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의 억지 귀성을 보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좋은 연휴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기간이 되고 말았다. 명절 동안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말하는 ‘명절 증후군’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이었다. 벌써 25년씩이나 되었다.

 

처음엔 며느리 증후군이란 말로 시작되었다가 이젠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반적인 명절 증후군으로 정착되었다. 이번 추석 기간에도 당연히 그런 말이 들려왔다.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줄여 얘기하면 歸省(귀성)하는 행위 자체가 심리적 물질적 모두 합쳐서 득이 되거나 위안이 되기보다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돈만 들고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필요 없다 싶은 짓은 1초도 신경 쓰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왜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아직도 귀성을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오랜 문화적 풍습이고 관행이어서 거부하기엔 심리적 저항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니 이 또한 그렇게 오래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될 무렵엔 분명히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명절의 바탕에는 제사가 놓여있다. 제사를 하지 않거나 사라지면 사실 명절은 그야말로 연휴에 불과해진다. 어쩌면 연휴로서의 명절은 귀성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남을 수도 있겠다. 쉴 명분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소속감을 주던 제사의 역할이 사라졌고 잊혔으니 

 

 

제사는 종교적 행위이다. 오늘날 지자체마다 이런저런 축제가 많지만 그 역시 그 바탕에는 제사가 있다. 祝祭(축제)란 단어의 뒷 글자가 바로 祭(제), 즉 제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자체의 축제에 가보면 제사를 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축제일 수 있겠는가.

 

祭祀(제사) 줄여서 祭(제)는 종교적인 의식으로서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인류 최초의 종교는 바로 가족 종교였다. (이는 나 호호당의 주장이 아니라 종교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이후 사회가 커지면서 부족의 신에 대해 제를 올렸고 나중엔 도시국가 형태의 나라가 되면서 나라의 신에 대한 제를 올렸지만 그럼에도 집안마다 가족의 신, 조상신에 대한 제사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제사가 가진 가장 큰 기능은 그 제에 참가하는 사람들만이 그 가족 혹은 집단의 구성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데 바로 그 소속감을 제사가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도 ‘나’라는 단어보다 ‘우리’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사라졌다. 우리란 말은 집단과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이어지려면 어떤 형태의 제사이든 거기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라지고 마침내 ‘나’라고 하는 개체만 남게 된다.

 

 

신이 사라진 세상이라

 

 

유일신 신앙을 가진 기독교나 이슬람의 경우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때만이 위안을 얻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불교 역시 ‘참된 나’를 깨닫는 수행이라 하지만 대중에게 있어 불교는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들에 대한 믿음이고 그 속에서 위안 즉 소속감을 얻는다. 또는 수행을 많이 한 스님, 가톨릭의 경우 聖者(성자)들에 대한 믿음이 위안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소위 선진산업국가들을 보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사실상 희박해졌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더 지배적인 요소가 되었다. 니체의 말처럼 “神(신)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경우 불교 개신교 가톨릭이 주된 종교하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그를 통해 소속감을 얻고 위안을 받는 사람들 즉 진정한 信者(신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시골 선산을 다 팔아치우자 귀성할 이유가 사라졌고

 

 

우리 사회를 보자. 과거의 농어촌공동체는 이미 철저하게 없어져버렸다. 더불어 1990년대에 이르러 시골의 문중 땅이나 先山(선산) 역시 국토개발로 인해 다 팔아치워졌다. 그러니 시댁의 어른 중에 돈 되는 땅이나 부동산과 같은 재산을 가진 이 또한 이젠 거의 없다. 1996년부터 명절 며느리 증후군이 생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며느리의 경우 시골 시댁에 내려가서 눈도장을 찍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귀성하는 부부의 경우 남편이 아내를 달래가면서 내려가야 하고 바삐 올라와야 한다. 처갓집도 가주는 것이고 그렇다. 하지만 그 자녀들의 경우 시골에 가면 아무런 재미가 없다. 어릴 적엔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았겠으나 좀 크고 나니 취직은 어떠하니, 결혼은 할 거니 등등 짜증나는 잔소리만 듣게 된다. 가기 싫은 것이다. (그 결과 자녀와 손주를 보고픈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꾸로 올라온다, 역귀성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공동체는 제사 또는 제식을 통해 작용하는데 

 

 

그 어떤 공동체도 그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상징적인 것, 또는 상징이 있다. 그게 바로 제사이고 축제이며 의식이다. 그 대상이 먼저 가신 부모님이든 조상신이든 하느님이든 호국영령이든 아무튼 뭔가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를 통해 그 一員(일원)임을 확인하고 그로서 구성원이 되어 소속감을 얻는다.

 

구성원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정신적 물질적 도움 혹은 扶助(부조)를 받는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를 함께 나눈다. (온라인으로 송금하는 것 역시 일종의 부조이지만 직접 행사에 참가하는 것에 비하면 소원하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미립자 전자 알갱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모두가 낱알이고 모래알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이다.

 

그 결과 OECD 나라 중에서 공동체 의식이 가장 희박한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여타 선진산업국가들의 경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사실상 희박해졌지만 그럼에도 공동체적인 요소는 여전히 살아있다. (예를 들자면 유럽에서 축구팀이란 공동체의 한 상징이며 그를 통해 소속감을 얻는다. 하지만 우린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란 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공동체가 없어졌다. 공동체야말로 귀속감의 원천이고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인데 말이다.

 

그러니 이젠 나와 내 가족이 의지할 곳은 그저 내가 가진 돈과 재산만이 전부이다. 또 하나 유행하는 대안이 바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연신 선거철마다 무상복지를 흔들어댄다.

 

 

갑질, 차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는 사회

 

 

공동체가 없어졌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철저한 남이 되었다. 그 결과 연봉을 얼마 받느냐, 대기업이냐, 아이폰 가지고 다니느냐, 강남에 사느냐 무슨 차를 모느냐 등등 오로지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남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편이다 싶으면 그로서 위안을 얻는다.

 

그게 바로 차별이다. 서로를 차별하고 상대를 평가하는 이상하고도 살벌하며 駭怪(해괴)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수 십 년간 오로지 진보와 발전만을 외치며 달려오는 사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단히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때 1인당 GDP가 높아지면 행복할 줄 알았었고 그 기준에서 보면 우린 분명 선진국이다. 그런데 힘들고 외롭다. 오히려 가난한 나라들, 저소득 국가 사람들의 삶이 우리보다 더 괜찮아 보인다, 왜냐면 거기엔 공동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2천만이 살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여기에 일부 지방의 산업도시, 이게 사실상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은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터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벼운 존재이다. 언제든 ‘쌩을 깔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허공 속에 떠다니는 전자 미립자 알갱이와도 같다. 데이트 역시 두어 번 만나면 안녕이다. 별 볼 일 없기 때문이고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어차피 결혼할 상대도 아니니 서로 가벼운 것이다.

 

이젠 최소한의 공동체인 가족마저 해체될 판이다. 결혼하자니 집을 구할 수 없고 집을 마련한다 해도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다. 아기를 양육할 돈으로 차라리 우리끼리 잘 쓰고 즐기다가 나중에 애정이 식으면 이혼하자는 식이다. 그러니 굳이 결혼식을 할 이유도 없어지고 있고, 그냥 살다가 어느 날 헤어지면 그만이란 생각이다.

 

그저 드라이한 소비사회, 향락만 추구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마저 잃었으니

 

나 호호당은 최근 젊은이들을 대하노라면 그저 측은하다. 불쌍하다. 기댈 곳도 의지할 데도 없으니 FIRE 족인가 뭔가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최대한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해서 자신의 삶을 즐겨보자는 것이 기껏이고 한껏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될 까 싶다.)

 

그런 그들에게 왜 너희들이 어렵고 힘든지 얘기를 해주어도 아마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 예전엔 삶의 ‘폭압’을 견디게 해주던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더 측은하고 불쌍하다.

 

나 호호당 역시 모른다. 낱알이 되고 미립자 전자 알갱이가 되어버린 것을 어떻게 다시 결집토록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다.

 

2000년 초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을 모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저 기대해볼 것이라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도 있다는 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살기 위해서라도 길을 찾는 움직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이 있다. 국운의 입춘 바닥은 2024년, 하지만 그게 이렇게 되리라곤 전혀 알지 못했다. 정말 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