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시킨다는 말을 들었던 것인지 몰라도 내가 그만 눈을 뜨고 말았지, 그래서 지금껏 살아 있는 거요.”

 

콜택시를 타고 귀가 중이었다. 나 호호당은 택시를 타면 기사 분에게 말을 잘 건다. 종일 운전 하느라 지쳐서 무표정해진 기사 양반의 기분 전환이 목적이다. 그래야 거기에 몸을 실은 나 호호당도 무사할 것이니.

 

기사 분이 세상 참 더럽다 하면 네, 더러운 세상 사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한다. 세상 썩었다 하면 네, 그래서 저는 악취 때문에 마스크를 꼭 하고 다닙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란 말씀, 하고 동조한다. 여당을 지지하면 네, 맞습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식으로 맞추어주고 반대로 여당과 대통령을 까면 그럼요, 아주 죽일 놈들이지요, 하고 맞장구를 친다.

 

오늘 그 분은 연세가 여든 둘이라고 했다, 저 옛날 4.19 혁명이 있었던 해부터 택시 보조 운전기사로 출발했다고 했다. 택시 운전 경력이 그렇다면 무려 60년이 넘었다는 얘기. 대단하지가 않고 ‘대다나다’.

 

옛 시절 여의도에 아파트란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 조용기 목사가 교회당을 세우던 얘기, 그러다가 조용기 목사가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는 얘기 등등 이어지다가 갑자기 그런데 말이오,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아무런 소용 없습디다, 하시는 것이었다.

 

왜요? 하고 물었고 이에 오늘의 주제에 해당되는 얘기가 시작되었다.

 

“11 년 전이었오, 동생들과 제주도로 놀러갔는데, 난 생전 생선회라는 것을 먹질 않는데 동생 가족들과 다 함께 어울리다 보니 먹지 않았겠오, 그런데 그리고선 바로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 실려 갔지 뭐요, 나중에 비행기에 실려 서울로 왔다고 합디다, 무려 100일 이상 의식 없이 지냈지 뭐요.”

 

“난 기억도 없지만 의사 놈들이 매일 촬영하느라 내 몸을 이리저리 싣고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말이요, 이상하게 죽지는 않더라는 거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나셨습니까? 하고 물었지만 이미 기사 분은 자신의 얘기에 취해서 내 질문 따윈 들을 생각도 없이 그냥 혼잣말로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난 그저 아, 네, 아, 네, 하면서 듣고만 있었다.

 

“당시 난 몰랐지만 의사 놈들과 동생들이 합의를 본 거요, 안락사로. 나중에 동생들에게 따졌더니 의사 얘기가 환자분께선 전혀 고통이 없으실 거라 해서 그냥 동의했다는 변명인지 해명인지, 그러는 거 아니겠오, 뭐 이해는 가지만 말이유.”

 

“그런데 말이오, 의식이 없던 내가 어떻게 그 얘기를 들었던 모양인지 안락사하기로 날을 잡은 날, 그러니까 거사일 날 아침에 내가 그만 눈을 뜨고 말았던 거요.” 그러면서 기사 양반은 크게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히히히, 핫하하! 웃기는 일이지 뭐요.”

 

순간 생년월일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어르신,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뜻밖에 왜요? 그걸 알아서 뭐 하시려고, 하더니 뒤이어 바로 1940년 6월 26일이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음력이시죠? 하고 확인을 했더니 그야 당연하지요, 했다.

 

어르신 혹시 태어난 시각도 아십니까? 하니 정확하진 않아도 새벽녘이라 하던데, 왜 사주팔자 같은 거 볼 줄 아시유?, 이에 나는 아니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는 사이에 난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어 만세력을 확인했다. 최근에 장만한 스마트폰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1940년 6월 26일 寅(인)시 정도라 하면 庚辰(경진)년 癸未(계미)월 甲戌(갑술)일 丙寅(병인)시 정도가 된다.

 

척 봐서 2004년 甲申(갑신)년이 입춘 바닥이니 2010년은 官運(관운)의 바닥, 불연 사고로 세상을 떠날 운이다. 예전 같으면 저승사자 만났다. 아니, 하느님 곁으로 갔다.

 

그래서 사고가 났던 달을 물어보니 9월이라 했다. 庚寅(경인)년 乙酉(을유)월, 월운 또한 바닥에 怯財(겁재)운, 딱! 이다. 제대로 가는 운이 맞다, 그런데 의식만 잃고 죽지 않았다.

 

원인을 물어보니 간과 신장 기능이 급성 마비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의사 놈들 말이 그렇다고 했어, 개새끼들, 저들이 뭘 알고 하는 말인지 나 원 참.”

 

“100일 이상 자빠져 누웠는데 실컷 검사만 하다가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의사 놈들이 판단했다는 거야, 치료비가 계속 들어가니 미안했던 모양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를 안락사 시키기로 결정했는데 거행 당일에 내가 눈을 뜨고 말았어!” (다시 한 번 기사 양반의 호탕한 웃음.)

 

“근데 말이야, 치료비만 1억2천이 나왔어, 그 바람에 졸지에 집을 팔아 갚아야 했어, 퇴원한 뒤에도 계속 약을 먹느라 또 1억 이상 나갔어. 뭔 놈의 약값이 그리도 비싼지, 도둑놈 새끼들. 에이 씨! 집 팔아서 남은 돈마저 역시 홀랑 날아가고 말았어. 지금 겨우 전세 살아, 겨우. 에이 씨. 문재인 저 놈은 집값만 올리고 말이지.” (문재인 대통령 또 욕을 먹는다.)

 

“그런대로 회복하고 나니 또 문제야,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겠수, 배운 거라곤 운전질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요즘 젊은 것들은 택시 안 해, 배달, 뭐라더라? 라이더? 그게 돈이 된다고 해서 택시 자리가 다시 나더라고, 그래서 여태 택시하고 다니고 있지 않겠수.”

 

크크크, 계속 웃음이 나왔다. 어르신, 교회 다시 나가시지 그래요, 했더니 “아니 무슨 놈의 교회, 그렇게 열심히 돈을 갖다 바쳤어도 봉변을 당하고 집 한 채 전 재산 홀랑 날려먹었으니 내가 왜 교회를 나갑니까, 나가긴 무슨.”

 

어르신, 생각해보세요, 돈은 잃었어도 목숨을 건졌지 않습니까? 그거 다 하느님께서 특별 서비스를 한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넌 있다가 오너라, 하고 말입니다.

 

“여보슈, 그 바람에 내가 아직도 운전질 하느라 이 개고생이요, 개고생. 나이 여든 둘에 말이오.” (난 왜 이럴 때 으레 개가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난 예뻐 죽겠는데.)

 

나는 다시 유쾌하게 웃으면서 그래도 그게 남는 장사 같은데요, 제 생각엔 말입니다, 했더니 그 양반 답하길 하기야, 뭐 그렇지, 살았으니, 쩝.

 

아직 건장해보였다, 허리가 여전히 꼿꼿했다. 운전대를 말아 쥔 주먹도 큼직한 것이 타고나길 강골이었다. 90은 찍어보셔야죠, 하고 말하니 나도 그럴 생각이오, 90 한 번 찍어보고 갈 생각이오, 그래야 본전은 뽑지 않겠오, 안 그래요? 하는 대답이었다.

 

속으로 추산을 했다. 이 분, 아마도 빠르면 2028년이고 대충 2030년에 가실 것 같구나 싶었다. 2028년이면 여든 아홉이고 2030년이면 아흔 하나. 부디 소원대로 아흔 넘어서 가시길, 하고 속으로 기원을 올렸다. 하느님, 마, 그 정도로 해주시죠, 교회 안 나간다고 삐지시지 마시고, 그간 마이 무따아입니까, 네?

 

정리해본다.

 

그 양반, 입춘이 2004년이었으니 2010년이면 죽을 운이었다. 그런데 타고난 체질이 강골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하느님께서 봐주셔서 그런지 100일 이상 코마(coma)에 빠졌다가 의식을 되찾아 살아났다.

 

요금이 자동결제라서 내리기 직전 현금 2천원을 지갑에서 꺼내어 드렸다. 이거 팁이 아니라 祝壽(축수)!, 오래 사시라고 제가 드리는 겁니다, 했더니 아, 네 고맙습니다, 선생께선 하느님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했다. 크하핫! 감-사합니다, 하고 답례하고 내렸다.

 

겨우 2천원에 그런 말을 들었으니 이거야말로 대박 남는 장사! 흥겨워서 담배 한 대 빼어 물고 동쪽 하늘의 달님에게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나가는 꼬마 계집아이 둘이 앗, 담배연기 독가스! 도망가자! 하면서 나를 스치고 멀리 달아났다. 이건 또 뭐야? 하느님 격으로 승격했다가 순식간에 독가스 흩뿌리는 死神(사신)이 되고 말았으니, 미국 의사 놈들과 보험사 사기꾼들이 담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몰아세운 거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