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성의를 다 했던 일본의 몰락

 

 

예전에 일본의 무역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 흑자로 인한 잉여 달러를 미국 국채를 사는 데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로서 미국은 달러 가치의 하락을 막을 수 있었고 일본은 수출 제조업이 가동될 수 있었기에 두 나라 모두 그런대로 만족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글로벌 경제를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G2란 말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갈 순 없었다.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이에 방위 문제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마당이라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했다. 엔화를 달러에 비해 대폭 절상하고 그에 따른 문제와 부작용은 투자를 늘려 해결해 보려다가 대거 실패했다. 1990년 말의 일본 거품 붕괴가 그것이었다. 그 이후 일본은 지금까지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반면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시스코, 그 이후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혁신 기술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제를 번영시킬 수 있었다.

 

 

중국은 일본과 입장이 달라서

 

 

그 다음 타자는 중국이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중국에 대해 우린 G2라고 립 서비스를 해주었다. 중국은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통해 국내 국영기업들의 덩치를 키워왔고 또 기술도 축적해왔다. 물론 중국 역시 막대한 무역흑자를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균형을 유지했다. 미국 또한 이득을 보았는데, 저렴한 중국산 생필품으로 인해 미국 중하층 사람들의 생활고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이 균형 역시 2009년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은 과거 일본 사례를 들먹이면서 중국이 미국의 물건을 더 사줘야만 한다고 압박했고 그게 먹히지 않자 기술을 훔쳐가고 있다면서 관세 인상 등등 갖은 제재와 압박을 중국에게 가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오늘날 중국에 비하면 무척이나 순순하게 수용했다. 방위 문제가 전적으로 미국의 손에 달려 있었던 까닭이고 미국이야말로 일본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일본과는 입장이 다르다. 무엇보다 국가 방위를 미국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도전하려는 기미까지 있다. 게다가 중국의 막대한 부채는 대부분 국영기업들의 것이기에 부채로 인한 버블이 붕괴할 확률 또한 일반의 생각보다는 그렇게 높지 않다. (물론 미래는 모르는 것이지만 말이다.)

 

중국이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굳이 미국에게 통 큰 양보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독일은 동서독 통일 이후 사실상 미국에게 아쉬운 점이 사라졌다. 방위 부담을 덜어내면서 더 이상 미국에게 굽신거릴 필요가 없어졌고 이에 마침내 유럽연합의 단일화폐인 유로를 만들면서 떨어져나갔다. 물론 유로를 사용하다보니 역내의 다른 문제들, 대표적으로 그리스 부채 위기와 같은 또 다른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달러가 유지되는 것은 협력국가들의 희생 혹은 희생이 있기에 

 

 

달러를 기축통화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축통화인 달러는 일본과 독일, 그리고 중국 등의 미국 국채 보유가 없었다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미국이 제멋대로 달러를 찍어낸다고 괘씸하게 여긴 나머지 무역 결제 시 달러 수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럴 경우 달러의 붕괴와 함께 글로벌 경제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그렇기에 달러 패권이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건 전 세계가 지난 50년의 세월보다 훨씬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달러를 놓고 ‘종이돈’이라 하면서 비아냥거릴 순 있어도 정작 감히 그 종이돈을 받지 않거나 처분하겠다고 나서는 국가는 없다. 종이돈이지만 그래도 그걸 유지하는 것이 미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저 일부 극소수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달러가치 폭락에 대한 대체재로서 금이나 ‘코인’을 매수하고 있을 뿐이다. 코인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현재로선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국제 정치와 글로벌 패권의 영역인 까닭이다.)

 

 

일본모델을 따라했던 아시아 각국의 성장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수출 위주 성장 모델은 아시아 각국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고 중국 역시 그러했으며 타이완이나 싱가포르, 태국, 인디아 등의 나라들도 죄다 일본 모델을 따라했고 각자 나름의 성과를 보았다.

 

아시아 각국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미국 때문이었다.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인 미국이 자국 시장을 줄곧 개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수출국들을 일종의 하청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엔 하청기업이란 말보다는 협력업체라고 하고 있듯이 수출 국가들을 협력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도 1차 2차가 있듯이 원자재에서부터 부품, 그리고 중간재인 묘듈 등등에 있어 국가별 역할 분담을 통한 공급망, 달리 말하면 하청 국가들로 이루어지는 공급 사슬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라 부른다. 그 사슬에서 각자가 가져가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 바로 밸류 체인(Value Chain)이다.

 

우리 수출에 있어 겉보기엔 중국이 중요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부품이나 중간재가 중국으로 넘어가면 중국에 진출해있는 국내 대기업의 공장에서 완제품이 되어 미국이나 유럽 시장 등지로 수출이 되니 그렇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인건비 따먹기”에 불과하다.

 

예로서 삼성 갤럭시 폰의 중국 내수시장 판매는 너무나도 초라해서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중국 내수 시장은 우리에게 전혀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꽤나 그럴 것이다. 나 호호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몇 년 들락거리면서 중국인들과 교우도 했기에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 물건을 사주지 않을 거란 점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우리 경제의 장래 역시 미국에게 달려있다는 점이고 그게 바로 우리의 한계란 점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일본이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특별한 수법을 썼다가 쫄딱 망했듯이 우리 역시 별다른 대책이 없다. 북한과 통일한다 해도 내수시장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최소한 20-30년간은 우리 경제에 크나큰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 시장은 어쩌면 우리에게 영원히 차가운 상태로 남을 것이다.

 

 

우리 수출 경쟁력의 실체

 

 

우리 경제를 끌고 가는 바탕은 여전히 수출이고 앞으로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수출 기업들의 강점과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느냐를 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에 살펴보면 우리 수출기업들은 경쟁력이 있다. 첫째, 미국 유학을 통해 선진기술을 습득해온 우수한 이공계 기술 인력이 있다는 점이고 그 다음으론 신속한 대응 능력이라 하겠다.

 

현재 시각은 밤 11시54분이다. 나 호호당의 아파트는 우면동에 있는데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내 방의 남쪽 창밖으론 우뚝 선 LG 전자 연구센터가 내다보이고 북쪽 부엌 쪽으론 삼성전자 연구센터가 보인다. 이 시각에도 불이 꺼진 창문보다 불이 켜진 창문이 더 많다. 기술 개발을 위해 알아서들 야근을 하고 있다. 야근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되었는데 두 곳 모두 불이 전부 꺼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공휴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동부 역시 뻔히 알면서도 못 본 척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연구실이나 센터란 곳은 죄다 인력을 사정없이 갈아서 마모시키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바로 저 모습이 앞에서 언급한 우리 기업들 특히 수출기업들이 가진 신속한 대응능력의 실체라 하겠으니 소위 ‘워라밸’이란 게 수출국가 또는 하청국가 더 달리 말하면 협력국가인 우리에게 가능한 일일까?

 

한 때 일본 여성들의 출산율이 엉망이라고 힐난했었는데 이제와 보니 우린 더 심하다. 국가별 출산율 187위, 글로벌 꼴찌이다. 한동안 비혼 풍조가 걱정이다 하더니 이젠 결혼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자녀를 갖는 것은 끔찍하게 비싼 사치품을 소유하는 것과 진배없는 우리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일부 근로자,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일부 귀족노조를 제외하면 죄다 갈림과 갈굼을 당하고 있고 전체 근로자의 1/3 이상은 비정규직이다. 그런 판국에 비정규직마저 되지 못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더불어서 자영업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니 전부 ‘공시족’이 되고 있다.

 

(특권층이란 사람들은 갖은 편법을 동원해서 자녀들을 공기업이나 전문직이 되도록 하고 있고 그를 지켜보는 젊은이들은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그게 바로 “조국 사태”의 본질이다!)

 

 

갈려나가버린 우리 대한민국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실상 전 국민이 磨耗(마모)되고 消耗(소모)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부단히 마모되고 소모되다가 이젠 극도의 疲勞(피로)사회가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연준이 금리라도 조금 올렸다간 경제 전체가 부채의 무게로 인해 무너질 판국이다.

 

수출 주도의 성장 모델을 제외하곤 달리 생각해볼 수가 없고 이젠 그마저도 과연 우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으니 갑갑하다. 저번 글에서 “일본의 굴레”란 책을 여러 번 읽어가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한 점은 우리 사회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당분간은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믿는 것은 궁하면 결국 통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할 것 같다. 마무리를 하면서 창밖을 보니 바람 불고 비오고 있다. 스산한 초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