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내리는 때를 맞이하여

 

 

어제 7일로서 白露(백로)였다. 아침나절에 이슬이 맺히는 계절이란 뜻이다. 이는 물이 내린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내리는가 하면 대기 속에서 내린다. 허공에서 이슬로 맺힌 물은 나뭇잎 끝에 잠시 머물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다시 땅속으로 스민다.

 

한 해 또는 1년(a year)이란 것은 그냥 단순한 시간의 단위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 해는 달력으로 표시되는 무의미한 숫자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건 오르고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은 느껴서 알고 있다. 백로는 이제 한 해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하루가 子正(자정)에 시작해서 子正(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캄캄하던 동녘이 밝아오면서 시작되고 중천의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가면서 마무리를 짓는 것과 같다.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한 해의 오르고 내림에 대해 헷갈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햇빛은 6월 22일 경의 夏至(하지)에 절정에 올랐다가 그로서 다시 내리기 시작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한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뭔 소리? 이제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기온, 즉 열에너지는 7월 24일 경의 大暑(대서)로서 절정에 이르지만 그 역시 그로부터 한 해가 내리기 시작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았다고 여긴다.

 

열은 공기 중의 수증기 즉 수분을 통해 우리 피부에 느껴진다. (끈적한 더위를 무더위, 즉 ‘물’더위라고 한다.) 열은 이미 내리고 있어도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어디론가 빠져나가서 약간 건조함을 느껴야지만 사람들은 이제 더위가 물러가고 그로서 한 해가 내리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대기 속의 수증기가 빠진다, 어디로 빠지는가? 묻는다면 이슬로 맺혀서 땅속으로 스며든다. 사실 그런 움직임이 시작되는 때는 8월 22일 경의 處暑(처서)이다. 하지만 그 시작되는 순간을 사람들은 거의 포착하지 못한다.

 

 

백로로서 본격적인 내림의 때가 시작되니 

 

 

대기 속의 물이 줄어들고 있음을 약간이나마 體感(체감)하는 때는 바로 白露(백로)이다. 어제가 백로였다. 그러니 이제 사람들은 한 해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제 2021년도 내리기 시작했고 저물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나이든 사람들은 이제 올 해도 다 갔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리막길이 구체화되고 가팔라지니 다 갔다는 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올 해도 이제 곧 금방 지나가리라 싶은 심정이라 하겠다.

 

내리고 마무리된다는 말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다. 내년 3월의 대통령 선거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새 문재인 정권은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거창한 시작과 씁쓸한 결말

 

 

초장에 그야말로 멋진 포장으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였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너무 과했다, 말이 멋지다 보니 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우아한 포장은 묘하게도 5년 임기의 중간 지점인 2019년 8월 9일에 시작된 이른바 “조국 사태”로서 풍비박산이 났다. 오늘에 이르러선 그 포장지의 조각이나 티끌마저 어디론가 날아가서 보이지 않는다.

 

조국 사태 이전까지가 문재인 정부의 오르는 과정이었고 조국 사태로서 내리는 과정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현 정부 역시 역대의 모든 정부가 걸어간 길을 충실하게 밟아가고 있다. 定石(정석)이다. 정석하면 으레 “수학의 정석”이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오르고 내림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모든 게 오르고 내린다. 昇降(승강)이다. 한 해는 하나의 승강이고 하루 또한 하루해의 승강이다. 나 호호당이 늘 얘기하는 60년의 순환 역시 30년의 오름이고 30년의 내림일 뿐이다.

 

오르고 내림, 실은 이것이지만 그게 그것만은 또 아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오르내림 속에서 종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새 해가 시작될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경건한 마음으로 기원을 담고 소원을 빌면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그 기원이나 소원, 소망을 몽땅 망각해버린다, 그저 눈앞의 일이 급급할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느 때가 되면 처음 오르기 시작할 때 소원과 소망, 기원의 마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다시 알아차린다. 하지만 현실은 늘 기대나 소망, 소원에 비해 부족하기에 또 다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부랴부랴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간다. ‘혹시나’가 ‘역시나’네 하면서.

 

여기까지라면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진짜 이상한 것은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오름의 때를 맞이하면 어느새 또 다시 기원과 소망, 소원을 경건한 마음으로 빌어본다는 사실이다. 때론 이번에 다르다, 다를 것이다, 달라야 한다, 이런 마음까지 드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늘 스스로를 속인다.

 

늘 되풀이하면서 늘 새롭게 느껴지고 그래서 새로운 기원을 빌어보게 되는 우리들이다. 이상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니 이게 바로 종교가 아님 달리 무엇이랴!

 

 

으레 그려려니 하는 나 호호당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면 그쪽에 표를 던진 쪽은 물론이고 던지지 않은 쪽 역시 은근히 기대해본다. 그리곤 어느새 실망감이 들고 나중엔 표를 던진 자들도 등을 돌린다. 그러니 역대 최악의 정권은 늘 현 정권이 되는 이 기묘한 현상!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와 코로나19, 그리고 최대 재정적자, 이 세 가지의 압축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나 호호당은 이제 나이가 좀 되다보니 새 정권에 대해 종교적 기대나 소망을 가지고픈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렇게 된지 좀 되었다.

 

우리 국운이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생각, 김영삼 정권부터 여러 차례 지켜봤지만 늘 최악의 정권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경험 등등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이는 역대 정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기보다 종교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실은 훌륭했던 업적들도 많다, 참으로 그렇다.)

 

그렇기에 이재명이냐 윤석열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홍준표가 다소라도 치고 나오면 흥미는 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고작이다. 어차피 다음 정권은 현 정권이 왕창 질러놓은 재정 문제와 미국의 금리인상, 미중간의 갈등, 북한 문제 등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보내긴 어려울 것 같으니 말이다.

 

돌아와서 얘기이다. 어제 9월 7일이 백로였고 이로서 한 해의 내림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반대로 말하면 3월 5일 경의 경칩으로서 한 해의 오름이 피부에 와 닿는다고 하겠다.

 

 

엔딩 게임의 때 

 

 

백로로부터 석 달, 그러니까 12월 초의 대설이 되면 한 해가 사실상 마무리된 후 모든 것들이 겨울잠에 들거나 잠시 사라진다. 그때부터 석 달 간, 그러니까 3월 초까진 ‘없음’의 기간이다. 야구로 치면 스토브(stove) 리그의 기간, 그라운드에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9월, 10월, 11월, 이게 엔딩 게임이다. 그러니 서두를 것이 있으면 긴장해야 하겠고 잘 되고 있으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리라. 올 해는 망쳤구나 싶으면 다시 내년을 기대하는 종교적 기대를 가져야 하겠다.

 

이 석 달을 야구로 치면 9월은 7 이닝이고 10월은 8 이닝이며 11월은 9 이닝이다. 야구 관전의 묘미는 7 또는 8 이닝이듯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 들어 글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워한다. 글의 소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그렇다. 또 독자들이 쉽게 심플하고 산뜻하게 읽고 넘어갈 소재들보다는 무겁고 복잡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소재들만 자꾸 떠올라서 그렇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상황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