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아니 꼭 그렇지 않다, 아직은 낮으로 약간의 더위도 있다. 며칠 사이 태풍이 지나간 뒤라서 하늘이 아주 맑고 공기도 신선하다. 여전히 동풍이 불고 있어서 그렇다. 저게 어느 날인가 서풍 그리고 서북풍으로 바뀌면 탁하고 매캐해지겠지. 메이드 인 차이나 먼지바람이 가득 불어오겠지, 봄까지. 일몰 직전 혹은 직후였다. 거리는 사진처럼 어둡지 않았다. 하늘에 조리개를 두었기에 마치 밤인양 느껴진다. 장소는 나 호호당의 작업실 앞이다. 현재를 즐기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 서녘으로 슉-하고 넘어가는 해가 뿌리고 가는 빛 알갱이들의 저 황홀한 놀이, 일몰 직전 혹은 직후의 저 광경은 그 순간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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