작했고 서울 강남 거리에 외제차가 즐비해졌다. 그러자 마침내 시골 조합장들도 대출을 받아 일단 벤츠나 BMW부터 뽑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마침내 깊은 산의 스님들도 럭셔리 차를 타기 시작했다. 고무신에 행랑 하나 메고 일몰의 고갯길을 넘던 고행의 수도승은 사라졌다.

 

세력을 얻은 대기업 노조원들도 한껏 사치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녀들의 좋은 출발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투자했다. 온통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스펙을 쌓느라 무한대의 돈이 들어갔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져가자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리를 낮추어 과거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수 억 대의 돈을 주택담보대출이네 뭐네 하면서 개인들에게도 풀었다. 댐의 수문이 일제히 열린 셈이다. 당연히 가계대출은 급격히 늘어났다.

 

국내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늘어나자 고급 월급쟁이들과 부자들은 펀드다 뭐다 하면서 덩달아 증시에 돈을 넣었다. 노후를 위한 연금보험도 거액으로 넣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름 뒷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공립학교 교사들에겐 안식년 휴가라는 전대미문의 초장기 휴가도 주어졌다. 전교조 만세! 전공노 만세!

 

대한민국은 거침없이 잘 살기 시작했고 럭셔리를 누림에 있어 한도가 없었다. 국력이 커지자 국민적 자긍심도 커졌고 그러다가 상대를 잘못 고르긴 했지만 反美(반미)도 한 때 대 유행이었다. 글로벌 으뜸의 미국인데 그 대통령 부시를 남아프리카의 원주민인 부시맨으로 착각하나 싶을 정도였다. (대중적 정서란 게 그냥 내버려두어야지 괜히 통제하려고 나서면 더 기승을 부린다.)

 

 

2012년부터 꿈길을 가기 시작한 대한민국

 

 

10년이 흘러 2012년이 되자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과거 10년 사이 이제 우리의 미래는 날로 창창할 줄만 알았던 미래가 10년의 세월 사이에 그게 그렇지 않단 사실을 점점 인지하게 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브닝 파티가 끝났다.

 

그 사이에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일반 대중들도 자칫 빈부에서 빈에 속할 수 있겠다는 공포심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공부를 시킨 자녀들도 취업이 어려워졌고 알바라든가 부모님들에게 얹혀사는 젊은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저급여의 험한 일자리는 ‘외노자’들이 메워갔다.) N포 세대, 이생망의 등장이다.

 

이에 일제히 ‘복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10년은 ‘웰빙’이었는데 2012년 대선을 경계로 복지로 바뀌었다. 나라에서 나를 어떻게 먹여 살려보시오 하는 요구였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바꿔주시오, 나도 귀족노조처럼 좀 먹고 살아야 하겠으니 하는 얘기였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그나마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그 양반은 노동시장을 다소 손을 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줄여보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공무원들과 대기업 노조로부터 맹렬한 반발에 부딪쳤다. 그러다가 허점을 보이자 즉각 날아갔다.

 

그러자 보다 담대한 복지를 시행할 것이며 비정규직을 대거 청산하겠다는 현 정부가 등장했다. 일자리 부족과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약속을 했다. 모두가 환호했다. 결과는 조국 사태였다. 그러자 현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K 방역을 내세우고 나섰다. 하지만 백신을 조기에 구매하지 않는 바람에 유럽의 최빈국인 루마니아로부터 백신을 구걸했고 연일 ‘모더나’ 탓을 하고 있다. ‘피’와도 같은 백신이다.

 

하지만 이 모두 대한민국이 집단으로 꾸고 있는 꿈속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 얼마나 허망할까?

 

 

2022년부터는 좋은 꿈보다 악몽이 잦을 것이니 

 

 

내년 2022년은 2012년으로부터 또 다시 10년이다. 우리 국운의 60년을 하루로 볼 것 같으면 2022년은 새벽 2시 반이다. 깊은 밤중이고 여전히 꿈을 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젠 좋은 꿈만 아니라 惡夢(악몽)도 곁들이게 될 것이다. 꿈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10년 사이에 지쳐버린 우리들은 평등이나 공정, 정의와 같이 큰 소린 듣기 싫고 그저 밥술이나 좀 편히 먹게 해주시오 하는 마음이다. 국민의 힘이냐 민주당이냐가 아니라 내가 밥 먹고 사는데 조금치라도 나을 것 같은 후보를 내년 대선에서 뽑을 것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재명이다, 나중에 가서 기본소득이 기본부채로 바뀔 진 모르겠으나 일단은 먹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대선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2022년부터 10년의 세월은 좋은 꿈보다는 악몽이 더 잦을 것이다. 잠자리에서 뒤적거릴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춘분이 되면 

 

 

그러다가 2032년 국운의 春分(춘분)에 가서 60년 순환의 해가 뜨면 그간의 모든 일들이 한바탕 꿈자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고통스러워도 또 다시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서 새벽안개 저편의 일터로 돌아가거나 또는 일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꿈속을 헤매고 있다. 왕년의 스타 전영록의 노랫말처럼 “아직도 어둔 밤”인 것이다.

 

이브닝 파티에 대한 추억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다. 

예전엔 아이들을 방목했는데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집집마다 아이들이 적게는 셋, 많으면 여덟이었다. 아빠는 논밭에 나갔고 엄마는 집안 살림하느라 정말이지 겨를이 없었다. 먹고 살기 바빴고 먹여 살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育兒(육아)는 어떻게? 하겠지만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저희들끼리 놀았다. 맏형이나 큰 누나가 데리고 다니거나 아니면 옆집 형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녔다.

 

아이들 역시 놀지만은 않았다. 이런저런 할 일이 정말 많았다. 20 여리 떨어진 학교 다녀오면 가방 휙-던져두고 친구들과 함께 개천에 가서 가제나 우렁이 잡으러 가고 산딸기 따먹으러 산으로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그건 농땡이 치는 것이고 각자의 주어진 몫을 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선 거의 걱정할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동네 마을 모든 아줌마들이 혈연에 관계없이 이모였으며 남자들은 삼촌이었다. 저녁이 되어 아이가 보이지 않아도 주변에 물어보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놀다가 다치는 개구쟁이 말고는 안전이란 문제가 없었다. 교통사고나 유괴, 실종 사건 같은 무서운 일 따윈 거의 없었다.

 

 

나 호호당의 기억

 

 

나 호호당은 부산에서 자랐으니 도시 출신이다. 하지만 동네 테두리 안에서 동네 형 동생들과 늘 함께 다녔고 놀았기에 위험한 일이 없었다.

 

가장 즐거운 일은 윗동네와의 ‘전쟁’이었다. 우리 동네 아이가 그쪽으로 놀러 갔다가 얻어맞거나 삥을 뜯기면,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면 동네 형들이 윗동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야말로 흥분과 스릴이 넘치는 전쟁, 또는 전쟁놀이야말로 가장 신나는 일이었다. 가끔 날아온 돌이나 막대기에 맞아 다치기도 했지만 그 보상으로 영웅 대접을 받곤 했다. 참전용사 대접.

 

평소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엄마가 집밖으로 나와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곤 했다. 다소 떨어져 있어도 누군가 내게 와서 너희 엄마 너 찾던데, 빨리 가봐! 하고 알려줬다. 여름이면 땀 뻘뻘 흘리면서 밤늦도록 놀았다.

 

당시 부산은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섬유업체나 여타 공장들에서 일을 했기에 위험한 지역, 이른바 우범지대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사창가도 많았다. 또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폐지나 폐품을 주어 망태기에 넣고 다니는 껄렁한 양아치들도 많았다. 공장 지대 이면엔 판잣집들이 즐비했고 여기저기에서 성폭력 사건 정도는 다반사였다.

 

동네 아이들은 하지만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서 위험한 곳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일단 우리 동네에서 멀었기에 가질 않았다. 특히 영도다리 건너갔다가 납치되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수가 있다면서 늘 주의를 받곤 했다.

 

영도다리 건너 영도 섬 쪽은 공포의 지대였다. 그 동네 아이들 역시 사납고 용맹했으며 또 교활했다. 영화 ‘친구’는 바로 그 영도 섬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런가 하면 고아원 아이들도 무서웠다. 나중에 범죄를 저지른 끝에 소년원에 많이 끌려갔다. 온 부산 시내에 사나운 거지들도 많았고 부랑자들도 많았으며 폐인이 된 상이용사들이 돈을 뜯고 돌아 다녔다.

 

하지만 그냥 일반 동네 테두리 안에선 대단히 안전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풀어놓고 지냈다. 시골은 더더욱 放牧(방목)했다. 아이들은 그런대로 밥만 먹여주면 절로 자랐다. 소나 염소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과거 시절의 얘기를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오셨을 것이라 본다.

 

 

저출산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의 저출산, 심각하다. 수십 년에 걸쳐 막대한 돈을 풀어도 저출산 추세는 변함이 없고 더욱 나빠지고 있다.

 

부모들은 모두 직장에 나가거나 일을 하는 터라 아이들을 돌봐줄 수가 없다, 여성들 역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캐리어 우먼이 되려 하고 수입이 부족해서 나가서 일을 한다. 그러니 집에서 아이들을 키울 시간이 없다. 그런데 예전처럼 아이들을 放牧(방목)할 수도 없다. 게다가 시부모와 함께 살지도 않고 동네 아줌마들과 아저씨들이 이모 노릇 삼촌 노릇을 해주지도 않는다.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판국에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저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가 사실상의 託兒所(탁아소)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간혹 선생님들이 아이를 학대하는 바람에 난리가 나곤 한다.

 

이젠 중학교 역시 사춘기의 이상한 아이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학생들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수업이란 게 그저 아이들을 붙잡아 놓는 게 전부이다. 교실에서 졸고 있든 만화책을 보든 그건 신경 쓸 일도 아니다. 敎師(교사)가 교사가 아니다. 배울 마음이 없으니 가르치지도 못 한다. 행동불량이라 훈육을 할 수도 없다. 팰 수도 없고 야단치면 언어 폭행이고 학대가 된다. 아이들은 그런 사정을 훤히 꿰고 있다.

 

 

배달민족의 씨가 말라가고 있으니 

 

 

이를 전체적으로 볼 것 같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집단적으로 번식을 삼가고 있고 심하게 말하면 장기에 걸쳐 자율적으로 씨를 말려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종족보존의 본능을 압도하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기에 예산을 늘린다고 저출산 기조가 반전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無望(무망)!

 

모든 젊은이들은 도시로 그리고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그들을 새에 비유할 것 같으면 수도권엔 그들이 알을 낳고 키울 둥지가 끔찍하게 비싸서 마련할 수가 없다.

 

최근 젊은이들은 나름 사치하게 자랐다. 물론 이런 표현은 나 호호당의 어린 시절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얘기이다. 가난하게 자란 부모들이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최선을 다해서 극진하게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모두 왕자이고 공주님들이다. 그런데 정작 사회에 나와 보니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우선 괜찮은 일자리가 태부족이다. 급여가 적은 곳은 외노자들이 하고 있다. 이에 만족할 만한 수입이 되지 않다 보니 인간적인 생활, 왕자와 공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가 없다. 그러니 연애는 해도 결혼은 무리이다. 알을 낳을 둥지조차 마련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결혼까지.

 

설령 부모님들이 뒷받침을 해 줘서 결혼한다 해도 왕자와 공주는 시종과 시녀들이 곁에 있어야 하건만 ‘셀프’로 허드렛일까지 해야 하니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아이까지 낳아서 어쩌자는 것인가 한다. 최소한 保姆(보모)와 파출부 정도는 채용할 수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러자니 또 돈이다.

 

젊은 남편은 워라벨을 갖고 취미생활에 돈을 쓰고 싶은데 아이를 낳으면 그 순간 용돈이 1/10로 줄어든다. 젊은 아내들은 자신의 캐리어 관리, 피부 관리, 멋을 부리고 꾸미는 일, 친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데 아이를 낳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망가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실종 선고를 받는다.

 

모든 흐름이 아이를 낳지 말라는 쪽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출산률이 유지되는 나라들을 보니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OECD 국가 대부분이 그렇다. 그런데 그 중에서 그나마 출산율이 제법 유지되는 나라들이 있으니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그렇다.

 

그 나라들의 특징을 보면 커뮤니티, 즉 마을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뉴욕이나 런던, 로마나 피렌체 등의 대도시를 빼면 소규모 공동체가 여전히 살아있고 작동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이 동네 삼촌이고 할아버지, 이모와 고모 그리고 할머니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을 낳고 풀어 키우는 일, 즉 방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동사무소에 가면 영어로 커뮤니티 센터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말장난이고 시늉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어지간한 일은 인터넷으로 처리하고 또 그렇게 하라고 권유한다. 얼굴을 익힐 시간이 아예 없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건만 무슨 커뮤니티? 옆집 사람도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커뮤니티가 성립할 수 있으랴! 우리는 “微粒子(미립자) 사회”가 되고 말았다.

 

 

IT 강국, 비대면의 미립자 사회

 

 

우리 대한민국은 소위 IT 강국이다. 달리 표현하면 익명의 사회이고 비대면의 사회이다. 인터넷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회란 얘기이다. 좋은 점도 많지만 참으로 외로운 사회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사회안전망이 가장 약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안전망이라 하면 정부나 국가가 나서서 이런저런 센터를 짓고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겠지만 그런 건 사실 최후의 안전망이고 안전망의 기본은 가족이고 동네 커뮤니티가 바로 사회안전망의 근간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사회는 실직하거나 큰 병에 걸리면 봐줄 사람이 사실상 없는 살벌한 사회, 믿을 놈이라곤 나 스스로밖에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올 해 초 가족의 해체와 사회안전망이란 글을 썼는데 참조하시길.)

 

 

선진국의 대가가 너무 커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고 크다. 저출산으로 배달민족의 씨를 자율적으로 말려가고 있다, 가족은 해체된 지 오래라서 살면서 기댈 곳이라곤 스스로 혼자밖에 없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공무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우리는 수십 년간 진보! 진보! 발전! 발전! 외치다가 어느덧 우리는 이상한 곳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오래 전 국운의 바닥이 되면 어떻게 될까 했더니 이런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럴 줄이야 정말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자려니 아쉬워서 붓끝을 살려서 몸의 동작과 표정을 그냥 프리하게 그렸다. 춤추는 놈, 베레모 쓰고 폼 잡는 놈, 우산 쓴 아낙, 키큰 꺼부정, 아이와 애매한 놈들 등등, 그냥 팔레트에서 색을 가져와 스케치했다. 재미가 있는 것 같아서 올린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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