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리 갔다리 하며 거슬러 오르는 발걸음

 

 

어제에 이어 비가 내린다. 내일까지 이어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생각은 앞서의 일들로 되밟아간다. 앞서의 일을 헤아리다 보니 다시 그 이전의 일과 인연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계속 되밟아가게 된다. 생각이 걸음을 천천히 옮겨간다. 걸음은 때때로 되돌아 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꾸만 더 과거의 일, 더 먼 시간 속으로 밟아간다. 그래, 이 역시 길이지, 길의 일종이야 하면서.

 

길을 되밟아가다 보니 문득 잊혔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툭-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아, 그렇구나! 그때 그 사람과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선명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한편으로 지금 내 눈앞을 흐르는 강줄기의 위를 향해 머나먼 河源(하원)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도 같다.

 

물론 강의 웃 줄기는 줄곧 하나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갈래가 나타나서 이 갈래를 따라 거슬러 오르다가 그만 두고 다른 갈래를 따라 오르기도 한다. 위로 오를수록 생각의 걸음은 갈팡질팡이다. 이에 먼 과거에서 가까운 과거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다른 줄기를 따라 오르기도 하며 다시 돌아와 또 다른 줄기를 따르기도 한다.

 

 

생각이 멈추면 빗소리가 들려오고 어느새 다시 생각은 걸음을 떼고

 

 

그러다가 생각의 걸음을 멈추면 갑자기 귓전에 빗소리가 들린다. 눈길을 돌려 창밖 먼 곳을 보노라니 빗소리가 더욱 커진다. 이건 눈이 귀를 따르는 건지 아니면 귀가 눈을 따르는 건지 헷갈린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시 빗소리 멀어지고 생각이 걸음을 옮긴다.

 

과거로 거슬러 가다보니 즐거운 일도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즐거운 일은 잠시 또는 순간이었던 것 같고 힘들었던 일은 더욱 선명하고 또렷하게 되새겨진다는 점이다. 아픈 일,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는 말도 그저 허튼 소리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픈 일이 있었던 시간 속으로 우리 스스로 가기 싫어하는 것일까? 팔목이나 신체 어딘가에 난 소소한 생채기들은 지워지지만 워잊힐 만도 하지만 큰 상흔은 죽는 날까지 남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다시 귀가 열려서 빗소리 들려오고 그러다가 어느덧 멍해지고 고요해지면서 생각이 걸음을 떼어놓는다. 아 그렇구나, 생각이 걸음을 재촉하면 눈과 귀가 머는구나! 귀가 빗소리를 들어서 생각을 일깨웠건만 생각은 그 은혜를 모르고 자꾸만 감각을 멀리 하니 이놈은 잘도 이기적이다. 하지만 생각은 시간 속 먼 과거의 감각을 일깨워서 냄새도 떠올리게 하고 모습도 되살려내니 아주 몹쓸 놈은 아니다.

 

 

영웅 조조의 강개한 시가 떠올라서 

 

 

갑자기 지친다. 어깨가 처지고 군데군데 통증이 되살아난다. 여보시오, 나도 좀 살펴주시오 한다. 잠시 어깨를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하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그곳으로 가본다. 이번에 시간 여행이 아니라 머릿속 기억의 창고에 저장된 물건이다.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 曹操(조조)가 남기고 간 시 한 편이다.

 

번역이 아니라 조조의 생각과 마음을 내 식으로 임의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풀이 시작)

 

두어 잔 술을 마시다 보니 속에 차오르는 것이 있어 그를 노래로 뽑아봐야 하겠네, 산다는 게 길어야 또 얼마나 된다고 속에 담아 두고만 있겠는가. 해가 뜨면 말라 버리는 아침 이슬과도 같은 짧은 삶일진대 그 또한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니 고생 투성이, 그러니 그 소회를 엮어 길게 한 가락 노래로 뽑아봄직도 하지 않겠는가.

 

지나간 슬픔 힘차게 소리 내어 내질러본들 금방 또 다른 근심으로 이어져가니 떨쳐낼 수 없구나, 그저 눈앞에 놓인 술에 의탁할 수밖에.

 

지나간 날 그처럼 창창했던 그대의 어엿한 모습 긴 세월 지나온 지금까지도 내 속에 머물고 있으니 바로 그런 까닭으로 그대는 지금도 내게 깊은 시름만 한 아름 안겨주고 있다네, 봄날 사슴들이 햇쑥을 뜯으며 기분 좋은 울음을 울고 있던 먼 옛날 그대는 내게 귀한 손님으로 찾아왔으니 그때 우리는 금을 뜯고 피리를 불면서 시간을 보냈었지. 밝고 또 밝은 달은 바로 발치 위에 있어서 한 번 따서 내릴 것도 같지만 소용 없듯이 떠나간 그대 생각하는 이 마음 지워버릴 수 없으니 그저 논둑과 밭둑을 서성대면서 그리운 마음만 달래고 있으니 참 헛된 일이지.

 

그래도 우리 서로 정답게 나누었던 말들을 되새기면 새삼 그 은혜 고맙기만 하다네, 이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예전의 그날 밤처럼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날아오더니 의탁할 나뭇가지를 찾는지 나무 주변을 세 번이나 맴돌고 있을 뿐이라. 어허! 저를 어쩐다. 그냥 내 심정과 같구나.

 

그래 좋다, 산은 높다고 해서 꺼리는 법 없고 바다는 깊어진다 해도 저어하는 일 없지 않느냐? 먼 옛날 주나라를 반석에 앉혔던 周公(주공)을 생각해 보렴, 천하의 민심을 얻고자 애쓰던 시절, 식사 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나서 입안에 씹던 고기도 내뱉고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하지 않았던가! 내 사사로운 근심 그리고 걱정 따윈 오늘 이 술로 달래면 되는 일, 뜻을 품고 나선 거 어디 끝까지 가보자꾸나.

 

(풀이 끝)

 

시는 처음에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과 悔恨(회한)으로 시작해서 끝부분에는 그래도 처음 품었던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각오로 맺고 있다. 장부의 기개이다. 

 

 

조조, 문무쌍전의 영웅 

 

 

말을 타고 전장을 내달리던 영웅이자 감성으로 충만했던 시인 조조의 모습이 눈앞에 역력하지 않은가. 삼국지연의에선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조이지만 실은 당시의 시류를 정확히 읽어냄으로써 민심을 얻고 말을 달려 覇者(패자)로 군림했던 조조였다.

 

게다가 문예를 부흥시킨 才士(재사)이자 최고의 詩人(시인)이었다. 훗날 중국 漢詩(한시)라 하면 唐詩(당시)라 하겠는데 그 詩風(시풍)은 조조와 그 아들 조비와 조식의 세 부자와 당시 '건안칠자'라 불렸던 시인들이 다져놓은 바탕 위에 만들어졌으니 사뭇 의의가 깊다 하리라. 

 

훗날 최고의 시인 李白(이백)은 당시의 문학과 시를 일러 建安骨(건안골), 즉 건안 시대의 굵직한 骨氣(골기)라고 찬양했을 정도였다. 조조는 그야말로 文武(문무) 雙全(쌍전)의 기재였던 것이다.

 

다시 아침이다. 맞은 편 산이 구름을 둘렀고 비는 사흘 째.

 

 

상담을 하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람마다 타고난 命(명)은 달라도 運(운)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 60년에 걸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보낸다. 다만 그 계절의 시작이 저마다 다를 뿐이다. 이것으로 각자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선 참으로 드라이하다 말할 수 있다.

 

그 계절을 지내면서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曲折(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굽이굽이, 언덕과 산을 오르내리고 개천과 강을 건넌다. 그럼에도 나 호호당은 애써 그 곡절을 모른 체 하려 한다. 찾아온 상대의 감성에 함께 빠져서 젖어들다 보면 필요한 어드바이스를 제대로 해줄 수 없기 때문이고 아울러 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다. 감상에 빠졌다가도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앞의 저 조조의 시처럼 말이다.

 

 

노래의 원문 

 

 

短歌行(단가행)이라 하고 흔히 對酒當歌(대주당가)라고 칭하는 조조의 시를 원문을 올리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對酒當歌(대주당가) 人生幾何(인생기하)

譬如朝露(비여조로) 去日苦多(거일고다)

慨當以慷(개당이강) 憂思難忘(우사난망)

何以解憂(하이해우) 唯有杜康(유유두강)

青青子衿(청청자금) 悠悠我心(유유아심)

但為君故(단위군고) 沈吟至今(침음지금)

呦呦鹿鳴(유유녹명) 食野之苹(식야지평)

我有嘉賓(아유가빈) 鼓瑟吹笙(고슬취생)

明明如月(명명여월) 何時可掇(하시가철)

憂從中來(우종중래) 不可斷絕(불가단절)

越陌度阡(월맥도천) 枉用相存(왕용상존)

契闊談讌(계활담연) 心念舊恩(심년구은)

月明星稀(월명성희) 烏鵲南飛(오작남비)

繞樹三匝(요수삼잡) 何枝可依(하지가의)

山不厭高(산불염고) 水不厭深(수불염심)

周公吐哺(주공토포) 天下歸心(천하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