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장모님이 계신 곳인데 아내가 공황장애 후유증으로 함부로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그 바람에 덩달아 나도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담배 탓도 없진 않다. 공항을 나오면서 보니 과연 제주도였다. 야자수에 푸른 하늘, 나름 감개가 컸다. 그래, 오랜만이야! 싶었다. 서울은 이미 가을이 깊어서 낙엽지는데 제주는 그냥 여전히 황록색의 활엽수 천국이었다.

 

비행기로부터 나오면서 유리창 너머로 찍은 제주공항 활주로 풍경, 저녁 햇빛이 활주로와 비행기를 오렌지와 레드, 브라운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활주로 저편의 제주 바다에도 석양빛이 어리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면서 왈칵 그려보고 싶었다. 엘로와 브라운, 레드를 듬뿍 찍어서 팔레트에 풀어놓고 기분 내키는 대로 종이 위에 칠하고 싶었다. 그릴 것 같으면 저 유리창의 반사광은 지워버려야지 생각했다. 즐겨주시길... 독자님들도 제주의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시라고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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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프레스 수채화지에 물을 듬북 칠하면서 빠르게 그려보았다. 몽롱하게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대로 몽롱하다. 앞부분에만 약간 디테일을 추가했다. 저녁인지 안개가 서려서 그런지 모를 날씨, 앗차! 사인을 넣지 않았다. 오늘 장모님이 계시는 제주도로 간다. 비행기 타기 싫어하는데, 특히 국내선은 하늘길이 편하지가 않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처갓집이 해외에 있으니 이게 이럴 줄 42년 전에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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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다각형으로 바꾸어서 측정해보려던 시도 

 

인간들은 변이 없는 원의 넓이를 제대로 측정해보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다각형으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다각형의 넓이를 측정하는 기술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든가 “유클리드의 원론”이 나오면서 많이 발전했으니 말이다.

 

기원 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한 이론가는 정다각형에 있어 변의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 가면 결국엔 원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어떻게 해서든 원을 다각형으로 만들어서 측정해보려는 시도였다. 람누스의 안티폰(기원전 480-411년경).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도 그런 시도가 있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중국 淮南子(회남자)에 보면 원은 모서리가 9,999개, 즉 9,999각형이란 글이 보인다. 사실 이는 무한 정다각형( 無限 正多角形)의 개념이다.

 

앞의 안티폰의 주장은 15세기 독일의 신학자 니콜라우스에 의해 다각형은 제 아무리 변의 수를 늘려도 원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으로 반박을 당했다. 그 반박은 실로 옳다. 다각형이 원이 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게 별로 영양가가 없다.

 

 

집요한 천재, 아르키메데스

 

 

기원전 3세기의 한 천재는 앞의 생각, 원을 다각형으로 만들어서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과 사실상 동일한 방식을 채택하고 그를 철저하게 밀어붙인 결과 앞글에서 소개한 파이(π), 보통은 3.14로 외우지만 실은 무한소수이자 무리수인 원주율 3.141592653589...을 계산해낸 이가 있었다.

 

바로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식민도시인 시라쿠사 출신의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겸 공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정말이지 집요한 천재였다. 그가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아, 그렇구나! 하고 외쳤다는 얘기, 바로 유레카(Eureka)의 설이 바로 그렇다. (유레카란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서 “나는 그걸 찾았어!” 하는 뜻이다.)

 

원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은 원주율에 반지름의 제곱을 곱하는 것이고 원주의 길이는 원주율 파이에 지름의 길이를 곱하면 된다. 따라서 결국 원주율을 알아야만 가능해진다는 얘기인데 그게 엄청 어려웠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원주율을 구한 방식은 이렇다.

 

 

미적분학의 원조는 아르키메데스였다. 

 

 

원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계속해서 잘게 부채꼴로 쪼갠다. 아르키메데스는 원을 무려 96개의 부채꼴로 쪼갰다. 부채꼴이란 두 개의 반지름과 하나의 호(弧, arc)로 둘러싸인 영역을 말한다. 하지만 워낙 잘게 쪼개다 보니 둥근 호가 거의 직선에 가까워져서 삼각형의 한 변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다. 거의 근사한 값, 근사치를 구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96 정다각형을 만들었는데 다각형의 넓이는 어렵긴 해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하면 구할 수 있다. 다만 무진장 번거롭고 복잡하다.

 

그러나 무진장 끈질긴 집념의 사나이 아르키메데스는 여기에 더해서 원에 內接(내접)하는 96 정다각형과 外接(외접)하는 96 정다각형을 사용해서 원주율 파이의 값이 3+10/71 보다는 크고 3+10/70 보다는 적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를 소수로 바꿔보면 원주율이 3.140845...보다는 크고 3.142857... 보다는 적다는 것을 계산해낸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끝내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마지막 자리까지 찾아내진 못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 그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주율은 소수점 아래 자리의 숫자가 영원히 이어지는 무한소수이자 分數(분수)로도 표기할 수 없는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르키메데스가 사용한 방식이야말로 훗날 아이작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 미적분학의 시작이었다. 정답을 찾을 순 없어도 극도의 近似値(근사치)를 알아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微分(미분)이란 문자 그대로 극한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쪼개는 방법이고 다시 그걸 몽땅 합치는 방법이 積分(적분)이란 점에서 미적분학의 원조는 기원전 사람인 아르키메데스였던 것이다.

 

좀 더 얘기하면 微分(미분)에선 무수히 쪼깰 때 다루는 개념이 바로 極限(극한, limit)이다. 극한이란 어떤 변수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정해진 값에 한없이 가까워질 때, 무한히 다가설 때의 값이다. 따라서 어떤 정해진 값에 무한히 가까운 近似値(근사치)인 것이다.

 

 

파이(π)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미묘하고도 결정적인 변화 

 

 

아르키메데스가 알아낸 원주율의 근사치를 예전 사람들은 아르키메데스 상수(Archimedes' constant)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706년에 이르러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존스는 파이(π)라 부르기 시작했다.

 

파이(π), 이것은 소수점 아래 무한히 이어지는 무한소수이자 무리수인 원주율에 대한 호칭이다. 그것을 숫자로는 도저히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냥 파이(π)라고 부른다. 바로 이 대목에서 미묘한 그리고 결정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이제 수학에 대한 골치 아픈 이야기는 이것으로서 끝이다.)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걸 결코 정의할 순 없기에 우리가 그냥 파이(π)라고 부르듯이 어쩌면 至高(지고)의 神(신) 또는 絶對者(절대자) 역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절대자 또는 지고의 신은 마치 파이(π)와도 같다. 

 

 

지고의 신 혹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회의하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우리들은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가끔은 상정해보고 있지 않은가. 신앙을 가졌다 해도 절대자 또는 지고의 神(신)이 어떤 존재인지 사람과 비슷한 것인지 아니면 물건인지 심지어는 과연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절대자 지고의 신은 그 자체로서 不可知(불가지)한 그 무엇이다. 확정할 수 없는 원주율을 그냥 파이(π)라고 부르고 있듯이 우리가 생각하고 믿고 신앙하는 지고의 존재 또한 그런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기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본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인지 사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당신을 부르고 싶은 마음에서 달리 뭐라 형언할 수 없기에 그냥 당신을 절대자 또는 지고의 신 혹은 하느님이라 부를 뿐입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능력이 크거나 신앙이 깊어서 하느님과 통신할 수 있고 하느님 또는 절대자의 마음과 생각, 意志(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 순간 그건 망상이고 잘못된 신앙이 된다고 본다.

 

우리가 원주율 파이의 값을 확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절대자의 존재와 의지가 무엇인지 우린 알아낼 수가 없다. 그건 영원히 不可知(불가지)하다. 한 때 서양 신학자들은 그리고 철학자들은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다만 그랬을 뿐 명쾌하게 증명해내지 못했다. 우리가 원주율의 값을 결코 확정지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알 순 없지만 있다고 믿으면서 절대자의 가호를 바라고 감사하고 의지하는 것만이 참된 신앙이라 본다. 그러니 감히 절대자 또는 하느님의 뜻을 읽어내려고 한다거나 또는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이미 신앙이나 믿음이 아니게 된다는 얘기이다.

 

절대자 그리고 하느님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신앙을 가진 자들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존재가 어떤 방식이고 형식이며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신앙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은 미분의 극한값 또는 근사치 정도라고 여긴다.

 

따라서 신앙이란 절대자를 향하여 무한히 다가가는 노력이자 발걸음이라 하겠다. 마치 微分(미분)에 있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정해진 값에 한없이 가까워질 때의 근사치를 말하는 극한(limit)과도 같다.

 

그렇다면 절대자 또는 하느님의 뜻은 절대 알 수 없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겠는데 그에 대한 나 호호당의 답변은 이렇다.

 

그건 사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가령 신앙을 가진 당신이 어떤 곳을 가고자 했고 또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그곳에 가지 못했다면 그게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구나 하고 받아들이란 얘기이다. 이에 다시 아니 왜? 제가 그곳으로 가게 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묻을 일이 아니다. 그 역시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질문하기 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그 순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이다.

 

절대자 혹은 지고의 신 또는 하느님 심지어 부처님이라 해도 상관이 없다.

 

그저 신앙이란 그 존재가 나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국엔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라 여긴다.

 

저기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좋은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현재 나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보고자 하지만 그게 사실은 아닐 수도 있을 거야, 가다 보면 ‘우연’으로 위장된 필연의 인도를 통해 내가 전혀 상상하지도 않았던 그리고 내게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 거야, 이런 생각과 믿음.

 

 

신앙이란 결국 삶의 暴壓(폭압)을 견디게 하는 그 무엇

 

 

신앙의 효용이란 결국 그것을 가진 자에게 삶의 거칠고 무거운 압력, 暴壓(폭압)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얘기는 1/4도 하지 못했다. 이제 시작이다. 다음 글에선 전혀 다른 얘기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독자로 하여금 신앙을 가지라 권하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혹시나 오해할 것 같아서 드리는 얘기이다.

언젠지 모르겠다, 꽤나 오래 전이다. 원주를 지나면 진짜 강원도가 시작된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소위 양백지간의 어느 시골길이다. 늦여름이라 구름들이 화려하게 군무를 추고 있었다. 날은 그다지 덥지 않았다. 차를 잠시 멈추고 바깥으로 나가서 멍하니 구경한 기억이 난다. 그때 내 팔뚝을 부드럽게 스쳐가던 바람도 기억이 난다. 농가 한켠 밭의 옥수수들이 엄청 키가 컸었다. 늦여름 강원도 산길엔 다니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오후의 정적 속에서 잠시 피로감을 느꼈던 기억도 난다. 즐겨주시길...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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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전에 맺은 인연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수학자가 쓴 “유한 속의 무한”이란 책을 만나서 한 3년 정도 흥미롭게 읽고 또 공부한 적이 있다. 원 제목은 The Infinite in the Finite, 구글로 검색하니 1995년 1월 1일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라 되어 있다. 524페이지나 되는 제법 두툼한 책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난 그 책을 그 해 가을에 사서 읽었다. 그러니 26년 전의 일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단박에 매료되었다. 유한한 것, 즉 한정이 있는 것 속에 무한, 즉 한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니 나름 섹시(sexy)하지 않은가! 해마다 책을 정리하는 탓에 언제 처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그 책을 통해 나는 圓(원)이라는 것과 파이란 놈을 새롭게 만났다.

 

원주율, 원의 지름에 비해 원의 둘레가 갖는 비율을 파이라고 한다. 그리스 문자 Π의 소문자 π로 적는다. 원주율은 보통 3.14로 외우게 되지만 사실 그 값은 소수점 다음으로 무한히 이어지는 無限小數(무한소수)이다.

 

가령 3.141592653589...가 그것인데 여기에서 숫자 뒤의 ‘...’은 무한히 이어진다는 뜻이다. 즉 무한소수이자 無理數(무리수)이다.

 

무리수는 irrational number를 번역한 말이다. 이성적이지 않은 수, 처음 발견했을 때 너무나도 이상해서 말도 되지 않는 해괴한 수란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자연은 곡선과 원을 좋아한다. 

 

 

圓(원), 영어로 circle, 이 녀석은 참으로 재미난 놈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체나 물건들은 직선보다는 곡선(curve)으로 되어 있다. 자연 속의 운동하는 것들도 대부분 직선보다는 곡선을 그린다.

 

어린 시절 야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시절엔 투수가 던지는 直球(직구)가 진짜 직선을 그리는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직구가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꽤나 놀랐다. 직구라는 말은 따라서 당연히 틀린 말이지만 그래도 흔히 사용한다. 돌직구, 뭐 이런 식으로. 영어론 fastball, 速球(속구)라고 하는데 그게 훨씬 맞는 말이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놈들은 스트레이트하거나 선형(linear)을 그리지 않는다. 직선을 찾아보긴 어렵고 곡선 또는 포물선을 그린다. 중력이나 공기 등등 일직선 운동을 방해하는 놈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렇다. 자연은 복잡하다, 그래서 직선을 보기 어렵다.

 

 

문명은 기하학과 함께 발전해왔다. 

 

 

이 대목에서 시작해보자. 약간 에둘러 가긴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농업경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농업은 땅이 중요하다. 땅이 크면 산출량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땅의 크기를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니 그게 바로 기하학이다.

 

가령 왕이나 권력자들은 신하와 관료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을 것이다. 야, 이놈들아, 어서 빨랑 전국의 농지들을 측량해서 내게 보고해라, 그래야 가을에 가서 얼마나 세금으로서 곡식을 얼마나 거둘 것인지 알게 아니겠냐고, 냉큼 실시!

 

기하학을 영어로 geometry 라 한다. geo-는 땅, metry 는 측정한다는 뜻이니 땅의 길이와 넓이를 측정하는 기술로 시작되었다. 가장 재기 쉬운 땅은 사각형의 땅이다. 그렇기에 square 란 영어단어는 사각형이란 말도 되고 제곱하다는 동사형도 된다. 정사각형은 한 변의 길이만 알면 그것을 제곱하면 되니 그렇다.

 

정사각형의 땅, 얼마나 좋은 땅인가, 흔히 말하는 네모반듯한 땅이니.

 

 

井田(정전)법

 

 

고대 중국 周(주)나라 시절 실시되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중에 井田(정전)법이 있다. 정사각형의 땅을 우물 井(정)자 형태로 9등분한 다음 8가구에게 1/9씩 나누어준다. 나머지 1/9에 해당되는 땅은 8가구가 공동 경작해서 그 산물을 세금으로 바친다. 정전법이 과연 실시되었느냐의 여부는 여전히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아무튼 이상적인 토지분배제도의 모범으로서 전해져온다.

 

땅을 정사각형으로 측정하고 다시 그 땅을 1/9씩 정사각형으로 나누어준다, 그러니 당연히 기하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령 9개로 나뉜 네모반듯한 땅에서 밀을 90포대 생산했다고 가정해보자. 10포대는 나라의 세금으로 바친다. 그러면 세율은 어떻게 될까? 하고 계산해보면 1/9, 즉 11.11%가 세율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나라에선 인력을 동원하고 특산물을 가져가는 등등 여러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오늘날보다 세율이 훨씬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국가는 세금을 더 많이 받아서 복지나 교육 등등에 쓰고 있다. 큰 정부가 그것이다.)

 

 

삼각형을 다루다 보니 발생한 대형 사고 

 

 

돌아와서 얘기이다. 기하학에서 가장 편한 것은 사각형이다. 즉 사각형을 측정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땅이 다 사각형으로 잘라지진 않는다. 그러니 삼각형을 다룰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피타고라스 선생이 등장한다.

 

직각 삼각형일 경우 빗변의 제곱이 두 직각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고 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그것이다. 그러자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직각변이 각각 1이라 할 때 그 제곱의 합은 2가 되는데 그게 빗변의 제곱과 같으니 그 제곱근을 구할 것 같으면 이상한 숫자가 나온다. 말도 되지 않는 수, 비이성적인 수, 즉 無理數(무리수)가 등장한다.

 

2의 제곱근은 無限小數(무한소수)로서 가령 1.4142135..., 식으로 무한히 이어져간다. 만물이 整數(정수)의 비례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인지라 그 제자들은 이 이상한 숫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비밀로 했고 심지어 외부에 발설하는 자는 죽였다고 하는 전설마저 전해진다.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만들어지고 발전했는데 가장 단순한 도형인 삼각형, 오각형이나 육각형도 아닌 겨우 삼각형에서에서부터 無理(무리)한 일이 발생했으니 이를 어쩐다! 인류의 지혜는 엄청난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無理(무리)를 뛰어넘은 인간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인간이 어떤 동물인가? 가령 1 만 명을 모아놓으면 그 중에 반드시 고지능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자가 한 놈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하늘이 부여한 재주란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돌연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인데 바로 그들이 문명을 발전시켜온 주역들이다.

 

그 결과 말이 되는 수(유리수), 말이 되지 않는 수(무리수)를 떠나서 우리 인간들은 꾸역꾸역 기하를 포함해서 학문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천재님들 덕분이다.

 

삼각형의 경우 골 때리는 문제와 봉착하긴 했어도 결국 삼각법을 개발했다. 바로 trigonometry, 삼각형에 관한 기하학이 그것이다. 이는 또 나중에 아서 그러니까 오늘날에 이르러 평범한 수준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사정없이 괴롭히는 ‘삼각함수’로까지 발전했다.

 

 

원(circle)이란 놈, 최대의 난제

 

 

그런데 말이다, 기하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급기야 최대의 난관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바로 원(circle)에 관한 측량 또는 문제가 그것이다.

 

원이란 놈, 이거 알고 보면 엄청난 怪物(괴물)이다.

 

삼각형을 비롯해서 다각형은 어찌어찌해서 그 넓이를 그런대로 잴 수 있게 되었지만 정말 골 때리는 놈은 동그라미 모양이었다. 원 또는 동그라미는 우선 변(side)이 없다는 점에서부터 다른 도형과는 차이가 난다. 가령 팔각형의 경우 변이 8개이다. 그런데 원 또는 동그라미는 변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

 

변이 있어야 그 놈을 재어서 뭘 어떻게 해볼 터인데 아예 변이 없으니 그걸 어떻게 잰단 말인가? 하는 문제에 우리 조상들이 봉착한 것이다.

 

영리한 우리 조상들은 일단 원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원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타원, ellipse 가 아니라 그냥 원, 퍼펙트한 서클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참고로 타원의 영어단어 ellipse 에 대해 잠깐 얘기하면 뭔가 모자란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다는 점 알려드린다. 타원은 중심에서 원주까지가 일정한 원이 아니라 ‘삐꾸’가 나서 일그러진 원이라 보면 된다.)

 

 

자연 속에선 원이 아주 흔하다는 놀라운 사실! 

 

 

그런데 자연은 놀라운 현상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선 삐꾸가 난 타원보다 오히려 완벽한 형태의 원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빗방울이 수면 위에 떨어지면 동심원을 그려낸다. 완벽한 원이다. 무지개가 떴다, 안벽한 원의 반쪽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전자신호나 빛, 그리고 소리가 퍼져나갈 땐 원을 그린다. 바닷가에 나가 자세히 보면 파도 역시 끊임없이 원을 그리면서 밀려온다. 그런가 하면 우주 속의 별이나 행성들도 거의 원의 입체형인 球(구)에 가깝다.

 

자연계에서 도형을 보고자 할 것 같으면 정사각형, 정삼각형 등등 ‘정’자가 붙는 도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보면 원은 흔히 보인다. 뿐만 아니라 타원보다 원이 더 흔하다는 점, 이거 놀랍지 않은가!

 

바로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은 1995년 가을 앞에서 소개한 책을 만났을 때 어쩌면 자연과 절대의 세계는 원이란 놈 안에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얘기는 짧게 쓸 생각이 아니다. 편하게 그리고 나름 흥미롭게 써볼 생각이다. 시리즈 글이란 얘기이다. 물론 도중에 다른 글도 올릴 생각이다.

 

11월에 수채화 전시회를 한다. 그 바람에 작품 마무리에 바빠서 일주일간 글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행정처리만 하면 되는 터라 편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8월에 그린 드로잉이다. 다시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올린다. 작업실 에서 교보 쪽으로 걷다 보면 만나는 이면 도로이다. 현장에서 펜으로 스케치를 한 후 나중에 담채를 올렸다. 트럭은 사진을 찍은 뒤 나중에 확인하고 그려넣었다. 자주 가게 되는 골목이고 내가 잘 가는 일식집이 내 눈엔 보인다. 뒤쪽의 높은 아파트는 대우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이다. 몰랐지만 써밋이란 이름이 붙으면 푸르지오 중에서도 럭셔리 아파트라고 한다. 그래 정상에 올랐으니 떨어지지 말고 잘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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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다, 산책을 했다. 맑고 투명한 빛이 찻길에 쏟아지고 있다. 한낮의 기온은 아직 약간 덥다. 나는 그늘 아래로 걸었다.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김춘수 시인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길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진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 눈앞에 있고 내가 그 속에 있는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하지 싶었던 것이다. 셔터를 누르면서 떠올랐다. 아, 이건 그냥 늦가을이야! 하고. 나는 늦가을 속을 걸어갔다. 

 

늦가을 속을 걷다가 언덕 위의 하늘과 소나무들을 만났다, 아니 작은 나무들과 풀과도 만났다. 어느 누가 나를 유혹하는 거지? 궁금했다. 하늘일까? 저 소나무들의 늘씬한 허리춤일까? 그냥 그늘 속의 풀들일까?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멋진 놈은 그냥 늦가을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월은 멋지다. 

 

바깥이 아니라 서울 안인데 벌써 담쟁이들도 예쁜 색을 드러내고 있다. 눈길이 갔다. 그래 늦가을의 정취는 역쉬! 빨갛고 노란 담쟁이지, 하다가 아니 콘크리트 벽에 서린 이끼 역시 빠지면 섭하지, 암 그렇지, 했다. 그래 너도 굳이 담쟁이 이끼 콘크리트 하지 말고 그냥 모두 늦가을이라 하지 뭐. 거리에 쏟아지는 늦가을 햇살과 그늘, 소나무와 하늘, 풀잎들, 담쟁이와 이끼, 모두 늦가을이라면 나 호호당 역시 다른 이의 눈에 늦가을로 보일까? 그게 궁금해졌다. 늦가을 남자, 또는 늦가을 영감.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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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머리가 무거워도 약간만 미열이 있어도 혹시 그 놈일까? 하며 신경을 곤두 세운다. 누굴 만났더라? 하고 며칠 사이의 접촉을 되돌아본다. 이런 이게 참 힘들다. 백신을 두 번이나 접종했지만 그럼에도 담배와 시가를 피우는 나 같은 사람은 걸리면 골치 아프다. 바깥 나들이도 잘 하지 못한다. 늙은 탓에 힘이 든다. 몇 년전 다녀온 풍경이다. 35번 국도를 타고 낙동강 지류를 따라가면 청량산을 만난다. 늦은 가을이었고 온 산은 단풍, 물가는 억새와 갈대 등 수초들로 가득했다. 언젠가 그려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다. 다시 가봐야지 하고 다짐한다. 가게 되면 차를 세우고 얘기해야지, 아, 오랜 만이야, 잘 있었어? 아, 참, 신령님도 잘 계셨구요, 하고.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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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 하회마을이 유명하지만 사실 안동 제일의 경치는 가송리 부근이다. 35번 국도를 따라 청량산을 지나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고산마을 앞에서 동네 도로로 들어서면 맞은 편에 고산정이 보인다. 그곳에서 그냥 허접한 시멘트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고산정에 도달한다. 고산정 앞에 서면 높은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그림 왼쪽의 그것이다. 그 앞을 월명담, 달이 밝게 비치는 연못이란 이름인데 그 경치가 참으로 절경이다. 그림 오른 쪽의 마을이 가송마을이다. 가을 분위기를 넣어서 그렸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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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의 억지 귀성을 보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좋은 연휴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기간이 되고 말았다. 명절 동안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말하는 ‘명절 증후군’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이었다. 벌써 25년씩이나 되었다.

 

처음엔 며느리 증후군이란 말로 시작되었다가 이젠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반적인 명절 증후군으로 정착되었다. 이번 추석 기간에도 당연히 그런 말이 들려왔다.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줄여 얘기하면 歸省(귀성)하는 행위 자체가 심리적 물질적 모두 합쳐서 득이 되거나 위안이 되기보다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돈만 들고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필요 없다 싶은 짓은 1초도 신경 쓰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왜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아직도 귀성을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오랜 문화적 풍습이고 관행이어서 거부하기엔 심리적 저항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니 이 또한 그렇게 오래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될 무렵엔 분명히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명절의 바탕에는 제사가 놓여있다. 제사를 하지 않거나 사라지면 사실 명절은 그야말로 연휴에 불과해진다. 어쩌면 연휴로서의 명절은 귀성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남을 수도 있겠다. 쉴 명분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소속감을 주던 제사의 역할이 사라졌고 잊혔으니 

 

 

제사는 종교적 행위이다. 오늘날 지자체마다 이런저런 축제가 많지만 그 역시 그 바탕에는 제사가 있다. 祝祭(축제)란 단어의 뒷 글자가 바로 祭(제), 즉 제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자체의 축제에 가보면 제사를 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축제일 수 있겠는가.

 

祭祀(제사) 줄여서 祭(제)는 종교적인 의식으로서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인류 최초의 종교는 바로 가족 종교였다. (이는 나 호호당의 주장이 아니라 종교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이후 사회가 커지면서 부족의 신에 대해 제를 올렸고 나중엔 도시국가 형태의 나라가 되면서 나라의 신에 대한 제를 올렸지만 그럼에도 집안마다 가족의 신, 조상신에 대한 제사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제사가 가진 가장 큰 기능은 그 제에 참가하는 사람들만이 그 가족 혹은 집단의 구성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데 바로 그 소속감을 제사가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도 ‘나’라는 단어보다 ‘우리’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사라졌다. 우리란 말은 집단과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이어지려면 어떤 형태의 제사이든 거기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라지고 마침내 ‘나’라고 하는 개체만 남게 된다.

 

 

신이 사라진 세상이라

 

 

유일신 신앙을 가진 기독교나 이슬람의 경우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때만이 위안을 얻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불교 역시 ‘참된 나’를 깨닫는 수행이라 하지만 대중에게 있어 불교는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들에 대한 믿음이고 그 속에서 위안 즉 소속감을 얻는다. 또는 수행을 많이 한 스님, 가톨릭의 경우 聖者(성자)들에 대한 믿음이 위안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소위 선진산업국가들을 보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사실상 희박해졌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더 지배적인 요소가 되었다. 니체의 말처럼 “神(신)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경우 불교 개신교 가톨릭이 주된 종교하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그를 통해 소속감을 얻고 위안을 받는 사람들 즉 진정한 信者(신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시골 선산을 다 팔아치우자 귀성할 이유가 사라졌고

 

 

우리 사회를 보자. 과거의 농어촌공동체는 이미 철저하게 없어져버렸다. 더불어 1990년대에 이르러 시골의 문중 땅이나 先山(선산) 역시 국토개발로 인해 다 팔아치워졌다. 그러니 시댁의 어른 중에 돈 되는 땅이나 부동산과 같은 재산을 가진 이 또한 이젠 거의 없다. 1996년부터 명절 며느리 증후군이 생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며느리의 경우 시골 시댁에 내려가서 눈도장을 찍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귀성하는 부부의 경우 남편이 아내를 달래가면서 내려가야 하고 바삐 올라와야 한다. 처갓집도 가주는 것이고 그렇다. 하지만 그 자녀들의 경우 시골에 가면 아무런 재미가 없다. 어릴 적엔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았겠으나 좀 크고 나니 취직은 어떠하니, 결혼은 할 거니 등등 짜증나는 잔소리만 듣게 된다. 가기 싫은 것이다. (그 결과 자녀와 손주를 보고픈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꾸로 올라온다, 역귀성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공동체는 제사 또는 제식을 통해 작용하는데 

 

 

그 어떤 공동체도 그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상징적인 것, 또는 상징이 있다. 그게 바로 제사이고 축제이며 의식이다. 그 대상이 먼저 가신 부모님이든 조상신이든 하느님이든 호국영령이든 아무튼 뭔가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를 통해 그 一員(일원)임을 확인하고 그로서 구성원이 되어 소속감을 얻는다.

 

구성원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정신적 물질적 도움 혹은 扶助(부조)를 받는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를 함께 나눈다. (온라인으로 송금하는 것 역시 일종의 부조이지만 직접 행사에 참가하는 것에 비하면 소원하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미립자 전자 알갱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모두가 낱알이고 모래알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이다.

 

그 결과 OECD 나라 중에서 공동체 의식이 가장 희박한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여타 선진산업국가들의 경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사실상 희박해졌지만 그럼에도 공동체적인 요소는 여전히 살아있다. (예를 들자면 유럽에서 축구팀이란 공동체의 한 상징이며 그를 통해 소속감을 얻는다. 하지만 우린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란 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공동체가 없어졌다. 공동체야말로 귀속감의 원천이고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인데 말이다.

 

그러니 이젠 나와 내 가족이 의지할 곳은 그저 내가 가진 돈과 재산만이 전부이다. 또 하나 유행하는 대안이 바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연신 선거철마다 무상복지를 흔들어댄다.

 

 

갑질, 차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는 사회

 

 

공동체가 없어졌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철저한 남이 되었다. 그 결과 연봉을 얼마 받느냐, 대기업이냐, 아이폰 가지고 다니느냐, 강남에 사느냐 무슨 차를 모느냐 등등 오로지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남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편이다 싶으면 그로서 위안을 얻는다.

 

그게 바로 차별이다. 서로를 차별하고 상대를 평가하는 이상하고도 살벌하며 駭怪(해괴)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수 십 년간 오로지 진보와 발전만을 외치며 달려오는 사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단히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때 1인당 GDP가 높아지면 행복할 줄 알았었고 그 기준에서 보면 우린 분명 선진국이다. 그런데 힘들고 외롭다. 오히려 가난한 나라들, 저소득 국가 사람들의 삶이 우리보다 더 괜찮아 보인다, 왜냐면 거기엔 공동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2천만이 살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여기에 일부 지방의 산업도시, 이게 사실상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은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터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벼운 존재이다. 언제든 ‘쌩을 깔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허공 속에 떠다니는 전자 미립자 알갱이와도 같다. 데이트 역시 두어 번 만나면 안녕이다. 별 볼 일 없기 때문이고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어차피 결혼할 상대도 아니니 서로 가벼운 것이다.

 

이젠 최소한의 공동체인 가족마저 해체될 판이다. 결혼하자니 집을 구할 수 없고 집을 마련한다 해도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다. 아기를 양육할 돈으로 차라리 우리끼리 잘 쓰고 즐기다가 나중에 애정이 식으면 이혼하자는 식이다. 그러니 굳이 결혼식을 할 이유도 없어지고 있고, 그냥 살다가 어느 날 헤어지면 그만이란 생각이다.

 

그저 드라이한 소비사회, 향락만 추구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마저 잃었으니

 

나 호호당은 최근 젊은이들을 대하노라면 그저 측은하다. 불쌍하다. 기댈 곳도 의지할 데도 없으니 FIRE 족인가 뭔가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최대한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해서 자신의 삶을 즐겨보자는 것이 기껏이고 한껏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될 까 싶다.)

 

그런 그들에게 왜 너희들이 어렵고 힘든지 얘기를 해주어도 아마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 예전엔 삶의 ‘폭압’을 견디게 해주던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더 측은하고 불쌍하다.

 

나 호호당 역시 모른다. 낱알이 되고 미립자 전자 알갱이가 되어버린 것을 어떻게 다시 결집토록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다.

 

2000년 초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을 모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저 기대해볼 것이라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도 있다는 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살기 위해서라도 길을 찾는 움직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이 있다. 국운의 입춘 바닥은 2024년, 하지만 그게 이렇게 되리라곤 전혀 알지 못했다. 정말 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