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허황된 말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이런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실은 틀렸다.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렇다.

 

해마다 연말 무렵에 책방에 가면 가장 손이 잘 가는 매대에 가령 2022년 대 예측, 2022년 산업과 기회 등등 이런 제목을 붙인 책들이 으레 놓여있기 마련이다. 눈길이 가기 마련이고 제법 팔릴 것이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 주는 편이다. 내년의 이슈가 아니라 책이 출간된 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핫 이슈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더라도 목차만 살필 뿐 거의 읽어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년 말 경에 가서 책의 예측 내용을 그간의 일과 대조해본다. 그게 재미가 있다. 대부분 ‘영 아닌데!’로 끝난다. 그래서 피식-웃곤 한다.

 

코로나19가 꺼지지 않고 현재도 대유행 중이다. 그러니 연말이면 내년에 더 무서운 怪疾(괴질)이 닥쳐올 거란 예측도 당연히 나올 것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최대의 증시 파국이 올 거란 예측도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 주로 들어맞지 않고 또 맞는다 해도 우리가 상상하는 식으론 절대 오지 않는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할 순 없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앞의 예를 들었다.

 

최근 새롭게 뜨는 분야가 무엇인지 장차 어떤 분야가 부각될 것인지, 그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은 일순 그럴 듯해도 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준비하다가 스트레스 받아 죽을 판이니 

 

 

잘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래에 대해 통제 가능한 변수와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있다는 얘기이다.

 

통제 가능한 것은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 가령 일을 하면서 부족한 스킬이 있다면 학원이나 선생을 찾아가서 배울 일이다. 향후 수입이 부족할 것 같으면 미리미리 알아서 보충할 수 있는 수입원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비만하다면 체중을 줄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고 노화로 다리가 약해진다면 운동을 좀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무슨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말고.

 

그런데 통제 불가능한 미래의 변수는 준비할 일이 아니다. 준비할 수가 없다. 준비하고자 이것저것 찾아보면 億數(억수) 無盡藏(무진장)이다.

 

그렇기에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지만 무얼 준비할 지 알 수 없다는 현실의 벽이 있다.

 

이쯤에서 길게 얘기할 것 없이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제시한다.

 

 

그냥 재미 삼아 놀다 보니 그게 기회가 되었으니 

 

 

대형 유통기업에서 수입 와인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분이 있다. 현재 40대 중반인 이 양반이 어떻게 와인 총책이 되었는지 알아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대학을 마친 후 유통업체에 입사한 그는 평소 혼자 있을 때 약간 울적한 멜랑콜리가 있었다. 미혼이었던 때라 퇴근하고 귀가해서 혼자 지낼 때 우연히 와인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그냥 심심풀이 취미 삼아 술을 먹더라도 좀 알고 먹어보자는 이유였다. 책도 사보고 와인을 사서 마셔도 보고 하는 취미.

 

취미 삼아 공부하게 된지 3-4년 되었을 시점, 2002년 연말 무렵이었다. 지금은 작고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와인을 소개하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그 해 삼성전자는 드디어 글로벌 중앙무대에 막 올라서던 때였다.) 우리 경제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분이 와인을 오랫동안 즐겼다면서 소개하자 갑자기 화제가 되었고 이에 너도 나도 와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에선 와인을 장차 중요 품목의 하나라 판단한 끝에 그 업무를 맡을 사람을 사내 게시판을 통해 물색했다. 이에 응모한 사람은 마침 이 양반밖에 없었다. 이에 2003년 연초 인사이동에서 와인 총괄 책임자로 발탁이 되었다.

 

현재 이 분이 들여와 유통하는 와인의 매출은 연간 1조원을 넘겼으니 회사에 큰 공을 세운 셈이다. 곧 임원으로 승진할 것이라 판단한다. 취미로 즐기던 와인이 급기야 성공의 발판이 된 셈이다.

 

 

기회는 우연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기회는 이처럼 우연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마치 지나가다가 불쑥 들렀다네, 하는 식이다.

 

이 분 역시 미래의 아이템이란 판단 하에 와인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고 그냥 울적함을 좀 더 건전하게 달래보려는 취미였을 뿐이다.

 

사주를 보니 햇빛을 반기는 사람이었는데 와인이야말로 태양의 산물이다. 이런 것을 두고 運命(운명)이라 한다. 타고난 命(명)을 바탕으로 時運(시운)이 들어맞아서 기회가 주어졌고 그로서 성공했다.

 

덧붙이면 일본 연작 만화 “신의 물방울”은 2004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했고 이 또한 국내에서 대 히트를 치면서 와인의 대중화에 기여했고 이 분의 일에도 좋은 밑받침이 되어주었다. 고 이건희 회장과 “신의 물방울”이 貴人(귀인)이 되어준 셈이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래는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해 준비하는 것과 대응하는 것의 차이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물론 미래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근면한 태도라든가 건전한 가치관, 용돈을 아껴서 조금씩 돈을 모으기, 긍정적인 생각, 이런 것들이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서 기회를 포착하느냐 하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시길 바란다.

 

 

구체적인 타겟을 정하지 말라, 정했으면 뒤돌아보지 말라

 

과거 한 때 조선업 분야에서 해양 플랜트 쪽이 크게 각광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자 해양 플랜트 학과의 인기가 높아져서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대거 지망했다. 당시 해양대학에 진학하려는 어떤 고3 학생과 그 부모가 찾아와서 해양 플랜트 학과에 지원하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어왔다.

 

만류했다. 현재 인기가 많은 학과는 커트라인도 높지만 나중에 졸업할 무렵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 아니냐, 더군다나 남학생이니 군대 문제도 있어서 장차 7-8년 뒤의 해양 플랜트 산업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느냐 하면서 말렸다. 그냥 해양대학의 무난한 학과로 진학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해양 플랜트 학과에 진학했고 그러다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디플레이션 분위기에 눌려 해양 플랜트 방면에 대해 우리 조선기업들은 사실상 손을 떼다시피 했다. 물론 그 학생은 그 방면에서 취업하지 못했고 결국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로 해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쪽의 길을 택해야 했다.

 

 

미래는 도박의 대상이 아니어서 

 

 

미래에 대비해서 구체적인 타겟 혹은 표적을 설정하는 것은 사실 도박(gamble)과도 같다. 확률 게임이 되는데 그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그렇기에 표적을 정하기보다는 막연하나마 어떤 흐름이나 방향성을 보고 대충 대비하는 것이 훨씬 좋다. 그걸 대응이라 한다.

 

막연하다는 것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것이기에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거다! 하고 정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결국은 그 사람의 命(명)이 중요하다. 난 이것저것 따지지 않을래, 그냥 이게 좋으니 이걸 할 거야! 하는 것이 차라리 좋다. 앞에서 소개한 분의 경우 울적할 때 와인을 한 잔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냥 공부가 되었다. 목적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게 운명이다.

 

누구나 쉽고 편한 길을 가고 싶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고 대비하고자 한다. 미리 알면 준비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니까. 결국 쉬운 길을 가고자 함이다. 쉬운 길, 돈 되는 길, 이런 따위를 세상은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되자 여기저기 수많은 碩學(석학)이란 사람들이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 이제 달라진 세상에 대비해야 하고 적응해야 한다고. 글쎄다, 지금이야 달라진 것이 너무나도 많고 팬데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도 언젠간 가실 것이라 점이다.

 

그러니 어떻게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단 말일까? 미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핸들링하고 대비하고 다룰 수 있을까?

 

 

결국 운명이다! 

 

 

그렇기에 미래는 대응하는 것이지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게 아니다. 준비하고자 해서 한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가 관심이 가서 또는 그게 하고 싶어서 하다 보니 나중에 그게 기회로 발전한다. 운명이다.

 

산다는 건 고달픈 일이다. 눈앞의 일만 해도 고달픈데 또 무슨 미래에 대해 준비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야 오래 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