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저승 문턱을 밟았던 사내

 

 

1849년 12월의 어느 날, 제정 러시아 시절. 이제 총살형이 집행되기 5분 전, 28세의 청년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급진적 정치모임에 가담했던 지식인들이 죄다 사형 선고를 받고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하는 때가 눈앞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집행을 중지하시오! 하고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다. 황제(짜르)로부터 형 집행 중단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마차를 타고 달려왔던 것이다. 형 집행은 중단하되 시베리아로 流刑(유형)을 가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는 혁명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체포된 급진파 지식인들의 혼줄을 빼놓고자 했다. 이에 사형을 선고하되 마지막 순간에 가서 감형해줄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문턱을 거의 넘었다 하겠다. 형을 면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충격으로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혼비백산.

 

그 안에 포함된 28세의 청년은 그 이름이 너무나도 유명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작가,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근대소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그 도스토옙스키 말이다. (지금부터 축약해서 ‘도스토’라 쓰겠다.)

 

도스토는 비록 사형은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5년간의 유형을 가야 했다. 여름엔 너무 덥고 벌레가 연신 물어뜯으며 겨울엔 너무 추운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낮엔 강제노동, 밤엔 좁은 감옥에서 지내는 그야말로 처절한 세월이었다.

 

 

대문호의 팔자와 운명 흐름

 

 

그럼 이쯤에서 도스토의 팔자와 운명흐름에 대해 얘기해보자.

 

1821년 11월 11일 아침 9시 47분생이라 되어있다. 이에 사주는 辛巳(신사)년 己亥(기해)월 甲午(갑오)일 戊辰(무진)시가 된다.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甲戌(갑술)로서 1874년이 되고 立春(입춘) 바닥은 甲辰(갑진)으로서 1844년이 된다.

 

앞에서 그가 사형을 당할 뻔 했던 일은 1849년의 일이니 입춘 바닥으로부터 5년이 흐른 때, 이른바 財運(재운)이 최바닥일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시베리아 유형을 마친 때는 1855년이니 입춘에서 10년 뒤 즉 淸明(청명)의 운이었다. 이제 비로소 늦봄이 온 것이다.

 

그가 데뷔작을 발표한 것은 1846년, 입춘으로부터 2년 뒤였는데 운세가 이럴 때에도 많은 찬사를 받은 것을 보면 천부적인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걸작 “죄와 벌”을 발표한 것은 1866년의 일로서 그의 운세가 이제 한창 뻗어가는 夏至(하지)의 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금전적으론 빈곤했다.

 

그가 그런대로 소설을 써서 돈을 번 것은 그의 운세가 입추, 즉 운기절정인 1874 甲戌(갑술)년의 일이었다.

 

도스토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나쁜 버릇이 있었으니 바로 도박이었다. 돈이 좀 생기면 도박으로 금방 돈을 탕진하곤 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게 되면서 생긴 발작, 즉 뇌전증과 시베리아 유형 생활에서 골병을 얻은 터라 도스토의 건강은 늘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운이 좋아지자 돈과 명성은 얻었으나 

 

 

건강은 좋지 않았으나 운세가 입추를 지나면서부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그였고 이에 황제 알렉산드르 2세로부터 부탁을 받고 황제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도 했다.

 

1880년이 되자 그의 사회적 명성은 더욱 치솟아서 슬라브 자선협회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쉬킨 기념관 제막식에 그가 한 연설은 청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심지어 오랜 라이벌인 투르게네프조차 그를 껴안았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은 지속적으로 나빠져서 마지막 걸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할 무렵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시력이 나빠져 있었다. 이에 침대에 누워 말로 불러주면 아내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 도스토는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 행렬은 십만 이상의 사람들이 전송했다고 한다.

 

1874년이 입추였기에 그의 죽음은 그의 운세가 한창 운명의 가을, 즉 호시절 수확철을 향해 달려갈 때였다. 그 바람에 장례식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과 애도를 표했던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부럽기보다 가엽네

 

 

나 호호당은 젊은 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며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 여년이 흘러 다시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살펴보니 전혀 부럽지가 않다. 몸이 아파서 늘 고생했던 삶, 뇌전증과 호흡 곤란 등등 그런 병환을 안고 살았던 그가 가엽기까지 하다.

 

평범하더라도 무난하고 그럭저럭 건강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가장 복 받은 운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안일한 삶이야말로 복받은 삶

 

 

安逸(안일)하다는 말이 있다. 편안하고 한가롭다는 뜻인데 동시에 비판적인 의미도 있다. 너무 쉽고 편하게 생각하여 적당히 처리하려는 태도를 지적하는 말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뜻은 원래의 의미가 아니다.

 

안일한 삶, 그야말로 좋은 삶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따져보면 그렇게 편하게 살다가는 인생은 사실 없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 한 평생 산다는 게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것을 나 호호당은 이제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안일한 삶이 가능하다면 그거야말로 최상이라 여긴다.

 

젊어선 드라마틱한 삶을 바라지만 나이가 들면 안일한 삶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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