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가 중산층이던 일본 

 

 

일본이 예전에 잘 나가던 시절 “전 국민이 모두 중산층”이란 표현을 쓰곤 했다. 1990년 거품 붕괴 직전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유행했다. 일본식 표현으론 一億総中流(일억총중류). 당시 일본의 인구가 1억이었기에 그랬다.

 

젊은 시절 나 호호당은 일본을 많이 부러워했다. 소득이 높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중산층이란 의식을 가진 일본이었기에 그랬다. 지금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몰락했지만 중산층 의식도 그때에 비하면 많이 옅어졌다. 예전에 비하면 소득격차가 많이 커진 것이다.

 

예전에 일본은 학교를 마치고 어떤 기업에 입사하면 그냥 그곳에서 평생 근무했다. 기업 또한 사람을 해고하지 않았다. 고졸과 대졸의 급여 차이도 크지 않았고 이른바 대기업 엘리트들에 대한 대우 또한 크게 높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일본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사실상 구현했던 국가와도 같아 보였다.

 

물론 차이와 차별은 있었지만 그게 돈이 아니라 직위에서 오는 명예와 권위 같은 것이었다. 줄여 말하면 wage ratio 가 크지 않았던 일본이고 오늘날에도 미국에 비하면 전혀 심하지 않은 일본이다.

 

그러나 평등사회가 갖는 문제점과 대가도 없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은 성실한 직원, 자기 몫을 잘 해내는 직원을 인정할 뿐 이른바 “튀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책임감 있고 성실하기만 하면 세월이 가면서 절로 업무 숙련도가 높아진다고 여기는 일본이다. 기술직의 경우 匠人(장인) 정신을 높게 인정한다.

 

다만 예전과 오늘날의 차이점은 예전에 다 고만고만하게 살았는데 이젠 그 차이가 제법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저 거품 붕괴 직전 일본은 한 때 좀 사치를 부렸다가 지금은 또 다시 원래의 모습,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일본이다.

 

 

미국, 철저한 능력위주와 효율화

 

 

일본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 나라는 미국이다.

 

제2차 대전 이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가 냉전과 베트남전으로 인해 국력을 크게 소모한 미국이었다. 그 바람에 1980년대 미국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등장한 새로운 방식이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다운사이징, 그리고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대거 인력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쟤가 꼭 있어야 하나? 하고 물은 다음 아니다 싶으면 바로 잘라버리는 방식, 저 부서가 필요해? 하고 물은 다음 줄여도 되면 줄였고 아예 없애버리기도 했다.

 

툭 하면 대규모 레이오프(layoff) 또는 일시 해고가 대거 유행했다. 잠정 해고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미국은 팀장별로 예산이 주어진다, 그러면 팀장은 그 예산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사람을 줄여도 되고 또는 유능한 인재를 비싼 값을 치르고 데려와 쓴다. 철저하게 비용과 수익을 따지고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실리콘 벨리의 ‘듣보잡’ 신기술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미국이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가 되자 오랜 제조업 기업들은 경영 컨설턴트들이 개입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또는 해체해서 매각하거나 시설을 정리하기도 했고 그에 따라 인력들도 대거 일자리를 잃었다. 반면 신기술 기업들이 급속 성장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웬만한 제조업은 모조리 사정없이 중국 쪽으로 생산 기지를 옮겼으니 오프 쇼어링(offshoring)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크게 생산성이 없는 부서는 외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니 미국은 1990년대부터 철저한 효율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가령 고객 응대를 위한 콜 센터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인도 쪽으로 옮겼고 단순 행정 업무는 외부 용역 회사에 맡겼다. 한 마디로 핵심 경쟁력이나 최상위 기술이 아닌 것은 다 버리는 방식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급여와 임금의 엄청난 격차로 나타났고 양극화로 이어졌다.

 

 

양극화와 경쟁력 

 

 

미국의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켰으며 그 바람에 중국은 무역흑자 대국이 되었다. 그러면서 기술력의 차이에 따라 글로벌 공급 사슬이 생겨났다. 모두 미국이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오늘날 일본이 초라해진 이유? 간단하다. 경쟁력 없는 제조업이라도 여전히 유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시장점유율을 가진 고만고만한 제조업체들과 여타 기업들이 사이좋게 영역을 지키면서 나누어 먹고 있는 일본이고 그 바람에 일본 청년들의 경우 일자리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 다만 급여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할 뿐이다.

 

일본 기업들은 기존의 국내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고만 할 뿐 타 업체를 능가해서 넓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이라 현상유지가 최선이다. 해외 시장의 경우 현지에 업체를 설립해도 현지 실정에 맞는 경영을 하기 보다는 일본 본사에서 통제하려고 한다. 일본의 경우 해외 근무 발령이 나면 그건 거의 좌천이라 여긴다. 본사의 사람들과 아무래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그간 대응 방식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왔고 적응해왔을까? 를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 기본적으로 일본식 경영과 비슷했고 그 이후론 급격하게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 사실상의 미국식에 맞춰 변모해왔다.

 

대기업들은 핵심 경쟁력에 집중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모해왔다. 당연히 삼성전자가 그 대표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통해 생산된 중간부품을 대거 중국 등에서 수입함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해가고 있다. 또는 아예 생산 자체를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하고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은 강성 노조가 있어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서비스업 분야의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로 떨어져가고 있다. 이에 나타난 현상이 바로 노-노 갈등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밀려난 수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렸고 그로 인한 경쟁 심화로 인해 수익구조는 대단히 취약해져 버렸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사실상 가계부채인 셈이니 가계부채만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수도권으로 밀려들고 있다. 이에 균형발전이란 명분하에 지자체에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좋은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고 있으며 아무리 돈을 써도 출산율은 떨어져가고 있다.

 

이게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이고 고령화이다. 최근엔 소멸해가는 대한민국이란 말도 나온다.

 

최근 들어 우리는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의 나라”라 하면서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지만 착각이라 본다.

 

일본은 미국식을 따라가지 않고도 어쨌거나 그간 잘 버텨왔고 또 앞으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나라란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만간 중국 경제가 부진의 늪에 빠지면 우리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양극화 그리고 소멸해가는 나라 말이다.

 

 

우리사회의 지배풍조, 그리고 문제점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사조는 미국식 비즈니스 풍토이고 또 하나는 이른바 “87 체제”이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미국은 글로벌 최강국이고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나라이다. 특히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있어 미국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능력 위주의 미국식 방법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금 격차까지 미국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또 하나 87 체제는 우리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제 그 정신과 방식은 낡아도 많이 낡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둘 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식 경영 풍토는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다. 87 체제는 양대 노총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여전히 길거리 투쟁을 주된 수단으로 삼아 저들의 이익을 지켜가고 있다.

그렇기에 두 가지 모두 임금격차를 키우고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다.

 

 

결국 정치를 바꾸어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방안을 찾아야만 양극화를 끝내거나 아니면 상당 부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되는데 결국 그 해답은 결국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그러기 위해선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양당 체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대한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은 양당 체제 그 자체보다도 “利權(이권)을 챙기고 지키는 통로가 양당 체제를 통해 너무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버렸다는 점에 있다.

 

선거 제도 개편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당연하다, 현행 체제야말로 상대를 적대시해가면서 각자의 진영 이익을 챙겨먹기 딱 좋다는 점, 그리고 적당히 교대로 누릴 수 있는 체제이니 굳이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개편은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당사자 스스로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라고 하는 격이니 될 턱이 없다.

 

 

결국은 바뀔 것이니 2032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바뀔 것이라 본다. 우리 경제는 향후 10년 동안 날로 어려워져서 절체절명의 위기에까지 처할 것이라 본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각성할 것이다. 그리고 현행 정당체제를 바꾸게 될 것이다. 결국 권력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니 그렇다.

 

나 호호당은 그 시기를 2032년으로 보고 있다. 그때가 바로 우리 국운의 새로운 60년 순환에 있어 春分(춘분)의 때, 覺醒(각성)의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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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봐야 하는 날

 

 

해를 보냈으니 한 번 되돌아봐야 하겠다.

 

나로선 꽤나 힘든 한 해였다. 큰 병이라 할 것도 아닌 것이 이곳저곳 불편한 탓에 생전 처음으로 사는 게 구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냈다.  

 

생노병사란 말에서 노 다음에 병이 오고 그러면 사로 이어지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늙는 것과 병드는 것이 동시 진행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상당 기간 더 살아가겠으나 그래도 이쯤에선 마음 준비를 해놓아야 하겠구나 싶었고 이에 불교 공부를 작년 말부터 올 해 내내 했더니 그런대로 하나 얻은 게 있다.

 

죽는다는 게 “내가 나로부터 이별하는 것”인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 하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앙탈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마음을 얻었다.

 

몇 시간 지나면 2022란 코드를 붙인 날 중에서 마지막 날이 밝아올 것이다. 세어보니 태어나서 67년하고도 다섯 달 동안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다. 시간(hour)으로 환산해보니 무려 590,000 시간이다. 저 긴 시간 동안 통일된 有機體(유기체)로서 지내왔으니 耐久性(내구성)이 상당하다, 아니, 좋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하고 장하다, 세포와 기관(organ)들의 제국이여!

 

타고나길 몸이 건강하다. 혈압이나 당뇨, 심장 등등 성인병 증세가 아직 없다. 몸무게도 정상이고 머리숱이 조금 줄었을 뿐이다.

 

올 해에도 여전히 하루 두 갑에서 두 갑 반 정도의 담배를 피웠다. 대학 진학한 이래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한 갑당 세금이 3,309원이라 하니 하루에 8,200원 정도, 1년으로 치면 대략 3백만원의 세금을 내고 있다. 국가 稅政(세정)에 열심히 기여하는 셈이다.

 

하기야 이건 니코틴 중독 탓이고 진짜 담배는 시가(cigar)이다. 시집을 펼쳐놓고 낭독해가며 시가를 피우기도 한다, 겨울엔 헤네시 XO 꼬냑 한두 잔을 곁들여서, 그 맛과 향이 정말 그윽하다, 정말 좋다!

 

 

동영상을 다시 시작한 이유

 

 

올 해 새롭게 시작한 일이 동영상 찍는 일이다.

 

전에도 조금 하다가 말았는데 이번엔 생각이 달라졌다. 금년 들어 만들고 있는 동영상은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나름 흥미 위주로 만들고 있지만 이건 사실 홍보를 위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수천 권의 책을 읽다보니 아울러 스스로 알게 되고 깨우친 것이 적지 않다. “자연순환운명학” 역시 그 중에 하나이지만 여타 언어나 역사에 대해 정작 알게 되면 깜작 놀랄 내용들도 제법 된다. 그래서 현재 하고 있는 동영상은 그런 내용들을 진지하게 시간이나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 유포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다.

 

관련해서 얘기인데, 작년과 올 해에 걸쳐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해 또 다른 진전이 있었는데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그걸 글로 소개하자니 내용이 다소 깊어서 간략하게 풀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200자 원고지로 대략 25매를 기준으로 쓰곤 하는데 최근에 알게 된 보다 깊은 내용을 글로 쓸려면 아무리 압축해도 분량이 그 네댓 배는 되어야 하겠기에 난감하다. 그래서 동영상 구독자가 늘어나고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아지면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동영상으로 심도 깊은 내용을 남길 생각이다. 동영상으로 주제 당 1시간 분량은 족히 될 것 같으니 말이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흥이 일어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제 세상 얘기 좀 해본다.

 

 

긴 침체의 입구에 선 우리 대한민국

 

 

우리 경제는 내년부터 긴 침체기에 들어갈 것이다. 더 이상의 새로운 出口(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죽을힘을 다해 물건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상대로 파고들 여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 뚫고 들어가 시장을 개척하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가지고 필요한 것을 들여와 생활하고 있는 우리 경제이다.

 

그런데 이제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 새롭게 발전하는 지역이 많지 않다. 중국 경제는 성장할 만큼 다 했는데 그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장은 없다. 게다가 미국 스스로 엄청나게 뿌려놓은 달러를 이젠 반대로 흡수하는 국면으로 들어섰기에 더더욱 그렇다.

 

한때 제로금리까지 내렸던 연준 기준금리가 지금은 급속하게 오르고 있다. 내년에 더 올렸다가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다소 내리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제 장기적으로 3% 이하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은기준금리 역시 3% 이하로 내려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양적완화의 시대는 확실히 종지부를 찍었다 봐도 무방하다.

 

 

정상 금리 시대로 들어섰으니 

 

 

이제 비정상의 저금리 시대가 끝난 것이고 정상적인 금리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란 얘기이다. 여기에 우리의 잠재성장률 자체가 계속해서 떨어져가고 있다. 그러니 출구가 없다는 말을 한다. 잘 해야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고 그 사이에 수시로 침체가 찾아들 것이다. 최소한 향후 10년은 그럴 것이라 본다.

 

국가부채야 외환위기만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통화량 증가발행 즉 인플레이션을 통해 희석시켜 갈 수 있겠으나 우리에겐 고질적인 약점이 하나 있으니 가계부채이다.

 

가계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자영업자 대출은 기업대출로 분류되지만 60% 정도는 개인사업자 대출이니 가계부채라 볼 수 있고 아울러 전세보증금 문제도 있다.

 

이 문제는 아무튼 장기적으로 향후 우리나라의 실질금리가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실질금리란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차감한 것인데 이게 마이너스(-)일 때도 플러스(+)일 때도 있다는 점이다.

 

향후 미국 주도의 금리 정상화 국면에서 우리의 실질금리가 플러스 상태로 유지된다면 장기에 걸친 부동산 침체와 경기침체는 모면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한은이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하고 싶어도 환율과의 관련으로 인해 한은만의 독자적인 행보는 한계가 있다.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경제의 앞날은 궁극적으로 수출경쟁력 또는 무역수지 흑자가 그런대로 이어지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수출은 이제 정체되기 시작했고 따라서 중간 중간의 경기침체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 또한 해외 자산이 이젠 적지 않다는 점에서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겠으니 천만다행이다.)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 같으니 

 

 

앞의 논리를 종합해보면 양극화는 더욱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라 하면 아파트 한 채 가진 것이 거의 전부인데 부동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면 그나마 그 중산층도 사라질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란 것, 다시 말해서 급여 수준이 높으면서 동시에 ‘워라벨’이 제공되는 일자리는 장차 늘어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일자리는 글로벌 수출경쟁력을 갖춘 일부 대기업과 한정된 내수 대기업, 그리고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과 금융권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나 제공할 수 있는데 그게 더 늘어나겠는가? 따라서 양극화는 당분간 돌이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국운의 小雪(소설)인 2012년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게 10년이 흘러 올 해 2022년부터 한 층 더 뚜렷해졌다는 차이밖에 없다.

 

 

알 수 없는 현실과 현장

 

 

그런데 현실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른바 “풀 빌라”란 것들이 우추죽순 격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서울 외곽과 지방의 전망 좋은 곳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초호화 카페들이 연이어 들어서고 있다. 11월 초 여수를 다녀왔는데 그곳 역시도 그랬다. 해안가 전망 좋은 곳의 카페였는데 그게 100억 이상 간다는 것이었다.

 

순간 마음이 편치 않아서 100억 이상이란 게 자산 가치인지 그냥 呼價(호가)인지 아니면 정말 실제 투자가 그렇다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당장은 잘 되고 있어 보였다.

 

물론 초장에 감을 잡고 히트 앤 런 하는 자본들은 이미 재미를 보고 권리금까지 붙여서 넘겼을 수도 있겠으나 그거야 선수들의 영역이고 과연 앞으로도 본전을 뽑고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인지? 그냥 몇 년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의 산물인지 그리고 정상 금리 시대에도 풀 빌라와 호화 카페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얼핏 가늠이 되지 않는다. 중산층이 사라지는 시대에 앞으로 수요가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무튼 눈앞의 현실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그러니 양극화가 분명하다. 2022년은 그냥 그 현장이었다.

 

이로서 올 한 해 나 호호당의 글을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했다는 마음으로 송년 인사를 드린다. 굿바이 2022!

Wage Ratio, 아예 번역도 되지 않은 경제용어

 

 

여전히 우리말로 번역되지도 않은 용어가 하나 있는데, 영어로 Wage ratio 란 것이다. 최저 급여와 최고 급여의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이란 법적 제도가 있어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금년 2022년의 경우 22,973,280원, 줄여서 2천3백만 원이다. 이것에 비해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의 경우 최저임금의 몇 배를 받느냐를 놓고 따지면 그게 바로 Wage ratio 이다.

 

올 해 우리나라 공기업의 평균 연봉은 8천2백만원, 최저임금에 비해 대략 3.57배를 받는다. 대기업의 경우 삼성전자를 보면 평균 연봉은 1억4천4백만원, 최저임금의 6.26배 정도 된다.

 

Wage Ratio, 이 배수가 커질수록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받는 액수에 따라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가 있어 실제 차이는 적어지겠으나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얼마 전 과학영재고 학생들이 의대만 간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거기에 “세계적 조롱거리”라고 비꼬는 표현도 달려 있었다. 그런데 나로선 그 비아냥이 더 마음에 걸린다, 그 표현에서 오히려 강한 嫉視(질시)와 선망이 느껴지니 말이다. 기초학문인 과학에 도박을 거느니 의대 간다, 고소득이 거의 보장되는 길이니 합리적 선택이지 않은가.

 

 

양극화란 결국 소득격차에서 온다. 

 

 

문제는 양극화이다, 결국. 소득 양극화, 자산 양극화.

 

Wage ratio, 경제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런 표현이 우리말로 옮겨져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나름 수상쩍다. ‘임금배율’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 같은데 말이다. ‘소득격차’란 표현은 제법 쓰고 있지만 배율로 나타내면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가.

 

“김앤장” 같은 법무법인의 경우 연간 10억 보수 정도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걸 최저임금 대비 43배로 나타내기엔 좀 꺼려지나 보다. (큰 법무법인의 파트너에 속할 경우 수십억을 가져간다. 은퇴한 이후에도 연금으로 해마다 최소한 10억은 받는다.)

 

그런가 하면 로스쿨 나와서 한 달에 기껏 2백만원, 사실상 최저임금을 가져가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 법조시장, 변호사 사업이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이른바 “중산층이 없어져가는 시대”이다. (물론 중산층이란 게 그 개념이나 범위가 무척 모호하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데 이 역시 원인은 임금격차가 원인이고 동시에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리면서 더더욱 자산격차를 키워왔다.

 

앞으로 10년이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가 되게 생겼다. 일부 지방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경작지와 국립공원이 절반씩 될 수도 있겠다.

 

양극화란 궁극적으로 소득격차 또는 임금격차에서 온다. 이와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난 자산 격차 또한 원인이다.

그런데 오늘날 오늘은 이런 양극화를 가져온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양극화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든 출발점은 미국이다.

 

올해 2022년 상반기 조사에 따르면 미국 3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급여 평균은 1,060만 달러이고 직원 급여의 중위값(median)은 23,968 달러로서 이른바 wage ratio, 즉 임금배율은 무려 670배로 나왔다. 기업의 말단 직원이 받는 연봉이 아니라 중위값(median) 급여 대비 그렇다는 얘기이다.

 

미국 300대 기업 최고경영자는 우리 돈으로 130억 정도 받는데 비해 중위값 임금은 3천1백만원이다.

 

이건 평균이 그렇다는 얘기이고 wage ratio가 무려 6,474배나 되는 대기업도 있다. 그리고 해마다 이 배율은 계속 높아져가고 있다.

 

미국 대기업들의 임금 배율이 일반 중간 정도 직원의 670배가 평균이고 심할 경우 6,474배라니 이거야말로 “같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이 되질 않는다. 인권의 나라 미국이 말이다.

 

물론 누진적인 소득세가 있으니 세후 배율을 계산해보면 556배가 된다. 앞의 670배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은 최고가 37%이고 중간값 급여의 세율은 12%이다.)

 

이 정도 차이라면 최고경영자는 사실상 과거의 영주나 제후라 하겠고 중간 정도의 직원은 그냥 일반 평민 또는 서민이라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수백배에서 수천배의 차이.

 

 

그게 마치 성장의 원동력인 줄 알았던가? 

 

 

아직 우리나라가 미국 정도의 임금배율인 것은 아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역시 급속도로 미국 스타일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게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고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를 보면 사장단의 연봉이 평균 100억 정도이고 몇 백 명에 달하는 그냥 임원의 평균 연봉은 8억 정도 된다.

 

우리가 미국만큼이나 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최저임금이 2천3백만원이란 점, 이에 반해 우리 또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공기업의 중간 간부라 하면 대략 1억 2천-1억3천만원 정도 받고 있으니 wage ratio가 5배 정도는 된다.

 

미국은 이제 아예 기본이고 최근엔 우리나라도 제법 자주 볼 수 있지만 “임직원 스톡 옵션(Employee Stock Option)”이란 제도가 양극화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전 세계의 양극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봐도 무방하다. 이 또한 하나의 流行(유행)이자 트렌드인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이 번성했던 이유

 

 

그런데 놀랍게도 예전의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시절 미국은 그야말로 글로벌 원 톱(one top)이었다. 당시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은 오늘날 기준으로 2백2십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30억원)였는데 당시 소득세율이 무려 91%나 되는 바람에 세후 수령은 3억원 정도였다.

 

누진세율이 워낙 높아서 대기업들 또한 더 받고 더 주고 싶어도 사실상 세금으로 다 뜯기는 바람에 연봉을 올리는 대기업 또한 별로 없었다. 바로 그 무렵 “임직원 스톡 옵션”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 역시 세금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기업 중간급 직원의 wage ratio 역시 잘 해봐 몇 배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란 직위는 수입보다는 권위와 명예의 자리였으니 바로 그 시절이야말로 “미국의 중산층이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최고경영자는 그냥 회장이나 사장이었다. 최고경영자 즉 CEO란 용어가 미국에서 처음 쓰인 것은 1972년이고 특히 1990년대 미국이 엄청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해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군대의 ‘작전 사령관’과 같은 뉘앙스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임직원 스톡 옵션, 양극화의 또 다른 원인

 

 

그리고 유명무실하던 임직원 스톡 옵션 제도 역시 미국이 허덕이던 1980년대 초, 정확하게 1981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소득세율을 그 이전의 최고 70%에서 50%로 대거 낮추면서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세금으로 다 뜯기던 것이 이젠 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임직원 스톡 옵션(줄여서 스톡 옵션)이 또 하나 활기를 보이게 된 것은 그 무렵 미국의 중심인 동부 쪽이 아니라 서부 캘리포니아 실리콘 벨리에서 IT, 정보기술을 개발하는 벤처 기업들이 대거 등장한 때문이었다.

 

벤처 기업들은 초기에 운영자금이 부족했기에 나중에 잘 될 경우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스톡 옵션 제도를 적극 활용했건 것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선 너도 나도 모두 채택하는 보상 제도가 되었다. 특히 최고세율이 그 이후 30-40% 사이 정도에 머무는 바람에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미국의 경우 소득에 대한 누진세가 실은 대단히 높았던 나라였다는 점이다. 1940년대는 무려 90% 수준이었고 1960년대 들어 70%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서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양극화를 철저하게 봉쇄하던 나라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부터 사모 펀드와 인수합병이 활성화되면서 경영이 부진한 기업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매각하거나 합병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치 해결사와도 같은 경영자들이 등장하면서 소송에서 이길 경우 당당 변호사가 엄청난 돈을 챙기는 일종의 ‘성공 보수’와도 같이 엄청난 보수를 가져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으니 그로서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사회가 고착화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양극화라 하겠다.

 

 

더 이상 성장률이니 GDP 같은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니 

 

 

오늘에 이르러 미국은 그야말로 살벌한 양극화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이제 중산층은 없다. 우리 또한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을 마냥 좋은 것인 줄 알고 따라서 양극화되었고 중산층은 사라지고 있다. 

 

국민소득 그리고 성장률을 따지기 이전에 이대로 그냥 가면 그건 좋은 사회로 갈 수가 없다고 나 호호당은 단언한다. 그러니 과연 우리가 양극화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음 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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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해 죽고 새 해가 탄생했으니 

 

 

동지가 지났으니 헌 해는 죽었고 새 해가 태어났다. 해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갓 태어난 새 해는 아직 강보에 싸여있어 힘이 없다. 저 어린 새 해가 짜잔-하고 힘차게 동쪽 바다에 떠오르려면 내년 3월 21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春分(춘분)이라 부르는 때가 그 때이다.

 

그러니 어제 동지부터 내년 춘분까지의 세상은 여전히 黑暗(흑암)이 지배하는 기간이다. 낮 시간 빼기 밤 시간하면 마이너스(-)란 말이고 陰(음)이 陽(양)보다 우세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계속 해서 시간(time)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시간이란 사실 없는 물건이라서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시간’이란 놈은 세상에 실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없고 그저 우리들이 느끼는 ‘지금’, 즉 now 가 있을 뿐이다. 그 지금도 순간순간 없어지고 변화해가지만 아무튼 ‘지금’만이 있다. 그런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을 느끼는 것 또한 아니다. 지금 눈앞의 사물과 내 몸 그리고 생각하는 나를 의식하는 것이지 지금이란 시간을 직접적으로 의식하진 못한다. 시간이란 놈은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니 그렇다.

 

이처럼 우리들은 있지도 않은 시간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에 나 호호당은 그를 ‘시간의식’이라 부르는 바 그 출발은 바로 해의 순환이다.

 

 

"시간 의식"의 출발

 

 

한 해의 순환 그리고 달의 차고 기움, 낮과 밤의 교대, 이런 현상을 우리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상대하다보니 결국 시간의식을 만들어내었고 나중에는 그것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도 만들어낸 인간들이다.

 

시간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물건은 時計(시계)이다. 이 용어는 서구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영어로는 clock 이라 한다.

 

시계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시계는 디지털시계, 주로 스마트폰 화면이나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표시되는 시계이다. 우리 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극초정밀의 원자시계도 있고 핵시계도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시계는 낮과 밤이었다. 낮엔 해가 하늘 어디쯤에 있는지를 보았으며 밤으론 달 그리고 별을 보면서 시간을 짐작했다.

 

그러다가 시간의식이 강해지면서 낮을 더 나누어서 해가 뜰 무렵을 새밝(새벽), 해가 뜬 후를 아침, 해가 중천에 떠있는 때를 한낮, 그리고 해 저물녘으로 구분했다. (재미난 것은 저물녘을 줄여서 저녁이라 한다는 점이다.)

 

 

왕조가 생기면서 시계가 만들어졌으니 

 

 

그러다가 권력이 집중되고 왕조가 생겨나면서 당시로선 초정밀 시계가 생겨났으니 바로 해시계이다. 작대기를 너른 평지에 꽂아놓고 해 그림자의 길이를 재어서 시각을 재기 시작했다. 이를 土圭(토규) 또는 圭表(규표)라고 했다.

 

집중된 권력 즉 왕조가 생겨난 뒤 해시계가 만들어졌지만 밤에도 시각을 재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12 時辰(시진) 또는 24 시간 체제가 만들어졌다.

 

영어로 오전을 morning 이라 하고 또 forenoon 이라 하며 오후를 afternoon 이라 한다. 이를 통해 noon 이란 말이 낮 12시 즉 정오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난 대목은 원래 noon 은 정오가 아니라 오후 3시를 뜻했다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해가 뜨는 때-주로 아침 6시-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해서 9시간 뒤를 nona hora 라 했는데 이를 영어로 옮기면 nine hour 란 의미이다. 따라서 noon은 9를 뜻한다. 그게 서양 중세 교회에서 일과를 보내다보니 어쩌다가 낮 12시로 3시간씩이나 앞당겨졌다.

 

하지만 시간이나 시진과 같이 정밀하게 나누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왕이나 영주의 궁전이나 교회 등과 같이 나름 바쁘게 돌아가는 권력기관에서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 시간을 아침, 한낮, 저녁 등으로 구분했을 뿐이고 밤이 되면 시간 따위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중국에선 그래도 밤 시간을 5개로 나누어 관리했다. 저녁 7시부터 2시간씩 끊어서 새벽 5시까지를 更(경)이라 하던 것이 그것인데 명칭이 재미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를 初更(초경) 또는 黃昏(황혼), 9시부터 11시까지를 二更(이경) 또는 人定(인정),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를 三更(삼경) 또는 夜半(야반)이라 했다. 가장 깊은 밤인 ‘야반삼경’이 그것이다. 그 이후 1시부터 3시까지를 四更(사경) 또는 닭이 운다 해서 鷄鳴(계명), 3시부터 새벽 5시까지를 五更(오경) 그리고 동쪽이 밝아온다 해서 平旦(평단)이라 했다.

 

이에 경이 바뀔 때마다 궁궐이나 고을 관아에선 종이나 북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

 

 

평민들과 시계는 별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고을의 관청과 멀리 떨어진 들이나 산에서 사는 일반 평민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오히려 물때, 즉 조금 사리를 아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평민들에겐 시간은 고사하고 期日(기일)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대다수 사람들은 달의 차고 기우는 것으로 달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날을 계산했으니 바로 陰曆(음력)이다.

 

하지만 음력은 알다시피 세월이 지나면 엄청난 오차가 벌어진다. 음력은 한 달에 29일과 30일을 번갈아서 쓰니 한 해가 354일이 된다. 그런데 해의 순환은 365.2425로 나가는 무한소수이다. 정말 골 때린다!

 

그래서 왕조는 피지배층들을 빨아먹는 대신 나름 서비스를 했으니 바로 달력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확한 달력을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오차가 발생했고 이에 달력 시스템을 개정하곤 했다.

 

 

달력, 인간 지혜의 결정체

 

 

천문학이란 게 사실 달력을 좀 더 잘 만들어보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서 우주를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늘의 해와 달, 또는 북두칠성과 같은 별을 관찰해서 달력, 월과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아무튼 세월이 흐르면 달력이 엉망이 되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은 새롭게 왕조가 바뀌거나 또 야심 찬 왕이 등장하면 대표적인 개혁의 상징으로서 새 역법을 만들어서 발표하곤 했다.

 

조선왕조 최고의 스타 임금인 세종대왕 역시 아니나 다를까? 좀 더 나은 달력을 만들기 위해 고대 로마제국 당시 그리스의 천재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지은 천문학 책 즉 “알마게스트”의 중국어판 서적을 반입했으니 바로 “칠정산 내편”이 그것이다.

 

 

분 단위까지도 사용하는 오늘의 우리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과 일은 물론이고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쪼개어 생활하기 시작한 것 또한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일제 강점기부터 보급되어서 1960년대부터 몇 시 몇 분까지도 생활에 쓰기 시작했다.

 

나 호호당이 예전에 은행 전산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독일 연수를 갔었는데 그게 1990년의 일이었다. 프랑크푸트르 중앙역에 가니 기차가 겨우 몇 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령 타려고 하던 기차가 오후 3시 17분 차였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가령 3시 정각, 3시 15분, 30분, 이렇게 15분씩 절도가 있는 간격이 아니라 마치 마구잡이식의 17분 출발, 21분 출발, 이런 식으로 끝자리가 복잡한 것을 보고 와, 이게 선진국이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아니, 수백 킬로를 달려가는 기차들이 분 단위로 제어가 된다니 이런!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KTX나 SRT 등을 탑승할 때 3시 17분 차, 이런 식의 시간표에 익숙하겠지만 그건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마도 우리가 더 정확할 것이다.

 

월과 일은 물론이고 1시간의 1/60인 分(분) 단위까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버스 기다릴 때 스마트폰으로 도착 시각을 분 단위로 쓰고 있고, 택시 콜 해도 잡고 나서 서있는 장소까지 몇 분 뒤에 올 것이며 가고자 하는 장소까지 몇 분 걸리는지 재어가며 생활하는 우리들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 시대만 해도 만날 약속을 할 경우 예컨대 다음 달 초순경에 봅시다, 식으로 期約(기약)을 했다. 이에 반해 우리들은 일처리의 경우 일자는 물론이고 몇 시 몇 분, 이런 식으로 예약을 한다.

 

이제 정리할까 한다. 그냥 시간이 不在(부재)하는 동짓달 긴긴 밤의 얘기였다.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여전히 감각의 동물이다. 밥 벌어먹기 위해선 분과 초를 따지는 냉철한 우리들이지만 나머지 일에선 그렇지가 않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흐르고 싫거나 관심 없는 사람과의 일은 1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감각의 동물인 우리들에게 시간은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시간이란 게 기본적으로 없는 물건인 까닭이다.

 

글을 마치고 나니 12월 24일이 되었다. 오전 1시 52분이다. 정말이지 너무 춥고 밤은 너무 길구나!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구나. 메리 크리스마스!

동짓달 긴긴 밤에 삭풍의 소리를 들으며

 

 

동짓달 그야말로 긴긴 밤, 바깥엔 삭풍이 불고 있다. 삭풍이란 朔方(삭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삭방이란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오르도스 시가 있는 멀고 먼 서북쪽의 옛 지명이다. 오늘날에도 몽골 유목민들의 땅인 그곳에서 불어오는 아주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朔風(삭풍)이다.

 

이 시각 서울 기온을 보니 영하 7도이고 진짜 기온인 체감온도는 영하 13도. 이 시각에도 바깥에서 일 해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경계 근무를 서는 일선 병사들 말이다.

 

삭풍에 오래 노출되면 코 점막과 기관지, 허파를 말려서 염증을 유발한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거나 가습기가 필요하리라.

 

그러고 보니 길고양이들, 물을 마실 곳도 없을 터인데 이 밤 많은 놈들이 폐렴으로 죽거나 또 죽어 가리라. 딱하고 또 딱하다. 문명화된 인간의 세상에선 죽는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지만 야생에선 삶과 죽음이 반반이다. 이에 나 호호당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무관세음보살, 밖에 없다. 이번에 가면 다신 이 세상에 오지 말기를! 부디 제발.

 

지금 바깥은 八寒(팔한)의 地獄(지옥)이나 진배없다. 지옥이란 인간 상상력의 산물, 살거나 지내기에 가혹한 환경을 최대한 과장해서 그려낸 산물일 것이다. 과장을 줄이고 현실화하면 우리 사는 이곳이 바로 지옥 아니겠는가.

 

다행히 발전된 기술 덕분에 이 시각 잠옷을 걸치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고생하는 저 많은 생명들에게 생각이 가 닿으면 마음이 다시 무겁다. 그러니 기껏해야 애써 모르는 척 할 뿐이다.

 

 

겨울의 본명은 죽음이다

 

 

겨울의 다른 이름은 그리고 진짜 이름은 “죽음”이다. 本名(본명)이 死亡(사망)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겨울 동안 모든 것이 차례대로 죽는다.

 

 

헌 것이 죽으면 새 것이 잉태되니 

 

 

이제 며칠 있으면 冬至(동지), 동지로서 하늘 해가 죽고 다음 달 1월의 이맘 때 大寒(대한)이 되면 땅이 죽을 것이다. 이에 다시 한 달이 지나 2월 이맘때인 雨水(우수)로서 사람이 죽는다.

 

동지로서 헌 해는 죽지만 새 해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1월의 대한으로서 헌 땅은 죽지만 새 땅의 기틀이 움직이며 2월의 우수로서 헌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의 精氣(정기)가 생겨난다. 이게 바로 “자연의 순환”이다. 나 호호당은 그 순환이 조금치도 어김이 없음을 어느 날 보았기에 자연순환운명학을 만들었다.

 

운명이란 건 결국 자연의 순환이구나! 하고 感(감)을 확실히 잡은 것은 2007년의 일이었지만 그 이후 연구와 검증을 통해 2014년 4월에 정립했으니 근 9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도 더 넓고 멀리 그리고 깊은 곳에까지 눈이 미쳤다.

 

시각은 새벽 3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잠시 창을 열어보니 차디 찬 칼바람이 순식간에 얼굴을 덮는다. 바람이 칼날 같고 화살 같다. 몸서리를 친다.

 

동지에 뿌려진 새 해의 씨앗은 석 달에 걸쳐 양육되다가 3월 20일 경의 春分(춘분)으로서 사건의 지평선,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위로 그 新生(신생)의 모습을 드러낸다. 해는 빛의 원천이니 그로서 한 해의 새로운 비전이 제시된다. New Vision!

 

이어 대한으로서 기틀이 깔린 새 땅은 4월 20일 경의 穀雨(곡우)로서 온기를 뿜어내며 모든 종자를 키워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시 5월 20일 경의 小滿(소만)으로서 새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새 생명들이 약동한다. 새 나무는 新綠(신록)을 매달았을 것이며 모든 새들과 벌레들 또한 살림을 시작한다.

 

 

소만, 신록의 때

 

 

사람 또한 마찬가지. 5월 하순이면 저녁과 늦은 밤에도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이에 한 해의 순환을 60년의 순환에 적용해보면 그 어떤 이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7.5년이 경과한 小滿(소만)의 때에 이르러 조금씩 일이 풀려가기 시작한다. 이제 자신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한다. 好運(호운)의 시작점, 하지만 시작이란 얘기이지 바로 좋다는 말은 아니다.

 

환타지 문학의 거장 JRR 톨킨이 먼 훗날 “반지의 제왕”이란 걸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은 60년 운세의 소만인 1911년 여름 방학을 스위스의 아름다운 곳에서 보내면서 얻은 영감 때문이었고 이에 30년이 흘러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집필할 수 있었다. 톨킨의 문학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고 당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그 후 50년이 흐른 1968년, 톨킨의 나이 76세에 쓴 편지에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한 때 전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던 프랑스 혁명이 낳은 풍운아이자 군사 천재 나폴레옹 역시 차별 받던 식민지 출신이었으나 은인의 배려로 프랑스 하층 귀족의 자제들이 들어가는 브리엔느 예비군사학교에 입학했고 이어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것이 운세의 소만 무렵이었다. 코르시카 식민지 사투리를 쓰는 그 왜소하고 창백한 청년이 20년 뒤 프랑스 제국의 황제가 되어 전 유럽을 호령할 줄이야 그 누군들 알 수 있었으랴!

 

대단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소만이면 그럭저럭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게 된다. 5월 20일 경의 푸르고 푸른 신록을 생각해보라, 그게 어떤 이가 소만을 맞이했을 때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한 때 푸르다.

 

 

소만의 모순, 삶의 모순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나의 矛盾(모순)이 발생한다. 우리들이 5월의 푸른 신록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결국 좋은 계절이 왔음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고 신록을 낸 나무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나무의 입장에 서보자. 일단 저장했던 영양분은 거의 소진이 되었다. 가을 낙엽 후 여태껏 생산하고 벌어놓은 영양분이 없다. 그런 판국에 새 잎을 만들어서 가지에 매달려면 있는 거 없는 거 죄다 끌어 모아야 한다.

 

농부로 치면 당장 먹을 식량도 없는데 가을 수확을 위해 당장 밥 지어 먹을 수 있는 볍씨를 땅에 뿌려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마음이 오죽 할까?

 

5월은 따라서 모든 생명이 가난한 때이다. 톨킨은 가난할 때 스위스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갔고 나폴레옹은 차별과 괄시를 받으며 군사학교를 다녔다. 또 그랬기에 그 시간들이 각별했을 것이다.

 

청춘은 가난하다. 청춘은 가난해야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것은 풍성한 것이 아니라 풍성하려는 몸짓이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결핍에서 온다. 앞에서 예로 든 新綠(신록)은 가난하기에 아름다운 것이고 이에 矛盾(모순)이라 한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이 겨울밤, 죽음의 시간에 나 호호당은 지금 이상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어쩌다가 글이 한 겨울의 죽음에서 생명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5월의 얘기로 흘러왔을까?

 

 

삶의 원동력, 어리석음과 집착

 

 

죽음은 사실 편안하다, 아주 많이! 더 이상 고통 받을 몸이 없으니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에 대해 맹목적인 의지와 의욕을 가지는 걸까? 사는 게 좋다고 하면서 무조건 살고 볼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 점을 확실하게 눈치를 차린 사람이 벌써 있었으니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삶이 무조건 좋다고 하는 어리석음 즉 無明(무명)과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의지 즉 執着(집착), 이 두 가지 때문이라고 그 양반은 지적했다.

 

그를 이어받아 다르게 해석한 이는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를 긍정했던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맞고 터지고 까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고통을 정면에서 직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저항의 메시지”를 남긴 그였다.

 

이를 조금 달리 비틀어서 표현한 이가 또 있다. 實存(실존)은 本質(본질)에 앞선다고 했던 사르트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가보다 우선 눈앞에 닥친 삶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무엇이든 또 무엇이 되든 그건 다만 너의 自由意志(자유의지)라고 거창하게 부추긴 것이다.

 

나 호호당은 자유의지란 말 엄청 싫어한다. 사르트르란 작자가 너무 잘난 체 하면서 부풀려 놓은 탓에. 목적 없이 던져진 너의 삶이니 너 스스로 알아서 목적을 만들고 잘 해보렴,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이제 글을 그쳐야 하겠다. 답 없는 문제를 끝까지 풀어보겠다고 힘만 쓸 순 없는 노릇, 글을 그치니 다시 들려온다. 창밖에 부는 저 매서운 朔風(삭풍)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충 살아, 그리고 사실 이젠 거의 다 살았잖아? 뭘 그렇게까지.”

 

순간 알게 된다. 생명은 죽기 직전에 이르러 가장 풍요롭다는 사실을.

시간이 범인이다!  

 

 

작업실을 모처럼 한 번 깔끔하게 청소하고 정리했다. 며칠이 지나고 달이 넘어가면 지저분하고 어질러져있다. 깔끔했던 공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범인은 누구이고 원인은 무엇일까?

 

지저분해진 것은 공기 중의 먼지 때문일 것이고 어질러놓은 이는 청소를 했던 나 자신이다. 그러다가 생각해본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범인은 먼지와 나 자신이 아니라 바로 시간이란 사실, 이 얼마나 탁월한 발상이며 책임 회피인가!

 

시간이 작업실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어질러놓았다. 물리학적 설명을 시도해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작업실 안의 엔트로피가 높아진 탓이다.

 

성가시지만 다시 힘을 내어 작업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한다. 끝난 뒤 피곤해진 몸을 쉬게 하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아, 나는 결국 “시간의 피해자!”란 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간, 저 놈이...

 

시간이 오래 되면 그 사이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나고 또 그 일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복잡하게 뒤얽힌다, 그걸 우리는 歷史(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니 결국 나 호호당은 “역사의 피해자”가 된다.

 

나는 결코 작업실을 어지럽힐 의도가 없었다, 나 호호당은 양심이 있는 사람, 엄밀하게 따져보니 약간의 귀책사유가 나에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인정한다, 커피를 마신 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빈 잔을 싱크대로 가져가서 씻어놓지 않은 게 罪(죄)라면 죄이다, 극미한 경범죄, 그런데 달을 넘겨서 보면 작업실은 엄청나게 무질서해져있다. 시간과 역사가 범인임이 거의 확실하다. 내 잘못이 2 라면 시간과 역사의 잘못은 98 정도.

 

주기적으로 시간과 역사를 향해 투정을 하고 탓을 하면서 힘들게 몸을 쓴다. 누적된 폐단, 즉 적폐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고 세게 청소를 하고 깔끔하게 정돈을 한다. 마지막으로 기억 속에 저장해둔다, 시간과 역사, 저 놈들이야말로 악당이라고.

 

 

너무 정곡을 찌르지는 말아야 

 

 

그런데 이렇게 정확하게 정곡을 찌를 것 같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역사책을 쓸 이유가 원천적으로 사라지니 그렇다.

 

예컨대 나 호호당은 일찍이 에드워드 기번이 쓴 방대한 양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잘도 열심히 흥미롭게 읽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앞의 논리를 대입할 것 같으면 ‘로마제국이 망한 원인은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란 간단한 문장 하나로 정리가 된다. 거꾸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어간 것이 더 신기하다.

 

잘 나가던 기업이 왜 망했는가를 놓고 경영학자들은 꽤나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 기업이 망한 원인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 뿐이다.

 

그렇고 보니 그렇다. 우리가 비판을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게 핵심 또는 정곡을 찌르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또 하나의 생각이 든다. 기록된 역사이든 기억된 역사이든 모든 역사는 결국 범인의 숨바꼭질 놀이란 생각. 먹은 놈은 다 튀고 마지막 찌꺼기를 좀 먹어보려다가 재수 없게 그만 걸린 놈이 최종적으로 범인이 되는 놀이가 바로 역사란 생각이 든다. 특히 기록된 역사의 범인은 대부분 그런 자들이 아닐까?

 

 

風化(풍화)라는 것

 

 

조금 전만 해도 작업실이 지저분해진 것에 대한 범인으로서 나 자신은 쏙 빠지고 전혀 다른 놈 즉 시간의 탓으로 돌려놓고 있지 않은가, 능숙한 솜씨로!

 

물론 지금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저지른 아주 미미하고 사소한 부주의와 태만이 쌓이고 모여서 작업실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범인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내 머리 속에 기억될 것이다. 그게 사실이고 팩트라고.

 

훗날 혹시라도 어질러놓은 당사자가 나였다는 생각이 잠깐이라도 스쳐 가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서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너무 지나친 自責(자책)이라고 생각을 금방 돌려버릴 것이다. 나는 전혀 잘못이 없었어, 시간이 범인이야! 하고 또 다시 나를 긍정하게 될 것이다.

 

이에 먼 훗날 누군가 내게 묻기를 그때 작업실이 왜 그토록 지저분하고 어질러져있었지? 한다면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다. “그땐 그랬어, 먹고 살기 바빠서 말이지, 당시의 사정을 지금에 와서 어떻게 누누이 되살릴 수 있겠어, 나 또한 시대의 희생자일 뿐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야.”

 

모든 진실은 사건이 발생한 그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소멸되거나 혹은 風化(풍화)된다. 장대한 바위가 장구한 세월 속에서 비와 바람을 맞고 또 얼었다가 녹으면서 균열이 생기고 침식되고 깎여나가서 마침내 곱고 보드라운 찰흙이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게 된다, 이 세상의 저 많은 역사서적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

 

하지만 그 질문 또한 답하기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시간과 역사 자체가 범인이라 하면 아예 쓸 것이 없어지니 기존의 史料(사료)라든가 아니면 새로 발굴되는 기록이나 여타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저자의 입맛과 취향, 유행 사조와 이념 등에 맞추어 소설 또는 픽션을 쓰면 된다. 이런 것을 최근엔 팩션(faction)이라 하기도 한다.

 

 

역사학은 일종의 문학이다

 

 

따라서 역사란 학문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文學(문학)에 속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 이야기와 진실은 시간과 세월 속에서 이미 風化(풍화)되었으니 큰 부담도 없다. 그래서 역사서는 끊임없이 재창작된다. 계속해서 리메이크 버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흔히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한다. 제법 있어 보이는 말 같지만 실은 역사 자체에서 배울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보다는 다양한 역사책들을 섭렵하다 보면 간단한 사건 하나를 놓고도 수많은 배경과 원인 그리고 우연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생각의 다양성과 폭을 넓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이니 올드 세대이다. 어려서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무렵 黨爭(당쟁) 즉 당파간의 싸움질로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를 선생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 바람에 그렇구나! 했다.

 

살면서 보니 당쟁은 인간 사회 보편의 갈등 양식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서 조선이 망한 것은 당파 싸움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선 왕조가 너무 오래, 무려 500년씩이나 이어진 게 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원한 현재! 

 

 

이제 정리한다. 나 호호당은 과거의 일들에 대해 많은 기억과 추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무수히 수정되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다시 떠올릴 때마다 이런저런 기억의 파편들을 짜깁기하고 덧붙였으며 때론 전혀 없던 스토리까지 지어내면서 만들어진 현재 시점의 印象(인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다 좋다. 긴 인생 지내오면서 뇌리에 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는 빛나는 몇몇 장면(scene)들, 그게 비록 끊어진 파편이나 부스러기와도 같을지언정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시간들만큼은 내 삶의 ‘영원한 현재’이자 온전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일직선의 무한 시간이 가져다준 근원적인 삶의 불안

 

 

앞글에서 얘기한 유대교와 기독교를 통해 다듬어진 직선적 시간관은 기본적으로 무한한 시간을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삶과 고난의 역사는 언젠가 마침내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는 날. 결정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이란 기대를 전제로 깔고 있었다. (오늘날 그와 같은 종말론은 기독교에서 상당히 이단시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과학적 정신이 기독교 신앙을 변두리로 밀어내면서 이제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끝도 한도 없이 이어져가는 두려운 그 무엇이 되었고 그로서 좁게는 서구인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현대인들에게 엄청난 불안과 불행을 안겨주고 있다고 했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무한한 시간, 영속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의 삶은 지극히 찰나의 일이다. 찰나이기에 덧없다, 그런 삶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근대 이후 서구 철학은 안타까운 몸부림에 불과했으니 

 

 

이에 다시 불확실한 신앙을 향해 마치 허공에서 점프하듯 온몸을 던져야 한다고 했던 키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해서 야스퍼스, 마르셀 등으로 이어지는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등장했다.

 

또 이미 우리 스스로가 죽여 버린 신이라든가 운명의 여신에게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맞설 것을 주장한 프리드리히 니체, 삶 자체에 아무런 의미는 없지만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알베르 카뮈, 삶은 그냥 내던져진 것이라고 말한 사르트르와 같은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독교 신앙이 흔들리면서 생겨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안타깝고 절망적인 몸부림에 불과하다.

형이상학적 신학의 시대, 신앙의 시대가 사실상 끝난 것이다. 물론 여전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많은 신앙인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에리한 과학적 지식 앞에서 부단히 시달리거나 불안해한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는 사라졌고 그 慣性(관성)이 남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단지 한 번에 그친다는 점,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모든 것들과 작별하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실로 힘들게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흘러가서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는 점이고 그로서 영원히 疏外(소외)되고 망각되어 버린다는 점이 우리를 괴롭힌다.

 

 

시간에 대한 또 다른 관점, 순환적 시간

 

 

그러면 이제 순환적 시간관에 대해 얘기해볼 때가 되었다. 순환적 시간관 속에서 우리가 달리 어떤 위로와 위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시작해보자.

 

앞글에서 얘기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간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들어가 보자. 과학적 시간이 가장 유력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무엇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는 점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시간은 늘 되돌아온다. 낮이 되었다가 또 밤이 오고 그러면 다시 아침이 온다. 또 밤이 올 것이다. 데이 앤 나잇, 이게 시간이다. 밤과 낮만이 아니라 달의 朔望(삭망), 즉 차고 이지러지면서 매달 되돌아오며 계절로 봐도 겨울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그러면 다시 겨울이 온다. 한 해 또한 가면 다시 온다, 따라서 시간은 늘 같은 길을 되밟아올 뿐이다.

 

시간은 그저 一往(일왕)하면 一來(일래)한다. 이게 바로 순환적 시간관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쓰는 ‘해’란 말은 ‘하루의 해’를 말하기도 하지만 一年(일년)으로서의 해를 뜻하기도 한다. 日(일)과 年(년)이 우리말에선 모두 해라고 한다.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게 어째서 같겠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스케일의 차이가 있지 않느냐 하면서.

 

물론이다. 스케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스케일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 하고 따질 것 같으면 우리 삶의 길이가 한정되어 있고 마침내 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 눈엔 참으로 덧없는 풀벌레 하루살이이지만 그 놈이 그 하루를 충분한 시간의 길이로서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가져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여전히 각 생명체가 시간을 어떻게 감지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하루살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결국 감정 이입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시간의 스케일에 대해 민감한 까닭은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의 순환

 

 

순환적 시간관은 오늘날 우리 일상 속에도 여전히 배어있다. 친한 사람끼리 만났다가 헤어질 때 한 쪽에서 아쉽다고 말하면 다른 한 쪽에서 오늘만 날인가, 또 만나면 되지! 이런 말을 하곤 하는데 이 역시 되돌아오는 시간의 관념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면서도 또 되돌아온다,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磨耗(마모)되지만 한 편으론 또 다시 복원이 된다.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니 옛정이 새롭습니다, 하는 인사말이 그것이다. 옛것 헌것을 새롭게 복원시켜놓으니 그렇다.

 

오늘 하고 있는 얘기는 시간이 무엇인지 여전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간에 대한 과학적 지식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능과 감성을 지닌 유기체로서의 우리 인간이 시간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다시 돌아오기에 이번만이 기회인 것은 아니란 위안

 

 

그러니 시간이란 것이 흘러가긴 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게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와 企圖(기도)들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나중에라도 이룰 수 있다. 오늘만 날인가! 나중에 또 봅시다, 하는 말이 문자 그대로 말이 된다.

 

되돌아오는 시간에 대한 관념은 특히 고대 인디아 문명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되었다. 우주 자체가 永劫(영겁)에 걸쳐 무한히 창조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인디아 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지긴 하지만 우주와 시간이 소멸되면 다시 창조된다는 생각은 여러 문명권에서 꽤나 일반적이다. 나아가서 사람 또한 한 번 태어나 살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하면서 이어진다는 생각, 즉 輪回(윤회)와 轉生(전생)이 더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윤회 전생하는 삶에선 눈앞의 고통과 불행에 대해 또 다른 식의 위로가 주어진다. 業(업)이라 부르는 카르마가 그것이다. 이번 생에서 당신이 고통스럽고 어려운 것은 前生(전생)에 지은 업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니 이번 생은 힘들더라도 선하게 살면서 복을 지어놓으면 다음 생에선 훨씬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게 그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썰”이다.

 

 

순환적 시간은 불안과 불행을 나름 덜어주는 힘이 있으니 

 

 

하지만 삶의 고통과 불행을 나름 위로해준다. 아이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이냐! 하면서 한탄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푸념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시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되돌아오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고 살고 또 죽기를 되풀이한다는 생각, 이게 사실이라면 이번 생에서 꼭 성공할 이유도 없게 된다, 그러면 느긋해진다. 이번 삶이 별로라면 다음 생에서 잘 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질 때 우리가 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나서 한 평생 잘 살아봅시다, 하는 바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시간이 되돌아오고 삶이 되풀이된다는 기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을 때 우리는 전생에 어떤 관계였기에 이렇게 잘 맞을까요? 하고 찬탄을 하기도 한다.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번 생에서 이루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가까운 이와 가령 死別(사별)할 때 다음 생에 다시 만납시다, 하고 기약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되돌아오고 되풀이되며 삶 또한 그렇다면 말이다.

 

되돌아오는 시간관은 이처럼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준다. 이 대목에서 20세기 초반의 “앙리 베르그송”이 생각난다. 그는 시곗바늘에 의해 측정되는 과학적 물리적 시간은 우리 의식의 시간, 진짜 시간인 삶의 시간과는 다른 것이니 그 따위 것에 신경 쓰지 말자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과학의 직선적 시간관에 대한 미약한 저항 또는 반항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과학을 누리되 삶에는 위안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하는 얘기지만 여전히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이 주는 저 많은 유용함을 한껏 누리되 과학의 직선적 시간관에 대해서는 굳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불안하고 불행해질 것이니 말이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이번 글 역시 이전의 시리즈 글인 “삶을 견뎌내는 세 가지 방법”과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글에선 또 제목을 바꿔달고 다른 얘기를 하겠지만 그 역시 큰 맥락에선 동일한 주제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글은 결국 나 호호당이 연구해낸 자연순환운명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 또한 미리 밝혀둔다.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은 과학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와 지식이 현대 사회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를 잡은 뒤부터 시간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시간의 화살”이라 부른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돌아갈 순 없듯이 말이다. 따라서 시간 속에선 그 어떤 일도 되돌릴 수 없다, 非可逆(비가역)적이다.

 

과학이 주된 사조가 된 것은 1800년대 후반의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과학적 사고방식과 지식이 있었지만 主流(주류)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했던 1600년 당시만 해도 로마 가톨릭의 압력에 그만 고개를 숙였다. 당시만 해도 지식에 대한 유권 해석과 인정은 로마가톨릭의 손안에 있었다.

 

과학이란 단어는 영어의 science 를 옮긴 것인데, science 란 단어는 1833년에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 “자연철학”이라 했다, 여러 철학 중에서 자연과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와 철학이란 뜻이다.

 

자연철학은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과 운동의 법칙을 밝힌 1687년 이후로 서서히 인정을 받았고 그러다가 1800년대 중반 다윈의 “진화론”이 인정을 받으면서 급격히 주된 사조로 자리를 잡았다. 진화론이야말로 “시간의 화살”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고 그 이후 열역학 제2법칙에서 엔트로피란 개념이 등장하면서 확고부동해졌다.

 

이에 오늘날 종교적 주장이나 지식, 특히 신이나 영혼 등에 관한 것은 당사자에게 있어 (근거가 애매해진) 믿음의 영역일 뿐 합리적 사고나 지식이란 관점에선 이미 변두리로 밀려났다. 지식의 대표주자는 과학과 기술이고 우리의 경우 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진 순수인문계를 나와선 삼성전자에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종교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있기에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여전히 상당하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렇기에 과학이 주가 되기 이전 시절에는 시간에 대해 실로 다양한 생각과 사조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꼭 과거에서 현재, 미래, 이렇게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아직 없다는 사실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오자.

 

물리학자들은 時空間(시공간)이라 해서 하나의 물리량으로 인정하고는 있으나 사실 시간이란 결국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개념이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명확한 정의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간에 대해 과거로부터 무수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다양한 주장을 펼쳤을 뿐 아니라 그 이전, 즉 非(비)문명 시절에도 다양한 해석과 생각이 존재했다.

 

 

시간에 대한 두 가지 관념

 

 

이처럼 다양한 사고와 생각들을 살펴보노라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앞에서와 같이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일직선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순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시간을 인지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려는 생각도 상당했다.)

 

 

직선적 시간관은 원래 유대교와 기독교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흥미로운 점은 직선적인 시간관이 비록 오늘날 과학시대에 있어 기본이 되었지만 사실 그건 과학적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고 더해서 인류 보편의 사고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수파의 생각이었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순환적 시간관이야말로 훨씬 더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직선적 시간관의 출발점은 다시 말하지만 과학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뿌리는 모세로부터 출발한 唯一神(유일신) 사상인 유대교의 엘리트들과 선지자들이 발전시킨 독특한 역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5세기경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정립이 되었다. 다만 이 점에 대해 설명하려면 상당한 분량의 글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생략한다.

 

직선적 시간의 관념,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흘러가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불안과 불행을 안겨준다. 이에 기독교는 그 불안을 위로하기 위해 두 가지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엄밀히 말하면 직선적 시간관과 기독교의 교의는 불가분의 한 세트라 하겠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고 따르다가 죽으면 하나님 또는 예수님이 계시는 지복의 하늘나라 궁전에 가서 永生(영생)을 누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눈앞의 힘든 현실과 고통의 역사가 언젠가는 끝날 것이란 기대였으니 바로 종말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종말론은 이제 기독교 자체에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영향력이 남아서 여전히 서양에선 역사의 終焉(종언)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다는 점만 지적해둔다.

 

 

기독교 신앙이 흔들리자 불안이 되살아났으니 

 

 

그런데 과학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직선적 시간관은 더욱 더 확고해졌으나 그를 만들어낸 기독교의 교의와 신앙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러자 즉시 문제가 불거졌다. 불안과 불행이 또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선 모든 것이 변하고 磨耗(마모)된다, 죽어서 지복의 하늘나라에 간다는 믿음이 흔들린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단 一回(일회)의 삶은 너무나도 허망해진다.

 

삶 전체만이 아니라 모든 순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순간과 매 순간마다 이별을 하고 있다. 굳은 言約(언약)을 했다 하더라도 시간 속에서 그 언약은 마모되고 부스러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직선의 시간과 삶 속에선 그 어떤 期約(기약), 즉 날을 정하는 것 또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해진다. 흘러가면 그만인 시간인 까닭에.

 

당초 유대교의 선지자들과 엘리트들이 직선적인 시간관을 발전시킨 것은 눈앞의 시간과 역사가 당장은 의미가 없고 때론 고통스러울지언정 그 속엔 절대자인 神(신)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런 관념은 중세 이후의 서구에서 과학적 정신과 인간의 理性(이성)에 점차 고개를 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헤겔은 역사철학강의를 통해 역사를 主宰(주재)하는 이는 (신이 아니라) 절대이성이라고 말했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이성이 이끌고 있기에 늘 진보하지 않고 때론 퇴행하기도 하지만, 즉 正反合(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크게 보면 결국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서 마침내 지복의 세상이 구현될 것이라 위로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절대자인 神(신)이 제2선으로 물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2년 자신의 저서 “즐거운 학문”을 통해 신의 죽음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원문 번역을 보면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안식을 얻을 것인가?” 라고 묻고 있다.

 

신을 죽인 것은 물론 니체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 정신이 신을 죽였다. 그러자 불안이 서구 사람들을 엄습했다. 이에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1898년에 그림의 제목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뿐만 아니라 도스토옙스키는 1879년에 초판이 나온 “카라마조프의 형제” 속에서 철저한 무신론자이자 합리주의자인 차남 이반의 입을 빌려 “신만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고 토로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상실은 근대 서구인들에게 삶의 근원적인 불안과 불행을 유발했던 것이다.

 

 

직선적인 시간 속에선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정말로 그렇다. 직선적인 시간 속에선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눈앞의 현실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고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면 중년이 되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아, 그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는 諦念(체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一回(일회)성의 삶이라 여길 것 같으면 모든 善(선)과 도덕률의 바탕이 무너진다. 어차피 한 번 살 거, 즐기고 누리면 그만 아닌가 말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짓밟는다 해도 무슨 상관! 쾌락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19세기 중반부터 과학의 발전과 그를 바탕으로 생겨난 기술의 엄청난 진보는 분명 인류에게 엄청난 물질적 풍요와 함께 긴 수명을 가져다주었다,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은 신을 대체했고 극적으로 말하면 신을 죽였다.

 

원래 하나의 세트였던 생각, 직선적 시간관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근원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기독교적 신앙이 분리되자 서구인들 그리고 그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모든 현대인들에게 또 다시 원초적인 불안이 엄습해온 것이다.

 

모든 것이 一回(일회)성이고 되풀이되지 않으며 머물지 않고 흐르고 또 흘러서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에 가 닿을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 이게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불행이라 나 호호당은 여긴다.

 

이미 현대 사회는 기독교적 신앙으로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교회와 성당이 많지만 그 출처인 서구사회, 특히 개신교권의 나라들에선 이미 무력해지고 말았다. 다만 글로벌 강자 미국이 아직 개신교적 전통이 강한 탓에 착시효과를 낳고 있을 뿐이다.

 

다음 글에선 시간에 대한 또 다른 관념인 순환적 시간관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오늘날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순환적 시간관이야말로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바탕이자 초석인 까닭이다.

 

최근 들어선 적절한 분량에 딱 떨어지는 흥미 위주의 글보다 자꾸만 생각 좀 해야 하는 주제들에 관심이 가니 혹시나 독자들 머리 아프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양해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월드컵은 끝이 났으니 

 

 

어제로서 우리의 월드컵은 끝이 났다. 16강에 올랐으니 성공했다고 여긴다. 새벽에 8강전을 보노라니 체력 다 빠진 우리 팀에게서 전반에 무려 4점이나 뽑은 브라질 선수들이 비즈니스 접대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잠도 자면서 제3자적인 시각에서 강호들의 플레이를 감상해야 하겠다. 그냥 즐거운 월드컵.

超越(초월)이란 방법

 

 

초월, 영어 단어론 trenscend, 이런 딱딱한 단어 말고 쉽게 말하면 go beyond 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한계를 넘어선다는 말인데 사실은 말 자체가 모순이다. 넘어설 수 있다면 그게 한계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 호호당은 오히려 그게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라 본다.

 

 

진정한 믿음은 초월이다. 

 

 

대표적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초월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지적,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어렵게 얻은 첫 아들 이삭을 燔祭(번제)의 제물로서 바치라고 요구했다.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요구였지만 아브라함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피눈물을 머금고 그 말에 따랐다.

 

아브라함이 정말 그랬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고대엔 첫 수확물을 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첫째 아이를 바치면 자녀를 더 많이 낳고 키울 수 있다는 관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실제 행해졌던 것은 사실이다.

 

나의 모든 것을 절대자에게 맡기는 것, 이게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넌 죽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죽을 것이고 무단히 동쪽으로 가라 하면 넵! 하고 동쪽으로 가겠다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란 구절이 있다. (11장23절)

 

아무리 예수가 진정으로 말한다 해도 사실 말이 되질 않는다, 지극히 非(비)합리적이고 非(비)이성적이다, 하지만 저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진짜 믿음은 그 자체로서 초월적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대표적으로 기독교가 되겠지만 아무튼 종교적 믿음이란 이성의 견지에서 볼 때 무모한 투기 또는 도박이다. 폭락장에서 바닥일 거라 확신하고 자신의 모든 돈과 신용을 당겨다가 풀(full)로 레버리지를 거는 행위보다 더 무모하다. 이처럼 무모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 삶의 暴壓(폭압)이 엄청나다는 얘기이다.

 

반대로 말해서 그럭저럭 지낼만한 자가 그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신앙이란 절벽에서 그냥 뛰어내리는 일이다. 

 

 

실존주의의 선구자로서 평가받는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런 무모한 믿음의 자세를 “신앙의 도약”, 낭떠러지에서의 무모한 점프와 같다고 표현했다. 저 표현은 불교 수행자들 사이에서 말해지는 百尺竿頭(백척간두), 30미터나 되는 막대기 위에 서서 進一步(진일보), 즉 허공으로 한 발 내딛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자세이자 必死(필사)의 몸부림이다.

 

 

싯다르타의 열반 또한 초월이다. 

 

 

싯다르타 고마타는 涅槃(열반)을 얘기함으로써 삶의 끝없는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으니 그 역시 초월이다.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정작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또한 하나의 초월인 까닭이다. 그야말로 不可思議(불가사의), 헤아릴 수 없는 것.

 

물론 우리 모두 초월해야만 삶의 폭압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삶이 견딜 만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초월적 기대를 가지기도 한다. 교회나 성당에 나가서 목사님이나 신부님의 설교를 듣는 신자들은 진짜 믿음을 가진 게 아니라 언젠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어쩌면 막연한 기대를 안고 나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초월적 행위들

 

 

그런가 하면 명절이나 기일에 먼저 가신 조상들이나 부모님께 제를 올리는 것 역시 그 前提(전제)가 조상의 영령이 존재할 것이란 기대인 것이니 그 또한 초월적 행위에 가깝다.

 

등산할 때 산신령에게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달라고 예를 갖추는 것 또한 초월적 행위이다.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었을 거란 생각 역시 마찬가지.

 

산사에 가서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이나 산신각에 가서 정성스럽게 절을 올리는 것 역시 초월적인 행위이다. 그걸 우상숭배라고 폄하하는 자들은 좀 모자란 사람들이다. 굳이 과학을 들먹일 것 전혀 없다.

 

초월은 기본적으로 이성과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초월은 모든 종교와 종교적 감정, 고래로부터의 모든 철학의 바탕에 놓여있다.

 

(세상에 교회도 많고 성당도 많고 절도 많지만 진정한 信者(신자)는 드물 수밖에 없고 또 희박해야만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무시와 포기 그리고 초월은 모두 행하기 어렵기에  집단이 등장했다. 

 

 

믿음을 통한 초월만이 아니라 앞에서 얘기한 無視(무시)라든가 抛棄(포기) 모두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삶에 가해지는 暴壓(폭압)이 그만큼 강하다는 말도 성립된다.

 

무시하기도 포기하기도 초월하기도 모두 어렵다. 그런데 누군가 함께 거들거나 또는 함께 나설 것 같으면 그게 좀 쉬워진다, 정확히 말하면 쉬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의 감성은 무리를 지었을 때 훨씬 강해지고 용기가 솟기 때문이니 바로 군중심리이고 廣場(광장)의 심리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던 붉은 악마의 추억을 떠올려보라.)

 

혼자서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묵상하거나 수행하려면 신앙이나 수행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설교를 듣고 기도하고 노래하면 신앙이 샘솟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집단의 심리, 군중 심리, 광장의 심리를 통해 원동력을 얻는 것이 바로 사회운동이다. 유럽의 경우 종교개혁 이후 서서히 신이 죽어가기 시작했고 덩달아 왕의 권력도 약해졌으며 이로서 기존의 지배구조가 흔들렸다. 반면 신흥 상인계층과 그를 이어 피지배계층의 권력에 대한 욕구가 끊임없이 커져갔다. 그 역시 삶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움직이었고 그를 통해 근대 시민사회란 새로운 질서가 등장했다.

 

 

공산주의, 절대자를 죽이고 집단을 원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

 

 

그런 면에서 대표 주자는 역시 공산주의를 주장한 카를 마르크스였다.

 

자본주의는 내부 모순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며 치열한 계급투쟁, 즉 집단의 투쟁을 통해 마침내 나중엔 아예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것이란 얘기, 다시 말하면 ‘파라다이스’를 되찾게 될 것이란 주장을 했다. 그건 사실 예측이 아니라 煽動(선동)적 예언이었고 선동이란 결국 그 대상이 군중이고 집단이다.

 

계급이 없는 사회, 평등하고 자유로운 생산자의 세상,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로운 생산자, 참으로 환타스틱하다. 그게 된다고 했으니 얼마나 매혹적인 예언인가! 그 바람에 20세기는 집단을 동원했던 두 개의 이념,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온 세계를 뒤흔들었고 숱한 희생을 자아냈다.

 

오늘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는 거의 사라졌지만 집단적 움직임인 데모라든가 시위는 일상화되었다.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체제는 그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역사철학

 

 

마르크스의 주장은 사실 헤겔의 주장, 역사란 “절대정신”이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자유를 구현해가는 과정이라 했던 그 주장을 포이어바흐로부터 박아들인 유물론에 기초해서 약간 바꾸어 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煽動(선동)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 모두 이제 곧 삶의 暴壓(폭압)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둘 다 모두 변덕스런 역사가 빚어내는 暴壓(폭압)은 종말을 맞이하고 영원히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예언했던 것이니 이는 미륵보살이 곧 이 세상에 나와 세상을 구원한다는 신앙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 즉 사회 해방 선언은 결국 불교의 한 지류인 彌勒下生經(미륵하생경)과 같다. 그렇기에 중국 피지배층을 중심으로 일어난 백련교도의 亂(난)이라든가 태평천국의 亂(난), 마오쩌뚱의 공산 혁명 모두 같은 맥락일 수밖에 없다.

 

 

무리를 이룰 때 고독하지가 않아서

 

 

사회적 해방을 위한 변혁 운동의 호소 속에는 대단히 은밀하고 달콤한 유혹이 하나 숨겨져 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남들이 이룩해주거나 또는 나 혼자서만 위험부담을 지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진다는 점에서 덜 위험해보이고 덜 고독할 것이란 기대가 그것이다.

 

고독, 그거 무섭다. 우리가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 역시 죽음의 길은 혼자 가야하는 길이고 잊히는 소외의 길인 까닭이다.

 

 

기독교의 포교야말로 마케팅의 대표 원조

 

 

집단을 통해 힘을 얻자는 발상은 사실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행해졌던 마케팅 방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모두가 평등하고 동일한 형제와 자매로서 대접을 받았던 것과 같다.

 

그 바람에 일요일 서울 대형 교회에 가보면 돈 많은 사람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형제요 자매란 것을 몸소 실천해 보임으로써 신앙적 자기만족도 얻고 동시에 다른 신도들로부터 존경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타양피! 교회는 그래서 대단하다.

 

무리를 지어서 움직여라,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되면 강해지고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폭압에서 더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 이는 신천지 교회와 같은 신흥종교나 이단 분파를 보면 새로 들어온 신자를 극진하게 대우해주는데 이는 기독교의 초기 마케팅과 액면 그대로 동일하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절대정신을 주장한 헤겔의 역사철학 또한 4-5세기 경 기독교 교의를 완성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에 대한 생각, 역사에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결국 거기엔 신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하나님의 의지에서 절대 정신을 거쳐 집단 또는 무리의 결집과 투쟁을 통한 공산사회로 중심이 이동되었을 뿐이다.

 

(이것으로 볼 때 어떤 생각이나 사상도 결국은 기존에 존재하던 사상적 문화적 풍토 위에서 변화 발전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원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낙원을 만들어보자는 혁명은 모두 실패했고 또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초월하려는 인간 의지의 발로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이다.

 

아무튼 오늘날 세상은 어쨌거나 좋아졌다. 90까지 살 수도 있고 어지간한 질병은 약이나 병원이 해결해주는 세상, 누구나 교육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가능케 한 것은 사상도 아니요 종교나 철학도 아니다. 과거 지배질서가 붕괴하면서 시민사회가 생겨났고 그 결과 자유경쟁과 사적 이익의 추구를 통해 기술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리 정치를 보면 후보들이 公約(공약)이란 것을 한다. 물론 空約(공약)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어차피 선거에 참여하는 일이야 공짜이고 게다가 공휴일까지 되니 기분 나쁠 까닭이 없다, 솔깃한 말을 던지는 후보에게 표를 준다. 물론 내 돈 들어갈 일도 아니다.

 

당선된 후보는 시늉만 하다가 또 레임덕에 빠지고 다시 게임이 시작된다. 이렇게 보면 민주정치가 무의미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권력이 계속 바뀐다는 점이다. 하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삶의 폭압으로부터 구원해주진 않는다.

 

다시 말해서 삶의 暴壓(폭압)을 견딤에 있어 정치 또한 전혀 역할을 하지 않는다 말하면 너무 심한 얘기가 되겠으나 그렇다고 그쪽에서 답을 찾을 일은 아니란 얘기이다. 나이가 마흔 중반 정도 되면 으레 알아차릴 일이고 알아차리게 된다.

 

 

현실에서 삶의 폭압을 견뎌내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 

 

 

그럼 이제 현실의 삶에서 폭압을 견뎌내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얘기해보자.

 

우리 모두 세속의 가치를 제대로 無視(무시)하기 어렵다, 혹시나 찾아올 수 있는 행운을 애당초 抛棄(포기)하기도 어렵다. 물론 超越(초월)은 더더욱 어렵다.

 

나 호호당만 해도 12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화실 바로 곁에 창이 있어 밑바닥의 포장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삶의 폭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저 밑으로 떨어질 용기? 전혀 없다. 백척간두진일보, 어림도 없다.

 

그렇지만 무시나 포기 그리고 초월을 전적으로 순도 높게 행할 순 없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엇비슷하게 흉내를 내면서 그런대로 삶의 暴壓(폭압)을 견뎌낼 순 있다, 그렇다고 본다.

 

예를 들면 열심히 해보다가 안 되면 말고, 이런 식의 마음 자세는 얼마든지 가져볼 수 있다. 그 정도까지의 멘탈은 가능하다. 사업을 하다가 어려우면 그만 접어야 할 터인데 접는 순간의 선택, 즉 포기는 어디까지나 내가 정한다는 식의 마음을 가지는 것도 비슷한 예이다.

 

 

고통의 길을 선택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자유이다.  

 

 

작년 상담을 할 때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본다.

 

미대생이었다. 고민인 즉 어려서부터 방면에 소질이 좀 있다 보니 미대에 진학했고 또 대학원까지 다니고는 있지만 앞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운세를 척 보니 소위 ‘좋은 날’ 오려면 한창 걸릴 판국이었다.

 

자넨 무엇이 고민인가 한 번 편히 털어놓아보시게나, 했다. 그랬더니 그림 그리는 일 자체는 너무 좋은데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예상한 바였다.

 

얘기했다. 그림에 대해 전망이 있든 없든 세상에 자유로운 이는 없어, 하지만 뭘 해도 먹고 살 순 있는 세상이란 건 자네도 알겠지, 다만 고생을 좀 해야 하겠지, 그림을 통해 돈을 잘 벌고 유명해진다? 참 어려운 얘기이지.

 

그런데 자네 운의 흐름을 딱 보니 그림을 계속 하든 딴 길을 찾든 어차피 주어진 ‘고생의 시간적 분량’을 피할 순 없다네, 그럴 바엔 차라리 좋아하는 그림을 하면서 고생을 제대로 해보는 것도 나빠 보이진 않는데,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물론 딴 길을 찾아도 그 또한 괜찮아.

 

문제는 어떤 것을 택하든 모두 나쁘지 않다는 점이야. 우리가 무서운 것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야. 뭘 해도 자네가 주어진 분량만큼의 고생을 소화해야 할 터인데 그렇다면 이제 와서 새롭게 선택할 필요 자체가 없잖아! 그냥 좋은 것 하면서 고생을 지속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빼박’을 무서워하지만 실은 빼박이야말로 선택이 없잖아, 오히려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면에서 그게 바로 길게 보면 성공의 지름길이거든. 살다 보면 알게 되지. 성공하려면 사실 빼박의 외길을 가야만 해.

 

자네가 하는 고민, 이 세상 거의 모든 미대생들이 하는 공통된 고민이잖아. 집안에 돈이 많아서 나중에 갤러리 하나 우아하게 운영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렇잖아.

 

사실은 다 괜찮아.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네의 自由(자유)란 거지. 망해도 내가 선택해서 망할 것이고 적당히 살아도 그 또한 자신의 선택이니 나쁠 게 없어. 중요한 것은 칼날을 쥘 것이 아니라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는 얘기야.

 

다시 말해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말라는 얘기일세, 자네가 선택할 것이지 선택을 강요당하지는 말라는 얘기, 무슨 말인지 감이 가시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고생할 것이 무서워서 선택을 강요당해, 그건 폭력이야, 그게 진짜 문제야.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기꺼이 괴로운 길을 선택할 자유 또한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야, 난 그렇게 생각하네.

 

그렇게 말했더니 그 학생은 그림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진짜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이에 답하길 자네가 선택한 길이니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적어도 강요당한 것은 아니잖아!

 

그 이후 그 미대생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 호호당은 알지 못한다. 그저 한동안 어려운 길을 갈 것이란 점만 알고 있다.

 

상담이 끝나서 되돌아 나가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작고한 시인 오규원의 시 구절이 스쳐갔다. “詩(시)는 敗北(패배)이니 승리는 오해 말라”는 구절. 내가 시를 쓸 땐 이미 승리에 대한 미련, 인생의 부귀영화 따윈 다 저버리고 시작했으니 쓸데없이 나더러 패배한 글쟁이라고 보진 말라는 얘기이다. 너희들이 패배자라고 낙인을 찍기 전에 내 스스로 패배의 길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얼마나 당당한가, 적극적 포기의 길을 택한 시인이었다.

 

삶을 망쳐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또 선택을 하다 보면 그 결과 참으로 어렵게 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내가 아니라 주변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결국 결과는 스스로의 몫이다.

 

 

어렵지만 차라리 당당하게 때로는 비굴하고 구차하게 

 

 

이처럼 삶의 폭압 앞에서 때론 다 던져버리고 다 내려놓을지언정 당당하게 맞서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앞의 예를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다 성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어렵더라도 차라리 당당하게.

 

하지만 방금까지의 말도 사실 쉬운 게 아니다. 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가능하면 부귀영화도 누리고 싶고 무병장수하고 싶으며 자녀들도 모두 잘 길러내어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기도 싶다.

 

우리의 욕심과 욕망은 끝도 없고 한도 없다. 또 그런 기대를 안고 살기에 무수히 좌절을 겪고 삶의 暴壓(폭압)에 시달린다. 이에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지금껏 소개했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바라던 것을 어느 순간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기 어렵고 포기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초월은 더 어렵다.

 

결국 우리 모두 矛盾(모순)된 존재이다. 그러니 그 모순을 안고 가자는 얘기이다. 중요한 것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듯이 때론 구차하고 비루할지언정 이 삶을 건너가면 되는 일이다.

 

잘 나갈 땐 득의양양하고 교만을 좀 떨어도 좋다, 그게 사는 맛이다. 어려워지면 백방으로 노력하되 정 안 된다 싶으면 큰 길에 나가 울고불고 소리를 쳐도 된다. 아니면 하나님도 찾고 부처님도 찾아보자. 조상님께 기도를 하는 것도 좋다. 다 좋다.

 

결론적으로 하고픈 말은 삶의 폭압을 견디는 과정, 한 평생 살다가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때론 좀 비굴해지고 또 苟且(구차)하게 이어가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면 삶 자체가 구차하기 때문이다.

 

이제 글을 마친다. 평소 쓰던 분량의 두 배에 가깝지만 재미있는 대목들을 대폭 줄이고 깎아야 했기에 아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핵심은 다 얘기한 것 같다. 글 따라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다. 감사의 인사 올린다. 나 호호당 또한 쓰느라 수고했다. 이제 글에서 벗어날 때다.

 

(이번 글의 주제는 사실 좀 더 풀어서 책 한 권으로 엮어도 되는 것인데, 책으로 만드는 것은 판매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그냥 접기로 한다.)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  

 

 

앞의 글에 대해 독자가 공감했다면 이번 글로서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와 함께 얘기를 시작해보겠다. 글 한 편으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써놓고 보니 너무 압축이 심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풀어서 두 개의 글로 나누었다. 미리 양해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동안 성취를 하고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성(理性)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感性(감성)의 동물이란 점에서 뜻하지 않은 고난과 불행, 앞의 글에서 얘기한 삶의 暴壓(폭압) 앞에선 꼭 그것만으로 맞서고 대처할 수 있지는 않다.

 

 

세 가지 방법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있으니 이 세 가지 방법이란 결국 우리가 가진 그야말로 강인한 정신, 즉 의지(意志)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힘을 사용하는 것이란 얘기로부터 시작한다.

 

세 가지 방법을 열거하면 첫째는 무시(無視)이고 그 다음으론 포기(抛棄), 마지막으로 超越(초월)이 그것이다.

 

고래(古來)로부터 제시된 모든 철학과 종교, 삶의 지혜 등등 그 어떤 것을 들추어보고 따져 봐도 앞의 세 가지 범주에 들어간다. 이 세 가지를 믹스하거나 강조점이 다를 뿐 기본적으로 결국 이 세 가지로 요약이 된다.

 

 

無視(무시)의 철학

 

 

먼저 무시(無視)하는 것부터 얘기해본다.

 

무시(無視), 즉 없다고 치는 것인데 이게 상당히 강력한 마음씀씀이다.

 

가령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만남을 피하면서 그런 사람 세상에 없다고 여기는 방법 또한 무시에 속한다. 이런 방법은 다소 소극적 방법에 속한다.

 

알베르 까뮈의 부조리 철학이 있다. 삶에 대해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써본 들 결국 삶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아예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버리자, 우리의 운명이 부여하는 폭압을 없는 걸로 무시함으로써 자유, ‘잘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자는 주장이다. 이는 무시와 포기의 믹스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본 들 가령 당신이 부자가 되거나 성취를 할 확률이 없다, 무망(無望)하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겠다, 그러면 부(富)나 성공의 가치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방법과 같다. 난 출세나 부자 되는 것 따윈 하지 않을 거야, 그저 눈앞의 먹고 사는 일 정도만 되면 충분해, 하고 마음먹는다면 이를 자족(自足)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바탕엔 무시(無視)의 마음이 깔려있다. 선망(羨望)하는 마음 자체를 없어버리는 방법이다.

 

 

안 된다 싶으면 없는 셈 쳐라!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이란 것 역시 그 바탕에는 무시(無視)의 마인드가 깔려있다. 산다는 게 뭐 별 거 있겠어, 당장 가능한 소소하지만 즐거운 것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소확행만으론 멘탈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여전히 마음의 바탕엔 어쩌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놓여 있다면 그렇다. ‘소확행’밖에 없다는 정도는 되어야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작은 통속에 살면서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직접 찾아와 당신의 소원을 말해보시오, 했을 때 내 앞의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했던 디오게네스를 떠올리게 된다. 욕망을 최대한 줄여서 자족했던 이른바 견유학파의 이 철학자 역시 세속의 가치를 무시하고 욕망을 포기했던 경우에 해당된다.

 

흔히 동아시아 고전이나 기록에도 무시의 자세가 자주 나타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도 한 竹林七賢(죽림칠현)이 바로 그들이다. 혼탁한 세상,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니 서늘한 대숲에 모여서 맑은 담론 즉 淸談(청담)이나 논하고 권세가들을 비웃으며 일생을 보냈다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권력과 부를 무시했던 것일까? 를 놓고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볼 것 같으면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들은 세속의 가치를 무시했다기보다는 마지못해 포기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無視(무시)는 抛棄(포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추구하고 또 추구하다가 끝내 되질 않자 포기하는 것과 계산을 두루 뽑아보니 이게 될 일이 아니다 싶고 그럴 바엔 아애 없는 셈 치는 것이 무시란 점에서 그렇다.

 

 

抛棄(포기), 나름의 예술이어서 

 

 

그러면 이제 슬슬 抛棄(포기) 쪽으로 넘어가보자.

 

포기한다는 것이 나름 꽤나 흥미롭다. 포기에는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 어쩔 수가 없어서 내려놓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부터 알아두고 시작하자.

 

조선시대 양반, 문인들의 경우 관직에 나가는 것 出仕(출사)만이 뜻을 이루는 길이었다. 그런데 벼슬길을 가다가 당파 싸움에서 밀렸을 경우, 오늘날로 치면 정권이 바뀔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사표를 냈으면 흔히 落鄕(낙향)한다고 했으나 어지간해선 진짜 살던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한양 외곽에 눌러 살았다. 그게 바로 野黨(야당)인 셈인데 여차하면 다시 정권이 바뀌어서 다시 벼슬길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기에도 여러 층차가 있어서 

 

 

이 경우 임금님이 계시는 궁궐을 멀리서나마 내려다볼 수 있는 서울 남산의 북쪽 기슭에 사는 이와 남산의 남쪽 기슭, 즉 궁궐을 등지고 한강을 바라보는 쪽, 오늘날로 치면 한남동 쪽에 사는 이는 자세가 달랐다.

 

궁궐을 바라보는 쪽 사람들은 미련이 많이 남아서 권토중래의 길을 찾는 이들이었고 궁궐이 보이지 않는 한남동 사람들은 복귀를 거의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한남동 쪽 사람들도 아예 낙향하지 않고 한양 언저리에 눌러 붙었다는 점에서 적극적 포기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게 바로 不敢請固所願(불감청고소원), 즉 감히 청할 순 없지만 본래부터 바라는 바라고 하는 말, 여전히 혹시나 다시 벼슬길에? 하는 미련을 안고 살았다.

 

좀 더 벼슬을 포기했거나 벼슬 하면서 한 재산 불린 사람들 또한 완전히 낙향하는 일은 드물었다. 가령 경상도 상주 근처의 고향집으로 가지 않고 경기도 이천이나 여주 등지로 내려가 집을 마련하고 땅을 마련해서 장기전에 돌입했다.

 

그 경우 오늘날 경기도와 강원도를 나누는 섬강을 건넜느냐의 여부에 따라 또 달랐다. 강을 건너 강원도로 들어선 경우를 좀 더 벼슬을 포기한 것으로 인정해줬고 건너지 않았으면 여주 이천에서 일단 농사를 지으면서 자녀들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하게 해서 재기를 도모했던 쪽이었다.

 

정말이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어떤 벼슬이라도 지푸라기처럼 여겼던 이가 정말 있었을까 싶다. 그건 바로 적극적인 포기이자 나아가서 더 강력한 無視(무시)의 마인드이니 말이다. (퇴계 이황이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 역시 자세히 알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

 

 

제갈량이 그토록 인기가 있었던 이유

 

 

동아시아 유교사회에서 삼국지연의 속의 제갈량이 그토록 숭앙을 받는 것은 초야에 묻혀 지내면서 어떤 곳에도 줄을 대지 않았건만 유비가 알아서 제 발로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찾아와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 있다.

 

출세나 부귀공명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때가 되니 절로 초빙을 받았으니 동아시아 문인 계층들이 얼마나 부러워하고 선망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건 삼국지연의, 즉 소설 속의 것이고 현실에서 진짜 제갈량이 그랬는지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포기야말로 정말 어느 선에서 포기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다는 말, 논어에 나오는 얘기이지만 그게 정말 그런 심정이었는지 아니면 짐짓 그래봤던 것인지 그건 사실 모르는 일이라 하겠다.

 

 

포기 면에서 최고의 포스(force)는 역시 싯다르타 

 

 

이런 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포기의 경우를 볼 것 같으면 불교의 개조인 싯다르타 고타마가 아닌가 한다. 이 분은 포기와 초월을 믹스하고 약간의 무시를 가미한 경우이다. 기본적으로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기에 세속적 영화와 가치를 나름 맛을 본 양반이고 그렇기에 포기가 아니라 무시할 수 있었는데 이 분의 위대함은 포기에 대해서도 대단히 적극적인 면이 있다는 점과 독특한 방식의 초월에 있다.

 

싯다르타는 삶의 모든 것이 苦(고)라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 苦(고)란 고통이라기보다는 앞글에서 얘기한바 삶은 어차피 한계상황에 놓여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싯다르타는 생명이란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渴愛(갈애)와 執着(집착)의 두 가지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라 했으니 이건 생명 또는 삶의 의미 자체를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渴愛(갈애), 마치 끊임없는 갈증과도 같은 욕망과 근본적인 어리석음 즉 無明(무명)에서 오는 執着(집착)에서 벗어나야만 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삶의 모든 욕망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어리석음이란 결국 존재(Being)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 하겠는데 그런 거 내려놓으란 얘기를 남긴 싯다르타였다. 네가 생각하는 너란 존재 또한 알고 보면 일시적으로 결합된 물질과 의식작용으로 이루어진 假建物(가건물)이니 영원성이 없다는 얘기, 그러니 붙들려 하지 말라는 것, 즉 포기를 의미한다.

 

생명으로서의 욕망과 존재에 대한 집착을 다 내려놓으면 마치 무겁고 구차한 짐으로부터 벗어나고 풀어놓을 수 있으니 곧 解脫(해탈)이다. 그리고 바른 지혜를 통해 제대로 수행하다 보면 어떤 독특한 경지, 초월이라 말할 수 있는 涅槃(열반)에 이를 수 있고 다시는 苦海(고해) 그 자체인 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하는 일 없게 된다는 것이 싯다르타의 주장이다. 따라서 삶 자체에 대한 無視(무시) 또한 가미되어 있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리고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아무래도 대중적 호소력이 떨어졌는지 몰라도 다소 변하게 된다.)

 

싯다르타와 거의 동시대인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 역시 해탈을 성취한 영혼은 현생이 끝났을 때 세계의 가장 꼭대기로 올라가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린다고 했으니 포기와 초월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하이데거, 까뮈, 니체 등등 

 

 

사실 현대철학의 거장이라고 평가되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 역시 서양철학의 계보를 바탕으로 존재학이라 아니라 현상학이란 분야를 개척했으나 그 역시 존재(Being) 자체를 따져 물으면서 우리가 가진 한계상황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역시 방법은 초월과 포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알베르 까뮈가 적극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자유롭고자 했던 것, 즉 초월하고자 했던 것과 본질적으론 같은 맥락인 것이다.

 

덧붙이면 “권력에의 의지”를 역설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우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에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삶의 고통과 맞서라, 우리를 위로하던 신은 이제 죽었으니 치사하게 빌붙지 말고 우리 자신의 힘 즉 인간의 강인한 의지 즉 권력에 대한 추구로서 삶과 운명의 폭압에 맞서자, 라고 했다. 이 역시 독특한 자신만의 포기와 초월을 주장한 셈이다.

 

니체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어보면 인간적이 되려면 보통 인간은 어렵고 超人(초인)이 되어야만 한다. 참 어렵고 요원한 얘기란 생각이 드니 재미가 있다. 재산이 대략 천억 원 정도 되는 사람이 저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에 불과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제 마지막 방법인 超越(초월)에 대해 다음 글에서 얘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겠다.