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가기 싫은 진짜 이유  

 

 

월요일 오후 1시, 비가 조금 내리는 날 수원 행 시외버스를 탔다. 제자가 수원 영통에서 치과를 하는데 참으로 꼼꼼하게 치료를 해주기에 이미 몇 년째 다니고 있다. 주로 임플란트 이식이다. 올 해 6개 정도 하고 내년에 두어 개 하면 더 이상 할 이빨도 없다. 그러면 죽는 날까지 이빨은 정비가 거의 끝날 것으로 기대한다.

 

수술 자체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 내 스스로 내 몸에 침을 놓고 하는 나이기에 마취 주사도 그렇고 드르륵 뼈에 구멍 내는 것도 전혀 부담이 없다. 하지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말 역시 그렇지도 않다. 치과 바로 인근에 영통사란 절이 있는데 임플란트 하는 날이면 으레 절을 찾는다. 특히 약사여래 앞에 다가가 복전함에 만원 짜리 두어 장 넣고 삼배를 올린다. “약사여래님, 무사히 수술 잘 끝나도록 해주십시오, 비나이다.”

 

진짜 문제는 수술 후 거즈를 꽉 물고 세 시간 정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역시 괜찮다. 정확한 이유는 출혈이 멈출 때까지 담배를 참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경질이 난다.

 

담배는 왜 배워서 평생 수시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독이라 금연이 되질 않는다. 그 바람에 장거리 여행도 가지 않는다. 해마다 치과 선생의 고향이 여수라서 해마다 다녀오지만 KTX가 아니었다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여수까지의 소요 시간이 정확하게 3시간인데 앞뒤 합치면 3시간 30분, 나로선 신경질 내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최대한이다.

 

버스 안에서 그리고 수술대 위에 누워 아침에 본 기사 하나를 놓고 이모저모 생각해본다. 드르륵- 하든 말든. 마취 상태인데 뭐, 그러라지.

 

 

참 난처한 사회적 문제

 

 

50대 배달원이 배달 도중 불법 차선변경을 하다가 차량에 부딪쳐 사망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라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모 인터넷 신문의 기자는 현재의 법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사망한 배달원은 주말도 없이 매일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50~60건 정도의 배달을 소화해야만 한 달에 230만원의 수입을 올렸고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배달원이 지내던 곳은 지하 월세 방은 패널로 세워진 가건물로서 곰팡이가 잔뜩 퍼져 있는 공용 화장실이었고 한 겨울에는 전기난로 하나로 버텼다 한다.

 

사정이 참으로 딱하다.

 

그런데 기사 아래의 댓글을 보니 동정하는 마음보다 배달원들의 마구잡이 난폭 운전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이 더 많다.

어떤 글은 배달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동차 주인의 정신적 부담은 그 또한 얼마나 크겠냐고 얘기하고 있다. 또 어떤 글은 하루 50-60건 배달이면 일당이 20만원은 될 거라고 하면서 기자의 글이 과장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배달 시켜놓고 늦게 온다고 닦달 하는 사람들이 배달원을 죽게 만들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댓글을 보니 그 또한 모두 일리가 있으니 

 

 

기사를 포함해서 댓글까지 모두 나름의 충분한 일리가 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총체적인 모습이라 여긴다. 배달원의 운전, 나 호호당 역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순간순간 아찔한 것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노란 승합차, 그야말로 난폭하다. 어린이 안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 놓았더니 ‘난폭허용운전법’이 되고 말았다. 툭-하면 차선을 째고 들어오면서 다른 차들이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자. 저렇게 난폭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면 그 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크게 다칠 것이 아닌가.

 

앞서의 기사는 배달원의 사망이 산재 대상이 아니어서 유가족들이 안타깝게 되었으니 법률을 수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하지만 과연 법을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될까? 물론 개선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마저도 쉽진 않을 것 같아서 얘기이다.

 

 

문제가 존치되는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는 사실

 

 

다른 이야기 하나 또 들려드린다. 동원 예비군 훈련 기간 중 부대에서 제공하는 식사의 맛과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군에선 개선한답시고 부대 인근의 사설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하도록 조치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맛과 질이 떨어졌다. 왜 그런지 사회생활 특히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외부 업체에게 위탁하고 비리가 발생하면 그럴 때마다 해당 업체는 물론이고 관련된 장교 몇 명만 어김없이 옷을 벗기면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은 군의 개선의지가 별로 크지 않다고 본다. (군이 식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오랜 역사가 있다. 명나라, 청나라, 조선왕조, 아니 나 호호당이 군대 복무 시절만 해도 심하다 싶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앞서의 배달원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개선이 절대 쉽지 않다.

 

 

문제의 현장에 가보면 나름 합리적이라서 

 

 

우선 배달 플랫폼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배달 단가의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배달 시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단가를 맞추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달원들은 죽어라 달려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건당 수익이 크지도 않으니 어서 후딱 배달해야만 그나마 잠깐 쉴 수라도 있다.

 

플랫폼 업체들은 사고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배달원들은 대부분 자영업자 또는 프리랜서들이다. 교통법규 위반은 배달원의 책임이란 얘기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수익을 올려야 하고 배달원들 역시 각자 나름의 원하는 수입을 올려야만 한다.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배달을 시켜 먹는 소비자들은 신속한 배달과 저렴한 배달비를 요구한다. 거기에 플랫폼 업체들 간의 엄청난 경쟁이 존재하니 이 모순은 도저히 해결될 수가 없다. “신속한 난폭운전”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 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이다.

 

간단해 보이는 어떤 사회 문제나 비리, 악폐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나름 모든 이가 합리적 주장과 요구를 하고 수용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 업체의 입장 충분히 이해가 가고 배달원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소비자들의 요구도 당연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보면 문제가 크고 또 많다. 이에 그로 인한 해악은 우리 사회 전체가 골고루 나누어서 부담하거나 감내해야 한다.

 

 

어떻게 바꾸어도 비용은 발생하고 결국 약자에게 전가된다. 

 

 

모든 일은 뭘 어떻게 바꾸어도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 동시에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느냐 하는 점도 달라진다. (심적 스트레스는 따지지 않아도 그렇다.) 사회 비리나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야기하는 비용과 문제점도 크겠지만 비리나 문제를 그냥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편리성과 이익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리나 문제가 그냥 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선에 반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리나 문제점이 바뀌지 않고 존치되는 것은 그와 관련된 당사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비리나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변의 압력 즉 환경적 압력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말이다. 비리와 문제점이 그대로 유지되든 바뀌든 개선이 이루어지든 관계없이 그에 따른 비용 발생은 현실에서 대부분 弱者(약자)에게 더 전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강자가 더 부담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현대 사회의 경우 약자에게 전가되는 비용의 일부를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일부를 대신 지불해주기도 한다. (기억하기로 2000년대의 버스 준공영제라든가 대중교통 환승시스템, 버스 전용차선과 같은 제도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럴 경우 정부나 지자체는 물론 그 비용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사회 전체에게 전가한다. 때론 특정계층에게 부담시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기업들이 내는 사실상의 세금인 ‘부담금’이 바로 그렇다.

 

 

정치야말로 종교와도 같아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후보들은 목청을 높여 떠들어대고 다닌다. 이번 정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으니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저건 과거 중국 전설의 堯舜(요순)시대에나 가능한 얘기가 아닌가! 시진핑의 중국몽이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야말로 公約(공약)이 아닌 空約(공약)의 극한치였다.

 

이는 비난의 소리가 아니다. 정치야말로 종교란 사실, 나 호호당 역시 임플란트 수술 전에는 절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초파일이 가깝다. 연등 하나 비싸게 올려볼까?

 

 

여름 선생, 좀 천천히 오시지... 

 

 

갑자기 여름이 시작되었다. 긴 팔 셔츠에 자켓을 걸쳤더니 겨드랑이에 땀이 흘렀다. 그리고 보니 벌레들이 많아졌다. 새들이 이제 굶주리지 않겠구나 싶다. 모두가 먹고 살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여름이 왔다. 그리고 동남풍이 연일 불어대면서 중국 발 먼지를 중국 안으로 다시 말아 넣고 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 모양인지 수술 후 사흘이 지나서야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